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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 달콤하고 순수한 아마추어의 열정, 그리고 식물 탐사여행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평점 :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참 열성적인 사람입니다. 무언가에 하나 몰두하면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는 성격입니다. 그에 대해선 오직 책으로만 만나지만, 느낌이 그렇습니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 입니다.
의학적인 부분은 아무리 쉽게 써도 일반 독자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기운이 있습니다. 저자가 아무리 쉽게 쓴다고 할지라도 웬지 중간에 장애물이 걸쳐 있는 느낌이 대부분이지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저자의 배려가 부족한 탓이기도 합니다. 부족함의 대부분은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지 못한 때문이지요. 이 책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이런 부분을 모두 충족시키는 글들로 인해 대중과 소통하는 의료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얼마전 읽은 지은이의 책으로는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인 수화의 세계를 탐구한 [목소리를 보았네 / 알마]였습니다. 이 책은 비청각장애인들(소위 정상인으로 분류되는 그룹)이 청각장애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큰 기여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나 역시 그들(청각장애인들)의 일싱적인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진 것을 진정 감사히 받아들이고, 일상의 삶에서 더욱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군요. 자, 이제 오늘의 리뷰 도서 [오악사카 저널]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책은 어린시절부터 양치식물의 원시성과 생명력, 적응력에 매료 되었던 올리버 색스의 멕시코 식물 탐사여행기입니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이지만 지은이는 14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고 합니다. 1933년생이니까 현재 나이가..80세군요.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81세.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책은 그 일기를 토대로 편집이 되었습니다. 양치류 식물에 대해서 간단하게라도 알고 지나가야겠지요? 위키백과를 참고하겠습니다. "양치류(羊齒類)는 약 12,000여 종의 식물을 포함하고 있는 관다발식물의 일종이다. 양치류는 종자식물과 마찬가지로 관다발이 분화되어 있으며, 잎·줄기·뿌리의 구별이 뚜렷한 경엽식물이다. 특히, 관다발의 분화는 식물의 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꽃을 피우는 대신에 포자체(양치식물의 몸)에서 독립 생활을 영위하는 배우체(전엽체)를 만들어, 이들 포자체와 배우체는 규칙적인 세대 교번을 한다." 말이 좀 어렵군요. 좀 더 쉬운 설명을 추가해보렵니다.
"양치식물은 진정한 잎과 뿌리가 없는 솔잎란류, 뿌리가 있고 잎이 나선상으로 배열된 석송류, 잎이 돌려나고 뿌리가 있으며 관절과 능선이 있는 속새류 및 뿌리·잎·줄기가 뚜렷하고 잎이 크며 엽극이 생기는 양치류의 4개로 크게 분류한다." 가까이하기엔 쉽지 않은 식물이군요.
책 제목에 인용된 '오악사카'는 멕시코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제법 광범위한 지역 이름이군요. 책을 읽으며 양치류 식물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양치류는 이렇다 할 변화없이 10억 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공룡 같은 다른 생물들은 지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겉으로는 아주 연약해 보이는 양치류는 지금까지 지구가 겪은 모든 멸종 사건과 그 밖의 흥망성쇠를 이기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식물의 원조격인 셈입니다. 양치류 화석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합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성생활이 알려진 뒤로도 한참 동안 양치류 번식과정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양치류도 씨앗을 통해 번식한다고 믿었지만 아무도 씨앗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양치류들이 거의 마법 같은 기묘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 비밀이 밝혀집니다. 번식기관이 드러나게 됩니다. 양치류에겐 포자체와 배우체가 번갈아가며 나타난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파리에 달려 있던 포자가 적당히 스빟고 그늘진 곳에 떨어지면 자그마한 배우체로 자라납니다. 그리고 이 배우체들에게서 수정이 이뤄지면 새로운 포자체, 즉 아기 발아체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양치류는 모든 지역에서 자라지만(예를 들어 그린란드에도 30종의 용감한 양치류들이 자라고 있답니다),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훨씬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코스타리카에는 거의 1,200종의 양치류가 있다는군요. 멕시코에 국한시킨다면 오악사카에 양치류가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답니다. 현재까지 정리된 양치류의 종수는 690종입니다.
양치류에 매혹된 여러 애호가들(거의 광적인)과 멕시코 내 양치류 여행길에 지은이의 지식창고에서, 또는 귀동냥한 멕시코의 역사와 여행에 관한 팁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멕시코를 여행할 일이 생기면 가이드 북으로도 좋을 듯 합니다.
양치류의 오랜 친구 고사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고사리를 좋아한다. 고사리를 뜻하는 'bracken' 또는 'brake'가 아주 오래된 단어라는 점이 이유 중 하나다. 14세기의 원고들에 이미 "braken & erbes" (고사리와 허브)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어를 비롯한 여러 게르만어에서도 비슷한 이름이 살아남았다. 고사리에는 이파리가 하나뿐인데, 봄에는 밝은 초록색이었다가 점점 어두워지는 그 이파리가 점점 번져나가서 때로는 양지 바른 산허리를 온통 뒤덮어버리곤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올리버 색스의 양치류 식물 여행에 동참(비록 그의 글로나마)하면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식물들의 이름들을 대하면서 참..내가 아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빈약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뭏든 올리버 색스의 그 지식욕과 열정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은이는 또한 음악 애호가로서 평소 바흐와 모차르트를 즐겨 듣는답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과 우리의 뇌, 그리고 마음의 관계를 밝히고자 연구중이라고 하니, 건강하게 장수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듭니다.
지은이의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