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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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란 무엇인가? 많은 작가들의 오만한 참회처럼, 힘겨운 求道行인가? 혁명의 수단인가? 아니면 서글픈 마스터베이션인가? 이 정의들은 모두 맞고 또한 모두 틀리다. 이는 소설쓰기를 통해서 파생된 결과임에는 분명하지만,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설쓰기, 나아가 소설이라는 예술작품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핵심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전설과 닮아 있으며, 소설쓰기는 전설 만들기의 근대적 변형이다.

근대는 무엇인가? 거칠게 말하면 '사회적인 자아의 패러다임이 개인적인 자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던 시대적인 특징'이다. 이를 통해 '전설'이라는 사회적 자아가 '소설'이라는 개인적 자아로 전환되었다는 가설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 간과했던 부분이 있다. 창조자의 태도에 관련된 부분이다. 전설의 창조자는 전설을 만든다는 것을 알 뿐, 그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변형시킬 수 있었다. 그가 만들고자 한 것은 오직 이야기일 뿐, 그것이 독창적인 이야기인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소설의 작가들은 자신이 창조하는 작품이 가진 의미를 알 뿐, 자신의 작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히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작품에, 혹은 작품을 만드는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문제인가? 소설이 이왕 이야기라면, 의미 있는 이야기가 좋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알아버렸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개인적인 자아'라는 것을 몰랐을 때에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내 이야기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설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스스로 독창적인 재담가라고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 독창적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뒤로, 전설은 더 이상 만족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독창적인 이야기, 즉 소설이 요구되었고, 그것은 독창적이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조차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 한 번 알아버렸다.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소설에 부여한 의미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런 인식에서 발생하는 것이 '탈근대적 글쓰기', 즉 작가가 유별난 개인임을 포기하고 글쓰기 과정을 그대로 폭로하는 것, 바로 메타 픽션이다. 아랑의 전설이 있고, 그 전설에 감춰진 또 다른 진실을 밝히는 소설이 있으며, 결국 그것은 소설 속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메타 픽션. 이것이 이 작품의 구조이다. 액자 속에 또 다른 액자가 들어있는 형상.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그래서 결국 무엇이 남는다는 말인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니고 다른 진실이 존재했으며, 진정한 진실이라고 믿었던 다른 진실도 진실이 아니고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사실, 이 질문을 해결하는 방법은 질문 밖에 있다. 소설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근대적인 발상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근대적 발상을 뛰어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행위부터 잘못이다. 애당초 의미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쓰여진 작품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의도도 역시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소설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전설처럼, 끊임없이 작가와 독자에 의해서 재생산되는 것이 이야기이다. 조금씩 업그레이드되어 가면서. 소설도 역시 마찬가지.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는 말처럼, 작품은 끝나지만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감동)는 새롭게 시작된다. 그런데 메타 픽션은 여행의 허망함을 폭로해버렸다. 허망함을 알았으니 누가 다시 길을 가려 하겠는가? 메타픽션이 이야기가 되려면 결국 그 허망함을 딛고 다시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결말이 다시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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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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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는 스포츠의 영웅에 시련과 장애를 극복하고 이제 막 정치계에 입문하려고 하는 '고결한 인물'이다. 마치, '고귀한 신분의 몰락이 더욱 큰 비극을 가지고 온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2 - 그러나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명제를 파괴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고결한 인물처럼 보였던 사내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고 오히려 추악하기까지 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 인물의 異面에 의해 상처를 받는 남자의 아름다운 아내가 등장한다. 남편의 신분유지를 위해서 '행복한 부부'라는 가면을 써야만 했던 정숙한 아내에게 탐정은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자신을 느낀다.

3 - 하지만 이 명제도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남자의 아내는 전혀 정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형적인 팜므 피탈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도 오래지 않아 밝혀진다.

4 - 도대체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와 같이 감추어지고 은폐된 진실을 찾아다니기에도 힘겨운 탐정에게는, 전처와 아들과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버거운 숙제로 부여된다. 너무나 많은 임무를 부여받은 탐정, 그래서 그는 이 작품 내내 종횡무진 뛰어다니고 고민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뱉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청부업자들에게 폭행을 당할 때도 그는 끊임없이 그들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권력을 조롱하고, 그 권력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에게는 '돈 많은 자들은 하나같이 회장님 같은 개새끼라는 전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라는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러한 삶에 대한 조롱, 그리고 낙천적인 의식이 미궁에 빠진 이 탐정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5 - 만일 그가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비정하기만 했다면, 이 작품 속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전처를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소유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아무리 바쁜 와중에서도 아들을 위해서 시간을 버릴 줄 아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보낸 바로 그 순간에서 떠올려지는 키 포인트!

6 - '스퀴즈 플레이' - 치고 달리기 전법을 구사하기 위해서 자살 스퀴즈 번트를 대는 것, 즉, 자살!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연쇄적인 득점을 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고결하게 보였지만 추악했던 남자의 의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남자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방치했던 남자의 아내도 역시 추악한 인물에 불과했다.

7 -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다른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처럼 멜로드라마적 치정에 얽힌 범죄를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보통은 자살을 위장한 살해인데 비해서, 여기에서는 살해를 위장한 자살이 나타났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해 가는 주인공인 탐정의 성격이 그 차별점이다. 탐정은 폭발하는 외향적 인물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와 정반대인 내향적인 특성이 공유된다. 즉,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프지만, 아내를 잡지 않는다. 아내와의 이혼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고 반성한다. 이러한 자기 반성이 그를 행동하는 탐정이 아니라 생각하는 탐정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며, 그러한 인물의 성격창조를 통해서 이 작품이 어설픈 액션이 아니라 치밀한 스릴러가 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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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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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buto : ① 아프리카 서부, Mali 중부에 있는 도시 ② 멀리 떨어진 곳, 원격지. / '개(犬)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불교의 질문에 대한 미국식 해답찾기. 이 소설은 개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개는 일반적인 개가 아니라, 犬性과 함께 人性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사람처럼 사유하는 개에게 있어, 현대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것인가? 더구나 철학적인 정신병자인 주인 덕분에 철학까지 할 수 있는 이 개에게 있어 현대를 사라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것인가?

폴 오스터는 개라는 설정을 통해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극복할 수 없는 단절감을 보여주고 있다. 편견에 의해서, 혹은 자기 세계를 지친다는 미명에 의해서, 해체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는, 개에게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해할 수 없는 관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늙은 개 본즈가 여러 가지 고난을 겪은 뒤에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바로 그때 자신의 자유를 잃어버린다는 설정, 그리고 그 풍족한 생활로 인해 병을 얻게 되고 그리하여 죽음을 맞게 된다는 설정은, 물질적인 풍요만 가득하고 정신은 공황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현대사회를 잘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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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대표소설선 6 한국현대대표소설선 6
임형택 외 / 창비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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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작가와 작품이 반, 모르고 지내던 작가와 작품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작품의 수준보다 먼저 새로운 작가들을 읽는 다는 작품이 즐겁다. 작품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점은 다음과 같다.

- 김정한,「寺下村」(★★☆),「秋山堂과 곁사람들」(★☆),「모래톱 이야기」(前),「修羅道」(★★★) / 김사량,「빛 속에서」(★★★☆) / 현덕,「남생이」(★★) / 최정희,「풍류 잡히는 마을」(★★) / 이근영,「탁류 속을 가는 박교수」(★★☆) / 허준,「殘燈」(판정보류),「續 습작실에서」(★★☆) / 이선희「窓.」(★★) / 임옥인,「後妻記」(★☆)

- 가장 관심을 끌었던 작품은 김사량의「빛 속에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동안 우리 문단에서 論外로 다루어졌던 海外移住 韓國人들에 대한 설정이 흥미를 끈다. 분명히 우리의 역사에서 씻어버릴 수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논의가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소련 및 미국과 멕시코 등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에 대해서도 문학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강제되었던 노역과 모멸감, 그리고 정체성의 상실 등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도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회복이다. 자신이 반쪽 한국인이라는 것에 모멸을 느끼는 소년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南선생을 통해서 민족적 정체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 다음은 김정한의「修羅道」. 우리 문학사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혹은 작품보다는 정치운동의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평가를 보류하고 있는 해방 직후의 상황에 대한 고찰이 관심을 끈다. 지금과 같은 권력구조가 형성되던 시기가 해방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듯 하다. 보다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정희의「풍류 잡히는 마을」, 이근영의「탁류 속을 가는 박교수」, 이선희의「窓.」등도 관심을 끌었으나, 작품 형상화가 가장 탁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역시 김정한의 작품이다. 최정희와 이근영의 작품은 안이한 타협 혹은 손쉬운 방향전환이 걸렸고, 이선희의 작품은 해방 직후 북한에서 이루어졌던 토지개혁이 소재로 활용되어 주목되었으나 역시 안이한 결말이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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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前夜),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 1998 제2회 21세기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열 외 지음 / 이수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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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대상 수상자는 이문열. 이와 같은 부분이 이 상의 권위를 실추시켰다고 생각된다. 문단 정치의 냄새가 난다. 과연 이문열의 이번 작품이 상을 받을 수준인지에 대한 의문을 떠나서, 그에게서 풍기는 강한 지역주의(영남권의 패권의식)이 눈에 거슬린다. 수록 작품과 각각에 대한 평점은 다음과 같다.

- 이문열,「前夜,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 김영하,「비상구」(★★★☆) / 전경린,「밤의 나선형 계단」(前) / 한강,「어느 날 그는」(★★) / 공선옥,「이 한 장의 흑백사진」(★☆) / 정찬,「가면의 영혼」(★★★☆) / 박완서,「꽃잎 속의 가시」(★★☆) / 이동하,「남루한 꿈」(★★).

- 가장 관심을 끈 작품은 정찬의「가면의 영혼」. 연극배우의 정체성의 확인이 주요 모티프. 그가 사용하는 두 개의 연극 세익스피어의 <오셀로>와 그리스 비극 <오이디프스>가 작품의 격을 높히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이아고와 오이디프스로의 변화가 주목된다. 이는 두 개의 인물형을 통해서 하나의 인물 속에 내포되어 있는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악의 교묘한 계교가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곧 현대사회에 대한 상징이 될 것이며, 작가가 말미에 밝히고 있는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가, 이미 무대가 사회가 되고 사회가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을'이라는 명제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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