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 - 감옥으로부터 온 기쁨의 서신 빌립보서 2
화종부 지음 / 두란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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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 】    화종부 / 두란노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의 원칙은 구별된 삶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법조인(검사)의 신앙고백을 들을 일이 있었습니다. 강남의 꽤 큰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더군요. 그분은 돌아온 탕자가 되어 구별된 삶을 훈련 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돌아오기 전에 업무를 빙자해서 룸살롱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음주가무에 흠뻑 빠져 지내던 때, 낯익은 얼굴과 합석을 하게 됐습니다. 서로 어디서 봤지? 하면서 궁금해 하던 차에 주일날 같은 교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서로 매우 멋쩍어 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이야기로 흘려버릴 이야기가 아니긴 합니다. 나는 언제 어느 곳에 가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인가? 악취를 풍기는 사람인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삼갈 것은 삼가고, 행할 것은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먼저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변화된 마음이 없다면, 껍데기 신앙일 뿐입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책 제목에 나타나있듯이, ‘기쁨입니다. 당연지사 기독교는 기쁨의 신앙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쁨이지요. 그 기쁨은 세상사는 재미에 폭 빠져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주 안에서 오는 기쁨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 화종부 목사는 기쁨의 서신서인 빌립보서 시리즈 2번째를 통해 성도들이 주안에서 진정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길 권고합니다. 빌립보서는 평안한 상태에서 쓰인 것이 아니지요.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작성한 옥중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감옥이라는 절망의 장소에서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됩니다. ‘구별된 삶으로의 부르심막힌 담을 허무는 그리스도의 사랑’. “노력으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일으키시는 새로운 마음의 변화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다 한다고 할 때, 그 의()는 무슨 뜻일까? 지은이는 그 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너는 내 마음에 합하다. 너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시는 것을 라고 표현한다는 것이지요.

 

 

기쁨이 사라진 신앙생활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죄 사함 받은 기쁨, 교회 내에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기쁨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나의 삶을 돌아 볼 때 그 기쁨의 유효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은이는 우리의 삶 속에서 그 기쁨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긍휼히 여깁니다. 한마음으로 돌보고, 서로 나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막힌 담을 허물고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답이라고 합니다.

 

 

지은이가 권면하는 성도의 재물 사용에 주목하게 됩니다. ‘주안에서 자족하기를 배우라’, ‘쌓아두지만 말고 잘 사용하라’, ‘하나님께 기쁘고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라’. 물론 이 모든 말씀이 성경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아울러 성도들 간에 서로 문안하는 일상이 곧 기쁨의 신앙생활을 하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 믿음의 선배들의 나눔과 교제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한다면 주안에서 진정으로 기뻐하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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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대한 반론 - 생명공학 시대, 인간의 욕망과 생명윤리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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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 교수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도덕적인 이해가 과학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샌델 교수 덕분에 도덕적인 이해가 진일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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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대한 반론 - 생명공학 시대, 인간의 욕망과 생명윤리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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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대한 반론 】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급변하는 세계의 면모는 이미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생명공학분야의 발전과 변화는 명암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인류의 삶과 행복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단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연출되는 (대부분은 경제적 논리가 숨어있는)욕망에 불과한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책의 서두는 한 청각장애인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생명공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스토리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담론이 될 만한 내용이다. 청각장애인 부부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다. ,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원했다. 레즈비언 커플인 두 사람은 청각장애 자녀를 갖기 위해, 5대째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가족 출신인 정자 기증자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은 현실로 이뤄졌다. 그들의 아들은 청각장애로 태어난 것이다. 이들 부부는 그들의 청각장애를 치료해야 할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듣지 못하는 것은 그저 삶의 방식일 뿐이다. 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끼며,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훌륭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는 귀가 들리지 않아도 진정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고 그들 부부는 이야기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와 다른 사례지만, 최상급 난자를 제공받기 위해 키가 175센티미터쯤에 탄탄한 몸매여야 하고 가족 병력이 없어야 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점수가 1400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광고를 내건 것은 또 어떤가? 이 광고엔 요건을 충족하는 난자 제공자에겐 5만 달러(한화로 약 5900만원)를 주겠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이런 사례엔 찬반양론이 뜨겁다. 스토리는 애완동물 복제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짜 염려되는 것은 인간 복제이다.

 

 

생명공학은 인간의 근육강화, 기억력 강화. 신장 강화, 성별 선택 등에서 시작됐다. 이들 기술은 모두 처음에는 질병 치료나 유전적 질환 예방을 위한다는 동기에서 비롯됐지만, 이제는 신체 기능 개선(이 정도는 그래도 봐줄만하지만)이나 생명윤리적인 측면에서 판단이 흔들린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새로운 유전학적 지식이 자연으로서의 우리 모습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인간과 생명공학적 조작이 개입된 인간은 감기가 들어도 치료 방법이 달라야하지 않을까? 만들어진 인간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고 그들이 각기 다른 생체학적 기질을 갖고 뒤섞여 살아간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나는 개인적인 상상만으로도 버겁다. 내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은 그렇게 염려할 일이 아니야 하고 넘어가야 할까? 나몰랑~하면 그만일까?

 

 

마이클 샌델의 저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20164, 와이즈베리)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 완벽에 대한 반론2010년에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로 국내에 첫 출간된 후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다. 마이클 샌델이 대통령생명윤리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과 하버드대에서 윤리와 생명공학이란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샌델은 이 책에서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완벽해지려는 것에만 목숨을 거는 인간의 충동적 욕구에 대해 반론을 든다. 이 책이 나온 후 뉴리퍼블릭편집인이자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킨슬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샌델 교수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도덕적인 이해가 과학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샌델 교수 덕분에 도덕적인 이해가 진일보하게 되었다. 인간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 유전학적으로 강화하려는 노력에 우리는 왜 곤란함을 느껴야 하는가? 이 책이 그 답을 들려줄 것이다.” 도덕적인 이해와 과학의 속도는 더더욱 벌어졌다. 아마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샌델의 염려가 더욱 현실화되고 가시화(可視化)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앞에 놓인 숙제를 풀어주며 나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숙제만 잔뜩 남겨 주고 갈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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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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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상당한 양의 책 속의 책들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인문학적 성찰과 독서 길라잡이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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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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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이야기 2016-123

 

글쓰기 동서대전 】      한정주 / 김영사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자유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가 잘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많다는 것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얽매임이 함께 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두려움은 억압된 자유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두려울 것이 없다면 자유맞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온전한 자유, 영혼마저도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살다갔다. 그 과정이 그의 저서 영혼의 자서전에 잘 담겨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그의 살과 피로 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독자여, 이 책에서 당신들은 나의 핏방울로 써 내려간 붉은 자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자취는 인간과 정열과 사상으로 둘러싸인 내 삶의 여정을 표현하고 있다.”

 

 

글을 쓰고 책을 엮는데도 전략이 있다. 무조건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요즘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여러 책들과 다른 면이 있다. 우선 그 범위가 넓다. 동서양의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한정주는 그들 문장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핵심전략을 소개하면서, 글을 쓰기 위한 인문학적 성찰,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8세기를 중심으로 14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서양 최고 문장가 39인이 소개된다. 이덕무, 루소, 니체, 이익, 바쇼, 프란시스 베이컨, 박지원, 나쓰메 소세키, 조너선 스위프트, 볼테르, 괴테, 마르코폴로, 노신, 쇼펜하우어 등 낯익은 이름들과 다소 생소한 이용휴, 이옥, 조희룡 등 조선작가와 오경재, 장대, 서하객 등의 중국작가, 요시다 겐코, 이하라 사이카쿠 등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은이는 작가들을 독특한 범주로 정리해놓았다. 동심, 소품, 풍자, 기괴첨신(奇詭尖新, ‘기이하고 괴이하면서 날카롭고 새롭다는 뜻), 웅혼(雄渾)등의 글쓰기와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 자의식의 글쓰기, 자득(自得)의 글쓰기 등이다. 앞서 소개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의식의 글쓰기에 해당된다. 동심(童心)의 글쓰기로 시작하면서 천하의 명문은 반드시 동심에서 나온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루소가 등장한다. 서양의 지성사와 문학사에서 어린아이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프랑스의 아날학파 역사학자인 필립 아리에스는 어린아이의 탄생이라는 역사 연구 주제를 통해 중세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으로, 즉 축소된 어른으로 그려질 정도로 아이들의 독자성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고 밝혔다. 18세기에 등장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에 의해 어린아이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어린아이의 발견이자 어린아이의 복음서라고 불리는 에밀이 바로 그 저작이다.

 

 

노신이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에서 등장한다. 노신처럼 다양한 평가를 받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노신을 해석하는 눈과 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노신에 대한 다종다양하고 무궁무진한 해석의 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둔다. ‘다양성특이성의 관점에서 노신을 재해석하고 있다. 사실 독특하다는 표현은 단지 두 개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많은 경우를 대할 때 쓸 수 있다. 지은이는 노신의 소설, 소품(수필), 잡문, 시문, 희곡, 논설, 기사 등이 각기의 특이성으로 구분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때의 특이성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노신 문학의 다양성 속에서 소설은 소설의 특이성을, 잡문은 잡문의 특이성을 갖고 있지만, 당대 중국 문단의 어떤 작가의 소설과 잡문과도 다른 특이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글쓰기 열풍은 책 쓰기 열풍으로 이어지는 요즈음, 내가 쓰는 글은, 내가 펴내고자 하는 책은 어떤 부류에 속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될 것이다. 아울러 동서양의 대문장가들, 글쓰기의 선배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로 글을 쓰고, 그 글들이 책으로 엮어져서 후세에까지도 읽혀지는가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상당한 양의 책 속의 책들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인문학적 성찰과 독서 길라잡이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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