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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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생물다양성'과 '사회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는 1956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이제는 대학 강단에서도 은퇴한 칠순을 넘긴 노학자이다.

또한 그는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저술한 과학저술가로서 이 책『인간 본성에 대하여 On Human Nature』와『개미 The Ants』로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 밖에도 미국 국가과학메달, 국제생물학상, 크러포드상 등을 수상했으며, 비단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최근에 와서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한 데 이어 생명복제기술의 영역까지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복제인간의 탄생'이라는 미증유의 새로운 신화(?)가 눈앞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 탄생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또 풀어나가야될 것인지에 대해서 뜨거운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윌슨은 이미 이러한 과학적 진보가 초래하게될 필연적 논쟁들을 오래전부터 예견했던 것일까? 그는 바로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해결과제로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인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려는 노력을 꽤나 많이 진척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새롭게 추구한 시도는 오늘날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영역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것으로서, 이 책이 출간된 1978년 당시에도 물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윌슨의 주장은 수많은 논쟁속에 휩싸여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의 최적의 대안을 '생물학적 본성으로의 통합'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와 윤리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은 결국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생물학과 진화학적 방법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본성'에 관한 주제에 당면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학을 사회과학 및 인문학과 통합함과 동시에, 인간 본성을 자연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은 본질적으로 사회과학이론이 자신과 가장 관련이 깊은 집단생물학 및 진화론이라는 자연과학과 접목되었을때 나타날 심오한 결과들을 다룬 사색적인 에세이'라고 저자 스스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과학적 유물론을 지나치게 확신한다는 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생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현저한 거리를 줄일 시기가 도래했으며 '인간 본성'에 접근할려는 주된 추진력으로서의 '생물학적 탐구'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윌슨의 논리를 짧게 축약한 표현은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주체라는 것을 의심해볼 까닭은 없지만, 생명체란 태어나서 일정 기간을 보낸 다음 어김없이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점에서 보면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면면이 명맥을 유지해 온 DNA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DNA를 가리켜 '불멸의 코일'이라고 부르고 생명체는 그저 '생존기계'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른바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논리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될 점 한가지가 있다. 즉 윌슨과 마찬가지로 사회생물학자들은 결코 생명체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체는 누구나 유전과 환경의 공동 작업에 의해 형성되는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모든 성품이나 사고까지 똑같은 복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제양 둘리가 태어난 이후의 상황에서 '복제 인간'의 출현이 그렇게도 온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유전자를 복제한 것이지 생명체를 복제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복제 인간은 출산 시간이 많이 늦어진 쌍둥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가령 내가 만일 지금 나를 복제한다면 '그'는 유전자는 나와 완벽하게 같을지라도 그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환경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윌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결코 간단치 않는 답들을 내어놓는다. 그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딜레마를 제시하면서 이들 딜레마로부터의 해결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첫번째 딜레마는 인간은 포함한 그 어떤 종도 자신의 유전적 역사가 부과한 의무를 초월하는 다른 어떠한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딜레마는 우리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내재한 윤리적 전제들을 놓고〈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의 주된 도구는 물론 '유전적 진화'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수많은 생물학적 다양성들이 사례로서 제시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원리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원숭이가 이럭저럭 문화적 진화의 임계점을 건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영역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저자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가 대부분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인 500만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뒤 약 만 년 전, 농경과 도시가 출현한 뒤에는 훨씬 더 대규모의 문화적 진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질주하는 동안에도 일부 유전적 진화가 계속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 형질 중 미미한 부분만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은 경험을 통해 선과 점으로 뒤엉킨 그림들이 그려지는 백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여러 대안 중에 어떤 특정한 대안에 먼저 다가가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해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한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계하는 탐색자, 즉 자치적 의사 결정 기구로 기술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해온 선택의 축적, 그것들의 기억, 앞으로 해야 할 선택에 대한 심사숙고, 각인된 감정들의 재경험, 이 모든 것이 정신을 구성한다고 한다. 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따라붙는 규칙들은 모든 개인이 내린 결정들을 폭넓게 중첩시키고, 그리하여 인간 본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에 충분하고 강력한 수렴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위대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결정론 대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역설을 붙잡고 씨름해 왔다. 신경생물학의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자기애나 불멸의 꿈이 아니라 의지이다. 일차 작동자, 즉 번쩍이는 북들을 지휘하는 직녀는 과연 누구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타협안은 인지심리학자들이 스키마 또는 지식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사회적 행동은 인간 본성의 단순한 특징들이 이상 발달한 과잉 성장물들이 한데 모여 불규칙한 모자이크를 형성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상 발달 중 가장 극단적이고 중요한 부분은 지식의 집적과 공유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는 자아에 대한 지식은 현대 사회 생활 속에서 온갖 낯선 형태로 증식되어 온 생물학적 인간 본성의 요소들을 밝혀낼 것이며 , 또한 미래의 행동이 나아갈 위험한 경로와 안전한 경로를 더 정확하게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 9장으로 된 이 책의 내용 가운데 4개의 장은 인간 행동의 네 가지 기본 범주인 공격성, 성(性), 이타주의, 종교를 사회생물학 이론의 토대 위에서 다시 검토해 보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렇다'이다. 성의 복잡성과 다의성은 성이 본래 번식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모두 결속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성애 또한 생물학적 의미에서 정상일 뿐 아니라, 초기 인류 사회 조직의 중요한 요소로서 진화해 온 독특한 자선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결합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주의도 근거를 따져보면 포유동물적인 양가감정(兩價感情,ambivalence)에 물들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숭고한 도덕 가치들의 문화적 진화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체 추진력을 획득하여 유전적 진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철학적 의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유전자는 문화를 가죽끈으로 묶어놓고 있다. 끈은 상당히 길지만, 가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gene pool)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될 것이다.'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인 종교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그의 표현을 빌자면 '철저한 오만함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원시원한 논리적 폭격은 강철 탄환처럼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는 종교 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학이 고대 신화들을 하나씩 붕괴시켜 왔기 때문에, 이제 신학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 발판을 딛고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며,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뇌 속의 물질 구조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원리를 통해, 신화의 근원 자체를 설명해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9장의 제목은 '희망'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왜 과학정신을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번 말한다. 교조화한 세속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뇌의 진화 산물로서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종교가 지닌 도덕성의 외부 근원으로서의 힘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마침내 인간 본성의 두번째 딜레마의 해답은 현실적인 필연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과학자들과 인문학자, 신학자들까지도 결국은 과학적 자연주의가 정신 과정 그 자체를 재정의함으로써 그들의 체계적인 탐구의 토대를 바꿔놓을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수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그리고 마침내 냉철한 정신이 따뜻한 가슴과 만날 때, 인간 본성의 유전 법칙에 속박된 진화 궤도의 집합 가운데 어느 하나를 따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류는 세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정신적 딜레마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 서사시의 풍요로움 속에서 고전 신화의 영웅들을 소환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실존주의적 시지프스나 재앙의 판도라 뿐만 아니라 결국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믿음으로 되돌아가서 끝끝내 맹목적인 희망을 굳건히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맺는 말이다.

이 책의 서평글이 윌슨의 주장에 대한 두루뭉실한 요약으로 대체되고만 느낌이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담긴 많은 인용문구들과 수많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책의 문장들에 대한 나 자신의 어설픈 이해로부터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마치 힘든 운동을 통해 신체가 단련되듯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좋은 운동을 했다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다른 책의 참고문헌으로도 많이 인용될 만큼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은 점에 비춰보면 이 책을 통해 얻은 소득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도 꼭 얘기하고 싶다. 2000년 '커밍 아웃'을 선언한 홍석천씨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선정한 '올해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뽑혀 다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부족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고보면 인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들의 생물학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무게와 깊이 만큼이나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 속의 유전자가 걸어온 엄청나게 머나먼 길을 내내 따라온 여행은 흥미로움과 유익함과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그에 대한 벌로서 독수리에게 쪼아먹히게 될 그의 간이 낮이면 다시 자라나듯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심 또한 우리가 인간의 굴레에 결박되어 있는 한은 계속해서 자라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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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 14억 중국인의 경영 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 중국인의 지혜 시리즈 1
스유엔 지음, 김태성.정윤철 옮김 / 더난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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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활동했던 호설암(胡雪巖/후쉐엔, 1823∼1885)이라는 인물의 '상술'과 '상도'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호설암은 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출신이었으나 그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특수성과 권력의 흐름을 이용하여 당대의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거대한 재산을 쌓아올렸던 인물이다.

이 책은 호설암이 직접 기록하지 않고 전업 작가가 쓴 책이다. 그런데다가 책의 형식 또한 영웅들의 일대기를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인 연대기적 서술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의 구성은 '호설암 어록'과 '본문' 그리고 '상경에서 배우는 경영정신'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렇다보니 호설암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에 대한 '온전한 모습'을 계속해서 이리 저리 꿰맞춰보아야 하는 어려움도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흔히 에피소드의 나열 식으로 구성된 이런 류의 책은 각 장 마다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결여되기 쉬워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조차도 파악하는데 애를 먹기도 하며, 때로는 각 장 마다의 단절이 주는 묘한 불편함과 산만함 등에 따라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도 들게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도 그리 예외는 아닌듯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단히 실용적인 책일 뿐만 아니라 교과서적인 의도를 가지고 씌어진 책이기 때문에 책의 구성에서 오는 압박감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많은 실제적인 교훈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아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이 책은 적지 않은 분량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인 스유엔이 호설암이라는 인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고전과 역사로부터 뽑아낸 수많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다양하고도 풍성하게 덧대어 놓았기 때문에, 저자가 골라 뽑은 호설암의 핵심적인 경영 철학과 다른 여러 본받을만한 사례들을 함께 비교해 가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호설암에 관한 책으로 그치지 않고 중국인의 상술에 대한 '집대성'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까지 얻게 되었다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14억 중국인의 경영 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이라고까지 내세우는 점은 다소 지나친 과대포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이 책의 내용에 관한 측면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다름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될 호설암에 대한 숭배의 감정을 다소나마 누그려뜨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 관한 부분이다. 이 점은 '작가에게 맡겨진 영웅에 관한 기록들'이 흔히 내포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구태여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다고도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호설암에 관한 어록과 성공담들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서 주인공에 대한 미화와 합리화에 너무 많이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약간은 당황스럽다. 저자의 이런 노력은 호설암이 이미 중국의 후대 상인과 기업가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될만큼 유명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대륙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별다른 의심없이 쉽게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호설암이라는 인물에 대해 금시초문인 다른 많은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할인'도 필요하겠다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상반된 요소들을 어느 정도 고려하고 나면 이 책의 알맹이들을 끄집어 내는 일이 남는다. 호설암이 가장 중요시했던 상도의 핵심 요소를 단 3가지로 요약해 볼려고 한다면 그것은 첫째가 사람, 둘째가 신뢰, 마지막으로 셋째가 관계(關係)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를 좀 더 세분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호설암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었던 비법은 '인재의 쓰임을 아는' 용인관과 '시세를 잘 활용하는' 시국관, '정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관상관, '과감한 지모와 재빠른 행동을 앞세우는' 모략관, '시장을 조정하고 만들어가는' 영업관, '폭넓게 통찰하여 지리와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처세관 등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호설암의 성공을 뒷받침한 핵심 개념들은 동서고금의 성공적인 기업가들로부터 살펴볼 수 있는 지배적인 원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호설암의 경우에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서구 자본주의의 경영 환경을 바탕으로 한 많은 성공적인 기업가들의 사례와는 다소 동떨어진 요소들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연히 호설암이 주로 활동했던 무대가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있어서도 서방세계의 그것들과는 여러모로 사뭇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즉, 1,800년대 중후반의 중국 중.남부는 서구 열강들의 중국 대륙에 대한 접촉이 매우 활발해지던 시기였는데다가, 중국 내부에서는 청나라 말기의 온갖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봉건주의적 유교문화와 양무운동 및 태평천국의 난 등과 함께 뒤엉켜 소용돌이치던 시대였었으며, 호설암의 성공 전략도 그와 같은 바탕에 최적인 전략들이 많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설암 상술의 특징들은 심리전에 매우 능통하며, 전략이 매우 치밀하다는 점과 동양적 연고주의를 최대한 활용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관계에 대한 다양한 로비와 뇌물수수 등 비합리적 관행까지도 핵심적인 요소로 포함시킬 만큼 독특하기도 하다.

호설암의 상술 및 상도에 관해 읽다보면 조선시대 후기의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상도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는 느낌도 들며, 좀 더 가까이는 한국의 산업화 초창기 시대의 주역들이었던 여러 재벌 창업주들도 떠오르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히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설암을 특징짓는 면모들 가운데 고 정회장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열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시대의 흐름과 외부조건을 최대한 활용 ② 과감한 처신 ③ 정치적 감각 및 관계와의 로비 ④ 성실과 신의 ⑤ 돈을 버는 진짜 마술 ⑥ 원대한 시야와 날카롭고 정확한 안목 ⑦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 자세 등

이 책에 나오는 호설암의 많은 어록들 가운데에는 중국인의 독특한 상술을 느끼게 해주는 오래된 중국의 속담들과 함께 중국 상인들의 지혜의 깊이를 풍성하게 맛볼 수 있어서 마음속에 새겨둘 만한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의 각 장 마다 한자 두 글자로 표현되는 18가지의 비방들도 재미있는데 이들 가운데 몇 가지만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ㅇ기회를 만들 줄 아는 지혜 : 지신(砥身)
   '지(砥)'란 연마를 뜻하고 '신(身)'이란 마음의 형상을 말한다.
   스스로 마음을 갈고 닦으면 반드시 강해진다.
   자고로 좋은 일에 힘이 많이 드는 법이니,
   역경에 처했을 때는 인내하는 것이 바로 지신(砥身)이다.

ㅇ큰 상인과 작은 상인의 구별 : 용모(勇謀)
   '용勇'이란 결단을 말한다. 시기를 잘 잡아 일을 결정해야지 우유부단해서는 안된다.
   '모謀'는 남이 알지 못하는 전략을 말한다.
   '모'는 '용'의 근거가 되고 '용'은 '모'의 추진력이 된다.

ㅇ사업을 일으키는 근본 : 수활(手活)
   '수手'란 인간이 갖고 있는 도구로서 수법 또는 수단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활活'이란 활발하고 민첩한 것을 말한다.
   손이 활발하고 민첩하면 사업이 번성하고 일이 순조롭지만,
   손이 둔하고 느리면 사업이 부진하고 하는 일이 위태로워진다.

끝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살펴보니《중국인의 상술》(강효백 지음)이라는 책에서 호설암에 대해 '관상결탁으로 일어나 관상결탁으로 쓰러졌으며, 한 20년 간 반짝했다가 말년에 폭삭 망한 별로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되는 상인'으로 혹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근세의 비즈니스 환경과 역사뿐만 아니라 대륙 고유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한 중국인들의 상관습과 상술 및 상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지혜들을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실상에 대해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보려는 시도로서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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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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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역사가는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겸비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뿐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것 같은가'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으므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났던 일은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 행동에 역사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문헌은 없다.
 - 모티머 J. 애들러

이 책을 지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가가 아니다.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면서도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해 왔다. 그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룔에 대한 연구에 못지않게 과학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 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면서, 인류사를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가 1972년 7월에 열대의 섬 뉴기니의 해변을 거닐고 있었을 때 우연히 만난 얄리라는 정치가로부터 받은 질문은 이렇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문명)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그 질문을 받은 이후 저자는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 등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하여 바로 이 책을 통해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실로 '인류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기원'을 찾아나서는 방대하고도 거대한 스케일의 탐구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25년 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를 담은 이 책은 1만 3,000년에 걸친 모든 대륙의 인류의 고고학적 발자취와 문자와 언어등에 남아있는 그 흔적들을 쫓아서 우리들을 기나긴 시간과 넓디 넓은 공간들로 흥미진진하고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이 책은 인류 문명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일 뿐만 아니라 모티머 J. 애들러의 말대로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적 재능이 겸비된 훌륭한 역사가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역사가 얼마나 과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누가 봐도 뚜렷이 알 수 있는 '문명의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명의 불평등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기존의 인습적인 지식들은 상당부분 인종적 민족적인 차이에서 그 해답을 찾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현상적인 이유일 뿐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각 대륙의 인류가 지닌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경험했던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한 그러한 '지리적 환경적 차이'가 수만년 혹은 수천년간 지속되면서 각 대륙마다 식물과 동물의 작물화 가축화를 통한 식량 생산 체제가 여러모로 달라졌고, 이 중대한 차이가 결국 총, 균, 쇠로 대표되는 문명의 차이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각 대륙마다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크게 달라진 기술 문명의 차이가 인류 역사를 극단적으로 바꿔버린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그 가운데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항해인 콜럼버스의 1492년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1519년에 코르테스가 아스텍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멕시코 해안에 상륙한 기록에 뒤이어 1532년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황제 아우타알파를 생포한 사건에서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된다.

지난 1만 3,000년 동안 일어났던 인구 교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구세계와 신세계 사회의 충돌에서 빚어진 최근 500년 동안의 인구교체였으며, 막상 그 교체에 걸린 시간이라는 것도 기나긴 인류 역사에 비춰보면 몇 장의 스냅 사진을 찍는 정도에 불과할 만큼 짧았던 것은 참으로 놀랍다. 일이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전개된 원인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도 시사하는 바와 같이 총, 균, 쇠로 상징되는 기술과 문명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임은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기술문명의 발달이 더욱 가속화된 오늘날에 와서는 소위 '와해 기술'이 등장할 경우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기존 기술을 채택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순식간에 도태되고 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코 그 변화의 속도를 더하면 더했지 늦추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도 있어서 우리에게는 훌륭한 역사적 교훈의 하나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의 차이가 인구 교체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는 했어도 병원균이 맡은 지대한 역할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식량 생산과 정주형 생활로의 변모에 따라 인구의 조밀화가 이뤄짐과 아울러 동물의 가축화가 초래한 병원균의 진화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내성을 갖춘 대륙의 인류에게는 그들의 숙주들을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웠지만 그러한 내성을 갖추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있던 신대륙 원주민들에게는 막강한 위력을 되찾을 게 뻔했다. 현대전에서 마치 탱크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위력을 뽐낸 스페인 기병대의 말(馬)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불가항력이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의 침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어서 신대륙의 인구 교체에 있어서 훨씬 더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역할을 떠맡았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한 두 세기에 걸쳐 인디언의 인구는 최대 95%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래 북아메리카에는 약 2,000만명 가량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코르테스와 함께 상륙한 구대륙의 유행병은 아스텍 제국 정복시 2,000만명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를 약 160만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으며, 수백만의 백성을 거느리고 있던 잉카제국의 황제인 아타우알파를 보란듯이 생포해버릴 때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거느린 오합지졸의 숫자는 불과 168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가 나타난 이후 오랜 세월 동안의 수렵 채집민에서 벗어나서 야생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저자는 많은 역사학적 고고학적 증거들과 아울러 생물학적 유전적 증거들을 동원한다. 이 대목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작물화 가축화하는 데 따른 어려움과 그 지난한 희생과 도전끝에 이룩한 성공 사례에 대해 높이 추켜세우기라도 하듯이 여러가지 흥미로운 얘기들을 매우 세세하게 밝혀놓기도 한다. 또한 쟁기를 사용하게 되고 농경사회의 시작과 더불어 정주형 생활이 시작되면서 산아간격이 단축되고 인구의 조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식량의 저장이 이뤄지고 왕과 관료를 비롯한 전업식 전문가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각종 '발견'과 '발명'에 대해서도 그 발생 시기의 차이와 확산 속도의 차이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인류 문명을 크게 바꿔놓은 바퀴의 발명과 문자의 발명 과정에서부터 기술 문명과 문화의 확산이 어떻게 '자가 촉매 작용'과  '퇴행 현상'을 보여주는가에 대한 유명한 역사적 사례들도 흥미롭다.

이 책은 전 인류의 역사를 한 자리에 뭉뚱그려 놓은 셈인데, 저자의 주된 주장이 '환경결정론적' 시각이라거나 '지리적 결정론'이라고만 한정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들이 너무 명쾌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중요성이나 문화적 차이를 결코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다만 어떤 환경은 다른 환경에 비해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발명품을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한결 유리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애써 부연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꾼으로서 다양한 가정과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져가면서 역사의 예측가능성들을 시험해보는 점들도 재미있다. 저자가 역사적 교훈으로서 들려주는 몇 가지 사례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히 다음의 두가지 사례가 흥미롭다. 하나는 비옥한 초승달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불운한 과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은 어쩌다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유럽에 추월당했을까?'에 대한 사례이다. 후자의 경우에 대한 대답의 단서는 엉뚱하게도 중국 조정의 두 파벌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찾고 있다. 많은 나라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뒷걸음질쳤던 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는 전 인류의 기나긴 역사의 시간들을 저자가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뛰어넘는 것 말고도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어느 곳이든 다루지 않는 장소가 없을 뿐더러 특히 흥미롭고도 신비롭게 여겨지는 지구상의 여러 오지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풍성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곳들은 아프리카 대륙과 같은 큰 땅덩어리 말고도 그 옆에 놓인 놀라운 문명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다마가스카르섬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바, 뉴기니를 거쳐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로 남아있던 이스터섬에까지 이른다. 이스터섬은 겨우 인구 7,000명에 더구나 인력 이외에는 다른 동력원이 전혀 없었던 섬이지만 3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이 널려 있다.

이 책은 1997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과학 저술의 명저로 손꼽히게 되었지만, 특히 한글로 이 책을 읽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주는 점 한가지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인류의 문자를 비교 검토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설파한 논문을 1994년 미국의 과학 전문지《Discover》에 싣기도 했고, 이 책에서도 한글에 대해 '세계의 어떠한 문자 체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놀랍고도 새로운 원칙으로 만든 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 체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침 한글날이 엊그제여서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인가를 새삼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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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금'에 눈이 멀어 쓴 리뷰를 올리고 난 소감......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14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참으로 고상한 한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상금'을 받기 위해 쓰는 글은 추워서 쓰는 글도 아니고, 또 '향기'가 날 리도 없다. 그러니 상금을 받기 위해 내가 허접한 리뷰를 여럿 쓴다고 해서 굳이 '
 
 
oren 2004-10-2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변치 못한 제 서평글에 대해 '이주의 마이리뷰'로 선정해 주시고 적립금까지 듬뿍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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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마을 > 명예의전당 > 당선작 > 이주의 마이리뷰
2004년 10월 2주 마이리뷰 당선작 4편입니다. 주간 마이리뷰 당선작에 선정되시면 적립금 5만원을 축하금으로 지급합니다
 
벤저민 그레이엄 - 월가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회고록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김상우 옮김 / 굿모닝북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
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
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

 - 워렌 버펫,《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

"가치투자의 아버지(Father of Value Investing)"라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현대적인 증권분석의 창시자로 널리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14년 컬럼비아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철학, 수학, 영문학의 교수직을 차례로 제안받았으나 거절했으며, 케펠 학장의 권유를 받고 월 스트리트에 진출하여 1956년에 은퇴할 때까지 42년간을 월 스트리트에서 보냈다. 그는 또 1926년 부터 1956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증권분석을 강의하며 워렌 버펫을 비롯한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월 스트리트의 고전으로 손꼽히는《증권분석(Security Analysis)》과 대중적인 투자지침서인《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 재무분석의 기초를 다진《재무제표의 해석(Interpretation of Financial Statement)》등이 있다.

이 책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1976년에 사망한 이후 20년 만인 1996년에 출간된 책으로서, 그의 나이가 60대와 70대였던 1957년과 1965년 사이에 주로 회고록의 형식으로 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가치투자'에 대한 위대한 선각자의 가르침이나 투자의 지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오히려 저자 자신의 '참된 인격'에 대한 귀중한 인식에 도달하게 해주는 내용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이 점에 관해 그 자신의 짧은 묘비명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이 사람은 모두가 잊어버린 것을 기억했고
모두가 기억한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그는 오래도록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으며, 많이 웃었다.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살찌웠고, 사랑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특히 어려서부터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도 수학, 철학, 영어, 그리스어, 음악을 공부했던 터여서 그의 자작시와 희곡 작품은 물론,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시인, 극작가, 철학자들에 관한 얘기들이 책의 전반에 걸쳐 폭넓게 담겨 있어서 책을 읽는 흥미를 더해 준다. 틀림없이 그는 '문학적인' 회고록을 염두에 두었으며 이 회고록은 그의 문학적 성과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인 셈이다. 그는 위대한 저자들의 열렬한 독자였고 많은 저자들을 원어로 읽었으며, 이 책에 뚜렷이 나타나는 저자들은 주로 호머, 버질, 키케로, 유리피데스, 호러스, 루크레티우스를 비롯하여, 단테, 베이컨, 밀턴, 데카르트, 포프, 필딩, 기번, 레싱, 테니슨, 보들레르, 프로스트, 카프카, 스베보 등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들에서부터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너무나 솔직한'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자세히 들려주기 때문에, 마치 이 책을 읽는 독자들한테까지도 '나만이 아는 나의 비밀스런 얘기들'을 자꾸 떠올려보게 하는 묘한 재미들을 안겨준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은 그레이엄의 뛰어난 언어적.문학적 자질 때문에 향기롭게 느껴지며,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수많은 어린 시절의 풍경화같은 기억들을 되살려주는 시각적 즐거움까지 안겨주기도 했다. 이 책 속의 그런 이야기들로는 무수히 많은데, 특히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와 연애담 그리고 결혼생활의 위험한 시기에서의 혼외정사에 관한 부분들에 이르면 '너무 솔직해서' 읽기에 약간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점들 또한 벤저민 그레이엄으로서는 "올바로 아는 것"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추구하는 자세에 비춰봐서는 전혀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책 서문에서 세이모어 차트만 교수가 말한 대로 그레이엄의 회고록은 또한 많은 교사들이 의심스러워 하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가장 좋은, 그리고 오직 하나의 지속적인 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배웠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한 정신적 삶에 대한 그의 "타고난 성향"이 우세함에 따라 백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사치를 좋아하지 않게 된 '물질적 풍요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가장 뛰어난 재정전략은 그 사람의 수입 범위 내에서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로서 그레이엄의 위대함에 관해서는 이 책에서 그다지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으로, 또 겸손하게 "칭찬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겸손함은 허영심과 구별이 전혀 불가능한 자존심의 표현이었으며, 호러스의 "자신의 정직을 의식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당연히 그가 이룬 업적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으며 거짓 겸손은 떨지 않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영리한 재담가였기 때문에 자신의 자랑이 지나치게 부풀어오를 때는 "이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실제 그가 월 스트리트에서 기록한 뛰어난 실적은 1929년의 끔직한 대공황과 수많은 증시 폭락을 겪으면서 이룩한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 그의 오랜 기간 동안의 연평균 수익율은 17%였다.

그레이엄이 겪은 투자와 관련된 시련 가운데에는 무엇보다도 1929년의 대공황 시절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맨 뒤에 덧붙여진〈벤저민 그레이엄 연보〉만 살펴봐도 그 시절의 고통과 낙담과 우울함의 나락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
1929년 펀드의 자본금이 250만 달러로 늘어남. 그 해 펀드는 20%의 손실을 기록.
1930년 펀드 최악의 해로 50% 손실. 이후 5년간 펀드에서 급여를 받지 못함.
1931년 펀드 16% 손실
1932년 펀드 3% 손실.(당초의 자본금 250만 달러 중 이 때까지 70% 손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 42를 기록.(1930년 고점 279)
1935년 대공황 시기의 손실을 전액 만회.
~~~~~~

그렇지만, 이 책의 13장 '대폭락의 시련을 넘어'에서 그레이엄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과 자작시들은 남다른 느낌들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요즈음의 현실 또한 '기록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IMF 때보다도 더 살기 힘든 상황' 또는 '투자의 실패 때문에 겪게 되는 참담한 심정에 휩싸인 투자자들의 모습'도 그 당시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그리 낯설게 않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그레이엄의 투자철학이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꽃피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재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1929년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당시 파산한 투기꾼들이 뗴를 지어 중개회사의 창문 밖으로 투신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사들은 대중의 공포감에 대한 호소나 "사형대 유머"가 그런 것처럼 당연히 크게 과장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파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렵던 시기에 절망적인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다. ...... 그러나 부와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다. 뉴욕의 가난뱅이가 캘커타에서는 부자일 수 있다, 그리고 사실상 재산의 5분의 4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와는 관계없이 엄청난 재앙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의 괴로움은 재산이 줄어들었다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한 장기전과 함께 시장이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추락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실망, 대공황과 손실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더구나 내가 많은 친척과 친구들의 재산을 책임지고 있으며,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거의 끝까지 짓눌렀던 패배와 좌절감을 잘 이해하듯 그들 또한 나만큼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

그는 세 번 결혼했으며 혼외정사도 가졌지만, 그레이엄을 플레이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이다. 그는 여자를 숭배했고 연애를 즐겼다. 그가 했던 연애는 대부분 고상하고 지적이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가 여성과 정서적으로 관계하는 법을 알게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현명한 투자자》의 제 10장에 나오는 재미난 부분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주식을 고르는 방식을 그들이 아내를 고르는 방식과 비교한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주식을 어떻게 고르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A는 베들레헴 스틸 주식을 35달러에 사기로 결정하는 반면, B는 울워스 주식을 46달러에, C는 얼라이드 케미컬을 190달러에 선택하는 것은 정확히 어떤 심리과정에 의해서일까? 주식 거래는 아내를 선택하는 일과 비슷해 보인다. 많은 구체적인 사항들이 어느정도 세심하게 검토되어지고, 그런 다음 거기에 비합리적 편애(unreasoning favoritism)라는 강력하고도 지배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우리가 그레이엄의 성격에 관해 최종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그가 책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했던 일생 동안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론적인 얘기는 그레이엄이 청소년 시절 부터 가슴깊이 각인된 인상적인 표현이 있다.

청소년 시절 나는 율리시스의 방황과 시련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의 극적인 재회로 끝나고, 마침내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뒤 테니슨의 유명한 시는 고국과 아내의 침대가 그의 귀향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정한 율리시스에게로 나를 인내했다. 그 시의 결론 부분은 내 자신의 가치와 야망,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어떤 인생에 대한 맹렬한 도전처럼 내 머리를 흔들어 놓았다. "노력하고, 구하며, 찾고,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말을 나는 얼마나 스스로에게 되풀이해 말했던가.

벤저민 그레이엄은 그의 회고록 뒷부분에 2편의 에필로그를 덧붙였는데, 그 중 하나는 1974년에 쓴《80세 생일 연설》이다. 이 책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에필로그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 마지막 말을 할 차례입니다. 그레이엄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내가 늘 암송해왔던 테니슨의《율리시스》의 마지막 시행들보다 더 나은 말을 내가 고를 수 있을까요:

가자 친구여, 새 세계를 찾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배를 띄우고, 줄 맞춰 앉아, 힘차게 노를 젓자
뱃머리가 물살을 가른다; 나의 목적을 위해
황혼과 서쪽 하늘의 별들의 바다를 너머, 내가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라.
파도가 우리를 삼킬 수도 있으리라:
행복의 섬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아킬레스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이 남았지만; 우리에게 비록
땅과 하늘을 움직이던 예전의 강인함은 이제 없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지만;
시간과 운명에 의해 약해졌으나, 강인한 의지의,
영웅적인 용사의 침착함으로,
노력하고, 구하며, 찾고, 포기하지 않으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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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을 바꾼 불후의 명저
    from Value Investing 2011-03-07 23:19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워렌 버핏,《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 * *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인 1894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95년 부모님을 따라뉴욕으로 이주한 벤저민
  2. 60년 전에 쓰여진 투자에 관한 가장 훌륭한 고전
    from Value Investing 2011-03-16 17:27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워렌 버핏,《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 * *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인 1894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95년 부모님을 따라뉴욕으로 이주한 벤저민
  3. 진정한 '투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30 
    1990년대 중반쯤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져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의 극심한 등락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금 '투자'에 관한 '기본'을 가다듬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 시기에 다시 집어든 책이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 책이었다.1999년의 극심한 버블과 2000년의 참혹한 버블 붕괴를 겪고 난 이후, 다시금 시장이 (이라크 전쟁과 유가 급등과 북한의 서해안 침
  4. 자괴감이 드는 밤......
    from Value Investing 2012-03-16 03:38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많은 진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내 앞에 일렁이고 있다.
- 아이작 뉴턴

다윈의 진화론과 더불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였던 뉴턴 경도,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진리의 대양은 너무나 넓고 깊어서, 자신은 그저 해변의 조개껍질을 줍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의 말년에 위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다윈의《종의 기원》이 생명과 인류의 기원에 관한 비밀을 진리의 대양속에서 찾아낸 사실은, 마치 우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전회'에 비유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어서, 생물의 진화에 관한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위니즘의 탄생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의 수많은 논란들이 당연히 존재해 왔겠지만, 다윈주의의 신봉자의 한 사람인 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만큼 또다시 유전과 진화에 관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책도 흔치 않은 듯 하다.

저자 스스로가 '만약 다윈이 이 책을 읽는다면 거기에서 그 자신의 본래 이론을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이 책은 분명히 다위니즘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주장을 담는 책이며, 197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을 때만 해도 혁명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까지 비난받아 왔지만, 어느새 도킨스의 주장은 '무엇때문에 야단법석을 떨었는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천천히 정설로 자리잡아 왔다고 인정받는 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유전자'의 눈으로 본 '다윈주의의 관점'을 담고 있는 책이다. 즉, 진화는 유전자의 역사이며, 40억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난 이래, 이 불멸의 코일인 자기 복제자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기술의 명수가 되었으며, 그것들은 생존 기계에 해당하는 생물의 개체 속에서 안전하게 들어있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이며, 이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과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심지어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이 책은 마치 공상 과학 소설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사실 소설보다 더 기이한 정도로 진실에 대해 느끼고 있는 생각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또한, 재미있고 멋지고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려고 한 책이다. 이 책은 DNA에 관해서 주로 다루고 있지만, 무슨 복잡한 DNA의 이중나선구조니 감수분열이니 하는 생물학이나 유전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자세히 알 필요까지도 없으며,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등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점은 저자가 미리 세 부류의 가상 독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무엇보다도 첫번째로 생물학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을 위한 배려를 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저자는 과학을 대중화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책의 주제가 가치있는 만큼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생물학 자체가 하나의 추리 소설이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생물학은 마땅히 추리 소설처럼 흥미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물행동학자의 전문적 지식과 아울러 다양한 인접분야와 고전문학, 시 등의 일반 교양 그리고 수많은 사회 현상에 이르기까지의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흥미진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 또 한가지 덧붙일 점은 궁극적으로는 '유전자'에 관한 얘기는 결국 인류라는 종의 한 개체인 당신과 '나' 자신에 관한 얘기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전을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이다!", 혹은 "유전자가 그 자신의 복제품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개체(운반자)를 고안했다"는 주장은 자유로운 상상의 소유자라면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는 '혁명적 발상'일 수도 있다고 여겨지지만, 저자는 이런 상상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명백한 '과학적 사실'임을 수많은 과학적 근거와 논증들을 통해 자세히 밝혀내고 있다. 물론, 다위니즘의 탄생 이래 존재해 왔던 수많은 '통설'이나 '보편적인 견해'들에 대해서도 '유전자의 눈으로 본 다윈주의'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에서는 저자의 무릎 앞에 굴복시키지 못할 주장은 별로 없게 된다. 저자가 잘못된 주장의 대표격으로 본 것은 '그룹 선택설'이며, 그것은 '개체 선택설'에서 더 나아가 '유전자 선택설'로 마땅히 바뀌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로서 제시되는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부분들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 유전자의 맹목적성, 이기적 목적을 둔 이타적 행동, 노화이론, 인간의 수명, 유전자의 손익계산, 부모와 자식의 친자관계, 가족계획, 번식 허가증, 암수의 다툼, 성의 전략, 이기적인 배우자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소주제들에 등장하는 동식물들 또한 무수히 많은데, 특히 재미있는 부류들은 교미시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 의태를 하는 나비, 사회성 곤충인 개미와 벌, 바다표범과 하렘, 탁란성 조류인 뻐꾸기 등이며, 행동 특성으로 분류한 매파와 비둘기파, 보복파와 허풍파, 선심파와 사기꾼파 그리고 원한파에 관한 이야기를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바탕으로 하여 풀어나가는 부분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12장에 나오는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 한다(Nice Guys Finish First)'에서 도출하는 결론은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반복함으로써 도출해 낸 결론은 '배신', '협력', '관용' 등의 행동 가운데 최적의 전략은 '마음씨 좋은' 전략이며, 이는 소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에서의 결과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얘기는 '영합 게임(zero sum game)'과 '비영합 게임(nonzero sum game)'으로서도 보충 설명되는데,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는 축구 게임의 사례는 최근에 우리가 봤던 아테네 올림픽 축구 경기 후반전에서의 '한국과 말리와의 비기기 전략'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12장에서의 결론은 결국 '이기적 유전자의 기본 법칙에서 이탈하지 않고 서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세계에서조차도 협력과 상호 부조가 어떻게 번창하는지'에 관한 얘기이다. 유전자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 때때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설정하기도 하고, '영합 게임'에 맞딱뜨리게도 하겠지만 '이기적 유전자에 지배되면서까지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이 될 수 있다'는 자비심 깊은 사상이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임은 시사하는 바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밖에도 저자는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이라는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도 이 책의 말미에 덧붙인다. 즉 '유전자의 활동 반경이 생물체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개체의 밖으로까지 넓힌다'고 주장하면서 '확장된 표현형의 세계에서는 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유전자에게 이익을 주는가를 묻지 말고 그 행동이 이익을 주는 것은 누구의 유전자인가를 묻기 바란다'고 독자들을 일깨운다.

또한 생물체는 소위 '병목형'의 생활사에 참가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코끼리 한 마리의 몸에 얼마나 많은 세포가 있는가에 상관없이 코끼리는 그 생애를 단일 세포인 수정란에서 시작했으며, 이 수정란이 좁은 병목이며, 그리고 코끼리로 성장하여 얼마나 많은 세포가 얼마나 많은 특수화된 세포로 이루어져 성체 코끼리가 달릴 수 있게 상세히 협조하든지 간에 이들 모든 세포의 노력은 오직 단일 세포(정자 또는 알)의 생산이라는 최종 목표에 수렴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인 우리 자신의 몸 속의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로의 같은 출구-알이나 정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개체다움(oranismy)'의 느낌이 생겨나는 것이며 '개체'라는 이름에 걸맞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참으로 혁명적인 발상들이 끝이 없지만, 이 책에 푹 빠져 읽은 독자라면 애써서 저자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반박하기 보다는 '당연히' 그러리라고 수긍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자연 선택을 믿는 다위니즘의 신봉자 답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실제적으로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상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 이 지구에서는 그렇게도 낯익은 그 개체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생기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복제자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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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날조된 신'에 관한 통렬한 공격을 담은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23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이 나오기 얼마 전에 잠시나마 '망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도킨스라면 결국 언젠가는 '신의 부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결국 그는 이 책을 쓰게 되면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가 나서든지 결국 '신은 허구다'라는 주장을 '과학'의 힘을 빌어 당차게 도전하기 마련이었을 것이고, 사실 그런 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과학이 인간을 미신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