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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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_박이문 (지은이) | 생각의나무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현상학의 핵심적인 문제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가 한 말이다. 이 책의 지은이 박이문 교수는 메를로-퐁티가 경험주의와 주지주의에 대해 행했던 비평이 옳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철학적 문제 중 하나인 '언어 이전의 언어적 의미'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은이가 주장하는 '존재-의미 매트릭스(onto-semantical matrix)'라는 개념의 도입과 그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본 논문()의 중심 논지다.

 

 

책은 3 챕터로 되어 있다. 1,2 챕터는 실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본성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3 챕터는 지은이가 메를로-퐁티가 불충분한 상태로 멈췄던 지점을 넘어서서 주제를 더욱 더 발전시켜가려는 시도를 펼쳐나가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한 주관과 직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관계 속에서 주관은 '표현하는 자 (expressor)'이며, 반면에 객관은 '표현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인식되어야 한다."

 

 

메를로-퐁티는 지각된 대상은 필수적으로 주관(의식)과 관련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는 곧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내적으로 의식과 연관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 버클리가 말했듯이 심지어 미지의 사막이라도 최소한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관찰되어야 한다. 즉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의 나 자신, 내가 그것을 순순하게 정신적 경험에서 지각할 때다. 대상(사물)은 그것을 자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 퐁티

 

 

절대적인 엄밀성과 확실성을 가지고 선객관적 세계 또는 체험세계에 대해 완전하게 기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퐁티의 현상학을 설명하면, 선객관적 세계에 대한 절대적 기술, 다시 말해 기술을 행하는 주체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무(nothing)를 통합하는 기술의 불가능성은 바로 지각의 구조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지각은 지각하는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 지각된 대상을 함께 포함한다. 선객관적 세계에 대해 절대적인 엄밀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기술이 불가능 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주체의 구조로부터 발생하며, 두 번째 이유는 대상의 구조에서 발생한다. 퐁티는 지각은 이미 주체와 그의 세계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다.

 

"모든 지각, 그리고 그것을 전제하는 모든 행위, 즉 몸을 사용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미 원초적으로 표현이다. 이러한 원초적 표현은 어딘가에서 그것들의 의미와 용법으로 주어지는 표현된 기호라는 것을 대체하는 이차적 행위가 아니라, 최초에 기호로써 기호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작용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배열과 구성을 통해 표현된 것이 그것들 속에 거주하는 것이며, 의미가 발생하는 그 즉시 그 의미 자체가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닌, 다시 말해 그 의미를 하나만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이식하는 것이고, 제도나 전통을 발견하고 질서를 새로이 여는 것이다."

 

 

퐁티에게 철학이 표현이라면, 지각과 철학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 화자의 사고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 인간 집단 혹은 사회적 집단과 그것의 역사 간의 관계와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표현'으로써의 지각은 지각대상에 독립적이지 못하다. 지각된 혹은 인식된 대상을 주체와 그의 세계 둘 다의 표현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퐁티는 예술현상학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예술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들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못하고 있다. 미와 추에 대한 정의. 미적 판단의 기준 등과 같은 예술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그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오직 미적대상으로써의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행위 사이의 관계, 즉 미적 경험에서 발견되는 의식과 그 대상 사이의 관계였다.

 

 

지은이는 '존재론적' 사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there is)'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길 원한다. 표현된 것 또는 인식되는 과정 중의 대상의 존재론은 무엇인가? 앎의 내용을 '있는 것'과 동일시해야 하는가? 또한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진술하기 위해 이러한 성격 규정을 넘어서야 하는가? 에 대해 답해보고자 한다. 그 내용이 챕터3에 실려 있다. 궁극적 실재는 '표현하는' 과정이고 '있는 것(being)'은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표현의 존재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은이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장점이라는 언급도 함께 한다.

1) 이론적 경제성 : 표현의 존재론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 심지어 잠재적 현상들까지도 단일한 실재로 해명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일원적 존재론이기 때문에 설명될 수 없는 사물들의 수는 최소한으로 남겨진다. 이런 점에서 이는 설명될 수 없는 하나 이상의 실체들을 남겨두는 이원론이나 다원론보다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 2) 유물론적 존재론 또는 관념론적 존재론, 심지어 스피노자나 사르트르의 일원론에 비해 '표현의 존재론'은 모든 형태의 일원론들이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역설에서 벗어나는 데 유리하다. 3) 마지막 장점은 '표현의 존재론'이 가설이나 그 자체로는 진리임을 밝히거나 설명 할 수 없는 설명을 위한 원리로 제안되거나 가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보다 '표현의 존재론''의식은 필연적으로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현상학적 근거와 경험의 다양한 양태들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이라는 지반 위에 세워진다. '표현(expressing)'개념은 하나의 가설이거나 단순하게 임시방편으로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표현'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책을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메를로-퐁테 철학에 나타난 '표현'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인 탐구다. 존재론으로 여러 가지 철학적 난제들을 풀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들을 열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 든다. '존재론'적 사유가 결국 철학의 문을 들어서기 위한 첫 발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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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ART & ESSAY 1
이연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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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에 괴물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괴물성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안감을 몰아내기 위해 괴물의 이미지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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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ART & ESSAY 1
이연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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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_ 이연식 (지은이) | 은행나무

    

 

인간이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에 괴물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괴물성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안감을 몰아내기 위해 괴물의 이미지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일까?

 

 

두말 할 나위 없이 괴물은 이미지다. 형상을 지닌다. 15세기 그뤼네 발트가 그린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란 그림과 설명부터 시작된다. 괴물이 유혹을 한다는 것은 '얼굴 없는 미녀'라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일단 괴물이 유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괴물의 이미지나 형상을 보면 우선 긴장하며 움츠러들 것이다. 경계하고 도피하는 수순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림에는 하나같이 '유혹'이 붙는다. 아마 그림 속에서 당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 눈에는 괴물의 형상이 아닌 '유혹' 그 자체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지은이는 '괴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괴물은 나와 다른 것, 바깥 세계의 존재, 혹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것을 일컫고, 스스로 가늠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내면의 충동과 광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안팎에서 존재하며 작용하는 불가항력의 힘이 괴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림 속에 제 모습을 나타낸 괴물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 내면과 바깥을 탐구하는 일이며, 동시에 인간의 문화에 대한 탐구이다." 세이렌과 스핑크스는 수많은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앞 다투며 그림을 그려냈다. 세이런은 나중에 인어공주로 변신해서 이미지 전환을 한다. 귀스타브 모로의 스핑크스는 깃털 달린 날개를 위로 바짝 치켜들고, 머리는 마치 불꽃처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묻는다. 대체 저 머리는 누가 저렇게 치장해 주었다는 말인가? 별게 다 걱정이다. 그러나 나도 궁금하다. 화가에게 묻고 싶다. 슈투크의 스핑크스는 알몸이다. 암사자처럼 엎드려 있다. 남성들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의지가 온 몸에 충만해있다.

 

 

()은 상서로운 동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역시 괴물이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은 다르다. 동양에서 용은 구름과 비를 부리는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용이 번개와 천둥, 파도와 폭풍우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서양의 용은 대개 거대한 몸집에 박쥐의 날개가 달렸고, 꼬리에 가시가 달린 도마뱀 또는 뱀의 형상을 지녔다. 입에서 불길을 토하고 코에서 유독한 가스를 뿜어낸다. 괴물의 또 다른 이름은 '악마'. 기독교에서 악마는 일반적으로 사탄(satan)이라고 불린다. 그림 속 악마의 이미지는 만만치 않게 많다. 그래도 앞서의 세이렌이나 스핑크스에 비하면 평준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악마는 하나님에게 반항했다가 추락하면서 흉측한 모습이 된다. 손발은 짐승의 것으로, 손톱은 갈고리 손톱으로, 코는 새의 부리로, 깃털 날개는 박쥐와 같은 가죽 날개로 바뀌었다. 악마의 몸뚱이가 검은 것은 빛이 결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날개는 필수다. 그래서 악마는 잘도 돌아다닌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그림을 보면 나의 심경까지 복잡함으로 채워진다. 유배지에서 오래도록 고생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정치범과 그를 맞는 가족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주인공의 홀쭉하고 어두운 얼굴에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쁨과 안도감,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엉켜있다. 아마도 가족들은 오랫동안 가장이 없는 삶에 몸과 마음을 적응시켜 왔음에 틀림없다. 흉터는 남았지만, 고통은 사라진 듯하다. 그런데 가장이 갑자기 돌아왔다. 가족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기뻐하거나 낯설어 하거나 불안해한다. 노모는 기쁨과 놀라움에 사로잡혀 마치 유령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괴물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여기 없어야 할 존재가 여기 있으면 괴물이다."라는 지은이의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

 

 

인간이 만든 조각이 생명을 얻은 경우도 이 책의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전설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이해하려면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새하얀 상아 미녀가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사람이 된다. 해피 엔딩이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종종 여성을 피조물처럼 여기는 남성의 욕망을 가리키는 장치가 된다. 버나드 쇼의 희곡[피그말리온]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나,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에서 나오는 여주인공이 그 모델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이 책엔 95개의 도판(그림)과 수십 권의 참고문헌이 들어있다. 지은이의 열정이 느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괴물은 그저 이미지에 불과할까? 아니 설령 이미지로 머물지언정 우리 주변엔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 없는 곳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 든다. 어떤 형상을 하고 있던 우리 마음에 괴물로 그려진다면 괴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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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 암,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에서 임플란트까지, 개정판
허현회 지음 / 라의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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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환자 또는 병원 쇼핑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서 균형감을 잡기에 좋을 책인데, 그 사람들 손에 들리기는 힘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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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 암,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에서 임플란트까지, 개정판
허현회 지음 / 라의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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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_허현회 (지은이) | 라의눈

 

 

최근 인터넷에서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한 기사가 하나 있었다. '그릇된 의료 현장 한 부분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인터뷰이는 서울 아산병원 이춘성 교수(정형외과)이다. 그는 척추 명의로 알려져 있다. 이교수에게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1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런 그가 최근 출간한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손'이라는 책에서 의료계의 '장삿속' 수술에 대해 내부 고발을 했다.

 

 

"척추 수술을 많이 하고 성공률이 어떻다고 자랑하는 병원은 일단 의심하면 된다. 허리디스크의 8할은 감기처럼 자연적으로 낫는다. 수술 안 해도 좋아질 환자에게 돈벌이를 위해 수술을 권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새로운 시술법'치고 검증된 게 없다. 보험 적용도 안 된다. 결국 환자 입장에서는 돈은 돈대로 버리고, 몸은 몸대로 망가진다." 이교수의 말이다. 기자가 묻는다. 그들도 같은 전공 의사로서 나름대로 판단이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양심을 속이고 한다. 그렇게 세 번쯤 반복하면 자신도 그런 시술이 정말 옳다고 믿는다. 사람은 합리적인 게 아니라 자기 합리화를 하는 존재라고 하지 않나."

 

 

이 책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의 저자 허현회는 의료인은 아니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사 기자를 거쳐 시민단체와 정당에서 활동했다고 소개된다. 스스로 의학 논문 및 전문 서적, 의학 저널 등 놀랄 만큼 방대한 자료를 독파하고, 꼼꼼한 취재와 추적 그리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그의 글과 논리는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라는 평이 추가된다. '놀랄 만큼'이라는 표현은 지은이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깊이 있는 글은 나 역시 인정한다. 의료인이 아니기에 내부 고발은 아니다. 의료인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부분도 당연 해당이 안 된다. 그냥 '고발'이다.

 

 

책 제목에도 거론 된 81가지의 타이틀만 봐도 매우 과감하다. '의사들이 오히려 죽음을 앞당긴다.', 의사는 병의 진짜 원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의사들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의사들은 잘못 된 식이요법을 강요한다.', '의사들은 소금과 합성 나트륨도 구분 못 한다.' '등등 저자에 의하면 '의사'들이란 무식하고,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존재들이다.

 

 

후폭풍을 감안 한 듯 주로 외국의 사례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의료인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알 권리에 해당된다. 이제껏 병원에서 전문가 그룹인 의사들의 전유물이었던 모든 의료 행위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전반적으로 '고발' 분위기로 가다 보니 대안이 없는 것이 아쉬운 감은 있지만, 저자가 의료인이 아닌지라 그것까지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을 뿐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질병도 많아지고, 의료비 지출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케이블 TV에선 "100세까지 암 보험" 이 인기 상품이다. 연기자 이순재에게 물어보면 된다. 아예 가입 연령이 65세 부터다. 오래 사는 것이 다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데, 늘어나는 것은 요양원이다. 정확한 건강 정보가 더욱 필요한 요즈음이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의료인의 입장에서 인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저자는 CTMRI의 위해성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붙이고 있다. 책에서 언급이 안 된 부분은 더 심각하다. 의사, 보험회사, 건강보험 등이 맞물려 있는 예민한 사항이다. 어느 한 쪽에서만 정도를 가겠다고 선언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정밀검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의료 행위이나, 단순히 진단서 하나를 제대로 떼기 위해서 CTMRI를 찍어야 하는 현실은 앞으로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은 또 어떤가. 손실된 시간과 재정 중 금전적인 지출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보험회사에 제출하는 진단서나 치료 확인서엔 보다 확실한 진단명을 원한다. 그러다보니 정밀검사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표현엔 깊이 공감하고 있다. "태풍의 진로와 영향력을 기상학자가 정확하게 예측 할 수 없는 까닭은 모든 태풍이 동일하게 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풍이 기압, 기류, 산맥 등 다른 요소를 만나면서 크게 변하듯이 치료도 환자들마다 크게 달라져야 하지만 현대 의학은 모든 질병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모든 환자에 대해서 동일한 치료를 한다. 환자들은 모두 면역체계, 증상, 환경 등이 다른데도 같은 것으로 취급하려는 오류가 현대 의학의 잘 못 된 방향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적인 거대 제약회사와 재물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의료인들과 언론을 고발하고 있다. 재물에 대한 애정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지만, 내 이웃의 건강을 담보로 그 욕심의 칼날이 그렇잖아도 힘들고 어려운 몸과 마음 앞에 춤을 추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의사를 뜻하는 영단어 'Doctor''가르친다'라는 뜻의 희랍어 'Docere'에서 나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르침'은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무엇을 가르쳐 준답시고 입을 열기 전에 우선은 환자나 보호자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병원의 규모를 떠나서 여전히 환자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 안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만 몇 마디 던지고, '다음 환자'를 부르는 의사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안 먹는 약이라고 마구 처방을 내는 의사보다는 약은 최소한으로 쓰면서 일상의 조언을 많이 해주는 의사를 만나야 될 것이다. 수술이 최상의 방법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의사가 나의 주치의가 되길 소원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혼란스러움이 충만해질 것이다. 특히 영, 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백신을 맞춰야 해 말아야 해?' 당연히 고민이 될 수 있다. 의사가 하라고 하는 정밀검사나 처방전을 받아야 해 말아야 해? 특히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내 앞으로 떨어지는 처방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 리뷰를 쓰기 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묻는다. 아내 친구 아무개가 골다공증이 심하다고 진단이 나왔는데 약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고 하니 의사가 일주일에 한 번 맞는 주사약을 처방 주겠다고 했단다. 주사를 맞아도 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나에게 물어봐 달라고 전화가 왔단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말인 '골밀도 검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의사들이 처방하는 칼슘은 오히려 해가 된다.', '칼슘 섭취 권장량은 낙농업자가 만들었다.', '의사들은 골밀도와 골강도 차이를 모른다.' 등등의 내용들이 잠시 나의 뇌리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부작용은 좀 있을 수 있지만, 부작용을 의식해서 안 맞을 수는 없지. 그냥 처방대로 따르라고 해요. 대신에 매일 하루 한 시간 씩 걷는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고, 칼슘이 많이 들어간 음식물을 섭취하라고 하고, 근육이 약해지면 뼈도 약해지니까, 다른 운동은 못해도 워킹은 꼭 필요해."

 

P.S

 

저자의 의학 지식은 '놀란 만도'하다. 300 여 개의 참고 문헌을 스터디 하면서 뽑아낸 이야기들인지라 잘 못 된 부분이 있다면 참고 문헌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른 대목이 스치듯 눈에 들어왔다.

 

"흔히 초음파 검사 할 때 바르는 젤은 고주파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한 것이다." (p051)

 

이는 저자가 잘 못 알고 있는 (잘 못 인용하고 있는)부분이다. 진단과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초음파기기를 인체에 적용 할 때, 공기 중에선 초음파가 통과가 안 되기 때문에 초음파와 피부 사이에 젤이나 오일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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