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 - 2004 제4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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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작가가 쓴 단편집도 좋지만. 이 책처럼 무슨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수상집의 경우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단 한권의 책으로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제일 첫 장. 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보물선을 비롯해서 최종 후보에 오른 여덟명의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김영하의 보물선의 경우 그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 에 실린 작품으로 예전에 한참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군산 앞바다 보물선 사건을 모티브로 따와서 쓴 소설이다. 그 외 최종 후보작은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 김연수의 부넝쒀, 박민규의 갑을 고시원, 윤대녕의 고래등, 윤영수의 새때, 이윤기의 보르항을 찾아서, 이현수의 신기생뎐2-오마담 편, 이혜경의 틈새. 등 총 여덟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작년 김영하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작가 박민규의 갑을 고시원이 단연 돋보인다. 타 작품에서 보였던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살아 있으면서도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으로. 작가 박민규를 더욱더 주목해야 할 이유를 충분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2000년 고인이 되었으나 우리의 가슴속에 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 등으로 영원히 살아 숨쉬는 작가 황순원의 단편 기러기가 실려 있다.

따로이 큰 설명이 필요없이. 의심할바 없는 수상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안전하다는 것에 있으리라.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 수준 이하의 형편없는 작품만 실려있으면 어쩌나 하는 위험부담을 떠 안지 않아도 된다. 어릴때 받았던 종합선물셋트라 찍힌 과자 상자 속에는 맛있는 과자도 들어 있지만 대게는 어린 마음에도 '안팔리는걸 여기다 죄 넣어 놨나봐' 싶을 만한 과자들이 대부분이다. 허나 2004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적어도 안팔리는 과자는 한봉지도 없다. 모두 시장에서 검증이 된 작품들이 실려서 책값을 톡톡히 한다. 신인이 아닌 기존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인 만큼 참신함과 신선함은 다소 덜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만치않은 내공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을 책 한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면 너무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게 좋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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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양 2005-01-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다른 작업을 하다가 그만...댓글을 엉뚱한 걸로 써버렸네요. 삭제하고 다시 쓰는데 혹시 메일로 갔을 까 싶어 걱정..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사서 봐버린 관계로.. 왠지 똑같은 책을 한 권 더 사는 것 같아 망설이다, 이벤트로 싸게 살 기회를 놓쳤어요. (수상자만 편애하는 것은 아니지만....)사실 저도 님과 같은 이유로 이런 수상집류를 좋아해요. 덧 붙인다면 그동안 몰랐던 좋은 작가들을 만나기도 해서 더 좋아요. 추천합니다.

플라시보 2005-01-0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과양님. 흐^^ 저도 오빠가 돌아왔다를 봤기 때문에 이거 살까 말까 조금 망설였어요. 근데 읽어보니 다른 작품들도 그럭저럭 괜찮더라구요. 님 말씀처럼 몰랐던 작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도 하구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표절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책세상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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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때 한번쯤은 복수를 꿈꾼다. 비록 여러가지 이유로 복수를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겠지만 상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았던 상처, 혹은 그 이상의 고통과 아픔과 절망을 안겨주는 꿈을 꾼다. 복수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이대며 '원수여 내 칼을 받으라' 고 외치는. 누가 봐도 내가 지금 너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면대결형 부터, 나의 존재를 감추고 주변 상황들을 교묘히 조작해서 그를 곤경에 빠드리는 그림자형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안전한 복수는 두번째이다. 물론 첫번째처럼 복수를 해서 상대방의 목이라도 따 버린다면 그로써 모든것이 끝이 나겠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원수여 내 칼을 받아라' 만큼이나 자주 들었던 소리가 '내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 혹은 '내 형제의 원수를 갚아주마' 이다. 복수하려는 상대가 천에 고아에 홀홀단신으로 살지 않는한. 그를 제거 한다고 해서 모든 복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응징을 당한 상대방의 주변인중 누군가가 밤마다 시퍼런 칼날을 달빛에 비추며 복수를 꿈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하지만 두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비록 상대방의 코앞에서 복수를 해 줌으로써 상대방이 나에게 복수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두려움에 떠는 쾌감은 없겠지만 뒷탈없이 안전한 복수가 될 수 있다. 복수만 하고 나서 이 세상을 하직할게 아니라면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한다. 복수도 복수지만 일단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두번째 방법에서는 복수가 복수를 낳을수가 없다. 상대방은 내가 복수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누가 끌어당기는지도 모르는 늪으로 서서히 몸이 빠져들어 간다. 재수에 옮이 붙었다 느끼겠지만 그 옮을 누가 붙인건지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첫번째 복수보다는 상당히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맞장을 뜨는 짜릿함을 포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복수를 하고 있는 나 라는 존재를 숨기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가 아무리 원인을 찾아내려고 해도 찾아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일이라면 복수를 당하는지조차도 모르고 복수를 당하는 상대방을, 음침한 곳에서 미소를 띄며 지켜보는 일 뿐.

장 자크 패슈테르의 '표절' 은 바로 이러한 복수를 그린 이야기이다. 주인공 에드워드는 자신의 원수인 니콜라 파브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도래하고 에드워드는 자신을 숨긴채 니콜라에게 복수를 한다. 그 복수라는 것은 작가인 니콜라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표절 시비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손에 피한방울 뭍히지 않고 완전하게 복수를 한다. 물론 복수를 위해 태어난 복수의 화신은 아니므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혹시나 실패할까봐 (자신이 복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거나 자신의 조작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에 철저하게 복수를 준비한 탓인지 모든 상황은 그가 예견한 시나리오대로 완벽하게 연출이 된다. 에드워드가 니콜라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사랑했던 야스미나라는 여자를 니콜라가 차지하고 또 그녀를 죽음에 이르도록 내몰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에드워드의 복수에 기름을 부었을 뿐. 이미 불씨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때 부터 서서히 지펴졌다. 애드워드는 단지 니콜라를 미워하지만은 않는다. 이런걸 바로 애증이라고 부른다의 교과서로 써도 좋을만큼 니콜라를 향한 에드워드의 감정은 복잡하다. 조용하고 소심한 에드워드. 어딘가에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주목받을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그런 그의 옆에 어딜가나 보석처럼 반짝이는 에드워드는 질투의 대상이자 스스로 끊임없이 모욕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니콜라에게 복수를 한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끝에 이루어지는 에드워드의 복수는 복수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차라리 아름답다고 느낄 만큼 완벽하다.

표절의 가장 큰 미덕은 복수의 도구로써 책이라는 다소 이채로운 소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 자신이 만든것이 분명한 창작물에 대해 표절 시비를 불러 일으키는것. 그것은 가장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길이다. 그리고 그 파멸은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르고 마침내 복수의 대상자 스스로 모든것을 끝장내도록 한다. 1994년 프랑스 범죄 문학상을 받은 이 책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치밀하다. 왜 여태 이 책을 몰랐는가 싶을 정도로 나는 이 책을 잡자 마자 단숨에 읽어 치웠다. 초반부에는 약간 느슨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에드워드가 니콜라에게 복수를 준비하는 중 후반에 들어서면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다. (실제 이야기의 진행이 빨라진다기 보다 읽는이의 호흡이 빨라진다.) 이렇게 대단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몰랐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책은 재미있다. 추리소설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끝에 가서야 알려줌으로 인해 극정 긴장감을 고도로 끌어내는 것이 아닌. 이 책은 범죄자의 관점으로 쓰여져 있다. 즉 복수를 왜 하게 되었으며 어떤식으로 복수가 진행된다는 것을 뻔하게 알면서도 추리소설 만큼이나 긴장감과 스피디함을 보이고 있으며. 그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놀랄만큼의 흡입력을 가진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복수하고 싶은 상대를 만난다. 그 상대가 철천지 원수이고 누가 봐도 저 둘은 앙숙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복수하고픈 마음이 시들해져 버릴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대가 가장 가까운 친구이거나 혹은 가족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복수의 상대가 멀리 있는것이 아니라 항상 내 주변에 맴돌며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 어떻겠는가. 웃는 낯으로 대하면서도 등 뒤에서는 칼을 갈고 그의 불행을 들으면 겉으로는 동정하면서 속으로는 웃음이 비져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다. 이런식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한번 시작을 하면 도저히 멈출수가 없다. 어떤 특별한 이유. 그 단 한가지로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복수를 꿈꾸는것 보다 조금씩 조금씩 먼지만큼 작게 쌓여가기 시작하는 증오와 미움은 어떤 요소로도 제거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마침내 표면적으로 터트릴만한 구실이 되어줄 사건이 발생하면 복수의 불은 기름부음을 받는다. 작가 장 자크 패슈테르는 이러한 상황을 이 책 '표절'에서 너무나도 잘 표현을 했다. 작가의 책을 읽고 그 얘기가 작가 자신의 얘기라고 믿어버리는 것 만큼 멍청한 독자의 본분을 다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어쩔수 없이 이 책을 읽고 또 한번 상상을 한다. 이 얘기가 자신의 얘기는 아니라 할지라도 (실제로 그는 작가 로맹 가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장 자크 패슈테르는 살면서 한번쯤은 이런식의 증오와 미움을 키우고 복수를 꿈꿨을 것이다 라는 상상을 말이다. 이 얘기가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천재적이라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치한 발상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어버린다. 죄가 있다면 장 자크 패슈테르가 너무나 흠없는 작품을 썼다는 것에 있으리라.

올 하반기 들어 가장 재미있는 책 한권을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이 작품 '표절'은 추천을 해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을만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 놀랍도록 책값이 싸기도 하다.) 별 다섯을 주고 거기다 금가루까지 뿌려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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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즈마리 2004-12-1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입니다..^^

흰 바람벽 2004-12-1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사놓긴 했는데 앞에 읽다가 속도가 안나가서 걍 던져놨거든요.

당장 당장 읽어야 겠어요~ 으~~ 흥분.긴장.기대.
추천도 콕!! ^^

플라시보 2004-12-1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마리님. 감사해요. (흐흐. 가격이 싸서 님이 산다고 해도 부담이 안되는군요.^^)



흰 바람벽님. 처음에는 저도 속도가 좀 안났는데요.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흥미진진 (내가 이 표현을 쓰다니...) 해 집니다. 어여 읽어보세요.^^

깍두기 2004-12-1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흥미진진...그 표현 딱 좋으네요. 그 표현이 어때서 그러십니까^^

플라시보 2004-12-1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깍두기님 알고 그러시는거죠? 에잇 몰라욧^^

瑚璉 2004-12-1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패러그래프, 밑에서 세 번째 줄에 오기가 있습니다 ("에드워드" -> "니콜라"). 직업병입니다 (-.-;). 양해하세요.

플라시보 2004-12-1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련님. 지적 감사합니다. 니콜라를 에드워드로 써 뒀군요. 흐흐^^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
이우일 외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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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유행하는 것이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등을 규정짓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내 혈액형인 B형은 가장 개떡스럽다.) 겨우 몸속에 흐르는 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발상부터도 웃기지만 과거 그냥 재미삼아 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특정 혈액형을 집중 공격하는 분위기는 더더욱 우습다. 사실 인간이란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다. 그런 인간을 무슨 형 무슨 형 이런식으로 나눈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된다.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현재 처한 환경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몇 가지 특징만 부각시켜서 '형' 이라는 틀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냉장고를 코끼리에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얼마전 서점가에 '아침형 인간' 이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켰었다. 아침형 인간이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뭐든 하라는 것으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앞당겨 새나라의 새 어른이 되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많이 잡아먹는다는 둥. 혹은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유달리 일찍 일어난 사람들의 예를 들며 성공을 하고 싶거든 일단 일찍 일어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성공한 사람이 단지 일찍 일어나는 것 만으로 성공을 했다면 이 세상에 성공 못하는 인간이 대체 몇이나 있을까? 문제는 일찍 일어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또 무엇을 하느냐인데 몇몇 성공한 사람들이 꼭두새벽에 일어난 것만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은 숲을 보지 않고 풀 한포기만 보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S모 그룹에서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인 9 to 6를 7 to 4로 확 바꾸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그룹의 회장님께서 아침형 인간의 신봉자였는지 보통 출근시간 보다 무려 두 시간이나 앞당겨버린 것이다. 일의 특성같은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 조취로 인해서 한동안 S모 그룹에 다니는 사람들은 큰 고통을 당해야 했다. 특히나 S모그룹 계열사인 유명한 광고회사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모든 부서나 계열사에서 전부 7 to 4를 실천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시행착오끝에 느끼게 된 S모 그룹사는 나중에는 저 원칙을 일의 성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한 직장 내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일찍 시작하라는 법칙이 들어맞지 않을텐데 그보다 훨씬 더 불특정 다수인 일반 사람들은 오죽 하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친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어학원을 다니며 자기 개발을 하고 헬스나 요가를 배워 웰빙스런 생활을 하라고 말이다. 아침일찍 일어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침잠이 많다거나 늦게까지 일을 하는 사람들, 혹은 늦게 잠자리에 드는것이 더 나은 사람들은 고려해야 할 대상에 끼이지도 못하는 분위기이다.

그런 찰나에 이 책이 나왔을때 나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나 역시 아침형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도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며 아침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반가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아침형 인간이라는 단 한 가지 이외에도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외쳐주는 것이 고마웠다. 굳이 아침형 인간과 그에 반대되는 올빼미형 인간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하는 일의 특성상 혹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수십 수백가지의 인간 형태로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아침형 인간에 완벽하게 반되되는 올빼미형 인간 이외에도 회사형 인간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원고를 청탁했고 그 것을 모아서 엮어낸 것이다. 모두가 아침형 인간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절대로 난 되지 않을테야' 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기가 처한 여러가지 환경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을 나열해 뒀을 뿐이다. 물론 제목이 제목인 만큼 내추럴 본 아침형 인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무려 18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써서인지 이 책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끼리도 이토록이나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획일화된 시스템아래 획일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것이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모두가 똑같은 머리길이에 똑같은 옷. 그리고 똑같은 공부를 똑같은 시간에 앉아서 해야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데 세상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 똑같아지지 못해서 환장이라도 한 것 처럼 단 하나의 이론과 단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한다. 어쩌면 그 중에서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가장 작은 부분인지도 모른다. 개성이 박탈된 인간들. 획일화된 인간들이 통치자에게는 매우 편할지 모르겠지만 개개인들은 죽을 맛이다. 인간이란 하물며 생김새조차도 다 다른데 그 속은 얼마나 더 다를것인가. 그런걸 깡그리 무시당한채 한가지의 길 밖에 없고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사실 나도 아침형 인간 까지는 아니지만 회사형 인간이긴 하다. 직장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출근시간을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아침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는게 아니라 시끄러운 기계음을 들으며 어거지로 일어나야 한다. 가끔은 잠이 덜깬 얼굴로 곧바로 욕실로 달려가 칫솔질을 하는 나를 거울로 보면 잠 조차도 지 마음대로 잘 수 없는 나란 인간이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더더욱 일찍 일어나서 어학원을 다니고 헬스클럽을 다니라고 주장하고, 아침잠이 많은 인간을 무능하고 게을러터진 인간 취급을 하는 사회 분위기는 정말로 견디기가 힘들다.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회의때마다 사장은 아침일찍 일어나서 자기개발을 하라고, 늘 지각을 하고 아침시간에는 대부분 꾸벅꾸벅 조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처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덧붙인다. 자긴 여태까지 새벽 5시 이후에 깨어난 적이 없다고 말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덕에 우리 회사의 사장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평생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사장을 할래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살면서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버는 회사원이 될래 라고 묻는다면 후자를 택하겠다. 모든 새들이 몇 마리 벌레와 아침잠을 쉽게 바꿀꺼라는 생각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틀린 생각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모든 인간들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남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기상 시간인 오후 1시 2시에 일어나고 역시 더 말이 안되는 조간신문을 보고 나서야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하고싶은 대로 살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누리기 때문에 무척 행복해 보인다. 굳이 이렇게 아침형 인간에 맞서서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지 마라 라는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 무슨형 인간이라고 나누는건 말도 안되는 짓거리임이 인정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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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 2004-12-1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제가 이책을 사면서 Thanks to 를 하면 더 좋을것을..... ㅠ.ㅠ

nugool 2004-12-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 싫어요.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지는데.. ㅋㅋ 저 S모 그룹이 7to4(칠사제라고 불렀죠)할때 흐흑.. 그 광고회사 다녔었잖아요.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 그때 다들 7시에 출근하면 엎드려 자는 사람이 태반이었다니까요. 결국은 죽어도 바꾸는 걸 안된다던 그룹측에서 입장을 조금 늦춰서 팀별로 출근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줬는데 그래도 그룹측 광고를 하던 팀은 7시에 출근해야했죠. 하여튼 그러고도 날밤새고 일해야 했으니 그시절 정말 회사다니기 싫었답니다. 참!(정작할 말은 안하고 ^^;;;) 읽어보고 싶네요. 반갑기도 하구요.

플라시보 2004-12-1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 바람벽님. 추천 감사드려요. 이미 읽으셨나봐요?^^



제가 그 광고회사 주변에서 살았거든요. 그 회사 보면서 '나도 저런 근사하게 생긴 회사 다니고프다' 고 생각했더랬어요. 후훗. 어쩌면 그때 님이 계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저 책에 보면 그 회사 다녔던 사람이 쓴 글도 있어요. 4시만 되면 퇴근했나 조사하러 나와서 근처에 방하나 잡아놓고 일감을 옮겨서 했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보니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광고하는 사람들 늦게까지 일하는데 그건 생각지도 않고 꼭두새벽 출근에 한참 일할시간에 퇴근 시킨다는게 말이 안되는 발상이죠. 더구나 일의 특성상 퇴근시간이 지켜질리는 만무한데 말입니다. 어?거나 정말 그때 회사를 다니셨다니 많이 힘드셨겠어요. 7시 출근이면 대체 언제 일어나야 하는겁니까. 더구나 여자들은 준비하는 시간이 대충 30분에서 1시간은 걸리는데 으...생각만해도 끔찍해요. (아. 책요. 재밌어요. 읽으면서 무지 좋았어요. 다들 글을 어찌나 재미나게 써놨는지..흐흐)

치니 2004-12-1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책을 읽었던 지인의 말을 기억하건대, 왠지 플라시보님 글이 더 재미있는 듯...^-^


플라시보 2004-12-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아유 아니여요. 흐흐. 저 책 진짜로 재밌었어요. 사실 제 글이 길긴 하지만 재미 면에 있어서는 좀 떨어지잖아요.^^

nugool 2004-12-14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회사 다녔던 사람..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군요. 맞아요. 회사에 못 있게 해서 근처 거래처나 여관방에서 일하기도 하고. 후훗.. 벌써 오래전 얘기로군요. (맞아요, 이**에서 사신 적이 있었지요!! )

마태우스 2004-12-1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난주부터 아침에 운동하기로 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출근할 거예요. 전 제 뱃살과 더불어 남은 생을 살기 싫어요!

플라시보 2004-12-1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 하핫. 함께 일하던 분이면 좋겠어요. 님도 그때 여관방에서 일하셨더랬군요. 흠...그분 글써놓은거 보니 장난 아니게 힘들고, 그보다도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 때문에 고생하는게 되게 억울하겠다 싶었는데 겪으신 님은 오죽하겠어요.^^



마태우스님. 어머 아침형 인간. 그 중에서도 운동을 목표로 삼으셨군요.^^ 하긴 사람마다 다 다르죠. 제 친구 중에서도 아무리 늦잠을 자려고 해도 아침 6시면 자동적으로 눈이 딱 떠진다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아침에 학원 다녀서 딴 자격증만 수두룩해요.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삶이 있는 법이죠. 근데 님이 아침일찍 일어나시는건 의외네요. 전 왜그런지 당연하게 님도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신다 생각했거든요. 흐^^

maverick 2004-12-1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잠자는 시간은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전 이해가 안 되더군요 잠자는 시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없이 소중한 시간일텐데요.. 늦잠족 화이팅! (음..저는 잠자는 시간 빈둥대는 시간 둘다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ㅋㅋ)
 
Love Piece... Love Peace...
문흥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문흥미의 만화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별 각색작업 없이도 화면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만화인것 같다.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확실하고 연출력도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그녀의 만화는 쉽다. 만화란 다 쉬운게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내 경우를 볼 때. 난 어찌된 일인지 분량이 많거나 등장인물이 많거나 혹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픈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만화를 읽는것이 어렵다. 그래서 늘 중도에 포기를 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문흥미의 만화는 쉽다. 내가 충분하게 읽어낼 수 있을만한 코드이다.


언젠가 냉장고 광고에서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는 시리즈 광고를 낸 적이 있었다. 워낙에 남자들 위주의 세상에서 살다가 보니 나는 그 광고에서마저 반감을 느꼈었다. 집에서 하기는 부담스러운 퐁뒤 요리를, 어떤 고급 식당 못지 않게 근사하게 차려내면서 남자의 방문을 기다리는 여자가 뭣 때문에 여자라서 행복한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꾸 살아보니까 내가 똑같다고 생각했던 남자와 여자는 참 달랐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 두가지 특성으로 그들을 모두 뭉뚱그려 설명할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질 같은건 있는것 같다. 여자로 길러져서 여자이고 남자로 길러져서 남자인 것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언가도 분명히 있다. 이 만화의 경우 여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지만 남자라면 혹시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는게 왜 이렇게 짜증스러울 만큼 디테일하냐고. 어쩌면 그런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느끼는건 비슷라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아니면 여자라서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남자라서 드러내지 못하는 것. 문흥미는 여자라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을 한껏 드러냈다. 그래서 이분법적 논리를 상당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만화를 여자 만화라고 말해야겠다.


총 4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만화는 모두 여자들이 주인공인.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가는 만화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의 얘기를 들을때. 내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 말이다. 마지막 단편인 그여자 사람잡네를 빼면 모두 사랑에 관한 얘기이다. 첫번째 Love Piece...Love Peace...는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사랑에 대한 한 여자의 경험을 그렸고 두번째 자장...우ㄹ면 은 처음과 점점 달라지는 남자의 사랑을 바라보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세번째 사랑은 있었다는 여고시절에 여자들만 한군데 몰아넣고 있는 현실에서 생길법한 동성애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문흥미는 심각한 결론은 내지 않는다. 처음 시작은 꽤나 심각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대안을 찾아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첫번째 단편같은 경우 여자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남자로 지운다. 오직 육체만 탐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첫번째 남자에대한 상처를 두번째로 만난 남자에게서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두번째 역시 남자가 점점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급기야는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배신을 하는 남자를 역시 다른 남자가 가르쳐주는대로 복수하고 그와 새로운 만남의 시작을 암시하는 듯한 결론을 맺는다. 세번째는 심각한 동성애 코드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분명 여자친구에게 여자 이상의 감정을 느꼈던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이 사랑했던, 절대 여자가 되기 힘들것 같았던 여자는 세월이 흘러 친구로 만난다. 그건 여자로 살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주인공의 친구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문흥미 만화에서 단 하나 불만이 있다면 그건 여자 주인공들이 문제가 닥쳤을때 스스로 찾아낸 해결이 아닌 다른 남자로 인해 저절로 형성되어 버리는 소극적인 대안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세 편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이 좀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좋을텐데 그녀들은 마치 '난 여자니까요' 라는 듯이 모두 남자의 손을 빌린다. 벽에 못질을 하고 무거운걸 드는 일에는 남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 자체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걸 그녀들은 모르는걸까 아니면 알고싶지 않은걸까?


어떤 성을 가지고 태어났건 간에 변함이 없는것은 자기 인생과 그에 따른 모든 문제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끔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하고 남편이 될 남자가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여자들을 보면 나는 동조도 이해도 할 수 없다. 문흥미의 단편에는 저 밑바닥에 그런 생각을 깔고 출발하는 것 같아 재밌게 읽으면서도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런게 여자라서 행복한걸까? 하다가 안되면 남자라는 존재에게 기대고 그들이 어떤 식이건 결말을 맺어주길 기대할 수 있으니까? 어떤게 여자라서 행복한건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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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4-12-05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님의 글을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플라시보 2004-12-0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디 멕베스님. 저도 여동생 덕분에 예전에는 유명한(?) 만화를 꽤나 봤었는데 요즘에는 잘 안보게 됩니다. 그땐 월간지를 많이 봤었는데 문흥미도 그때 알게 된 작가 중 한사람입니다. 제가 워낙 드라마같은 만화를 좋아하니까 님도 감안하시고 보시길^^

2004-12-05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12-0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추천 날려주셔서 감사합니다.^^

kleinsusun 2004-12-0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라서 행복해요' 그 광고의 copy를 보고 저도 반감을 느꼈어요.

동생이 학교 다닐 때 여성학 강의를 들었었는데, 제가 대신 report를 써 준 적이 있었거든요. " 가구는 여자예요" 광고 copy의 문제점에 대해서.... 강사가 잘 썼다고 읽어줬다는데...ㅋㅋ 근데....재미있는 만화 소개 좀 해주세요! 아주 웃기는걸로...

플라시보 2004-12-0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insusun님 뭐 여자라서 행복할수도 있지만 그게 남을 위해 식탁을 차리는게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즐거운 순간이면 더 좋을뻔 했다는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아주 웃기는거요? 글쎄요. 전 '빨강머리 앤' 이랑 '사각 사각' '야 이노마' 같은게 아주 웃기던데. 님의 취향에는 맞을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kleinsusun 2004-12-0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이노마! 주문했어요. 기대 만빵!

요즘 우울해서 굶주린 것 처럼 웃기는 책들이 필요해요.

플라시보 2004-12-0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insusun님. 저는 무척 재밌었는데 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부디 웃기시길 바래요. 흐흐.

픽팍 2004-12-17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요새 문흥미 님 활동을 접으신 것 같아서 많이 아쉽더군요;;;만화계의 엄청난 불황으로 인하여;;;;;;잇힝 저는 문흥미님도 좋아하지만 한혜연님도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만화를 그리시는 분 같더라구요;;ㅋ


플라시보 2004-12-17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한혜연도 무척 좋아하는 만화가입니다. 단편중에 '그집 딸기빙수' 인가 그거 되게 좋아했었어요^^ (근데 문흥미가 활동을 접었나요? 저런...불황이 이래저래 사람 잡네요.)

픽팍 2004-12-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동을 접었다기 보다는 요샌 눈에 띄게 활동을 하시진 않으시는 거 같더라구요;;;

왕년엔 서울만화대상도 수상하시고 왕성히 활동하셨는데;;;;;;

한혜연님은 지금도 도처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ㅋㅋ넘좋아요 그래서 ㅋ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아마 나는 이 책에 아무리 많은 찬사가 쏟아졌어도 결코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식이라는 말을 들어도 수학과는 거리가 몇억광년이나 떨어진 내가 헉겁하기에 충분한데 거기다 그 수식은 일반인도 아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다. 초등학교때 엄마에게 등짝이 시뻘개지도록 맞아가면서 배웠어도 겨우 80점을 받았던,(당시 그 산수 시험은 백점짜리가 수두룩하게 나온, 비교적 쉬운 챕터였다.) 더구나 그게 내 생에 있어 최고의 산수 혹은 수학 성적이었던 나. 산수도 하기 싫은 마당에 중학교 올라가서 배우는 수학은 더더군다나 왜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막말로 천원내고 200원짜리 껌하나 사고 아줌마가 날 바보로 보고 거스름돈 700원을 줄때 '100원 더 주세요' 라고 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고 여동생과 8각짜리 피자 한판을 먹을때 각자 몇 조각을 먹을 수 있는지만 계산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뭣하러 저렇게 어려운걸 배우나 싶었다. 내게 있어 수학은 그렇게 하등 필요도 없는 주제에 어이없이 어렵기만 한 학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이 아무리 재밌다고 소문이 난들 읽고 싶었겠는가. 사실 선물을 받고도 은근히 걱정했었다. 내가 모르는 온갖 수학이 난무해서 결국은 중간에 포기를 하게 되는건 아닐까? 혹은 책의 절반도 이해를 못하면 어쩌지? 하고 말이다. 허나 결론부터 말 하자면 그건 기우였다. 물론 내가 이 책에 있는 수학 공식들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학교 다닐때 수학책을 보는 것 처럼 아무 느낌이 없진 않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풀 수는 없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 혹은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다는 정도였다.



교통사고로 기억이 멈춘 노 수학자. 그는 형수와 함께 살고 있으나 형수는 안채에 그는 안채에서 조금 떨어진 집에서 산다. 형수는 노 수학자를 위해 가정부를 부른다. 이 책은 그집에 10번째로 가게 된 파출부 나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다. 주인공인 나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이전의 기억만 살아있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은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인 노 수학자의 집에 가서 일을 하게 된다. 그녀는 나 만큼이나 수학을 애진작에 팽겨친 타입인데 자기도 모르게 점점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박사가 생각을 하고 세상과 소통을 하는 방식인 수식에 대해 그저 어렵고 딱딱하기만 한 학문이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거기다 주인공의 아들인 루트 (박사가 지어준 별명) 까지 합세해서 이 책은 세 사람의 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무리없이 이끌어내고 있다.



좀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나는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어울리지도 않게 라디오 코너 작가를 하면서 따뜻해서 다 죽어봐라 류의 글을 1년간 정말 죽어라 써댄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월간 좋은생각에 나올듯한 얘기들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인간의 심성이란 비슷비슷한지 읽기 전에는 약간 거부감을 느끼지만 막상 또 읽게 되면 남들과 똑같이 감동을 받고 때로는 질질 짜기까지 한다. 그런 글들을 써대느라 내 머리로는 질렸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도 삭막한 세상을 살다 보니 가슴으로까지 질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가끔 힘들었던 예전 기억들이 떠올라서 싫을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내 기억이 일정 부분은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은 싹 접어 버렸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는것. (요즘 영화에서고 어디에서고 너무 흔하게 써먹어서 좀 진부해진 맛은 있지만) 그건 내가 나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나 일수 있는 것은 어쩌면 육신이 아닌 기억의 힘 때문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80분의 녹화시간을 가지고 있는 테잎처럼 박사의 기억은 늘 80분을 넘지 못한다. 80분 전에 아무리 감동적인 일이 있어도 80분이 지나버리면 박사의 머릿속에는 아예 일어나지 조차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박사는 80분마다 가정부와 루트를 새롭게 사귀고 새롭게 느낀다. 기억의 힘 없이도 그들 사이가 점점 더 돈독해지는 것은 순전히 주인공 가정부와 그의 아들 루트의 결코 오바스럽지 않은 사랑과 보살핌 덕분이다.



끝으로 이 책에 나오는 수식은 내 수준에서는 한없이 어려웠지만 남들은 별 무리가 없었으리라 본다. 나로 말하자면 중1때 수학을 탁 하고 놓아버린 보기 드문 인간이니까 내 수학 실력은 국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내가 읽어도 대충 감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있었고 스토리를 넘기는데 있어 전혀 무리가 없었으니 수학의 '수'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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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ol 2004-12-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올리셨군요.. 읽고 나니 다시 책을 들추고 싶어요..

플라시보 2004-12-0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레님. 이 자리를 빌어 좋은 책 선물해 주신거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정말이지 전 님 아니었으면 이 책 못읽었을껍니다. 수식에 박사라니 하면서 말이죠. 흐흐 고마워요. 꾸벅.^^

마냐 2004-12-0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두 누군가 선물해주실때까지 기둘려야지..ㅋㅋㅋ

플라시보 2004-12-0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 책은 선물하기도 좋고 받기도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