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맙다 - 상담가 폴라 다시의 감성 에세이
폴라 다시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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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슴에 돌을 하나씩 얹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돌의 크기만 다를 뿐이지요. 겉으로는 매우 행복해 보이는 사람.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의 돌은 자라나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삶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 돌을 내려놓는 방법을 몰라서 못 내려놓고, 내려놓을 자리를 못 찾아서 가슴에 담고 다닙니다.

 

화병은 울화병이라고도 합니다.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 입니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1996년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습니다. 영어로 ‘hwa-byung’입니다.

 

심리학자 홀메스(Holmes)와 라헤(Rahe)는 스트레스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스트레스란 삶의 변화로 흔들린 정신 상태, 불안 상태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다.”

 

이 두 사람이 스트레스 수치를 계산했습니다.

배우자가 죽었을 때 100, 이혼 73, 교도소행 63, 법적인 피해(또는 소송)11, 질병과 부상 53, 은퇴 43, 임신 40, 성문제 39, 직업전환 36, 상사와의 알력 23, 이사 30 등입니다. 물론 이 수치는 유동적입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분명한 것은 배우자나 자녀, 가족의 죽음이 상위권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친김에 스트레스 이야기 조금 더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가지 일만 겪으라는 법이 없지요. 일이 터지면 줄줄이 사탕입니다. 사람이 감당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스트레스 수치가 200이 넘으면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300이 넘으면 정신줄을 놓기도 합니다. 요즘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공황장애’도 결국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입니다. 때로는 지나친 욕심과 계획이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책의 저자인 폴라 다시. 불의의 교통사고(음주 운전자에 의한)로 사랑하는 남편과 딸(21개월 된)을 잃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리라고 생각이듭니다. 더군다나 임신 3개월의 몸.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상황. 몸과 마음을 추스를 힘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일어섰습니다. 아니 이미 일어서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을 붙잡아 주고 힘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알기로 저자의 3번째 책입니다. 「이별수업」과 「마음여행」에 이어 역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앞의 두 책은 제목만 눈에 익을 뿐 아직 못 봤습니다. 조만간에 읽어볼 예정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별에 관한 강연과 상담은 물론, 영성지도자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랍니다.

 

책의 원제는 A New set of Eyes: Encountering the Hidden God입니다.

 

Encountering은 만남, 해후, 조우(遭遇)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일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또 어떤 일을 부딪게 될 때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저자는 우리가 고통과 조우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함께 고민합니다. 고통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고통에 어떻게 맞서느냐입니다. 그러나 사실 맞선다는 표현도 바람직하진 못합니다. 고통도 내 삶의 일부분입니다. 내가 고통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안 만나지는 것도 아닙니다.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지요. 그러나 몸과 마음의 질병은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보이던 사람이 암 진단을 받고 며칠 상간에 피골이 상접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망과 비탄에 잠겨 주저앉아 있느냐. 죽을 생각만 하고 있느냐.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봐야겠지요.

 

저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으로 고통에 대해, 사랑에 대해,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의 원제에 God이 들어감으로 비껴 지나갈 독자층을 의식해서 「세상에 고맙다」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세상이 뭔가요? 곧 사람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고맙다는 말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고맙다는 이야기지요. 혹자는 고마운 사람들은 커녕 내 주변엔 웬수들만 잔뜩 몰려 있다고 탓하겠지만 말입니다. 원수는 밖에 있고, 웬수는 집안에 있다던가요.

 

시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는 없습니다.

시련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졌습니다.

매우 위대한, 아니 가장 위대한 존재의

이미지를 본떠 만들어진 우리 자신.

 

 

저자가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친구에게 조언자를 소개받았습니다. 그의 현명한 조언을 기다리며 그에게 그동안 그녀가 겪은 고통과 시련을 낱낱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가 올랐던 산, 흘렸던 눈물, 참아야 했던 가슴 찢어지는 아픔 등. 그리고 그녀는 진정한 위로의 말을 기다렸습니다. 인지상정이지요.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그래서요?” 그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황당한 말을 들었으나, 폴라 다시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기도 합니다.

 

그녀는 그의 눈동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었답니다.

“그곳에서 방황하지 마시오. 그건 당신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의 경험일 뿐입니다. 당신은 그 경험을 이겨낸 사람이 아닙니까. 이젠 당신 자신을 알아나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대부분 극복의 힘을 외부에서 찾아내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소중한 힘. 다이너마이트 같은 힘은 나의 내부에 있습니다. 폴라 다시가 내게 보내 준 편지라고 생각하고 찬찬히 읽다보면 내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일어나는 반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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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지배 - 세계 금융사 이야기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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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의 역사는 화폐의 역사와 호흡을 같이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세계금융사 이야기지만,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결국 금융이 개인을, 기업을, 나라와 세계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작년에 국내 금융계를 혼란시켰던 몇몇 저축은행의 사례처럼 개인 또는 집단이 있기도 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각기 다른 개인에게 돌아가는 만큼, 이 역시 금융의 악영향이기도 하다. 


“통화, 화폐, 금전, 주화, 재화, 재물, 자금. 명칭이 무엇이든 중요한 건 모두 돈이란 사실이다.”


저자는 모든 장대한 역사적 현상 이면에는 금융과 관련된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는 예술과 건축에 상당한 붐을 일으켰는데, 메디치 같은 이탈리아 은행가들이 동방의 산술 체계를 화폐에 적용해 재산을 모은 덕분이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공화국이 합스부르크 제국보다 우세했던 이유도 세계 최대의 은광을 얻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주식 시장에서 금융 혜택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프랑스의 군주 정치는 혁명이라는 처방이 필요했는데, 스코틀랜드 출신의 살인자가 세계 최초로 주식 시장에 거품을 만들고 터뜨리면서 프랑스의 금융 제도를 만신창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80년대 세계 6위 부유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1980년대에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폐인 국가로 전락한 이유도, 채무 불이행과 통화 평가 절하 같은 자기 파괴적인 금융 실책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만약 인간의 사회에서 ‘화폐’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5년 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벗어난 콜롬비아의 한 지역에서 누칵마쿠 부족원들이 발견되었다. 전적으로 원숭이 사냥과 열매 채집에 의존해 살아온 이들은 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개념 역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점이 중요한 것 같다. 화폐가 사라지고, 금융 사회가 없어진다면 미래에 대한 개념 또한  없어진다는 것. 

수렵 채집 생활에 대해 토마스 홉스는 “고독하고 빈곤하며 불결한 데다 야만적이고 수명마저 짧다.”고 했다.

인류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근대 시기까지 살아남은 수렵 채집 부족들 대다수가 평화롭게 살지 않았다고 한다. 일례로, 에콰도르의 지바로 부족은 남성의 60퍼센트가 폭력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브라질의 야노마모 부족의 경우, 부족한 자원(식량과 가임여성)을 놓고 상업적으로 교환을 하기보다 서로 싸울 가능성이 더 높다. 수렵채집인은 거래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급습해 빼앗는다. 그리고 식량을 발견하는 대로 바로 소비할 뿐 저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화폐가 필요 없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의 도움을 얻는다. 미래는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 업종이 꾸준히 성장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그 활동 영역 안에서 많은 불가피한 일이 발생한다. 좀 다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후 왕따와 학교 폭력이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유사한 상품이 있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개인적인 생각으론 ‘왕따 보험’ 상품이 개발되면 히트 예감이다. 우리 중 큰 사고 없이 인생을 헤쳐 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넘어지고 깨지며 다시 일어서서 가든가, 주저 않든가 둘중 하나이다. 


2005년 8월 마지막 주 미시시피 삼각주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들이닥쳤다. 처음에 태풍은 시속 225킬로미터로 울부짖으며 지역 일대의 목조 가옥을 날려 버리고는 콘크리트까지 쓸어 버렸다. 2시간 뒤에는 9미터 높이의 해일이, 폰차트레인 호수와 미시시피강의 범람을 막고자 쌓은 제방 세 군데를 무너뜨리더니 수백만 갤런에 달하는 물을 도시에 쏟아 부었다. 비운의 장소이자 비운의 날이었다. 

2년 후 세인트 버나드 페리시의 인구는 카트리나가 들이닥치기 전 인구의 3분의 1수준이었다. 대부분 보험이 걸림돌이었다. 현재 세인트버나드나 뉴올리언스의 다른 저지대에 사는 가구는 보험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부터 현대의 소액 금융에 이르기까지 금융사 전반을 다루면서 저자는 특별히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빈곤은 탐욕스러운 금융업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  두 번째, 평등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전 세계 금융시장 통합이 더욱 진척될수록 금융 지식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어디서든 기회가 보장되며, 금융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낙오될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세 번째, 금융위기의 시기와 강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만큼 힘겨운 작업도 없다는 것.


“현재 금융세계는 지난 4000년간 이어 온 경제 신화의 산물이다. 화폐, 즉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관계가 구체화된 대상은 은행과 어음 교환소를 탄생시켜 차입과 대출 행위를 전례 없는 규모로 한곳에 모아 놓았다.  13세기부터는 정부 채권이 이자 지급을 증권화 했으며, 한편으로 채권 시장이 등장해 규율에 따라 거래되는 공개시장의 혜택을 누리게 했다. 

17세기부터는 기업 주식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팔았다. 18세기에는 보험 기금에 이어 연기금이 등장하여, 규모의 경제와 평균의 법칙을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비한 금융적 보호 수단을 제공하였다. 19세기 이후에는 선물과 옵션이라는 더욱 세분화되고 세련된 형태의 금융증서들이 등장했다. 바로 파생상품의 출현이었다. 20세기부터는 정치적 이유가 작용하여, 각 가계들이 차입을 높여 부동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도록 부추겼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세계 경제가 정체에서 탐색, 전환 단계로 옮아가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소는 2012년 1월 4일 발표한 ‘2012년 국외 10대 트렌드(동향)' 보고서에서 "선진국의 침체와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각국은 정권 교체를 통해 다양한 경제ㆍ사회적 전환을 탐색하고, 글로벌 기업도 불황 타개를 위한 국면 전환 노력을 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는 세계 60여국에서 굵직한 선거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즉, 각 나라마다 정권의 교체냐 굳히기냐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의 큰 흐름은 정치의 방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더 악화되지 않고 부의 흐름이 낮은 곳으로도 흘러가기를 기대해본다. 


이 책은 세계 금융사 이야기를 통해 화폐와 금융에 대한 인식과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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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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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이 그들의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 메시지와 크게 다른 삶이 아니었다는 점이 감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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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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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6일. 경기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한 주택 앞에 취재진들이 몰려있었다. 2005년부터 외신 등이 꼽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고 있는 고은 시인님의 집 앞이다. 이날 고 시인의 주택 앞에 모여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 낭보를 기대하던 주민 10여명은 스웨덴 시인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가 수상했다는 소식에 허망한 표정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녕 우리에게 노벨문학상은 먼 그대인가? 이제는 탈 때도 되지 않았나? 아니, 벌써 지나도 한참 지나지 않았나?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이미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94년엔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는가?

 

노벨 문학상은 “이상(理想)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께” 수여하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해마다 전 세계의 작가 중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때때로 작가 개인의 작품 중 주목할 만한 특정 작품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에서 “기여”란 한 작가가 쓴 작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노벨 문학상은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수여한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노벨 문학상이 대중들에 마음에 크게 어필되지 않는듯하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쯤? 노벨 문학상이 수상되면 각 출판사마다 매우 분주했다. 요행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미리(완전 운이다)번역, 출간해놨던 출판사는 대박이다. 하긴 나도 매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던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이 책이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도록 하는 힌트 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스웨덴 아카데미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수상자들의 일상을 잠시라도 들여다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두 사람이 저지른 대형사고(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는 “모든 것은 우연히 시작되었다.”로 열린다. 사진기자인 킴 만레사가 그의 사진집을 출간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헌사를 받아 올수 있냐고 글쓴이인 사비 아옌에게 요청을 하면서부터이다. 생각이 발전해서 기왕이면 이 기회에 인터뷰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로 의기가 투합 되었고, 두 사람은 작가들 섭외에 들어갔다. 이른바 ‘호텔 인터뷰(신간이 나올 때마다 호텔에서 이뤄지는 극히 짧은 시간의 인터뷰)’같은 방식은 피하기로 했다. 일종의 밀착취재, 동행취재인 셈이다.

 

노벨문학상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책을 읽으면서, 16인의 세계적인 문인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과연 노벨문학상이 그들의 삶에,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에 주목을 했다. 긍정적인 면이라면 경제사정이다. 상금이 자그마치 120만 달러이다. 그 상금이 그들의 삶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직, 간접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명예와 함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고 환대해주는 분위기는 그들의 삶에 큰 활력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도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불운하지 않고, 다른 일들로 인해 내 세계가 흔들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 그들의 일상을 세상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화통은 수없이 울려대고, 찾아오는 사람은 시도 때도 없다. 차분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 대부분 그런 휩쓸림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있다. 위의 오에 겐자부로와 같이 대응하고 있다. 1992년 수상자인 데릭 월콧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상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당시 나는 상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해 있었어요. 노벨상을 받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게 자신의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다행히 나는 세인트루이스에 살고 있어서 나에게 필요한 휴식과 작업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 앞에 앉을 때마다, 누구든 과거를 비우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그들의 작품, 나아가서 수상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거의 대부분이 문학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문화 너머에 있는 일들과 담을 쌓은 작가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책 제목을 [16인의 반란자들]이라고 정한 듯싶다. 반란자들이라고 이름 붙이는 점에 대해 16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언급이 없지만, 그들도 그냥 웃어넘겼을 법하다. 그들의 일상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위험하다.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는 1994년 한 통합주의자의 테러를 받고 목에 치명적인 자상을 입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그 충격으로 눈이 멀고 귀가 닫혔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지만, 그들의 삶과 문학이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노벨상을 받기 이전부터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기본적인 생활마저 할 수 없을 때 에도 절대 권력과 불의에 저항했다. 그래서 제법 많은 수상자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던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는 그중 매우 가벼운 편에 속한다. 일본천황이 문화의 날에 모범적으로 문화적 여정을 걸어온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는데, 그 상을 수여하겠다고 하자 거부했다. 모두가 탐을 내는 상이다. 부상으로 평생연금이 주어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천황을 신으로 받드는 강력한 민족주의의 틀 속에서 살아왔는데, 나는 그게 두려워요. 그것은 민주주의와 대척점에 놓이니까요. 내가 그 상을 거부했던 것은 내 작품을 인정하고 나를 수상자로 선정한 천황의 권능을 거부했던 거요.”

그가 천황의 상을 거부하자 극우파와 우파 그룹들이 ‘당신은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소리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지금도 그들은 겁이 없다. 글만 쓰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 인류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무언가 기여할 일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다. 그들의 평균연령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경로 우대그룹을 훌쩍 넘어섰다.

 

중국 문화혁명의 희생자이자 정치적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가오 싱젠이 한 말은 위의 그룹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진실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권력이 있으면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은 다수에 의해 선택되지만, 그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웃기지도 않는 결과일 뿐이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정확하게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나의 손을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책에는 각 작가의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여럿 실려 있다. 손은 그들의 정신이 배어나온 출구이다. 나의 손을 들여다보며 내게 하는 말.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무언가 후손을 위한 정신적 유산을 남겨 놓아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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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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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꿈은 무엇일까?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고도 끝이 없는 욕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위 0%를 제외하고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중산층에서도 밀려난 서민들의 삶과 꿈은 소박하다 못해 안쓰러울 경우가 많다. 살아가는 수준이 상위권에 속하는 서울 강남 지역에도 소외된 계층이 있다. 삶을 영위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겨울이 되면 바깥기온과 별 차이 없는 거처에 몸을 누인다.

 

이러한 생각은 이 소설의 제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꿈의 도시. 꿈도 꿈 나름이지만, 이 소설의 제목에서 느끼는 꿈은 유토피아하곤 거리가 멀다. 어찌 생각하면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중간 정도이다. 그냥 ‘꿈꾸는 도시’라 해석하면 맞는 말이겠다. 아니 우리의 삶이 어차피 각기 다른 꿈을 꾸고 살고 있긴 하다. 동상이몽(同床異夢)도 있고 동병상련(同病相憐)도 있겠지만 꿈은 꿈이다.

 

소설의 무대는 일본. 3개 읍이 합병하여 새로운 시가 된 유메노 라는 가상의 도시이다. 2군데도 아닌 3군데의 읍이 하나로 묶이다보면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이런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치지도자들과 정책실무자들의 지혜와 정직성이 우선적이다. 여러 가지 이권사업에만 눈이 빨개지는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재벌그룹은 막강한 자금력에 정치인들의 후광을 업고 기세 좋게 나아가고 소상인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어디 딱히 하소연 할 데도 없다. 작금의 국내 사정과 비슷하다.

 

다섯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시청 사회복지과 공무원 도모노리. 도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서 부자 꽃미남 대학생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여고생 후미에. 폭주족으로 몰려다니면서 일찌감치 애까지 낳은 후 역시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며, 주로 노인들만 사는 집을 찾아가 배전반을 보수 점검한다는 명목 하에 누전차단기를 강매하고 있지만(차단기 값은 그때그때 다르다) 아뭏든 열심히 살고 있는 유야. 유메노시의 유일한 복합 상업 시설인 ‘드림타운’지하 식품매장에 경비보안회사의 파견사원으로 근무 중인 다에코. 역시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산다. 등장인물 다섯 사람 중 그중 형편이 제일 나은 정도가 아니라 최상급인 시의회의원 준이치. 군 의회 의원이던 그의 아버지가 은퇴한 것을 계기로 그 지반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토지개발 회사 운영이 본업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굴곡이 없을 수 없다. 행운이다 싶으면 불행으로 이름을 바꿔야하고, 구름이 잔뜩 끼었다 싶으면, 어느 결에 해가 난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외나무다리를 걷고 있는 모습이다. 다리 밑에는 제법 빠른 속도의 물이 흘러간다. 왼쪽 편에는 행운, 오른편엔 불행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물은 같은 물이다. 즉, 행운과 불행이 한 흐름에 있다.

 

이 다섯 인물들 각기의 삶속에 전혀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난다. 공무원 도모노리는 생활보호대상에 들기 원하는 주민과 부딪힘이 있은 후 보복행위로 여러 차례 차량(트럭)추돌사고를 당한다. 여고생 후미에는 늦은 저녁 학원을 마치고 나오다가 사이코패스이자 게임중독자, 은둔형 외톨이에게 차량 납치를 당한다. 방문판매사원 유야는 고등학교 시절 폭주족 선배이자 회사 선배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알고 있으면서도 속수무책이다. 차 트렁크에 실린 시체를 확인하고 선배에게 자수를 권유하지만, 계속 미루고 있는 선배와 며칠간 불편한 동거를 한다. 식품매장에서 소매치기를 잡던 보안회사의 직원 다에코는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신흥종교와 다른 종교 단체 간의 이해다툼 탓에 실직을 하고 급기야는 절도범의 신세까지 간다. 잘 나가던 시의회 의원 준이치는 어떤가? 공교롭게 한 건의 사망사건과 한 건의 살인사건에 개입된다.

 

예상치도 않았던 엄청난 일을 겪으면 사람들은 뇌의 기능이 일시 정지되는 모양이다. 떠오르는 단어는 망연자실(茫然自失),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그저 시간만 흘러간다. 이 다섯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그들 자신이 수습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바라보는 독자는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 잔득 저지레 해놓고 작가는 어찌 정리를 하려나? 남은 쪽수는 얼마 안 되었는데.. 그런데 참 오쿠다 히데오라는 사람 참 재미있다. 머리도 잘 돌아간다. 하긴 머리나쁜 사람이 어찌 소설을 쓰냐만..

 

이 복잡한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멍한 상태의 다섯 주인공들을 원 샷에 정리하는 사건이 생긴다. 책의 결말이 싱거운 듯 하면서 야무지게 정리를 해놓았다. 역시 사람은 내가 못하면 외부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모양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결정을 못 내리던 일이 내 의지하곤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로 그럭저럭 또 한고비를 넘기는 적이 있긴 했었다. 나의 경우에도..

 

책은 제법 두터운데(630쪽)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오쿠다 히데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간다. 『올림픽의 몸값』 『걸』 『라라피포』 『내 인생 네가 알아』 『마돈나 』『방해자』 『최악』 『한밤중의 행진』 『도쿄이야기』 『남쪽으로 튀어』등과 정신과 의사 이라부 시리즈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선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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