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전기 (양장)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고대 로마 군단의 후예들이 중국 대륙 서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2000년 만에 밝혀졌다. 홍콩 문회보는 중국 간쑤(甘肅)성 융창(永昌)현의 한 마을에 사는 400여 명의 유럽인을 닮은 농민들이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오늘날의 이란·이라크)과의 전투 이후 행방이 끊어진 로마 집정관 크라수스의 아들을 비롯한 로마인의 후예임이 유전자 감식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이하 생략)


 - 2005. 3.25일자 조선일보 기사 中에서

******

크라수스(기원전 115~53년)는 제1차 삼두(三頭)정치 당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로마의 정치인이다. 그는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 원정에 나섰다가 ‘카래의 전투’에서 본인은 전사하고 병사들은 대부분 몰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제1군단장으로 참전했던 크라수스의 아들 푸블리우스 크라수스는 당시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포위망을 탈출했으나 로마로 귀환하지 않고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크라수스와 그의 아들들은 카이사르가 쓴《갈리아 전기》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쟁의 기록은 B.C. 58년 부터 B.C. 51년까지 8년 동안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크라수스는 이 책의 제1권(B.C. 58년)과 제4권(B.C. 54년)에 등장하며, 그의 두 아들 가운데 M.크라수스는 제5권(B.C. 54년)과 제6권(B.C. 53년)에 등장한다. 정작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던 푸블리우스 크라수스(크라수스의 작은 아들)는 갈리아 전기에서 이들 3父子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제1권, 제2권 및 제3권에 걸쳐서 여러번 등장하며, 카이사르 휘하에서 제7군단장으로서 맹활약을 펼친 몹시 젊고 뛰어난 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카이사르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장군, 역사가, 웅변가, 법률가, 정치가, 시인, 건축가, 수학자 등 실로 여러 방면에서 두루 탁월한 천재성과 예지를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얘기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카이사르의 저작이 매우 방대하고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갈리아 전기》와《내란기》단 둘 뿐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몽테뉴로 하여금 카이사르에 대해 "가장 명석한, 가장 웅변적인, 가장 진지한 역사가"로 찬양케 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또 순수한 라틴어로 씌여진 데다가 문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가치를 지닌 덕분에 유럽 각국의 학생들의 교재로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그들의 용맹과 지략들을 떠올려보면 일견 동양의 스테디셀러인 '삼국지'와 닮은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매우 꾸밈없고 평이한 문체'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서 가운데 그 문체가 힘차고 표현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모범을 보여주는 한 전형이 되고 있지만, 전쟁을 다룬 책 치고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책이어서 활용도 면에서 보더라도 '교과서'라는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모름지기 모방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고 보았다. 고대로부터의 전쟁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알렉산더 대왕은 아킬레스를 닮고자 했으며, 카이사르는 알렉산더 대왕을, 또한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닮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주무대가 프랑스이기도 하지만 2천년 전에 벌어졌던 로마군 전쟁의 흔적들이 1,800년대에 더욱 활발하게 발굴되었던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 생전에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이 책을 늘 가까이 두고 읽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한 해 동안의 여러 전쟁과 그 전개과정 및 마무리까지가 무척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역사적 무대가 기원전이라는 점 및 당시까지 미개척의 상태였던 갈리아 지방에 대한 원정의 기록이라는 점 때문에 두 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무수히 많은 고대의 지명과 인명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매우 많은 부족명의 등장이다. 이 책 주석의 상당부분이 옛 지명에 대응하는 오늘날의 지명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으며, 책 뒷부분에도 부족 색인과 지명 색인이 여러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또한 본질적으로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들에게 자신을 비롯한 로마 군대의 '전시 활약상'에 대한 '보도 자료'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책이다. 따라서 책 내용 또한 수많은 전쟁에서의 군대의 이동 경로, 군수물자의 보급 상황, 진지와 보루의 구축, 적들의 움직임과 적들과의 각종 협상, 전투 상황, 그리고 전쟁의 결과들에 대한 기록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압권은 갈리아 지방의 여러 민족이 수많은 패전과 복속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베르킹게토릭스라는 최후의 지휘관 아래 총결집하여 카이사르와 로마군에 대해 최후의 대반격을 벌이는 대목이다. 이 전쟁은 B.C. 52년에 일어난 '알레시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데, 각 진영 모두 수십만의 정예군을 총동원하였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전쟁 상황의 긴박함과 최후의 건곤일척을 다툰다는 점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치 고대의 전쟁 영화 가운데『트로이』나『알렉산더』에서의 웅장한 대전투 장면이 떠오를만큼 멋진 전쟁의 기록을 보여준다. 이 당시의 일이 카이사르의 편지로 로마에 알려지자 당시로서는 사상 최장 기록을 세운 '20일간의 감사제'가 벌어졌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는 동안에 그는 무수히 많은 전쟁에서 거의 대부분을 완승으로 이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로마인 최초로 라인강을 두 번이나 넘어가서 게르만을 비롯한 숲 속의 야만족들을 복속시켰으며, 오늘날의 영국땅인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기 위해서 도버 해협을 두 번씩이나 건너갔다. 또한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을 비롯한 온갖 오지와 험지를 마다않고 '로마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누비고 다녔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몇 해 전 유럽 여행길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도중에 한국인 여행 가이드가 알려주던 놀랄만한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도로는 2000년 전 로마군들이 닦아놓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이사르는 유럽의 역사를 포함한 로마의 역사 자체를 뒤바꾼 인물이다. 그는 문명화되지 못한 갈리아 지방을 복속시킴으로써 로마의 기준과 정복자의 논리에 맞는 '문명화'를 이뤘다. 그는 로마의 국경을 갈리아지방에까지 확대한 결과로서 사실상 로마의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 원로원이 기원전 49년에 그의 소환을 결의하자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제국의 수도로 진격한다. 마침내 내전을 승리로 이끈 그는 실질적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카이사르의 유명한 연설문은 기원전 47년의 또다른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결과보고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딕타토르에 오름으로써 사실상의 1인 지배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2년 뒤 민중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왕관을 증정한다. 그의 나이가 57세였던 기원전 44년에 그는 갈리아 원정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부하장군 브루투스가 주동이 된 음모단체에 의해 원로원에서 피살되고 만다.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그의 마지막 외침마저 당대의 명연설가답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죽음도 극적이었다.

그가 1년을 365일로 바꿔서 만든 율리우스력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가 태어난 7월을 그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어 줄라이(July)로 개명하고, 8월을 오거스트(August)로 부르는 이유도 그의 양아들이자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던 인물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는 말이 실감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도 카이사르처럼 '난중일기'라는 훌륭한 전기를 우리들에게 남겨놓았다.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수군의 지휘관에 오르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한 순간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필생즉사(必生則死)의 각오로 병사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으며, 전쟁터의 갑판 위에서 최후를 맞은 일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충무공! 여태껏 난중일기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며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도 어쩌다 가끔씩 봐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라마라도 꼬박 꼬박 챙겨보는 것이 충무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침 드라마의 전개가 왜적들과의 해상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끝>


댓글(1)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4-02-12 11:12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 *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잉태할 때는 물론이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온갖 믿기 어려운 전설들을 쏟아낸다. 전쟁터에서의 기적같은 활약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그들이 최후에 이르러 자신들의 찬란했던 생을 마감하는 절정의
 
 
Chopin 2005-04-1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서 카이사르를 알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를 두고 역사가 몸젠은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 라고 했다지요.~~
위의 책에서는 카이사르가 사실상의 로마 제정의 창안자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 카이사르는 천재라고 부를만 하다고 생각해요. 갈리아 전기에서의 카이사르의 문체는 그 독특함으로 명성이 높더군요. 하지만 저는 읽을 엄두가 안 나네요.~~
생각건데 카이사르는 우리나라의 영양왕이나 이순신에 비할 만 한 것 같네요.^^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 다윈,「비글호 항해기」中에서

******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전형적인 68세대이다. 2002년에 그가 오랜 지병으로 숨졌을때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20세기의 과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한 그는 과학의 대중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며 많은 과학 저서를 발간한 대중적인 저술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1981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저자의 대표적인 역작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전반을 통해서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갖가지 '오해'의 역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생물학적 결정론의 갖가지 오류들을 찾아내고, 이를 논증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차례대로 그 허구를 무너뜨린다.

'인간'을 잘못된 척도로 삼은 역사는 놀랄만큼 그 뿌리가 깊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의 유명한 아포리즘(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에 대한 패러디에서 따온 이 책의 원제(원제는 The Mismeasure of Man이다.  즉 '인간이라는 잘못된 척도'이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오해의 오랜 역사까지 느껴질만큼 다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는 그에 대한 벌로서 밤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끔직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간은 낮이면 또다시 자라난다. 고대 신화는 오늘날에 와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이후 인류는 DNA의 발견과 게놈 지도 및 줄기세포 연구 등을 통해 생물학 및 생명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견들을 더욱 빠른 속도로 진척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여러 '과학적 발견' 또한 불의 발견처럼 늘 인간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면서 동시에 커다란 위험을 보여주는 데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불의 발견'에 대응되는 키워드는 소위 IQ라는 용어로 물화(物化)되어온 인간의 '지능'에 관한 발견이다. 그리고 '지능'으로 대표되는 편리한 도구의 발견은 IQ테스트라는 일순간적 측정에 의해 막대한 권능을 부여받는다. IQ로 측정된 인간의 '지능'이 인간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분류 라벨 혹은 일종의 바코드처럼 물화함에 따라 인류사회에 가해진 죄과들은 무수히 많다. 인종별 IQ 수치에 대한 서열화와 분류는 미국에서의 이민제한법을 낳게 되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IQ테스트는 교육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는 데 오용되어 왔으며, 인종차별적 폭력과 편협한 국수주의들이 난무한 원인의 일단을 제공하는 일에도 나름대로 기여해왔다.

사실 지능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유전적) 차이에 대한 갖가지 오해들에 대한 역사는 매우 뿌리깊은 데다가 음험하기까지도 하다. 이 책에서 굴드의 날카로운 비판 앞에 속수무책으로 오류를 드러내는 유명한 과학적(?) 연구들만 대략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뇌의 크기가 지능과 연관된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폴 브로카의 연구, 네오테니(neoteny)라고 불리는 지체발생 현상과 귀선유전(atavistic)의 특징을 통해서 인간의 미개성과 '원숭이성'을 찾아내려 애쓴 연구,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특징들로 사회적 낙인의 도구로 삼으려한 롬브로소의 범죄인류학, 인간에 대한 서열화와 딱지붙이기의 도구로 전락한 IQ라는 발명품에 대한 연구 등......

인간의 '지능'이 인종과 계층과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해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차별 마저 정당화하는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무수히 겪어온 반복적 오류들의 전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생물학의 명령임을 인정하기 위한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해 시도된 온갖 과학적 연구와 주장들의 오류들을 파헤치기 위해 열정적인 학문적 연구와 노력을 쏟아붓는다. 이 책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을 자랑하고 있다고는 하나, 굴드 자신이 찾아낸 수백년 혹은 수십년 전에 씌여진 먼지가 수북이 덮힌 서류뭉치 더미 속의 '인간에 대한 오해의 흔적들'의 엄청난 분량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에서 굴드가 찾아내고자 애쓴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의 선입관과 편견과 피암시성-무의식적 편향에 의한 집착 또는 '객관적인' 정량적 자료가 선입관에 이끌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경향성-들에 관한 저자의 눈부신 성찰은 이 책의 가치를 드높이는 또 하나의 색다른 매력이다.

이 대목은 소위 볼테르의 신에 대한 유명한 경구(만약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겠는가)를 생각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객관성이라는 가면을 쓴 공유된 도그마에 대해 무언가 끊임없이 교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론은 사실로부터 얻어지는 냉엄한 귀납이 아니다. 가장 창조적인 이론은 사실에 상상적 관점이 가해진 것이며, 그 상상력의 근원 역시 대단히 문화적인 것이다....... 결정론자들은 흔히 과학이 사회와 정치의 오염에서 자유로운 객관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펴왔다. 이들은 스스로를 엄격한 진리의 징발관으로 묘사하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상주의자, 공상가, 그리고 몽상적 사상가로 표현했다."

굴드의 표현대로 '기대가 행위의 강력한 지침이 된 사례들'은 이 책에서 무수히 등장한다. 그래서 날조가 필연이 된 여러가지 허구적인 주장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굴드의 손 끝을 떠나 이 책 속에 고스란히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실증적 연구에 의해 하나의 객관적 이론으로 정립된 시대적 노력들이 사기극과 조작을 거쳤음이 분명해짐에 따라 낡은 사고의 오류와 악취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등장을 반복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주제는 그의 영웅인 찰스 다윈이 노예제도에 대해『비글호 항해기』에서 탁월하고도 통렬하게 비판한 대목인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생물학적 선언에 의해 희망이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의 고통을 더 이상 만들어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생물학자들은 인종 사이의 전체적인 유전적 차이는 놀랄 만큼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즉 어떤 인종에게는 존재하지만 나머지 인종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종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엄청난 대량학살이 일어나서 뉴기니의 깊은 삼림 속에 사는 작은 부족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해도 오늘날 50억 인구의 무수한 집단들 속에 표현되어 있는 모든 유전적 변이는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굴드의 주장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지리적 고려에서 계층적 서열화로 이행시킨 것은 서양 과학사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변화를 잘 나타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철도나 핵폭탄에는 못미쳐도, 그 변화는 우리들의 집단적 삶과 민족성에 엄청난 실질적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장 큰 지적 모험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것은 낡은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적 구조를 구축할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지적 추구에서 철저히 새로운 이해를 얻었을 때 느끼는 흥분만큼 달콤하고 훌륭한 보상은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진정한 학자들을 감동시키고, 우리 이외의 사람들에게 호된 충격을 주는 마음속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지질학과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던 굴드는 과학 자체를 사회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이고 균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을 가장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평생에 걸쳐서 모색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숱한 과학적인 연구와 주장들에 대해서도 그 '오해'의 발단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문제인가를 그만의 예리하고 독특한 성찰을 통해 분석해 낸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 과학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 과학 서적을 읽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사나 과학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는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철학자인 모티머 J. 애들러는 과학이 발전한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사실, 명제, 논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방법을 추적하는 것은 가장 성공적인 인간 이성 활동에 참여해 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과학적 객관성이란 '편견의 부재'가 아니며, 오히려 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객관성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학 서적에 있는 귀납적 논증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탕으로 보고하는 증거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과학 서적이 지니는 유용성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오히려 굴드는 이 책에서 편견에 바탕을 둔 증거들의 허구성과 논증의 오류들을 밝혀내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애들러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모티머 J. 애들러의 말을 빌려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몇 가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인 문제가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세상 사이는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관계다. 자연과 그 법칙, 그리고 존재와 생성에 대한 최종적인 이해를 아직 아무도 얻지 못한 과학이나 철학 분야에만 해당되는 소리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인간과 하나님처럼 일상적인 관계도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위대한 책들은 이에 관해 좀더 잘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생각하는 사람들이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논적인 사회생물학의 주창자 에드워드 윌슨이 쓴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이나,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적 성찰에 대한 태도 또한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 내지는 "정치적 도그마"와 무관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있기도 하다.

조금 덧붙이자면, 진작에 사두고 여태껏 읽어 보지 못한 두 권의 책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옴을 느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 권은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를 단 매트 리들리의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이라는 책이다. 또 한 권은 스티븐 제이 굴드를 환경결정론주의자라고 비판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이라는 책이다. 특히 스티븐 핑커의 책은 901쪽이라는 엄청난 분량과 4만원이라는 책값이 주는 압박감이 만만치 않지만, '인간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아울러 나 자신 속에 숨어있는 여러 종류의 편견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즐겁게 읽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00% 유전적 근시도 20달러짜리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는데......" (본문 中에서)

<끝>

댓글(1) 먼댓글(1)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from Value Investing 2013-12-30 15:12 
    시간이 지나간다. 저만치 흘러가는 시간의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현기증부터 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시간'을 두고 하필 이 즈음에 굳이 '전에' '있었던 것' 혹은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기필코 '둘로 갈라놓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 * 프로이트가 간과한 '엄청난 시간적 규모에 대한 이해'인류의 소박한 자존심은 역사 속에서 과학적 진보를 통해 두 차례나 큰 상처를 입었다. 첫째로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oren 2005-04-1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zahir님. 이 리뷰는《인간에 대한 오해》에 대해 쓴 것이 맞습니다. 알라딘 측의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서평글 속에 참고삼아 인용한 책들에서도 이 리뷰글이 동시에 올려져있다는게 다소 혼란을 주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링크' 상태로 인용한 점이 문제로 보입니다만, 일부러 '링크' 상태를 해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뷰글이 잘못 올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오해'는 알라딘 측의 잘못된 시스템에 의해 비롯되었겠지만 그 죄는 별로 '중대'하지 않다고 봅니다. ㅋㅋㅋ
 
수익률 5600% 신화를 쓰다 - 가치투자의 귀재 존 네프
존 네프 & 스티븐 L. 민츠 지음, 김광수 옮김 / 시대의창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의 동향이 확산될 경우 대중은 개인의 참여를 요구하게 되며, 나 혼자만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콘서트 현장에서 혼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낼 용기는...? 보통사람이라면 함부로 하기 어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인기주를 매수하는 일은 이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 本文 중에서

******

존 네프는 올해 74세로 이미 10년 전인 1995년에 은퇴한 펀드매니저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펀드업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1964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31년간 뱅가드 윈저 펀드를 운용했으며, 총 5,546.4%의 수익률을 올려 같은 기간의 S&P500 지수의 총수익률을 두 배 이상이나 앞서는 뛰어난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이 기간 동안 20번이나 시장 수익률을 뛰어넘는 펀드운용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는 1976년 이후 지금까지도 배런스 라운드테이블에 초청될 만큼 주식 투자에 관한 남다른 권위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사실 워렌 버펫이나 피터 린치만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다소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는 펀드운용방식과도 얼마간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에 관해서 다룬 책들이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점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 말고도 존 네프에 관해서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스티브 민츠(이 책의 공저자임)외 2인이 지은
8인의 거장이 밝히는 나의 투자 전략(원제 Beyond Wall Street)이라는 책 한 권에 불과할 정도여서, 나이로 보면 그와 동갑이나 다름없는 워렌 버펫이나 조지 소로스(둘 다 1930년생)에 관한 책이 비교적 여러 권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현실에 비춰봐서도 존 네프가 조금은 덜 유명한 것이 일견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존 네프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나의 성공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제목 아래 그의 시티뱅크 투자에 관한 무용담을 소개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시티은행의 전설'로도 일컬어지는 유명한 이야기인데, 1987년부터 1992년까지 그는 무려 6년에 걸쳐서 시티뱅크 주식과의 대장정을 함께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투자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온갖 기대와 실망, 믿음과 좌절, 우려와 비난들을 빼놓지 않고 겪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역행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 자신의 현명한 판단과 꺽이지 않는 꿋꿋한 의지를 지켜낸 끝에 마침내 오랜 기다림의 대가를 만끽하게 된다. 그는 시티뱅크에 대한 투자 경험을 통해 투자의 성공은 반드시 우량주나 강세시장과 직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였으며, 그 자신의 성공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무엇이었던가를 명백히 한 이후에 주식시장과 싸워온 오랜 세월 동안의 투자 경험을 소상히 꺼내놓기 시작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그 자신이 표현한 대로 '미시간 촌뜨기'가 단돈 20달러를 들고 시골을 떠나 트럭을 얻어타고 뉴욕으로 나서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애널리스트로서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일, 그리고 마침내 윈저 펀드를 지휘하게 되는 과정 등을 들려준다.

제2부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네프의 '낮은 PER 종목'에 대한 투자 원칙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와 아울러 그는 이 원칙보다 훨씬 더 중요한 측면으로서, 그 자신이 세운 투자원칙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가는 과정을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윈저 펀드의 핵심 투자전략은 저PER 포트폴리오의 구성에 있다. 또한 네프는 '총수익률'이라는 개념과 PER의 긍정적인 관계를 발견하여 이를 윈저 펀드 운용의 핵심적 경쟁력으로 삼았다. '총수익률'이란 미래의 성장 추정치, 즉 연간 수익성장률과 배당수익률의 합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윈저 펀드는 오랜 기간 동안 PER이 총수익률의 절반과 비슷한 수준인 종목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고 한다.

또한 윈저 펀드의 또 하나의 주된 전략은 '계산된 참여'라는 공식을 저PR 투자와 혼합하는 데에 있었다. 즉 투자대상 주식들을 인기성장주, 비인기 성장주, 적정 성장주 및 순환성장주로 분류하고, 늘 시장의 인기와 흐름에 역행하는 데 촛점을 맞춤으로서 인기없는 종목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PER 포트폴리오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마음가짐'이라는 요소이며, 네프가 윈저에서 남다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기꺼이 리스크를 무릅쓰며 대중이 지향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한 덕분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제3부는 소위 '윈저펀드의 투자일지'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펀드 운용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 해마다 펀드수익률이 어떠했으며, 어떤 종목에 어떻게 투자했다는 내용들이 다소 지루하게 언급되어 있어서, 윈저 펀드의 주주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읽는 재미가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네프가 윈저 펀드을 운용했던 이 기간 동안의 미국 증시의 흐름과 펀드매니저의 시장흐름에 대한 판단, 종목 선택에 대한 숱한 고민들, 펀드수익률과 벤치마크가 되는 시장수익률에 대한 압박감등에 대해 사실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점은 다른 책에서는 쉽사리 접할 수 없는 부분이다.

투자 거장들의 투자방식을 비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만큼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굳이 다른 투자의 거장들과 네프와의 차이를 언급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즉, 피터린치는 3루타, 5루타 혹은 10루타 종목들의 꾸준한 발굴을 통해 마젤란 펀드와 그 자신을 빛나게 만들었다면, 네프의 윈저 펀드는 신화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점수를 홈런 보다는 잦은 안타를 통해 빼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피터린치는 대형 장외홈런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라면 종목수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많은 수의 종목들을 펀드에 편입했지만, 네프는 '계산된 참여'의 틀을 바탕으로 종목별 배당율을 포함한 온갖 수치들에 대해서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총수익률'을 산출한 뒤에 추려진 '낮은 PER의 종목들만' 투자범위에 포함시켰다는 차이점이 있다.

워렌 버펫과 비교해 봤을때의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네프의 투자 방식은 투자기간이 비교적 짧고, 기술주든 경기순환주든 가리지 않으며, 매수와 매도의 '타이밍'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점과 수치를 통해 산출된 종목을 중심으로 폭넓은 분산 투자를 지향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네프의 투자스타일 자체가 시장의 인기와는 정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자신도 수십년의 투자 경력 가운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활황장세가 반드시 매번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마치 요즘의 우리나라의 주식시장과 같이 주기적으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활황장세를 빗대어 그는 '아드레날린 장세'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바야흐로 한국의 주식시장도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흥분에 찬 목소리들이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요즈음, 까마득히 오래 전인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무려 30년 이상을 자신의 투자원칙을 굳건히 고수해온 이 가치투자의 귀재가 오늘날의 투자자들에게 들려주는 다음의 이야기가 새삼 경종처럼 깊은 울림으로 들려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뮤추얼펀드의 운용을 책임진 이후로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러나 투자의 본질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저PER 종목은 '용기있게' 매수하는 투자자들에게 그만한 기회를 가져다준다. 오늘날에도 투자자들은 군중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에는 활용 가능한 정보의 양이 실로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실적이나 펀더멘털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나 지식없이 무작정 덤비는 단기 투자자들 역시 많다는 점이다.

오늘날처럼 피상적인 정보와 지식에 의존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신중한 투자자들의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 펀더멘털, 업종, 경제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남들이 이미 발견한 광산을 뒤늦게 쫓아다닐 뿐이다. 마찬가지로, 인기 절정에 이른 뮤추얼펀드만을 찾아다니며 큰 돈을 벌었다는 투자자들 역시 이미 한물간 조류에 편승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시대에서나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을 마치 그들 모두에게 황금을 안겨줄 거대한 광맥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황금을 향한 질주는 결국 비극적인 종말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모든 이들이 횡재를 얻으려고 뛰어들지만 거의 대부분은 빈털털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주식시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 대광서림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 괴테,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中에서

******

1786년 10월 29일, 괴테는 그렇게도 동경하던 로마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마침내 이 '세계의 수도'에 도착한 괴테의 로마를 향한 그 동안의 갈망이 얼마나 컸으면 이 날에 대한 감격을 제사(題詞)와 같이 표현하였을까?

기번의『로마제국쇠망사』는 괴테가 로마에 도착한 날보다 10년 앞선 1776년 2월에 첫째권이 발매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명문 가문에서 출생한 기번이 갑자기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한 사건 때문에 재학중이던 옥스퍼드 대학에서 추방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유럽의 여러 도시를 순방하는 여행을 떠난 일은 이 책이 탄생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기번이 로마의 여러 유적지를 찾아 소요하던 어느날 해질 무렵에 불현듯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에 관한 것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쳐갔으며, 사적(史跡)에 감도는 고대 로마의 장엄성에 감동된 바, 그 때에 받은 강렬한 인상에 대하여 잊을 수 없는 날짜를 기번은 자기의 회상록에 극명하게 써놓았다고 한다. 그것은 괴테가 로마를 밟기 정확히 22년 하고도 14일 전이었던 1764년 10월 15일이었다.

불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의 원저서는 1776년∼1788년에 전6권으로 간행된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간행된 책은 여태껏 영문 원저서에 기초한 제대로 된 완역판이 없다고 한다. 위의 책도 일본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대광서림의《로마제국쇠망사》(전11권) 가운데 전체를 모두 읽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대강의 흐름만을 발췌 요약한 1권 분량의 다이제스트판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 책은 세계의 역사를 움직였던 많은 인물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저명한 독자로서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인도 수상 자와하르랄 네루,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등이 손꼽힌다고 한다.

기번의 이 책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왔던 이유가 그의 방대한 역사적 지식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애초부터 자기의 저서에 철학성을 부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며, 그래서 그는 철학적 고찰을 듬뿍 담는다 해도 역시 지루하고 따분해지기 쉬운 연대기를 독자들로 하여금 참말로 매력을 느끼게 하려고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몇 번이나 다시 쓴 끝에 사람들을 단숨에 매료시킬만큼 유려하고도 장엄한 문체를 찾아냈으며, 이 책은 첫째권이 발매된 즉시 희세의 명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출간 당시부터 이 책은 교양을 쌓는 증거로서 또는 교양에 대한 동경심으로부터 '각 가정의 식탁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주부들의) 화장대에까지도 놓여졌다'고 한다.

기번의『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 역사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5현제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트라야누스(재위 98∼117) 황제 시대에서 시작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 유스트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의 동로마제국 건국, 샤를마뉴(재위 768∼814)에 의한 신성로마제국 건국, 투르크의 침입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까지 약 1,300년에 이르는 긴 세월의 역사를 단정하고도 고전적인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확립,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이슬람의 침략, 십자군 원정 등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동안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난 온갖 흥미진진한 사건을 다루므로서 고대와 근세를 이어주는 교량 구실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황제들과 정치가들과 군인들의 탐욕과 악덕, 그들을 둘러싼 세력들이 부추기는 온갖 다양한 음모들과 얄팍한 꾀들을 기번의 붓끝을 통해 접하다 보면, 마치 광활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삼국지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생각도 여러번 스쳐간다. 기번의 책은 말하자면 서양판 삼국지와도 비슷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축약본이라는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삼국지에서 느낄 수 있는 만화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전쟁 장면들과 동양적인 친근감이 느껴지는 싸움터에서의 재미난 구경거리들을 기대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의의는 무엇보다도 서양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로마사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대개의 경우,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서 배웠던 틀에 박힌 교과서적 문체로서 접한 세계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한 위대한 역사가의 숨결과 필체를 통해 새롭고도 풍성하게 로마의 역사, 곧 한 때의 세계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계몽주의적 서양 역사가의 세계사 서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로마사를 일독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관을 얻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본다. 특히 이 책이 로마 제국 내의 기독교에 대해 편향되지 않은 역사가의 시각을 굳건히 유지한 채 엄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은 로마인들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다신교적 전통, 그리고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에 대한 경계 자체가 얼마만큼 많은 굴곡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로마제국쇠망사》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역시 제도(帝都)인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다. 1,000년의 세월에 걸쳐 수많은 만족들의 침공으로부터 동방의 황성을 지켜온 이 철옹성도 술탄 메흐멧의 필사적인 열원(熱願)과 작전 앞에 마침내 무너지고 만다. 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면에서의 기번의 현장감 넘치는 서술은 '영화의 덧없음'에 대한 깊은 신음소리가 들려올만큼 생생하다. 그러나 기번의 미덕은 이 가슴 아픈 애절한 감상으로부터 곧장 거침없이 높다란 비상으로 우리를 이끄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비록 로마의 입장에서보면 정복자에 대한 칭송이라는 아이러니를 포함하는 것이긴 하지만, 굳은 인내를 통해 온갖 곤란함에 대한 자포자기적 경거망동을 억누르는 용기, 그리고 마침내 다다르는 불굴의 인간 정신에 대한 찬미와 감탄은 감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뜻을 세우라. 그러면 전 우주가 협력한다」
신이여, 이 성시(城市)를 저에게 주옵소서-


로마제국의 긴 역사를 통해 등장했다가 사라진 온갖 인간 존재의 어리석음과 탐욕과 광기들도 기번의 책을 덮고 나면 한낮 일장춘몽처럼 어느새 역사 속으로 되묻히고 만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영광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기번의 심오한 이해를 살펴보는 일은 이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의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사실,
《로마제국쇠망사》에 대한 이 서평글을 쓰기 전만 하더라도 '로마'에 관한 나의 전반적인 머릿속의 이미지는 오래된 명화인「벤허」와「로마의 휴일」을 비롯해서 비교적 근년에 만들어진「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 등에 힘입은 바가 매우 컸었기 때문에, '로마'를 떠올리면서도 그 역사적 무대위에 실존했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깊은 감정적 교류들은 거의 배제되어 있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로마를 동경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그 곳을 밟아봤던 수많은 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4년 전에 오래도록 희망했던 로마의 땅을 직접 찾아가 밟고 섰던 감회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느낌으로 남아있다. 내가 가족들과 함께 로마에 갔을 때 우리 일행의 여행 안내를 맡았던 한국인 유학생의 말에 따르면, 로마의 한 해 관광객 수는 약 2,000만명에 이르며, 한 여름 바캉스 시즌에는 로마 시내에 로마시민 보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관광객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도 했다. 로마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 국가의 수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말이었다.

"어제 처음 로마에 도착한 사람도 하루만 지나면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로마에 살고 있었던 듯한 얼굴로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들을 맞는 로마 사람들도 그들을 이방인으로 보지 않는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에도 고대가 그림자를 떨구고는 있지만, 고대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다릅니다."
 - 시오노 나나미,
황금빛 로마 中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링컨은 편지 첫머리에 '모든 사람은 칭찬 듣기를 좋아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성에 있어서 가장 심오한 원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갈망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소망'이라든가 '욕망' 그리고 '동경'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갈망'이라 말한 것을 주의하기 바란다.

 - 데일 카네기,
카네기 인간관계론 中에서

******

이 책은 제목이 너무 단순하다. 그래서 이렇게 뻔한 제목의 책이 과연 재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사두기만 했을 뿐 좀처럼 읽을 생각을 못해봤었다. 솔직히 말하면 책이 배달되었을 때 겉모습만 한 번 흘끗 훑어본 게 전부였다.

이 책의 앞뒤 표면에는 춤추는 고래가 그려져 있다. 특히 이 책의 뒷표면에는 이 책 내용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칭찬 10계명'이 무슨 모범답안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그 열 가지 내용까지 다 읽고 나면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은 어느 정도의 확신으로까지 바뀌게 된다. 그래서 그저 조련사가 고래를 열심히 칭찬해주면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고래가 춤을 추듯이 점프를 하며 쇼를 펼치는 그렇고 그런 얘기이겠거니 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이 책을 마냥 덮어두고 말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 곳 '알라딘'에 들어올 때마다 매번 만날 수 밖에 없었고,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어느 사이엔가 꽤나 유명한 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디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나 봐야지...' 하는 다소 건방진 마음으로 집어들고 읽었다. 어찌되었건 이 책은 제대로 읽어보기도 전에 이미 나한테 여러번 홀대받은 불쌍한 책이 되고 만 셈이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책은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아차 하는 생각부터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범고래는 놀랍게도 내가 1995년 여름 휴가때 샌디에고 씨월드에서 만났던 바로 그 유명한 샤무라는 녀석에 관한 얘기가 아닌가! 이 책의 저자 또한 1976년에 이 범고래의 멋진 쇼에 매혹되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 그 샤무 녀석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건가?

아무튼 이 책은 모든 사람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아주 쉽고도 평이하게 쓰여진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삶의 깊은 지혜가 담긴 놀라운 책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저자인 켄 블랜차드가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즐거움을 넘어 환희를 느꼈으며, 지금까지 내가 쓴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말한 점도 결코 빈 말은 아닐꺼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 책의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한 일은 못 본 척하고 행동을 재빨리 다른 곳으로 유도하라는 것이다. 거대한 범고래 조차도 춤출 수 있게 해준 원리는 이처럼 지극히 간단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남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이 훨씬 똑똑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것을 '뒤통수치기 반응'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이 잘한 일을 찾아내는 행동 방식을 저자는 '고래 반응'이라고 부른다.

"보통 여러분은 언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입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입니다. 관심을 쏟지 않을 때는 언제이죠?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어갈 때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가운데 아이를 가진 분들께서는 아이들이 잘하고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이들이 잘 놀고 있군. 아이들이 아주 조용한 걸 보니 말야.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네.' 하지만 그 생각이 옳은 걸까요?"

"직원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모든 사람들이 '내가 잘한 일을 알아주세요'라는 커다란 표어를 붙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또한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각각 다른 동기부여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즉 '언니인 샐리는 모든 일을 다 잘해 내는데, 동생인 베시는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런 부모에게 베시에게도 긍정적인 면을 강조해주라고 말을 하면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애는 칭찬해줄 만큼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걸.' 하고 말이다. 이런 부모들은 선입견이라는 덫에 갇혀 있는 것이며, 그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조금이라도 잘하는 일을 관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깨우쳐준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나는 내가 그동안 내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뒤통수치기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고래 반응'의 상상 이상으로 위대한 힘을 감명깊게 느껴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또한 이 책에 그려져 있던 '춤추는 고래'와 책 뒷면에 씌어진 '칭찬 10계명'만 대충 훑어보고 '선입견의 덫'에 걸린 나머지 이 책이 지닌 '놀라운 힘'을 제때 발견해내지 못한 게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10년 전에 봤던 씨월드 해양관 속의 그 범고래가 어쩌면 그렇게도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쇼를 보러온 수많은 관객들이 샤무가 첨벙거리면서 뿌려대는 물줄기를 뒤집어쓰면서도 왜 그리 즐거워할 수 있었는지 뒤늦게나마 더욱 깊이 알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새끼 범고래의 탄생 장면~>
[EPA 2004-12-23 18:10]


[샌디에이고=EPA]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디에이고의 씨월드에서 올해 28살인 어미 범고래가 2시간여의 산고끝에 새끼를 낳았다. 이번 어미 범고래의 순산은 지난 19세기 이후 샌디에이고 씨월드에서 5번째로 탄생한 새끼 범고래로 기록됐다.

******

흔히 보기 어려운 범고래의 출산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씨월드에서 28살 난 범고래가 2시간 동안의 산고 끝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새끼 범고래는 태어난 직후 첫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수면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씨월드의 동물전문가들은 이 새끼 범고래가 건강한 상태이며 몸무게는 130에서 220킬로그램 사이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