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죽음 -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존엄함을 잃지 않는 품격이 있는 죽음을 위하여!
나가오 카즈히로 지음, 유은정 옮김 / 한문화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평온한 죽음 -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존엄함을 잃지 않는 품격이 있는 죽음을 위하여!

_나가오 카즈히로 (지은이) | 유은정 (옮긴이) | 한문화

 

 

 

여러 해 전 임종환자의 얼굴 스냅사진과 글들을 모은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이라는 책입니다. 독일의 전문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23인의 환자들을 만난 기록입니다. 인생의 마침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마지막 사진과 함께 전해주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을 보면서 살아있음의 의미와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인의 생전 모습도 함께 실려 있었지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눈을 감으신 대부분의 사진들이 마치 잠자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더러 생존해 있을 때보다 더 힘든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육신의 고통이었을까요? 마음의 고통 때문에 그랬을까요?


 

'죽음'이란 주제는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니지요. 죽음은 마치 생일날 케익 위에 켜진 많은 촛불이 후~ 한 번에 꺼지듯 그렇게 꺼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명예, 사랑, 미움, 꿈과 희망 등에 켜져 있던 불들이 그저 한 숨 들이쉬고 내쉬는 한 호흡에 꺼지고 말지요. 사는 동안에도 품위 있게 살아야겠지만, 떠날 때도 품격있게 떠날 수 있어야겠지요. 이 책은 실제 임상에서 수없이 많은 임종환자들을 대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자제하고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존엄함을 잃지 않으며 평온하게 죽을 수는 없는가?" 에 대한 질문을 놓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앞에 실린 '편집자의 말'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유도합니다. 62세의 어머니를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으로 앞서 가시게 하면서 일어났던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가슴 저리게 그려가고 있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깁니다. 내게도 나의 가족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지요. 이 책의 키워드는 둘입니다. 종말기 환자에게 비용이 얼마나 들던 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다해보자는 '연명치료''재택치료' 또는 그 대안인 '호스피스 병동' 치료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있는 일본과 한국에선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국 우리 각자가 임종을 앞두고 미리 깊이 생각하고, 가족들과 충분한 협의와 함께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듭니다. 이 책의 지은이 나가오 카즈히로의 생각을 미리 알려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한국이나 일본은 유교문화권의 영향으로 효()에 대한 의식이 높습니다. 종종 부모님께 최고의 의료 혜택을 받게 하고 싶다는 장남을 만납니다. 과연 무엇이 종말기 최고의 의료일까요? 대개는 풀코스 연명치료를 쉽게 떠올리겠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종말을 맞을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최고의 효도인 것이지요. 이 사실을 자식 세대에 전하는 것도 이 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도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요.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해보는거야" 냉정하게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의료진의 역할이지요. 물론 문자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의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구요. 가족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경제적, 시간적인 것에 국한됩니다. 그리고 내심 표현은 안하지만, 주위 사람들한테 뒷말을 듣기 싫은 마음도 있겠지요. "돈 아끼려고 저런다"는 말.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비몽사몽간에 겨우 하루에 몇 번 잠깐씩 가족들의 얼굴을 보게 되겠지요.

 


지은이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기왕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마당이니까, 좀 더 확실하고 명료한 단어를 옮겨봅니다. '평온사', '자연사', '존엄사'입니다. 지은이는 이 세 단어를 동의어로 생각해도 좋다고 합니다. 한편 '안락사'는 불치와 말기인 환자들의 희망으로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처치를 말하기 때문에 존엄사와 안락사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연명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연명치료에 집중하느라 완화치료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많은 환자들이 평온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다.“

 


책에는 평온사를 위한 10가지 조건이 실려 있습니다만, 제목만 열거해선 선뜻 이해가 안 될 부분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국내 사정상 재택요양은 아직은 일본과 차이가 있습니다. 방문요양 같은 경우도 뇌졸중 후유증이나 치매 환자에만 치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 국내에도 복지 분야 재정지원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거주지 주변에서 많이 시행되곤 있으나, 말기암 환자들은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형편입니다. 물론 병원에서 하는 치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받아들이면 곤란하겠지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관심도 미리 갖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책 말미엔 2012년 기준 전국 44곳에 위치해 있는 '보건복지부 호스피스 완화치료 지원 기관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의 편집부에서 유용한 정보를 실어줬다고 판단됩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이다."

 


막상 내 몸이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내 가족 내 부모가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병으로 진단되었을 때는 차분하게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환자는 이미 판단력과 분별력이 상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총기(聰氣) 있을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미리 해두는 것이 곧 평안한 삶, 지혜로운 삶이라는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현실적인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지은이가 사례로든 수많은 환자들 중(주로 재택 치료로 임종을 맞이한 환자)딱 한 분을 소개하고 싶군요. 그 이유는 굳이 설명 안하겠습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서재에 틀어박혀 오로지 책만 읽었던 말기암 환자가 있었다. 곧 죽을 텐데 이제 와서 독서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진정한 존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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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새로운 과학기술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지침서
이준승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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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균형감각과 비전을 가지고 문화와 시스템 측면에서 우리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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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새로운 과학기술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지침서
이준승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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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새로운 과학기술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지침서

     _이준승 (지은이) | 생각의나무

 

 

 어떤 눈으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사물은 달라진다.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반드시 한 곳에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 이런 관점, 저런 관점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균형 잡힌 일상이라고 생각 든다.

 

 

이 책은 연구 현장의 과학자이자 과학기술정책 기획자인 이준승 박사의 혜안과 고민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작은 성과에 급급했던 '조급한 성과주의'를 벗어나 대혁신을 위한 '슬로 사이언스'를 외친다. 지은이는 균형감각과 비전을 가지고 문화와 시스템 측면에서 우리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나라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와 과학기술의 흥함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 나라가 융성할 때 과학기술도 찬란하게 꽃을 피웠던 것이다. 이는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스웨덴 패러독스(Swedish Paradox)가 있다. 볼보자동차로 유명한 유럽의 대표 강소국 스웨덴은 GDP3.75%를 연구개발에 쏟을 정도로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적 열정이 높다. GDP 대비 연구개발비는 단연 세계최고수준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한 기술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스웨덴이 좋은 기술을 기업의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 몹시 서투르다는 것이다. 이를 스웨덴 패러독스라 부른다. 지은이는 투자규모 면에서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한국이 스웨덴과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고 원전 수출과 같은 경제적 결실을 맺으며 또한 그런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R&D(Research and Development)투자가 양적, 학술적 성과로만 머물지 않고 일자리와 기업의 창출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혁신 주체간의 연결과 지식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너 나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빠름이 미덕이 되는 세태의 흐름에 역류현상이 있다. 바로 '슬로 라이프'(Slow Life)'이다. 슬로 라이프 운동을 이끄는 일본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츠지 신이치는 이러한 삶을 무한경쟁, 속도전, 대량생산과 소비, 패스트 이코노미에 맞서 느림, 친환경, 지속가능 발전을 화두로 삼는 삶이라고 말한다. 종종 느린 것은 곧 뒤처짐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풍토에서 '슬로 라이프'를 지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비즈니스에선 터부시될 수도 있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 속에서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슬로 라이프'에서 '슬로 사이언스'가 나온다. 진정한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최종 연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과학자의 마인드로 돌아가 지속가능한 친환경 과학기술의 구상과 창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가뭄과 홍수, 폭염, 생태계 파괴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면서 인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경제 손실이 매년 세계 GDP 5%를 차지할 만큼 세계 경제는 환경 파괴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삶의 질 재고, 중국 및 인도 등의 급속한 산업화가 맞물리면서 20세기 에너지 수요는 급격히 증가해왔다. 그 외에도 광물 자원과 원자재의 수급 불안은 국제 사회의 주요한 이슈다.

 

 

지은이는 이런 과제를 맡아 해결해야 할 위치와 역할을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의 개발을 담당하는 과학자에게 두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에게 과학적 윤리, 사회적 책임, 신뢰 등에 책임을 져주길 원하고 있다. 즉 과학자 및 과학기술 관련 기관들은 미래사회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수요와 사회적 책무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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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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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메를로-퐁테 철학에 나타난 ‘표현‘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인 탐구다. 존재론으로 여러 가지 철학적 난제들을 풀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들을 열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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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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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_박이문 (지은이) | 생각의나무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현상학의 핵심적인 문제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가 한 말이다. 이 책의 지은이 박이문 교수는 메를로-퐁티가 경험주의와 주지주의에 대해 행했던 비평이 옳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철학적 문제 중 하나인 '언어 이전의 언어적 의미'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은이가 주장하는 '존재-의미 매트릭스(onto-semantical matrix)'라는 개념의 도입과 그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본 논문()의 중심 논지다.

 

 

책은 3 챕터로 되어 있다. 1,2 챕터는 실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본성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3 챕터는 지은이가 메를로-퐁티가 불충분한 상태로 멈췄던 지점을 넘어서서 주제를 더욱 더 발전시켜가려는 시도를 펼쳐나가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한 주관과 직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관계 속에서 주관은 '표현하는 자 (expressor)'이며, 반면에 객관은 '표현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인식되어야 한다."

 

 

메를로-퐁티는 지각된 대상은 필수적으로 주관(의식)과 관련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는 곧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내적으로 의식과 연관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 버클리가 말했듯이 심지어 미지의 사막이라도 최소한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관찰되어야 한다. 즉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의 나 자신, 내가 그것을 순순하게 정신적 경험에서 지각할 때다. 대상(사물)은 그것을 자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 퐁티

 

 

절대적인 엄밀성과 확실성을 가지고 선객관적 세계 또는 체험세계에 대해 완전하게 기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퐁티의 현상학을 설명하면, 선객관적 세계에 대한 절대적 기술, 다시 말해 기술을 행하는 주체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무(nothing)를 통합하는 기술의 불가능성은 바로 지각의 구조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지각은 지각하는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 지각된 대상을 함께 포함한다. 선객관적 세계에 대해 절대적인 엄밀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기술이 불가능 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주체의 구조로부터 발생하며, 두 번째 이유는 대상의 구조에서 발생한다. 퐁티는 지각은 이미 주체와 그의 세계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다.

 

"모든 지각, 그리고 그것을 전제하는 모든 행위, 즉 몸을 사용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미 원초적으로 표현이다. 이러한 원초적 표현은 어딘가에서 그것들의 의미와 용법으로 주어지는 표현된 기호라는 것을 대체하는 이차적 행위가 아니라, 최초에 기호로써 기호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작용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배열과 구성을 통해 표현된 것이 그것들 속에 거주하는 것이며, 의미가 발생하는 그 즉시 그 의미 자체가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닌, 다시 말해 그 의미를 하나만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이식하는 것이고, 제도나 전통을 발견하고 질서를 새로이 여는 것이다."

 

 

퐁티에게 철학이 표현이라면, 지각과 철학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 화자의 사고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 인간 집단 혹은 사회적 집단과 그것의 역사 간의 관계와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표현'으로써의 지각은 지각대상에 독립적이지 못하다. 지각된 혹은 인식된 대상을 주체와 그의 세계 둘 다의 표현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퐁티는 예술현상학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예술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들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못하고 있다. 미와 추에 대한 정의. 미적 판단의 기준 등과 같은 예술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그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오직 미적대상으로써의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행위 사이의 관계, 즉 미적 경험에서 발견되는 의식과 그 대상 사이의 관계였다.

 

 

지은이는 '존재론적' 사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there is)'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길 원한다. 표현된 것 또는 인식되는 과정 중의 대상의 존재론은 무엇인가? 앎의 내용을 '있는 것'과 동일시해야 하는가? 또한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진술하기 위해 이러한 성격 규정을 넘어서야 하는가? 에 대해 답해보고자 한다. 그 내용이 챕터3에 실려 있다. 궁극적 실재는 '표현하는' 과정이고 '있는 것(being)'은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표현의 존재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은이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장점이라는 언급도 함께 한다.

1) 이론적 경제성 : 표현의 존재론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 심지어 잠재적 현상들까지도 단일한 실재로 해명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일원적 존재론이기 때문에 설명될 수 없는 사물들의 수는 최소한으로 남겨진다. 이런 점에서 이는 설명될 수 없는 하나 이상의 실체들을 남겨두는 이원론이나 다원론보다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 2) 유물론적 존재론 또는 관념론적 존재론, 심지어 스피노자나 사르트르의 일원론에 비해 '표현의 존재론'은 모든 형태의 일원론들이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역설에서 벗어나는 데 유리하다. 3) 마지막 장점은 '표현의 존재론'이 가설이나 그 자체로는 진리임을 밝히거나 설명 할 수 없는 설명을 위한 원리로 제안되거나 가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보다 '표현의 존재론''의식은 필연적으로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현상학적 근거와 경험의 다양한 양태들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이라는 지반 위에 세워진다. '표현(expressing)'개념은 하나의 가설이거나 단순하게 임시방편으로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표현'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책을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메를로-퐁테 철학에 나타난 '표현'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인 탐구다. 존재론으로 여러 가지 철학적 난제들을 풀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들을 열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 든다. '존재론'적 사유가 결국 철학의 문을 들어서기 위한 첫 발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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