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의 아내
아니타 슈레브 지음, 최필원 옮김 / 대현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번역하신 최필원님이 내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분과의 인연은 알라딘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분이 번역하신 척 팔라닉의 소설에 대해 내가 서평을 쓴 것을 보고 이메일을 주신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갈등을 했다. 그분은 번역본이 나올때 마다 잊지 않고 내게 책을 보내 주시는 고마운 분이시기에 이 책에 대해 내가 과연 순수한 독자의 입장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작품이 아주 좋은 경우에는 나도 망설임 없이 좋은 서평을 쓰지만 솔직하게 말 하자면 이 작품의 경우는 읽기는 읽었으나 굳이 다른 사람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예 리뷰 자체를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나는 알라딘에서 다른 님들이 쓰신 리뷰를 통해 책 읽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싶기 때문에 솔직하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사설이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얘기를 해야겠다. 이 책의 내용은 한 여자가 남편을 사고로 잃은 후 숨겨져 있던 남편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그녀에게는 사춘기인 딸이 있으며 남편은 항공사의 비행기 조종사이다.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자기 남편이 몰던 비행기가 추락을 하고 졸지에 그녀는 미망인이 된다. 추락원인이 석연치 않은지라 그녀는 언론이나 단체로 부터 시달림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과의 함께 하던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남편은 영국에서 또 다른 아내를 두고 두 아이까지 둔 것이었으며 자살이다 사고다 말이 많았던 비행기 추락은 남편이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이 남편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을 누구보다 믿었던 그녀는 큰 충격을 받지만 사랑하는 딸과 함께 일상을 찾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 내용만 나열해 놓고 보면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을 수 있었다. 일단 남편의 직업이 항공기 조종사라는 흔치 않은 직업에다 어느날 갑자기 밝혀지기 시작하는 그의 이중생활. 그 중 하나는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장이 아닌 또 하나의 직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내내 지루하게 이야기를 끌고간다. 거의 70% 가량은 남편을 잃은 여 주인공 캐트린의 힘든 상황이랄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으로 할애를 하고 나머지 30%에서 남편의 이중생활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남편의 이중 생활에 좀 더 촛점을 맞추고 캐트린이 남편의 이중생활에 대해 알아내어 가는 과정을 좀 더 흥미롭게 다루었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말 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지 사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캐트린은 남편과 오랜 결혼생활을 했고 딸아이도 있으며 아무런 불만 없는 행복한 가정의 주부이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고나자 그의 감춰졌던 부분이 수면위로 올라온다. 다 안다고 여겼던, 뭐든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 남편. 같은 침대에서 잠이들어 같이 눈을 뜨는 생활을 수년간 한 사이인데도 그녀는 남편에 대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함께 하는 남편.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아내인 뮈어 볼랜드와 함께한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떤 남편의 모습이 진짜일지 궁금해 하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물어 볼 길이 없다.

그녀에게는 약간의 로맨스가 있을수도 있었다. 사건 직후부터 등장해서 계속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인데 나중에는 그 역시도 남편이 했었던 위험한 일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그녀에게 따라붙은 조사원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남편의 이중 생활을 알아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녀가 어떻게 그걸 밝혀내는지를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 소설은 충분하게 재밌을 수 있을 만한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 그러나 작가는 불필요한 감정적인 부분에 너무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고 정작 흥미로울 만한 스토리는 번개불에 콩을 구워 먹듯 후다닥 해치워 버린다. 분명 남편이 죽었고 그 남편의 이중생활이 있다는 정도의 암시는 책을 사자 마자 알고있는 독자들로서는 나중에 기다리다가 짜증스러워 질 요소가 충분하게 있다.  좀 더 흥미롭게 스토리를 잘 분배해서 나갔더라면 더 나았을 책이었는데 덮는 그 순간까지 아쉬웠다. 마치 좋은 원작을 가지고 원작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를 찍어낸 감독을 볼때처럼 말이다.

책은 비교적 수월하게 읽히지만 좀 더 전문적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과 함께 발로 뛴 노력까지 더해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이 책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한없이 미진하다. 결국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가지고 너무 감상적인 눈을 가지고 들여다봐서 심심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그렇게까지 열광적이지는 못할 것 같다. 좀 더 힘있는 소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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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6-0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신문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을 해 놨더라구요. 작가가 심리 묘사를 꽤 잘해 놨다고 하고, 특히 번역이 너무(?) 좋아 오히려 저자가 번역자에게 빚을지고 있다고. 근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 책 좀 신중히 고려해 봐야할 것 같군요.

진/우맘 2004-06-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가들은, 스토리텔링이 좋은 책 보다는 심리묘사에 치중한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문 평론가들이 <재미있다!>는 말을, 저는 별로 안 믿어요.-,.-

플라시보 2004-06-0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번역은 무리없이 매끄럽게 잘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최필원님이 번역하신 책들. 예를 들자면 미스틱 리버랄지 파이트 클럽 같은 경우는 정말 좋은 작품과 좋은 번역이 만난경우입니다.
진/우맘님. 이 책에서 심리묘사 부분도 저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섬세함 보다는 자잘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며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기 보다는 계속 우회적으로 돌리기만 합니다. 물론 진짜로 큰 일을 갑자기 겪으면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남편을 잃고 남편의 이중생활을 알게된 여자의 심리묘사는 없는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지옥 1
권지예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는다. 책을 사 주겠다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새의 선물이랑 비슷해? 새의 선물은 은희경이 쓴 소설이다. 나는 그 소설을 읽고난 다음 늘 주인공인. 징글맞게도 어른같던 꼬마 여자아이가 자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곤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의 선물과는 약간 다르다. 새의 선물의 여주인공은 어리지만 조숙했었고 (그렇다고 해서 순풍산부인과의 발랑까진 미달이와는 좀 다르다.) 그 아이의 삶 자체보다는 주변인들의 삶을 그리는데 더욱 치중했었으며 조금 더 드라마틱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지옥은 주인공의삶에 더 밀착되어 있고 새의 선물 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한 여자아이가 있다.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잘생긴 얼굴과 바람끼에다 허풍까지 함께 갖춘 인물로 집안 식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속으로 모든걸 삭이고 돈을 끔찍하게 아끼지만 정작 나서서 돈을 벌거나 돈을 불리는 것에는 담을 쌓고 산다. 그리고 여동생이 둘. 남동생이 하나이다. 그녀의 집이 서울에 정착해서 처음으로 장만한 내집에서 살다가 결국은 돈 때문에 집을 팔고 이사를 가기까지의 얘기가 나와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동안 재밌기는 했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작가가 소소한 일상을 쏟아놓았을 뿐. 그 속에는 아무런 메세지가 없다. 어떤 글이건 반드시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긴 소설을 쓰면서 아무런 하고싶은 말이 없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당히 이상한 일이다.

마치 배설물 처럼 작가는 자전적 소설을 길게 길게 풀어놓았다. 작가는 그래서 시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컷 읽고 나면 남의 삶을 들여다본것 같은 느낌만 남을뿐.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은 지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은 일 외에는 단 한줄도 상상을 하거나 발품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라도 한 것 처럼 이 소설은 참으로 일기장스럽다. 그런데도 단 이틀만에 두권을 다 읽어치운걸 보면 재밌기는 재밌다. 그게 단지 남의 인생을 엿보는, 아무런 메세지를 전달받지 못해도 단지 훔쳐보는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재밌다는 부분에 대해서 이견을 달지는 못하겠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주인공의 방문과 방 사이의 작은 공간에 누워서 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게 뚜껑이 있는 관이 아니라 뚜껑이 열려있는 나의 아름다운 관이라고 부른다. 문득 과거 지나간 내 사춘기에도 존재했던, 관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집안에서 혼자 찾던 좁은 장소 하나가 생각났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난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주인공의 엄마가 원낙 돈돈 하기 때문에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주인공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가난 부분만은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만약 정말로 가난했었다면 가난의 모습은 그렇게나 새새하게 그리면서 막상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그렇게 가볍게 스치듯이 볼 수는 없었을꺼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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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2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었지요. 후후, 님 주위에는 뭔가를 선물하시는 친구들이 많은가 봅니다. 다 님의 덕이겠지만요!

플라시보 2004-05-3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제 페이퍼 중에 구걸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실듯합니다.^^
 
모내기 블루스
김종광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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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속으로 그랬다. '겁나게 웃긴 소설일꺼야'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결과적으로는 겁나게 웃기지도 않았고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 소설들이었다. 분명하게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었건만 왜 저렇게 멋대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소설은 웃기지 않으며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집이다.

모내기 블루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농촌 얘기가 등장한다. 굳이 나누자면 초반부에는 농촌의 약자들을 그리고 후반부에는 도시의 약자들을 다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약자들이 청승스럽게 등장을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꿋꿋하며 성실하고 가끔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약자를 다루되 그게 먼 얘기가 아닌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처럼 와 닿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내가 제일 재밌었던 단편은 '서점 네시'와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열쇠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배신' 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던 모내기 블루스를 비롯한 일련의 농촌 얘기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줄곳 자란 나는 쌀나무는 어딨어요?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어떤 식으로 벼가 출하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니까 말이다. 서점 네시의 경우에는 상당히 놀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폭력성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지 또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난 폭력에 대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해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꼭 그렇게 징글징글하도록 바닥의 끝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으므로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은 백수의 얘기를 다룬건데 그것 역시 백수의 처절한 삶을 박박 긁어 보여주지 않았다.

열쇠가 없는 사람들은 한심한 회사에 몸을 담고 몇달째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는 회사 사람들의 얘기였다. 나 역시 겪어본 적이 있었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도 몇몇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암담한 앞날과 갑갑한 현실이 너무 와 닿아서 내가 허파가 다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이 책의 백미를 보여주는 '배신' 은 재미 면에서나 계몽 면에서나 뭔가 확실하게 하나 보여주는 단편이었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횡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그게 살아남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인것 같아서 참으로 씁쓸했다. 여자 주인공은 나름대로 그 사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계혁을 해 보고자 했지만 그냥 주저앉게 된다. 사용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또 움직일 수 없는 노동자들 때문에 그녀는 증거들을 자신의 손으로 찢어 버리는 것이다.

배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타고난 지도자와 타고난 투쟁가는 없는 것이다. 다만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갈 뿐이다. 경리였던 여 주인공은 그냥 널널한 업무를 하면서 제 앞가림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사장의 지나친 횡포가 그녀를 투쟁가로 그리고 사장의 입장에서는 배신을 때리는 나쁜 년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녀처럼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목숨줄이 달려 있는 문제라면 아무도 앞장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비록 호기롭게 갈아 엎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시도에 있어서 만큼은 나 같은 소시민은 진심으로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대부분 도토리 키재기식의 단편들이 난무한 가운데 간만에 만난 개성 뚜렷하고도 실한 단편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상하게도 다른 단편들은 읽을때는 참 재밌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뭐가 뭐였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반면 이 책은 읽는동안 아주 약간의 지겨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단편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고만 고만한 단편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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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데이 서울
김형민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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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권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아주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데모가 이땅에서 거의 사라진 무렵인 95학번이기 때문이다. 이한열 열사라는 말이나. 민중이라는 단어보다는 학회장하고도 차 하나 못 뽑으면 병신이다 같은 소리가 더 익숙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다닌 대학이 지지라도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나 같은 인간도 쉽사리 들어갈 만큼 소위 따라지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 좋은 대학을 들어간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역시 데모와 화염병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대학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저자는 70년생이며 89학번이다. 따지고 보면 나와 10년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로 다른 세대라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깊이 와 박혔다. 더 나이든 사람들이 쓴 소설은 읽기에 무리가 없었지만 나와 고작 6살 차이가 나는 사람이 쓴 대학시절은 정말이지 나에게는 책에서만 등장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그 차이는 책을 읽는 내내 결코 좁혀지질 않았다. 내 세대는 아무도 데모를 하지 않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저 어떻게하면 술이나 마시고 놀러나 갈까 고민하는것 이외에는 아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6학년때 나는 이사를 갔지만 전학을 가기가 싫어서 다니던 국민학교에 계속 다녔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해야 했는데 그때 어떤 대학 앞을 지나야만 했다. 대학 앞에는 늘상 체류탄으로 눈과 코가 따가웠다.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다 같은 학생인데. 나이가 좀 많은 저들은 무슨 불만이 저렇게 많을까 하고 말이다. 친구랑 싸우기만 해도 벌을 서는 판국인데 저 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저렇게 공부도 안하고 떠들면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이게 어린 내가 그당시를 바라보던 시선의 전부였다. 그 이상은 생각할 머리도 없었으며 내 주변에는 그들이 뭘 위해 싸우는지 설명해줄 대학생이 한명도 없었더랬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좀 한심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겪지 않았고, 몰랐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느끼기는 힘들다. 그것도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글 자체가 나의 무지를 한없이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사실이니 별 수 없는 것이다. 95학번이 이럴진데 00학번쯤 되면 이 책은 어쩌면 왜 읽으라고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쯤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좋은 책.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진심으로 잘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너무 모르는 것이다. 허나 이 책을 읽어 그 귓퉁이라도 알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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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24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썸데이 서울이군요. 순간 썬데이 서울인가 했습니다..죄송함다 정성된 리뷰앞에서 분위기를 오염시켜서리....ㅎㅎㅎㅎ

마냐 2004-05-2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저는 90학번인데도 정말 80년대 학번에 정서적으로 가까운 모양입니다...분명 저자와 기억을 공유하는 지점이 여럿 됐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정서로도 공감할 수 있을거라 오만을 떨었슴다...쩝. 그래도 플라시보님이 별 다섯개를 주신걸 보면서 내심 안도하다니..후후후...

물만두 2004-05-2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5... 헉... 전 87...

stella.K 2004-05-2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물만두님 그렇게 안 봤는데...!

panda78 2004-05-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97인데요, 1,2학년 때는 학교 안에 한총련 회장님도 오시고(보니까 교주... 시더군요..ㅡ.ㅡ;; 남총련 사람들이 막 사랑한다고 외치고.. ) 교문앞에 페퍼포그도 자주 보이고,
고속터미널 앞에서 뛰다가 넘어져서 바지 찢어먹고 그랬었는데 ...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책은 잘 읽었지만.. 진심으로 공감하기에는 제가 아는 것이 너무 없더군요.

치니 2004-05-2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약간 생각이 달라요.
겪어보지 않아서 감흥이 없는 것만은 아니더란 말이죠.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경우엔 충분히 표현만으로도 감동의 물결, 혹은 진지한 사유를 던져주곤 하잖아요. (2차세계대전이 주제인 수도 없는 영화를 생각해보면)
결국은 이 책의 경우, 글쓰는 사람이, 알아먹을 사람은 알아먹어라,나는 이렇게 쓰련다 하고 굳이 이렇게 저렇게 표현을 해보지는 않았던게 아닐까...막연한 추측입니다.
암튼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플라시보 2004-05-2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안녕하세요. 음..제가 공감하지 못했던건. 차라리 아주 먼 옛날 얘기면 모르겠는데 그나마 제가 시근이 멀쩡하던 시기의 일인데도 전혀 모르는 것이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전의 일도 아니고 저보다 조금만 학번이 높아도 참 중요한 일들이었는데 제 학번에 와서는 까맣게 잊혀졌다는 것이 좀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오히려 공감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부담을 줬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책은 참 좋았습니다. 별 다섯이 아깝지 않을 만큼요^^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제목을 봤을때. 나는 오빠가 그 오빤줄 알았다. 여관 앞에서 정말 얘기만 할꺼라고, 손만 잡고 있겠다고 부드럽게 얼르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험악한 얼굴로 돌변해서는 '오빠 못믿니? 엉?'하는 그 오빤줄 알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오빠는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심 서세원의 말투로 오빠가~ 하며 느끼해주길 바랬던 기대가 무너지긴 했지만. 이 오빠도 그 오빠 못지않았다.

김영하의 단편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는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컴퓨터 화면으로는 그저 빨간색일 뿐이지만 실제로 책에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글자는 빨간색으로 각까지 져서 코팅이 되어 있기에 불빛에 따라 번쩍이기까지 한다. (그 오빠가 그 오빠 맞구나 하는 확신이 더더욱 드는 대목이었다.) 다소 촌스러운 일러스트와 빨간색 글자. 그리고 그 뒤에 별은 두 해 전에 본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떠올리게 했다.

김영하는 마치 종합 선물셋트 같은 단편을 준비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제목과 똑같은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단편 이외에는 별로 빨리 뜯고픈 과자가 없는 종합 선물셋트 였다. 물론 밥을 먹는것 보다야 훨씬 수월하게 넘어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을 반짝이며 과자봉지를 뜯을 만한 단편은 보이지 않았다.

총 8개의 단편이 등장하고. 단편마다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으며. 작가가 발로 뛰고 준비를 많이 했겠다 싶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큰 점수를 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도 모르고 알라딘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칭찬을 했기에 나는 무조건 반대노선을 걷고야 말겠다는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그게 기대를 하게 했다는 뭐 그런 소리다.)

그래도 오빠가 돌아왔다 만큼은 충분하게 재밌었다. 사람에 따라 재밌게 본 부분이 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골때리는 콩가루집안의 얘기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우리 집 역시 콩가루나 골때리는 면에 있어서 한치도 뒤지지는 않지만 뭐랄까 우리집의 콩가루와 골때림은 돌아온 오빠를 가진 그 여자아이네 집에 비하면 뭔가 유머러스하지 못하고 유치찬란한 면이 부족하다. 콩가루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은 뭔가 심각한척 있는척 고상한척 하느라 재미 부분에서 상당히 뒤져버렸다. 어차피 콩가루인데 좀 재밌기라도 했으면 싶을 정도로 나는 그 여자아이네 콩가루 집안이 조금은 부러웠다. (물론 오빠가 팬티를 훔쳐가고 아버지가 교복을 훔쳐가는 것 만큼은 부럽지 않았다.)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혔으며 (요즘 난독증으로 의심될만큼 책을 잘 못읽는데 이건 하루만에 읽어치웠다.) 중간중간 심각한 문제의식이 있는 단편도 있었고 재미도 왠만큼 있었으니 이 책은 그러니까 사 보고 후회할 책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종합선물셋트가 그렇듯. 고만고만 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오빠가 돌아왔다'를 야심작으로 내세울수도 있지만 그것 하나로 나머지 일곱봉지의 과자마저 업 시키기에는 약간 역부족이다.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면 내가 평론가하지 뭣하러 이러고 있겠는가) 약간은 신선함이 부족하고 조금 더 성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에서 충분히 1등 할 수 있는 놈이 2등을 했을때 '얌마 좀 더 노력해 봐' 라고 말하는 담임의 심정이랄까? 아무튼 그런게 느껴진다. 참고로 나는 반에서 1,2등을 다투어 본 적은 한번도 없으며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그냥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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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루크 2004-06-19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1등 할 수 있는 놈이 2등을 했을때 '얌마 좀 더 노력해 봐' 라고 말하는 담임의 심정'. 정말 멋진 표현이네요.

플라시보 2004-06-1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