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자들은 텍스트를 읽는 입장이라는 데 따르는 굉장한 힘을 깨닫고 그런 특권을 열광적으로 지키려 들었음에 틀림없다. 오만방자하게도 대부분의 메소포타미아 필사자들은 텍스트 말미를 이런 간기로 장식하곤 했다. "현명한 사람들이 현명한 사람들을 교육하도록 하자. 무식한 사람들은 볼 줄도 모를 테니까" 라고. 이집트에서는 B.C. 2300년경인 19대 왕조에 어느 필사자가 자신의 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이렇게 적었다.

 

필사자가 되려므나! 이 말을 그대 가슴에 각인하라.

그대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

두루마리는 돌새김보다 훌륭하느니라.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먼지가 되고,

그의 사람들도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니.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책이니라

그를 읽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 * *

 

(밑줄긋기)

 

01_단편소설

 

 

이반 세르게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


허구적 인물의 네 가지 유형


셰익스피어와 단테를 사랑했던 투르게네프는 모든 인류를 '햄릿형'과 '돈 키호테형'으로 나누었다. 존 폴스타프(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희극적 인물)나 산초 판자(『돈 키호테』에 나오는 인물)까지 포함한다면 허구적 인물의 네 가지 유형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운명의 취약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왜 「베진 초원」을 읽는가? 우리의 현실과 운명의 취약성을 잘 이해하고, 투르게네프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초연함 등을 미학적으로 음미하기 위해서 읽는다. 그의 글에 아이러니가 있다면 그것은 풍경이나 아이들, 사냥꾼 자신만큼이나 순수한 운명에 대해서일 것이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1860∼1904)


체호프와 톨스토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평론


지금까지 내가 읽은 글 중에서 체호프와 톨스토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평론은 막심 고리키의 『회상들』에 나온다:


"체호프가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단순해지고 진실해지며 보다 더 본연의 자신이 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느끼게 된다."



왜 최고의 작품만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내면적 삶의 기록이 알려진 모든 작가 가운데 체호프와 베케트가 가장 친절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내면적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의 희곡을 읽으면 셰익스피어가 체호프, 베케트와 더불어 세 번째 친절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폴스타프, 햄릿, 로잘린드(셰익스피어의 『좋으실 대로』에 등장하는 인물)라는 인물들을 창조한 셰익스피어는 더욱 본연의 나 자신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며, 왜 최고의 작품만을 읽어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



체호프의 위대한 힘


고리키는 체호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체호프는 평범의 바다에서 비극적 유머를 드러냈다."


체호프의 위대한 힘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읽는 동안 일상적 불행과 비극적 환희가 끊임없이 혼재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실을 느끼게 해 준다. 셰익스피어는 비극적 환희라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의 익살맞은 패러디와 소극에서조차 체호프의 평범함을 찾아 볼 수 없다.




















기 드 모파상(1850∼1893)


평범함을 표현하는 법


체호프는 모파상으로부터 평범함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모파상은 평범한 표현을 포함한 모든 것을 구스타프 플로베르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모파상은 이야기꾼으로서 체호프나 투르게네프의 천재성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모파상은 대단히 '인기 있는' 작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파상은 대단히 '인기 있는' 작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오 헨리보다도 뛰어나며 혐오스러운 인기 작가 애드거 앨런 포우도 그에 비견될 만한 작가가 못 된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괄목할 만한 성취다. 오늘날 미국에는 그런 작가조차 없는 실정이니까.



쇼펜하우어의 렌즈


모파상은 플로베르로부터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이른바 '긴 인내가 재능이다'라는 사실을 배웠다.


모파상은 독자들이 그가 없었으면 보지 못했을 무언가를 보게 해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셰익스피어나 체호프의 천재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모파상 역시 모든 것을 '생의 의지'로 주장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쇼펜하우어의 렌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안경과 거의 비슷하게 모든 것을 확대 왜곡시킨다.



왜 모파상의 작품을 읽는가?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독자를 사로잡을 줄 안다. 그리고 독자는 그의 목소리를 충분히 받아들인다. 절대 다수는 아니겠지만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특히 모파상보다 훨씬 탁월하고 미묘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전해 주는 난해한 즐거움의 기초가 되고 있다.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1899∼1961)


헤밍웨이는 작품에서 가장 야심적일 때 셰익스피어적이었다.


헤밍웨이는 작품에서 가장 야심적일 때 셰익스피어적이었다. 이는 작가의 자전적 작품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잘 드러난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실패한 작가 해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너무 많이 사랑했기에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탕진하고 말았다."


이는 헤밍웨이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경애하는 '리어 왕'에 대한 뛰어난 비평적 언급일지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는 짧은 글에서 비극을 시도해서 그 뜻을 달성했다. 행위의 묘사보다는 죽어가는 한 인간에 대한 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가장 강렬한 자기 응징으로, 내 생각엔 그러한 양식에 경도되었던 체호프도 감명받았으리라 여겨진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만일 '표범의 시체'를 ㅡ상실되었지만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 ㅡ해리의 작가로서의 야심 혹은 미학적 이상과 동일시한다면, 이는 헤밍웨이의 작품을 거짓 감상했거나 괴기스러운 것으로 비하하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는 헤밍웨이가 그런 오류를 범했지만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


"작가가 아닌, 이야기를 믿으라."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 D.H.로렌스는 간결한 단 한 줄로 독자들에게 영원한 지혜를 제공했다.


"작가가 아닌, 이야기를 믿으라."


내가 볼 때 이 말은 헤밍웨이 이래 미국 작가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을 읽는 근본적인 원리라고 생각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89∼1977)


에머슨의 '투명한 눈동자'


나보코프의 「베인 가의 자매들」은 짧지만 에머슨의 '투명한 눈동자'*와 콜리지의 '폴록에서 온 사람'* 등에 대한 문학적 암시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강령술 모임에 나타난 듯한 오스카 와일드, 톨스토이의 생생한 체현들, 그리고 문학적 괴팍스러움의 일반화된 기분을 엿볼 수 있다.


* 에머슨의 저서 「자연」중 '나는 투명한 눈동자가 된다. 나는 무無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우주의 존재의 흐름이 내 몸 속을 순환한다"라는 문장에 나오는 말.


* 콜리지의 대표적인 시 「쿠불라 칸」의 구성을 방해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문학의 살아 있는 미로


보르헤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그에 앞섰던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교훈이 된다. 그것이 보르헤스를 체호프와 비교할 때 재미나 계몽적인 면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르헤스를 매우 다른 존재로 부각시킨다. 보르헤스에게 셰익스피어는 전부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문학의 살아 있는 미로다.


체호프는 셰익스피어를 강박적일 정도로 햄릿의 작가로 인식한다. 그리고 왕자 햄릿은 체호프가 항해하는 배다. 체호프의 이름으로 출반된 최초의 단편 「바다에서」처럼 말이다. 보르헤스의 상대론은 절대적이며 체호프의 상대론은 조건적이다.


체호프와 그의 제자들에 매료된 독자는 이야기에 대한 개인적 관계를 누리지만, 보르헤스는 독자를 매혹시켜 비개성적인 영역으로 이끈다. 여기에서 셰익스피어의 추억은 거대한 심연이고 독자들이 이야기에 빠지면 남아 있던 자아의 전부를 상실하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1923∼1985)


우리가 왜 책을 읽고 어떠한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1974년 윌리엄 위버가 번역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한다면 우리가 왜 책을 읽고 어떠한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꾼으로 등장해 중국 원나라의 시조 쿠빌라이 칸 앞에서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상상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각각의 이야기는 불과 한두 페이비밖에 안 되잠,ㄴ 체호프적은 아니라도 보르헤스나 카프카적인 면에서는 단편소설이라 할 만하다.


마르코 폴로가 말하는 도시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은 원한다면 그곳을 여행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열한 개의 집단은 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 추억, 욕망, 신호, 눈, 이름, 죽은 자, 하늘의 도시, 얇은 도시, 무역 도시, 연속의 도시, 숨은 도시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모두를 마음에 담으려면 혼란스럽겠지만 도시 하나하나가 실제 같은 장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도에 노선을 그릴 수 없거나 착륙 날짜를 정할 수 없기 때문


쿠빌라이와 마르코 폴로 사이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다:


쿠빌라이가 약속의 땅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또한 뉴 아틀란티스, 유토피아, 태양의 도시, 뉴 하모니 그리고 다른 모든 구원의 땅들에 대해서는 왜 언급하지 않는가 묻는다. 마르코 폴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한 땅들에 대해서는 지도에 노선을 그릴 수 없거나 착륙 날짜를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지도를 뒤적이다가 바빌론, 야후랜드, 용감한 신세계 등 '악몽과 저주'의 도시들을 발견한다. 절망에 빠진 늙은 황제는 결국 항해의 끝은 '지옥의 도시'일 뿐이라는 허무감을 드러낸다. 쿠빌라이의 이 마지막 한탄은 마르코 폴로에게 전해지지만 그는 독자들을 향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삶의 지옥"에 빠져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고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더 나은 길은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이탈로 칼비노의 작가적 지혜다:


"(…)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이 아닌 자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인식하고자 노력하고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만들며 그것들에 공간을 제공한다."


칼비노의 충고는 우리가 책을 어떻게 읽고 왜 읽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있다: 주의하라, 그리고 선善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인식하며 그것이 지속될 수 있게 하고 우리의 삶에 그것들에 대한 공간을 제공하라.



 

















단편소설_요약


전통적으로 희곡은 행위를 모방하지만 단편은 그렇지 않다.


훌륭한 단편은 반복해서 여러 번 읽을수록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헨리 제임스는 단편을 "시가 끝나고 현실이 시작되는 미묘한 지점"에 위치한다고 말했다. 결국 단편소설은 시와 장편소설 중간에 있으며, 등장 인물은 헨리 제임스의 말대로 "매력적이고 특별하지만, 또한 인식 가능할 만큼 일반적"이다. 전통적으로 희곡은 행위를 모방하지만 단편은 그렇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라 할 수 있는 유도라 웰티는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D.H.로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의 언어를 서로 대화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분수처럼 뿜어 내고 달처럼 빛을 뿌리며 바다처럼 몰려온다. 그리고 심술궂은 바위처럼 침묵한다."



체호프는 진실을 추구하고, 카프카-보르헤스는 전도된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


왜 단편소설을 읽으며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체호프-헤밍웨이적 양식과 보르헤스적 양식은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없다. 독자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전자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후자는 현실을 넘어서 보이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갈증을 느끼는가를 가르쳐 준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양식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체호프는 진실을 추구하고, 카프카-보르헤스는 전도된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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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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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매장하는 거다. 우리는 카이사르를 매장하러 왔소. 그의 3월인지 6월의 재앙일(災殃日). 그는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지.

 

그런데 저쪽 비옷 입은 홀쭉하게 보이는 녀석은 누구야? 글쎄 누군지 알고 싶군. 글쎄 돈을 몇 푼 주어서라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으면. 꿈에도 결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녀석이 언제나 불쑥 나타나거든.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내내 혼자 외로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자신이 무덤을 팔수는 있어도 죽은 다음에 그를 묻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게 아냐. 우리 모두가 묻어주지. 단지 인간만이 매장하는 거다. 아니야, 개미들도 그래.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 죽은 자를 매장한다. 예컨대 로빈슨 크루소는 인생에 충실했다 지. 글쎄 그런데도 프라이디가 그를 매장했지. 그걸 생각해 보면 모든 금요일(프라이디)은 언제나 목요일을 매장하는 셈이다.

 

 

오,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

어떻게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런데, 죽음은 너무나 긴 휴식이야.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지. 느끼는 것은 단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아. 경치게도 불쾌한 순간임에 틀림없어. 처음에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틀림없이 잘못일 거야: 다른 사람일 거야. 맞은편 집을 알아 봐. 가만있자. 난 살고 싶었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자 어두컴컴해진 죽음의 방. 빛을 그들은 원한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사제를 불러올까요? 그러자 떠들어대며 우왕좌왕. 한평생 감추었던 정신착란이 온통 쏟아진다. 죽음의 투쟁. 그의 잠이 순조롭지 못하다. 아래쪽 누꺼풀을 눌러 봐요. 코가 불쑥 나오고 턱이 내려앉고 발바닥이 노랗게 되었나 살펴보는 것이다. 운명(殞命)했으니 베개를 빼버리고 마루 위에 반듯이 눕혀요. 죄인의 죽음을 그린 저 그림 속에 악마가 그에게 한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셔츠 품속에 그녀를 포옹하고 싶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루치아>의 마지막 장면. "나는 그대를 더 이상 볼 수 없나요?" 쿵! 그는 숨이 끊어진다. 마침내 가버렸다. 사람들은 당신에 관해서 조금 이야길 한다: 잊어버린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당신의 기도 속에 그를 기억해요. 심지어 파넬도. 담쟁이 날은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어 그들이 뒤따른다: 구멍 속으로 떨어지며. 차례 차례로.

 

(9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27일에 엄친의 무덤에 성묘하러 가야지. 묘지기에게 10실링. 그는 묘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해주지. 그 자신도 늙었어. 두 겹으로 몸을 구부리고 가위로 풀을 깎는 것이다. 죽음의 문 가까이. 죽어버린 자. 이승을 떠나버린 자.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나 한 것처럼. 떼 밀렸던 거다, 그들 모두. 목숨을 빼앗긴 자. 만일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를 스스로 말한다면 한층 재미있을 거야. 모모(某某) 차바퀴 목수올시다. 나는 코크 리놀륨을 주문 받으러 다녔지요. 나는 한 파운드 당 5실링을 지불했어요. 또는 소스 팬을 든 한 여인. 저는 맛있는 아일랜드 스튜를 요리했어요. 시골의 교회묘지를 읊은 송시(頌詩)는 당연히 그런 시(詩)여야 할거야 누구의 시더라 워즈워드였던가 아니면 토머스 캠벨이던가. 영원히 잠들면 신교도들은 시(詩)를 쓰지. 노(老)머렌 박사의 무덤. 위대한 의사(神)가 그를 집으로 불렀던 거다. 그렇지 여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땅이야. 참 좋은 시골의 주거. 새로이 벽토와 페인트칠을 했군.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교회시보(敎會時報)』를 읽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혼인 광고를 사람들은 결코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아. 손잡이 위에 걸려 있는 녹슨 금속 꽃다발, 청동 빛 금박 화환. 돈으로 따지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지. 하지만, 생화(生花)가 한층 더 시적이야. 전자가 오히려 싫증이 난단 말이야, 결코 시들지 않으니. 아무 표정도 없고. 불사(不死)의 것들.


(9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여기는 누가 누워 있지? 로버트 에머리의 유해가 놓여 있다. 로버트 에메트는 횃불에 의해 여기 매장되었지, 그렇잖아? 저놈의 생쥐가 빙빙 돌고 있군.

 

방금 꽁지가 사라졌다.

 

저따위 놈 같으면 시체 하나쯤은 얼른 해치울 거야. 그것이 누구든 간에 뼈를 깨끗이 추린단 말이야. 그들에게는 보통 먹는 식사지. 시체는 상한 고기야. 그렇지 그런데 치즈란 건 뭐야? 밀크의 시체지. 나는 저 『중국 항해기』에서 중국 사람들이 백인(白人)한테서 시체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걸 읽었어. 화장(火葬)이 보다 나아. 사제들은 그걸 한사코 반대하지. 다른 화장회사의 하청을 맡아 일하는 거다. 도매 화장회사와 네덜란드식 가마(釜) 상인들. 페스트가 만연할 때. 페스트를 소독해 버리는 생석회 열갱(熱坑). 무통치사실(無痛致死室). 재(灰)에는 재. 아니면 수장(水葬)을. 그 배화교(拜火敎)의 침묵의 탑(塔)은 어디에 있는고? 새들에게 먹힌 채. 흙, 불, 물. 익사가 최고 안사(安死)라고들 하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전(全)생애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공중에다 매장을 할 순 없잖아. 비행기로부터. 새로운 시체가 떨어질 때마다 뉴스가 사방에 퍼질지 몰라. 지하 통신. 우리는 그걸 두더지들한테서 배웠지. 놀랄 것도 없어. 저놈들에게는 규칙적인 맛있는 식사야. 사람이 채 북기도 전에 파리가 먼저 찾아오지. 디그넘을 냄새 맡는다. 저놈들은 시체 냄새를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 소금기 하얀 후물거리는 연한 시체 덩어리: 하얀 생(生) 순무 같은 냄새, 맛.


(94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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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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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말들이 장례의 침묵을 뚫고 화강암 덩어리 하나를 실은 삐걱거리는 마차를 끌면서, 핑글라스로부터 힘들고 터벅거리는 걸음걸이로 지나갔다. 그들의 선두에서 행진하는 마부가 인사를 했다. 이제 관(棺)이다. 죽은 몸이지만, 그는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도착한 셈이다. 장식 깃을 비스듬하게 꽂은 말이 관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흐리멍덩한 눈: 목에 꽉 낀 테, 혈관 또는 그 무엇을 세게 억누르고 있다. 말들은 자신들이 매일 무엇을 여기에 운반해 오는지 알고 있을까? 매일 스무 번이나 서른 번의 장례가 있음에 틀림없어. 당시 신교도들을 위한 마운트 제롬 묘지. 전 세계 매순간 어디서나 장례가. 짐차에 한꺼번에 가뜩 실어 재빨리 삽으로 갖다 묻는 것이다. 한 시간에 수천 개를, 세상에는 너무나 많아.


(8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로다.' 이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감동시키지요.

 

──── 그렇소, 블룸씨가 말했다.

 

아마 당신의 마음을 그러나 발가락을 실 국화에 묻은 채 6자(尺)에 2자 관속에 누워 있는 저 친구에게는 무슨 상관이랴? 그건 감동(感動) 금지지. 애정의 좌(座). 깨어진 심장. 결국 심장은 펌프야, 매일 수천 갤런의 피를 퍼내고 있으니. 어느 날 심장의 마개가 막히는 날에는: 너도 이제 끝장. 수많은 죽은 자들이 여기 사방에 누워 있다: 허파, 심장, 간. 낡고 녹슨 펌프들: 경칠 그 밖의 것. 부활이며 생명이라. 한번 죽으면 죽고 마는 거야. 최후의 날에 대한 착상. 모든 죽은 자를 무덤에서 두들겨 깨우는 거다. 나오너라, 라자로여! 그런데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일을 놓치고 말았지. 일어나! 최후의 날이야! 그러면 사람마다 자신의 간과 폐장(肺腸) 그리고 그의 나머지 부품들을 찾아 헤맬 테지. 저 아침 자신에게 속하는 모든 것을 다 찾는다. 두개골 속에 든 1페니 무게의 분말(粉末). 12그램 1페니의 무게. 트로이 치수로.


(87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블룸씨는 묘지관리인의 건장한 체구를 감탄했다. 모두 그와 친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점잖은 사람, 존 오코넬, 정말 착한 이야. 열쇠들(키즈): 마치 키즈 점의 광고처럼: 아무도 밖으로 나갈 염려 없지. 아무런 통과증 검열도. '하베아스 꼬르뿌스(인신보호).' 나는 장례 뒤에 저 광고에 관해 알아봐야지. 내가 마사에게 편지를 쓰는 걸 그녀가 방해했을 때 그걸 감추기 위해 내가 사용했던 봉투에다 볼즈브리지라 썼던가? 희망컨대 불명우편물취급소에 방치되지 않았으면. 그가 수염을 깎는 것이 한층 보기 좋군. 하얗게 솟아난 턱수염. 그것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솟는 최초의 징조지. 그리고 성질이 까다로워지는 거야. 백발 속의 은발.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상상해 봐. 그는 처녀한테 프로포즈할 적극성을 갖고 있는지 몰라. 와서 공동묘지에서 함께 살아요. 그녀 앞에 매달리는 거다. 처음에는 그녀의 몸을 오싹하게 할 거야. 사신(死神)에게 구혼하다니. 사방에 뻗어 누운 모든 사자(死者)들과 함께 이곳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밤의 망령들. 묘지가 하품을 할 때의 무덤의 그림자들 그리고 대니얼 오코넬은 한 사람의 후손임에 틀림없지 상상컨대 그가 어둠 속의 거인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위대한 카톨릭 교도로서 괴상하게도 생식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늘 하곤 하던 사람은 누구였지. 도깨비불. 무덤의 가스. 임신하기 위해 여인의 마음을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끊어 버릴 필요가 있지. 특히 여자들은 아주 과민하니까. 그녀에게 귀신 얘기를 해서 잠재우게 하려고 해봐요. 당신 여태껏 귀신을 본적이 있소? 글쎄, 나는 있어요. 때는 한밤중이었어. 시계가 12시를 치고 있었고. 그런데도 만일 적당하게 흥분이 되면 여자들은 마구 키스를 하지. 터키 묘지의 매음부들. 젊었을 때 경험하면 뭐든지 배우기 마련. 이런 곳에서 젊은 과부를 하나 주울 수도 있지. 사내들은 그런 걸 좋아하거든. 묘비 사이의 사랑. 로미오. 향락의 양념. 죽음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생활하고 있는 거다. 양극(兩極)은 서로 만나기 마련. 애태우는 것은 불쌍한 사자(死者)야. 굶주림에 구운 비프스테이크 냄새. 자신의 활력을 파먹고 있는 거다. 사람들을 흘분시키고 싶은 욕망. 창가에서 그걸 하고 싶어하던 몰리. 아무튼 저 묘지관리인은 아이들을 여덟 명이나 갖고 있지.


(88-89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러나 시체는 매우도 많은 구더기를 키워낸단 말이야. 흙이 그들로 오직 소용돌이치고 있음에 틀림없어. 그걸 생각하면 머리가 빙빙 돌지요. 저 사랑스런 바닷가의 소어녀들. 저이는 아주 쾌활하게 묘지 위를 바라다보고 있군. 모든 다른 이들이 먼저 땅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에게 힘의 감각을 주는 거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몰라. 농담도 잘 걸면서: 사람의 마음속을 훈훈하게 하는 거다. 사자(死者)에 대한 게시판. 스파지온은 오늘 오전 4시에 천국으로 출발. 오후 11시(마감시간). 아직도 미착(未着). 베드로. 죽은 사람 자신들이 남자라면 어쨌든 야릇한 농담을 듣고 싶어할 게고 부인들이라면 요사이 유행하는 것이 뭔지를 듣고 싶어할 거야. 즙 많은 배(果) 또는 귀부인용의 뜨겁고, 독한 그리고 달콤함 펀치 술, 습기 없는 곳에 보관할 것. 자네도 틀림없이 가끔 웃음이 나올 거야 그러니 저런 식으로 해보는 게 좋아요. <햄릿>에 나오는 묘굴인(墓堀人)들. 인간의 마음의 심오한 지식을 보여 주는 거다. 적어도 죽은 지 2년 동안은 감히 죽은 사람에 대해 농담을 해서는 안되지. '데 모르뚜이스 닐 니시 쁘리우스(죽은 자에 대해 악담하지 말라).' 우선 슬픔에서 벗어나는 거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기는 힘들지. 일종의 장난같이 보일 테니까. 자기 자신의 사망 광고를 읽으면 더 오래 산다고들 말하지. 당신에게 두 번째 입김을 불어넣어 주는 거다. 생명의 계약갱신(契約更新).

 

──── 내일은 몇 구(具)나 됩니까? 묘지관리인이 물었다.

 

──── 둘요, 코니 캘러허가 말했다. 10시 반과 11시.


(89-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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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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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다 타셨나? 마틴 커닝엄이 물었다. 들어와요, 블룸.

 

블룸 씨가 들어와서 빈자리에 앉았다. 그는 뒤로 손을 뻗어 문이 꼭 닫힐 때까지 두 번 쾅하고 세차게 닫았다. 그는 손잡이 가죽끈에 팔을 끼고 열린 마차 창문으로부터 가로변의 낮게 쳐진 덧문을 심각하게 쳐다보았다. 덧문 하나가 옆으로 젖혀졌다: 엿보고 있는 한 노파. 창유리에 바싹 눌려 하얗게 된 코. 그녀가 무사히 살아온 것을 운명의 별들에게 감사하면서. 비상한 관심을 그들은 시체에 갖고 있지. 우리들이 죽어 가는 걸 보고 기뻐하지, 살아 있을 때 그들에게 심한 괴로움을 주기 때문이야. 노파들에게 안성맞춤의 일인 것 같아. 모퉁이에서 비밀리에 쉬쉬쉬하며. 죽은 자가 깨어날까 두려워 슬리퍼를 신고 사방을 살금살금 걷는다. 그런 다음 시체를 운반할 준비를 한다. 입관(入棺) 준비.


(72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 블레이지즈 보일런이오, 파우어씨가 말했다. 저기 그가 이마의 곱슬머리를 바람 쏘이고 있어.

 

바로 내가 저 녀석을 생각하고 있던 순간.

 

데덜러스 씨가 몸을 가로로 굽혀 인사를 했다. 레드 뱅크의 문으로부터 하얗고 둥근 밀짚모자가 번쩍 빛나며 답례했다: 깔끔한 몸매: 지나갔다.

 

블룸 씨는 그의 왼손의 손톱을 자세히 살폈다, 이어 오른 손의 손톱을. 손톱, 그래. 여인들 그녀가 저 녀석에게 느끼는 별다른 게 뭐람? 매력. 더블린에서 가장 나쁜 놈. 그것이 그에게 생기를 돋구는 거다. 여자들은 때때로 상대방 남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금세 알아차리지. 본능. 하지만 저와 같은 타입은. 나의 손톱. 나는 지금 손톱을 쳐다보고 있다.: 잘 깎여졌어. 그리고 다음에는: 혼자 생각하고 있다. 약간 흐늘흐늘해 지고 있는 육체. 난 그걸 눈치 채지: 기억으로. 그건 무엇 때문일까? 상상컨대 근육이 처질 때 피부가 아주 재빨리 위축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나 몸매는 그대로 있단 말이야. 아직도 몸매는 여전해. 어깨. 엉덩이. 통통해요. 무도회의 밤 옷치장. 슈미즈가 양 엉덩이 사이에 꼭 낀 채.


(76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불타는 얼굴: 적열(赤熱). 존 보리 맥주를 너무 많이, 붉은 코의 치료법. 코가 알코올 빛이 될 때까지 악마처럼 마신다. 그렇게 코가 물들다니 돈도 많이 없앴을 꺼야.


(79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꽝! 전복. 길바닥에 쿵하고 부딪쳐 떨어진 관. 부서져 활짝 열린다. 패디 디그넘이 불쑥 튀어나오자,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갈색 시의(屍衣)에 말린 시체가 먼지 속에 뻣뻣하게 뒹군다. 붉은 얼굴: 이제는 회색. 입을 쩍 벌리고. 어찌 된 노릇이야 물으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아. 열려 있으면 무섭게 보이지. 이어 내장이 빨리 부패한다. 뚫린 구멍을 모두 단단히 막아 두는 게 훨씬 나아. 그렇지, 역시. 밀초를 가지고. 늘어진 괄약근(括約筋). 모두 봉해 버려.


(8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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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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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그 그림에서 내가 본 그 녀석은 어디에 있었던가? 아하 그래, 사해(死海)에서지, 등을 물위에 띄우고, 파라솔을 펼쳐 들고 책을 읽으면서. 애를 써도 가라앉을 수 없지: 염분이 너무 짙기 때문이야. 물의 무게, 아니, 물 속에 있는 몸의 무게가 무슨 무게와 동등하기 때문이지? 아니면 용적이 중량과 동일하기 때문인가? 아무튼 그와 비슷한 어떤 법칙이야. 고등학교 시절의 반스 선생이 손가락 마디를 후두둑 꺽으면서, 가르쳐 주었지. 학교 교과과정. 후두둑 교과과정. 그대가 무게라고 말할 때 정말이지 그 무게는 무슨 뜻일까? 매초 매초에 32피트. 낙체(落體)의 법칙: 매초 매초에. 모든 물체는 땅에 떨어진다. 지구. 지구 중력의 힘, 그것이 무게인 것이다.


(59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5장. 목욕탕(로터스-이터즈)> 중에서

 

  * * *


그는 꽃을 바늘귀에서 정중하게 떼어, 그것의 거의 냄새 없는 냄새를 맡으며, 그걸 가슴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꽃의 언어. 아무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은 그걸 좋아하지. 아니면 남자들을 때려눕히기 위한 독(毒)의 꽃다발. 이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면서 그는 다시 편지를 읽었다, 여기 저기 편지의 낱말을 중얼대면서. 화난 튤립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남자의 꽃 벌주어요 당신의 선인장 만일 당신이 하지 않으면 제발 불쌍한 물망초 얼마나 제가 그리워하는지 제비꽃 사랑하는 장미꽃 언제 우리들 곧 아네모네 만나다 모든 심술꾸러기 밤 행랑 아내 마사의 향기. 그는 편지를 모두 다 읽은 다음 신문지에서 그걸 꺼내 옆구리 호주머니 속에 도로 넣었다.


(64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5장. 목욕탕(로터스-이터즈)> 중에서

 


 * * *


 

──── 오 하느님, 저희들의 피난처요 힘이시여……

 

블룸 씨는 말의 뜻을 포착하려고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영어다. 그들을 달래 주옵소서. 조금 기억이 나는군. 지난번 미사를 올린 이래로 얼마 만인가? 영광스런, 순결의 동정녀. 그녀의 배우자, 요셉. 베드로와 바울. 그것이 모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으면 한층 재미있지. 훌륭한 조직이야 확실히, 시계 테이프처럼 잘 움직이지. 고백 성사.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지. 그러고 나면 나는 모든 걸 당신에게 말해주겠소. 회개. 제발, 저를 벌주소서. 그들의 손에 쥐고 있는 위대한 무기야. 의사나 변호사보다 한층 더하지. 하고 싶어 죽고 못 사는 여인. 그러자 나는 쉬쉬쉬쉬쉬쉬. 그리고 당신은 샤샤샤샤샤 했던가? 그럼 당신은 왜 했소? 구실을 찾으려고 그녀의 반지를 내려다본다. 속삭이는 발코니 벽은 귀를 갖고 있지. 남편이 알면 깜짝 놀랄 거야. 하느님의 작은 희롱. 그런 다음 그녀는 밖으로 나온다. 살갗 깊이의 회개. 애교 있는 수치심. 제단의 기도. 아베마리아 그리고 성스러운 마리아. 꽃, 향기, 녹는 양초.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감춘다. 구세군 뻔한 흉내. 개심(改心)한 매춘부가 모임에서 간증(干證)을 할 테지. 어떻게 저는 주님을 발견했던가. 멍청한 자들 그들은 틀림없이 로마에 있지. : 자신들의 본색을 온통 드러내지. 그리고 그들은 또한 돈을 긁어모으지 않는가? 유산(遺産) 역시: 교구 사제에게 당분간 절대적으로 일임하는 거다. 문을 열어제치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나의 영혼의 휴식을 위한 미사들. 수도원과 수녀원. 저 퍼머나의 사제가 증인 석에서 진술을 하리라. 그를 위협해도 무용(無用). 그는 만사에 합당한 답변을 했던 거다. 우리들의 성모인 교회의 자유와 영광. 교회의 박사들: 그들이 무든 신학(神學)을 도안(圖案)해 냈지.

 

사제가 기도했다:

 

(68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5장. 목욕탕(로터스-이터즈)> 중에서

 

  * * *


자 목욕을 즐기자: 깨끗한 물통, 차가운 에나멜, 잠잠한 미온(微溫)의 흐름. 이것이 나의 육체다.

 

그는 자신의 하얀 육체가, 벌거벗은 채, 온기의 자궁 속에서, 녹고 있는, 향내나는 비누에 의해 기름칠되어, 조용히 떠서, 탕 속에 한껏 뻗어 있는 것을 미리 그려보았다. 그는 그의 몸뚱이와 사지(四肢)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한결같이, 가볍게 위로 떠서, 노란 레몬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배꼽, 육체의 꽃봉오리: 그리고 수풀 같은 까만 헝클어진 곱실 털이 떠있는 것을, 수천 자손의 무골(無骨)의 부(父)의 둘레를 흐르며 둥둥 떠 있는 털, 한 송이 나른한 꽃을 보았다.


(7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5장. 목욕탕(로터스-이터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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