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 그랑블루, 제주의 푸른밤, 7번 국도와 대포항, 그리고 만리포와 백도의 일몰과 거문도. 바다를 보려면 서너 시간은 차로 달려야만 하는 내륙 분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힘든 일이 생기거나 머릿속이 복잡하면 저절로 바다가 보고 싶다, 고 했으니까. 장마가 오기는 하는 건지, 며칠째 한여름 폭염처럼 푹푹 찌는 날씨를 보니 다시 또 바다가 그리워졌다. 바다 다녀온 지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그 그리움을 담아 고른 '바다'가 있는 책, '바다'를 그리워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그런 책!
맺힌 것을 풀어내는 바다(먹고)
이제 바다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을 빼놓으면 안 된다. 사방이 바다인 섬을 배경으로 이토록 세세하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은 없기 때문이다. '갯것'을 '하고' 다루는 법과 먹는 법은 물론이고 섬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바다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바로 스스로 생계형 낚시꾼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한창훈, 그가 쓴 한창훈식 '자산어보'《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가 그 책이다.
오래 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자산어보》라는 어류학서를 쓴 손암 정약전 선생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를 바탕으로 한창훈 작가는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거문도에서 나는 어류들로 현대판 자산어보를 써냈다. 어찌나 맛깔 나는 글과 사진을 올려두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입맛을 다시다가 책을 덮자마자 가까운 바다나 횟집으로 뛰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다. 술이 당기는 것은 당연지사. 머리말에서 그는,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바다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가더라도 회 먹고 바닷가 조금 걷다가 돌아오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바다란 늘 그곳에 있는, 파랗고 거대한 덩어리일 뿐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고들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깊숙이 친해지게 되는 것,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게 하는 것, 이윽고 뒤엉킨 매듭을 하나하나 매만지게 되는 것, 머물다보면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내게 하거든요." 라고 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책이다. 아직도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바다(즐기고)
여기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달리 생각하면 용감한 남자들이 있다. 술자리에서 나눈 말이 씨가 되어 바닷길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기록기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이다. 이 모험심 강한 남자들은 무동력 돛단배를 타고 4시간이면 충분한 바닷길을 일 년씩이나 걸려 간 것이다. 항해술은커녕 바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열네 명의 중년 남자들이 '집 나가면 생고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떠난 바닷길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는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많은 중년의 남성들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항해 중 VHF 교신은 진지해야 한다. 더구나 교신 상대가 해상의 치안을 담당하는 해경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무전기 마이크에 우리 배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무전기 건너편의 교신 상대가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배 이름은 '집단가출호'였다.
그들은 바닷길을 다니며 우리나라의 바다와 섬, 해안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며 감탄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 깔따구 모기의 습격, 배에서의 배설물 처리, 추운 겨울의 비박과 끔찍한 배멀미까지. 낭만적으로만 보이던 요트 여행이 알고 보니 생고생의 길이었다는 것은 시작부터 알아본 바. '웃자'고 시작한 여행이 '죽자'고 덤벼든 꼴이었다나. 그러나 고생의 대가로 얻은 그들의 우정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무수한 중년의 남성들은 책을 덮는 순간, 생고생이든 뭐든 집 떠날 궁리부터 하게 될 것이다.
이젠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할 바다(보호하기)
이주 전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서해로는 처음이었다. 가족 여행을 서해로 정한 후에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라는 부제를 단《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을 읽었다. '해양보호구역'이란 것은 바다가 더는 훼손되면 안 되겠기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전하고 있는 14곳을 말한다. 지난겨울 저자가 그곳을 직접 다니며 사진 찍고 써내려간 글이다. 일반적인 바다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바다를 어떻게 보호하고 바다 여행을 어떤 식으로 해야 가치가 있는지를 책은 알려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바다가 그곳에 있으므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마음대로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그렇게 드나들었대도 있는 그대로를 즐겼으면 '보호 구역'이라는 말 따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훼손되어 가는 바다에게 이젠 '보호 구역'이라는 타이틀을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읽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이 아름다운 바다를 어떻게 보호해야하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사계절 내내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바다, 책을 읽고 나면 바다가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 또한 책에 나오는 바다를 저자의 여정에 따라 다니다 보면 교육적 가치와 생태여행까지 겸할 수 있다.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 바다에 갈 예정이라면 아이들과 꼭 한번은 읽어보고 가야 할 책.
부록으로 나온 갯벌의 생물 도감은 이 책의 멋진 보너스이기도 하다. 바다로 떠날 때, 그곳의 맛집보다는 갯벌의 생물 이름을 하나라도 더 알고 간다면 아이들에게 훨씬 더 센스있고 멋진 어른으로 남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