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챔피언 글로벌 원정대
헤르만 지몬 지음, 배진아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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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종과 규모를 떠나서 어느 한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어 있거나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이 장악되어 있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천하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각인되어있지만 건강한 조직이라면 한 사람이 없어져도 아니 그 사람이 없어도 잘 돌아가야 한다.

 

2. 하물며 한 국가의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지은이는 한국의 이른바 재벌들, 대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국 한국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10대 대기업이 국내 총 생산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이렇게 강도 높은 집중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3. 2000년 핀란드에선 노키아가 정점에 이르면서 전체 수출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노키아의 영광은 사라져버렸고, 핀란드는 그에 상응하는 문제점들을 안게 되었다. 반면 독일의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4. 매우 강력한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한 독일 경제는 한국보다 훨씬 강도 높게 분권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책의 제목에도 쓰인 히든 챔피언이 등장한다. 고작 중간 정도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활동하는 세계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5. 이 책은 독일 히든 챔피언들의 전략을 분석한다.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와 경험을 근간으로 삼는다. 이 시기는 독일 히든 챔피언들이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크게 강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6. 히든 챔피언 그들은 누구인가? - 다른 어느 곳보다도 독일어권에 풍부하고 다채롭게 존재한다. - 세계시장에서 탁월한 시장 입지를 보유하고 있다. - 진정 세계적인 회사로 변신하는 과정에 있다. - 유일무이하고 흔히 눈에 띠지 않는 제품들로 두각을 나타낸다. - 주목할 만한 생존 능력을 입증해 보여준다. - 주목받아 마땅하지만, 일반적으로 세간의 주목을 그리 받지 못한다. - 성공을 구가한다. 그러나 기적의 기업은 아니다.

 

7. 그렇다면 히든 챔피언들의 특징을 어디서 찾아야할까? 위대한 성공의 시작에는 언제나 야심찬 목표가 자리 잡고 있다. 히든 챔피언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설정한다. 목표는 공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직원들에게도 의욕을 고취한다.

 

8. 독창성은 깊이에서 나온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 깊이는 히든 챔피언들의 골수와 심장에 맞닿아 있는 측면이라고 표현된다. 그들은 전략적 제휴를 기피하고 단독으로 행동하는 편을 선호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지식의 한계와 역량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경우에는 좀 더 개방적으로 행동한다. 히든 챔피언들은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는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9. 한 기업의 성과는 무엇보다도 직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경영자들은 방향 제시만 할 뿐이다. 기업문화, 직원들의 일체감 그리고 직원들의 동기의식 같은 유연한 요소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단 히든 챔피언들의 문화는 매우 독특하다고 이름 붙여진다. 아울러 질병으로 인한 결근율과 이직률이 매우 낮다. 히든 챔피언들은 낮은 결근율보다 낮은 이직률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낮은 이직률은 노하우를 보존하고, 신규채용 비용을 줄여주고, 직업교육과 추가 교육에 대한 투자를 가치 있는 일로 만들어준다.

 

10. 지은이 헤르만 지몬은 누구인가? ‘히든 챔피언개념의 창시자이자 독일이 낳은 초일류 경영학자로 소개된다. 독일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를 선정할 때마다 피터 드러커와 더불어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그는 창조적인 이론과 탁월한 실행력을 인정받아 현대 유럽 경영학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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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서광원 지음 / 김영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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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심부 면적만 2.8제곱미터,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질긴 섬유인 케블라보다 무려 10배나 강하다. 그리고 그 길이는 약 25미터나 된다. 무엇일까? 거미줄이야기다. 마다가스카르의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다윈스 바크라는 거미가 그 거미집의 주인이다. 그렇다면 대단한 왕거미? 천만의 말씀. 오히려 보통거미보다 작다. 수컷보다 큰 암컷의 경우 다리를 모두 편 길이가 3~4센티미터밖에 안 된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방법에 대해 계속 연구 중이라고 한다. 아울러 이 이야기를 듣고 그저 놀랍군!’ 하고 끝낸다면 거미가 무척 서운하다. 여기서 거미에게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2.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생명체라는 것,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삶도 경영도 대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저마다 살아남은 이유와 살아갈 목적이 있다. 그러기에 지금 생명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3. 각기 살아가는 생명체의 원리는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도 대입이 가능하다. 말로만 생존전략이 아니라 실제로 그 현장을 그대로 옮긴 듯 마음을 다잡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워낙 급변하기 때문이다.

 

4. 개인적으로 평소에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는 편이다. 야생의 동물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 녀석들이 멸종되어 지구에서 사라지겠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는지를 보며 가슴을 졸인다.

 

5. 지은이가 처음 관심을 가지며 파고들고 싶었던 분야는 리더십이었다. 생동감 있는 리더십을 연구 개발해서 이 땅의 리더들에게 주고 싶었다. 리더십은 조직에서 구현 된다. 조직을 공부하다보니 인간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을 알기 위해 생명의 역사와 주변 환경을 둘러보다 보니 동물의 왕국 한 복판이었다고 한다.

 

6.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있다. ‘이 정도면 됐다, 하는 순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문제해결의 원리’, ‘지독한 생존전략들등이다.

 

7. 다시 거미 이야기를 해본다. 어찌 그 손톱만한 녀석들이 그렇게 거대한 거미줄을 칠 수 있었을까? 남들이 모르는 비결을 가져야 잘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긴 하다. 이 녀석들은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싶으면 공사를 시작한다. 왜 부드러운 바람일까? 우선 공사를 시작할 나뭇가지의 맨 끝으로 간다. 그리고 몸에서 뽑아낸 기다란 줄을 낚싯줄을 던지듯 바람에 날린다. 그 줄이 목표 지점에 닿게 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한다. ‘기초줄이라고 하는 이 첫줄을 연결되면 이미 반은 된 것이다.

 

8. 저자는 이 대목에서 가로줄인 씨줄과 세로줄인 날줄을 언급한다. 그 씨줄과 날줄의 정교함이 결국 그 거미그물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씨줄과 날줄을 우리의 삶에 대입시킨다면 수평, 수직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며 관리하느냐가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수평이고 수직이고 어느 한 쪽에만 치중하며 살아가는 삶은 관계 유지 전선에 문제가 발생한다. 거미에게 그 지혜를 배운다.

 

9.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많다. 그들에겐 각자의 생존전략이 최우선이다. 먹을 것을 찾고, 권력과 종족 보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 자리 잡을 것이다. 그들에게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인간이란 자연 속에선 참으로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10. 지은이 서광원은 생존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추적자.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자연 속의 존재들이 축적해온 삶의 이치와 경영의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나는 리더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그들이 동물의 왕국을 빼놓지 않고 보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약육강식의 치열함을 느끼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순하고 표피적인 판단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삶의 원리를, 생존의 지혜를, 약동하는 생명력을 발견하고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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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 빅뱅 직전의 우주
프랭크 클로우스 지음, 이충환 옮김 / Mid(엠아이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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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이 책의 원제 The Void에서 ‘void’는 무슨 뜻인가? ‘(커다란) 빈 공간, 공동(空洞)’을 의미하는 void(우주)공간을 표현하는 적절한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빈(우주)공간, (), 진공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해온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이 무와 진공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갖고 있었는지 현대물리학에선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2.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텅 비어 있는 것이 진공이 아니다. 그곳엔 에너지, 입자, ()으로 채워져 있다. 진공 상태에서 전자와 양전자(반전자)와 같은 가상 입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를 양자요동이라고 한다.

 

3. 다시 무()를 이야기해보자. 첫 장은 ()에 대한 야단법석으로 시작한다. 무에 대한 초창기의 생각에서 공기, 진공, 공기압과 함께 파스칼이 등장한다.

 

4. 그 다음엔 원자’, ‘공간’, ‘파동’, ‘’, ‘양자세계’, ‘우주로 이어진다. 지은이의 말을 들어본다. “ 죽음에 이르러 숨이 멎으면 의식이 사라진다. 그렇지만 결코 시작되지도 않을 DNA 조합들에게 의식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식이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지를 이해하기란 우주의 물질이 어떻게 무()로부터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다. 창조는 있었을까, 아니면 항상 무언가 존재했던 것일까? 무가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존재가 전혀 없다면, 무가 존재하기나 할 수 있을까? 이 난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나는 진정한 깨우침 또는 정신 이상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로서 몇 년을 보낸 뒤에야 나는 그 질문들로 되돌아가 어떤 답들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이 작은 책이다.”

 

5. 지은이는 겸손하게 작은 책이라고 했지만 결코 작은 책이 아니다. 우주가 그리 만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들도 잘 안다. 기원전 600년경 탈레스는 무(No-thing)의 존재를 부인했다. 무언가가 무로부터 생겨날 수 없고, 사물들이 무로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원리를 전체 우주에까지 적용해 우주가 무로부터 나왔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6. 17세기에 들어서 로버트 훅은 소리가 진공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뉴턴은 자연 현상을 물질에서 입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하던 역학 철학자였다. 이 때문에 그는 처음으로 빛을 한바탕의 미립자들이라고 불렀다. 이는 요즘 언어로 광자라 부른다. 과학의 역사는 반증의 역사이기도 하다. 18세기에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빛에 대한 뉴턴의 미립자설을 거부했고, 광학 현상을 에테르 유체에서의 진동으로 설명했다.

 

7. 아인슈타인은 전자기복사, 즉 빛이 관련된 사고 실험에 의해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출했다. 그는 특수 상대성이론의 뒤를 이어 중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통찰력은 자유 낙하 중인 물체의 경우 중력이 사실상 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찾아왔다. 이는 물체에 작용하는 알짜힘이 전혀 없고 이런 이유로 그것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8. 창세기를 보면 땅은 어둠이 심연을 덮은상태였다. ‘깊음 위에 어둠이라고도 표현된다. 다른 경전에는 어둠이 어둠에 의해 감추어져 있다고도 한다. 호킹과 하틀은 복잡한 이론으로 우주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지만 우주는 시작도 팽창도 없는 공간으로 마무리된다. 즉 우주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머리 아픈 빅뱅 이야기를 비교적 쉬운 용어와 이해력을 돕는 설명으로 풀어주고 있다. 아니 전체적인 이야기가 칼럼을 읽듯이 매끄럽다. 우주를 아는 것은 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을 알 수 없다. 당신을 모른다면 우주는 더할 나위 없이 먼 그대 일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의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9. 이 책의 지은이 프랭크 클로우스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엑시터칼리지의 선임연구원으로 대영제국4등훈장수훈자다. 영국과학진흥협외 부회장, 러더퍼드애플턴연구소 이론물리학분과 책임자, CERN의 커뮤니케이션, 대중교육 책임자를 지냈다. 물리학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물리학연구소가 수여하는 캘빈 메달을 받았다. 2007년에는 영국 미디어에서 비전문가를 위한 탁월한 과학 글쓰기 공로로 신젠타 상을 수상했다. The New Cosmic Onion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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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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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1958년부터 1964년 사이에 씌어졌다.”로 시작하는 작가 서문은 제법 길다. 이렇게 긴 줄 알았으면 그냥 본론부터 읽을 걸 그랬다.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2. 소설집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소재나 배경, 스타일에서 분위기를 달리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입지는 유사하다.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단절, 고독, 권태, 무질서, 획일주의, 고갈, 파국, 죽음 등의 단어들이 연상된다.

 

3. 창비세계문학 시리즈 중 30권 째인 이 책을 통해 작가 토머스 핀천을 스터디하는 시간을 갖는다. 1937년생으로 팔순을 내다보는 미국의 현존 작가이다.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3년 첫 장편 브이를 발표하여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그해 출간된 최우수 데뷔소설에 주는 윌리엄 포크너 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 두 번째 장편 49호 품목의 경매를 발표하여 리처드 앤드 힐다 로젠탈 상을 수상하였으며, 1973년 세 번째 장편 중력의 무지개를 발표하여 전미도서상을 수상하였다. 그밖의 장편으로 바인랜드』 『메이슨과 딕슨』 『그날에 대비하여』 『고유의 결함』 『블리딩 에지등이 있고, 소설집으로는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 있다.

 

4.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중 네 편은 작가가 대학에 다닐 때 쓴 것이고, 다섯 번째 작품인 은밀한 통합은 습작생을 뛰어넘어 신인 작가의 작품에 가까운 것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작가가 이 단편들을 다시 읽었을 때 그의 첫 반응은 한 마디로 오 맙소사였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신체증상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들었던 두 번째 생각은 완전히 다시 쓰자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충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작가는 중년다운 평정심을 내세워, 그 당시 어린 작가였던 그를 이제 있는 그대로 봐줄 나이가 된 것처럼 행세하기로 했다.

 

5. 이슬비(The Small Rain)는 작가의 첫 단편소설이다. 작가가 해군에서 복무 중 육군에서 군 생활을 한 어떤 친구가 전해진 이야기가 테마다. ‘바깥의 중대 구역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익어갔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뜨겁다. 틈틈이 페이퍼백을 읽는 병사들도 묘사된다. 나 역시 군 생활 중 GI 들이 큼지막한 엉덩이 뒷주머니에 페이퍼백을 찔러넣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다. 섬에 위치한 크리올이라는 작은 마을이 허리케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대민 지원을 나간 군인들의 이야기다. 그 와중에도 역시 허리케인 같은 원 나잇 스탠드 사랑이 펼쳐진다.

 

6. 엔트로피는 단편 소설로 엮기엔 다소 무리한 소재다. 작가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며 작가로서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단편 덕분에 작가는 엔트로피에 대한 전문가처럼 알려지게 된 것을 쑥스러워한다.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 단편은 헨리 애덤스의 교육과 노버트 위너의 인간의 인간적 활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단편에 비트 제너레이션을 그리고 있다. 비트 정신에 과학을 입힌 것이다. 인류의 절망과 죽음과 재앙에 대한 염려를 담고 있기도 하다. 소설 속 시간은 19572월 초이다.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작가는 이런 말을 담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열에너지처럼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 일종의 열역학적 죽음이 인간의 문화에 나타날 것이다.” 그런 일이 초래되는 이유는 생각의 각 지점들이 궁극적으로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갖게 되고, 그리하여 지적인 움직임이 중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 토머스 핀천에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수십 년 동안 은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고등학교 때와 해군복무 시절에 찍은 두어 장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출판과 관련된 외부 업무는 모두 대리인을 통해 처리하므로 그의 외모나 거처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핀천이 공식적인 활동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생긴 일화가 많다. 유명한 일화로 중력의 무지개가 아이작 싱어의 소설집과 함께 전미도서상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그는 몇 차례 수상을 거절하다가 결국 공동 수상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상을 받기로 하지만 유명 코미디언을 시상식에 대신 보낸 일이 있다. 핀천이 이렇게 은둔 작가의 길을 고집하게 된 이유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나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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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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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살인자에게는 너무나도 합리적인 동기가 있다?

 

묻지마 살인도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노변 카페 앞에서 자폭함으로써 자기 민족의 불행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자살 테러범도, 아이들을 납치함으로써 아버지들을 깨우쳐주려는 미치광이도, 혹은 침묵을 지킨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 처벌했던 살인자도 스스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범죄 심리학자는 이런 말도 했다. “살인을 함으로 상대의 생명력이 내게 전해진다는 망상과 착각에 잠겨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살인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실행하는 순간에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낀다.

 

 

제한 시간 45시간 7

 

이 책의 전작인 눈알수집가의 정체는 베를린 유력 일간지의 수습기자 프랑크 라만으로 밝혀졌다. 라만은 모두 네 명의 여자와 세 명의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했음을 자백했다. 라만의 범행은 치밀하면서도 등골이 선뜻하다. 그는 먼저 어머니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한 후 아버지에게 45시간 7분의 제한 시간을 준다. 이 시한이 지나면 아이는 자동적으로 질식사하게 되어 있었다.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성장기에 겪었던 깊은 고통의 상처를 메우기 위해 도저히 이해 불가한 사건을 저지르기도 한다. 라만은 매우 극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는 특히 암에 걸려 왼쪽 눈을 잃은 작은아들. 라만의 남동생을 짐스럽게 여겼다.

 

어느 날 형제는 아버지가 자신들을 걱정해 찾아 나설 것이라 믿으며 버려진 냉동고 속에 숨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랐던 애정의 증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술집을 돌아다니는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던 형제는 냉동고 속에서 질식사와 싸웠다. 45시간 7분 뒤 벌목꾼이 그들을 발견 했을 때 프랑크 라만의 동생은 목숨이 이미 끊어진 후였다.

 

 

이어지는 살인 게임

 

쌍둥이 남매가 유괴 당했다. 그들을 구하는 사이에 프랑크 라만을 새로운 희생자를 찾았다. 초르바흐의 아들 율리안이었다. 그는 초르바흐의 부인 니키 초르바흐를 살해한 후 율리안을 납치했다. 라만은 종적을 감추었고 초르바흐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벌써 스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포근한 13, 가볍게 구름 뜬 하늘, 부드러운 9월 바람, 요한나 슈트롬은 이 날씨를 사랑했다. 죽기 딱 좋았다.”

 

 

알렉산더 초르바흐

 

경찰청 출입 기자이다. 프랑크 라만을 쫓고 있다. 아들이 유괴되었다. 제한 시간을 7분이나 넘긴 지금. 그는 마취 중 각성을 겪은 한 여인이 생각났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그녀. 공간의 협소함을 못 견뎌내는 그 여인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동물원에서 눈이 부신 햇살을 받으며 젊은 여성의 악몽 같은 회고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복부의 단순한 종양이었어요.” 수술의사는 당연히 마취가 된 줄 알고 개복수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취가 안 되었었다. 감각신경은 살아있고, 운동신경만 잠들어 있었다. 희귀한 경우이긴 하다. “우리에게 닥칠 위협이 그리 크지 않다고 안심하기 위해 아무리 통계놀음을 한다 해도, 늘 어느 누군가는 영 뒤에 소수점이 붙는 숫자에 해당하는 슬픈 경우를 맞이한다. 때로는 그 누군가가 우리 자신일 때도 있다.” 요즘의 상황과 맞물려 있는 느낌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하늘이 밝기만 한데 그 바닷속은 얼마나 어둡고 음산할까.

 

 

알리나 그레고리예프

 

빛은 삶, 어둠은 죽음. 난해한 대목이지만 침묵을 지킨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 처벌하는 주커라는 미치광이도 등장한다. 그 희생자중 하나인 알리나 그레고리예프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명암을 구분한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 벌거벗은 채 누워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발은 마비가 된 듯하다. 그 안에서 같은 처지로 납치, 구금되어있는 니콜라를 만나 함께 탈출할 생각을 한다. 미치광이 주커는 세계적인 안과의사로 그려진다. 니콜라의 멀쩡한 눈의 각막을 알리나의 눈에 이식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주커.

 

 

사이코 스릴러류의 작품이 주는 이점?

 

지은이가 한 말 이지만 한 심리학자가 최근에 빈에서 열린 낭독회(지은이의 저작물을 지은이가 낭독하는)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배출구가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스릴러를 읽지도 쓰지도 않고 모든 것을 속으로 꾹 눌러 참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란다. 글쎄올시다.

 

 

지은이 세바스티안 피체크는?

 

1971년 베를린 태생이다. “이런 끔찍한 책을 쓰다니, 어릴 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지만, 그는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었던 해맑은 어린아이였다. 부모의 요청에 따라 테니스를 포기하고 저작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2006년부터 사이코스릴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 테라피20067월에 출간되어 그해 독일을 휩쓴 다빈치코드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독일 스릴러상과 더불어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소설상인 프리드리히 글라우저상 후보에 올랐다. 그 후 발표한 10여 개의 작품 역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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