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엠언니를 위하여, 뜨거운 여름, 불면의 밤에 도움을 줄 몇 권의 책을 올려봅니다...라고 적고 보니 마치 헌사 같다. 요즘 어쩌다보니 핫하고 므흣한 것들만 읽고 있는데 내가 일부러 찾아 읽어서라기보다는 펼친 책이, 관심이 가는 책이,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서 여름밤, 불면의 시간을 보낼 엠언니가 떠올랐고 엠언니의 숙면에 도움을 못 줄 바에는 불면의 밤에 눈으로나마 즐거워지라고 골라봤다.

 

 

 

 

에밀 졸라의 새 책이 나왔다. 『나나』, 몇 년 전에 홍신문화사의 『나나』를 샀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었다. 한데 문학동네에서 새 책이 나온 거다. 표지가 완전 에.로.틱.하다. 물론 이 책이 불면의 밤에 도움이 될 지 해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에밀 졸라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불면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졸라의 책을 읽다가 어찌 책을 덮을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모두들 돌아보았다. 나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 얇은 무명 속옷으로 젖가슴을 반쯤 가렸을 뿐이었다. (…) 젖가슴이 봉긋 솟아오른 나나는 맨팔과 맨어깨를 드러낸 채 젊고 풍만한 금발 미인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면 다시 몸을 감추려는 듯, 한 손으로 여전히 커튼 자락을 쥐고 있었다.

 

 

 

 

『관능적인 삶』 제목만 보고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한 그녀의 글이 '관능'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글들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 짜릿하다. 매혹적이다. 누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나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더 그녀의 글에서 관능, 그 이상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엠언니가 읽어보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한다. 관계의 황홀경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때 찾아왔다가 그 사랑을 지속하기로 선택한 순간에 지극해진다. 존재의 연루가 관계의 단단함으로 이어지는 자리. 그곳은 인연의 결말이 어떠하든 눈부시다.

 

 

 

 

 

모든 사랑과 욕망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 혹은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등장한다. 갈등하고 아파하고 슬퍼한다. 제목에서부터 '욕망'은 끝이 없음을 느끼게 만드는 이 책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한 여자를 두고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두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애절한 사랑 소설이라고 하니, 엠언니.. 어때요?

 

 

“내 생애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를 사랑했다.”

 

 

 

 

어제 드디어 예판이 올라왔다고 좋아했던 코엘료의 『불륜』, 나보다 조금 더 언니인 엠언니는 분명 호기심 키우며 이 책을 읽을 것이다. 더군다나 파울로 코엘료가 아니던가. 코엘료는 그동안 꾸준히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읽다 보면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하고 마음까지 정화시켜준다. 그나저나 추천글에 뜬 내용 중에 '코엘료의 50가지 그림자'라는 문장, 진짜?

 

 

린다와 그녀의 옛 애인 사이의 정사 장면이 에로틱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작품은 단순한 성적 스캔들을 넘어 삶의 권태와 우울 등 인간 감정의 영역을 파고든다. 여성의 복잡한 심리가 잘 드러난 소설로, 전작 <브리다>, <11분> 등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며칠 전 내 눈을 끌었던 책 『지옥』, 엿보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실존을 탐구한 소설이란다. 호텔의 장기투숙자인 '나'가 자기 방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옆방에 투숙하는 인물들을 훔쳐보는 행위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삶과 애욕을 담고 있다고 한다. 에밀 졸라를 계승한 극명한 사실주의풍의 작품이라고 하니, 엠언니 관심 있을 듯^^

 

 

연인들이란 언제나 미쳐 있죠. 그걸, 당신 자신이 말씀하셨어요. 제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에요. 그처럼 많은 지식과 지성을 가진 당신은 제게 말해주었죠. 두 사람의 대화자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장님이며 거의 벙어리라고, 그리고 뒹구는 두 연인이란 바람과 바다처럼 서로 낯선 것이라고. ... 귀를 기울여 들을 때는 거의 들리지 않고, 들릴 때는 거의 이해되지 않죠. 연인들이란 언제고 미쳐 있어요.

 

이 정도면 7월 한달은 불면 따위에게 극복 당하지 않고 불면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감히, 추천한다. 언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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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4-07-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는 분명 좋아할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readersu 2014-07-07 10:17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렇게혜윰 2014-07-0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엠언니 매일매일 불밤을 보내실듯 해요ㅎㅎ

readersu 2014-07-07 10:17   좋아요 0 | URL
엠언니를 아시는군요? ㅎㅎ
불밤을 위해~!!(주말에 시작하신 것 같던데 ㅎ)
 

 

 

앗, 떴다! 불륜! 코엘료의『불륜』이란다. 영어 제목은 Adultery, 직역을 한 것보다는 좀 양호하다. 어떻게 이 제목을 쓸 생각을 했을까? 코엘료의 뜻?! 그렇다면 이런 기사 제목이 떨지도 모르겠다. '파울로 코엘료, 불륜' 뭔가 의미 심장하잖아. 마치 파울로 코엘료가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책소개 보니 배경은 『11분』과 같은 스위스 제네바이고, 광고 카피가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오로지 사랑'이라고 한 것보니 '불륜'보다는 '사랑'인 듯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리가 잘 써먹는(!) 문장처럼? 아무튼 불륜은 늘, 결과가 궁금하지.   

 

      

 

경성 고민상담소』제목이 재밌다. 근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클릭클릭, 들어가서 보니 『경성 기담』을 썼던 저자다. 1930년판 마녀사냥이란다. ㅋㅋ 흥미롭다. 하여 찜. 비싸지만, 요즘 책값이 다 이 정도이지, 한다(그럼에도 속으론, 아, 열나 비싸비싸비싸) 그랬는데 더 비싼 하이쿠 책이 눈에 들어왔다. 류시화의 책이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제목도 길지만, 가격도 만만찮다. 한데 미리보기 하니 맘에 쏙 든다. 역시 찜!

 

알라딘 15년 기념으로 50% 반값하는 책들을 봤다. 신간으로 사놓고 아직도 못 읽은 책이 수두룩하다. 우씨, 이렇게 안 읽고 놔둘 줄 알았다면 지금 50% 할 때, 사는 건데....하는 하나마나한 후회를 했다. 그래서 찜한 책은 최갑수의 『당신에게, 여행』사진도 예쁘고 글도 좋은데, 우리나라 여행지라서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마스다 미리~!!!! 내 누나』와 『잠깐 저기까지만』이다. 이것 완전 기대기대기대!!! 여행에세이도 기대되지만 『내 누나』라는 만화닷! 마스다 미리는 역시 만화이지, 만화! 특히 이 책은 유머를 장착하고, 남동생이 바라보는 '누나'라는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고 하니, 완전 재미있을 것 같다. 남동생만 둘을 둔 누나로서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말 기대되는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여 토탈, 책값은 80,790원!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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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좋아합니다. 그래서 신간 소식만 보이면 일단 다 사고...보지는 않지만, 가급적 사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그래픽 노블이 눈에 들어와 올려봅니다. 근래 읽었던, 혹은 맘에 든 그래픽 노블 몇 권과 함께.

 

 

올해가 제1차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라고 합니다. 역사 공부 제대로 안 한 티가 나는데, 아, 그렇구나! 정도가 저의 관심 사항입니다. 그때, 왜, 무슨 일로, 무엇때문에... 같은 것은 지금 제 삶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인데, 이 책,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책소개를 읽으니 아, 그래서는 안 돼! 하고 반성하게 되네요(-.-)

 

지은이 헨리크 레르는 "무엇이 한 청년으로 하여금 이토록 자살 행위에 가까운 일을 저지르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세계대전을 야기한 살인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또한 저마다 마음속에는 한 인간이 살고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는군요. 하긴, 그 당시의 상황은 누구든 건드리기만 해라, 였을 테니. 어찌 보면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희생양??

 

일단 이 책은 읽어봐야겠습니다. "진실은 물에 쓴 글과 같다"라는 말이 제 맘을 건드리는 걸 보니 공감할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친구랑 미메시스 카페에 갔었습니다. 맘에 두었던 책을 사고 계산대에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가 눈에 들어오기에 얼릉 샀습니다. 온라인보다 조금 더 할인이 된 가격으로. 집에 오자마자 읽었는데, 스토리가 정신 없이 왔다갔다 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젊은 그들의 솔직한 성 이야기와 블루톤의 시원한 컬러. 호기심 돋는 그림들. 그리고 친구의 선물로 받은 『파란색은 따뜻하다』가 있습니다. 영화로 보지 못하고 그래픽 노블로 읽겠다고 선물받았는데 아직도 비닐에 싸인 채 책꽂이에 꽂혀 있어요. 먼저 읽어본 친구는 좋다! 고 했습니다. 영화도 좋았으니 아마 원작인 그래픽 노블은 더 좋겠지요. 미메시스의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데 타인들의 드라마 시리즈도 참, 좋아요 ㅎ 핫, 그레이그 톰슨의 새 책도 나왔네요!! 『청키, 라이스』 미리보기를 보니 제 스탈은 아니지만, 움움.. 일단 고민 해봐야겠어요. 나중에 미메시스 카페에 가면 왕창!물론 쉽지 않아요.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지난 번에 품절되어 못 샀다가 풀리자마자 사두고선 아직도 읽지 못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앞부분을 집중 몰입하며 읽고 있는 중이에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을 하며 읽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친구에게 먼저 읽어보라 줬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더군요. 훌륭하다고 했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이 책은 더더 아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픽 노블을 만화라고 생각하고 쉽게 보는 경향이 많은데 제가 어느 정도 읽어본 사람으로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짧은 글과 그림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고전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 읽게 해주는 책들도 참 좋아합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만화로 읽는 불멸의 고전> 시리즈 같은 것. 고전을 쉽게 읽어내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고전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도 하거든요. 암튼. 저의 그래픽 노블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 주~욱 이어갈 것이라며. 그러니 여러 출판사에서 더 다양한 그래픽 노블이 나오면 좋겠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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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2014-06-25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명작이 학습서로 나온 듯..
좋으다~

readersu 2014-06-30 16:20   좋아요 0 | URL
학습서는 아니지만, 누구나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라서 좋습니다!
 

  

 

이광호 쌤의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를 읽고 너무 좋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사랑의 미래』를 샀다. 읽을 책이 많아 책을 받자마자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앞부분만 읽어도 마음이 쿵덕거린다. 내 맘으로 들어오는 책들을 만나면 매번 그렇다. 사면서『초신성의 후예』라는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쓴 에세이도 같이 구매했다. 우주와 별에 대한 글이 아니더라도 그가 천문학자가 된 과정이 궁금했다. 그도 누군가처럼 하늘의 별을 보며 그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했을까?

 

 

  

 

그리고 오늘 아침엔 윤대녕 작가의 산문집을 샀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요즘은 제목들이 다들 시 같다. 마종기 쌤과 루시드 폴의 글을 담은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이라거나 앞서 소개한 이광호 쌤의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도 그렇고, 요즘 눈에 들어오는 강신주 쌤의 새책 제목도 그렇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글쎄, 물어보니 답을 해야할 것만 같지만. 하긴 이러한 제목을 보면 우선 끌린다. 제목에서 눈이 먼저 가고, 그다음엔 작가, 표지, 내용... 이런 순으로 책을 사기도 하니까.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어 하나의 제목도 나쁘진 않지만 이런 시 같은 긴 제목, 난 좋다.

 

 

  

 

더불어 같이 산 책은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이다. 우리나라엔 달랑 한 곳에서 출간이 되어 있는데 네** 메인에 올라온 글을 읽자마자 궁금해졌다. 요즘, 이상하게 자꾸만 이런 글에 관심을 가진다. 내가 너무 행복한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우울하고 슬프고 읽어내기에 힘든 글들을 읽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그런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지금 억수로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아니고, 워낙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인데다 현재의 상황이 어둡고 힘들고 안 좋아도 다 수용하고 이겨내는 '전형적인 한국적 숙이(혹은 순이?!^^:)' 스타일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니가? 말도 안 돼!, 라며 내 말에 수긍하지 못할 친구들 있겠지만;;) 하지만 사놓기만 하고 안 읽는 게 문제.

 

다니엘 페낙의 새 소설이 나왔다. 『학교의 슬픔』,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페낙은 워낙 믿을만한 작가이니까, 두번 생각 안하고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녹색평론』 정기구독을 했다. 내게 이 책을 정기구독하라고 한 사람은 소설가 한창훈 쌤이셨다. 커피 사 마실 돈 절약해서 꼭, 정기구독해서 읽어보라 하셨는데, 네, 대답만 하고 매번 잊고 있다가 신형철 평론가 팟캐스트에 시인 이문재 쌤이 나오셔서 『녹색평론』 에 대해 말하시기에 아차, 싶어 구독을 신청했다. 그저 소설이나 읽고 가끔 어렵지 않은 인문서를 읽는 정도로만 내 머릿속을 채우는 얕은 독자라서 과연 이 책을 구독하고도 잘 읽어낼지 모르겠으나, 읽다 보면 나아지겠지 한다. 아, 박상륭 쌤의 『죽음의 한 연구』는 이미 샀다. 역시 한창훈 쌤의 추천이 먼저 있었는데 이문재 쌤도 이번에 추천을. 그러고 보니 선생님들이 추천해주신 책들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인 듯하다.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거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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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4-06-2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열혈 회원이시군요!!!

readersu 2014-06-25 10:51   좋아요 0 | URL
나름 숨어지내는 알라디너랍니다 ㅎㅎ

무해한모리군 2014-06-2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readersu님 녹색평론은 어렵지는 않으나 딱딱한 글이 많아 관심이 없다면 지겨울수 있는거 같아요. 이광호님 책을 쓱 장바구니에 넣어봐요.

readersu 2014-06-25 11:50   좋아요 0 | URL
움, 그래서 아직 못 펼치고 있어요. 관심이 있는 글들로만 먼저 읽어볼 예정이에요. 금방 지겨워져버리면 안 되니까(-.-). 이광호 쌤 글, 참 좋습니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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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친절한 여행 안내서도 아니고 글쓴이의 얼굴이 오롯이 드러나는 수필도 아니며 소설이나 시라는 이름의 문학은 더더욱 아닐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그가 걷고 있는 길을 따라 걸었지만 읽다 보니 소제목처럼 "얼굴 없는 산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그 산책자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의 깊은 사유에서 저절로 떠오르는 나의 추억들과 생각을 나눠보고 싶었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걸어본다]라는 주제로 작가들이 걸었던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첫 책으로 이광호 문학평론가의 "용산" 산책이다.

 

사실, 용산이라는 곳이 이렇게 큰 범위를 차지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내가 아는 용산이란 지극히 좁은 동네, 서울역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기 전, 배호의 가사처럼 '남몰래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삼각지' 그 근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전혀 아는 곳이 없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내가 알고 있는 '용산'도 많았다. 그 첫번째 장소가 용산전자상가이다.

 

용산전자상가로 가는 고가 밑에는 택배 회사가 있다. 밤이면 택배 차량들이 이곳에 밀집해서 주차를 하고, 밤에 이곳을 지날 때면 도로 가에 택배 상자들을 길거리에 부려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두운 밤거리에 쌓인 택배 상자들은 어딘가로 보내주어야 할 약속 같은 것이다. 노천에 쌓여 있는 그 약속들이 너무 허약하고 적나라해 보이는 것은 이 장소의 허술함 때문일 것이다. 밤이 되면 세상의 모든 안부와 약속 들은 갑자기 허약해진다.

 

단 한 번도 약속의 힘을 실감한 적이 없다. 약속은 언제나 무력한 자의 몫이다.

 

오래전 컴퓨터를 좋아했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면 항상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가기 마련이라 전자기계는 물론이거니와 컴퓨터의 컴자도 몰랐던 그때, 그 데이트는 그저 그 친구와 걸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이 위로가 되던 때였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긴 통로를 지나 전자상가로 들어선다. 컴퓨터 상가부터 시작해서 온갖 전자상가를 다 기웃거리는 일이 우리의 목적이었고, 가끔은 컴퓨터를 구입하고, 부품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으며 친구들의 조립식 컴을 맞춰주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데이트도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일단락되었고, 더 이상 용산전자상가에는 내가 갈 일이 없었다. 그곳은 내게도 이제 작가의 말처럼 '짧지 않은 시간 어렵게 작업한 데이터나 소중한 기억들을 대신하는 파일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사람들'만 가는 곳인 것이다.

 

그 완벽한 무력감에 대하여.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또 알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의 하드디스크는 언젠가는 반드시 망가질 것이며, 누군가가 그것을 복원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그다음 떠오르는 곳은 용산역이다.

용산역이라고 해서 용산역과 관련된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너무나 깊이 내 뇌리에 박힌 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90년대 용산 전철역의 이미지는 기억 속에 실루엣처럼 남아 있다. 그 실루엣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붉은색의 이미지다. 붉은 얼굴의 군인들과 사창가의 붉은 불빛들은 지금 포장마차촌 알전구의 붉은 불빛으로 옮겨왔다. 기억 속에는 역사 앞을 오가는 군인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과 부대찌개나 감자탕집 같은 허름한 식당들의 이미지가 있다. 사창가에 대한 기억은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닌 미아리의 모습이 압도적이다. 미래와 현재에 어떤 확신도 사치스러웠던 한 시절. 학교 앞 개천 변의 유곽들은 짜장면집에서 몰래 보던 잔혹한 성인용 만화의 한 페이지 같았다. 미아리가 그랬던 것처럼, 용산역의 붉은 사창가들도 사라졌다. 붉은 불빛들이 새로운 환한 빛 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이 거리가 붉은빛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은 아니다. 거리는 붉은빛을 다 지우지도 못한 채 희고 불투명한 액체로 덧칠되었다.

 

용산역 근처를 가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근처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붉은 불빛'들이 모여 있던 그곳을 지나면서도 처음엔 뭐지? 했다. 그 안에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차창을 통해 스쳐지나가듯 바라보며, 그제서야 아, 이곳이 '그곳'이구나. 했었다. 지나는 데 몇 분은커녕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스침의 광경은 슬로우비디오처럼 천천히 선명하지도 않고 뿌연 화면처럼 보였다. 그녀들은 어떻게 저곳에 가게 된 것일까? 그날 밤 내내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이후 용산역은 내게 그 '붉은 불빛'들 속의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그 부근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이 맞는지도 헷갈릴만큼 변해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어떤 장소가 제의적인 공간이 되는 것은 우연에 기댄 것이다, 스쳐지나가던 골목길과 육교와 작은 공원과 카페가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치지 못하는 장소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사소한 운명들이다. 그 우연들에 운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우연들은 삶을 일거에 다른 시간으로 돌려놓고 되돌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 우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피할 수 없이 잔혹해보인다. 어느 봄날 작은 벚꽃 나무 아래에서 나눈 이야기가 기억날 수 없고, 그 평온한 눈빛도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공간의 따뜻한 공기들과 상냥한 속도로 떨어져내리는 꽃잎의 리듬만이 기억난다면, 그리고 그 순간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면, 그 장소는 한 사람에게는 제의적인 장소가 된다. 그 봄날이 몇 번이나 지난 뒤에도 눈 오는 날 그곳을 찾아가 한참 동안 혼잣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눈 속에 묻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 혼자만의 비밀스런 의례를 치르는 사람은 그 장소의 주인이 아니라, 그 장소에 찔린 자이다. 장소는 긴 애도의 자리가 된다.

 

'우연이라는 이름의 사소한 운명'이 만들어준 또 하나의 장소, 이태원

이태원의 첫 기억은 친구와의 쇼핑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보세옷을 살 수 있던 유일한 곳. 서울만 해도 낯선 곳이었던 내게 이태원은 더더 이상한 곳이었다. 한국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고, 분명 서울의 한 곳인데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던 곳. 가끔 클럽에 가기 위해 이태원을 찾기도 했었지만 막상 가본 곳이 기억에 남지 않은 걸 보니 그때의 나는 그 작은 용기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고 다시 찾은 이태원은 마치 처음와본 곳처럼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행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와 장소의 스토리를 말해주기 전에는 그 장소의 의미를 알 수 없으며, 그 장소의 의미는 여행객의 시선 앞에 한없이 가벼워지거나 무화된다. 이태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행객이 된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이 거리는 여행객의 거리다. 여행의 시작은 알 수 있지만, 아무도 그 여행의 끝을 알지 못한다. 어떤 시간도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채 어느 순간 닫힐 수도 있는 길, 끝없이 도착이 연기되는 길의 시간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오인과 참혹한 우연으로서의 생은 결국 전모를 다 알기도 전에 불현듯 마감될 것이다. 이번 생의 여행이 어떤 장면에서 멈추게 되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은 비밀로 남게 된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친구는 '큰옷'을 파는 곳에서 옷을 사야한다고 했다. 친구와 만나 그가 원하는 옷을 찾기 위해 '큰옷'을 파는 가게들을 드나들었다. 어릴 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 이제 이태원은 서울의 어느 곳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그저 이제는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외국인들이 조금 더 많이 보일 뿐이었다. 친구가 원하던 옷을 사고 헤어지기가 서운하여 이태원을 걸었다. 해밀턴 호텔 쪽으로 걷다가 골목길로 들어갔고, 골목길에서 배가 고파 어묵을 사먹었다. 다시 걷다가 우리가 간 곳은 보광동 방면의 앤티크 가구거리였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물건이 있을 것이다. 버릴 수 있는 물건과 버릴 수 없는 물건, 그리고 버릴 수도 없고 바라볼 수도 없는 물건. 세번째 물건이 많은 사람은 돌보지 않아도 되는 창고가 필요하다. 내게 가장 절실했던 공간.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용산의 장소는 남산이다.

서울에 올라오신 부모님은 항상 남산 케이블카와 유람선 이야길 하셨다. 서울에 온지 몇 년이 지났어도 유람선은커녕 케이블카를 타볼 생각도 안 하던 터라, 그곳에 가보게 된 것도 부모님 덕분이겠다.

 

이태원의 번잡함이 지겨워져서 문득 어두운 하늘 저편을 보게 된다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남산이 있다. 남산은 용산구와 중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것이 의미라는 것 중의 하나는 남산이 한양 도성과 그 외곽의 경계선이었다는 것이다. 남산은 서울을 보호하는 성곽인 동시에 서울에 진입하는 통로였으며 서울 시내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상징이었다. 이런 이유로 남산의 역사는 용산의 다른 지역들처럼 처절한 내력을 갖는다.

 

그후로 남산은 용산에 속하는 장소들 중에서 가장 자주 간 곳이 되었다. 친구들과 산책을 가기도 했고, 도서관에도 갔다. 남산 팔각정 옆에 있는 전망대에서 묶여있는 자물통들을 부러워했고, 서울시내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앉아 수다를 나누기도 했다. 어두워지는 서울의 모습을 전망대에서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넓고, 이렇게 많은 건물들과 차, 사람들. 저곳에 누가 살고, 저 차들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느 하나 흐트러지는 것 없이 일제히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 그러고선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기도,

 

이 거리에 영혼의 거점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다. 이곳은 영혼 밖에 있는 풍경. 이제 너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은 풍경 밖의 일이다.

 

용산을 걷는 작가의 뒤를 따라 걸으며 내가 떠올린 기억들은 어쩌면 용산이라고 한정하였지만 지방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어 올라온 사람들이 느끼는 그 어느 곳하고도 상통할 것 같다. 용산만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가 아니라,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곳, 혹은 내가 자주 갔던 곳들은 모두 '지나치게 산문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의 말처럼  '우연이라는 사소한 운명'이 그 어디에서라도 작동을 했을 테니.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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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7-1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용산전자상가를 남친과 걸었던 적이...무단횡단 딱지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