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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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_이윤하 / 허블

 

 

기엔 제비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려 애썼다. 안료를 섞어 만든 물감을, 손에든 붓으로 가볍게 찍었다.” 주인공 기엔 제비가 예술성의 널찍한 시험장에서 다른 화가들 틈에 끼어서 시험을 보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주요 주제를 묘사하는 능력을 확인해서 당락을 결정합니다. 오늘 이미 세 번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대나무 그림부터 풍경, 인물화를 그렸는데 지금은 마지막이자 가장 어려운 시험인 꽃 그림입니다.

 

주인공 제비는 꽃 그림을 그리려 하면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꽃이 담은 의미에 따라 화가의 마음을 짐작하는 경우도 있지요. 특히 제비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제비의 조국인 화국은 6년 전, 라잔 제국에 점령당해 ‘14행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나라이름도 없어지고 라잔 제국의 여러 지배영역 속 한 곳에 불과하게 됩니다.

 

어쨌든 시험을 잘 치루긴 했으나, 문제가 있습니다. 제비는 지금 절박한 상황입니다. 뭣 때문에 빚을 졌는지 모르지만, 사채빚이 많아서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갑니다. 자칫하면 사채업자들에게 큰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비가 빨리 돈을 벌어야 할 이유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림을 다 그린 후, 서명란에 그의 화국이름인 제비대신에 라잔국 이름인 테레사오 트세난이라고 적습니다. 제비는 이 서명(개명) 때문에 유일한 피붙이이자 뼛속까지 독립군인 언니 봉숭아와 멀어지게 됩니다. 시험결과는? 안타깝게 불합격입니다.

 

차후에 이 소설을 읽을 독자를 위해 관독(觀讀)포인트를 알려드립니다. 위에 언급된 화국이란 나라는 조선입니다. 라잔국은 일본입니다. ,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대략 1920년대 중반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작가는 조선을 화국으로, 일본을 라잔으로 이름만 바꿨습니다. 소설 속엔 궁궐, 서대문 등 낯익은 정경과 이름도 등장합니다.

 

그나저나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건가요?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저 손만 잡고 가자는 건가요? 북리뷰에서 정치적 사안을 최대한 자제하는 편인데, 한일관계는 단순 정치적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한국 민족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부가 한일관계를 다룸에 느낀 개인적인 의문점은 두 가지입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고 전범기업이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을 시킨 것에 대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을 이번 정부가 없던 일로 돌리는 나쁜 결정을 한 것을 이해 못하겠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안 보이는데, 터무니없는 관용을 베풀면서 우리 잘못도 있소라는 식으로 가는 건, 어느 나라 방식입니까? 개인적으로 그리하고 살아간다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지만(개인적으로 그리 배포가 크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습니다)국운이 걸린 문제를 나무 경솔하게 처리하는 듯합니다. 미안합니다. 잠시 흥분했습니다. 전혀 나의 개인적 소견입니다. 한일문제는 이 소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와 무관하지 않기에 언급했습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시험에 떨어진 제비는 우여곡절 끝에 라잔국에서 운영하는 방위성에 취직하게 됩니다. 제비는 그곳에서 아라지라는 이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용을 만납니다. 제비의 역할은 그 용 아라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용을 채색시키기 위해 이 소설 제목으로 쓰인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가 필요하고, 용을 입맛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마법 문양(명령어로 이해해야 할 듯)을 위해 애씁니다. 제비는 그 용을 대하면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아라지를 라잔국이 마음대로 사용하게 할 경우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화란민족인데, 언제 어디까지 방위성에 협조를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소설의 후반부 흐름은 다소 빨라집니다. 제비가 그곳 방위성에서 만난 결투사 베이와의 애증, 언니 봉숭아와의 관계, 전투 등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소설은 서지 분류상 외국 과학소설, 미국문학으로 분류됩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작가 이윤하가 한국계 미국인 SF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 편인데 작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더군요. 작가가 쓴 소설 중 세계적 베스트셀러도 있구요. 원서는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에 소개되면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 나 나름대로 환상역사소설이라고 이름붙입니다. 참 그리고 이 소설엔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대세입니다.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나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갈등을 그린 소설을 백합소설이라고 하던가요? 대충 그런 분위기입니다. 가독성이 좋은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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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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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는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에 소개되면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 나 나름대로 「환상역사」소설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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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 HEAR - 듣기는 어떻게 나의 영향력을 높이는가?
야마네 히로시 지음, 신찬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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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는 듣기를 잘 하라는 뜻이다. 간혹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제대로 ‘히어’하면 ‘히어로’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잘 듣는 입장인가 점검해보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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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말하다 - 무엇이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4
라르스 스벤젠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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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 내가 내 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작은지 확인해보는 시간도 된다. 자유보다 통제가 항상 우위에 있다. 단지 그 통제를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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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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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 초월 2

_김희선 / 허블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사라졌다.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엔 아버지의 작업장인 시계방에서 주무신 적이 많았다. 아버지가 집에 안 오시는 것에 내심 가족들은 편안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집안 공기에 긴장감이 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한 동안 집에도 안 오시고, 시계방에도 안 계셔서 걱정이 많이 된다. 아들은 아버지가 시계방에서 사라지기 전 몰두했던 한 실험을 생각한다. 우연히 아버지의 손에 들어온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소책자에 실린 내용들을 실제로 응용해서 실행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겉으로 보면 시계공은 시계를 다루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멈춰진 시간, 앞서가는 시간, 늦게 뒤따라오는 시간들을 표준시에 맞추기 때문이다. 사라진 시계공은 과거로 갔을까? 아니면 미래로 갔을까?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군가에겐 과거이자 미래도 될 것이다. _공간서점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들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다. 실존인물들에 픽션이 가해져서 더욱 흥미롭다. 유리 가가린도 소환된다.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19614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의 상공을 일주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한 그 유리 가가린. 미국이 소련에지지 않기 위해 우주비행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던 그. 그는 소설에서 과 관련된 이야기로 등장한다. 우주공간에서 가가린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가 주제이다. 그 과정이 작가에 의해 치밀한 작업으로 전개된다. _꿈의 귀환

 

도시생활에 지친 한 남자가 있었다, 결혼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아내와 함께 산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귀농과 귀촌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운명처럼 한 메일을 받는다. “메일 제목 : 무료로 들어와 살 수 있는 농가 주택을 소개합니다.” 남자는 아내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도시 생활을 접고 그 벽촌의 농가로 들어간다. 마을이름도 그 유명한 월든이다(벽촌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지만).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수시로 수리하던 중, 뜻밖에 세 노파의 방문을 받는다. 세 노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러나 남자는 꿈을 꾼다. ‘악몽이다.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가? 잘 모르겠다. _악몽

 

 

자케 드로(1721~1790)는 실존인물이다. 프로이센 태생의 기계공학자이자 시계기술자이다. 그는 태엽으로 움직이는 자동인형 오토마토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기계장치와 예술을 융합한 여러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혁신이었다. 그가 고안한 뻐꾸기시계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자케 드로가 가깝게 우리는에서 살아났다(비록 태엽에 의한 움직임이지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어서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일하면 힘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냐는 거예요. 뭐랄까, 자기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기계나 부속품이 된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P.227 가깝게 우리는

 

김희선 작가의 작품속에서 키워드를 찾는다면 시간, 우주, 꿈 등이 될 것이다. 각 작품마다 치밀하게 구성된다. 현실과 이상을 담은 하나의 건물을 보는 듯하다. 문득 내가 처한 공간에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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