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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 북스넛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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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고 어리석은 젊은이여
도회의 한 구역에서 방금 돌아온 젊은이여
안개 서린 전차 창문으로 비치는,
군중의 비참하고 불안한 모습들
사치스런 장소에 들어갈 때마다 밀려 드는 두려움
모든 게 너무 비싸기만 하다, 너무 고급스럽다,
자네의 미숙한 매너와 유행에 뒤진 옷, 그리고 서투른 행동을
사람들은 다 알아봤을 테지.

자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당신은 잘생긴 청년이군요,
당신은 건장하고 튼튼해 보입니다,
당신이 불행하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낙타 털 외투를 걸친 테너 가수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지
자네가 그의 마음속 두려움을 알고 그가 어떻게 죽을지 안다면

자네의 근심거리인 빨간 머리 여인,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는 마치 불 속의 인형처럼 보이고
그녀가 익살꾼들의 놀림에 깔깔대는 것을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테지.

자네를 떨게 하는 저택
눈 부신 아파트-
바로 이곳에서 기중기가 잡석을 치웠다네.

자네 차례가 오면 자네도 무언가를 소유하고 지키고
아무런 이유가 없을지라도 자부심을 느끼겠지.

소원은 이뤄질 테고, 그러면 자네는
연기와 안개로 짜여진 시간의 정수(精髓)를 갈망할 테지.

변치 않는 바다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단 하루에 불과한 무지개빛 인생.

자네가 읽은 책이 무슨 소용이겠나
답을 찾았지만 해답 없는 인생을 살았을 뿐.

자네는 남쪽 도시의 거리를 걷게 될 거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황홀하게 바라보겠지
간밤에 내린 첫눈이 쌓인 하얀 정원을.


체스와프 미워시(Czeslaw Milosz)-20쪽

처음에 피카소가 겪은 파리 생활은 목가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서두에 실린 미워시의 멋진 시를 읽을 때면 나는 특히 피카소가 생각난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으로서 그는 세계주의(cosmopolitanism) 풍조로 가득한 파리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혼란을 겪었다.-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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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듀어런스 -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프랭크 헐리 사진 / 뜨인돌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들 가운데 최초로 인간의 발걸음을 허용한 일은 1950년 프랑스 원정대의 모리스 에르조그에 의한 안나푸르나(8,091m) 정복이었다. 이보다 약 40년쯤 전인 1911년에는 아문센에 의해 남극점이 정복되었다. 뒤이어 1914년 8월에는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세계 최초로 남극 대륙 횡단에 도전한다. 탐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생존 드라마로 불리는 섀클턴의 영웅적인 모험담을 담은 '인듀어런스'라는 책은 9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것 같은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섀클턴이 극지 탐험용 배의 이름을 '인듀어런스'라고 정한 이유는 그의 집안의 가훈인 'Fortitudine Vincimus(인내로 극복한다)'에서 따왔기 때문이었는데, 이 배의 이름 그대로 '인듀어런스'호에 승선한 탐험 대원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으며, 수많은 역경 끝에 탐험 대원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인간의 불굴의 의지가 뛰어넘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의심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책이다.

섀클턴의 이야기는 리더십을 배우는 훌륭한 교범으로서도 수없이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에 관한 한 섀클턴의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으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가르쳐 주는 책도 쉽게 찾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가르쳐주는 리더로서의 자질들은 대략 리더로서의 완벽하리만치 풍부한 경험과 지식, 낙관적인 자세, 용기, 결단력, 불굴의 의지,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선각자적 기질, 탐험대 전원에 대한 깊은 신뢰와 부정(父情)과도 같은 따뜻한 인간애 등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처절한 시련을 겪은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였다는 점이었다.'는 말로 섀클턴의 리더십을 더한층 인상깊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형언할 수 없이 고통스런 모습들은 너무나도 많다. 영하 60도를 넘나들고, 시속 300km의 강풍이 몰아치고, 수개월동안 햇빛조차 볼 수 없는 기나긴 겨울이 지속되는 남극의 환경은 기본적인 바탕에 불과할 뿐이다. '인듀어런스'호가 부빙에 갇히고 마침내 침몰하고 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떠다니는 얼음 위에서의 수개월 또한 고난의 작은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항해를 떠난 이후 천신만고 끝에 497일만에 처음으로 '육지'에 상륙했으나, 거칠고 험하기 그지없는 그 곳 엘리펀트섬은,  식량도 다 떨어지고 난 뒤여서 서너달 동안에만 1,300마리의 펭귄을 잡아먹으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벅찬 환경을 제공할 뿐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곳에서 섀클턴은 중대한 발표를 한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자신이 5명의 대원을 이끌고 길이 6m에 불과한 배(제임스 커드호)를 타고 길이가 장장 1천2백80㎞에 달하며, 지구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해서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구조 요청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이었고, 그건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으나, 마침내는 그 섬에 도달했고, 또다시 섬의 반대편 스트롬니스 포경기지까지 가기 위해 3일분의 비상 식량과 밧줄 30m, 얼음용 손도끼를 챙기고 아무도 넘어본 적이 없는 해발 3,000m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넘어간다. 얼어죽을 것이 뻔한 진퇴양난의 암담한 상황에서 섀클턴은 빙산을 넘어 내려가기 위해 목숨을 건 대담한 결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끄러져 내려간다!" "우주 공간에 던져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쭈뼛 곤두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흥분이 되더니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에 상륙한 이후, 1차 대전 와중이라 몇 달 만에야 겨우 칠레 정부가 급파한 군함으로 엘리펀트 섬의 해안까지 도달한 새클턴이 초조한 모습으로 대원들의 숫자를 헤아렸고, 해안에 있는 인원은 정확히 22명이었다. "그는 쌍안경을 집어넣고 나에게 돌아섰다.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916년 8월 30일, 프랭크 헐리의 감광판과 필름이 있는 상자를 챙겨 군함에 승선한 그 날은 '인듀어런스'호가 항해를 떠난지 634일째 되던 날이었다. 당시 섀클턴의 심정은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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