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깊은 집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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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나는 마당깊은 집을 드라마로 먼저 봤다. 당시 고두심씨가 나왔고 아이들이나 이웃들은 누가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무척 재미있게 봤었다. 요즘 날림으로 만드는 시대물하고는 차원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그때 어찌나 재밌게 봤던지 나는 이 책을 MBC에서 소개를 하려고 고두심씨를 불렀을때 부터 마당깊은 집 인줄 알았다.

그리고 원작이 있는줄은 그날 처음 알았다. 당장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일이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몰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마당깊은 집에 등장하는 지명중에 하나여서 그런가 읽으면서 내내 남의 얘기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오는 동네의 대부분이 내가 다녀봤던 곳이고 아는 곳이라서 친숙했다. 물론 그때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없지만 말이다. 언젠가 우리 동네가 예전에는 술집이 즐비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도 술집 골목으로 묘사된걸 보면 그 말이 맞긴 맞나보다.(지금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주택가라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쇼 프로에서 책을 읽으라고 법석을 떠는 것 중에서 아마 내가 그걸 보고 읽게 된 유일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 프로를 늘 경멸했었는데 그래도 원작이 있다는걸 알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드라마로만 기억하는 마당깊은 집을 다시 만나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과 비교를 해 볼 만한 책으로는 <홍어가 있다. 둘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데 홍어는 자신과 어머니 단 두 사람의 단촐한 인간관계에 대한 시선을 전한다면 마당깊은 집은 그 안에 세들어살고 있는 이웃들을 모두 포함해서 포괄적이다. 박경리씨의 소설도 비슷한게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목이었던가?) 사실 이런류의 소설이 아주 귀한 종류는 아니다. 아마 전쟁을 겪은 세대의 작가 중에서는 한번 정도는 그때의 기억을 떠 올리며 글을 썼을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마당깊은 집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여러 등장인물을 악의없이 그려내는 시선에 있다. 어떤것도 미화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시선이야 말로 이런 류의 책들 가운데서도 빛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개인적으로 파고들지도 않고 딱 적당한 정도로만 그 시대를 표현했다는 것도 포함시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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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버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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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쟁이를 꿈꾸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러고 나면 글 쓰기가 절대로 재미가 없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가 인생 모토인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나는 작가도 기자도 다 싫다. 다만 그냥 재미삼아 키득거리기 위해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간혹 글 쓰는것이 목표라고 버젓이 떠드는 이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그 용기가) 약간 한심하다.(그들이 써 놓은 글이)

그러면서도 책을 일다가 보면 간혹 정말 저 재능을 확 훔쳐오고 싶고나 하는 충동에 휩싸일때가 있다. 무라카미가 그랬고 움베르토 에코가 그랬다.(그 외에도 좀 많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작가는 없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번 척 팔라닉이 그렇다.

척 팔라닉의 질식을 나는 먼저 읽었다. 아마도 서바이버가 질식 이 전의 작품인줄로 안다. 같은 작가의 글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조금 웃기긴 하지만 나는 일단 서바이버에 점수를 더 주고싶다. 질식도 꾀 재밌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난 서바이버를 더 단숨에 읽었으니까.

내용은 사이비교에서 자라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어떤 종교이건 광적인 것은 질색인 나에게 역시 종교는 깊이 파고 심각하면 또라이같아 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 척 팔라닉은 종교를 말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종교는 현실의 교육 시스템이다. 주인공이 괴상한 교도에서 자라나서 그저 주입받은 것만 알고 거기까지만 생각을 할 줄 알듯이 현대의 교육 시스템 아래서 나온 아이들도 모두 넣은대로만 입력되어 있는 바보 컴퓨터 같다. 자기들 딴에는 몹시 똑똑하고 잘난 줄 알지만 한번 생각 해 보자.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학교 다닐때 나는 그런 얘들을 젤 싫어했다. 딱 주어진만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만 생각하는 아이들. 딱히 범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부류들이다.

서바이버에 나오는 주인공 역시 똑같다. 일종의 쇠뇌를 당한 주인공은 에이전트를 만나기 전 까지는 늙어 죽을때 까지 다림질, 얼룩지우기나 하면서 살 팔자였다. 그러나 에이전트를 만나 유명해지고도 여전히 그는 꼭두각시 일 뿐이다. 왜냐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삶의 정리마저도 타인이 시키는대로 한다. 처음에는 상상조차 안했지만 자기가 공중 납치범이 되어야 한다는 타인의 얘기를 듣고 그렇게 되기로 한다.

책 표지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블랙박스에 담긴 이 시대가 낳은 가짜 메시아의 처절한 고백'. 참 할 말이 없는 문구다. 제발 책좀 똑바로 읽고(아니 읽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저따위 광고 문구를 쓰라고 정중하게 권유하고 싶다. 아무튼 표지에 씌인 바보같은 문구는 신경쓰지 말고 보길 바란다. 옳은 말은 블랙박스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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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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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소설은 [면세구역]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개인적으로는 면세구역 보다는 태평양 횡단특급에 별 한개 정도 더 주고 싶다.

한때 듀나는 한 사람이다. 혹은 여러사람이 모인 집단이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성별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듀나는 이영수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내기 시작했고 의견은 좁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이영수 조차도 필명 일지...

면세구역을 읽어보면 그다지 여러 사람이 썼다는 생각이 들지않아서 나는 듀나를 한 사람이며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평양 횡단특급을 읽으면서 또 다시 헤깔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듀나라는 이름아래 활동을 하고 그 중에는 여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SF장르라고는 했지만 앞의 3가지 단편들('태평양 횡단특급''히즈 올댓''대리 살인자')는 SF라기 보다는 그냥 재기발랄한 단편 정도이다. 그리고 '첼로'부터 나머지 까지의 단편들은 앞의 소설 [면세구역]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장르와 문체를 택하고 있다.

내가 듀나를 여자일지도 혹은 여러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리살인자'와 '첼로' 때문이다. 두 단편은 다른 듀나의 글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것은 역시 '대리살인자'와 '첼로'인데 대리살인자의 경우 누구나 한번쯤은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으며 잡혀서 죄값을 치뤄야 할 일이 절대로 없다면 누군가를 죽일텐데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더구나 내 손에 피를 바르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죽여주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얼씨구나 하면서 여러사람의 이름을 말 할 것이다. 특히 이 단편에 정이갔던 이유는 주인공들이 선생을 많이 지목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라는 곳을 다닌 사람들은 안다. 선생들 중에서 얼마나 죽이고 싶은 인간들이 많은지를...

다음으로 첼로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것인데, 뭐 그리 로멘틱하지는 않지만 충분하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특히 주인공의 이모가 로봇을 그리워하며 내뱉는 말들은 가히 압권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이 그리운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감이 그리운 것이다. 첼로는 그 부분을 아주 잘 표현 해 낸 수작이다.

자. 나머지 단편들은 거의가 SF이다.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도 있고 괜찮은 작품들도 있다. 반나절 정도면 뒹굴거리며 충분히 읽을 만 하고, 읽고나서 그다지 머리에 콱 와서 박히는것은 없지만 재미는 보장 할 만하다. 적어도 듀나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선뜻 장바구니에 넣을 정도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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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백만장자
토머스 J. 스탠리 & 윌리엄 D. 댄코 지음, 홍정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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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받은 유산도 없고 연 소득이 억대도 아닌 민간인들에게 백만장자는 꿈같은 소리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할때만 해도 '그래 어떤 잘난놈(?) 들이 백만장자이신지 한번 봐 주마'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백만장자는 내가 여태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해 백만 장자는 정주영 딸네미나 대통령 아들네미의 신분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서는 고소득자이거나 부모로 부터 많은 유산을 받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에 종사하며 보통 사람들과 별반 없는 연봉을 받으면서도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백만장자에 관해 오해하는 것은 바로 좋은집과 좋은차 그리고 온갖 비싸고 화려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백만장자들은 그런것을 소유 할 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것들을 하나 둘 소유하다보면 겉으로 해 다니는 것만 백만장자일 뿐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달 벌어서 그달 사는 한달살이 인생이 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만약 직업을 잃었을 경우 지금 수준의 생활을 몇년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백만장자들은 향후20년 이상 아무런 소득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 수준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들의 지금 수준이라는 것이 3년마다 신형차로 바꾸고 요트를 사며 별장을 사고 1년동안 장기 세계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방 식탁에 앉아 대형 할인점 쿠폰을 오려서 장을 보고 시계나 옷, 신발등에 절대로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에게 박힌 백만장자의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할리우드 영화나 기사거리를 만들기를 좋아하는 언론이 심어놓은 가상의 이미지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봤다고? 흠..그렇다면 그는 백만장자가 아니다. 무늬만 백만 장자일 뿐. 그들 역시 백만장자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것 아닐까 하는 환상에서 그러는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월 계획과 연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모든 지출과 수입을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으라고.. 물건을 구입하느라 여기저기 정보를 얻는데는 60시간도 소모하면서 자신의 자산투자나 증식에는 하루 한시간도 할애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부자를 꿈꾸냐고...

백만장자는 억 소리가 나도록 소비를 하고 민간인들이 감히 꿈꾸지 못하는 화려하디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부자 동네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의 이웃에 살고 있을수도 있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과 입는 옷차림으로는 절대로 구분할 수 없다. 실제로 백만장자라고 보이게끔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진짜 백만장자들은 우리가 아는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자. 그럼 정리해 보자. 하물며 백만장자도 아끼고 또 아끼는데 민간인인 우리들은 더 말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백만장자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면 물질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 수 있다. 백만장자의 꿈이 너무 멀고 요원하다면 살면서 재정적으로 안정되게 또 한달 살기위해 또 한달 일하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삶이라도 살지 않게 된다면 그게 어디인가.

실제로 나는 월 계획만 세우다가 이 책을 보고 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저축액을 과거의 15%에서 25% 가량 늘여 수입의 40% 정도를 저축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계획만 제대로 세울 수 있다면 충분한 일이다. 물론 더 잘 세운다면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할 수도 있다.

단 이 책의 단점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와 다른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만 감안한다면 현재 돈에관해 별 관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일을 때려치우고도 지금처럼 멀쩡하게 살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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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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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가정인지 가사인지 아무튼 그 과목을 지지리도 못했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 평균을 깎아먹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서평을 쓰면서 나는 간혹 그 일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 유달리 많은 별점을 달고 있고 내 서평에 별점 2개 이하를 달 예정일때. 나는 알라딘에서의 평균 별점을 깎아먹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내 나름의 기준으로 별점을 주는 이유는. 남들이 재밌다고 하니까 나도 재밌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다들 책을 읽으라고 말 한다. 지하철을 타도 책을 읽으라는 광고가 나오고 텔레비전에서는 코메디 프로에서 조차 책을 선정해주고 (책들은 코믹하지 않다. 실망스럽게도...) 읽으라고 강요를 한다. 이런 세상에 살다보면 어떤 책이던 간에 책이라고 생겨먹은 것들은 모두 재밌으며 맘의 양식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내가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이후부터 약 20년간 책을 읽어온 결과 세상에는 별로 재밌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남들이 아니라 내 자신이다.

물론 책을 고르는 기준에 있어서 남들의 평가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산 책 '소설가의 각오'는 남들의 빛나는 별점을 보고 샀다가 결과적으로는 실패를 본 책이다.

내 딴에는 엄청난것을 기대했다. 소설가들은 언제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사기꾼들이므로 소설가의 각오는 무언가 대단한 것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결과 나는 아무것도 더 알아내지 못했다.

지은이는 끊임없이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나 해야할 일이 힘겹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우연한 계기에 소설가가 되었다는 말도 한참을 한다.

그러니까 소설가는 처음에는 어찌어찌 하다가 보니 되었는데 나중에 되고 나니 소설을 쓰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규칙적인 삶을 살아야겠더라 정도이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맥주를 팔고 남는 시간에 글을 써서 소설가가되는 할랑한(그러나 몹시 좋아하는)부류는 아닌줄 알았다. 근데 이 사람도 처음의 과정은 별반 다를것이 없다.

물론 이 사람이 지은 소설이라고는 '물의 가족'만 읽어봤다. 역시 그 책은 나에게 좀 재미없는 소설로 찍혀서 심지어 서평조차 쓰질 않았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 해야 하는것 아닐까 싶다. 근데 이 책에서 딱 하나 맘에드는 것은 들어가기전에 소설을 쓰고픈 사람들에게(정확하게는 한국의 소설 지망생들에게) 희망 비슷한 뭐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해 둔 것이다. 아쉽게도 내 손에서 너무 빨리 떠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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