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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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성질은 더러웠으나 제대로 된 반항한번 못해봤던 중고딩 시절. 나는 고모의 손에 이끌려 싫어 죽겠는 교회를 억지로 다녀야 했던 경험이 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영접할 좋은 기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방언을 하는 옆에 아저씨가 무서웠고, 박수치며 동시에 우는 아줌마들이 섬찟했으며, 주님을 조우님 이라고 발음하는 목사님이 괴상할 뿐이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꽤 큰 파워를 가지고 있던 고모를 상대로 감히 '교회 가기 싫은데요?' 그 한마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꽤나 많은 일요일. 또 꽤나 많은 방학동안 교회의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다녔다. 그 속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싹텄느냐 하면? 그렇다면 내가 지금처럼 일요일마다 오후 한시까지 퍼 자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특정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뭐 내가 불교에는 어지간히 두터운 신임을 가지고 있거나 몰몬교, 남묘호랭계교 (이게 맞나?) 힌두교, 사이언톨로지교 등에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처럼 종교가 없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종교란 전부 약간씩은 웃긴 (우습다는 얘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웃긴) 구석들이 있다. 짧은 내 생각에는 그렇다. 신이 있긴 있어도 뭐 우리가 거기다 대고 경배하고 찬양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것 없는. 종교인들이 들으면 입맛을 다시며 나를 전도하려고 난리를 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생각은 신은 신들의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의 세상에서 각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 아닌가 싶다.

이런 종교에 대한 약간의 할랑함과 그나마 중고딩때의 경험으로 나는 교회. 즉 기독교에 대해서는 다른 종교들 보다는 좀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딴건 몰라서라도 가벼울수가 없다.) 근데 이 가벼운 마음을 이기호가 간질간질 간지려 준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통해서 말이다. 기독교에 심취한이들이 읽으면 상당히 불경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딱 나같은 인간은 정말 생각없이 뒹굴며 웃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외에도 일곱가지의 단편들이 더 있지만 이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워낙에 출중한지라 사실 다른건 생각도 안난다.  

일단 최순덕의 성령충만기는 전부 성경책과 같은 문체로 또 같은 포멧으로 짜여져있다. 몇장 몇절 말씀이라 부를 수 있도록 장과 절이 매겨져 있으며 어투또한 가라사대 이르매 하였더라 하는지라 등등 성경을 그대로 패러디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이 두가지가 전부였다면 그리 기발하다 할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 정말이지 '배짼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포복절도할 내용들로 가득차다. 어떤 느낌이냐면 웃기려고 작정하고 웃기는게 아닌. 본인은 웃길 생각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오히려 내용은 진지하고 심각하다.) 읽는 사람을 구르게 만든다. 이건 자기 자신도 남을 웃기는지 알고 있을때 보다 성공만 하면 훨씬 더 오래 타인을 구르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내용은 별거 없다. 교회 버스 운전사인 아버지와 교회 사찰 집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순덕은 모태신앙답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그 안에서 사는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이이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교과서보다는 성경책을 더 열심히 보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보다 여름성경학교 퀴즈대회가 더 걱정되는 그런 아이가 바로 최순덕이다. 그러다 남들이 대학을 갈때도 또 취직을 할때도 오직 교회 안에서 살다시피 하는 최순덕을 보고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꼭 교회 안에 있는것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최대의 일이 아니라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이 어떤 곳에 자신을 쓰려고 했는지를 찾으라고 한다. 그저 교회 안에서 하나님만 열심히 믿으면 되는줄 알았던 스물 두살난 아현동 처녀 최순덕은 이때부터 자기의 쓰임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발견한 자신의 쓰임이란? 정말 골때리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골때리는 과정들이 조금의 희화도 없이 모두 진지한 어투로 (성경 말투니 어디 진지하다 뿐이겠는가만은) 담담히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더 웃긴다.

나머지 7개의 단편들도 그럭저럭 재미있지만 나는 이 책이 최순덕 성령충만기라는 단 하나의 단편만 있었다 하더라도 분명 사서 읽을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이기호가 단편에서 그리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존경하거나 본받을 만한 아니 하다못해 이 사회의 멀쩡한 구성원으로 끼워주기조차 좀 뭣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못 배우고 못 입고 못 먹는 그들. 그렇지만 이기호가 그리는 그들의 삶이 결코 우스꽝스럽지는 않다. (웃긴것과 우스꽝스러운 것은 천지차이다.) 이런 못난 인간들도 이 사회에는 분명 존재하니 우리모두 사랑합시다라는 계몽적 메세지를 전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인간들도 있으니 우린 그보다 훨씬 낫지 않소? 하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사람들을 전해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참 웃긴다. 어쩌면 그 웃김은 울다가 결국에는 어딘가에 털난다는 사실도 망각한채 울게 만드는 웃김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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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2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픽팍 2006-05-2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페이퍼란 잡지에서 강추하던데 살까 말까 고민하던 중 님의 글을 읽고 나서 사기로 작정 ㅋㅋ추천할께요 땡쓰 투도 하고 갑니다.

플라시보 2006-05-2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아.. 전 되게 재밌게 봤는데 님도 재밌게 봤으면 좋겠어요. 페이퍼에서 이 책을 강추했군요. 흐흐.^^ 요즘은 그 잡지 안본지가 한참 된 것 같습니다.

일하 2006-09-0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겨요 ㅋㅋㅋ
꼭 사보고 싶네요
 

이 램프. 영화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도서관이나 뭐 그런곳에 하나씩 놓여있는 램프. 원래는 예전에 은행에서 쓰던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이 램프. 정말 가지고 싶었더랬다.

제일 인상깊게 이 램프를 봤던건 세븐에서 모건 프리먼이 범죄자가 남긴 단서를 찾느라 도서관에 들렀을때 (아마 경찰 도서관이었던것 같다.) 였던것 같은데 그때 배경 음악으로는 G선상의 아리아가 흐르면서 모건 프리먼이 이 램프를 찰칵 하고 켠 다음에 열심히 책을 찾아보는 그런 대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램프와 음악이 동시에 나와서 그런지 그 부분이 나는 세븐에서 가장 인상깊었더랬다.

이 램프의 가격은 52,000원.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는 않다. 그런데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을지를 모르겠다. 특히 저 황동으로 된 부분이 정교해야 하는데 안그러면 영 싸구려처럼 보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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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5-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랑 똑같은데, 저희 은행 메인브렌치에 있었어요! 오오오

비로그인 2006-05-1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살 수 있는지..부디 꼭 알려주시기를....간절해졌습니다.

플라시보 2006-05-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오오. 하나 슬쩍 집어갈수는 없나요? 흐흐.^^

Jude님. 텐바이텐 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일하고 있더라구요. (저 가격이 세일된 가격입니다.)

비로그인 2006-05-1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은행잔고를 들쳐본 다음 행동에 옮겨야겠어요. 그런데 정말 예쁩니다.(어느새 골룸 모드)

플라시보 2006-05-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이히히. 저도 저거 사고싶어서 달달달 거리고 있습니다.^^
 
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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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중에서 '그와 그녀의 사정' 이라는게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가 이 만화 얘기를 할때마다 사람들은 입꼬리를 묘하게 비틀면서 '사정이라...' 했더랬다. 그러니까 그와 그녀의 사정에서 사정이란 단어를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의 그 사정이 아닌 다른 사정. 즉 성적인 의미의 사정으로 해석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도 참...

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이건 그와 그녀의 사정과는 반대가 되는 케이스로 동정표할때 그 동정이 아니라 진짜 성적인 의미의 동정이 동정없는 세상에서의 동정의 의미이다. 제목만으로 보자면야 한껏 무거워 보이는 이 작품. 허나 제목에서부터 벌써 작가는 살짝 삐딱하게 나간다. 이 작품은 문학동네 6회 수상작인데 심사평에서 소설가 박완서는 말했다. 이 작가가 하나 피해가야 할 것이 있다면 가벼움의 습관성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그 비슷한 의미였다.) 이라고. 그만큼 이 작품은 가볍고 또 가볍다.

몽정기라는 영화가 있었다. 중딩 남학생들의 성적 고민과 판타지와 뭐 기타등등을 그린 영화인데. 이 책은 그러니까 몽정기의 고딩 버전쯤으로 보면 되겠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중딩이 등장했던 몽정기보다 한껏 농익었다던가 더 노골적이라던가 쌘 표현이 등장하는건 아니다. 주인공인 나는 물론이고 그 주변인 (남자애들 둘 여자애 하나. 여자애는 주인공 나의 여자친구다.) 들도 보면 소위 노는애 혹은 까진 녀석들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모범생이냐면 그건 또 아니다. 그러니까 얘들은 공부를 팍 접고 화끈하게 노는 애들도 그렇다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학교 생활에 임하는 애들도 아닌. 가장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애들인 것이다. 

주인공 나의 관심은 오로지 한번 하는 것이지만 한번 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겠어요 정도는 아니다. 그저 하고싶어 죽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혹은 누구와 해야할지 고민한다. 일종의 성장 소설이긴 한데 흔히 성장 소설에서 다루는 것 처럼 주인공이 내적으로 성숙한다던가 혹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계몽하게 하려는 의도는 거의 없다. 어떻게 보자면 빗나가야하는 환경은 다 갖춘 주인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엇나가지 않는것에서 뭔가 교훈을 얻을수도 있겠지만 읽다가 보면 그런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녀석을 비롯해서 그녀석의 가족이며 친구들. 아니 주변인 모두가 귀엽다. 귀여워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날만큼 말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가벼워지고자 했는지 아니면 원래 가볍고 재밌는 작품을 좋아하는지는 이 책 한권만으로는 평가가 불가능할 것이다. 허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나니 아마 전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가벼운게 뭐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 모든게 다 무겁고 진지해야하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쩌다 한명쯤은 새털처럼 가볍다 하더라도 괜찮다. 그리고 박현욱은 가볍되 촐싹거리지는 않으므로 매우 괜찮다.

P.S. 얼마전 교보에 갔다가 박현욱의 싸인회를 갔다. 다들 이름이 적힌 쪽지를 내밀며 싸인을 해 달라고 했는데 난 그냥 싸인만 받았다. 왜냐 이름이 괴상해서 그걸로 혹시나 질문이라도 받을까봐서다. 나 요즘 너무 소심해졌다. 배불뚝이라 그런가보다. 누가 오래 쳐다보면 심지어 상처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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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6-04-2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동정이 이 동정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동정, 그런 의미였구요.
제목이 둘 다 선정적이에요, 이 사람.

플라시보 2006-04-28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흐.. 그러게요. 근데 동정없는 세상이란 제목의 영화도 있었군요. 저는 처음 들었어요.

코키리 2006-04-3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저두 강남교보에서 싸인받고 책도 공짜로 받았는데..ㅋㅋ
그쪽에서도 싸인회를 한 모양이군요...

플라시보 2006-05-0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키리님. 흐.. 여긴 책은 공짜로 안주던데요. 책 산 사람들 한테만 싸인을 해 주더라구요.^^
 
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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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라는 작가에게 홀딱 반한 것은 그의 단편집 'LAST' 를 읽고 나서였다. 4teen도 읽었지만 LAST만큼 강한 느낌은 아니었다. LAST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작가는 절대로 혹은 적어도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주절거리지는 않겠구나. 그렇지만 이번 작품 1파운드의 슬픔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이시다 이라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꽤 잘 주절거릴뿐 아니라 동시에 꽤 많이 주절거렸었다. 슬로우 굿바이라는 책에서도 사랑을 말했고 동경 DOLL에서도 사랑을 말했다고 하니 말이다. 내게있어 그저 LAST의 암울한 인상이 강했기 때문에 그게 전부라고 착각했을 뿐. 이 작가 우울한 얘기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총 10개의 사랑얘기가 적혀있는 이 단편은 뭔가 운명적인 사랑이라던가 아니면 대단한 우연이 끼어든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다.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렇지만 다들 이렇다. 확실한 미인은 아니지만 매력있는. 배우처럼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호남가는 미남형인) 그들의 사랑 얘기가 시작된다. 가끔은 이미 시작된 사랑이기도 하고 또 어떨때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랑일때도 있지만 아무튼 10가지 얘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다.

LAST와는 정확한 반대편에 서 있으려고 작정이나 한 사람처럼 이시다 이라는 이 작품에서 큰 고민없고 큰 아픔없는 사람들의 사랑을 얘기한다. 하긴 당장 빛에 쪼들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판국에 사랑타령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LAST. 끝장으로 가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내 오랜 편견이 하나 있다면 사랑은 어디까지나 등따시고 배부를때 할 수 있는 것이란 거다. 등이 차갑고 배가 고플때 하는 사랑.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드물다는게 내 생각이다. 내일 끼니를 걱정하지 않을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을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 올리며 잠못이루거나 설레이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런 점에서는 이시다 이라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LAST에서는 아무도 사랑을 얘기하지 않았고 1파운드의 슬픔에서는 아무도 돈 얘기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술술 잘 읽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처지라면 주인공들을 나름 나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보겠지만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생각한지 너무나 오래 된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얘네들 살만하니 사랑을 하는구나 싶을 뿐이다. 그나마 가장 와 닿은 것은 첫번째 단편인 두 사람의 이름인데 그건 사랑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등장하는 고양이 때문인것 같다.

읽다가 보면 10개의 얘기를 채우기 위해 참 많은 상황들을 동원했구나 싶지만 읽다가 보면 어쩐지 뒤로 갈수록 약간 허술해지고 맥빠지는 느낌이다. 좀 쎄개 말하자면 어른판 하이틴 로멘스라고나 할까? 동화같은 사랑이 등장해서 10대 소녀들을 후리는 하이틴 로멘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에 등장하는 얘기들은 꽤나 달달하다. 꼭 이시다 이라가 아닌 다른 사람도 충분히 쓸 수 있을만큼 달다. 어쩌면 약간은 어두운 얘기들에 끌리는 내 성향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단편집에 그리 많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로 끝나는 동화책들은 어쩐지 의심스러운데 이 책 역시 그런 의심을 준다. 과연 그 뒷장이 쓰여진다면 그래도 이 사람들은 행복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여전히 기쁠까 하고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그렇지만 내가 하면 단 하나 뿐이고 특별한게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있으면, 그것과 약간만 연관된것을 만나도 마치 신이 내린 계시인양 기뻐한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연관시키려 마음만 먹으면 이 10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쯤은 비슷한게 나올테니 말이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이미 좀 시큰둥해져 있다면 이 책은 달긴 단데 꽤 밍숭하다. 사랑해서 좋겠네 니들은 이라는 생각까지는 가질 수 있지만 사랑이란 정말 기기묘묘하고도 놀랍구나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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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4-2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요. 그래서 연애질 하는 청년*^^*이 읽으란 것이오 말란 것이오!! 으흐흐...

코키리 2006-04-2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름다운 아이를 가장 먼저 읽어서...LAST만큼 강렬한 책이었어요...
이 책이 오늘 도착이네요..기대됩니다. ㅋㅋ

비로그인 2006-04-2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이 이 책 읽는다에 오백원 걸겠습니다. 후훗

2006-04-28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nnerist 2006-04-2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아하하하;;;; -_-ㅋ

치니 2006-04-2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왠지 포틴이 되게 재미없었어서 막 비죽거렸던 기억이 나요, 나오키 상인가 받았다는 사실에...
LAST는 안읽어서 모르겠지만, 포틴 때문에 이책도 그냥 패스할거 같네요.

플라시보 2006-04-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nerist님. 으흐흐. 읽어보시오.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사랑 얘기들. 다 재밌지 않을까요?^^

코키리님. 아.. 저도 아름다운 아이 읽었어요. 근데 LAST가 제일 강하게 남아있어요. 워낙 쌘 작품인지라..^^

Jude님. 저도 500원^^

치니님. 아..4teen이 님의 취향이 아니셨군요. 전 LAST는 그럭저럭 괜찮던데...(그 책 때문에 이시다 이라의 다른 책도 읽게 되었거든요.)

비로그인 2006-04-2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 님에게 오백 원 받기로 했어요! 플라시보 님도 받으시기를. 후훗

플라시보 2006-04-2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앗싸. 500원 벌었군요. 히히^^

픽팍 2006-05-2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다 이라꺼 요새 번역되어서 나오는 거 다 실망스러워요. 푸른 비상구도 단편집인데 님의 글 읽으니깐 이 책도 위의 책이랑 비슷할 듯, 읽고서 대략 난감하고 실망했어요 저도 last의 이시다 이라만을 기대했나 봐요, 서서히 이시다 이라도 버릴 때가;;에쿠니 가오리는 도쿄 타워 이후로 버렸음;;;

플라시보 2006-05-2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에쿠니 가오리는 아예 처음부터 안읽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란 여자한테 실망한 이후. 그냥 이름이 아닌 바나나, 가오리 이런 사물을 지칭할 수 있는 이름에 괴상한 반감이..흐흐) 저도 라스트의 이시다 이라를 가장 좋아했었어요. 근데 이건 무지 말랑하더라구요. 쩝.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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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증을 잘 내는 편이라 무언가를 꾸준하게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관심과 애정 만큼은 그의 책을 처음 보았던때 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똑같다. 하루키의 책은 워낙에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이 되었고 단편집들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자기들 멋대로 제목을 붙이는 바람에 똑같은 단편집 (그러나 제목과 출판사는 다른) 을 사는 실수도 왕왕 저질렀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루키의 새 책 (혹은 새 책으로 착각할 만한 새로운 제목을 단 책) 이 나오면 설레어 하며 책을 구입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가 세기에 하나 날까말까 한 위대한 작가라던가 하루키가 쓴 책은 모두 대단해서 입이 쩍 벌어질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하루키 정도는 우습게 여길만큼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별처럼 많고, 비록 대단찮은 독서력이지만 그런 작가들의 책을 수도없이 읽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작가라 하더라도 내가 하루키에게 보내는 애정과 관심의 반 만큼이라도 받은 작가는 일찌기 없었다.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계속 없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하루키가 매우 대단한 작품을 쓰는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변함없는 열정을 보내는 원인을 도통 찾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냥 좋으니까 좋다 정도 밖에는 도저히 설명할길이 없는 일들이 있는데 내 경우는 하루키에 대한 사랑이 (정확하게는 그의 작품에 대한) 그런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무언가 원인이 있을거라며 깊이 찾아본다면 한가지 쯤은 이유를 댈 수도 있다. 그건 그의 작품이 그다지 어렵게 쓰이지 않은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100% 나의 상상이자 느낌이지 실제로 하루키가 어렵잖게 작품을 척척 써댄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진짜 하루키는 작품 하나를 내기 위해 일찌기 이땅의 아이돌스타 서태지가 말했듯 뼈와 살이 내리는 고통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실제의 하루키가 어떻게 작품을 썼느냐가 아니라 그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말 하는 것이다. 너무도 피땀흘려 정말 최선을 다해 작품을 썼어요라는 느낌의 작품들과 하루키의 작품은 분명 분위기가 다르다. 그러니까 하루키의 책을 읽을때면 언제나 초저녁쯤에 지는 해를 보다가 '글이나 써 볼까?' 하고 연필 한자루를 쥔 다음 쓱쓱 써내려간 (실제로는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를 이용하겠지만)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느낌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이 그다지 대단치 않다 하더라도 늘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과 관심을 쏟아붓는 것이다. 책에서 진지함이나 심각함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만 이런 류의 슬렁슬렁을 느끼기는 정말 드문 일이다. 여행으로 비교를 하자면 다른 책들은 발품 팔아가며 지도 봐가며 힘들게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고 사진또 찍고 메모도 남기는 느낌이라면 하루키의 책은 야자수잎이 팔랑거리는 그늘에 누워서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늘씬한 비키니 미녀나 초컬렛색 살결의 서퍼들도 물론 있는) 이름은 모르지만 무척이나 달디 단 열대 과일 음료를 쪽쪽거리며 빨아먹는 느낌이다.

도쿄기담집은 하루키가 꽤 오랜만에 낸 단편집이다. 처음에 제목을 봤을때는 혹시 렉싱턴의 유령을 또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운 이름을 붙여 출간한게 아닌가 했었는데 단편들의 제목을 보니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 내가 렉싱턴의 유령과 도쿄 기담집을 착각한 이유는 둘 다 조금은 기이한 얘기들의 단편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괴담집의 수준은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조금 혹은 약간 기이한 얘기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 얘기들은 어떤 공포심도 무서움증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난 그런 얘기들에 매우 질색하므로 아무리 하루키라 하더라도 괴담집은 곤란하다.)

하루키는 생각보다 (정확히는 내 느낌보다) 꽤 영특한지 도쿄기담집의 제일 처음 단편에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그러니까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하루키가 직접 겪은 이야기가 두개. 또 들은 얘기가 하나 실려있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말한다. 자기는 픽션을 쓸때는 확실하게 모든걸 다 지어내지만 논픽션일때는 아니라고 한다. 첫 단편인 우연한 여행자는 하루키가 겪은 얘기 혹은 들은 얘기지만 그 이후부터는 모두 자기가 지은 얘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기묘하게도 하루키의 진짜 얘기를 들은 다음이라 그런지 나머지 단편들도 모두 실제 일어난 약간은 괴이한 논픽션으로 느껴진다. 하루키는 아니라고 해 두었지만 어느새 독자들은 하루키의 진실한 말 보다는 그가 쓴 실제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뭐 별로 대단치도 않구나 하고 코웃음을 칠 만한 얘기들이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이 작품집은 그래서 어쨎다고? 할 소지가 다분하다.) 꽤 그럴사하게 들리게 된다.

예전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었다. 그리고 그 비슷한 외화로 환상특급이란게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둘 다 좋아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좋아하기에는 지나치게 무서웠었다. 그러나 X파일이 나왔을때의 나는 그 작품에 흠뻑 빠져서 살았더랬다. 약간 기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섭지는 않은. 딱 그 중간의 경계점에 X파일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열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키의 이번 작품은 그런점에 있어서 X파일과 매우 흡사했다. 따라서 나는 마음놓고 열광하며 오늘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이 책을 읽는데 쏟아 부을 수 있었다.

좀 괴기스럽거나 아니면 슬쩍 으시시하기라도 하길 기대한다면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은 실망스러운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무서운건 질색하지만 약간 괴이한거라면 좋아하는 사람인 경우 이 책은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루키책의 특징인 가독성도 좋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까지 한다. 너무나 재밌는 얘기들이 실려있다는 얘기를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재밌는 얘기들이고 적어도 읽다가 던져놓은 다음 언제까지나 접힌 책장을 보며 찝찝해할 일은 없을 것이다.

끝으로 하루키에게 개인적인 바램 하나를 말해도 된다면 부디 내가 상상하듯 진짜로 그렇게 슬렁슬렁 작품을 썼으면 좋겠다. 그러면 진짜로 많은 작품을 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가뭄에 콩나듯 가끔 나오는 하루키의 작품은 나를 너무 목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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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2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빵가게 재습격, 그리고 레더호젠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새롭다는 것 이외에도 레더호젠을 맞추러 갔다가 남편과 이혼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는, 그 뒤로도 종종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그저 공기 한 톨에 떨어지는 애정이 그렇게 명료하고 간단하게 쓰여진 이야기도 드물 거라 생각했거든요. 물론 하루키가 그런 의도로 썼는지는 모릅니다만, 멋대로의 독자인 저는 그저 그렇게 생각해버렸답니다.
일전에 리뷰에도 지나가는 이야기로 썼지만, 꼭 무라카미 류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 같습니다. 꼭 어느 한 쪽이 진중하고 어느 한 쪽은 가볍다는 뜻이 아닌, 그저 각자의 뚜렷한 다른 스타일이 있는 듯 하다는 의미에서 그리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궁금한 점. 혹시 괴이하다고 해도 얼굴 껍질을 벗기는 옛 외화 시리즈 V 같다거나 혹은 잔혹동화처럼 뭔가 잔인하고 찝찝하다든가..그런 느낌은 아니겠지요? 이 책은 읽고싶은데 혹시 그런 느낌일까봐 망설였거든요.

Koni 2006-04-2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벌써 십년이 넘도록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순정을 바쳐오고 있습니다.^^ Jude님, 플라시보님 대신 살짝 말씀드리면 잔인하거나 잔혹한 이야기는 없어요.^^

플라시보 2006-04-27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전혀 아닙니다. 그냥 살짝 괴이한 정도지 절대 무섭거나 찝찝하거나 잔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 이걸 읽고 잠을 설쳤을껍니다.(생각보다 겁이 많거든요.) 저는 하루키 단편집 중에서 세라복을 입은 연필을 좋아합니다. 치즈케잌 모양의 가난도 좋아하구요. 진지한것도 좋은데 전 하루키가 구사하는 유머가 너무 좋더라구요.^^ 님 말씀처럼 류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하고 하루키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것 같습니다. 둘 다 정말 개성이 뚜렷한 작가지요? 저는 하루키를 여동생은 류를 좋아하는데 류의 작품 중에서는 코인로커 베이비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루키는 장편보단 오히려 단편을 더 좋아하는 편이구요. 그리고 이 책 님께 권하고 싶어요. 재밌는 독서가 될껍니다.^^

냐오님. 호호. 안그래도 이 책에 딸려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리스트를 보니 제가 한권도 빠짐없이 다 읽었더라구요. 님도 하루키를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

알맹이 2006-09-0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가는 리뷰네요. 저도 하루키 광팬이라서~ 내가 왜 하루키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조금 생각해 보게 만드셨어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