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수행의 공덕과 효과(?)는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관하는 공부는 더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쉬운것인데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시는것

같습니다.  노는니 염불한다... ^^;(죄송합니다.) 는 말처럼 잘 모르시겠으면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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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송보살의 극락왕생 (청담스님 글)

[청담(靑潭)스님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 


경상남도 진주에 가면 송보살이라고 내가 어려서 봤는데 길가에 다니다가 만나서
우리가 「어디가십니까?」 인사를 하면 「응」하고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기만 하는 그런 여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내가 중이 된 뒤 그이가 거진 구십살이나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집이 가난한
살림인데 절에 불공이 있으면 와서 거들어 주고 떡 부수러기나 얻어다 아이들
먹이는 이런 형편입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염불을 자나깨나
하고 있는 그런 보살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뒤에 내가 진주에 가 보니까 시내 연화사(蓮華寺 : 경남 진주시
옥봉동 449번지) 포교당(布敎堂)에 낮설은  탑이 하나 생긴 것을 보고
「이게 무슨 탑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애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송보살이 자기가 죽기 나흘 전에 진주 신도 다 찾아 보면서 「내가 나흘 뒤 저녁을
먹고서 어둑해질 때 가겠스니 부디 염불 잘 하십시오. 나는 먼저 극락세계
가니까 같이 거기 가서 만납니다.」 이런 인사를 하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아마 나이가 하도 많은 노인이라 망녕이 들어서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모두 곧이 듣지를 않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먹고 나서 손자고 누구고 식구들을 아무데도 못가게 하고는 불러
앉혀 놓더니 「내가 오늘 저녁때 해질 무렵에 간다. 너희들은 부디 딴 짓 하지마라,
극락도 있는 거고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는 줄 알고 또 사람이 부처가 되는 법이
있으니 잘 명심(銘心)하고 신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당부를 하더라는 겁니다.

일념으로 마음이 통일이 되어 놓으니까 그 무식한 노인이지마는 밝은 마음의 慧가
열려서 무얼 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까 가서 물 데워 오라고 해서
목욕을 하고 그리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는

「너희들 밥 먹고 나서 아무데도 가지 마라. 저녁 일찍 해 먹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할머니가 뭐 정신이 돌았거나 망녕이 든 것 같지도 않게 태연하고
엄숙하니까 행여나 싶어서 식구들이 모두 시키는 대로 저녁 일찍 해 먹고

모두 아이들도 못나가게 하고 그랬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요를 펴라고 해서 요를
펴니까 요 위에 앉아서 또 얘기를 합니다.

「이 세상이 다 無常하고 여기는 苦海고 불 붙은 집이고 그러니 아예 방심하지 말고
네 일좀 해야지 맨날 육체 . 몸뚱이 그렇게 가꾸어 줘봐야 갈 때는 헛수고했다고
인사도 안하고 나를 배반하고 가는 놈이며 몸뚱이라는건 그런 무정한 놈이니

그 놈만 위해서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나도 평생에 염불해서 이런 좋은 수가 있지
않느냐. 구십장수(九十長壽)도 하고 병 안앓고 꼬부러지지도 안하고 그리고 가는
날짜 알고 내가 지금 말만 떨어지면 간다 . 곧 갈 시간이 되었어.
이러니 너희들도 그랬으면 좀 좋겠느냐.

두달이고 일년이고 드러누워 똥을 받아 내고 이래 놓으면 그 무슨 꼴이냐. 너희
한테도 빌어먹을 것도 못 벌어먹고 모자간에 서로 정도 떨어지고 얼마나 나쁘냐.
부디 신심으로 염불도 하고 부디 그렇게 해라.」

이렇게 말한 뒤 살며시 눕더니 사르르 잠든 것처럼 가 버렸는데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만 그 집에서 광장히 좋은 향내가 나고 또 조금 있으니 서쪽을 향해서 환히
서기방광을 해서 소방대가 불났다고 동원이 되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불교 신도들이 이 소문을 듣고 송보살이 예언한대로 돌아갔다, 열반을 했다, 이래
가지고 진주 신도라는 신도는 수천명이 모여 와서 송장에 대해서도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무수배례(無數拜禮)하고 마당에서 길에서 뜰에서 신도들이 꽉차게

모여 가지고 절도 하고 돈도 내고 이래서 장사를 아주 굉장하게 화장으로 지내는데
사리가 나와서 사리탑을 지어 모셔 놓은 것이 연화사에 있는 낯선 저 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무아미타불 나미아미타불」 그것만 불러도 이렇게 됩니다. 아무 뜻도
모르고 극락세계 갈 거라고 그것만 해도 공덕이 되고 정신통일이 되어
혜(慧)도 열립니다.




출처 : 청담 스님 금강경 대강좌 금강경 지경공덕분 제15 (양우당, 1977년 5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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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정말로 멋진 책이 나왔습니다.

깨달음의 정점에서 샘물처럼 솟아나오는 지혜의 글들이 주옥처럼 펼쳐집니다.

우리나라에 이런분이 계셨다니...게이트님의 글인데요..

꼭 구입하셔서 찬찬히 음미하시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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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연금술"

게이트님의 화법 가운데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흔히 차원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마치 한 가지 차원인 듯이 혹은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내용인듯이 자연스럽게 엮어서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남한테 끄달린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한테 끄달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생각 하나 바뀌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하나 못 바꿔서 수천 생을 사는 것입니다”라는 표현의 경우, 언뜻 소박하게 보이는 심리분석에서 출발하여 곧바로 견성의 동력, 윤회의 실상과 이유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화법과 산파술은 게이트님 자신이 청년시절부터 도 닦으러 산속을 찾아 다니며 체득한 신비로운 이야기에서부터 우주과학과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라서, 그 분의 지론대로 ‘웃고 먹고  놀다가’ 문득 한 소식 깨치는 제자들이 속출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편안한 ‘마음공부’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파장의 실상을 보면서 사실은 전율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식과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이뤄내는 자기 치유와 혁신입니다.  마치 노련한 정신분석의의 집도를 받은 것처럼 스스로의 내면을 탐사하는 고통과 희열을 마치고 나면, 모두들 예외 없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관념덩어리와 상처들을 털어냅니다.

말 그대로 “냉철하고 확연하게 실존적으로.”
‘게이트식 커리큘럼’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는,우리가 삶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 실은 삶의 실상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는 이 에너지는 환상입니다.”) 그런 다음 모든 규범과 가치관을 철저하게 상대화시고 (“여러분이 관점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여러분이 관점을 놓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침내 절대 진리이자 절대 자유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매우 근본적인 철학을 제기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면 그곳에서 모든 통찰이 얻어집니다.”)

상대주의의 극한을 지나 다시 마주치는 절대지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위대한 본성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진실이라고 선언합니다.(“진실로 진실이 그러합니다.”)

이것을 철학으로서 혹은 종교로서 논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삶의 여울목을 돌고 각종 지식의 산들을 오르내리다가 천신만고끝에 존재로써 붙잡은 이들에게는 이것이 신의 음성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애정 넘치고 지혜를 공유한 공동체를 결합시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붓다 필드의 위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지혜가 도그마로 올라서는 것을 우리만큼이나 싫어할 사람이 있다면  게이트님 자신일 것입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의 대스승들은 어떤 특별한 인연이나 신의 축복을 받은 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을 매우 소중하게 사랑과 자비, 용서와 포용, 성숙과 성장으로 계속 진화 시켰던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존재와 신적 존재 사이의 차이 자체를 폐기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모든 장애는 도약의 발판이자 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게이트님은 어느 티벳선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절망을 경험하거나,  강한 두려움을 느낄 때, 혹은 무엇인가를 심하게 걱정하고 있을 때 마음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의 기회가 생긴다.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책 <깨달음의 연금술>이 자기 안의 번뇌에 감겨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빛을 불러일으키고 신성을 되살아 나게 하는 연금술을 발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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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서 보세요~  깨달음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아주아주 쉽고 진솔하게 표현해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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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 사진을 이곳에 올립니다. 예전에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것인데...
마음의 힘, 참나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올려봅니다.
자신의 이름을 물에게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런지요? ^^
 
 도쿄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수돗물을 병에 넣고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물이었습니다.
그 결정을 찍어보니, 도쿄의 수돗물은 염소 소독을 한 때문인지 깨끗한 결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국 각지에 사는 500명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특정한 시간에 일제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감사하는 기분을 가득 채우고 "책상위의 수돗물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한 다음 "고맙습니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상대로 그렇게 한 물의 결정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평범한 수돗물이 깨끗한 물로 바뀐 것입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미 여러분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500명의 마음과 말이 한순간 물에 전해진 것입니다.
파동은 시공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일어난 생각은 늘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이미 우리들 손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물 한잔을 떠놓고 그 물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것입니다. 한 잔의 물은 지구상의 모든 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물을 향해 보내는 사랑과 감사의 파동은 황금색 또는 은색의 빛이 되어 물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 눈부신 빛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 전체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환함을 이 별이 치유와 조화로 가득한 것임을 드러내줄 것입니다.

물은 사람들 마음을 나르고 행복을 나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물 그 자체입니다.
어디에 있든 기도는 세계 곳곳으로 전달됩니다. 그러니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사랑과 감사로 가슴을 가득 채웁시다. 기도하는 마음을 세상에 전합시다. 자비의 마음을 전합시다.

그리고 흘러야 합니다. 살아있는 한.

- 에모토 마사루 의<물은 답을 알고 있다2> 중에서 -

기도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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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되다 2005-04-1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물의 결정사진을 올리고 나서 몇번 확인했을때에는 분명히 잘 보였는데 하루지난뒤 와서보니 전부 깨져서 나오네요. ^^;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제게 늘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대원력님의 글입니다. 퍼옵니다. 감사합니다 대원력님~

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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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
(바람을 향해 흙을 던지지 말라) 


부처님께서 사밧티의 동쪽 녹자모 강당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탁발을 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탁발이 끝나갈 무렵 뜻밖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사밧티에 사는 파라트파차라는 욕쟁이가 부처님을 따라
다니며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욕을 하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으시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파라트파차는
부처님이 자기의 위세에 눌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줄
알고 '당신은 나에게 졌다'고 하면서 기고만장 하였다.

그러나 일체의 분노로부터 해탈한 부처님은
그런일에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낼 부처님이 아니셨다.

몹시 화가 난 파라트파차는 흙을 한주먹 쥐고
부처님을 향해 뿌렸다.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는 도로 그에게
돌아갔다.
파라트파차는 자기가 뿌린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말았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부처님께서는
딱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아무에게나 마음대로 욕하거나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
너를 화나게 하거나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서 때가 없는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면
허물은 도리어 자기에게 돌아가게 된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흙을 뿌리면 그 흙이 되돌아와 자신을
더럽히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파라트파차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참회했다.
'부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왜 미친 사람처럼 부처님에게 거칠고 추악한 말로
욕하고 모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 잡아함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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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되다 2005-04-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을 마주하여 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듯이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그 미움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그것이 원수를 항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잡아함경 )

 

안녕하셨는지요?  요즘 제가 많이 바빴습니다.  바빴던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릴수 있을때가 되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제 작은 소망이 이루어져 부디 많은 분들과 교류하고 만날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요며칠동안 서울에서 매일 많은 분들을 만나고 귀한 가르침들을 들었습니다.

세상은 참 넓더군요.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맺고 왔으며 제 자신에게 많은 변화와 도전의 시기가 도래한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서재에 들어오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음... 그랬구요. 

음... 여러분께서는 왜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으신지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요?  제가 만나보니 투시를 해보고 싶어 열심히 수련하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또 신계(신선세계, 천상세계)를 왔다갔다 하시는 것을 목표로 수련하시는 분들도 있구요.  저 역시 그런쪽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으며 신기한 것들을 경험해 보기도 했으며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런 수련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결국 제가 알게된 것은 , 이 정신세계에서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어서 자신의 수양정도가 높지 않으면 귀한 생명과 시간을 엉뚱한데에 소비하고 만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각자에게 있어서 무의미한 사건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준비가 덜된 초보자들에게는 옥석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한번밖에 없는 이번 생에서의 시간을 허비해버릴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몇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데... 이것조차 여러분 스스로의 판단에 맡겨야 하니 어쩔수 없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업과 인연에 꼼짝없이 매이는 존재일런지... .

상근기의 수행법의 특징은 그 최종 목적이 해탈에 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는 방편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아상과 업습을 비우고 닦아가게 됩니다.  몸을 닦는 수련법들은 精을 축적시켜서 氣로 化하게하고  氣를 충만케 하여 神을 활발히 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그냥 몸닦는 수련입니다. 하지만 궁극의 고수들은 맑고 활달해진 神(마음)을 虛로 돌립니다.

곧바로 마음을 잡고 들어가는 방법은 번잡하던 마음을 자꾸 가라앉히는 방편으로 호흡에 집중하거나 만트라에 집중하여 一心으로 나아갑니다. 그다음에 그것은 無 또는 虛로 귀결됩니다.  空이라고도 합니다.

다른분을 스승으로 삼고 그밑에서 배우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몇가지를 주의하셔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사이는 그야말로 평등해야 합니다. 제자가 스승을 교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되며 이는 스승과 제자 둘다를 죽이는 길입니다.  스승이 완전하지 않다면 반드시 교만해지고 아상이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본성과 제자의 본성은 본래하나요 평등합니다.  그러니 평등하게 봐야 합니다.  이말이 스승을 함부로 대하라는 뜻이 아님은 아시겠지요.  제자가 가슴과 마음에 스승의 상을 잡게되면 평생 그것에 매여 코가 꽤인 소마냥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졸졸 따라만 가게 됩니다. 우리의 목적은 스승의 위대한 가르침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것이며, 청출어람과 같이 스승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승께서도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제자에게는 스승이 있으나 스승에게는 제자가 없다라고 합니다. 제자에게는 상이 있어서 둘로 보지만 스승은 이미 자기가 없어 일체와 하나이니 제자를 제자로 보지 않습니다.   

마음공부는 호기심때문에 시작할 수 있으나 나중에는 진지하게 몰입해야 하는 것이요, 자아만족을 위해서 지속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나중에 큰 아상으로 남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수행의 목적은 완전한 해탈( 견성이나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뛰어넘어 완전한 합일, 즉 보림까지 끝마치는 )이 맞습니다. 그외의 목적은 다 부수적인 것이지 목표는 아닙니다.  또 그 방법은 속세를 떠나서 산속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닌 (물론 그런 수행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철저히 지금여기 현실속에서 , 생활속에서 닦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가르침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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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지 않는 믿음


주인공을 진실하게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일임하게 되면 왜 일이 잘 풀리는가. 그것은 근본자리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힘이 우러나와서 유위의 법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자리는 본래 부동이지만 그 같은 나툼의 묘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체를 주인공에 맡기고 ‘그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 ’는 믿음으로 놓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변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앞뒤 좌우가 모두 꽉 막혀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할 때 믿음이 흔들리고 공부가 뒷걸음쳐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욱 더 정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에 깊이 새겨야 할 점은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을 이끄는 것은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곧, 직면한 어려움이야말로 주인공이 나를 위해 공부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왜냐? 어려움을 준 쪽에서 결국은 풀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에 봉착하더라도 완전한 믿음은 그 어려움이 얽힌 실타래를 깨끗이 녹여 버립니다.  믿음은 믿는 만큼 보답합니다. 일체를 믿는 이에게는 일체를 되돌려주고 절반만 믿는 사람에게는 절반만 돌려줍니다

주인공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사람의 뿌리는 모습이 없어 그것을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는 뿌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도 뿌리가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근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자기의 뿌리를 믿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작과 끝에 걸려 살기에 태초가 따로 있고 종말이 따로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본래는 언제나 영원한 오늘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는 마치 옷을 입었다 벗는 것과 같아서 옷을 벗으면 죽었다 하고 새로 옷을 입고 나오면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 끊어지지 않는 자리, 영원히 지속되는 불성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만들어 놓는 당신께서 알아서 해결하시오!’하고 일체를 턱 맡기는 게 믿음입니다. 나고 죽는 것까지도 다 나를 있게 한 것이 근본의 뜻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생활 중의 사소한 일 따위야 맡기지 못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드뭅니다. 내일 죽으면 어떻고 오늘 죽으면 어떤가 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믿음이란 원력, 능력, 지혜, 영원한 밝음의 시작이자 회귀처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참자기를 드러나게 하는 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를 보지 말고 네 자신 속의 너를 등불로 삼아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이는 많으나 그 말씀을 그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이는 더더욱 귀합니다.

부처님께서, 목숨 얻기가 어렵고 불법 만나기가 더욱 어려운 중에 신심을 갖기란 더더욱 어렵다 하신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믿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이어야 부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나는 중생이니까 고를 면할 길이 없겠구나.’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게는 무한한 능력,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재료가 다 갖추어져 있으므로 자신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믿으십시오,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믿음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공은 일체 만법을 해결하는 에너지이며 원소이며 핵입니다.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거기서밖에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이치라고 굳게 믿었을때, 에너지는 속사포같이 한 찰나에 전달이 됩니다.

또, 그런 믿음으로 주인공을 부르면 우주 전체가 한꺼번에 듣습니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딛고 나서지 못하면 참자기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자기라는 관념이 없어야 한 발 뗄 수 있을 것이나 자기라는 게 있으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을 몽땅 맡기고 믿는다면 내딛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생활의 모든 것, 생과 사까지도 믿고 맡기는 게 필요합니다. 설령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오직 근본 자리에다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합니다

 

- 대행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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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2005-04-0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보이지 않으셔서 무척 궁금했습니다. 요즘 마음이 좋지 못해서 오늘 아침에 대행스님의 책을 건성으로 읽다가 이곳에 들어왔더니 좋은 글이 있군요. 며칠전에 가죽커버로 된 한마음선원에서 나온 (한마음요전)을 헌책방에서 아주싸게 사서 기분이 좋습니다. 하여튼 무척 반갑습니다.^^^^^^

혜덕화 2005-04-0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정신 세계에 관심을 갖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입니다. 그냥 끌려서, 끌리다보니 매료되고, 매료되다보니 아상에 젖어 사는 저를 조금이나마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책 많이 읽는 사람, 수행 많이 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이 <아상>임을 저도 느낍니다. 저 또한 수행한다는 아상에 젖어 사는 건 아닌지, 경계할 따름입니다.

바람이되다 2005-04-0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월든님과 혜덕화님, 언제나 제가 알라딘에 들어올때마다 생각나는 두분이십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월든 교수님께서 무척 반가워해주시니 저역시 너무 반갑고 고맙습니다. 혜덕화님 저역시 알수없는 힘에 의해 이방면에 들어서다 보니 그만 이길을 가게 되어버렸습니다. 시간과 정열을 이분야에 보태는것이 즐겁기 때문에 저절로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내가 왜 이길을 가는지, 방향과 목표를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싶습니다. ^^ 사실 너무 딱딱하게만 생각하면 피곤해서 이길을 갈수 없고, 즐거워서 가야 술술 갈수 있는 길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 늘어지면 소리가 날수 없으니 중도를 지켜야 한다고 하셨나 봅니다. 아무튼 두분께 거듭거듭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두분을 뵈면 힘이 솟습니다. ()()()~ "꾸벅"

이누아 2005-04-0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 모두 공감합니다. 요즘 저는 너무 늘어진 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님들의 이야기에 다시 발심합니다.

바람이되다 2005-04-0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서로 필요한 때에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도반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세상은 인터넷 도반의 힘이 큰것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