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도 없는 무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피터 무누헤 카레이디 지음, 양철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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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작품은 영국이 케냐를 식민 통치했던 시기에 케냐 원주민인 카쿠유족을 주축으로 그들이 전개한 무장투쟁 ‘마우마우(Mau Mau)’에 대해 피터 무누헤 카레이디가 사실에 기초해서 서사적으로 기술한 역사소설이다.

 

“비상사태 시기에 죽은 다른 많은 사람처럼 뭄비와 그녀의 아이가 묻힌 무덤에는 십자가도 이름도 없다. 그래서 누가 그곳에 묻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살다간 흔적이 이 세상에 남아 있기를 바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삶이 피폐해져서 그런 꿈마저 꿀 여념도 없이 눈을 감을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삶을 누군가 기억해주길 바란다. 십자가조차도 없는 무덤. 그 사람의 종교를 떠나서 위의 인용 글처럼 십자가조차도, 아무런 표식조차도 없는 무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마우마우’라는 용어는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견해와 해석이 다르다. 마치 한 동안 우리의 5.18이 ‘광주민주 항쟁’, ‘광주 사태’등으로 불렸던 것과 비교된다.

 

19세기 중엽 탐험가들과 독일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동아프리카의 사정이 유럽에 비교적 상세히 알려지게 된다. 그 곳 원주민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영국은 1894년에 우간다를, 이듬해인 1895년에 케냐를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식민체제의 수립 이전에는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케냐의 전통사회에서 백인 정착민들이 경계를 치고 토지를 사유화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의 전주곡이었다. 백인들에게 토지를 불하하는 과정에서 강압적 토지수탈이 진행되었고 기존의 사회적 위계, 구조, 가치에도 커다란 변화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억압체제, 즉 식민지화 과정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이 형성된다. 식민정부의 관리들에게 지나치게 협조하는 토착민 세력이다. 이들을 소설에선 ‘검은 백인’ 이라 부른다. 또 한 부류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저항세력이다. 이 저항 세력이 이 당시 케냐에선 ‘마우마우’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인권이 유린된 상태에서 희생만 당할 뿐이다. 십자가도 없는 무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어찌 이러한 사례가 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났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 기간 동안에 겪었던 부끄러운 과거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메자 블루와 뭄비 라는 두 청년이 있다. 메자 블루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백인들은 비옥한 땅과 좋은 직장이 제공되는 상황에서 단지 아프카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땅은커녕 직장조차도 구할 수가 없다. 뭄비라는 이름의 아가씨는 아버지가 역시 2차 대전에 참여해서 목숨을 잃었기에 홀어머니와 함께 산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각오하겠다는 그네들만의 맹세의식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메자 블루는 저항군에 합류하고, 뭄비는 이 일(맹세의식)로 고초를 겪게 된다. 급기야 식민정부의 충복으로 변모한 케냐 원주민 추장의 강간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던 중 아이와 함께 숨을 거둔다. 이 소설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이들과 같이 케냐인들의 많은 희생이 있은 후 1963년에 케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마우마우의 활동에 대해 과거의 일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평가와 예우를 소홀히 했다.

그 뒤를 이은 대통령 대니얼 모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마우마우와 대립관계에 있던 수구파들이 독립국가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그들이 축적된 부와 권력을 든든히 해줬을 뿐이다.

 

망각된 역사,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역사는 불의한 구조가 새롭게 잉태될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식민 역사의 청산, 진실 규명, 역사 바로 세우기에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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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릭 - 아마존닷컴 창립자 제프 베조스의 4가지 비밀
리처드 L. 브랜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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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 서점들의 등장은 수많은 오프라인 서점의 문을 닫게 했다. 꼭 부정적인 관점만은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속도 전쟁과 함께 원하는 것을 바로 찾아야 직성이 풀리게 만들었다. 온, 오프라인 서점의 차이는 가격경쟁에서부터 오프라인 서점이 하루에도 수없이 출판되는 도서들을 모두 구비 할 수 없다는 단점에서 시작된다. 보통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최소 3~4일 또는 그 이상이 걸린다. 때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헛걸음을 할 때도 있다. 반면에 인터넷 서점은 일단 수초 만에 내가 찾고자 하는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내 손에 들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마다 ‘겁나 빠른 배송’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창조해내려면 고집스러움과 융통성을 어느 정도 동시에 지녀야한다.

물론 어려운 점은 언제 어느 쪽 성향을 발휘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이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닷컴은 인터넷 서점의 선발주자이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어떤 사람인가?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우병현(한국 IT 기자클럽 부회장)은 전 세계는 IT업계의 큰 별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IT업계를 이끌 새 리더가 누구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면서 미국 실리콘밸리 동향과 문화에 정통한 『와이어드』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미국 최상의 기술자임을 알게 될 것이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이을 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베조스는 한국사회에서 일반인뿐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일 속의 인물’이다. 그 이유는 아마존 서비스와 킨들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한국 소비자가 극소수라는 점과 관련성이 많다고 한다. 종종 잡스와 베조스가 비교 되곤 하는데 잡스가 최고의 디자인에 집착했다면, 베조스는 고객에 집착한다. ‘원클릭 서비스’에서부터 책 추천 기능 등 아마존이 선보인 각종 혁신 서비스는 고객을 최우선시하는 베조스의 기업 경영철학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조스의 성장과정과 아마존이 태동하던 상황 그리고 그의 야심을 담고 있다. 베조스가 인터넷 마케팅 시장을 예측하면서 수많은 상품 중 클래식한 아이템인 [책]을 주력상품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궁금했다.

 

“나는 오로지 온라인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모방 할 수 없기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입니다.”

 

결국 그가 찾은 답은 책이었다. 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가령 가전제품을 살 때는 싸구려 불법 복제품이나 모조품일까 봐 걱정할 수 있지만, 온라인으로 특정한 책을 주문할 때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베조스의 말을 들어본다.

“책은 한 가지 측면에서는 대단히 특이한 상품이다. 즉 현재로서는 그 어떤 카테고리보다도 책이라는 카테고리에 가장 많은 상품 개수가 존재한다.” 1994년에 판매된 도서 판매량은 5억 1300만권에 이르렀고 베스트셀러 17종은 100만권 이상 팔렸다. 그리고 1994년에 평균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도서 구입에 쓴 돈은 1인당 79달러였다. 반면 음반에 쓴 돈은 1인당 56달러였다.”

 

아마존이 문을 열 당시 최대 서점 체인 두 곳은 반스앤드노블과 보더스 그룹이었으며 이 두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25퍼센트였다. 체인이 아닌 독립 서점들(개인 서점)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21퍼센트였다. 나머지 책들은 서점이 아니라 다른 통로, 즉 슈퍼마켓, 대형 마트, 북클럽, 우편 주문 등을 총해 판매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대형서적 회사들이 홈페이지를 오픈 하고 나서 ‘북 리뷰’코너에 정성을 쏟은 것이다. 국내 인터넷 서점 중에도 오픈 후 몇 해 동안 리뷰를 올리면 리뷰 하나에 1,000포인트씩 누적시켜 준적도 있었다. 물론 포인트는 그 만큼의 캐시화로 전환이 되어서 도서 구입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를 보면 홈피 오픈 후 한 동안은 책의 저자의 가족, 친구 등 지인들이 호평위주로 올린 리뷰가 전부였다고 한다. 자연적으로 좋은 이야기만 올라가고 행여 혹평이 섞인 리뷰가 오르면 가차 없이 삭제를 하며 통제했다고 한다. 현 시대에는 먹혀들어가지 않는 행태지만 그 당시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나 보다. 그런데 아마존이 그 룰을 깬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그 땐 별스런 행동으로 비춰져서 다들 회사 문을 닫을 것이라고 염려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한다. 결과가 좋았으니까 승승장구 했으리라. 악평과 혹평은 다르다. 아마도 앞서 그네들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책엔 아마존의 해피 스마일만 담겨 있진 않다. 타 대형서적회사들과의 소송, 원클릭으로 인한 긴 법정 싸움, 퇴사해서 나온 직원의 내부고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가는 생각과 행동이 있었기에 지금의 아마존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제프 베조스의 모든 것을 다 좋게 봐줄 수는 없지만 그저 긍정적인 시각으로 이해해주고 싶다.

 

인터넷 상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 계획하고 있는 사람, 향후 IT흐름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읽다보면 뭔가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이 오리라 믿는다.

 

베조스의 사업철학

첫 번째,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

두 번째,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창조하고 또 창조하는 것.

세 번째, 장기적인 시각.

네 번째, ‘언제나 처음처럼’ 이라는 마인드.

      (그렇다고 ‘처음@@’만 마시면서 시간 보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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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성격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토 바이닝거 지음, 임우영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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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과 성격(性格). 사실 이 주제는 예민한 부분이다.

이야기하는 주체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성(性)은 대체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나, 성격(性格)은 보다 복잡해진다. 외국사정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부부간의 이혼 사유 중 1순위가 성격차이라고 한다. 웬수하고 사느니 혼자 맘 편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성격차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성격차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아마도 성(性)의 격차(格差)라고 표현이 되지 않을까?

즉, 성의 격(格)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외국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性)의 격(格)이 달라서 같이 못살겠다는 의식은 우리보다 더 할 것이다.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책이 제법 두텁다. 850쪽이나 된다. 읽느라고 머리 좀 아팠다. 그러나 쓰는 머리 역시 힘들었겠다. 저자의 초판 서문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 책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비춰보려는 시도다.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특징적인 성격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거나 지금까지의 학문적 실험결과들을 종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남성과 여성의 대립적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원칙(Prinzip)에 따라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이런 종류의 다른 책들과 구분된다. 이 책은 이곳저곳에서 한가하게 머무르지 않고 마지막 목적지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관찰에 관찰을 쌓아가지 않으면서,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차이점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적용된다. 비록 이 책이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피상적인 것을 계속 출발점으로 삼겠지만, 그것은 단지 모든 구체적인 개별 경험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일 뿐이다. 이 책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귀납적 형이상학’이 아니라 ‘단계적인 심리학적 심화’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진다. 1부는 준비부분으로 성적 다양성에 대해 6장으로 이어진다. 생물학적이자 심리학적인 부분이다. 2부는 성적 유형들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14장이다. 심리학적이자 철학적인 부분이다.

 

“모든 남성적 특징들은 비록 약하게 발달했어도 어쨌든 여성에게서 증명해 낼 수 있다. 여성 특유의 성격들도 비록 남성으로 형성되면서 발달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고는 해도 남성에게 어떤 식으로든 모두 존재한다.”

여성 같은 남성, 남성 같은 여성에 대한 설명이 되고 있다. 어느 여행 잡지에선가 유럽 여행 중 턱수염을 기른 여성을 본 적이 있단다. 남성에게 여성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거나, 그 반대일 경우에 트랜스 젠더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럼 성격은 어떤가? 저자는 “인간은 모두 생긴 대로 행동한다.”라고 하는데, 나는 반대 입장에 서고 싶다. 즉, “인간은 행동한대로 생긴다.”로 바꿔보고 싶다. 각각의 생각과 각각의 감정 속에 드러나는 이미지가 그 사람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생긴 대로 행동한다는 말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 생김의 양상(물론 내면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남이지만)은 변한다.

범죄자의 얼굴에서 평안함과 인자함을 바라보기 힘들듯이 그 마음에 담겨진 것과 주변 환경이 그 사람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사람이란 곧, 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생각은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각 세포에 그 개인의 특성이 모두 숨겨져 있듯이, 한 인간의 심리적 충동에는 몇 가지 성격적 특징들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 한 요소가 이런 특성으로 나타날 뿐이고, 다른 요소는 다른 특징으로 나타나게 된다.”

 

저자는 성격학이 심리학과 결합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성격학이 역사적으로 자아의 개념과 운명적으로 연결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느낌과 감정의 차이는 무엇인가? 뉘앙스 차이일까? 경험에 바탕을 둔 심리학에서 느낌과 감정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느낌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온다. 반면에 감정은 내부로부터 우러난다.

 

“사랑할 때 남자는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 이것은 자아 중심적 태도도 아니고, 모든 약점과 비열함, 중요하거나 사소한 것에 시달리는 존재인 그가 실제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는 모습, 그렇게 되어야 하는 모습,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심오한 지적 존재, 너덜너덜한 일상과 지상의 흙덩어리에서 모두 벗어난 모습이다. 이런 존재는 시간적 작용으로 감각적인 제한과 섞여서 더 이상 순수하게 빛을 발산하는 원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그는 자신과 분리 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 이상적인 존재를 다른 존재에게 투영하게 된다. 그 말은 그가 그 존재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된다.”

 

“인간은 사랑을 할 때 비로소 어떤 식으로든 온전한 그 자신이 된다.”

 

저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칙들을 형이상학적 이념이 아니라 이론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단순히 생리학적이고 성적인 차이를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해서, 마치 생리적 활동이 나누어진 것처럼 상이한 기능들이 상이한 존재에 배분되어 있다는 견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에 또한 공감한다. 그러나 2부 13장 유대주의에 대한 챕터는 왠지 불편하다.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놀랠 분들이 있겠다. 나는 놀랬다. 저자 오토 바이닝거는 1880년 빈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03년 23세의 나이로 자살한 오스트리아 철학자다. 그러니까 이 논문은 불과 20대 초반에 쓴 것이다. 28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우리의 천재 李箱은 오토 바이닝거에 비하면 형님뻘이다. 바이닝거는 이 책 외에도 엄청난 이론을 쏟아놓고 너무 젊은 나이에 자살함으로써 신화가 되었고,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특히 철학, 심리학, 상담학, 발달학, 인지학 등의 전공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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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수필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홍매 지음, 안예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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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수필(容齋隨筆) / 홍매 지음 / 안예선 옮김 / 지만지”

 

 

《장자(莊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유용(有用)의 쓰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무용(無用)의 쓰임은 알지 못한다.”

이런 말도 있다. “쓸모없음을 잘 알고서야 그 쓸모를 말할 수 있다. 대지는 매우 넓고 크지만 사람에겐 두 발을 디딜 자리면 족하다. 나머지 다른 곳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두 발로 디딘 땅을 빼고 다른 곳을 다 파버린다면 주변은 깊은 못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용의 쓰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의 저자 홍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날짐승은 날개로 날지만 만약 그들의 다리를 묶는다면 날 수 없게 된다. 달리는 것은 다리를 써서 달리지만 그 팔을 묶어버린다면 달릴 수가 없다. 과거 시험장에서는 학문과 재능이중요하지만 무디고 아둔한 자 또한 쓸모가 있다. 전쟁을 할 때는 용기를 우선으로 하지만 겁쟁이도 쓸데가 있는 법이다. 어떻게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을 일괄적으로 구분하겠는가?

그러므로 군주는 천하의 많은 선비들을 무용지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이러한 생각은 마음에 담아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상당히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낮은 자존감에서 허덕이는 사람은 예외로 한다. 그러나 나를 쓰는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람을 쓰는 입장이라면 잘나고 똑똑한 사람만 찾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자문해보는 계기도 된다.

 

저자 홍매(洪邁, 1123~1202)의 자는 경로(景盧), 호는 용재(容齋)이며, 시호는 문민공으로 파양(지금의 장시성 러핑시)사람이다. 홍매의 부친과 형들은 모두 명성 있는 학자이자 관료였다. 부친인 홍호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15년간 억류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송나라로 돌아왔다. 홍매는 3형제 중 막내였는데 형들 또한 학문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고 저작을 남겼다. 이러한 가풍 속에서 성장한 홍매는 자연스럽게 사대부로서의 처세와 학문의 자세를 익힐 수 있었다. 홍씨 가문의 3형제는 당시 “3洪의 문명이 천하에 가득하다”고 할 정도로 손꼽히던 수재들이었다.

 

흔히 에세이(essay)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수필(隨筆)’이라는 용어를 제일 처음 사용한 용례가 바로 《용재수필(容齋隨筆)》이다. 그러나 홍매가 사용했던 ‘수필’이라는 용어의 함의는 지금처럼 개인의 경험과 감상을 가볍게 서술하는 신변잡기성의 감성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다.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경전과 역사, 문학작품에 대한 고증과 의론, 전인(前人)의 오류에 대한 교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모두 저자가 독서를 통해 다져진 지식과 생각이 토대이다.

 

凊나라대 학자들의 공부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것이 ‘찰기(札記)’였다고 한다. 이는 독서를 할 때마다 느낀 점을 기록해서 오랜 시간 축적되면 내용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한 권의 저작으로 만들어냈다. 청대 고증학을 대표하는 역작의 대부분은 이러한 ‘찰기’에서 만들어졌고, 그 시작은 홍매의 《용재수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글 중 특히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다.

김일제(金日磾)에 대한 이야기다. 김일제는 본래 흉노족 휴도왕의 태자였으나 부왕이 한 무제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중국으로 끌려와 김씨 성을 하사받았다. 김일제가 한나라의 황궁으로 끌려와 말을 기르는 일을 맡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무제가 연회를 베풀어 말 구경을 했는데, 무제의 곁에는 후궁과 궁녀들이 가득했다. 김일제 등 수십 명은 말을 끌고 황제 곁을 지나가면서 몰래 궁녀를 훔쳐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김일제만은 그러질 않았다. 김일제의 용모는 매우 단정하고 점잖았으며, 그가 기른 말 또한 살지고 기름졌다.

황제는 그의 재주를 훌륭하게 생각해 그날로 말을 총괄하는 관직에 임명했으며, 김일제는 후에 무제의 유조를 받고 어린 황제를 보좌했다. 김일제와 상관걸은 모두 말 때문에 재능을 인정받았으니, 한 무제의 인재 등용은 명철하고도 빈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말(馬) 때문에 인정을 받았다. 그에게 맡겨진 일이었다. 비록 패한 나라지만 태자였다. 그러나 그(김일제)는 그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겸손했다. 자기 관리를 잘했다. 그뿐이다. 작은 일에 성실한 자 큰 일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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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단편집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이상 지음, 이재복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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剝製가 되어버린 天才’를 아시오? 나는 愉快하오.

이런 땐 戀愛까지가 愉快하오.      (날개)

 

이상(李箱, 1910~1937)을 다시 만난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의 글들이건만 푸릇푸릇 살아있다. 그의 글에선 비릿한 내음이 난다. 은빛 비늘에 눈이 부시다. 때로 아니 거의 그의 글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글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육신의 편치 않음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참으로 높이 올라가 있다.

 

肉身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疲勞했을 때만 精神이 銀貨처럼 맑소. (날개)

 

그의 몸은 말할 수 없이 疲弊해 있고 그의 정신은 맑다 못해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날개에서.. 그는 안해(아내)의 직업이 자못 궁금하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단다. 가슴이 저며온다. 어찌 모르겠는가. 그 明晳한 사람이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저 독자에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입장을 이해해주기 바랄 뿐이다. 마치 독백처럼 늘어놓는 그의 글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퇴색되긴 커녕 더욱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다.

 

새롭게 편집된 이 단편집엔 날개 외에 「終生記」,「지주회시」, 「逢別記」, 「失花」 등이 실려 있다. 「종생기」는 거의 유서 분위기다. 그러나 그의 육신이 비록 생명을 잃을지언정

“.... 退色한 亡骸우에 鳳凰이 와 앉으리라.” 는 氣槪를 잃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殞命하였다. 나는 자든 잠 ― 이 잠이야말로 언제 시작한 잠이드냐 ― 을 깨이면 내 痛切한 生涯가 開始되는데 靑春이 여지없이 蕩盡되는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었지만 歷歷히 目睹한다. (종생기)

 

 

李箱은 외롭다. 그의 존재감은 가히 넘볼 수 없다. 아마도 이 힘으로 버텼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冷水 한 목음을 먹고도 넉넉히 一世를 威壓할 만한 ‘苦言’을 嫡嫡할 수 있는 그런 智慧의 實力을 갖었다. (종생기)

 

 

지주회시는 ‘거미가 돼지를 만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편을 읽다보면 누가 거미이고, 누가 돼지인지 알 수 있다. 왜 거미와 돼지라고 이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李箱은 여전히 바라보는 입장이다. 아니 이 단편에선 좀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어색하다. 아무래도 그는 일상의 편린들과는 거리를 좀 두는 것이 좋겠다. 그답지 않다.

 

그날밤에그의안해가층계에서굴러떨어지고 ― 공연히내일일을글탄말라고어느눈치빨은어룬이타일러놓섰다. 옳고말고다. 그는하로치씩만잔뜩산(生)다. 이런 복음에곱신히그는딩어리(주:벙어리)(속지 말라)처럼 말(言)이없다. 잔뜩산다. 안해에게무엇을물어보리오? 그러니까안해는대답할일이생기지않고 따라서부부는식물처럼조용하다. 그러나식물은아니다. 아닐뿐아니라여간동물이아니다.          (지주회시)

 

부부는 식물처럼 조용하다고 했다가 여간 동물이 아니라는 표현에 깊은 공감이 간다. 부부라는 관계에선 어쩌면 동물적인 감각과 기질을 서로 덮어 누르면서 식물처럼 감추고 사는 것이리라.

 

 

「봉별기」는 李箱과의 끈질긴 인연인 그녀 錦紅을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누가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그려갈 수 있었을까. 거의 실시간으로 말이다.

 

「失花」에는 李箱이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서 생활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 책을 엮은이 이재복에 의하면 그곳에서 삼사문학 동인들과 교유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1937년 3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의 모든 작품(시 56편, 소설 16편, 수필 35편)은 21세부터였다. 더욱이 처음 각혈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첫 작품인 《십이월 십이일》을 발표한 시기(1930년)가 같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몸의 모든 에너지를 글쓰기로 소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의 생명력은 길다.

그는 떠났지만 누군가의 겨드랑이가 간지럽다. 날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ㅅ구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ㅅ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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