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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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기 전에 몇 가지 오해가 있었다. 우선 대통령의 연설은 비서들이 써주는 연설문을 그저 읽기만 하는 줄 알았다. 실내가 아닌 열린 공간에서 연설문을 읽다가 바람에 날아가 버리면 연설도 함께 날아가는 줄 알았다. 두 번째로 저자는 두 분의 대통령을 스피치 라이터(연설 비서관)로 모시면서 에피소드 중심의 가벼운 이야기 거리로만 쓴 줄 알았다.

 

2.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런, 대단한 책인데!’ 하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리뷰를 쓰면서 이런 표현을 많이 자제하는 편인 내겐 흔치 않은 일이다. 저자의 아내가 책을 교정해주고 나서 한 마디 했다고 한다. ‘이 책은 누구나 꼭 읽어봐야 할 책이야!’ 아내가 책 쓰느라 고생한 남편을 위로하고 모처럼 기를 살려주려 한 말인 줄 알았더니 깊이 동감이 가는 말이다.

 

3. 첫 장을 들추면 저자가 청와대로 출근하게 된 배경부터 시작된다. 2000년 6월 13일 TV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을 출발하면서 인사말을 하는 장면이었다.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방문길에 오르고자 합니다.” 다시 보니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표현이 참 좋다.

 

4. TV 시청을 함께 하던 저자가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어떤 사람들이 쓰나? 나도 저런 연설문 쓸 수 있는데...” 그저 마음뿐이었다. 그런 자리가 어디 이력서 낸다고 될 일인가?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일주일 후 청와대에서 전화가 결려왔다. 그렇게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실에 합류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미래는 미스터리라는 말이 맞다.

 

5. 청와대 입성 후 그야말로 저자에겐 피가 마르고 뼈가 녹아내리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물론 그만큼 긍지와 보람의 시간이었다고도 한다. 책의 제목은 『대통령의 글쓰기』이다. 저자는 의도한 바가 아니었겠지만, 두 가지 함축된 의미가 보인다. 대통령이 쓰는 글과 대통령을 위한 글쓰기이다. 공통점은 ‘대통령’과 ‘글’이다.

 

6. 대기업의 CEO나 조직의 단체장 또는 비중 있는 군대지휘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조직이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는 강력한 메시지역할을 한다. 하물며 한국가의 대통령이 하는 말은 농담조차도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다. 특히 국제간의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에 하게되는 대통령의 연설문의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큰 비중을 갖기 때문이다.

 

7.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문학적 글쓰기와 실용적 글쓰기가 있다면 후자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연설문이 주재료다. 더 정확하게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연설문이다. 연설문은 말과 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말을 하기 위해 준비한 글이 연설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말하는 방식과 글쓰기 방법을 아우르고 있다. 특히 토씨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대통령 연설문 특성상 전략적으로 말하고, 글을 쓰는 노하우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마흔 가지 꼭지마다 두 대통령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밝힘으로써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 책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는 저자의 말이다.

 

8. 생각은 말과 글로 표현된다. 말과 글은 생각에서 나온다. 덕이 되는 말과 글은 좋은 생각이 갑이다. 이것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향기로운 삶으로 나타난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좋은 생각은 독서가 도와준다. 아울러 좀 더 영양가 있는 말과 글에 욕심이 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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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가 꿈꾸는 세상 - 꿈 씨앗 그림책
장진영 글, 이한주 그림 / 잼에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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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소비가 우리가 사는 땅과 하늘을 망치고 있다. 동이는 꿈을 꾼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만큼 현재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2. 맑고 깨끗한 호수에 계절마다 철새들이 날아와서 포근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은 철새들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해서나 좋은 일이다. 그만큼 자연 환경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니 문제다.

 

3. 나 어렸을 때만 해도 한강에서 수영을 했다. 바다보다 강에서 사고가 많이 났지만, 모래사장과 그 맑은 물은 아직도 내 마음에 담겨있다. 그러나 이젠 강물은 물고기도 살기 힘들 정도가 되었으니 참 문제다. 한강에서 잡히는 고기는 냄새가 나서 먹지는 못한다. 그저 손맛을 보는 정도라고 한다.

 

 

 

 

 

4. 맑은 하늘은 밤에도 별빛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러나 어떤 때는 보름달도 누렇게 떠 있다. 달이 달 같지가 않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지도 오래됐다.

 

5. 사람이 사람답게 살다 가기 위해선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연을 망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동이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다.

 

6. 산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새들은 숲을 떠나고 있다. 물의 흐름도 자주 바뀌고 물이 흘러가는 바닥은 갈증이 나서 헉헉댄다. 물고기가 귀하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이 세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좀 덜 버리면 치우는 사람도 덜 힘들 것이다.

 

 

 

 

7. 동이는 오늘도 냇가를 오가며 쓰레기를 줍는다. 속이 상한다. 어찌 이렇게 버릴 수가 있나. 내 집 마당같이 생각하며 살 수 없나. 안타깝다.

 

8. 이 책에 실린 글은 간소하나 그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힘이 있다. 그림도 차분하다. 출판사 잼에듀에서 펴내는 씨앗 그림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채로운 소재를 이용해 스스로 사고력, 창의력 등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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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 중국사 14 : 수 / 당 2 - 21일간의 이야기만화 역사 기행 만리 중국사 14
쑨자위 글.그림, 류방승 옮김 / 이담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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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역사는 그 땅덩어리만큼 넓고 그 쌓인 시간만큼 깊다. 동양의 고전을 공부할 때 중국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중국은 아편전쟁 후 100년간을 제외하곤 세계 중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중국의 인구수는 탄력적이긴 하지만 곧 14억을 넘어 15억이 될 세계 최대 시장이다. 이미 16억을 넘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2.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나라 중국. 그들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만화책이다. 중국에서 초, 중학생용으로 출간 된 이 책은 성인이 보기에도 괜찮다. “방대한 중국의 5천 년 역사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편집했다.

 

3. ‘역사를 읽으면 통찰력을 얻는다. 중국역사를 읽으면 중국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총 21권의 책은 ‘중원의 하늘을 열다’의 제목으로 시작하는 상고/하상주를 시작으로 대륙의 마지막 봉건왕조(청1,2)까지다.

 

 

 

 

4. 그 중 13,14권인 수나라와 당나라에 대한 역사인 ‘찬란한 문화, 그 꽃을 피우다’를 보면서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을 느낀다. 권력의 암투,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정적을 먼저 죽이기. 집권자들의 그릇된 욕망과 자기 관리의 실패는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고, 그 혼돈의 세월 속에서 만나는 꿋꿋한 기상과 맑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있다.

 

5. 수(隋, 581~618)나라는 양견(楊堅)이 남북조시대의 혼란을 종식하고, 서진이 멸망한 후 분열되었던 중국을 약 3백년 만에 재통일한 왕조이다. 그러나 제 2대 황제인 양제 양광의 폭정으로 인해 멸망한다. 그 후 약간의 혼란기를 거쳐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했다.

 

6. 수나라는 비록 3대 38년 만에 단명했으나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중국을 오랜만에 하나의 판도에 넣었고, 뒤를 이은 당이 중국의 영토를 더욱 넓혀 대통일을 이룩하는데 기반이 되었다.

 

7. 수나라가 농민 반란으로 혼란에 빠지자, 태원 유수 이연은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탈취하고 당(唐, 618~907)을 건국했다. 당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할 정도로 매우 번영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해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막강했던 제국으로 평가받는다.

 

 

 

8. 정치와 관련된 스토리와 함께 현장법사가 천축에서 불경을 갖고 돌아오는 이야기. 『대당서역기』를 완성하는 것, 중국 선종의 6대 조사 혜능과 측천무후가 황제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바꾸는 과정 등도 실려 있다.

 

9. 약왕으로 불린 명의, 손사막은 아시혈(阿是血, 통증이 있는 부위를 눌러 주면 그 해당하는 자리가 곧바로 편해지거나 혹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고 곧 아시(阿是, 아! 거기)라고 말하는 곳을 혈자리로 정한 것)을 발견해서 큰 의학적 공헌을 세운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폭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는 이야기.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시선 이백. 원대한 꿈을 가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시성 두보. 웅장하고 힘 있는 글씨체로 후세에까지 칭송되는 서예가 안진경도 등장한다.

 

10. 글과 그림의 저자 쑨자위는 제1회 중국문화예술정부상 애니메이션출판물 부문 최우수상 수상이자 중국 국가애니메이션 우수작품프로젝트 혁신상, 제품상외에도 받은 상이 많다고 한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고 번역 역시 현대적 감각으로 잘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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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착하게 벌 수는 없는가 - 깨어있는 자본주의에서 답을 찾다
존 매키 & 라젠드라 시소디어 지음, 유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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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이라는 것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땐 참 소박한 모습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물물교환 시대를 겪으면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으로 등장한 ‘돈’이라는 것이 지금은 몹시 변질되었다. 돈이 권력이 되었다.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돈에 몰려있다. 또한 돈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 사회와 깊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2. 이 책의 지은이 존 매키는 16년 연속 〈포춘〉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꼽히는 유기농 자연식품 대형판매점 홀푸드마켓의 공동설립자이다. 질 좋기로 유명한 자연식품을 엄선하여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니즈를 충족시키고 지역사회의 발전에 헌신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본래적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3. 공저자인 라젠드라 시소디어는 깨어있는 자본주의연구소의 공동설립자이자 이사이며 벤틀리대학의 마케팅 교수이다. IBM, 월마트, 맥도널드, LG, 포스코 등의 경영자문을 맡고 있으며,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를 비롯한 7권의 책을 썼다.

 

4. 이 책은 기업의 이익을 위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 이익에 봉사하는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고, 이로써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5. 존 매키는 훌푸드마켓을 설립하기 전, 1978년 자연식품을 판매하는 세이퍼웨이라는 식료품점 운영을 시작했다.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나는 진보적인 철학을 굳게 믿으며 기업과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탐욕과 이기심, 착취에 기반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기업이 이윤극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소비자 ․ 노동자 ․ 사회 ․ 환경 등을 착취한다는 논리를 인정한 셈이다.

 

6. 그러나 그의 생각과 활동은 ‘이윤이란 아무리 좋게 보아도 필요악이며 사회 전체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목표가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울러 몇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선하다. 이해관계자의 중요성과 사랑의 힘을 비롯해 기업은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훌륭한 배움과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7. 저자들이 이 책을 기록한 주된 목적은 깨어있는 기업이 더 많아지도록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깨어있는 기업’이란 무엇인가? 깨어있는 기업이란 모든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높은 차원의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 그러한 기업의 목적에 헌신하며 기업에 관련된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깨어있는 리더가 있는 기업, 즐거움과 성취감의 원천인 활기차고 배려 넘치는 문화가 있는 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8. 책은 4part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자유기업 자본주의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역사적 관점을 소개한다. 자유기업 자본주의란 무엇이며, 세상을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직면한 도전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더불어 독자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내러티브를 바꾸는데 적극 동참하라고 외치고 있다. 2장에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한층 발전된 형태의 자본주의와 기업의 모습을 살펴보며 깨어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뒤이어 자본주의의 네 가지 신조를 하나씩 다룬다.

 

9.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높은 차원의 목적, 이해관계자 통합, 깨어있는 리더십, 깨어있는 문화와 경영 등이다.

 

 

10. 작가 리처드 라이더는 강연 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날은 언제인가?” 첫 번째 답은 비교적 한 곳으로 모인다. 바로 자신이 태어난 날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답은 흩어진다. 자신이 죽는 날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날은 중요한 날 이라기보다 인생이 끝나는 날이다. 졸업식, 결혼식, 첫아이 출산, 모두 개개인에게 중요한 순간이지만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때는 바로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11. 기업 역시 시작하는 목적에 좀 착한 뜻이 담겨지길 원한다. 운영자의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을 비우지 말고 계속 채워나가길 바란다. 물론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많은 이익을 얻기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깨어있는 기업은 결국 깨어있는 리더라고 부른다. 돈은 아무리 더러워져도 그 가치가 떨어지진 않는다. 액면가 그대로다. 그러나 깨끗한 돈일지라도 벌고 쓰는 사람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더러운 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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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백무산 지음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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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 오는 아침은/ 설날만 같아라// 새 신 신고 새 옷 입고/ 따라나서던 눈길/ 어둠 속 앞서 가

던 아버지 흰/ 두루막 자락 놓칠세라/ 종종걸음 치던 다섯 살/ 첫길 가던 새벽처럼// 눈 오는 아

침은/ 첫날만 같아라// 눈에 젖은 대청마루/ 맨발로 나와/ 찬바람 깔고 앉으니/ 가부좌가 아니라

도// 살아온 흔적도 세월도/ 흰 눈송이 위에 내리는/ 흰 눈송이 같은데// 투둑, 이마를 치는/ 눈

송이 몇// 몸을 깨우는 천둥소리// 아, 마음도 없는데// 몸 홀로 일어나네/ 몸도 없는데/ 마음 홀

로 일어나네// 천지 사방 내리는 저 눈송이들은/ 누가 설하는 무량 법문인가// 눈 오는 아침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첫날만 같아라      - '초심' 전문

 

....첫눈을 초심으로 받아 들인 시인의 마음이 맑습니다. 올해 역시 첫 눈이 내리자 SNS에선 난리

가 났었지요. 시니컬한 사람들은 별걸 갖고 호들갑을 떤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치 내 단점과 결점을 덮어주고 위로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뭏든 새로운

기분이 들게 해줍니다. 시인은 한 술 더 떠 눈오는 아침이 설날 아침 같다고 합니다. 눈과 초심을

한 마음에 담습니다.

 

우리 살아가며 마음도 없는데 몸이 앞서가거나, 몸은 준비가 안 되었는데 마음이 앞서 일어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눈 오는 아침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첫날만 같다는 말이 백미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 새 아침은 내가 아직 못 가본 길이고 못 살아 본 삶입니다.

비록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일지라도 시간은 어제의 그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니 늘 새롭게 시작해야겠지요.

 


2.  모내기를 끝낸 들판에 어둠이 내립니다/  저녁뜸에 자던 바람이 문득 우수수 벼를 쓸고 갑니

다/ 국도를 바삐 달리는 키 큰 화물차들의 꽁지에/  하나둘 빨간불을 켭니다/ 논공단지 여공들이

퇴근 버스를 기다리는 길가/ 들을 가로질러 뜸부기가 뜽뜽 울며 납니다/ 베트남에서 온 여공 하나

가 작업복 잠바에 손을 찌르고/ 고향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 하늘

에 주먹별 하나 글썽입니다// 서녘 먼 곳으로 가 버린 사람아/ 그대 없는 이곳이 내게도 먼 이국

입니다                     - '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전문


모내기를 끝낸 들판을 바라보며 웬지 마음 한 켠이 무겁습니다. 어찌 그렇게 매정하게 싹뚝 잘라

버렸는지 모릅니다. 논흙이 뒤집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어여 눈이라도 내려

서 덮어주면 따뜻하려나 생각합니다. 타국에서 온 여인이 이국에서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짓

는거나 아무리 기다려도 올 수 없는, 오지 않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곳이나 그저 먼 땅입

니다. 마음에서 찬바람 일며 눈가가 뜨가워지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3.  지난주에 읍내 장에 나가 하나뿐인/ 쬐그만 책방에 가서 이상국 시집 한 권/ 주문을 하고 오

늘 장날에 들러기로 하였는데/ 일을 보고 나니 남은 돈이 책값뿐이다// 책방 옆에는 묘목장이 열

렸다/ 꽃샘추위 황사 바람 부는데/ 앵두나무 사천 원, 자두나무 오천 원/ 홍매화 육천 원 계수나

무 만 원/ 꽃사과 목련 배나무 사천 원/ 시집 한 그루 오천 원//  한 그루밖에 살 돈이 없는데/

무얼 어디다 심을까/ 나는 이미 속이 상해 있었다/ 지난번에 사다 읽은 나무들 때문에/ 마음 밭을

버리고 봄을 버렸다// 나무들은 땅에다 심지만 우리들 마음과/ 대지 사이에서 뿌리내리고 꽃을 피

운다// 천지 사방 흩어진 몸들은/ 나무를 통해 마음으로 돌아오고/ 세상에 지천으로 흘린 마음들

은/ 나무를 통과해 몸으로 돌아오는데             - '마음에 심는 나무' 전문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있는 곳 겨울은 눈도 많이 안 오고 그리 춥지도 않게 지난 듯 합니다.

날씨가 포근해지니까 개구리들이 때를 잘 못 알고 경칩 보름전부터 동면에서 깨어나 그새 짝짓기

를 해서 알을 낳았더군요. 묘목상들도 바쁜 나날을 보낼 때가 온 듯 합니다. '시집 한 그루 오천

원'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머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내 마음밭에 씨를 뿌리고 어린 묘목을 심는

것과 한 가지겠지요. 더러는 그 씨앗이 말라붙고 더러는 잎을 티우고, 묘목들도 자라겠지요. 살아

가며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보듬어 안아주겠지요. '천지 사방 흩어진 몸들은/ 나무를 통해

마음으로 돌아오고/ 세상에 지천으로 흘린 마음들은/ 나무를 통과해 몸으로 돌아'온답니다.

 

4. 시인 백무산은 1955년 경북 영천 출생입니다. 1984년에 [민중시]紙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

습니다. 시인의 시는 농촌의 서정과 노동자의 일상을 서정적이면서도 날카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 날카로움은 독자의 의식을 해치려는 의도보다는 깨어있길 바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마음자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시인은 상(賞)에 무심하리라 믿지만 어쨌든 시인은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더군요. 이 시집 외에 7권의 시집이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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