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기대했다. 강의 자료에서 읽은 것만큼이나 좀 더 세부적인 내용과 탄탄한 논리로 GMO에 대해 설명해주길 바랐다. 강사는 20분이 넘어서야 강연장에 왔다. '멀리서 오니까 그럴 수 있지. 어서 GMO에 대해 알려줘, 마구 흡수해줄테야.' 나는 엄청난 의욕을 불태웠다. 1940년대 산업화로 농약이 등장했다는 얘기부터 시작한다. 화학식이 나오고 GATT가 등장한다. 화학기업이 사회 환경적 요구로 더 이상 농약이나 화학비료의 판로를 찾을 수 없고, 새로운 시장도 없자 생명공학쪽으로 방향을 선회, 생산비 낮고 친환경 농사(작물 자체에 살충, 제초 성격을 넣어)를 지을 수 있는 GMO를 개발하게 됐다는데까지 설명이 끝났을 때 강의를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나있었다.


 GMO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나온건 기본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과 관계를 뒤죽박죽 섞는 것도 모자라 부연에 부연, 예시까지 드느라 강의는 미치도록 질질 끌었다. MSG를 설명하는데 차이니스 푸드 신드롬 얘기가 나온다. 어떤 연관이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모든게 다 그런식이다. 드라마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주주총회, 우리사주 얘기가 나온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진다. 간략하게 얘기하고 생략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뻥튀기한다. 산업혁명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걸 두고 농촌에 일손이 모자라게 해서 농약을 쓰게 하려 했다며 농약 회사들이 화학공장을 세워 도시로 사람들을 유입했다고 갖다붙인다.  


 큰 틀에서 보면 서로 통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리우 선언에서 교토 의정서, 어젠다 21과 UR에서 GATT, WTO, FTA의 연결고리를 찾을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게 GMO가 생긴 이유라면 말이다. 하지만 해석은 자의적이고 시간은 부족하고 이야기는 산만했다. 도저히 참고 들어줄 수가 없었다. 강의가 끝날 시간이 돼서 끝났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3시간을 기본으로 강의하기 때문에 시간을 안 준다면 안 왔을거라며 개의치 않고 1시간을 더 한다. 


 물론 이 분,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데도 우리나라 어떤 사람보다도  GMO 공부를 많이 했다. 문제의식과 사명감은 존중한다. 그렇지만 강의가 너무 지루하다. 혹시 내가 다 떠먹여주는 강의, 빈틈없이 준비된 설명만 바라는걸까. 내가 뭔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문제인걸까. 아니면 처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걸까. 다시 책을 봐도 강의의 잔상이 남아있어서인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책도 강의와 다를바가 없다.


 무르지 않는 GMO 토마토 '플레이보세이브 토마토'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고 과정을 거친다.


 

GMO 토마토가 상품성이 없어져 더 이상 종자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일상생활을 예로 든다. 토마토 1킬로그램을 살 경우 하루면 다 없어진다. 하지만 대형할인점에서 5킬로그램짜리를 발견하면 더 싸고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먹으면 되니 많이 산다. 이렇게 산 토마토는 수십 번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반 냉장고에서는 오래가지 못하니 채소와 과일을 오래 보관하기 좋다는 김치냉장고를 산다. 냉장고가 두대면 전기요금이 올라간다. 전기를 많이 쓰니 할증이 붙고 싼값에 장을 봤다 하더라도 아낀 돈이 결국 전기요금으로 나간다. 

 '게다가 냉장고가 늘어나면 그만큼 음식을 더 사게 된다. 결국 대용량 토마토는 더 많은 야채나 과일을 팔고 덤으로 냉장고까지 팔아주는 2중의효과를 기업에 안겨준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다. 이것이 토마토에 숨은 진짜 가치이다.'


 이게 뭔가. GMO 토마토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를 얘기하다 토마토의 숨은 진짜 가치로 결론을 맺는다. 이게 토마토의 숨은 가치인지 남들처럼 김치냉장고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 맘 때문인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는 그보다 더 심한 논리적 비약과 은폐와 딴짓을 수도 없이 벌여왔다. 하지만 이건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사서 보는 책이다. 게다가 강의는 또 어떤가.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다 필요한 얘기니 참고 들으란  태도도 별로였다. 알고 있는걸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르고 알려고 하는 것 만큼이나 전달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것도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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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5-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저는 요즘 우유대신 두유를 먹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다가 두유가 온통 GMO콩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어요. 세상에 GMO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어요. 네. 결국 한살림 두유 주문했어요. 엉엉. ㅠㅠ 근데 토마토의 숨은 가치라니 빵터짐 ㅋㅋㅋㅋㅋ 표지에는 왜 못그림이 있는건지 궁금해요.

Arch 2012-05-10 17:36   좋아요 0 | URL
GMO 콩이 아니어도 두유에 나름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이걸 먹어, 말어. 먹을 때마다 고민이에요. 한살림 두유는 시중 제품보다 2배 더 비싸더라구요. 약과 사다가 이것저것 샀더니 금세 몇만원 나와서 후덜덜.

혼자 공부해서 그런지, 원래 전공이 아니어서 그런지 너무 광범위하고 맥락없고 이것저것 다 갖다붙여서 쉬이 피로해졌어요. 못그림은 GMO를 먹느니 못을 먹겠다. 이런게 아닐까 싶은데.

다락방 2012-05-1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치, 공부하는 아치. 히히.

Arch 2012-05-10 17:37   좋아요 0 | URL
나 공부한다고 좋아하는 다락방, 우리 다락방~ ^^ 강의 완전 기대하고 기대했는데 잉~

Arch 2012-05-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povertymatters.net/4950881
강의 요약본

nada 2012-05-1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토의 숨은 가치.. 정말 빵 터지네요.ㅋㅋ
근데 논리력이 떨어지는 저는 앞의 GMO 토마토 이야기는 어느새 잊고
뒤에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확률이 놓아요.-.-
아치님은 은근 논리적이라니까.

유머가 곁들여진 강의는 좀 산발적이어도 괜찮던데.
지루한데다 산만하기까지 했다면, 앉아 있기 괴로웠을 것 같아요.

텃밭 농사랍시고 조금 지어보니, 종자의 중요성을 알 것 같아요.
시장에서 사는 모종도 이게 근본이 어떤 녀석일까.. 를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Arch 2012-05-11 11:5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뻔 했는데 3시간 강의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은근논리아치? ^^

정희진 선생님 강의가 그래요. 따로 큰줄기를 파악 못하는데도 되게 재미있어요.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게 아닌데, 강의도 선천적으로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 다음 까페에 씨드림이란데가 있어요. http://cafe.daum.net/seedream
저는 자주 가지 못했지만 토종종자를 나눠준다고 해요. 모종보다 직파, 이런 얘기를 들어선지 나중에 아담한 텃밭 농사를 한다면 직접 씨를 뿌려서 지어보고 싶어요.

산나물 2012-07-1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충격입니다. ^^;;; 저 얼마전에 김은진 교수님 강의듣고 감명 받았었거든요. 정말 아는게 많은 분이구나.. 전체를 보실줄 아는구나...(근데 좀 얘기가 기네..) 요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맞아요. 아치님 말씀 들으니 그렇기도 하네요. ^^ 전 이말들으면 이말같고 저말들으면 저말같은 사람이라.. ㅎㅎ 근데 도저히 덧글을 안달수가 없어서요. 새로운 시각.. 감사합니다 ^^

Arch 2012-07-16 11:29   좋아요 0 | URL
아! 산나물님, 반가워요.

그분 강의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요. 저랑 맞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 GMO 전문가에게 강의를 듣는다고 책까지 준비하고 귀를 쫑긋 세웠는데 기대보다 별로여서 실망한 것 같아요. GMO에 관심 있다면 '먹지마세요 GMO'란 책을 추천해요.
 

 어제 낮동안은 즐거웠다. 하지만 저녁쯤 체력이 방전되고 신경이 좀 날카로워져 옥찌들한테 퉁명스러웠다. 옥찌들을 재우고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어서 잠깐의 화를 못 참는지, 언제쯤 어른이 될지, 그런 날이 오긴 올건지 답답하고 속상해서 침울해져 있었다. a가 맛있는 케잌을 사오고 a,b와 가사 분담 심층토론을 하면서 속상한 맘은 '내일은 잘할 수 있겠지' 정도로 일단락된 줄 알았다.


 야식을 다 먹고 방에서 뒹글대며 a랑 k팝 스타를 보던 중이었다. 백아연 잘하네 못하네, 경연보다 듀엣곡이 더 좋네 어쩌네하는데 a가 옥찌가 그린 그림 얘기를 한다.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가운데 키가 큰 꽃이 있고 양 옆에 녹색 꽃, 그보다 조금 큰 빨강 꽃이 있었다. 양 옆에 있는 꽃들은 키가 큰 꽃쪽으로 줄기가 꺽였다. 꽃들은 풀밭 위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고 위에는 잘못해서 물감을 떨어뜨렸는지 빨간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 a야, 저 그림 이쁘지

- 응. 엄마랑 옥찌들 그린거네.

- 응? 저건 그냥 꽃 그림이야.

- 봐봐. 녹색 꽃은 지민이, 빨강 꽃은 지희잖아. 지민이가 엄마쪽으로 좀 더 기울인거 보면 맞네. 평소에도 그렇잖아.

- 그럼 난? 난 어디있어?

- 저기 잘못 찍힌 점, 쪼오기 있네.


  잉? 그냥 꽃 그림인데 그걸로 심리분석을 하는 쩨쩨한 a가 얄미웠다. 그러고 그만인줄 알았는데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잘못 찍힌 점 하나라니. 예쁜 꽃은 못 되더라도 꽃 시늉나는 그림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아무리해도 나는 고작 이모일 뿐인거야, 그런데도 그동안 전전긍긍하면서 성격을 고쳐야겠느니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하나 고민하는 꼴이라니. 설움이 복받쳐 다시 엉엉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a가 울지 말라고 토닥이고 웃긴 얘기를 해도 속상해서 더 크게 울었다. 


 아, 이만큼 나이 먹으면 다 잘할 줄 알았는데. 아닌 밤중에 눈물바람이라니.


 다른 이모들보다 조카들을 더 돌보는 것도, 그러면서 유난을 떠는 것도 다 나다. 순전히 이모 입장이다. 전에도 썼지만 혼자서 심심하다고 징징댈 때보다 옥찌들이랑 있으면서 즐겁고 재미난 일이 많은데 나는 내가 뭔가 대단한걸 해주는양 우쭐댄다. 실제로는 옥찌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자기 객관화가 덜 된 들 자란 어른인지 옥찌들 때문에 하루에 몇번이라도 더 웃을 일이 생기는지 까맣게 잊고 있는거다.


 얼마 전에 한 농부의 강연을 들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같이 사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어머니와 같이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1시간이면 할 일을 어머니와 4시간에 걸쳐 하는 그이는 효율로 보자면 터무니없는 짓이지만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같이 하는게 좋다고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정해진 일과를 소화해내라고 아이들을 닥달하는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맘이었다. 정해진대로 일과를 소화하는건 애초에 내가 옥찌들과 같이 지내기로 하면서 계획했던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무슨 꼭 지켜야할 일처럼 생각하고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옥찌들이랑 같이 있고 싶고, 아이들이 자라는걸 옆에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효율과 좋은 결과만을 바란다. 고민은 얕고 진심은 전달되지 않으며 한번씩 혼자 열폭할만하다.


 잘못 떨어뜨린 점 하나면 어때. 준비물을 혼자 챙기는게 속상했던 지희랑 같이 알림장을 보고(물론 훈장도 아닌데 훈계조지만) 숙제를 같이 하고 지민이의 엉뚱한 상상이 신기해 가만히 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걸.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대로 좋고, 비가 오면 같이 우산을 나눠쓸 수 있어서 좋다. 다음에도 이런 비슷한 일로 혼자 열폭할 수도 있을거다. 그때는 지금처럼 엉엉 울진 않았음 좋겠다. 진심으로 동네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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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잠옷 입은 지민. 누나 따라서 영어 공부한다고 알파벳 시험 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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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치답게 사는 중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2-06-04 20:16 
    * 얼마 전 읽은 선현경의 책에서 딸 은서에 관해 얘기한 부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엄기호 책을 읽다보니 '사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이름을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생활 방식과 내용을 강요한다.... 이 삶의 형식이 인간이 견디며 살 만한 것인지를 나의 경험을 가지고 드러내고 증언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나는 쉽게 누군가를 '~답다'란 식으로 규정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거다. 아이라면 뭔가 잘 모르는데서 오는 엉뚱함과 살짝 어리숙한 모습을 기대하듯이 말이
 
 
다락방 2012-04-2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필들고 있는 모습이 예뻐요.

아치, 그렇지만 음, 나는 아치가 그 때 울어서, 그래서 더 좋아요. 어쩐지 굉장히 사람 같잖아.

Arch 2012-04-26 09:21   좋아요 0 | URL
^^ 그러니까요.

다락방, 나는 여자 사람이라구요!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 못했지만 서재에다는 그냥 써버렸어요.

숲노래 2012-04-2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지 않고 점으로 그렸네요. 게다가 빨간 점으로.
이 점은 사랑을 받아 차츰차츰 예쁘게 피어날
좋은 꽃씨로구나 싶어요.

Arch 2012-04-26 09:22   좋아요 0 | URL
꿈보다 해몽이 훠얼씬 더 좋은데요! ^^
난 왜 꽃이 아냐. 나도 꽃하고 싶어. 이러기만 했는데...
고마워요. 된장님~

치니 2012-04-26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동네 다 물어봐요, 창피하긴커녕 다들 대동감이라고, 한 번씩은 다 그렇게 서러웠다고들 할 걸요. 이모라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 따위가 없어서일 거라고, 저는 감히 그리 생각해요. 엄마도 똑같이 그렇거든요.

Arch 2012-04-26 13: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내가 이모라서 그런게 아니구나. 살짝 다행스럽달까... 나도 못주고 바라면 안 되는걸 아는데 한번씩 그래지더라구요. 정말, 다행이다 ^^
 


 지희 책상을 정리하다가 이 그림을 발견했다. 

어, 이게 뭐지?

아니 이건, 혹시, 설마, 그럴 리가, 어쩌면, 아냐 우리 지희가 ......


그렇다. 이건 엄마씨, 아빠씨였다! 


 생물학적인 과정을 단촐한 그림으로 그려내는 솜씨와 무지개 색으로 글자를 꾸미는 센스에 놀라기엔

소심하고 걱정 많은 이모였다. 

대체 어떻게 왜 이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성적인 그림을 그리는건 유별나다거나 자라나는 새싹이 '그럼 안 돼'란 꼰대스런 생각이 없었을 리도 없다.

지민이 성교육 교재인걸까, 한번 그려본걸까, 뭘까 뭘까.


하는 수 없이 지희에게 물었다.


-지희야, 이게 뭘 그린거야?


 분위기 있게 차를 마시던 지희는 그건 또 어디서 찾아냈냐는 표정을 짓더니 이 그림 뒷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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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와와와 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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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1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들이란. ㅎㅎ

Arch 2012-04-16 16:2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웽스북스 2012-04-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당인것같은데...... 하면서 본 저는...ㅎㅎㅎ

Arch 2012-04-16 16:23   좋아요 0 | URL
헉, 그럴 수도 있는거였어요. 청정 웬디양님? ^^ 난 성 아치! ^^

다락방 2012-04-16 16:24   좋아요 0 | URL
청정 웬디양, 성 아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잘어울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Arch 2012-04-16 17:17   좋아요 0 | URL
성 아치는 전에 승주나무님이 뭔 얘기하다가 붙여준건데,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다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요. 쳇^^

다락방 2012-04-16 17:39   좋아요 0 | URL
나도 청정 다락방 하고싶다 ㅋㅋㅋㅋㅋ

Arch 2012-04-16 17:42   좋아요 0 | URL
다락방은 지적이잖아요. 지적이면, 다 알아.

뷰리풀말미잘 2012-04-16 19:24   좋아요 0 | URL
세인트 아치.

Arch 2012-04-17 09:38   좋아요 0 | URL
ㅋㅋ 미잘 뿌잉뿌잉

비로그인 2012-04-1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마당 아닌가? 이랬는데 ㅋㅋ
아치님의 센스가 더욱 놀라운데요 :)

Arch 2012-04-17 09:39   좋아요 0 | URL
다 마당으로 생각하는거였어. 그런거였어...
저만 '그런' 여자인거에요. ㅡ,.ㅜ;;

^^

다락방 2012-04-17 13:38   좋아요 0 | URL
아니야 아치, 나도 '그런' 여자에요 ㅎㅎ

Arch 2012-04-17 13:4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응, 다락방님 그런 여자해요~

조선인 2012-04-1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 여지껏 추천이 하나밖에 없다니. 하나 더!

Arch 2012-04-17 09: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추천에 목말랐어요. ^^
고맙습니다~
 

 나는 옥찌들과 잘 지낸다고 자신할 수 없다. 이 문제는 a와 b, 관심을 보이는 몇몇의 사치스런 관점과 원만한 눈길에 따라 종종 다른 결론을 보여준다. 김규항은 단순하게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하게 학원을 보내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낯으로 학원을 보낸다며 이 둘을 가른다. 그의 글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너무 확고하다. 그런데 생활과 사람 맘이 무 자르듯이 명쾌하게(무, 생각보다 잘 안 잘린다) 잘릴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지희는 '이 색이 무엇이냐'란 질문을 영어로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What color is it? 인데 What color it is?라고 알려준 아치) 영어 시간에 원어민 선생님이 와서 영어로 말을 하는데 자기는 하나도 모르겠다고, 아이들은 어느 정도 하는 것 같다며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거였다. a와 b는 당장 학원에 보내자고 했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기가 죽고 상처받으면 안 되니까. 영어 수업하기 전에 지희에게 3학년이면 영어를 배울텐데 방과후 교실이나 다른 기관에서 하는 영어 공부를 할거냐고 물어본적이 있지만 지희는 영어를 공부하기 싫다고 했다. 지희는 영어 공부가 싫지만 영어 수업시간에 창피하니까 영어 공부를 하려는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럴땐 어떻게 해야할까.


 모든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받고 부모들은 내 아이가 옆집 아이만큼(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은 하길 바란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아이에게 뭘 해줘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를 때가 더 많다. 학벌사회니까 아이들을 경쟁시켜야 한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만 경쟁을 선택했다면 최신 메뉴얼로 갱신된걸 눈 딱 같고 따르면 되지만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 이러 저러한 상황마다 뭐가 최선인지 헷갈린다.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 없어 주어진 인생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고민이다. 귀농을 한 농부시인 서정홍의 산문집을 보다가 정말, 이럴 때는 어떡하나 싶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 때문에 아이가 친구들과 영화 한편 보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집으로 돌아설 때, 그 부모 맘은 어땠을까. 내가 농담처럼 시골 들어가서 산다고 할 때마다 현실감각 있는 친구는 누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할건지, 아이를 낳는다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궁리해낸 답은 있다. 불안은 보험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아이를 안 낳을거란 말은 못하겠지만 아이의 행복에 관한 것도 기준의 문제라고. 어쨌든 궁리를 해야한다.

 

 며칠 전부터 미술 수업을 받는 지민. 누나도 옆에 있겠다, 가끔 이모도 보이니까 맘이 놓였는지 이름으로 캘러크래피 만드는걸  끝내놓고 교실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지민이가 돌아다니니 다른 아이들도 돌아다닌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될까. 선생님은 칭찬 스티커를 안 주는 벌을 준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했더니 원래 첫시간엔 안 그러는데 (지민이가 유별나다란 말을 빼고)... 지민인 왜 그럴까, 왜 그럴까.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어렸을 때부터 산만했다는 김중혁씨. 그는 산만함 때문에 꾸중을 들어서 산만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단다. 그러다 그 역시 고미 타로의 책을 보고 띵한 충격을 받았단다.

 

고미 타로<어른들(은, 이, 의) 문제야>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이나 군 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

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민이의 산란한 마음. 나랑 선생님이,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재미있게 본다면 좋지 않을까, 란 민폐 돋는 생각은 잠시. 지민에게 또 돌아다니면 미술 못한다고 겁을 주었다. 


 지희에겐 가끔 영어 동화책을 읽어준다. 처음에 영어가 너무 배우고 싶다고 한 것에 비해 열의는 사그라들었다.(옥찌는 나의 분신) 자기는 영어 선생님 제임스 티쳐랑 노는게 좋다고, 맨날 영어 시간이면 좋겠단다. 고민은 크고 구체적으로 살아나가는 일들은 게을러지기 일쑤다. 대안을 찾을 수 없고 즐겁게 지낼 궁리도 안 떠오른다. 결국 이런 페이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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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3-2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가 고미 타로의 팬인 이유가 있다니까요. ㅎㅎ

Arch 2012-03-21 14:28   좋아요 0 | URL
^^ 산란한 맘을 이해해주는 어른들이 많았음 좋겠어요.

치니 2012-03-2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김규항 글을 그다지 잘 읽지 않는 이유를, 저기 든 예에서 깨달았다면, ㅎ 좀 과장이긴 하죠? 단순하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쉽지만, 경계에서 어그적거리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시원하지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아요. 김규항 트위터 팔로우하다가 만 이유도 거기에 있는 거 같아요. (본문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얘기만 계속 하는군요, 제가. 아이고)

학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고 안 보내는 채로 죽 아이를 키웠는데, 지금 이 글을 읽고 보니 저 자신 신념이 확고해서라기 보다는 아이가 먼저 학원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학원 안 가도 재미있는 게 일상에 많으면 대부분의 아이는 만족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학원 = 경쟁, 이라는 식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학원에 가야만 아이가 즐겁다면야, 그 또한 아이 의사를 존중해줘야죠. 물론 우선 좋은 학원을 고르는 데 엄청난 힘이 들겠지만. ^-^;

Arch 2012-03-21 14:36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고민하지 않았겠죠. 내가 잘 하는걸까, 혹시 고집을 피우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드니까 헷갈리고 그러거든요. 김규항의 확고함은 답답하지만 때론 이런 저런 이유로 합리화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저도 한쪽으로 생각한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선행학습이나 교과를 알려주는 학원이 아닌 악기나 운동 학원엔 호의적이었구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건 아이란걸, 가끔 까먹어요. 학원을 고르는 데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는데서, 갑자기 피곤함이...^^

아, 진중권의 아이콘을 보는데 김규항씨 부분에서 스믈스믈 웃겼어요. 추천해준 치니님 고마워요. 다른 꼭지도 괜찮았거든요.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
 

 오랜만에 b가 쉰다.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b를 졸졸 쫓아다닌다. 며칠동안 먼 등교길을 대비해 든든하게 아침을 먹느라 새벽 강행군을 한 덕에 정신이 몽롱한 나는 아이들이 b를 졸졸 따라다니는걸 흐뭇하게 바라봤다. 모처럼 쉬는 b를 위해 장구할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혼자였다면 너끈히 걸어도 됐을 길을 아이들 피곤할까봐 택시까지 타는 대인배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내가 으쌰으쌰 저녁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고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크게 싸우는 일 없었다. 우리끼리 드림팀이라며 팀에선 팀웍이 중요하니 자기 전에 내일 가져갈 것을 가방에 넣는 센스를 발휘하도록 팀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어제 애써서 채를 썬 감자도 맛있게 볶아졌다.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는데 옥찌가 농담처럼 누가 제일 좋고 얘기를 했다. 지희가 한번씩 그럴 때가 있다. 이모는 화를 잘내니까 나는 누구누구가 더 좋아. 마치 '니가 옆에서 나를 챙겨주는거야 말릴 수는 없지만 안 그래도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란 느낌의 말. 그 말의 다른 의미는 '이모가 화를 좀 덜 냈으면 좋겠다'는 거다. 헌데 나는 나 좋을대로만 옥찌를 봐버린다.


 -지희가 그런말 안 해도 이모가 지희한테 인기 없는거 잘 알아. 너는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놓고 나는  삐졌다. 바쁜 b를 대신해 한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헌데 나는 은연중에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내가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란 생각을 했나보다. 정말 삐진 나는 지희가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 동굴로 들어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하다 우린 다시 전처럼 잘 지내게 되었다. 내가 뭐라 뭐라 하는데 옥찌가 이모가 좋아, 지금 우리 옆엔 이모가 있잖아.란 말을 해줘서는 아닌 것 같고.


 저녁에 카레를 한다고 감자,-한 박스 사놓은게 싹이 나고 난리다- 양파, 새송이 버섯을 대충 썰었다. 카레 냄새가 솔솔 풍기자 지민인 나를 꼬옥 안아줬다. 이렇게 맛있는거 해줘서 고맙다며. 조그만 팔이 허벅지 근처를 꼬옥 안는다. 뭉클하다. 뭉클할 새도 없이 누나랑 싸워서 큰소리가 나긴 했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희 알림장을 봤다. 무슨 준비물이 그렇게 많은지. 3학년인데도 혼자 준비물을 챙기기가 어렵다. 1학년 때의 지희는 어땠을까. 자기가 못사는데도 돈만 줘서 짜증났다고 한다. 그럼 지금은 짜증나지 않을까. 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해줬다. 지금은 이모가 챙기긴 하는데 뭐는 안 되고 군것질도 못하고 짜증나지. 지희가 빙긋 웃는다.


 봄비가 내리던 날, 지희는 물방울들이 톡톡 산을 적셔줘서 산이 트림하는 것 같은 그림을 그렸고



 아이들은 사이좋게 우산을 쓰고 등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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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3-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좋긴 했지만 아이 둘이 나란히 우산을 쓰고 가는 모습때문에 추천했어요.

Arch 2012-03-12 14:43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추천하는건 다락방밖에 없군요^^ 이 사진, 왠지 다락방이 좋아할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