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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청년은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
    불행히도 청년은 이미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멀쩡하던 두 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다.

    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왼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이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는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 쪽 눈 이식 수술을 마친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야 했다.

    그때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께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가냐며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게 되었다.

    그런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본 순간!
    청년의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한 쪽 눈만 보이는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 장님 몸뚱이가 네게 짐이 될 것 같아서..."

    "......."

    청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 새벽편지 가족 -

 

ps : 새벽편지에 또 좋은 내용인것 같아서 퍼옵니다.

자신을 성공시키는 방법.

         절대 포기 하지 아니한다는 전제하에
         1. 할 수 있는 간단한 계획을 세워라.
         2. 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실행하라.
         3. 실행을 반복하여 자신감을 가져라.
         4. 자신감의 행동을 타인에게 보여주라.
         5. 보여준 것을 신뢰케 해라. (계속 할 때 신뢰 생김.)
         6.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이 신뢰하도록 하라.
         7. 믿는 사람이 많을 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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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류시화님께서 < 소로우의  " 수행자에게 보내는 편지 "> 란 책을 새롭게 내어놓았습니다.

아마 월든님께서 많이 좋아하실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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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드디어 임진년에 왜란이 터졌습니다.  선발대가 700여척이나 되는 함선을 이끌고 조선의 바다에

들어왔습니다.  다음주 < 불멸의 이순신 >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순신장군과 거북선의 절묘한 조화를

생각할때마다 우리민족의 대단함을 다시한번 느끼곤 합니다.   식스센스보다 더한 반전인데...정말 놀랍

습니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이순신이 유성룡의 간청?으로 전라좌수영으로 임관한것도 그렇고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에 거북선이 완성된 것도 그렇고...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그당시 일본에서는 자체적으로 대포를 만들만한 과학기술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과 일본의 안택선은

크기는 거의 비슷했지만 만드는 기술력에서 판옥선이 월등했다고 합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오히려 더 꽉 끼어 맞아 떨어지는 나무못을 사용하고 몇겹으로 배부분을 이어 만들어 견고하고 튼튼한 반면 안택선은 쇠못을 사용하여 물속에서 쉽게 썩어서 배자체가 견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또 안택선은  선체가 약해서 대포를 탑재한 상태에서 포를 쏠수 없었기 때문에 대포를 매달아서 쏘기 때문에 명중률이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판옥선에서 쏘아대는 포중에서 오늘날 산탄총의 개념인 작은 탄알들이 무수히 퍼지는 그것(이름이 생각이 않나네요 ^^;)들이 왜구들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조총의 사정거리보다 훨씬 먼거리에서 포를 쏘아대니 안택선 자체가 부서져 침몰하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던데 그위에 타있던 왜군들은 어땠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과학기술력이 앞섰다고 해도 이순신장군의 뛰어난 지략이 없었던들 조선은 일찌감치 일본손에 떨어졌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순신장군은 육군들이 썼던 진법을 바다에서도 펼치는 개념을 도입해서 우리가 잘 아는 학익진과 같은 진법을 여러개를 개발하여 훈련하셨다고도 합니다.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위대한 조상들은 기술력과 정신력... 그리고 장수들의 지략이 뛰어났었는데 지금은 어떤가...할때 좀 답답해 집니다. ^^;

아무튼 이순신장군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동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T.T

불멸의 이순신 이제 본격적으로 재밌어질것 같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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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2005-03-1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이틀전 알라딘을 검색하다가 그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좋았는지..더군다나 류시화님의 번역이니 가슴이 막 뛰더군요. 바로 신청하고 지금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같은 이 흥분이(좋은 책의 배송을 기다릴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요즘은 소로와 함께 강을(애드워드 애비)과 슬로라이프(쓰지 신이치)를 읽고 있는데, 참 좋네요. tv를 별로 안좋아하는데,불멸의 이순신은 어찌나 재미있는지,주말만 기다려지네요.너무 유명한 분이라 한번도 그분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요즘은 자꾸 그분이 생각나네요. 마치 공기나 물처럼 너무 유명해서 그분의 위대함을 잊고 살은것 같습니다.따뜻해지면 현충사에 가서 제대로 한번 그분을 느끼고 싶네요

바람이되다 2005-03-1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그렇죠? 좋으실것 같았습니다. 지난번에 올려주신 소로우의 명언들 참 좋았습니다. 소로우의 명언2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이순신... 정말 재밌습니다. 저와 아내도 주말이 다가올때는 너무도 설렙니다. 김명민은 정말 볼때마다 이순신장군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할수록 이순신장군의 신내림을 받았나..할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유성룡과 원균의 연기도 볼만하구요... 아무튼 23전 23승의 불멸의 대장군 이순신... 오늘이 화요일이니까...ㅋㅋ 좀 남았네요..
 

3월 5일 토요일 저녁 방송된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나서 기분이 참 나빴습니다.

어제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은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 이유인 즉슨,

100회분방송중에 이제 53회분인데 최근 한두달가량은 늘 똑같은 이야기로 즉,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발발 1년전에 전라좌수영에 임관되어 오합지졸의 수군을 훈련시키고 부하장수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거북선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내용으로 지속되다가 드디어 거북선이 완성되는

날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수많은 고생을 해가면서 드디어 빛을 보는 그 감동적인 순간에!

KBS 방송작가와 pd는 그야말로 황당한 연출을 만들었으니...  역사에도 없는 거북선 침몰사건을 날조해낸것입니다.

선조가 거북선의 건조를 크게 기뻐하고 칭찬하여 순변사로 있던 신립과 이일, 경상좌수영의 원균등등

( 일본과의 해전은 절대 승산이 없으니 극구 반대하고 일본이 상륙하면 그때 기병으로 보병인 일본군을 무찌르자고 주장하던 장수들)을 보내어 귀선의 건조를 축하해주고, 귀선의 장점과 위용을 자세히 보고해

올리라고 합니다.  모든 장수들이 이를 못마땅히 생각하고 행여나 거북선이 정말로 대단하여 수군이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되면 육군인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하며 참석하던차에 거북선이 진수식에서 보기좋게 침몰해버려서 부하100여명이 수장되었다는 황당한 각본을 연출하니... 극의 긴박감과 스릴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정말 화가 났었습니다. 

보고있는 아이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로 생각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고...

주말이 되기를 기다리던 매니아팬으로 정말 참 슬펐습니다. 각설하고요... 아래는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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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명언50가지 】

                             출처:직접작성(sdian@hanmail.net)

                           원본: 최두한 편저『죽고자 하면 살리라』           


   

  1) 대장부로 세상에 나서 나라에서 써 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할 것이요,

  써 주지 않으면 야인이 되어 밭갈이하면서 살리라.

 

 

  2)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을 못하고 순서를 바꿔 아랫 사람을 올리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또 규정도 고칠 수 없습니다. (1579년 2월 훈련원 봉사

  시절에 그의 상관인 병부정랑이 인사관계 서류를 잘꾸며달라는 청탁을 받으며)


 

3)  벼슬길에 갓 나온 내가 어찌 권세있는 집에 발을 디뎌 놓고 출세하기를

  도모하겠느냐.(병조판서 김귀영이 그의 딸을 이순신의 소실로 시집보내어

  인척관계를 맺으려 하자)


  4)이 오동나무는 나라의 땅 위에 있으니 나라의 물건입니다. 이것은 여러 해 동안

  길러 온 것이니 하루 아침에 사사로이 베어 버릴 수 없습니다.(1580년 7월 발포만호

  시절에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로 만들고자 발포영앞의 오동나무를 베어

  보내라고 하자) 



  5)나와 율곡은 성이 같은 까닭에 만나 볼만도 하지만, 그가 이조판서로 있는 동안엔

  그를 만나는 것이 옳지 않다.(발포만호일때 모함으로 파직된후 류성룡이 당시 이조판서로

  있던 이율곡(이순신과는 19촌)을 만나보라고 권고하자)



  6) 죄가 있고 없는 것은 나라에서 가려낼 일이지만, 한 나라의 대신이 옥중에 계신데,

  이렇게 방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 아닌가?

  (당시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까닭없이 연루된 우의정 정언신이 옥중에 갇혀있는데

   옥문 밖에서 금부도사들이 술마시고 흥겨워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7) 내가 차라리 식구를 많이 데리고 온 죄를 입는 한이 있어도 이 의지할 곳이 없는

  것들을 돌보아 주지 않을 수 없다.

  (정읍현감으로 있을때 이미 고인이 된 두형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살게 되었는데, 거느리는 식솔들이 많으니 그만큼 공유물을 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들이 많자)


 

  8) 바다로 침입하는 왜적을 저지하는 데는 수군을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수군이나 육군은 그 어느 쪽도 없앨 수 없습니다.

  (당시 왜구의 침입전에 갈팡질팡한 조정에 아예 수군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오자)


 

  9) 자기 한 몸만 살찔 일을 하고, 이런 일은 돌아보지 않으니 장차의 일도 가히 짐작된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이 나태한 관할 장수들을 보며)


 

  10) 배들을 정돈하고 무기들을 엄히 갖추는 한편, 각처의 망봉의 꼭대기에 망장을

  파견하여 멀지 적선을 살피고 즉시 보고하라!

  (1594년 3월 10일 당항포해전의 승리를 보고하는 장계에)


 

  11) 무릇 살피고 망보는 일들을 각별히 단속하고, 남아 있는 전쟁 기구와 여러 가지

  비품을 아울러 더욱 철저히 정비하여 사변에 대비하도록 하라.

  (1592년 4월 16일 [사변에 대비하는 일을 아뢴 장계])


  12) 우리가 각각 책임을 맡은 경게가 있는데, 명령이 아니고서 어떻게 임의로

  경계를 넘을 수 있겟는가?

  (경상우수사 원균이 그의 군관 이영남으로 하여금 원군을 청하자)


  『공께서는 임금의 명령을 받아 수군절도사가 되었는데, 이제 군사를 버리고

    육지로 간다면 뒷날 조정에서 문죄하게 될 때에 무엇으로써 해명하겠습니까?

    전라도에 구원병을 청하여 적과 더불어 한 번 싸우는 것만도 못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그런 뒤에 달아나도 늦지 않습니다.』

    -옥포만호 이운룡과 이영남이 원균에게 구원을 요청하라고 간곡히 청하는 글-


  

  13) 적의 기세가 마구 뻗쳐서 국가가 위급한 이 때에 어찌 다른 도의 장수라고

   핑계하고서 물러나 제 경계만 지키고 있을 것이냐! 내가 물어본 것은 우선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들어 보려고 시험삼아 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다만 나가서 싸우다가 죽는 것 밖에 없다. 감히 반대하는자가

   있다면 목을 베리라!

   (결국 경상우수영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이며)


   -당시 원균의 구원요청에 대한 좌수영 장수들의 반응


   낙안군수 신호: 본도를 수비하는 것이 옳고, 경상도 등지의 출전은 우리책임이

                  아닙니다.


   군관 송희립: 많은 적들이 국경을 치고 들어와 그 형세가 마구 뻗쳤는데, 가만히

                않아서 외로운 성만 지킨다고 혼자 보전될 리 없으니, 나가 싸우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다행히 이기면 적들의 기운이 꺾일것이고,

                불행히 전쟁에서 죽는대도 신하된 도리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녹도만호 정운: 신하로서 평소에 국은을 입고 국록을 먹다가 이런 때에 죽지 않고서

                  어떻게 감히 앉아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이오!


  


  

14)   적의 세력이 이처럼 확대되어 큰 진영을 연이어 함락하고 또 육지 안으로 침범한다고 하 는 바, 몹시 원통하고 울적하며 쓸개가 찢어지는 듯하여 아뢰올 바를 알지 못합니다.

   신하로서 누구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나라의 수치를 씻기를 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같이 출전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엎드려 기다리오며, 소속 수군과 각 관포에 전선을 정비하여 주장의 명령을 기다리라고 공문을 급히 돌렸습니다.

   (1592년 4월 27일의 장계에서)


  


 15)  한 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곧 범의 굴로 바로 두들겨 요망한 적들을 소탕하여 나라의

   수치를 만 분의 일이라도 씻으려 하는 바, 성공하고 실패하고,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제

     가 미리 생각할 바 아닌 것임을 삼가 갖추어 아룁니다.

   (경상도로 출전 지원 나간다는 의지가 담긴 1592년 4월 30일 「구원하려고 출전하는

    일을 아뢰는 장계」)


 

 16)  모두 격분하여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니 과연 의사들이라 하겠다.

   (경상도로 출전계획을 잡은후, 방답첨사 이순신, 녹도만호 정운, 흥양현감 배흥립등이

    목숨을 걸고라도 싸워야 한다며 분격하자)

 

 

  17)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1952년 5월 7일 경상도로 출전, 처음 전개한 옥포해전을 치르면서)



   18) 적이 만일 바다로 본도(전라도)를 침범해 온다면, 제가 해전으로써 죽음을

   결단하고 담당하려니와, 육지로 침범해 오면 본도의 장수들이 전마 하나없어

   대응할 도리가 없사오니, 저의 생각으로는 돌산도의 백야곳과 흥양의 도양장의

   목마중에서 전쟁에 쓸 만한 말을 쓴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옥포왜병장)


  

  19) 적병을 사살만 하라! 전선은 깨뜨리기만 하라! 힘써 싸우는 여부는 내가 직접

   눈으로 보는 바가 아니냐!

   (사천.당포.당황포 해전에서, 여러 장수들이 적의 수습을 배는것으로 전공을 올리려고 하

    는 것을 보며, 왜적도 사람인데 이미 죽은 사람의 목까지 배어버리는것은 옳지 않다고)

 


  

20)  한 번 승첩하였다 하여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위무하고 전선을 다시 정비해 두었다가

   변보를 듣는 즉시로 출전하여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도록 하라!

   (1592년 6월 14일 당황포 승첩후)


 

 21)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은 삼가 적을 쳐서 무찌른 일을 아룁니다.

   (장군께서 승첩의 장계를 올릴때 주로 쓰던 형식이다.)


 

 22)  저는 일찍이 왜적들의 침입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함을 만들었는데..

   적선이 수백 척이라도 쉽게 돌입하여 포를 쏘게 되어 있으므로, 이번 출전 때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1592년 6월 14일 당포왜병장)


  

  23) 지금 상감께서 용만(의주)에 파천해 가 게신데, 저 기성(평양)에 있는 적이

   만일 서쪽으로 쳐들어 가면, 임금의 수레가 장차 바다(압록강을 말함)을 건너서게 될 것

    이다. 그러면 내 직책으로서 마땅히 배를 가지고 바다로 올라가 그 수레를 모셔야 할 것

     이다. 그 때 하늘이 만일 저 중국을 망하게 하지 않는다면 임금과 신하가 함께 우리나라

     안에서 죽는 것이 옳지 않느냐? 더구나 내가 죽지 않는 동안에는 적이 감히 범하지 못할

     것이다.

   (전라도 순찰사에게, 여도,사도,발포,녹도,등에 쌀 1300섬을 쌓아두라고 공문을 보내자,

       어떤이가 그 쌀을 무엇에 쓸거냐며 묻자)


  

 24)  어허, 인생이란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고 삶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나니, 사람으로서 한

     번 죽는 것은 진실로 아까울게 없건마는, 오직 그대 죽음에 마음 아픈 까닭은, 나라가 

     불행하여 섬오랑캐 쳐들어와 영남의 여러 성들 바람 앞에 무너지고, 몰아치는 그들 앞에

     어디고 거침없이 우리 서울 하루저녁에 적의 소굴 이루도 다. 천리 관서로 님의 수레 옮

     기시고, 북쪽 하늘 바라볼제 간담이 찢기건만, 슬프다! 둔한 재주 적을 칠 길 없을

       적에 그대와 함께 의논하자 해를 보듯 밝았도다.

   계획을 세우고서 배를 이어 나갈 적에 죽음 무릅쓰고 앞장서서 나가더니, 왜적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피 흘리며 검은 연기  근심 구름 동쪽 하늘 덮었도다.

   네 번이나 이긴 싸움 그 누구 공로런고! 종사를 회복함도 날 받을만 하옵더니, 어찌 뜻

     햇으랴. 하늘이 돕지 않아 탄환에 맞을 줄을. 저 푸른 하늘이여, 알지 못할 일이로다!

   돌아올 제 다시 싸워 원가 갚자 맹세터니 날은 어둡고 바람조차 고르잖아 소원을 못 이

     루었으니, 평생에 통분함이 이 위에 더할쏘냐!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살 에이듯 아프구나!

     믿는이 그대더니 인제는 어이 할고! 진중의 모든 장수 원통히도 여기지만 늙으신 저 어

     버이 그 누가 모시리오! 황천까지 미친 원한 눈을 언제 감을런고! 어허 슬프도다!

   그 재주 다 못 펴고 덕은 높되 지위 낮고, 나라는 불행, 군사 뱅석 복이 없고, 그대같은

     충의야말로 고금에 드물거니, 나라 위해 던진 그 몸 죽어도 살았도다. 슬프다! 이 세상에

     누가 속 알아 주리. 극진한 정성으로 한잔 술을 바치노라.

   어허! 슬프도다!

   (임진왜란 해전 초기에 네번의 대첩에 그 공로가 컸던 녹도만호 정운 장군이 부산포 해

      전에서 전사한것을 너무나도 애통한 나머지 제문을 써서 위로하시며.)

   (정운은 꼿꼿한 사상과 정의로 일관된 50년의 일생을 사신분이며, 정충보국을 칼로 새겨

      살았을 뿐만 아니라 물러나 욕되게 사는 것보다 나아가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곤 하셨다. 그 강직한 성겨과 청렴한 성품때문에 번번히 파직당하고 했다가 녹도만

      호로서 충무공이 승첩하시는데 공이 컸으며, 평소에 올바르고 참된것을 따르며, 싸움에

      있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충무공과 일치하므로 공의 동지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분이다)


 

25)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하는 것이 원칙이다.

   (안골포와 제포에 정박해 있는 왜적들을 수륙으로 동시에 공격하기로 하고

    작전을 짜고 시도하였다. 일본 수군들은 조선 군사가 수륙으로 공격을 해 오니

    겁을 내고 울부짖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떄 이응개와 이경집 등이 이긴가운데 더하여 서로 돌진하며 적선을 쳐부수고는 배를

      돌리다가 두배가 충돌하여 그만 전복되자. 이에 이순신은 전투의 책임을 진 작전지휘관

      으로서 4월 6일에 사나이 답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신이 재주도 없이 무거운 소임을 외람되게 맡아 밤낮으로 근심하여 조그마한

      공로라도 원수를 갚고자 했더니, 작년 여름 가을에 흉적을 쳐부순 터라 군사들은 번

        번이 이겼으니, 교만한 생각이 날로 더하여 서로 앞 다투어 돌격하면서 그저 남에게

        뒤떨어질까 걱정하므로, 항상 신은'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는 이치를 들어가

        며, 두번 세번 당부했건만, 오히려 경계가 부족하여... 지휘하는 것이 방략에 어긋났기

        때문에... 죄 주시기 기다립니다』



26)    이런 병들고 굶주린 군졸을 거느리고서는 도망가는 적들을 막고 섬멸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번차례로 돌아가 농사짓게 하며, 겸하여 병든 군사를 간호하고 군량을 준비하고 전선을 정비하면서... 기회를 타서 전쟁에 나가도록 약속하겠습니다.

(1593년 4월 6일 웅포해전 결과를 써 올린 장계에서)


  

27)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민다. 홀로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에 닭이 울어서야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1593년 5월 13일)


28) 국가가 위급한 때를 당했는데도 미인을 태우고 놀아나니, 그 내심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1593년 5월 30일의 일기에, 남해현령 기효근이 배안에 어린 색시를 싣고 있는것을 보며)


  


29)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라,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진을 한산도로 옮겨 진을 치고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입니다.

   (삼도 수군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기고자 한 이유를 밝히며)


  


 30)  이제 적을 상대하여 승패의 결단이 호흡 사이에 걸렸다.

   장수된 자가 죽지 않았으니 누울 수가 있겠느냐!

   (1593년 3월경 남해 연안에는 번졌고, 공께서는 염병에 걸려 병세가 위중하였다.

    하지만 하루도 눕지 않고 여전히 사무를 보셨고 이에 보다 못한 아들이 휴양하기를 청하자)


  

31) 조선의 신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삼가 명나라 선유도사 대인 앞에 답서를 올리나이다.

왜적이 스스로 트집을 잡아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죄없는 우리 백성들을 죽이고, 또 서울로 쳐들어가 흉악한 짓들을 저지른 것이 말할 수 없으니, 온 나라 신하와 백성들의 통분함이 뼈 속에 맺혀 이들 왜적과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

각 도의 배들을 정비하여 곳곳에 주둔하고 동서에서 호응하면서 육지에 있는 장수들과도 의논했는데, 수륙으로 합동 공격해서 남아 있는 왜적들은 한 척의 배도 못 돌아가게 함으로 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이달 초사흗날 선봉선 200여 척을 거느리고 바로 거제도로 들어가 그들의 소굴을 무찔러 씨를 없애고자 하였던 바, 왜선 30여척이 고성 땅 진해 지역으로 들어와서 여염집들을 불태우고 우리 백성들을 죽이며, 또 사로잡아 가기도 하고, 기와를 나르며 대를 찍어 저희 배에 가득 실어 가니, 그 정상을 생각한다면 통분하기 그지 없습니다.

적들의 배를 쳐부수고 놈들의 뒤를 쫓아 도원수에게 보고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합세하여 나서는 이때, 도사 대인의 타이르는 패문이 뜻밖에 이르므로 받들어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고이 타이르신 말씀이 간절하고 곡진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다만 패문의 말씀 가운데 "일본 장수들이 마음을 돌려 귀화하지 않는 자 없고, 모두 병기를 거두어 저희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니, 너희들 모든 병선들은 속히 각각 제 고장으로 돌아가고, 일본 진영에 가까이하여 트집을 일으키지 말도록 하라" 고 하였는데, 왜놈들이 거제,웅천,김해,동래,등지에 진을 치고 있는바! 거기가 모두 다 우리 땅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더러 일본 진영에 가지 말라 하심은 무슨 말씀이며, 또 우리더러 속히 제 고 장으로 돌아가라 하니, 제 고장이란 또한 어디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고, 또 트집을 일으킨 자는 우리가 아니요 왜적들입니다. 또한 왜적들이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은 들은적이 없습니다.

흉악하고 교활한 적도들이 아직도 그 패악스런 행동을 그 치지 아니하고 바닷가에 진을 친 채, 해가 지나도 물러가지 아니하고 여러 곳에 쳐들어와 살인하고 약탈하기를 전일보다 곱절이나 더하니 병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뜻이 과연 어디 있가고 하겠습니까?

이제 강화한다는 것은 실로 속임과 거짓뿐입니다. 그러나 대인의 뜻을 감히 어기기 어려워 잠깐 얼마쯤 시간을 두고 보려 하며, 또 그대로 우리 임금께 아뢰려 하니, 대인은 이 뜻을 널리 살피어 놈들에게 역천과 순천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  균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 삼가 올림



(명나라 담도사의 왜적을 치지 말하는 금토패문을 받고서는 7일에 답사를 써보내며, 이    글을 쓴날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맑음. 몸이 몹시 불현하여 움직이기조차 어렵다. 아랫사람을 시켜 패문의 대답편지를 지어 오라고 했더니, 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우수사 원균이 손의갑을 시켜서 지어 온것도 역시 마땅치 않아 부득이 내가 앓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몸소 글을 지어서는 정사립에게 발송하고, 오후 2시경 발선하여 한산도 본영에 도착하였다")




  32)농사를 권장하고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일들에 정성을 다해서 보살피되, 다시 전령이 있으면 곧장 달려오라!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상황을 고려해 가며 번갈아 휴가를 실시하며)


  

  33)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맹세하고 원수 갚을 결심을 하고 나날을 보내지마는,

   적이 험고한 곳에 웅거하여 소굴 속에 들어 있어 경솔히 나가 칠 수도 없도다.

   하물며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1594년 9월3일 새벽에 선조가 보낸 밀지-거기에 있는 육해여러 장병들이

    한 가지 계책이라도 세워 적을 칠 생각은 않고 팔짱만 끼고 서서 서로 바라만

    본다는내용-를 받고서는 수군들이 3년동안이나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고 고생하고

    있는데, 언짢고 섭섭한 마음을 난중일기에 적으며)


  

  34)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힙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띄어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을 띤 몸으로 티끌 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며, 입으론 교서를 외우나

   얼굴에는 군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계속 퍼부은 1595년 5월 29일 난중일기)


  

35) 지나온 지역이 온통 쑥대밭같이 폐허가 되어 그 참상한 꼴을 눈으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우선 전선을 정비하는 것이라도 면제해 주어 군사와 백성들의 피로를 풀어 주어야 하겠다.

  (폐허가 된 지역을 둘러보며)


 

36)   죄없음을 굽어 살피소서-伸救箚 

  

(조정에서 공을 사형시키려 할때, 우의정 정탁이 결정적으로 백의종군을 하게만든 상소문)


『우의정 정탁은 엎드려 아룁니다. 이모(순신)는 몸소 큰 죄를 지어 죄명조차 무겁건마는 성상께서는 얼른 극형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두남두어 문초하시다가 그 뒤에야 엄격히 추궁하도록 허락하시니, 이는 다만 감옥 일을 다스리는 체모와 순서만으로 그러심이 아니라 실상은 성상께서 인을 베푸시는 한 가닥 생각으로 기어이 그 진상을 밝힘으로써 혹시나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으시고자 바라심에서 하심이라. 성상의 호생하시는 덕이 자못 죄를 짓고 죽을 자리에 놓인 자에게까지 미치시므로 신은 이에 감격함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신이 일찍 벼슬을 받아 죄수를 문초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얼추 죄인들이 한 번 심문을 거치고는 그대로 상하여 쓰러져 버리고 마는 자가 많아 설사 좀 더 밝혀 줄 만한 사정을 가진경우가 있더라도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라 어찌할 길이 없으므로 신은 적이 이를 늘 민망스레 여겨왔습니다.

이제 모(순신)가 이미 한 번 형벌을 겪었는데, 만일 또 형벌을 하게 되면, 무서운 문초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여 혹시 성상의 호생하시는 본의를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바입니다.

저 임진년에 왜적선이 바다를 덮어 적세가 하늘을 찌르던 그날에 국토를 지키던 신하들로서 성을 버린 자가 많고, 국방을 맡은 장수들도 군사를 그대로 보전한 자가 적었으며, 또 조정의 명령조차 사방에 거의 미치지 못할 적에 모(순신)는 일어나 수군을 거느리고 원균과 더불어 적의 예봉을 꺾음으로써 나라 안 민심이 겨우 얼마쯤 생기를 얻게 되고, 의사들도 기운을 돋우고, 적에게 부었던 자들도 마음을 돌렸으니, 그의 공로야말로 참으로 컸습니다.

조정에서도 이를 아름다히 여기고 높은 작위를 주면서 통제사의 이름까지 내렸던 것이 실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을 무찌르던 첫 무렵에 뛰쳐나가 앞장서는 용기로는 원균에게 미치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이 더러 의심하기도 한 바는 그렇다고 하겠으나, 원균이 거느린 배들은 마침 그 때에 조정의 지휘를 그릇되이 받들어 많이 침몰된 것이니만큼, 만일 모(순신)의 온전한 군사가 없었더라면 장한 형세를 갖추어 공로를 세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모(순신)는 대장이라 나갈말함을 보고서야 나가므로, 시기를 잃지 않고 수군의 이름을 크게 떨쳤던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에 임하여 피하지 않는 용기는 원균이 가진 바라 하겠지만, 끝내 적세를 꺾어버린 공로로는 원균에서 양보할 점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에 원균에게도 그만한 큰 공로가 없지 않았는데 조정의 은전은 온통 모(순신)에게만 미치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원균은 수군을 다루는 재주에 장점이 있고, 천성이 충실하며, 일에 달아나 피하지 않고 마구 찌르기를 잘하는 만큼, 두 장군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적을 물리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 신이 매양 어전에서 이런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두 장군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원균을 다시 쓰지 않고, 오로지 모(순신)만 머물러 두어 수군을 맡아보게 하였습니다.

모(순신)는 과연 적을 방어하는 일에 능란하여 휘하 용사들이 모두 즐겁게 쓰이므로 군사들을 잃지 않고 그 당당한 위세가 옛날과 같으므로 왜적들이 우리 수군을 겁내는 까닭도 혹시 거기에 있지 않나 하거니와 그가 변방을 진압함에 공로가 있음이 대강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이는 모가 한 번 공로를 세운 뒤에 다시는 내세울 만한 공로가 별로 없다고 하여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이도 있으나, 신은 적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댓 해 안에 명나라 장수들은 화친을 주장하고, 일본을 신하국으로 봉하려는 일까지 생기어 우리나라 장수들은 그 틈에서 어찌할 길이 없으므로 모가 다시 더 힘쓰지 못한 것도 실상은 그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왜적들이 또 다시 쳐들어옴에 있어 모가 미처 손쓰지 못한 것도 무슨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대게 변방 장수들이 한 번 움직이려고 하면 반드시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야 되고, 장군 스스로는 제 마음대로 못하는 바, 왜적들이 바다를 건너오기 전에 조정에서 비밀히 내린 분부가 그때 곧 전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며, 또 바다의 풍세가 좋았는지 아닌지, 뱃길도 편했는지 어쨋는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수군들이 각기 담당이라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은 이미 도 체찰사의 장계에도 밝혀진 바도 있거니와 군사들이 힘을 쓰지 못했던 것도 사정이 또한 그랬던 것인 만큼 모든 책임을 모(순신)에게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지난 장계 가운데 쓰인 사실이 허망함에 가까우므로 괴상하기는 하지만, 아마 그것은 아랫 사람들의 과장된 말들을 얻어들은 것 같으며, 그 속에 정확하지 못한 것들이 들어 있지나 않은가 여기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감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신으로서는 자못 풀어 볼 길이 없습니다.

만약에 난리가 일어났던 첫 무렵에 공로를 적어 올린 장계가 낱낱이 사실대로 쓰지 않고 남의 공로를 탐내어 제 공로로 만들어 속였기 때문에 그로써 죄를 다스린다 하면 모(순신)인들 또한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을 빼고는 저와 남이 상대할 적에 남보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자가 적고, 어름어름하는 동안에 잘못되는 일이 많으므로, 윗사람이 그 저지른 일의 크고 작음을 자세히 살펴서 경중을 따라 처리할수 밖에 없습니다.

대게 장수된 자는 군사와 백성들의 운명을 맡은 이요, 국가의 안위에 관계된 사람이라, 그들의 소중함이 이와 같으므로 예로부터 제왕들이 국방 책임을 맡기고 은전과 신의를 특별히 보여 큰 무엇이 있지 않으면 간속히 보호하고 안전케 하여 그 임무를 다하게 하니, 큰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므릇 인재란 것은 나라의 보배이므로 비록 저 통역관이나 주판질이나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라도 재주와 기술이 있기만 하면 모두 다 마땅히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하물며 장수의 재질을 가진 자로서 적을 막아내는 것과 가장 관계 깊은 사람을 오직 법률에만 맡기고 조금도 용서 못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순신)는 참으로 장수의 재질이 있으며, 수륙전에 못하는 일이 없으므로 이런 인물은 과연 쉽게 얻지 못할 뿐더러, 이는 변방 백성들의 촉망하는 바요, 왜적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만일 죄명이 엄중하다는 이유로 조금도 용서해 줄 수가 없다 하고, 공로와 죄를 비겨볼 것도 묻지도 않고, 또 능력이 있고 없음도 생각지 않고, 게다가 사리를 살펴 줄 겨를도 없이 끝내 큰 벌을 내리기까지 한다면 공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내키지 않을 것이요, 능력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는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저 감정을 품은 원균같은 사람까지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며, 안팎의 인심이 이로 말미암아 해이해질까봐 그게 실상 걱정스럽고 위태한 일이며, 부질없이 적들만 다행스럽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일개 모(순신)의 죽음은 실로 아깝지 않으나, 나라에 관계되는 것은 가볍지 않은 만큼 어찌 걱정할 만한 중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옜날에도 장수는 갈지 않고 마침내 큰공을 세우게 했던 바, 진나라 목공이 맹명장군에게 한 일과 같은 것이 실로 한 둘이 아니거니와, 신은 구태여 먼데 사실을 따오고자 아니하고 다만 성상께서 하신 가까운 사실로써 말할지라도, 박명실이 한때의 명장인데 일찍 국법에 위촉되었으나 조정에서 특별히 그 죄를 용서해 주었더니, 얼마 안되어 충청도에 사변이 일어나 기축년때보다 더한 바 있었는데, 명실이 나가 큰 변을 평정시켜 나라에 공로를 세운 것이야말로 허물을 용서하고 일을 할 수 있게 한 보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모(순신)는 사형을 받을 만한 중죄를 지었으므로, 죄명조차 극히 엄중함은 진실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모(순신)도 또한 공론이 지극히 엄중하고 형벌또한 무서워 생명을 보전할 가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비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써 문초를 덜어 주셔서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을어 목숨을 걸고 갚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저 명실 장군만 못지 않을 것입니다.

성상 앞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공신각에 초상이 걸릴 만한 일을 하는 신하들이 어찌 오늘 죄수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상께서 장수를 거느리고 인재를 쓰는 길과, 공로와 재능을 헤아여 보는 법제와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심이 한꺼번에 이루어 진다면, 성상의 난리를 평정하는 정치에 도움됨이 옅다고만 하겠습니까?』


     (자주 원균을 들먹인것은, 선조가 조종하기 쉬운 원균을 좋아했기 때문에 , 비위를 맞추려고 한것으로 보인다, 아니 그렇게 보고싶다)



     

37) 나라에 충성을 바치려 했건만 죄가 이미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마는 어버이마저 가버리셨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같은 사정이 또 어디 있을까. 어서 죽느니만 못하다.

(백의종군하고 남쪽으로 가는길에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




38) 고갯길을 타고 오는데, 큰 바위가 천길이나 되고 굽이 도는 강물이 깊기도 하며, 길은 험하고 위태롭다. 만일 이 험고한 곳을 눌러 지킨다면, 만 명이라도 지나가기 어렵겠다.

(도원수 권율의 막하로 가면서, 합천쪽에서 초계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기암절벽을 보고는, 그 순간에도 오직 왜적과 싸울 일을 생각하시며)


 

39) 왜놈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수군인데, 수군으로써 싸움에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고,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어도 감독할 생각을 가지지 않으며, 군량조차 의뢰할 길이 없어, 온  갖생각을 해봐도 조처할 도리가 없으니, 수군의 일은 부득이 폐하게씀 되었습니다. 순신 저같은 한 몸이야 만 번죽어도 아까울게 없지마는, 나라 일을 어찌하오리까.

(칠천향 해전에서 참패를 당한 수군을 없애고 육군으로 합류해 싸우라고 한데에서 매우 비통한 공께서 친분있는 어떤사람에 보낸 편지의 내용)



40)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은 제가 죽지 않은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공께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후 며칠후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밀지에 답하며)


  

41) 임진년 이후로 적이 감히 충청.전라 등 남방을 겁탈하지 못한 것은 실상 우리 수군이 세력 을

 막았기 때문인데, 이제 만일 수군이 패하면 적이 반드시 호남을 거쳐 한강으로 올라 갈 것이요.

 다만 순풍에 돛을 한번 달멸 될 것이니, 그것이 제가 가장 두려워 하는 바입니다.

(수군의 존속과 가치와 그 효용론을 재차 강력히 주장하며)


42)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

     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한다" 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

    이다. 너희 장수들은 살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군법으로 처

    단할 것이다.

  (명량 해전을 앞두고)


  

   

43)  대장으로서 화친을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이 원수들을 놓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서둘러 돌아가려니 왜군들을, 보내주라는 조정의 명령에 반대하며)



44)천지신명이여! 이 원수놈들을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유한이 없겠습니다!

(노량해전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며)



   

45)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 말을 꺼내지 마라.

군사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노량해전에서 왜적의 총탄에 맞으신 공께서............)




                                      출처:직접작성(sdian@hanmail.net)

                                      원본: 최두한 편저『죽고자 하면 살리라』 

  *오타수정 환영. 퍼갈시 출처를 삭제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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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되다 2005-03-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1905년 일본군 함대 38척이 러시아 발틱 함대를 괴멸시킨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제독이 전승 기념 파티에서 한말


- 기자가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넬슨은 스페인 무적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 이겼다. 그러나 나의 함대는 발틱 함대의 3분의 1규모로 이겼다."라고 하자

- 다시 기자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어떤가?"라고 묻자
도고는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 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넬슨 제독이나 나는 거국 내각의 전폭적인 뒷받침을 받아 결전에 임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런 지원 없이 전략으로 싸워 이겼다.
나를 넬슨과 비교하는 것은 몰라도 감히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는 것은 황공한 일"이라며 극도의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누아 2005-03-0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저는 저런 일도 있었나? 이순신 같은 유명한 사람 이야기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구나 하면서 저의 무지를 자책했는데...지어낸 이야기군요.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곳이 충북 청주인데 다른 지역은 어땠는지 몰라도 이지역은 그랬습니다.  주위의 젊은 의사선생님들이 (저도 젊지만 ^^;) 겨울이 되면 그렇게 스키장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마 전반적인 경향입니다.  저도 마음이 끌려 2년전에 스노우보드셋을 장만했었습니다. 조금 싸게 사보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많이 힘들여 샀었습니다.  뭐하나 하려면 들어가는 돈이 왜그리 많은지... 이젊은 총각선생님들과 더불어 이번에 한번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 아이들과 아내에게 폼잡고 좀 가르쳐줄 꿈으로... 또는 그 앞에서 체면좀 세워보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아무튼 청주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이 양지와 지산리조트인데 한시간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몇번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그 맛을 알아가고 있었는데... 총각선생들이 어찌나 자주 가는지 일주일에 거의 3-4번은 기본으로 다니고 또한 그멀리 있는 용평까지 시즌권을 끊어서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진료끝나고 스키장에 한번 다녀오면 밤12시나 새벽 1시는 되야 들어올수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들 눈치보이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맘놓고 다녀오라는데.. 몇번 지나자 혼자서 아이들 보는 것이 너무 힘든지라 . 점점 눈에 힘이 들어가더군요. ㅋㅋㅋ    저는 보드타는 재미가 뭔지 조금 알것 같은 시점에서 몸도 너무 힘들고 눈치도 많이 보이고 해서 점점 스키장 가는 발길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거 배워서 선수할 것도 아니고... 아내와 애들보기에도 미안하고 ... 너무 힘도 들고.. ㅋㅋ

그런뒤로는 스키장 가본적이 없습니다.  애써 장만해놓았던 장비들만 덩그러니 좁은 방의 한칸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주말은 스키장에서 보내고 일주일에 3-4번 스키타러 가고, 밤 1-2시에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 참 대단하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하는 생각을 자주자주 많이 했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하면서 저도 스스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뭐하나를 저렇게 좋아한적이 있나... 하면서 생각해보니

ㅋㅋㅋ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에게도 남들이 이해못할것 같은 그런 좋아하는 것이 있었으니...바로 도반을 만나러 가는 길이나  스승을 찾아다니는 길이 그랬습니다.  아무런 계획이 없다가도 어디에 어떤분이 계시더라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불쑥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같이 찾아가 보고...  멀리 살고 있는 도반이 한번 보자고 하면 불원천리를 마다않고 달려갔던 기억이 많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그런 저를 이해하는 터라 큰 문제는 없었지요. ^^;  제가 결혼식 하기 바로 전날까지 도반들과 같이 일종의 동안거를 했으니까 저역시 남들이 스키타는것에 미친것처럼 일면 미친것이지요.

지금도 그마음은 여전하지만 어디 찾아다니거나 하는 것은 많이 줄어든듯합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그냥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ps : 월든님께서 아래 카테고리에 좋은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을듯 하네요.  월든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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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실상>은 초보자에서부터 깊이 있게 공부하시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가르침을 주는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제가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알리고 싶은 글과 공부는 여러 도반님들께서도 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사람의 근기는 각각이며 취향도 각각이라 다양한 분들의 말씀을 소개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타이핑한 부분도 있고 다른분의 사이트에서 퍼온것도 있습니다. 긴글이 되겠지만 뜻있는분들에게는 읽고 도움이 될것같아 <생명의 실상>을 종종 올리려고 합니다. 이번것은 와우선원이란 곳에서 퍼왔습니다. 생명의 실상이 뭐야?하시는 분들은 제가 올린 조촐한 리뷰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으실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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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제1장

종교상의 <죄의 사함>에 대하여

 

1.내 실상속에 이미 모든 것은 있다

모든 것은 지금 현상계의 내 손에 없어도, 성신의 손에 있는 것은 모두 상속자인 우리들의 자유 사용에 맡겨져 있으므로, 이미 모든 것을 우리 손에 주고 있는셈입니다.

부富를 바바라는 자는 무한한 부를 나의 실상으로부터 끌어낼수 있으며, 생명을 바라는 자는 무한한 생명을 내 실상으로부터 끌어낼수 있으며, 능력을 바라는 자는 무한의 능력을 자신의 실상으로부터 끌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부는 동시에 상속자의 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첨하며 추종하는 자를 좋아하는 인간처럼 기도했다고 해서 마음을 움직이며, 기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벌을 주는 분은 아닙니다. 신을 그처럼 아첨하여 따르는 자를 기뻐하는 경박한 인간 정도로 생각함은 성신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경不敬한 생각이지 하나님을 받드는 생각이 아닙니다.<마태복음>제5장45절에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햇는데, 이'하늘'이란 '실상의세계'이며, '아버지'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하늘의 아버지'즉 실상의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만 이익을 주고,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편협한 분이 아니시며 태양은 악인에게도 선인에게도 비치며, 비가 의로운 자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내리듯이,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도 기도하지 않은 자에게도 이미 은혜를 주고 계시다는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기도의 공덕功德

그렇다면,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분도 계실겁니다.

기도는 결코 '실상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현상세계가 실상세계로 화하고 방향전환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진 찰영에 비유한다면 현상세계에 '실상세계'의 그림자를 비추기위해 렌즈의 방향을 바꾸고 핀트를 맞춘다-말하자면 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의 기도가 현상세계의 실현되지 않는 것은, 광선이 희미하거나 핀트가 맞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진에 안성마춤으로 물체의 모습이 비치지않는 것은 실상세계에 있어서 그것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깨우침의 광선이 희미햇거나 마음이 실상세계와 초점이 맞지 않기 때문이므로, 깨우침의 광선을 밝게 하여초점을 꼭 맞도록 하면, 그 바라는 사물이 외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깨우침의 광선을 밝힌다는 것은 이미 실상세계에 모든 좋은 것이 주어져 있다는 실實을 안다는 것이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실상세계로부터 투영하는 광선을 적당히 집중하기 위해 신념을 강하게 하는 일입니다.

 

3.이미 이루어져 있는 천국

"기도"는 이 신념을 강하게 하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도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곧 '실상의 세계'에 있어서는 성취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져 있는 '실상의세계'를 기도로 변화시킨다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실상의 세계'는 이미 개조한다거나 개조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이 이미 하나님의 마음대로 완전히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성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완전함을 아는, 하나님의 무한능력을 아는 사람은  "신이 만든 실재의 세계는 이미 완전합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신이 만든 실재의 인간은 이미 완전합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다만 이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말도 이론도 필요없읍니다. 단지 예, 예 하고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너는 성신이 창조한 성신의 아들이다. 성신의 아들은 병에 걸리지 않아!"라고 말하면,

"예, 예, 감사합니다. 성신의 아들인 난는 병에 걸리지 낳느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하고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참다운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줄것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므로 소리내어 때때로 하나님에게 주의를 줄 생각으로 하나님을 부른다는 따위의 일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무시한 것으로, 신심이 없다하겠습니다.

 

4.신상관神想觀의 비법

"너는 성신의 아들이다" 라고 자기 마음에 이르고

"예, 예, 나는 성신의 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받는 행사가 신상관 입니다.

신상관에 있어서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에게로 흘러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생명이 된다고 느낀다면서 조용히 숨을 들이쉬는 것은, '너는 성신의 아들이다'하고 자기 자신에게 이르고, 그사실에 대하여 주의를 촉구하고 잇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다음에 조용히 배 속에 숨을 모으면서,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차 있다. 사는 힘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예, 예, 나는 성신의 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인 것입니다. 그 사이에는 아무런 이론도 의혹도 없이 오직 사실의 실상을 자기 마음 속에 받아들이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것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구해주자'고 생각하는 데 대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외운다-즉 '아미타불님 감사합니다' 라고 받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다만 '인간은 성신의 아들이다' 라고 염念하는 것은 아미타불이 '구해주자'고 생각하는 것을 받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철저한 받음이어서

"이미 구함을 받았다. 이미 성신의 아들로서 구한다. 하지 않는다고 따질 것도 없이 본래 부터 하나님의 상속자이다"라고 창조의 우주신이 하시는 말씀을 "예, 예, 감사합니다"라고 확인하여 실상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털끝 만한 틈도 없으며 지금부터 부탁하여 구제받는다면 부탁하는 법이 나빠 구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구제받은 것이며 마음 속은 실상의 세계에 이미 이루어져 있어 이미 '일이끝난'것입니다.

불교에서라면,

벌써 법장보살의 구제의 본원력은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으며

그리스도교이면,

이미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죄를 없애버린것입니다.

이미 죄가 있나 없나를 물어보거나 죄인이라고 인간을 부르거나 구제받지 못할까 하고 걱정하거나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미 너는 성신의 아들이며, 무병無病, 무죄無罪, 불고不苦, 불뇌不腦이다" 라는 신시神示를 "예, 예, 감사합니다"하고 순순히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힘에 의해 절대적 신뢰를 가졌다는 식의 외부장식으로서 어떠어떠한 수행을 하여 구제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기도에 의한 그 공덕 때문에 구제해 달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5.신심信心이란 무턱대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신심이란 하나님의 선함과 사랑과 지혜와 힘을 절대로 믿는 일입니다.

불신이로고 해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벌을 준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사랑은 털끝 만큼도 늘거나 줄거나 할 수 없읍니다. 다만 현상계는 우리의 신념이 형상화한 세계이므로 믿는 정도가 적을수록 비례하여 그 사람이 현상계에는 좋은 일이 적어질 뿐입니다.

 우리가 신상관을 하여 '너는 성신의 아들이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여, "예, 예, 저는 성신의 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고 받는 것은 우리 인간 쪽이 성신을 잊지않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하나님에게 '나를 잊지 마옵소서'하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더 명료하게 자기의 실상을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의 실상' 이란 육체로 보이는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신의 아들로서 창조되어 있는 내부 실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실상의세계'와 그속에 풍부히 담긴 참다운 은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아, 당신의 실상은 신의 아들인 것입니다. 내가 사는 세계는 이미 실상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무한한 생명과 지혜와 사랑과 공급을 수여받고  있는것입니다. 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이제부터 부탁하여 그 결과 은혜를 나누어 받는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지금 나타나 있는 현상계의 은혜만을 보고 이에 감사하는 피상의 고마움과는 달라서, 참으로 깊은 실상의 고마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6.성신에 참으로 감사하게 되려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려면 하나님이 자신과 일체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생명이며, 자기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보기를 내 자신으로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내자신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일체감을 깊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와 하나님이 불가분의 일체라는 것이 실감적으로 깊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의 생명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와 내 생명이 되도다" "나는 신으로 충만되어 살며 성신과 불가분의 일체이다"이런 느낌을 따지지 않고, 현재 의식만이 아니라 잠재의식의 밑바닥까지 집어넣는 것이 신상관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기도법이 있지만 신상관보다 나은 기도는 없는 것입니다.

 

7.죄를 없애는 길

<감로의 법우>속에, "죄와 병과 죽음은 신이 만드신 바가 아니므로, 실재의 가면을 덮어썼지만 비실재이니라, 허망이니라. 나는 이 가면을 벗겨 죄와 병과 죽음과의 비실재를 밝히기 위해 왔노라... 죄는 비실재이며 미망의 그림자이므로 십방十方의 제불諸佛도 중생을 섭취하여 자주 죄를 소멸하였노라. 예수 그리스도 단지 말로서 '그대의 죄 사함을 받았노라'로 말하여 종종 죄를 소멸하였노라. 나도 말로서 '생장의집'의 노래를 쓰게 하여 말의 힘으로 죄의 본질을 폭로하여 죄로하여금 본래의 無로 돌아가게하노라. 내말을 읽는 자는 실재의 실상을 알기 때문에 일체의 죄가 소멸되느리라. 내말을 읽는 자는 생명의 실상을 알기 대문에 일체의 병이 소멸되어,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리라고 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생장의 집 대천사사의 계시이지 이치가 아닙니다.

 '죄'는 죄를 붙잡아 하나씩 처벌하라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컨대, 당신이 암흑 속에 있으면서 어둠을 버리려고 생각하여, 어둠을 쥐고 집어던져 내버려도 암흑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암흑이란 곧 '빛이 없는것'- 본래 '무'이므로 암흑을 쥐고 내버릴 수는 없읍니다.

죄도 본래 '무'이므로 '죄'를 붙잡아 하나씩 처벌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을 없애는 데는 다만 빛을 켜면 됩니다. 죄를 없애는데는 다만'생명의 실상'으로 귀입歸入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우리가 종교상의 의미로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죄 자체가 파괴된다-죄자체가 본래의 '무'로 돌아가서, 성신의 아들 본래의 실상의 즐거움이 나타난다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인간은 '성신의 아들'이며 상락이 나의 참다운 모습, 실상입니다. '성신의아들'인 실상이 나타나지 않고는 넋의 끝없는 즐거움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저질러 기쁨을 얻어 보려해도, 결국 그사람은 괴로움을 맛볼 뿐입니다. 죄인은 잡히지 않고 도망다닐 동안이 오히려 괴롭고, 죄수는 최후의 판결이 내려질 동안이 오히려 괴로운 것입니다.

 죄의 실상이 고통이며 불행인 것은 상락의 '성신의 아들의 실상'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은 사랑이므로 우리가 신에게 기도해도 신은 죄를 그대로 둔 채 용서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불행인 채 참고 견디라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나를 죄지은 채 용서해주십시요. 죄인 채로 행복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은 '제발,눈을 감은 채 빛을 보여주십시도' '제발, 좁은 구멍에 쳐박힌 채 넓은 세계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신은 '빛을 보고 싶으면 눈을 뜨십시오. 넓은 세계에 나가고 싶으면 좁은 구엉에서 빠져나오시오' 라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와 똑같이 죄인 채로 행복을 얻고 싶다는 자에게는 신은 "그대가 상락의 행복을 얻고 싶으면, 본래 '죄'없는 그대의 실상을 보라"고 말씀하실겁니다.

  

                                                                

ps : 여러 훌륭한 분들의 말씀은 다 똑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말씀도, 인도성인들의 말씀도, 티벳수행자들의 말씀도, 뉴에이지분야에서 고차원 스승, 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말씀도 다 똑같습니다. 큰스님의 말씀도 다 같습니다.  마하리쉬가 말씀한것처럼, 자기탐구와 신에게로 헌신의 두길중 각자의 성향에 맞게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로 불교식 방법은 자아탐구쪽에 가깝고, 다른 방법들은 신에게 헌신을 통해 에고를 소멸하는 방법입니다. 생명의 실상에서나 대행선사님의 방법도 처음에는 신 또는 주인공 또는 성신등을 일단 세우고 거기에 모든것을 녹여버리고 나갑니다. 그후에 에고가 사라지면 궁극의 참나를 찾게 되는것입니다.  물론 그후에도 공부는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말씀만 더 하면 자식도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커서 아버지가 되고, 자식은 커서 부모가 된다는 것입니다.

ps 2 : 내가 신을 보는 눈이 바로 신이 나를 보는 눈이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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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2-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허급지급 많은 책을 읽기 위해 서둘렀는데, 요즘은 그냥 고요합니다. 읽을 책이 밀려있어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은, 새롭게 아는 것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님께서 올려주시는 새로운 글은 늘 힘이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바람이되다 2005-02-2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行이 어렵고 行이 핵심입니다. 그냥 行하는 것이 ...그것이 어려운것.
혜덕화님 감사합니다. ^^

박재범 2009-12-2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교에서 정진바라밀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진이라고 하면 백척간두에 진일보하는 것으로만 알면 싫고 힘든 마음을 눌러 참게 되지만

<수도는 생활의 필요>라는 것을 아는 것. 우리의 생명과 같은 것.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안다면 행이야 말로 얼마나 감사한가 ! 하고 생각하고 기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지는 것이 정진바라밀이라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