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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잔잔하게 제 서재를 찾아주시는 도반여러분 건강하신지요?


근래에 책을 놓고 수행에 정진하느라 알라딘에 들어와 보질 못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들어온 것은 숭산대선사님의 입적을 당하여 몇마디 남기려 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동안 찾아주신분들이 많이 계셔서 놀랐습니다.


아무쪼록 도반님들의 자아를 찾는 여정에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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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정신세계사에서 발행되는 월간 웰빙라이프가  책상위에 배달되었습니다. 


마음한번 변하면 그리 좋아하던 것도 무감각해지게 보입니다.  예전같으면 신이나서


펼쳤을 잡지인데...그냥 건성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 눈에 딱 들어온사진한장.


바로 숭산대선사님의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옆으로는 짧막한 가르침이 있었구요.


제자가 선사님께 여쭈길 "스승이 꼭 필요한 것인지요?" 하자


" 너는 여기 왜 왔느냐?" ...." 네가 생각이 없다면 스승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생각을 끊질 못했다면


 스승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의 아버지는 숭산대선사님이셨고, 마음의 어머님은 대행큰스님이셨습니다.


사실 두분다 한번도 뵙질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존경해오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의 숭산대선사님의 사진과 가르침을 빤히 쳐다보고 또 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의 절친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숭산대선사님에 관한, 그리고 대행큰스님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태산처럼 우뚝 솟은 양대 산맥 두분이 계시기에 우리같이 복받은 사람들이 있으니 열심히 길을 가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전화통화를 한지 몇시간 되지 않아 그 친구로부터 황당한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침통한 목소리로 큰별이 떨어졌다....라고 하는데 저는 직감적으로 마음이 싸늘해지면서 무슨소리냐고 다그쳤습니다.  오늘 오후에 숭산대선사께서 입적하셨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긴 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신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한번쯤 먼 발치에서라도 뵐수 있을줄 알았는데


이렇게 홀연히 떠나실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정말 내 앞날이 막막해지는 걸 순간 느꼈습니다.


오고감이 없고 그대로 계신줄은 알지만 ...  허탈하고 허전한 마음 짝이 없었습니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남아 계신 대행큰스님의 안위도 걱정되기 짝이 없었습니다. 


두분다 세수도 비슷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한분이 가버리시니 남은 한분마저 가시면


이제 우린 어쩌란 말씀이신지... 뵙지 못해도 살아 계시는 것 하나만으로 든든하게 길을 갈 수 있었는데..


 선사님께서는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요,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기셨지만....그리워하는 심정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살아계실때는 못뵌 모습, 돌아가시고 나서야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요일 충남 수덕사에서 다비식을 하신다고 하니 마침 그날 한달에 한번있는 비번이라.


 갈 수 있을듯 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숭산대선사님과 대행큰스님과도 같은 큰 선지식들이 생존하던 시기를 살던 사람으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복이었고, 먼 발치에서나마 뵙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조그만 나라에서 이 시대에 태어나 두분의 정법을 만났으니 세세생생


제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수많은 중생.... 음으로 양으로 끌어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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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여러분들께서도 이리저리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마시고, 이리 저리 방황 마시고,


짧은 인생, 정말 열심히 정진하셔서 때를 벗고 업을 벗어 참주인공으로 거듭나시길


기원합니다.   책은 선지식의 가르침이니 발심과 거울로 삼으시길 바라며 생활에 있어서 물러섬없는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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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숭산 스님의 입적 소식은 마음 공부하는 우리 모두에겐 충격적이 소식이었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그분과 같은 시대에 간접적인 가르침이나마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성철스님 가신지 11년이 지나도 아직 그분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살아 있듯이, 위대한 스승님의 가르침은 육신의 변화에 관계없이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어, 늘 우리를 견책해주는 죽비가 되리라 믿습니다. ....().....

하나됨 2004-12-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마음선원에서 대행큰스님께 가르침을 배우며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도반들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대행큰스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관하며 매일 향을 피우며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바람이되다 2004-12-0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개처럼 살면 천상에 태어날까?(견서계경)


각묵(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실상사 화림원)

필자가 좋아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초기경들 가운데 하나가 견서계경(犬誓戒經)으로 옮길 수 있는 『중부』(맛지마 니까야) 제57번 경인 「꾹꾸라와띠까 숫따」(Kukkuravatika Sutta)이다. 여기서 꾹꾸라는 ‘개’를 뜻하며 와띠까는 ‘서계(誓戒, 서원, 맹세)를 지닌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경의 제목은 ‘개처럼 살기로 맹세한 사람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되겠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힐릿다와사나라는 꼴리야 족들의 읍에 머무셨다고 한다. 그때 개처럼 살기로 맹세하고 그렇게 사는 고행을 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와 소처럼 살기로 맹세하고 그렇게 사는 고행을 하는 그의 친구 뿐나가 세존을 뵈러왔다고 한다. 그들은 각각 개와 소처럼 사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하는 자들이었다. 개처럼 산다는 말은 개처럼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나체로 살고, 개가 음식을 땅에 던져주면 혀로 핥아먹듯이 그렇게 먹고, 개가 길바닥이나 노지나 처마 밑에서 자듯이 그렇게 자고, 개가 네발로 걷듯이 그렇게 다니는 한 마디로 말해서 개와 꼭 같이 먹고 자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소처럼 산다는 말도 소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산다는 말이다.

이들은 부처님께 찾아와서 “세존이시여, 이 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준 것만 먹습니다. 그는 개처럼 사는 서계를 오랜 세월을 지니고 실천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의 고행자들이 고행을 하는 목적은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금생에 고행을 하여 받을 고통을 다 받고 나면 그 과보로 내생에는 행복뿐인 천상에 태어난다고 믿고, 어려운 고행을 한다. 아마 그들은 당연히 부처님으로부터 그대들은 천상에 태어나리라는 격려와 칭송의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질문을 드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만 하라, 뿐나여. 그쯤에서 멈추어라. 내게 이것에 대해서 묻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알고 싶은 마음에 압도된 뿐나는 개처럼 사는 그의 친구 세니야의 내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을 드렸고, 세 번을 질문을 받자 부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 말씀하셨다. 세 번 질문을 받으면 여래는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덕담을 바랬는지도 모르지만 세존께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답을 하셨다.

“뿐나여,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서계(誓戒)를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버릇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행동거지를 닦고 나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는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만일 그가 ‘이런 버릇과 서계와 고행과 청정범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 뿐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 두 가지 태어날 곳 중에 하나가 있을 뿐이라고 나는 말하나니 지옥이 아니면 축생이다. 뿐나여, 이처럼 개의 서계가 성취되면 개들의 일원으로 인도할 것이고 성취되지 못하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세존의 이런 대답을 들은 개처럼 사는 세니야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우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드신 세존께서는 “그러기에 내가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신다. 그러자 세니야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처럼 말씀하셔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제가 개처럼 사는 서계를 오랜 세월을 지니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즉 오랜 세월을 그 힘든 난행고행을 했건만 그 서계를 닦아서는 아무른 향상이 없고 오히려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는 퇴보가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셔서 [제 자신이 그렇게 잘못 믿고 힘들게 살아온 것이 너무 처량하고 억울해서] 우는 것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소처럼 사는 뿐나는 같은 방법으로 소로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둘 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 뒤 뿐나는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제가 이 소처럼 사는 서계를 버리고 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나체 수행자 세니야가 개처럼 사는 서계를 버릴 수 있도록 그러한 법을 설해주소서.”

세존께서는 네 가지로 업의 법칙을 말씀하셨는데 요지는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는 것이다. 괴로운(해로운, 검은) 업을 지어 괴로운 과보를 받고 좋은(유익한, 흰) 업을 지어 좋은 과보를 받음을 말씀하신 뒤 이런 검고 흰 업을 초월한 것으로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를 가져오는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 있어서 그 업은 업의 소멸로 인도한다”고 도(道, magga)를 말씀하셨으며 진정한 사문의 길은 바로 이런 업에서 벗어나는 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존의 설법을 듣고 소처럼 사는 서계를 가진 뿐나는 세존의 신도가 되었지만 개처럼 사는 서계를 가진 세니야는 다시 부처님 문하로 출가를 감행하여 불교교단의 비구가 되어 바르게 도를 실천하여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으로 경은 끝을 맺고 있다.

필자는 이 경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부처님 법을 만나 꽃다운? 젊은 나이에 남들이 하기 어려운 출가를 감행하였지만 혹시 이 개처럼 사는 세니야처럼 잘못된 견해와 잘 못된 수행법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깨달음을 얻으리라, 해탈열반을 실현하리라고 하고 있지나 않은가 나름대로 크게 반성해보았다. 아니 내가 도대체 해탈열반에 대한 바른 이해라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 움켜쥐고 있던 견해와 수행법을 근원적으로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초기경에서 말씀하시는 세존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나의 견해가 잘 못된 것은 과감히 제거하고 부처님이 제시하신 도닦음으로 자신을 바꾸고 개조해나가리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

각설하고, 이경을 통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업설(業說)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소박한 인과론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개처럼 살면 개로 태어나고 신처럼 살면 천상의 신으로 태어난다는 논리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 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작 자신은 개처럼 사는지 신처럼 사는지 좀처럼 돌이켜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천상에 태어날까? 부처님께서는 『장부』 「수바경」에서 범천의 세상(바라문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천국)에 태어나려면 자애로운 마음[慈], 연민하는 마음[悲], 같이 기뻐하는 마음[喜], 평온한 마음[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無量心]을 닦는 길 외에는 없다고 하셨다. 입으로는 자비와 사랑을 외치면서도 자기와는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이념을 가진 자에 대해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불타거나 혹은 삿된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천상이나 천국에 가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개처럼 살면서 천상에 나려는 세니야보다도 못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불교의 궁극은 천국에 태어나는 것까지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다. 세니야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이것을 알고 개처럼 살기를 그만두고 해탈의 길인 팔정도를 밟아서 아라한이 된 것이다.

나는 개처럼 살고 있는가, 신처럼 살고 있는가. 나는 개처럼 살면서도 천국에 날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개처럼 살면서도 업지음에서 벗어나 해탈하리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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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올려주시는 글에서 많은 감동 받습니다. 퍼갑니다.

바람이되다 2004-10-1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역시 혜덕화님께 많은 도움과 힘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뜻하지 않게 부처님의 무재칠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셔서... ^^  제가 좋아하는 부처님 말씀 하나 더 올립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하여...

예전 어느 회식자리에서 한 교수님이 자신은 사후생을 믿지 않으신다고 하시더군요. 왜냐하면 (아주 단순한 이유로) 사후생을 믿었다가 죽고나서 없다면 실망이 클 것이고 , 사후생을 믿지 않았다가 정말 있다면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셈이니까 좋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요...물론 농담처럼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때 교수님께 참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아마도 아래 이야기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명의 아내 >

4명의 아내를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첫째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 아내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城)과도 같습니다.


셋째 아내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 아내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라고


실망한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합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말합니다.

육체가 곧 나(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城)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직 마음뿐입니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善과 德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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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0-0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늘 살아있는 동안에 바른 마음을 써야한다고 가르치시는 거지요..^^
저도 바른 판단하는 마음과 자비롭고 하심하는 마음을 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네요... 아무래도 육체를 가진 몸으로 물질을 중시하는 세상에 젖어 사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님의 글들을 보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남쪽에는 여행기간중 하루만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전체적으로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있어서 내려가기는 아주 쉬웠습니다. 일단 진주까지 고속도로이고요. 진주에서 고성, 고성에서 통영까지는 도로가 보통입니다.  하지만 시골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도로들입니다. 그 길옆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감과 밤을 한푸대씩 깔고 앉으셔서 길가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십니다.   도시에서는 볼수없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알이 굵은 밤과  주먹만씩한 단감들을 5000원어치씩만 샀는데도 아주 푸짐하게 담아주셔서 여행내내 실컷 먹고 돌아와서도 먹고 있습니다.

통영에서는 예전에 학교수업시간에 배웠던 다도해...라는 뜻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도로너머로 한눈에 펼쳐지는 바닷가와 그 속에서 머리를 불쑥 불쑥 내밀고 있는 섬들이 너무도 이국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아.. 이것이 우리땅의 정취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통영에서는 그 유명한 충무김밥을 배부르게 먹었고 여분으로 몇인분을 더 싸가지고 여행길 도중도중에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맛이 특출나거나 맛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원조 충무김밥을 먹어본 것은 기념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통영에서 미륵도로 넘어가면 유명한 산양일주도로가 있는데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곳에서의 일몰이 또 아주 유명합니다.  때마침 낙조시간에 맞춰 도착해 명장면을 사진으로 많이 찍어놓았습니다.

미륵도에는 미래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까지 차로 한참 올라가서 주차한뒤, 사찰구경을 하고, 바로 미륵산정상까지 한시간정도 걸려서 오릅니다.  그곳정상은 640여미터정도 되는데 한려수도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 있는 비경이 펼쳐집니다.  통영쪽으로 여행가시는 분들은 꼭 미륵산 등반을 권하고 싶습니다.

거제도에서는 몽돌해수욕장( 모래사장이 아니라 몽돌이 펼쳐져 있는 진귀한 곳입니다.)에서 아이랑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글동글한 돌맹이들이 참 신기했는데..모난 돌들이 꾸준한 파도의 힘에 의해 동글동글 바뀌는 것을 보고 마음공부의 스승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시간여 기다리면서 외도로 들어갈 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때맞춰 비가 내려서 외도일정을 취소하고 .. 길을 장승포로 돌렸습니다. 장승포는 생각보다 굉장히 큰 항구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해물뚝배기를 맛있게 먹고 대우조선소를 구경하고 다시 통영으로 돌아왔습니다.  통영시내에는 중앙시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활어를 구경하기엔 좋은 곳이었습니다.  한창 전어철이라 전어구이나 전어회를 먹자고 아내가 말했는데 막상 가서 살아있는 것을 보니 먹고싶은 맘이 살아졌다고 해서 맛은 보지 못했습니다. ^^

통영에서 다시 돌아오는길에 고성의 공룡박물관을 들리고 지리산자락의 아는 황토집에서 일박을 한뒤 다시 올라오다 무주구천동이 있는 덕유산에 들러 정상인 향적봉에서 사진찍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여행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잠깐 맛보기만 보여드릴려고 했는데 길어졌습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한국 참선불교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분인 "대행스님"의 책입니다.  옛날에 나온책인데 김정빈님께서 쓴 " 無"라는 책입니다.  한마음선원을 이끌고 계시는 대행스님은 왠만한 불자라면 다 아시는 분입니다.  무라는 이책에서 대행스님의 공부수행했던 흔적과 수많은 일화와 아름다운 가르침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일독을 추천합니다.  늘 대행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인공"은 마하리쉬가 말하는 참나,진아와 같고  조셉베너의 "내안의 나", 에크하르트 톨레의 "존재"와 동일한 말입니다.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일임하고 주인공을 믿고, 내안에 있는 주인공에게 마음의 눈을 돌리는 것을 수행방편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행스님 법어집은 한번 사놓으면 두고두고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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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9-2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해 쪽은 겨울에 주로 가봤지만, 푸르고 아름다운 다도해가 눈에 보일 듯 선하네요. 남해는 보리암 가는 길이 참 좋았었는데, 요즘은 다 포장이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보리암 올라가면서 길가에 산딸기를 따먹었었는데..... 몸도 마음도 충분히 재충전 된 가을이겠군요. 즐거운 추석되세요.
 

안녕하세요~ 내일부터 멀리 여행을 갑니다. ^^ 

지금내리고 있는 비가 그치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뭐...계속오면 오는대로 운치가 있겠죠.  차를 살살몰고 내려가야 할것같구요.... 사람많고 무더운 여름휴가를 피해 초가을 휴가를 가려고 합니다.

목적지는 통영,충무, 거제도 방향이랍니다. 부러우실거라 생각합니다. ㅋㅋㅋ 

오늘은 라마나 마하리쉬님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과 "있는 그대로"라는 책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찾아 처음 떠나는 여행길에서 접하는 필수서적이죠. 저역시 10여년전에 이책을 읽었고 너무도 큰 감명을 받았던걸로 기억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다시 보니 처음볼때보다 더 큰 감명을 받게 됩니다. 10년지기 어떤 명상친구는 불경이후 처음으로 책을 보면서 큰절을 한 책이라고  말합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자기 존재로 몰입해서 나는누구인가를 추구해가는 자아탐구 방법과  거대한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을 헌신하는 복종의 길이 그것입니다.  짧지 않는 시간동안의 수행세월을 정리해보니 라마나 마하리쉬님의 말씀이 정말 정답인듯 합니다.

의식혁명에 나와 있기로는 근세기 최고의 영적인 수도자인 라마나 마하리쉬의 의식수준은 700으로 측정됩니다.  테레사 수녀님과 마하트마 간디도 같은 레벨이라고 나옵니다.  의식혁명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수는 없겠지만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침묵의 성자로 알려진것처럼 몸을 움직여 하는 특별한 봉사라든지...육체수행같은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깊은 금강삼매의 자리에서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반면에 테레사 수녀와 간디는 깊은 삼매에 있다기 보다는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세분의 레벨이 비슷하다고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명상수행만을 강조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속에서의 봉사와 헌신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어느한쪽이 더 좋다 낫다가 아니라 둘의 조화가 필요하며, 또 각자의 조건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역시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대답은 매우 논리적이고 정확하며 깊이가 있습니다. 그냥 보면 기타 명상서적과 비슷한 것같지만 사실 그 깊이로 따지면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의 뚜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수많은 성자들이 왔다 갔지만 제자들중에서 깨달은 사람이 나온 적은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중에는 안나말라이 스와미같은 제대로 깨달은 분이 계십니다. 마하리쉬의 책은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가는 방법을 제시해준 책이라 생각합니다.

수행의 길에서 방황하거나 의심때문에 흔들리는 분들께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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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무런 구별이 없다.
은총은 늘 가득 차있는 바다처럼 흐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그것으로부터 끌어온다.
컵을 가져온 사람이 항아리를 가져온 다른 사람만큼
많이 가질 수 없다고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는가?

신의 은총은 깨달음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은총은 진정한 헌신자나 요기에게만 온다.
그것은 자유에 이를려고 끊임없이 끈질기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노력과 노력없음을 넘어선 상태가 있다. 그것에 이를 때까지는 노력은 필요하다

신에게 복종하고는 신이 기뻐하시기를 기다려라.
만약 그대가 신에게 그대의 뜻에 맞도록 해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복종이 아니고 신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그대는 신으로 하여금 그대에게 복종시키려 하였음에도
그대는 신에게 복종했다고 생각한다.
신은 무엇이 최선이며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라.
짐은 신의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어떤 걱정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대의 모든 걱정은 신의 것이다.
그러한 것이 바로 복종이다.
 
 
종이를 잡아라.
우리는 오직 글자만 본다.
어떤 사람도 그 글자가 씌어진 종이에 주의하지 않는다.
종이는 글자가 거기에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거기에 있다.
글자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종이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실재가 아니고 환상이라고 말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종이와 글자 둘다를 하나로 여긴다.
브라만과 세계 또한 그렇다.

 

The quest "Who am I?" is the axe with which to cut off the ego.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에고를 베어내는 도끼이다.

'Who am I?' is the best japa.
"나는 누구인가?"는 최상의 자파이다.

Your body, the society, the forest and the ways are all in you.
you are not in them.
그대의 몸, 사회, 숲과 길들은 모두 그대 안에 있다.
그들 속에 그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The whole universe is full of life.
You say the stone is unconscious.
It is your self-consciousness which now speaks of unconsciousness.
전 우주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돌이 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의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대의 자아-의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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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09-1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과 밖으로 나서는 여행이 한자리에 있군요...

혜덕화 2004-09-2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아주 맑고 화창한 날입니다. 이런날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드라이버를 하면 더 행복할 것 같군요.즐거운 휴가 보내고 계시겠죠? 남해의 푸른 바람을 많이 안고 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