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혁명 - 리딩멘토 이지성과 인문학자 황광우의 생각경영 프로젝트
이지성.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겨우내 얼어있던 대지들이 봄기운을 맡으면서 기지개를 폅니다. 일궈진 논밭이 제법 눈에 띕니다. 뒤집어엎을 때가 되었습니다. 씨를 뿌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봄비가 진하게 내려줬습니다. 굳어있는 땅에는 씨를 뿌린들 새가 물어가거나 바람에 날아갈 뿐이지요.

 

객토(客土)를 생각합니다. 객토는 농경지의 지력(地力)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부터 적당한 성질을 가진 흙을 가져다 넣는 일입니다. 땅은 그렇다 치고, 우리의 마음 밭은 어찌해야 할까요? 어떻게 객토를 해야 할까요?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했지만 내안에 생각할 재료가 없으면 그저 일상사의 잔걱정과 염려만 하다 말겠지요. 독서가 곧 객토작업이라 생각합니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생각거리를 넣어주고, 심토(心土)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이지요.

 

이 책은 인문학을 위해 거의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이 의기투합 되어 나온 작품입니다. 두 사람의 『인문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고전을 읽으면 좋다가 아니라, 왜 읽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며 결단의 시간, 어려움의 시간이 없을 수 없지만, 두 사람이 두 다리에 힘을 줄 수 있었던 힘은 인문고전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선 생각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생존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생존은 나다운 나, 삶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내가 원하는 나는 누구인지,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하는 것이지요. 이 생존을 위해 고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전은 곧 나와 세계를 이해하고 바꾸는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혁명은 굳어진 밭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생각을 뒤집는 일입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의식을 깨뜨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한 생각만 바꾸어도 죽을 사람이 살 사람으로 바뀌는데 까짓 저자들이 역설하는 혁명의 대열에 들어서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삶의 극적인 변화, 180도 달라진 나를 꿈꾸며 그 방법을 새롭고 혁신적인 무엇에서 찾지만, 좋음을 넘어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축적’이 필요하다. 생각을 축적하고, 그 생각을 실현할 힘을 축적해야만 위대함이 가능해진다.”

 

‘한 번에 한 걸음’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살아가며 분초를 다투며 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축적’은 바로 차근차근 쌓아가는 일을 의미하지요. 고전은 축적된 에너지가 많습니다. 거르고 걸러져서 지금까지 살아있고, 또 앞으로도 살아있을 것입니다. 물론 잊혀져 갈 것도 있겠습니다.  

 

 

고전은 과거에 행해진 질문과 답의 기록이라고도 합니다. 누군가 앞서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접하면서, 우리가 품은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가 말한 ‘학문으로써 나를 박학하게 하시고 예로써 나를 다잡아주신 스승’이 곧 우리에겐 고전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의 자아혁명을 들어봅니다. 자아혁명을 완성하는 네 가지 단계입니다.

- 생각하라 -- 생각의 확장

- 질문하라 -- 대상의 확장

- 변화하라 -- 실천의 확장

- 다시 생각하고, 질문하고, 변화하라 - 확장의 확장.

 

세상살이가 힘들어지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의 관계 탓이 더 큽니다. 인간관계만 잘 유지되어도 우리의 마음은 그런 대로 행복감을 느낍니다.

 

저자는 관계란 단순히 나와 대상과의 사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간의 개념에도 대입이 된다고 합니다. 현재 진행되는 대부분의 일은 과거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도 혁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등 모든 것은 연결돼 관계를 맺으며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공감합니다.

 

저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느낌입니다만, 뭐 괜찮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고, 좀 다를 뿐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전혁명 - 리딩멘토 이지성과 인문학자 황광우의 생각경영 프로젝트
이지성.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인문고전을 읽어야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놓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 - 과학, 기술, 그리고 서양 우위의 이데올로기
마이클 에이더스 지음, 김동광 옮김 / 산처럼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몸과 마음의 평안함과 나태함에 가까운 편안함의 차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은 그 답보다 생각의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들라트르의 『달라이 라마에 관한 일화들』을 보면, 달라이 라마와 한 서양 철학자가 배구 경기를 보면서 나눈 대화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배구에 대한 관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서로 적대적으로 경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모두가 공이 떨어지지 않게 애쓰고 있네요.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공이 땅에 떨어지면 모두가 아쉬워하고 공을 떨어뜨린 사람을 위로 하고 있어요.”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편을 갈라 상대가 공을 떨어뜨리도록 해요.”

달라이 라마는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은 항상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으며 슬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영혼과 하는 놀이 같군요.”

 

생각을 깊이, 많이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배구 경기를 관람해도 참 특이한 감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군요. 달라이 라마가 ‘인간이 영혼과 하는 놀이’라고 표현한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달라이 라마에게 직접 묻는다면, 아마도 꼬꼬 생각(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책 한권 분량의 말이나 글이 나올지 모르지요. ‘영혼과 하는 놀이’를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적 유희’하고 유사할까요? 분위기가 좀 다르긴 하지요?

 

철학에는 ‘생각하는 방법’과 ‘생각의 결과’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 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요. 철학은 질문의 축적이며, 생각의 축적입니다. 나온 결론도 언젠가는 뒤집어 질 수 있습니다.

 

“철학과 무관한 과학은 없다.

철학이라는 짐이 검사 없이 배에 실린 과학만이 있을 뿐이다.“

- 다니엘 데넷, 『다윈의 위험한 아이디어』

 

학생 : 교수님. 이 문제는 작년 기말고사에서 나왔던 문제인데요.

아인슈타인 : 맞네, 하지만 올해 답은 작년과는 다를 걸세.

 

그래서 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철학의 본질은 끊임없는 경이와 물음이지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현상을 서술적이며 설명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은 자연과학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탐구하는 것은 사회과학입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그 시선이 밖으로 향하고 있으나, 철학의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철학이 탄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의 감수자인 박이문 교수는 “철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믿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서 반성적 물음을 던지고 거기서 경이(驚異)를 발견하고 그 경이를 풀기위한 논리적 사유를 추구하는 능력의 행사 자체”라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들의 출간, 판매가 조금씩 늘어나곤 있긴 하나, 아직도 철학은 인문학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철학의 입문서가 꾸준히 발간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철학 입문서는 일종의 로드맵인데, 길만 따라다니다가 날을 새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철학사(哲學史)역시 과거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하나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것은 철학적 지식에 불과하지 그 자체가 곧 철학적 사유가 아니지요.

마치 어딘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너무 열심히 자료 수집을 하다보면 마치 안가도 간 것처럼 되거나 코스만 섭렵하고 그만 두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도 로드맵의 일종이긴 합니다만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철학의 면모를 그려주기 위해 문학과 손을 잡았습니다. 물론 문학작품을 읽다가 철학적 사유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박교수는 이 책을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와 비교합니다.

 

“『소피의 세계』가 서술적 이야기의 형식을 채택한데 반해서, 이 책은 논쟁적 주장의 구조를 갖고 있다. 전자의 양식이 문제에 대한 대답의 발견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닫힌 사유를 나타낸다면, 후자의 양식은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려는 열린 사고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안이라고 불리우는 14살 소년이 멘토인 ‘노인’과 삶의 여행을 떠납니다.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안과 내가 탐험하고 있는 것은 현실(더 나은 단어를 찾을 수 없기에)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여행이 끝날 때 쯤 당신은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은 성찰이 당신의 세계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안이 훈련받은 임무는 앞으로 다가올 당신의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루어냈는가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마친 후에야 분명해질 것이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세계의 철학사를 장식한 153명의 철학적 스타들의 철학적 잠언들을 인용하여 13개의 장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점은 좋으나 단점이 있습니다. 각 쪽 좌우 여백에 주석을 달아놨습니다. 좋은 내용들이지만 글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일차로 소설을 먼저 읽은 후에 두 번째 읽으면서 주석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과학소설《화씨 451》(Fahrenheit 451)이 생각납니다.

책이 금지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소설의 제목인 화씨 451도(섭씨 233도)는 '종이가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뜻하지요. 모든 책을 태워버린 이곳의 사회지도자(지도자라고 붙이기는 좀 그렇습니다만)는 책을 태우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네요.

“혼자 힘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불행하게 된다. 현관, 정원, 흔들의자를 없애고 벽면에 큰 텔레비전을 설치한다.(이런..이 책이 1953년도에 씌어졌는데 벽면 TV라..대단한 예지력이네요) 덧붙여 이런 말도 합니다. 많은 질문을 하게 되면 당신은 끝내 아주 불행해진다. 누군가 정치적으로 불행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문제의 양면을 보여주어 걱정하게 하지 말 것. 하나만 줄 것.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

 

설마 이 말을 믿는 것 아니겠지요?

책을 멀리 할 구실로 삼지 마시길.. Never~!!

 

 

P.S : 


책의 제목 드림 위버(Dream Weaver) ‘꿈을 짜는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주인공 이안은 사람들이 꿈을 꾸도록 매개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멘토인 ‘노인’으로부터 생각훈련을 받습니다.


조각천을 이어 모아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듯이 흩어져 있던 상념들이 한 곳으로 모아져서 멋진 생각, 밝고 긍정적인 상념들로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길 바래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