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금요일 나는 조금 우울한 기분에 베스트 극장을 봤다. 그때 나는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통보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그날 나는 꽤 신파조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펑펑 울어줬다. 그 여운이 하도 길게 남아서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아서 오늘 이렇게 감상기를 쓰려고 한다.
지난 3월 4일날 방영된 MBC 베스트 극장의 제목은 '어느 멋진 날' 이다. 출연진은 아일랜드의 김민준. 이승환의 드림 펙토리에서 키우고 있는 박신혜 (예전에 최지우인가 누군가의 아역을 했었단다.) 그리고 전지현과 박한별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CF스타 장희진 (강동원과 통신사 CF에서 오픈카에 타고있던 여인. 배경음악으로 마이 밀크쉐이크 어쩌고 하는 음악이 나왔었다.) 이렇게 3명이다.
내용은 이렇다. (드라마 이고 재방송을 할 가능성이 적으므로 스포일러 만땅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가 있다. 소녀는 병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마침 중환자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침대에 실려 함께 타게 된다. 같이 있던 간호사는 옆 엘리베이터에서 몸이 불편한 환자를 도와주느라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소녀는 문을 열어두는 버튼을 누르기위해 더듬거리다가 실수로 닫힘 버튼을 눌러버린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소녀와 환자 뿐이다. 그러다 소녀는 환자의 손 근처에 손이 닿게 되고 그 순간 환자는 갑자기 소녀의 손을 꽉 잡는다. 소녀는 동공이 커지고 엘리베이터는 불이 꺼진다.
바닷가에 위치한 동네 양아치인 김민준. 그는 어느날 집으로 가는 길에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 (박신혜) 와 마주친다. 그때 누군가가 인수를 부르고, 이름을 들은 소녀는 인수씨가 맞냐며 말을 건다. 그리고 자기는 인수라는 사람을 찾아 왔다고 혹시 모르냐고 말한다. 인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눈먼 소녀를 귀찮아하며 자기가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다 어찌어찌 엮이고 엮여 인수는 내키지 않지만 눈먼 소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소녀는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는등 인수를 위해 집안일을 한다. 인수는 자기가 알지 못한 소녀지만. 그녀에게서 누군가를 느끼게 된다. 오래전. 술집에 술을 배달하던 인수는 그 술집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 (장희진) 와 사랑에 빠진다. 여자는 시골 출신으로 예쁘지만 소박하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의 아버지가 큰 노름빚을 지게 되고 여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일하던 술집에서 주방이 아닌 룸싸롱 종업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남자는 그녀에게 가난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녀는 그 남자에게 술집 여자라서 미안하다고 한다. 둘은 너무 사랑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그와 그녀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때 술집의 주인이자 깡패 두목은 여자에게 눈독을 들인다. 살림을 차리자고 하지만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 거절한다. 두목은 가질 수 없다면 둘을 갈라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때 여자와 남자는 도망을 간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잡히고 두목은 남자의 손을 자르려고 한다. 그러자 두려운 남자는 시키는건 뭐든 다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두목은 니 손으로 여자를 다른 술집에 넘기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 많이 맞아서 두려움에 제정신이 아닌 남자는 울며 매달리는 여자를 반 미치광이 같은 상태에서 다른 술집으로 가는 차를 태운다. 우는 여자를 태운 차는 멀어지고, 남자는 여자가 그에게 끌려가느라 벗겨진 낡은 운동화 한짝을 발견한다. 그는 운동화를 들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듯이 달리고 그녀 역시 차에서 도망쳐서 그를 찾으며 달린다. 그 와중에 길 건너편에 있는 그를 발견한 그녀. 길을 건너려다 마주오는 차와 충돌한다. 여자는 의식을 잃어가면서 남자의 이름을 계속 나즈막히 부른다. 이름을 많이 불러주면 오래 산다고 말하는 것에서 여자는 곧 죽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듯 하다. 인수는 소녀가 불편하다. 그래서 매몰차게 대하고 소녀는 울면서 다시 자기가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떠난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소녀가 인수의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전에 여자와 찍은 사진 위에 작은 머리핀을 올려둔다. 그 머리핀은 인수가 여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한 것이고.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핀 하나에 여자는 너무 행복하다면서 눈물을 보였었다. 인수는 그 머리핀을 보고 소녀가 간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인수는 소녀에게 묻는다. 넌 대체 누구냐고...
제일 첫 장면에서 소녀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던 환자는 그 여자였다. 여자는 소녀에게 죽으면 각막을 기증하기로 되어 있었다. 인수가 마침내 병원에 도착해서 여자의 앞에서 오열을 할때 여자는 숨을 거둔다. 그리고 소녀는 여자의 각막을 이식받아 다시 눈을 뜬다. 하지만 소녀는 자기가 인수를 찾아간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손이 잡히는 순간부터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소녀가 인수를 찾아갔던 것은 여자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인수를 보고싶었던 바램이 너무 간절해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내용 설명이 지나치게 길었다. 하지만 이 단편 드라마는 뭔가 생각하게 한다거나 하기 보다는 내용 그 자체로 충분한 드라마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드라마는 무척 신파조이다. 촌스러워보일 만큼 뻔한 내용과 동네 깡패와 술집여자의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인공이 역시나 진부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울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토록이나 뻔한 내용에 울 수 있었던건 연출의 힘이고 연기자들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편집도 잘 해서 이미 보는 사람이 다음에 무슨 내용이 다 올줄 아는 상황에서도 긴장감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쩌면 좋은 드라마나 영화는 정말로 운이 좋아야 나올까 말까 한지도 모른다. 좋은 시나리오도 엄한 연출을 만나면 작품이 되기 힘들고 뻔한 시나리오도 어떤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박신혜와 장희진의 연기는 아직 미숙해 보였지만 그 중간에서 김민준이 워낙 탄탄하게 받쳐줬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장희진의 경우 연기는 완전 초짜임에도 불구하고 맡은 역활이 연기력보다는 착한 이미지로 끌고 나가면 어느정도 커버가 되는 상황이라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거가다 항상 신세대의 톡톡튀는 아이콘으로 나왔던 박신혜에게 시각장애인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역활을 맡겼으나 박신혜는 아주 잘 했다 까지는 아니었지만 역에 몰입하려는 노력은 엿보였었다.
가끔 재미 없거나 유치할때도 있지만. 베스트 극장은 저렇게 잊을만하면 한번씩 걸작을 내어놓는다. 어떨때 나는 영화를 보는 것 보다 차라리 금요일 저녁에 하는 베스트 극장이 더 재밌을때가 있다. 참. 어제 저 사진을 찾으려고 MBC베스트 극장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극본공모를 한다는 공고를 봤다. 기간은 4월 15일까지. 혹 방송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도전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