열렬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며칠전에 올렸던 글의 전체 원문으로

책 내용의 일부를 복사해 왔습니다.

지금 이책을 사서보지 않는다면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만큼 안타까운 일이 될것입니다.

꼬옥~!! 차분하게 곰곰히 그뜻을 생각해가며 , 편안히 그 메세지를 느끼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서 문 **************



프롤로그


게이트님과 함께 한 연금술의 추억


참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

아는 이의 권유로 ‘붓다 필드(Buddha Field)’라는 곳을 방문한 것이 시작이었지요.
회원들로부터 받은 까닭 없는 환대에 대한 예의로, 저는 이곳의 주인장이시라는 ‘게이트(Gate)’ 님께 별 뜻없이 간단한 인사 메일을 드렸었습니다. 이내 짤막한답신이 날아들었어요. 다정하게 눈웃음치는 이모티콘을 붙인채로 말이지요.

“손을 내밀 테니 내 손을 놓지 말아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 손을 잡고 싶었습니다.
이 분의 글도 찾아 읽고 간간히 온라인으로 채팅 하거나 쪽지를 주고 받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는 나날이 지나갔지요. 그러자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 내가 누구의 손을 잡고 무엇을 해왔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 <깨달음의 연금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게이트님의 손을 잡았던 수백 명의 사람들을 향해 그분이 육성으로 들려주었거나 붓다 필드 사이트에 남긴 이야기를 추려 모은 것입니다. 유머가 섞인 부드러운 말투, 때로는 폭소를 유발하기도 하는 낙천성, 그러나 내용은 절실하기 그지 없었던 것들 가운데 일부를,누군가와 손을 잡고 싶어하는 미지의 분들도 공유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집진이 정리한것이지요.


이 책이 하려는 바는 깨달음을 돕는 일이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깨달음’ 이라는 말을
묘미와 융통성을 가지고 받아들인다면 말입니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나 분노가 왜 생겨나고 몸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미래가 불안할 때 어떻게하면 좋을지 등에 대한 조언
을 읽고 ‘아하’ 하며 무릎을 친다면 그것도 훌륭한 깨달음일 것입니다.

실제로 게이트님은 “더 이상의 스트레스 경험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안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의깊은 독자라면 책 전체에 넘쳐나는 아포리즘 사이로 삶의 비의와 심원한 진리가 언뜻언뜻 얼굴을 내밀고 있음을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구도의 여정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진리의 얼굴이 더욱 또렷하게 떠오를 테지요.

게이트님의 화법 가운데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흔히 차원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여러가지이야기들을 마치 한 가지 차원인 듯이 혹은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내용인듯이 자연스럽게 엮어서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남한테 끄달린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한테 끄달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생각 하나 바뀌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하나 못 바꿔서 수천 생을 사는 것입니다”라는 표현의 경우, 언뜻 소박하게 보이는 심리분석에서 출발하여 곧바로 견성의 동력, 윤회의 실상과 이유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화법과 산파술은 게이트님 자신이 청년시절부터 도 닦으러 산속을 찾아 다니며 체득한 신비로운이야기에서부터 우주과학과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라서, 그 분의 지론대로 ‘웃고 먹고 놀다가’ 문득 한 소식 깨치는 제자들이 속출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편안한 ‘마음공부’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파장의 실상을 보면서 사실은 전율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식과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이뤄내는 자기 치유와 혁신입니다. 마치 노련한 정신분석의의 집도를 받은 것처럼 스스로의 내면을 탐사하는 고통과 희열을 마치고 나면, 모두들 예외 없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관념덩어리와 상처들을 털어냅니다.

말 그대로 “냉철하고 확연하게 실존적으로.”
‘게이트식 커리큘럼’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는,우리가 삶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 실은 삶의 실상에 대한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는 이 에너지는 환상입니다.”) 그런 다음 모든 규범과 가치관을 철저하게 상대화시고(“여러분이 관점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여러분이 관점을 놓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침내 절대 진리이자 절대 자유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매우 근본적인 철학을 제기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면 그곳에서 모든 통찰이 얻어집니다.”)

상대주의의 극한을 지나 다시 마주치는 절대지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위대한 본성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진실이라고 선언합니다.(“진실로 진실이 그러합니다.”)

이것을 철학으로서 혹은 종교로서 논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삶의 여울목을 돌고 각종 지식의 산들을 오르내리다가 천신만고끝에 존재로써 붙잡은 이들에게는 이것이 신의 음성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애정 넘치고 지혜를 공유한 공동체를 결합시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붓다 필드의 위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지혜가 도그마로 올라서는 것을 우리만큼이나 싫어할 사람이 있다면 게이트님 자신일 것입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의 대스승들은 어떤 특별한 인연이나 신의 축복을 받은 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을 매우 소중하게 사랑과 자비, 용서와 포용, 성숙과 성장으로 계속 진화 시켰던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존재와 신적 존재 사이의 차이 자체를 폐기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모든 장애는 도약의 발판이자 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게이트님은 어느 티벳선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절망을 경험하거나, 강한 두려움을 느낄 때, 혹은 무엇인가를 심하게 걱정하고 있을 때 마음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의 기회가 생긴다.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책 <깨달음의 연금술>이 자기 안의 번뇌에 감겨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빛을 불러일으키고 신성을 되살아 나게 하는 연금술을 발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김소희

전 <씨네21> 편집장, LJ필름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겸임교수



*********** 책 속으로 **************



모든 변화는 가장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간단하고 사소한 것에 진리가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혼란, 답답함이 느껴지면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을 소중한 소재로 삼아야 합니다.
답답함도 에너지이며 그것은 도약이 일어날 수 있는 장입니다. 답답하다고 밖으로 나돌거나 선생을 찾아
간다거나 책을 본다거나 하지 말고 스스로 그것을 소중한 열쇠(Key)로 생각을 해보십시오 ......

-본문 19쪽 중에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을 먼저 돌이켜 보세요 그것을 왜 하려 하는지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을 먼저 이해시켜 보세요 그것이 왜 필요한지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을 먼저 납득시켜 보세요 그것이 되야만 하는 이유를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을 먼저 설득시켜 보세요 그것이 된다는 확신이 차도록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을 먼저 인정해 주세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본문 92쪽 중에서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일때...
그걸 자신이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감정에 빠질 때, 빠지는 것에 분노하지 마세요.
그래도 분노가 멈추지 않을 때, 멈추지 않음에 답답해하지 마세요.
그래도 계속 답답해질 때, 그 답답함에 끄달리지 마세요.

그 끄달림이 쉬지 않을 때, 그 쉬지못함을 미워하지 마세요.
그 미움이 가시지 않을 때, 그 미움을 싫어하지 마세요.
그 싫어함이 사라지지 않을 때, 사라지지 않음에 열받지 마세요.
그 열이 식지 않을 때, 그 식지않음을 자책하지 마세요 .

그리고 자책하는 자신이 보이기 시작할 때,
어느 덧 남에게 향하고, 밖으로 향했던
자신의 감정은 제자리로 돌아와
그것이 솟았던 그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본문 128쪽 중에서



세상에 대한 부담감과 의식주에 대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꿈을 이해하고 통찰하여 꿈속에서 자유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결코 무시할 이유도 집착할 필요도 없는 여러분의 성장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항상 죽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는 것을 늘 의식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죽음을 보고 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일로 나에게는 전혀 찾아오지 않을 손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삶은 항상 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 두 환상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고 진정한 여러분 자신을 찾으셔야 합니다 ......

-본문 21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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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4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이되다 2005-04-14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많이 퍼가주세요~ ^^

월든 2005-04-15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일리지가 쌓여, 지금 내게 정말 필요한 책을 사야지 하고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님의 글을 보고 바로 이책이다 싶어 신청했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금방 붓다필드 사이트에 가봤는데 대단하군요...
 

염불수행의 공덕과 효과(?)는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관하는 공부는 더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쉬운것인데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시는것

같습니다.  노는니 염불한다... ^^;(죄송합니다.) 는 말처럼 잘 모르시겠으면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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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송보살의 극락왕생 (청담스님 글)

[청담(靑潭)스님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 


경상남도 진주에 가면 송보살이라고 내가 어려서 봤는데 길가에 다니다가 만나서
우리가 「어디가십니까?」 인사를 하면 「응」하고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기만 하는 그런 여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내가 중이 된 뒤 그이가 거진 구십살이나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집이 가난한
살림인데 절에 불공이 있으면 와서 거들어 주고 떡 부수러기나 얻어다 아이들
먹이는 이런 형편입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염불을 자나깨나
하고 있는 그런 보살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뒤에 내가 진주에 가 보니까 시내 연화사(蓮華寺 : 경남 진주시
옥봉동 449번지) 포교당(布敎堂)에 낮설은  탑이 하나 생긴 것을 보고
「이게 무슨 탑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애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송보살이 자기가 죽기 나흘 전에 진주 신도 다 찾아 보면서 「내가 나흘 뒤 저녁을
먹고서 어둑해질 때 가겠스니 부디 염불 잘 하십시오. 나는 먼저 극락세계
가니까 같이 거기 가서 만납니다.」 이런 인사를 하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아마 나이가 하도 많은 노인이라 망녕이 들어서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모두 곧이 듣지를 않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먹고 나서 손자고 누구고 식구들을 아무데도 못가게 하고는 불러
앉혀 놓더니 「내가 오늘 저녁때 해질 무렵에 간다. 너희들은 부디 딴 짓 하지마라,
극락도 있는 거고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는 줄 알고 또 사람이 부처가 되는 법이
있으니 잘 명심(銘心)하고 신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당부를 하더라는 겁니다.

일념으로 마음이 통일이 되어 놓으니까 그 무식한 노인이지마는 밝은 마음의 慧가
열려서 무얼 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까 가서 물 데워 오라고 해서
목욕을 하고 그리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는

「너희들 밥 먹고 나서 아무데도 가지 마라. 저녁 일찍 해 먹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할머니가 뭐 정신이 돌았거나 망녕이 든 것 같지도 않게 태연하고
엄숙하니까 행여나 싶어서 식구들이 모두 시키는 대로 저녁 일찍 해 먹고

모두 아이들도 못나가게 하고 그랬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요를 펴라고 해서 요를
펴니까 요 위에 앉아서 또 얘기를 합니다.

「이 세상이 다 無常하고 여기는 苦海고 불 붙은 집이고 그러니 아예 방심하지 말고
네 일좀 해야지 맨날 육체 . 몸뚱이 그렇게 가꾸어 줘봐야 갈 때는 헛수고했다고
인사도 안하고 나를 배반하고 가는 놈이며 몸뚱이라는건 그런 무정한 놈이니

그 놈만 위해서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나도 평생에 염불해서 이런 좋은 수가 있지
않느냐. 구십장수(九十長壽)도 하고 병 안앓고 꼬부러지지도 안하고 그리고 가는
날짜 알고 내가 지금 말만 떨어지면 간다 . 곧 갈 시간이 되었어.
이러니 너희들도 그랬으면 좀 좋겠느냐.

두달이고 일년이고 드러누워 똥을 받아 내고 이래 놓으면 그 무슨 꼴이냐. 너희
한테도 빌어먹을 것도 못 벌어먹고 모자간에 서로 정도 떨어지고 얼마나 나쁘냐.
부디 신심으로 염불도 하고 부디 그렇게 해라.」

이렇게 말한 뒤 살며시 눕더니 사르르 잠든 것처럼 가 버렸는데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만 그 집에서 광장히 좋은 향내가 나고 또 조금 있으니 서쪽을 향해서 환히
서기방광을 해서 소방대가 불났다고 동원이 되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불교 신도들이 이 소문을 듣고 송보살이 예언한대로 돌아갔다, 열반을 했다, 이래
가지고 진주 신도라는 신도는 수천명이 모여 와서 송장에 대해서도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무수배례(無數拜禮)하고 마당에서 길에서 뜰에서 신도들이 꽉차게

모여 가지고 절도 하고 돈도 내고 이래서 장사를 아주 굉장하게 화장으로 지내는데
사리가 나와서 사리탑을 지어 모셔 놓은 것이 연화사에 있는 낯선 저 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무아미타불 나미아미타불」 그것만 불러도 이렇게 됩니다. 아무 뜻도
모르고 극락세계 갈 거라고 그것만 해도 공덕이 되고 정신통일이 되어
혜(慧)도 열립니다.




출처 : 청담 스님 금강경 대강좌 금강경 지경공덕분 제15 (양우당, 1977년 5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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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정말로 멋진 책이 나왔습니다.

깨달음의 정점에서 샘물처럼 솟아나오는 지혜의 글들이 주옥처럼 펼쳐집니다.

우리나라에 이런분이 계셨다니...게이트님의 글인데요..

꼭 구입하셔서 찬찬히 음미하시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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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연금술"

게이트님의 화법 가운데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흔히 차원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마치 한 가지 차원인 듯이 혹은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내용인듯이 자연스럽게 엮어서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남한테 끄달린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한테 끄달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생각 하나 바뀌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하나 못 바꿔서 수천 생을 사는 것입니다”라는 표현의 경우, 언뜻 소박하게 보이는 심리분석에서 출발하여 곧바로 견성의 동력, 윤회의 실상과 이유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화법과 산파술은 게이트님 자신이 청년시절부터 도 닦으러 산속을 찾아 다니며 체득한 신비로운 이야기에서부터 우주과학과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라서, 그 분의 지론대로 ‘웃고 먹고  놀다가’ 문득 한 소식 깨치는 제자들이 속출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편안한 ‘마음공부’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파장의 실상을 보면서 사실은 전율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식과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이뤄내는 자기 치유와 혁신입니다.  마치 노련한 정신분석의의 집도를 받은 것처럼 스스로의 내면을 탐사하는 고통과 희열을 마치고 나면, 모두들 예외 없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관념덩어리와 상처들을 털어냅니다.

말 그대로 “냉철하고 확연하게 실존적으로.”
‘게이트식 커리큘럼’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는,우리가 삶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 실은 삶의 실상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는 이 에너지는 환상입니다.”) 그런 다음 모든 규범과 가치관을 철저하게 상대화시고 (“여러분이 관점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여러분이 관점을 놓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침내 절대 진리이자 절대 자유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매우 근본적인 철학을 제기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면 그곳에서 모든 통찰이 얻어집니다.”)

상대주의의 극한을 지나 다시 마주치는 절대지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위대한 본성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진실이라고 선언합니다.(“진실로 진실이 그러합니다.”)

이것을 철학으로서 혹은 종교로서 논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삶의 여울목을 돌고 각종 지식의 산들을 오르내리다가 천신만고끝에 존재로써 붙잡은 이들에게는 이것이 신의 음성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애정 넘치고 지혜를 공유한 공동체를 결합시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붓다 필드의 위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지혜가 도그마로 올라서는 것을 우리만큼이나 싫어할 사람이 있다면  게이트님 자신일 것입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의 대스승들은 어떤 특별한 인연이나 신의 축복을 받은 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을 매우 소중하게 사랑과 자비, 용서와 포용, 성숙과 성장으로 계속 진화 시켰던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존재와 신적 존재 사이의 차이 자체를 폐기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모든 장애는 도약의 발판이자 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게이트님은 어느 티벳선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절망을 경험하거나,  강한 두려움을 느낄 때, 혹은 무엇인가를 심하게 걱정하고 있을 때 마음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의 기회가 생긴다.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책 <깨달음의 연금술>이 자기 안의 번뇌에 감겨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빛을 불러일으키고 신성을 되살아 나게 하는 연금술을 발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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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서 보세요~  깨달음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아주아주 쉽고 진솔하게 표현해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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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 사진을 이곳에 올립니다. 예전에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것인데...
마음의 힘, 참나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올려봅니다.
자신의 이름을 물에게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런지요? ^^
 
 도쿄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수돗물을 병에 넣고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물이었습니다.
그 결정을 찍어보니, 도쿄의 수돗물은 염소 소독을 한 때문인지 깨끗한 결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국 각지에 사는 500명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특정한 시간에 일제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감사하는 기분을 가득 채우고 "책상위의 수돗물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한 다음 "고맙습니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상대로 그렇게 한 물의 결정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평범한 수돗물이 깨끗한 물로 바뀐 것입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미 여러분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500명의 마음과 말이 한순간 물에 전해진 것입니다.
파동은 시공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일어난 생각은 늘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이미 우리들 손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물 한잔을 떠놓고 그 물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것입니다. 한 잔의 물은 지구상의 모든 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물을 향해 보내는 사랑과 감사의 파동은 황금색 또는 은색의 빛이 되어 물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 눈부신 빛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 전체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환함을 이 별이 치유와 조화로 가득한 것임을 드러내줄 것입니다.

물은 사람들 마음을 나르고 행복을 나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물 그 자체입니다.
어디에 있든 기도는 세계 곳곳으로 전달됩니다. 그러니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사랑과 감사로 가슴을 가득 채웁시다. 기도하는 마음을 세상에 전합시다. 자비의 마음을 전합시다.

그리고 흘러야 합니다. 살아있는 한.

- 에모토 마사루 의<물은 답을 알고 있다2> 중에서 -

기도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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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되다 2005-04-1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물의 결정사진을 올리고 나서 몇번 확인했을때에는 분명히 잘 보였는데 하루지난뒤 와서보니 전부 깨져서 나오네요. ^^;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제게 늘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대원력님의 글입니다. 퍼옵니다. 감사합니다 대원력님~

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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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
(바람을 향해 흙을 던지지 말라) 


부처님께서 사밧티의 동쪽 녹자모 강당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탁발을 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탁발이 끝나갈 무렵 뜻밖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사밧티에 사는 파라트파차라는 욕쟁이가 부처님을 따라
다니며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욕을 하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으시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파라트파차는
부처님이 자기의 위세에 눌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줄
알고 '당신은 나에게 졌다'고 하면서 기고만장 하였다.

그러나 일체의 분노로부터 해탈한 부처님은
그런일에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낼 부처님이 아니셨다.

몹시 화가 난 파라트파차는 흙을 한주먹 쥐고
부처님을 향해 뿌렸다.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는 도로 그에게
돌아갔다.
파라트파차는 자기가 뿌린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말았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부처님께서는
딱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아무에게나 마음대로 욕하거나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
너를 화나게 하거나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서 때가 없는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면
허물은 도리어 자기에게 돌아가게 된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흙을 뿌리면 그 흙이 되돌아와 자신을
더럽히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파라트파차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참회했다.
'부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왜 미친 사람처럼 부처님에게 거칠고 추악한 말로
욕하고 모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 잡아함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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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되다 2005-04-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을 마주하여 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듯이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그 미움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그것이 원수를 항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잡아함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