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우주 - 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
우석영 지음 / 궁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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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을 돌아보며 잊히지 않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국민윤리 과목을 맡고 계셨지요. 한자 교육을 자청해서 맡아서 해주실 정도로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령모개(朝令暮改)의 달인들이 포진해 있는 문교부(교육인적자원부 전신)에선 ‘국적 있는 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한자를 없애느니, 마느니 설왕설래(說往說來) 할 무렵이었습니다. 결국 제 3년 후배들부터는 한자의 스트레스에서 일순간 벗어났지요.

 

그 선생님이 텍스트로 삼아 주신 책은 을유문고판 「명심보감(明心寶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첫 시간에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책을 읽을 때마다 한자를 모르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것이다. 만화책이나 들여다보고 살 것 같으면 한자를 몰라도 된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서적은 한자를 모르고는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선생님의 이 말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한자 공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명심보감은 중학교 때부터 가방에 넣어갖고 다니며 버스 안에서도 틈틈이 봤던 책이기도 했기에, 그 선생님 시간이 많이 기다려졌지요.

 

선생님의 열성적인(?) 지도 덕분에 우리는 한자 공부에 게으름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기 5분전쯤..쪽지 시험을 치룹니다. 공포 그 자체입니다. 저도 그랬지만 다른 친구들도 한자의 음과 뜻은 그럭저럭 두드려 맞추는데 거꾸로 한자를 쓰라고 하면 거의 그림 수준이 되고 맙니다. 한자 이야기를 쓰다 보니 저와 비슷한 세대님들은 알고 계시는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간지 1면 톱기사는 대통령 자리였지요. 이승만 정권 때 1면 톱기사에 “이승만 大統領 ~ ”해야 하는데 대(大)자에 점 하나 떡하니 올라앉아서 “이승만 견통령(犬統領)”이 되었지요. 지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던 초상이 반으로 접을 때 지엄하신(?) 얼굴이 구겨진다 해서 초상을 한 쪽으로 옮긴 그 시절이었는데, 개통령을 만들었으니, 그 신문의 편집자와 식자(植字)담당은 얼마나 혼이 났을까 짐작되시지요?

 

이런..한자와 관련된 책이야기를 리뷰 올려드리다 보니 잠시 옛 기억이 스몰스몰 올라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고교시절에 한자를 배운 것이 참으로 행운이었습니다. 한의대를 입학한 제 후배는 일부러 한자 학원을 다니면서 별도 공부를 해야 했으니 그 당시 문교부 관계자들은 한학자들의 밥줄을 당겼다 풀었다 한 셈이지요.

 

이쯤에서 저자 소개를 간략히 하고 나서 책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자 우석영은 연구보다는 시서화 창작(즉, 놀이)을 더 좋아하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이자 문필가로 적혀있습니다. 국내외 여러 대학, 대학원을 유랑하며 사회학, 문학, 철학(세부전공:창조성의 존재론)분야의 내공을 쌓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물리적, 심리적 시간으로 학교보다는 산중에서, 도서관에서, 서재에서 홀로 연마한 독학자에 가깝다고 합니다. 특히 이 대목에 맘에 듭니다. [독학]. [독학자]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에 모인 글들은 본시 글쓴이가 노트에 적어본 일기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출간을 전제로 집필한 것들이 아니라 일기 노트에 ‘그냥 한번 되는 대로 적어본 것 들’이랍니다. 그렇다고 잡기(雜記)정도로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라 차라리 에세이가 아니냐 하실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일기를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이다.”

저자는 덧붙여 이 글들이 새벽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글쓴이와 새벽과의 관계가 이 글들의 탄생의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냐고 물으시면, 한자어· 한글의 옛 뜻풀이, 말의 소리를 담은 책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끝내기엔 좀 아쉽습니다. 그 이유는 깊이 있는 인문철학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한자(漢字)에 알레르기 사인이 있으시던가, 아님 그 반대이시든 상관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단지, 단순히 한자 관련서적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인문철학서 한권을 마스터 한다는 심호흡이 필요합니다. 전체쪽수는 색인 포함 760쪽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된 110여개의 한자풀이가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자도 그리 이야기하네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이 사색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정(精). 쓿은 쌀알 정. 낱말 精은 파릇파릇(靑) 돋아난(벼, 밀, 보리 따위의) 곡식의 아람(米)을 그린 것이다.(....)고대 중국인에게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쌀알의 제1상징이란 사람 생명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근원 물질로서의 상징이다. 精은 정령(精靈), 혼령(魂靈)이기도 하다. 정신(精神)이라는 말에 쓰이는 낱말 역시 精이다. 정신, 靈의 다른 말은 얼이다. (......)

精은 또한 깊은 것, 세밀한 것, 깊고 세밀한 것에 도달하려 함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박(精博)은 지식의 깊고 넓음이요, 정려(精慮)는 깊이 생각함이요, 정해(精解)는 깊고 정밀하고 면밀한 해석이다. 정연(精姸)은 정묘하고 자세한 아름다움이요, 정련(精練)은 세밀히 단련함이요, 정사(精舍)는 (자세하고 깊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 혹은 불도(佛道)를 닦는 장소인 것이다.

 

 

독(讀). 읽다. 읽기를 지시하는 讀의 원형적 뜻은 ‘비의를 풀어 이해함’이다. 이를 텍스트에 적용해보면 텍스트를 읽는 일이란 그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실체 또는 속뜻을 이해함이다. (....) 읽기(reading) 는 봄(seeing) 이라는 지각행위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동시에 봄 이상의 것이 관련된다. 그 이상의 것은 물론 정신의 활동인데 사르트르는 이 활동을 ‘창조(creation)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읽기는 시지각(視知覺)과 연동되며 시지각과 공속한다는 속성보다는 창조라는 속성이야말로 ‘읽기’라는 활동의 비밀을 푸는 핵심 열쇠가 된다. (......)

바슐라르는 독자가 텍스트(또는 작가)를 만나며 느끼는 공감을 두 종류로 나누어 깊은 영혼의 차원까지 건드리는 공감 작용을 울림(reverberation)으로, 그렇지 못하고 표층에 닿고 마는 것을 반향(resonance)으로 개념화한다. 말할 것도 없이 독서-창조의 기쁨을 강렬히 일으키는 것은 앞엣 종류의 공감 작용이다. 내가 늘 생각해왔던 것, 내가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어렴풋이나마 느껴왔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 그러한 것이 보다 명징하고 아름다운 글의 꼴로 내가 모르는 남에 의해 구체화된 것을 나는 홀연 발견한다. 그러나 이 발견은 그저 펜이나 인형을 거실에서 발견해내는 것과는 다른 발견이며, 오히려 우리가 ’창조‘라 부르는 과정과 동시에 발생되는 발견인 것이다.

 

P.S : 아전인수(我田引水). 바슐라르가 이야기한 부분. 책을 읽으며 느끼는 공감에서 나아가 리뷰를 쓰는 것은 역시 한 ‘울림’에서 텍스트의 작가와 창조의 순간에 함께 서게 됩니다. 어느덧 독자이자 창조저인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됨’을 이룩합니다. 그것은 본디 나 아니었던 것과의 자발적이고 순종적이고 절대적인 하나 됨이니, 이러한 독서 경험은 사랑의 경험과 유사할 것입니다.

 

바슐라르에게 묻습니다.

리뷰를 쓰는 것도 작가의 창조 작업에 동참하는 것 맞지요?

맞답니다. 그러니까 딴 생각 말고 열심히 읽고 쓸 일입니다.

우리는 창조 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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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우주 - 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
우석영 지음 / 궁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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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한 글자 속에 담긴 사색의 징검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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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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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가상 인터뷰로 리뷰를 작성해봅니다)

 

Q (나) : 선생은 공대를 졸업하시고, 제련소에서 근무를 하다 얼마 후 그만두고 국어국문학과에 편입, 졸업하시고 난 후 교수, 시인으로, 독서법에 대한 저술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시고 계시군요. 그렇게 삶의 중간에 노선을 바꾸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A(저자) : 흔히들 이야기하는 ‘문학에 대한 열병’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숙명인 것 같습니다. 가을로 기억됩니다. 아니 꼭 가을이 아니라도 ‘가을’이 상징하는 그런 계절이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2차 성징이 시작 될 무렵 어느 날, 화동 정독 도서관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다 지쳤지요. 버스 대신 두 발을 땅에 딛고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창경궁 돌담길을 돌아서 혜화동쪽으로 접어들었지요. 비는 내리고, 몸과 마음에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은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 순간, 안톤 슈낙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머릿속을 흔들었습니다. 그 땐 몰랐지요. 가까스로 기억해내며 중얼거리던 그 한 편의 수필이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게 될, 아! 문학이라는 이름의 불멸의 경전이었음을요..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나마 다시 깨달은 셈이지요.

 

Q : 선생의 프로필 중 ‘돈키호테처럼 현실에 어긋장 놓기, 에리히 프롬처럼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람 되기, 신영복 교수님처럼 겸손하게 글쓰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쓰여 있던데, 더 하실 말씀은?

 

A : 현실은 때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던가, 아주 지저분하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지향하는 방향은 아무래도 제 맘에 안 듭니다.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한 우주 폐기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그 쇳덩어리 말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제가 특히 존경하는 석학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인간을 위한 인간」등 모두 제게 크게 영향을 준 도서들입니다.

신영복 교수님을 떠올리면 존경의 마음과 함께 제 몸과 마음이 위축됩니다. 신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페이지 넘기는 부분이 닳을 정도로 읽었지요. 밑줄도 참 많이 그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참 이상하게도 감옥 안에 있는 이와 밖에 있는 이가 뒤바뀐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서신들 속에서, 평안하고 자상한 마음자세와 유머러스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읽으면서, 오직 사색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감옥에 갇히지 않게 하는 진정한 힘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 교수님의 《강의》는 서론에서부터 목이 메어 왔습니다. 수인(囚人)이었기에 도달할 수 있는 문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인간적인 해석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수인의 수(囚), 이 한자를 보면 신 교수님이 22년 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네모 벽 속에 한 사람이 갇혀있습니다. 저 좁은 네모벽 속에서만 도달 할 수 있는 문사철(文史哲)의 무한함, 이 역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Q : 가장 혐오하는 것을 세 가지 드셨던데, 1주일에 1권 이상 책 읽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기. 1개월 이상 서울에 머물기. 이 중 제일 첫 번째는 선뜻 이해가 안갑니다. 인터넷 서점은 물론 독서를 권장하는 이런 저런 단체에선 1주일에 1권 이상 책 읽자는 캐치프레이즈가 자주 눈에 띄던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요?

 

A : 아마 제 이야기를 들으면 인터넷 서점이 오히려 좋아 할지 모르겠습니다.

1주일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자는 이야기는 1주일에 한 끼 정도 밥을 먹자는 이야기나 똑같습니다. 육의 양식은 하루에 한 끼만 건너뛰면 큰 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왜 굳이 책은 1주일에 한 권입니까?

책을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권씩 읽고 리뷰를 쓰는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것 아니지요. 남들만큼 바쁘게 삽니다. 단지 일상의 삶에서 틈새시간을 잘 활용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것이지요. (이건 완전 이 리뷰 쓴 사람 이야기)

덧붙여 나에게 서울은 너무 산만합니다. 책읽기와 사색을 방해하는 요인이 산지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공기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구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은둔처를 마련해 놓았지요. 경기도 여주 깊은 산골에 있는 귀담재(歸淡齋)라는 산장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영적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은둔을 위한 은둔이 아니라 ‘인생 공부’를 위한 글을 쓰며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Q : 선생은 이번 책에서 문학은? ~ 이다. 라고 무려 20가지나 이름을 붙여 주셨더군요.

좀 더 간단하게 줄여서 한 말씀 하신다면?

 

A : 이 책의 기획 의도 및 목적이라는 타이틀로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문학의 중요성이나 가치가 점점 상실되어 가는 시점에서 문학의 진정한 효용성이나 필요성을 언급함으로써 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문학을 통하여 얻게 되는 인생의 새로운 가치 창출에 이바지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습니다. 중학 1-1 교과서에 “문학의 즐거움”이란 단원이 있습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언어 예술이다.”라고 되어 있지요. 이 세상에서 문학은 인간의 영혼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장치요, 수단이다. 문학작품 속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인생과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 : 예,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멋진 작품 기대 하겠습니다.

 

P.S : 혹시라도 저자인 정제원 교수님이 이 리뷰 보시면서 마땅치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실지라도 이해하십시오. 원래 글이란 것이 작가의 손에서 떠나면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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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김순호 옮김 / 고려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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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눈이 떠졌습니다. 곁에서 자던 아내가 가위에 눌렸는지 비명을 지릅니다. 이럴 땐 일단 깨워야 합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깨워 살려내고 볼 일입니다. 흔들어 깨우니까, 꿈과 현실의 문턱에서 아내는 한 번 더 놀랩니다. 일어나 물을 한 컵 마시게 한 후에 아내는 다행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만, 이젠 내가 잠이 안 옵니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기에 그랬나? 내가 책을 보는 사이에 아내는 수사물 미드를 보다 잠이 들어서 그랬나? 생각하다 나도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자고 있어도 뇌가 완전히 기능을 멈추는 것은 아니지요. 호흡을 하고 있으니까 연수도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꿈을 꿀 때 뇌파를 측정해보면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뇌피질에서 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이 켜져 있습니다. 단지 그 밝기만 줄어 들 뿐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젊은 사람들을 위해 평이하게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 재밌습니다. 저자는 결코 나이로 젊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를 모르는 현대인 모두가 우둔하지만 정겨운 젊은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젊은 편에 속합니다. 아니 어리다고까지 봐야하나요?

 

책의 전편을 통해 흐르는 것은 뇌(腦)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뇌를 관찰해 봐도 마음은 모르겠다.” 신경세포 분야 생리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C.에클스(호주, 1903~1997)와 캐나다 출신의 뇌신경외과 의사로 대뇌피질의 기능적인 지도를 그린 와일더 펜필드 등이 공통적으로 한 말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남의 마음뿐이 아니지요. 내 마음도 모르긴 마찬가집니다. 가령 동전을 던져서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에서 왜 그 쪽을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그냥 ‘직관’이라고 대답할 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대부분 ‘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뇌입니다. 자기의 뇌가 자기를 잘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뇌가 뇌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뇌가 뇌를 아는지, 또 알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쉽게 이야기해도 뇌 이야긴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는 없지요. 이 책에선 뇌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음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자는 본인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마음’과는 친숙하지만 뇌와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뇌는 곧 마음’이라는 등식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뇌와 마음의 관계는 확인하려고 해도 뇌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확인할 수 가 없다. 뇌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것도 당신의 마음이지 뇌는 아니다. 우리는 뇌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다.”

 

언어의 유희 같지요? 키워드는 뇌와 마음입니다. 결국 저자는 그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상대방의 마음을 콕 찔러볼 때 내 언짢은 마음도 전할 겸 통상적으로 하는 말이 있지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생각해봐!” 가슴엔 뭐가 있지요?

심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난 내 할 일 하기도 바빠. 내가 템포를 늦추거나 빠르게 하면 당신도 힘들어져. 멈추면 끝이고. 그러니까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둬.”

심장의 말을 존중한다면, 말을 바꿔야 할 듯싶네요.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이런..차라리 두 손 들고 벌서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낫겠네요. 마음이 내킨다면 말입니다.

결론은 ‘마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뇌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지요?

 

“과학의 세계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 뇌의 전형적인 기능인 의식이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주관이라는 것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과학, 즉 19세기 과학에서는 의식을 자연과학에 포함시키지 않고 문학 부문에 넣어버렸다. 따라서 지금도 심리학은 인문과학에 속해 있다. (………) 그러나, 의식이 과학의 대상으로까지는 되어 있다. 그래서 고전적인 자연과학이나 심리학 같은 것 외에 인지(認知)과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났다. 인지과학의 범주는 실제로 우리들의 뇌의 기능뿐만 아니라 계산기의 기능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것이다. 이런 분야가 계속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연과학만으로는 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는 뇌의 세기’라고 합니다. 뇌 연구학자들의 공통된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단어가 ‘뇌’로 전환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뇌에 대해선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서적이 나올 것입니다. 마음의 연구 또한 함께 가겠지요.

 

참..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내에게 어젯밤에 무슨 꿈을 꿨기에? 하고 물으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 기억에서 지워진 듯합니다. 공연히 꺼진 불씨 다시 살릴 필요는 없지요.

 

뇌 이야긴 아무리 쉽게 해도 딱딱하지요. 책에 인용된 이야기 한 꼭지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문진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환자는 가슴을 펴고 대답한다.

“그래요, 나는 나폴레옹이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신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환자가 말을 받는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썰렁하십니까?

뇌 이야기 읽으시면서, 그대의 뇌에 켜졌던 불을 잠시나마 끄시라고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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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이야기 - 새 시대를 향한 열망이 들끓던 곳
김상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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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가 밖에서 신음하면서 들어오는데 피가 흘러 옷을 적셨고, 얼굴빛이 창백했습니다. 자객에게 귀에서 볼까지 베여 살이 떨어질 만큼 쪼개져 있었습니다. 때는 1884년 12월 4일 늦은 저녁시간입니다. 목이 달아날 정도로 칼에 베인 사람은 그 당시 실세인 민영익이었습니다. 그날은 우정국 개국 축하연회일이자, 김옥균, 홍영식이 주도한 급진개화파의 거사일이기도 했습니다. 삼일천하로 막을 내린 갑신정변의 칼날에 민영익이 칼을 맞고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산책을 나갔던 알렌은 10시 30분쯤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습니다. 이 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미국 공사관 서기관 찰스 스커드 였습니다. 알렌이 민영익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알렌에겐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의료 선교사로 청나라에서 병원을 차렸지만 실패하고 조선에 건너 온 참이었습니다. 부채도 있었습니다. 조선 왕실이나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민영익이라는 거물이 자기 앞에서 죽고 만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하지요? 뒤집어 생각하면 둘도 없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목숨을 살리기만 한다면, 인생 역전도 가능했습니다. 어쨌든 그의 헌신적인 진료 덕분에 민영익은 목숨을 건집니다. 만약에 민영익을 살려내지 못했다면,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시기도 일단 뒤로 물러갔겠지요. 민영익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왕실과 정부 관리들은 물론 백성들의 관심까지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인정까지 받게 되면서 특히 고종은 알렌에게 미국의 의료사정을 묻고 서울에 서양식 국립병원을 설립하고 싶다는 뜻을 밝힙니다. 제중원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제중원(濟衆院), ‘사람을 구하는 집’이라는 의미의 제중원은 최초의 서양식국립병원으로만 기억되기 십상이나 탄생하고 변화되는 과정 속에 조선 말기의 여러 면모들이 개입되는 계기가 됩니다. 즉, 변화의 중심에 서는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1885년 4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문을 연 서양식 국립병원의 첫 이름은 광혜원(廣惠院)이었습니다. 이는 ‘널리 은혜를 베푸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이 이름은 조선 초기의 제생원(濟生院)이나 1882년에 폐지된 혜민서, 활인서와 같은 조선 시대 전통 의료 기관의 이름을 계승한 것입니다. 4월 14일 의정부는 국왕(고종)에게 “혜민서와 활인서가 모두 혁파되어 조정에서 백성에게 시혜(施惠)하는 뜻이 소홀해져 별도로 병원하나를 만들어 광혜원이라 칭했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주일 후인 4월 26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는 고종에게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개명하자고 했습니다. 고종은 즉시 이를 재가(裁可)하여 이때부터 병원의 이름은 제중원이 되었습니다. ‘제중’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준말로, 널리 베풀어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 몇 가지가 나오나 이름 이야기는 이쯤 할까 합니다. 어쨌든 제중원의 설립자는 고종과 조선 정부였습니다.

 

 

새로운 의학에 대한 바람은 모든 신문물이 그러듯이 바다를 끼고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원산, 인천. 이 세 곳의 공통점은 일본과 적지 않은 ‘인연’이 있습니다. 187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었던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부산이 개항되고, 이어서 원산, 인천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 세 항구에는 일본인들이 속속 상륙해 저팬타운을 조성 했습니다. 1884년 9월 14일 부산에 도착한 알렌은 일기장에 “부산은 완전히 왜색(倭色)도시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6일 뒤 인천에 도착해서도 “일본인이 우세하고, 가장 좋은 요지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개항장은 한마디로 조선 속 일본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접하면 화가 치밉니다.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갔는지요. 이 세 항구에는 일본 병원이 들어서있었습니다. 일본인 영사관 직원을 포함한 거류민들의 치료를 담당할 기관이 필요했지요. 이 병원들은 일반 개업의가 경영하는 병원이 아닌, 일본 정부가 군의관들을 파견해 세운 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한반도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서양식 병원이었습니다. 제중원의 오픈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닫혀있던 문고리를 푸는 고종과 조선 정부가 내세운 정치 철학은 ‘동도서기(東道西器)’였습니다. 고종은 1882년 교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들의 종교는 요사스럽고 악하나 저들의 기술은 이로우니,

진실로 이용후생(利用厚生)할 수 있다면

농업, 양잠, 의약, 병기, 배, 수레 등을 왜 피하겠는가.

그 종교는 배척하되 그 기술을 본받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강약의 형세에 이미 현격한 차가 벌어졌는데,

만일 저들의 기술을 본받지 않는다면

저들의 모욕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고종실록』, 1882. 8.5

 

당시 고종과 조선정부는 미국을 짝사랑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다른 주변국가에 비해서 미국에 대해 가장 우호적인 입장 이었습니다. 미국 역시 조선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지요. 영토 확장에 올인 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최종 목표는 동아시아의 중심이자, 땅도 크고 인구도 많은 청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청나라로 가는 항로상 중간 기착지로 가장 좋은 곳은 일본이었습니다. 미국은 영국이나 러시아가 일본을 차지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비교적 일찍부터 일본에 공을 들였지요. 영국 등 유럽 열강이 아시아에서 즐겨 사용했던 작전인 ‘함포 외교’를 통해 1850년대에 일본을 개항 시켰습니다.

그런 반면 미국이 한반도에 갖고 있던 관심은 일본에 비해선 미미했습니다. 단지, 아시아로 진출하던 미국 상선이 일본과 청나라의 교역로에서 조난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조선 정부에 미국 선원들에 대한 인도적인 조치와 미국 선박에 대한 재산 보호를 보장 받고 싶었지요. 1882년 5월 22일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됩니다. 이 조약엔 청나라의 물밑 작업이 주효를 봤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청나라는 특히 1870년대 중반부터 조선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활발한 대외 팽창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미국을 끌어들여 일취월장하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청나라 생각에 미국은 자국과 조선의 영토에 대한 야심이 없는 나라이면서,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한반도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청나라 땅에까지 욕심을 안 부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전히 오판이긴 했습니다. 미국과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네요.

 

제중원의 설립을 비롯한 각종 근대화정책에 고종과 조선정부가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부분들은 사실 실패작이었습니다. 그것은 국력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한때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여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가 되면서 나라가 부흥하는 듯 했으나 어느새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지요. 결국 그는 황제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났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크게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에 무심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이 땅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과거를 알면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안목도 생길 것입니다. 이제 좀 더 애정을 갖고 한국의 근, 현대사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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