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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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때는 나름대로 젊잖게 늙은 노인이 언제나 자신의 깔끔한 방에서 조용하게 연애소설을 탐미하는 소설이려니 하고 상상했었다. 아니면 아주 성질이 괴팍한 노인이 실은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멜랑꼴리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더라 하는 내용이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건 상상밖이다. 밀림과 정글속의 노인이라니... 연애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마존에서 연애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으며 사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연애소설은 상징적이다. 또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 부분은 그것이 제목인 것에 비해서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인의 생활과 노인이 처한 현실이 더 리얼하고도 길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문명속에 살고 있던 노인은 결혼을 하고 밀림 속에서 땅을 개간할 모양으로 이주를 한다. 그러나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야만의 세계에서 그는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아내가 죽고 난 이후부터 그는 점점 더 원주민에게 동화되어 그들이면서도 그들이 아닌 자 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그가 연애소설을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에게 맞는 여러가지 책을 찾아보다가 결국 아릿하게 마음 저리는 연애소설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노인의 모양새나 노인이 사는 환경 어디에도 연애소설적인 요소는 없다. 그렇지만 노인은 연애소설을 열심히 읽는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큰 시련을 만나 방황하지만 결국은 사랑으로 그 모든걸 극복한다는 류의 연애소설을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주를 이루고 있는 내용은 노인이 살고 있는 마을에 닥친 살쾡이의 공격이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없는 인간들이 살쾡이의 새끼를 죽이자 살쾡이가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이 읽혔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문명세계에서는 똑똑하고 잘났지만 자연의 질서에 대해서는 무지한 인간이 그 질서를 흐트리고, 문명세계에서는 비록 야만인으로 보이지만 자연의 질서나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에는 통달한 인간이 그 잘못을 고쳐나가는(끊임없이 앞의 인간이 얼마나 바보인가를 설명해 가면서) 류의 이야기. 이런 얘기들은 실제로 밀림이라고는 가볼일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솔깃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왜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정도의 책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문명세계 인간들이 역겹게 그려지는 만큼 책 속의 야만인들은 신과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연인이자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산지식으로 가득한 지혜로운 자로 그려지는 것은 흔한 얘기이다. 나는 별로 모험을 꿈꾸지도 않고 그런 것에 통달한 인간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차라리 그냥 제목처럼 연애소설에 한껏 취해서 사는 노인의 이야기였더라면 더 좋았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정글에서 거친 삶을 살아가지만 그 마음속에는 로멘티즘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 남아서 할리퀸류의 연애소설에 사죽을 못쓰는 늙은 타잔 얘기는 글쎄다. 별로 와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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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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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모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단막극 형태로 해 주데 거기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아마도 강남길씨 였었는데 억세게 운 나쁜 사나이의 하루를 그린 내용이었다.

김영하의 소설책은 나는 나를 파괴 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 다음 이 책이 세 번째이다. 나는 나를...은 그저 그랬었단 기억이 있었고 검은꽃은 좋긴 했지만 뒷심이 좀 딸리는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아니 뒷심이 딸린다기보다는 꼭 종영을 앞둔 인기드라마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이 벌여놓은 스토리 수습이 되질 않아서 어떻게든 끝을 내야겠다고 작심한듯이 보였었다.

이 책은 단편집인데 총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편별로 나누어서 감상기를 적어보겠다.

1. 사진관 살인 사건 : 한 사진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죽은 남자의 아내와 그의 정부를 의심했던 수사관은 끝에가서 사진관 남자가 외도를 하는 다방레지의 기둥서방이 홧김에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척 짧지만 나는 이 안에 남녀관계에 관한 모든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관집 여자와 사진을 맡기다가 관계를 가지게 되는 한 남자. 그들은 여자의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의 불륜으로 인해 의심을 받게 될까봐 걱정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밝혀지면 불리해질까봐 어느정도 자신들의 사이를 털어놓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않는다. 특히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비겁해 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아홉개의 단편중에 가장 재밌었다.

2. 흡혈귀 : 이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고 그 글을 읽은 한 여자가 편지를 보내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일부러 경계를 모호하게 한 것이었는데 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넌픽션이라고 믿고싶은 소설이다.

4. 바람이 분다 : 불법 복제 디스크를 파는 남자가 어느날 여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사무실이 집이고 집이 사무실인 그곳에서 충분히 예견된것 처럼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여자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결혼을 한 것인지 다른 남자가 있는것인지 조차 이 여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면 주인공은 이미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3.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억세게 운나쁜 남자의 하루이다.

5. 피뢰침 :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자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5. 비상구 : 아무 생각없는 스물한살짜리 남자의 한심한 인생얘기다. 별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도 이것 비슷한 단편이(단 주인공이 여자다) 있는데 두 가지가 꼭 셋트같다.

7.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 당신의 나무(9) : 이 두가지를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서로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다 남자주인공이 여행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는 좀 정적인 소설이다.

8. 고압선 :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여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다 마침내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다.

끝으로 김영하의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사랑얘기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몇몇개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사랑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김영하가 그리는 사랑은 절대 아름답지 않고 가끔은 추하기까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때 진짜 사랑도 그런것 같다. 사실 영화에서 보는 그런 아름답고 이쁜 사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말로 가장 치사하고 추잡스럽지 않나 싶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속에서 사랑이라는 환상이 사라지고 대신 현실이 징그럽게 앉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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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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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세상에는 좋은 냄새도 많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내가 그 많은 냄새중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냄새이다. 인공적인 냄새로 감추지 않은 사람의 살 냄새는 사실 그리 유쾌한게 아니다. 가끔은 인공적인 향으로 감추었음에도 체취가 너무 강해 엘리베이이터 안 정도는 쉽게 자신의 악취로 채우는 인간을 나는 진심으로 혐오한다. 그래서인지 냄새에 관한 책이면 뭐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엠므씨의 마지막 향수도 당연하게 냄새에 관한 책이였기 때문에 끌렸다.

책의 주인공 엠므씨는 나이가 지긋하다. 그러나 언제나 단정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고 정신도 맑다. 전직 스파이였던 만큼 머리도 그리 나쁘지 않고 말이다. 그는 자신의 완벽성의 끝을 언제나 머스크향(사향노루향.사향노루가 발정기가 되면 배꼽 근처에서 이 향을 낸다고 한다.)으로 마감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머스크 향수 제조회사가 다른 제품을 내어놓는다. 몇십년동안 써 왔던 그 머스크 향수가 아닌, 패키지가 바뀌고 진짜 사향노루 대신 인공물질로 향수를 만든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차이를 거의 구분하지 못하지만 수십년동안 써 왔던 엠므씨는 단박에 알아차린다.(여기에는 그녀의 정부 이브도 한몫한다. 여자들은 대게 자기 남자의 냄새에 민감해서 종종 외도의 흔적을 찾아내기도 하니까) 엠므씨는 최선을 다해 전에 자기가 늘 바르던 향수를 찾기위해 갖은 고생을 하지만 찾아낸 향수는 자기가 남은 생동안 쓰기에는 너무나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이다. 그래서 완벽한 엠므씨는 향수가 떨어지는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로 한다. 자기가 구한 머스크향 만큼만 사는것. 그것이 엠므씨가 선택한 마지막이다.

세상에는 엠므씨의 이런 집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냄새란 무척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것도 만져지는 것도 아니지만 정신과 크게 연결된 것이다. 언젠가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사귀던 남자와 헤어진후 병원에 가서 후각을 없애달라고 한다. 전에 사귀던 남자와 같은 향수나 로션을 쓰는 사람이 자길 스쳐지나가면 죽고싶을만큼 우울해 진다고. 다른 모든 흔적은 다 지울수 있지만 그 냄새만큼은 지울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깊이 공감했다. 나역시 사람을 기억할때 거의 냄새로 기억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그 어떤 더러운 동물 못지않게 냄새가 심각하게 날 것이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최소한 샴푸 비누정도는 향이 첨가된 제품을 쓰기 때문에 그나마 어느 정도는 가려지는 것이고 의복에도 섬유유연제를 부어서 세탁하고 화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리기 때문에 그 냄새는 거의 가려진다.

엠므씨가 집착해 마지 않는 머스크향은 나 역시 몹시 좋아하는 향이라서(머스크향은 대게 남자 향수 원료로 쓰이는데 그건 여자들이 가장 호감을 가지는 냄새라서 그렇다고 한다.)몇년째 머스크향의 바디클렌저와 비누를 쓰고 있다. 그리고 여름에는 사향 파우더를 몸에 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향수를 애용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다른 모든것에는 아낀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몸에서 좋은 냄새게 나게하는 일에만큼은 인색하지 않다. 그 예로 엠므씨의 마지막 향수라는 책을 읽자마자 그 책 표지와 같은 색인(겉에는 노란색이지만 벗기면 빨간색이다.)빨간색 캘빈 클라인 이터니티 로즈 블러쉬를 샀다. 한정생산이라 그 값이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도 말이다.

냄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혹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 향수보다는 좀 극적재미가 덜하다. 향기도 없는 어린 그루누이가 커서 살인자가 되는것 보다 이미 늙어있는 엠므씨가 향수때문에 죽는 얘기는 사실 게임 자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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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클라인 - 브랜드 디자인 광고의 유혹
리사 마시 지음, 박미영 옮김 / 루비박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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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클라인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때 비싼 청바지들의 상표를 보이는 것이 한참 유행이었을때도 캘빈 클라인은 단연 선두주자였으며 힙합으로 입느라 속옷의 라벨을 보여주는 것이 유행했을때도 캘빈 클라인의 언더웨어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캘빈 클라인하면 우선 심플함과 간결함이 떠 오른다. 요즘에 와서는 많이 컬러플해진 느낌이지만 주로 검은색과 회색, 흰색과 초컬릿 브라운을 많이 쓰는 캘빈의 옷은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이다. 캘빈을 입는 사람들은 명품의 고급스러움과 동시에 화려하게 드러나길 꺼리는 사람들에게 호감도 1위의 브랜드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책의 제목에 브랜드 디자인 광고의 유혹이라는 문구처럼 캘빈 클라인의 브랜드가치와 디자인 그리고 광고에 대해 말해주기를 바랬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위에 나열한건 그냥 광고문구에 지나지 않았었다.

원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광고문구에 한마디로 깜빡 속은것이다. 책은 밋밋한 캘빈 클라인의 변천사 나열에 지나지 않았으며 캘빈 클라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시선이 너무나 여러가지이다. 마치 글을 쓰기 위해 마음에 들지도 않으며 알고싶지도 않은 인물에 대해 억지로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는 있지만 간혹 그에대한 적대감을 숨길수 없다는 듯이 느껴졌다.

코트부터 시작해서 청바지와 향수 언더웨어에 이르기까지 캘빈 클라인의 성공기가 담겨져 있지만 극적인 재미는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지도 않다. 캘빈 클라인이라는 인물과 캘빈 클라인이라는 브랜드중 어느 하나에 촛점을 맞췄어야겠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은 마지막장 까지 선택을 하지 못한채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가 아니기는 하지만 이 책에 캘빈 클라인 그 자신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었더라면 적어도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쓴 책 정도는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이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취재에 의해서만 쓰여진 글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 식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캘빈 클라인이라는 브랜드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이 책 어디에서도 그런 매력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대중적 재미나 흥미 혹은 전문가적 입장에서의 분석도 존재하지 않으며 마치 숙제처럼 그냥 써야하니까 쓴 책 정도로만 보여진다. 차라리 캘빈 클라인 제품 사진이나 광고사진이라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면 보는 재미라도 줄 수 있었겠지만 이 책은 그정도의 재미마저도 귀찮은지 추구하지 않은 안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읽은 브랜드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무성의하고도 재미없는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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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서영 옮김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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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지 않는 나 이지만 어찌된 심산인지 여행기 만큼은 곧잘 보는 편이다. 재밌었던 여행기도 있었고 이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고 또 얼마나 짜증이 났었는지를 말하는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여행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방구석에서 뒹굴뒹굴 거리면서도 세계 각국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알게 해 준것에 있어서 만큼은 모두 고마운 여행기였다.

이번에 내가 선택한 여행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이다.어째서 제목을 우천염천이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하늘은 우천 아니면 염천이므로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신간이 나올때마다 꼬박 꼬박 사보는 작가이다. 크게 우와 할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은 영 별로인걸 하는 기분도 들게하지 않으므로 나에게 있어서는 비교적 안전한 배팅인셈이다. 하루키의 여행기는 먼 북소리와 위스키성지 여행에 이어 세번째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스키에 관심이 없으므로 먼 북소리가 더 재미있었다. -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도 역시 그리스 얘기가 적혀 있었던듯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성지순례가 아닌 관광지로서의 그리스(그러나 하루키는 관광은 하지 않고 거기서 글을 쓴것으로 기억된다.)이다.-

이 책의 여행지는 그리스와 터키 두 곳이며 읽다가 보면 정말 여행일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감상이 적고 약간은 건조하다. 사진기자와 함께 갔지만 이 책에는 여행기에 있어서는 필수요소인 사진은 단 한장도 없다. 그런데 읽다가 보면 사진같은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 글의 최대 매력은 바로 읽는 사람도 하루키처럼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이 되도록 해 버리는 것이다. 다른 여행기에 사진이 단 한장도 들어가지 않았다면 다소 흥분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하루키니깐 하면서 넘어갈 수 있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이 책은 결코 흥미진진한 여행기가 아니다. 어떤 목적에서 여행을 했는지 모르겠지만(아마 일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소설 쓰기는 아닌것 같다.) 그리스에서는 온통 사원을 돌아다닌 이야기 뿐이고 터키에서는 도로를 달리거나 군인들을 본 예기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남들이 정말 열심히 무언가를 얻겠다는 각오로 쓴 여행기도 재밌지만 이책도 나름의 매력은 있다. 터키 여행기에는 중간중간 88 서울올림픽 얘기가 나오는데 이 책이 쓰여진때가 88년도인지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내 이게 언제 씌여진 책인지 몰랐을 것이며 얼마전에 나온 책이므로 2002년이나 2003년도에 씌여졌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만에 하나 그리스를 가더라도 휴양지만 갈 것이며 터키같은곳은 별로 갈 일이 없는 나에게 그리스의 수도원과 터키를 알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책에서 무라카미는 여행기를 쓰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고생을 좀 했다. 그렇지만 이걸 읽는 나는, 내내 쇼파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때로는 귤도 까먹고 피자도 시켜먹으며 아주 즐겁게 읽었다. 아주 재밌고 흥미로운 모험으로 가득차서는 읽고나면 나도 한번 가봐야지 하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는 여행기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쿨한 무라카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이 상당히 재미있게 봤는데 남들이 다 인정할만한 보편적인 재미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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