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
이우일 외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한창 유행하는 것이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등을 규정짓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내 혈액형인 B형은 가장 개떡스럽다.) 겨우 몸속에 흐르는 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발상부터도 웃기지만 과거 그냥 재미삼아 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특정 혈액형을 집중 공격하는 분위기는 더더욱 우습다. 사실 인간이란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다. 그런 인간을 무슨 형 무슨 형 이런식으로 나눈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된다.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현재 처한 환경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몇 가지 특징만 부각시켜서 '형' 이라는 틀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냉장고를 코끼리에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얼마전 서점가에 '아침형 인간' 이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켰었다. 아침형 인간이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뭐든 하라는 것으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앞당겨 새나라의 새 어른이 되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많이 잡아먹는다는 둥. 혹은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유달리 일찍 일어난 사람들의 예를 들며 성공을 하고 싶거든 일단 일찍 일어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성공한 사람이 단지 일찍 일어나는 것 만으로 성공을 했다면 이 세상에 성공 못하는 인간이 대체 몇이나 있을까? 문제는 일찍 일어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또 무엇을 하느냐인데 몇몇 성공한 사람들이 꼭두새벽에 일어난 것만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은 숲을 보지 않고 풀 한포기만 보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S모 그룹에서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인 9 to 6를 7 to 4로 확 바꾸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그룹의 회장님께서 아침형 인간의 신봉자였는지 보통 출근시간 보다 무려 두 시간이나 앞당겨버린 것이다. 일의 특성같은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 조취로 인해서 한동안 S모 그룹에 다니는 사람들은 큰 고통을 당해야 했다. 특히나 S모그룹 계열사인 유명한 광고회사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모든 부서나 계열사에서 전부 7 to 4를 실천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시행착오끝에 느끼게 된 S모 그룹사는 나중에는 저 원칙을 일의 성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한 직장 내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일찍 시작하라는 법칙이 들어맞지 않을텐데 그보다 훨씬 더 불특정 다수인 일반 사람들은 오죽 하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친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어학원을 다니며 자기 개발을 하고 헬스나 요가를 배워 웰빙스런 생활을 하라고 말이다. 아침일찍 일어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침잠이 많다거나 늦게까지 일을 하는 사람들, 혹은 늦게 잠자리에 드는것이 더 나은 사람들은 고려해야 할 대상에 끼이지도 못하는 분위기이다.
그런 찰나에 이 책이 나왔을때 나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나 역시 아침형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도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며 아침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반가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아침형 인간이라는 단 한 가지 이외에도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외쳐주는 것이 고마웠다. 굳이 아침형 인간과 그에 반대되는 올빼미형 인간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하는 일의 특성상 혹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수십 수백가지의 인간 형태로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아침형 인간에 완벽하게 반되되는 올빼미형 인간 이외에도 회사형 인간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원고를 청탁했고 그 것을 모아서 엮어낸 것이다. 모두가 아침형 인간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절대로 난 되지 않을테야' 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기가 처한 여러가지 환경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을 나열해 뒀을 뿐이다. 물론 제목이 제목인 만큼 내추럴 본 아침형 인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무려 18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써서인지 이 책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끼리도 이토록이나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획일화된 시스템아래 획일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것이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모두가 똑같은 머리길이에 똑같은 옷. 그리고 똑같은 공부를 똑같은 시간에 앉아서 해야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데 세상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 똑같아지지 못해서 환장이라도 한 것 처럼 단 하나의 이론과 단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한다. 어쩌면 그 중에서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가장 작은 부분인지도 모른다. 개성이 박탈된 인간들. 획일화된 인간들이 통치자에게는 매우 편할지 모르겠지만 개개인들은 죽을 맛이다. 인간이란 하물며 생김새조차도 다 다른데 그 속은 얼마나 더 다를것인가. 그런걸 깡그리 무시당한채 한가지의 길 밖에 없고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사실 나도 아침형 인간 까지는 아니지만 회사형 인간이긴 하다. 직장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출근시간을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아침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는게 아니라 시끄러운 기계음을 들으며 어거지로 일어나야 한다. 가끔은 잠이 덜깬 얼굴로 곧바로 욕실로 달려가 칫솔질을 하는 나를 거울로 보면 잠 조차도 지 마음대로 잘 수 없는 나란 인간이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더더욱 일찍 일어나서 어학원을 다니고 헬스클럽을 다니라고 주장하고, 아침잠이 많은 인간을 무능하고 게을러터진 인간 취급을 하는 사회 분위기는 정말로 견디기가 힘들다.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회의때마다 사장은 아침일찍 일어나서 자기개발을 하라고, 늘 지각을 하고 아침시간에는 대부분 꾸벅꾸벅 조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처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덧붙인다. 자긴 여태까지 새벽 5시 이후에 깨어난 적이 없다고 말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덕에 우리 회사의 사장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평생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사장을 할래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살면서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버는 회사원이 될래 라고 묻는다면 후자를 택하겠다. 모든 새들이 몇 마리 벌레와 아침잠을 쉽게 바꿀꺼라는 생각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틀린 생각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모든 인간들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남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기상 시간인 오후 1시 2시에 일어나고 역시 더 말이 안되는 조간신문을 보고 나서야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하고싶은 대로 살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누리기 때문에 무척 행복해 보인다. 굳이 이렇게 아침형 인간에 맞서서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지 마라 라는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 무슨형 인간이라고 나누는건 말도 안되는 짓거리임이 인정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