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누나들~ 누나들만 믿어요.

참 안땡긴다 안땡긴다 해도 이렇게 안땡기는 영화가 또 있었을까. 후배 김양이 전화와서는 표 예매해 놓고 집앞까지 모시러 갈테니 그저 함께 봐주기만 하라고 사정을 하는데도 도무지 땡기지가 않았었다. 허나 정에 끌려 나는 결국 이 지랄스런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미 충분하게 각오를 하고 갔건만 영화는 내 각오 따위는 한방에 보내주셨다. 이명세 감독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는 수식어가 참으로 거시기하게 느껴졌다.
일전에 영화잡지사 기자로 있는 아는 동생 이양이 그런말을 했었단다.(지네 언니한테 한 말을 내가 전해들음) '언니, 오늘 강동원이 나보고 누나라고 불렀어. 아.... (쓰러짐)' 하는일이 그런지라 어지간한 배우들은 봐도 본듯만듯 시큰둥하던 그녀였기에 나는 무척 놀랐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강동원이라는게 더더욱 놀라워했다. 그러자 그 언니가 한 말이 이러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강동원에게 반하지 않는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야' 그 말을 듣고 수초간 생각 했으나 나는 여전히 강동원에게 왜 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설사 내가 금수가 되더라도 말이다.
이 시대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우는 이명세. 일찍이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스미스들과 빗속에서 싸울적에 우린 외쳤다. '저거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베낀거 아냐? 우이쒸'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매트릭스에서의 그 장면은 인정사정에서의 그 장면과 참으로 비슷했다. 그리고 시기상으로 인정사정이 빨랐기에 우린 무조건 후자가 전자를 베꼈다고 편할대로 생각했다. 아무튼 인정사정의 액션 장면은 여태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고 이후 여러 영화들이 그 스타일을 가져다가 나름 어찌 해 보겠다고 노력들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이명세가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6년간의 긴 침묵끝에 이런 영화를 찍었을까 싶게 '형사' 는 아무 느낌도 스타일도 없는 영화였다. 강동원이 발레와 무용을 연습한끝에 만들어냈다는 춤추는듯한 액션은 너무 과도하게 써먹은 나머지 나중에는 나오기만 하면 '쟤 또 춤추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지원은 내사랑 싸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연기를 선보였다. 거기다가 그 내용이란 참... 물론 원작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영화로 만들만큼 매력적인 스토리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이명세 감독은 이 영화의 타겟을 확실하게 정했다. 강동원을 향해 오빠라 외치는 아해들이 아닌, 그에게 누나라 불리우는 여인들. 그렇다. 강동원보다 훨 나이가 많으나 그 어린것의 탱글함에 홀딱 반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들을 타겟으로 삼은 것이었다. 실제로 극장안에서는 강동원보다 어린 그녀들은 없었고 누나들만 득시글거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강동원이 극중 별명인 슬픈눈 답게 서클렌즈를 한 눈을 슬프디 슬프게 떠 주시면 으스러지는 '어으...' 소리를 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미 TV로 지겹게 봤던 다모 2 가 될까봐 심하게 걱정했었으나 영화를 중간쯤 보니 다모 분위기마저 못 내면 어쩌나 더 걱정이 되었었다. 이 영화는 스토리 같은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강동원이 나온다는게 중요할 뿐. 강동원의 대사 처리가 걱정되었던지 감독은 그의 목소리를 들려주기까지 겁나게 질질 끌었으며 대사도 별로 없다. 하긴 강동원은 대사가 필요 없는 역활이다. 그저 꽃미남이면 되었던 것이다.
다모에서 그래도 연기를 보여줬던 하지원은 진정한 일보전진 이보후퇴 연기를 보여준다. 오바스런 액션과 얼굴 표정. 아무래도 하지원은 이쁜 여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관객들이 '영화를 위해 저토록이나 망가지다니 역시 대단한 여배우' 라는 소리를 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진것 같다. 시종일관 콧잔등 아래부터 입술과 턱을 모로 좌로 일그러뜨리기만 한다. 거기다 그녀의 그 목소리. 김정은의 '허이구 참' 부럽잖은 부담감을 팍팍 안겨준다. 거기다 초반부에 보이는 그녀의 의상은 한복으로 힙합분위기를 내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쯤으로만 보인다. 물론 시대고증을 철저하게 거친 시대극을 추구한게 아니기에 의상이 뭐 그럴수도 있다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엄한 재해석은 말아야 했었다. (머리에 쓰고 나오는 모자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도 귀찮다.)
강동원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같고 하지원은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비행기를 몰고 다니는 철없는 여자아이의 모습같다. (역시 일본 만화) 스토리는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우는 하지원과 그 음모의 핵에 있는 강동원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지만, 실제로 전해진 것은 그저 꽃미남 강동원의 판타스틱한 등장과 퇴장 뿐이었다. 거기다 국민배우라 불리우는 안성기의 대사전달을 생각지 않은 빠른 대사처리는 이 영화를 얼마나 빨리 찍고 끝내고 싶었을까 하는 연민마저 불러 일으켰다. 코믹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멜로물도 아닌것이 또 액션도 아닌것이 아무튼 장면 장면들은 스크린에서 튀어나올듯 그렇게 서로 연결고리를 잃고 튀기만 했다. 감독과 배우가 모두 작정한듯 뒷걸음질 치니 영화도 그렇게 슬금슬금 뒤로만 간다.
이명세 감독을 믿고 기다려왔던 내 하찮은 실망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거 정말 저러다가 다시는 영화 못 찍는거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영화는 갈피를 잃고 헤맨다. 초반부에 도무지 왜 나오는지 알수없는 김보연. 그녀 못지않게 나머지 배우들도 존재감없이 왔다갔다만 한다. 거기다 팬 서비스 차원인지 뭔지 몰라도 강동원은 왜 등장만 했다 하면 오직 눈으로 화면을 꽉꽉 채우는지. 극중 별명이 슬픈눈이 아니라 슬픈발이나 슬픈엉덩이였으면 정말이지 제대로 아찔할뻔 했다. 처음부터 그다지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지만 이 정도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었다. 내가 기대를 하지 않았던건 다모의 하지원이 또 조선시대 여형사를 한다니 TV의 답습이 아닌가 했던 것이며 대략 연기는 안되는 꽃미남 강동원을 데리고 무슨 주인공을 시키는가 하는 것에 대한 우려감이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 영화로 그 자신에 대한 우려감을 증폭시키는데 성공했다. 인정사정은 진정코 소 뒷걸음 치다가 떼려잡은 영화일까? 아니면 하지원과 강동원을 데리고 찍다가 보니 저렇게 되었을까? 참으로 뭐라 말 할 수 없는 착잡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