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마 - 냄새의 문화사
콘스탄스 클라센 외 지음, 김진옥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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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향수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향수 광고들은 100% 이미지 광고라는 것이다. 광고 어디에도 자신들이 팔고자 하는 향에 대해 말해주는 대목은 없다. 다만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혹은 말초적이며 자극적인 이미지만 등장 할 뿐이다. 어떤 광고이던간에 제품의 설명없이 전체가 다 이미지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동영상 광고에서 표현하지 못하면 하다못해 지면광고라도 이용해서 제품을 설명하려 드는 다른 제품들과는 달리 왜 향수는 그냥 이미지만 보여주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 그에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오감중에서 가장 등한시되어온 것은 바로 후각이며 덩달아서 향, 혹은 냄새도 언어적 표현력을 가지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그에비해 시각의 경우는 상당히 발달하여 세상의 어떤 색이던 간에 문자로 설명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향은 이와 반대이다. 어떤 냄새를 설명하려고 할 경우 시각적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애를 먹게 된다.이것은 바로 냄새가 등외시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를 끌고와서 설명을 한다. 아기냄새라고 했을때 분유냄새 혹은 우유냄새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설명해 내지는 못한다. 색의 경우는 누구나 설명할 수 있는것과 달리 향 혹은 냄새는 적절한 표현법을 찾기가 몹시 힘들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식으로 향을 즐기고 냄새를 표현했는지를 말해준다. 자주 씻지 않았기 때문에 향수가 발달했다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속에 오해받고 있었던 고대 향수문화부터 시작해서 냄새는 문화와 예술은 물론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었다.

그렇다면 냄새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왜 극도로 퇴화되었을까? 이는 다윈의 진화설 때문이라고 책은 말한다. 다윈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후각적 기능을 거의 상실했으며 이는 인간에게 크게 쓸모가 없는 기능이었으므로 퇴화되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향이나 냄새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후각은 인간에게있어 그다지 쓸모가 없는 기능이며 이를 연구하는 것은 과거로의 퇴행이자 원시적이라는 호해를 받게 된 것이다.

예전에 향수라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이 빅히트를 치면서 갑자기 국내에 냄새와 향에 관한 붐이 인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향을 이용했던 주인공은 결국 그 재주를 나쁜곳에 썼으며 정상인보다 상당히 사악한 인간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결국은 냄새에 관한 또 하나의 나쁜 선입견을 만들었다. 책이 워낙 흥미로웠고 또 무관심했던 냄새에 관해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높이 살 만하지만 정작 향이나 냄새에 관한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결코 냄새를 미화시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등한시 했던 부분에 대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냄새의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해놓았다. 냄새는 소설책에서 처럼 누군가를 죽이거나 혹은 유혹하는 곳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수많은 냄새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맡지 못하던 악취나 갑자기 나타난 향기만 잠시동안 느낄 뿐이다. 만약 후각이 지금의 인간에게 있어서 그리 약한 기관이 아니었더라면(후각은 쉽게 마취가 된다. 같은 냄새를 장시간 맡으면 우리의 코는 그 냄새를 더이상 지각하지 못한다.) 냄새는 지금보다 좀 더 발전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을 것이다.

책이 다소 두텁고 내용도 빠르게 전개되지는 않지만 그간 향을 흥미위주로 다룬 책들과는 달리 상당히 진중하다. 향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같은 트랜디함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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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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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냉정과 열정사이를 쓴 에쿠니 가오리는 꽤 유명한 일본작가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비롯한 일본 여류작가들에게 완전히 질려버린터여서 그녀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라는 예쁜 제목의 책을 사서 보았다.

이미 제목에서 이 책에관한 나의 다소 부정적인 시선을 읽었으리라 본다. 저 제목은 어디선가 봤는데 그게 어디에서였는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늘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소중한것은 반짝이지 않는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우린 요즘 온통 반짝이는 것들에 현혹되어 살아가고 있으며 혹자는 그 반짝이는 것들마저 다 가지지 못하고 죽는 세상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 책을 에쿠니 가오리 스스로는 심플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 하고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정말로 이 책이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는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평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사랑보다는 의지하려는 맘이 더 앞서는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어쩌면 워낙 울고 짜는 우리나라의 신파스런 사랑얘기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건너온 쿨한 사랑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책은 세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쓰여있다. 우선 부부사이인 쇼코와 무츠키. 그리고 동성애자인 무츠키의 애인 곤. 책은 쇼코가 1인칭이 되어 한편을 끝내면 뒤이어 무츠키 역시 1인칭이 되어서 한편을 쓴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책을 한권으로 합본해놓은듯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서로의 시점에서 얘기하는 한가지 사건은 늘 흥미롭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지나치게 닮아있다. 삶에 대해 권태롭고 나른하며 뭣에든 애를 쓰거나 노력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쇼코는 남편인 무츠키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의지에 가깝다. 언뜻 남편의 애인 곤씨를 따스하게 맞이하는 것으로 보아 희생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쇼코에게는 모든것이 다 자신과 상관없이 빙빙 돌아가는 세상속에서 내가 어쩔 도리는 없다는 듯한 삶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무츠키 역시 쇼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알콜중독 아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라고 말한다. 어떤 음료든 술을 넣어 마시는 아내에게 말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다른 모든 화낼만한 일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고 천사역활만 한다. 다만 문제가 터졌을때 아무것도 해결을 못해주는 천사일 뿐이다. 이 두사람이 엮어가는 결혼생활은 참으로 위태로우면서도 정작 두 사람은 평온하다. 눈과 귀를 닫고 아무려면 어떠냔식으로 있으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평정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 어떤부분이 반짝인다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무신경과 무관심 혹은 남들과 다른 특성들이 반짝이는 것인지... 책의 어디에서도 나는 그들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의사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으므로 정신병에 알콜중독 아내쯤 그냥 가여워하며 함께 살아주는 무츠키나 남편의 애인마저 챙기면서 남편으로부터 결코 버림받고 싶어하지 않는(그녀는 버림이라는 말 대신 이대로를 외친다. 영원히 지금처럼 변하지 않는것은 버림받지 않는것과 동일하게 들린다.) 쇼코는 반짝이기에는 너무나 유약한 인간 군상이다. 쇼코와 곤. 무츠키가 마지막으로 벌이는 파티는 더욱 더 작위적이다. 쇼코는 곤을 무츠키에게 선물로 준다. 이미 쇼코가 주기 전 부터 곤은 무츠키의 것이었고 무츠키역시 곤의 것이었다는 것을 억지로 부정하고 싶은 모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내가 늘 한심하다고 불평하는 우리나라 여류작가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 밖에는 없다. 그녀들은 비록 일기장일 망정 와닿는 글을 쓰기나 하지. 일본의 그녀들은 도대체 쿨한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없다는 류의 글만 써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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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6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6-2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trosa80님 괜찮습니다. 출처만 밝히셨으면 상관 없습니다.

metabi 2004-06-2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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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배수아의 소설은 붉은 손 클럽이었다. 나는 그 소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터라서 별로 좋지않은 리뷰를 섰었고 단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배수아의 책을 두권이나 주문한 내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책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바로 붉은 손 클럽과 함께 주문했던 배수아의 책이다. 좀 어렵고 골치아픈 책을 읽을때면 언제나 나는 소설책을 병행해서 함께 읽곤 하는데 이 책도 바로 그런식으로 머리나 식히려고 읽었다가 이틀만에 읽어치웠다. 아무래도 내가 배수아를 너무 과소평가 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아주 독특한 소설이며 충분히 매력적이다. 가난에 대해 예기하면서 배수아는 문어발식으로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보통 주인공이 있고 주인공 주변의 서넛에서 끝나는 소설들과 달리 이 책에는 별다른 주인공이 없다. 처음의 시발점에 선 사람이 있을 뿐이며 곧 그와는 무관해 보이던 인간들이(그러나 중간쯤 가다보면 그들이 서로 과거에 동창이었거나 이웃이거나 아니면 그들대가 아니더라도 자식대에라도 연관이 생긴다.)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이라는 그리고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라는 큰 제목하에 다시 묶이게 된다. (스키야키를 파는 식당은 여기서 큰 역활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인공들이 스키야키를 좋아할 뿐이다.)

이런 모자이크 같은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것 같다. 늘이고 늘이면 세상 모든 인간군상이 다 들어갈 정도로 광범위하다. 어느 한 사람 주인공도 없고 주변인도 없다. 그들은 모두가 주인공인 동시에 모두가 주변인이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는 가난이 꼭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이 이유는 아니다. 누군가가 더 가지려면 상대적으로 누군가는 덜 가져야하는 현재의 자본 시스템이 문제이다. 일요일 스키야키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천성이 게으르거나 가난에 대해 초연한 사람도 있지만 열심히 죽도록 일해서 가난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그중 결혼을 앞둔 진주와 그녀의 남자친구 얘기는 많은걸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가정을 만들면 결국은 또 하나의 가난을 낳게 되는 형국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으례 아이를 가진다. 그러나 과연 그 모든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해 낼수 있느냐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답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격문제도 있겠고 여러가지 요인들이 많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난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가난에 있어서 만큼은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가 예외가 된다. 집단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집단으로 불행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난은 물론 서로의 가난도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디테일하게 지켜보고 때로는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요즘들어 나와 내 친구들은 작정이라도 한듯 결혼을 기피하고 있다. 또 결혼은 어찌해서 하더라도 아이만은 낳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이왕 아주 부자가 아닌 바에야, 배수아의 말대로 한번의 잘못된 사업실패. 한번의 질병이 은행잔고의 바닥마저 긁어가 버릴 수 있는 위험에 처해있는 일반인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일생일대의 도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은 결코 암담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안겨주지도 않는다. 소설이지만 가장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라면 별점을 좀 후하게 줘도 상관없을듯 싶다.

아직 배수아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붉은 손 클럽보다는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권하고 싶다. 너무나 부자라서 가난같은건 구질하니 생각도 하기 싫은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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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 클럽
배수아 지음 / 해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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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글은 아마 단편에서 읽었던것 같다.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걸 보면 으례 단편들이 그렇듯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음이다.

붉은 손 클럽은 제목과는 달리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과 아방가르드 요리 잡지 편집장. 주인공의 남자인 무열과 붉은 손 클럽을 만든 이반이 전부이다. 클럽이라고는 하지만 가입되어 있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과 이반만이 붉은 손 클럽의 회원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주인공의 옆을 배회하는 사람일 뿐이다.
배수아에게 기대를 했던것은 속물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그녀의 학벌때문이다. 이제는 한물 간 대학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이화여대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다. 그녀들이 졸업식때마다 미스코리아 머리를 하고 예사롭지 않은 사진을 찍는것 처럼, 그리고 그 졸업사진은 곧 신부감을 물색하는 뚜쟁이들의 손에 의해 참한 신붓감 명부 쯤으로 탈바꿈하는 것 처럼 말이다.

기자로 있는 친구 하나가 이화여대를 다녔다. 그녀에게 배수아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배수아? 우리학교에서는 문법파괴의 일인자라고 불러' 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일지도 모르겠다며 읽어보길 권했다. 결과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해서는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문법이나 정공보다는 느낌에 집착하는 혹은 남다른 튐에 사환을 거는 사람처럼 보였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수아의 책을 권할리가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건 간에 이번에는 틀렸다. 나는 책 만큼은 더구나 소설만큼은 아주 충실한 정공법을 따른것들이 좋다. 재미있는 얘기가 문법적 오류를 범하지 않고 전개되어주기를 바라는것. 그러나 배수아는 아니었다.

소설에 문법적 오류를 따진다는 것은 바보스런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우스운것 마저 무시를 한다면 더더욱 웃겨질수 있음을 배수아를 통해 배운다. 그녀의 소설은 단지 이상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것 같다. 뒤에 황경신(페이퍼 편집장)이 인터뷰를 해 놓은것을 보면 황경신또한 그녀가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것 같다. 그녀의 인터뷰를 계속해서 읽고 그녀가 낸 인터뷰책까지 본 나로서는 교묘하게 감춰놓았지만 배수아에 대한 그녀의 반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찌되어 배수아의 책 뒤에 배수아를 설명해줄수 있는 사족쯤으로 달려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배수아가 자신을 독특한 시선으로 봐준것이 몹시 기뻐 실었을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붉은 손 클럽의 부실함이 약간은 용서가 된다. 아하 이렇게 깊은뜻이 같은게 아니라 배수아에 대한 이해다. 그녀는 붉은 손 클럽의 주인공과 많이 닮아있다.

흔히들 여류작가는 자기 얘기를 써 놓고도 주인공과 자신은 엄연히 다른 인물이라고 극구 주장하는 반면 아직 짠밥이 얼마되지 않은 배수아는 순진하게도 자신과 주인공이 닮았다고 시인한다. 밥에다 요구르트를 비벼먹는 것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다. 배수아는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겠지만 샴쌍둥이처럼 닮은 삶 정도는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배수아의 소설속에는 마음을 쓸 만한 그 어떤 얘기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틋할것도 없고(그렇다고 해서 삼류 소설의 애틋함을 얘기한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 중요한것도 없으며 모든게 그냥 이렇게 되었으니 어쩌겠어라는 식이다.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데 될대로 되란식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있겠는가? 배수아의 소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한다. 그리고 한 수 가르침을 포기한 대신 무기력만 한아름 안겨주고 있다.
책에는 노석미의 그림 정도는 봐 줄만 했다. 그리고 붉은손 클럽 그림을 함께 넣은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이 소설에 대해 기대를 하게 만든것은 괴씸하지만 말이다. 어쩔 수 있겠는가 부실한 글을 조금이라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악처럼 멋진 비주얼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걸 알고 있는게 죄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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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 쾌락주의자 전여옥의 일본 즐기기
전여옥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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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코끼리표(조지루쉬라는 상표가 있지만 대게는 그 로고인 코끼리표로 통했었다.) 밥통과 보온 도시락통이 주부들에게 꼭 가지고 싶은 가전중 하나로 꼽힐때가 있었었다. 누군가가 일본을 간다고 하면 부탁을 하거나 밥통만 전문적으로 사다 나르는 보따리 장수가 있을 정도였으니 코끼리표 밥통이 하나 있으면 그 집은 적어도 밥걱정은 안하는 집이었었다.

우리집에도 밥통과 보온 도시락이 있었는데 밥통보다 반찬통이 더 큰것을 보고 우리 어머니는 선진국에선 역시 밥보다는 반찬을 더 많이 먹는 법이라며 자랑스러워 하셨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니 워크맨을 사가지고 오셔서는 외출할때는 물론이거니와 집에서도 오디오 대신 소니 워크맨을 듣곤 하셨었다. 나에게 있어 일본은 코끼리표 밥통과 소니 워크맨의 나라였으며 유치원생에게도 타이즈 하나 신기고 반바지를 입혀 외출시킨다는 일본 어머니들의 교육법에 크게 감동받은 우리 엄마 덕분에 한동안은 추위에 덜덜 떨며 학교를 다녀야만 했었다. 그들의 식민통치와 그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접한것은 이미 소니 워크맨이 아버지에게서 내 손으로 넘어온 이후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반미 감정을 가지고 지난 역사속의 일본은 물론 현재의 일본도 용서하지 못하는 부류. 또 하나는 일본의 전자제품에 이어 문화상품마저도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하여 광적으로 일본에 대해 신봉하는 부류.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내기 전에는 후자의 부류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근검절약하는 일본. 우리와 조건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큰 나라 미국에다 빌딩을 여러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 많은 나라.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30년이나 앞서 있는 나라. 만약 중국이 그러했다면 우리는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일수도 있었을 테지만 일본이기에 우리는 밉기도 밉고 부럽기도 부러운 이중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는 시원하고 통쾌했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속에 한 여자가 나서서 일본에 살아보니 일본에서는 (미래가)없더라 라고 외친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지침이라도 내린듯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고 일본보다는 우리의 미래가 밝음에 안도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책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는 굳이 표현하자면 김빠진 맥주같은 책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즐길것은 음식 뿐이라고 작정이라도 한듯. 일본 음식의 특징부터 파는장소 가격까지 상세하게 안내했다. 차라리 일본 음식 100배 즐기기 같은 제목을 달고 나왔더라면 훨씬 솔직해 보였을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일본의 절이랄지 백화점기행도 있고 일본은 없다 이후 정말로 없어져버린 (우리가 일본인의 특징으로 알았던) 가업잇기나 근면 성실에 대해 잠깐씩 언급을 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금전적 여유도 있는(그녀가 먹은 음식은 대게 아무리 싸다고 해도 우리나라 회사원들이 먹는 5천원짜리 정식은 없다.) 전여옥 개인의 일본 식도락 여행기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당연하게 여행기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며, 이 책이 그녀의 베스트셀러인 일본은 없다같은 접근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는 일본에 대해 조금은 편해져버렸다는 그녀에게 결국 일본은 맛있는 음식을 파는 거대한 식당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어디에 뭐가 맛있으며 어떤 음식을 먹고 다녔는지를 읽기위해 책값을 지불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제목에서 처럼 다소 사색적인 일본 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권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은 10년째 경기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다. 그걸 안됐다며 혀를 찰 것 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처럼 여봐란듯 고소해할 필요는 없다. 어떤 나라이건 불황이 닥치면 평범한 중산층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그걸 기뻐하는 것은 놀부심보인듯 하다. 비교적 여유로운 그녀가 일본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비싼돈들여 즐기는 것을 대리만족할 정도로 일본에 한이 맺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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