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탐사와 산책 15
유지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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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전공과목으로 공부를 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대해 많이 안다던가 아니면 공부를 열심히 했다던가 하는건 전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영화를 보고 느끼는 수준은 영화에 대해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영화보기는 즐기는 사람의 수준 정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를 보는 잣대는 재밌느냐 재미 없느냐. 혹은 2시간과 7천원의 돈이 아깝냐 아깝지 않느냐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었으며 영화를 텍스트로 분석해가며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꾸지 않았었다.

그래도 대학 다닐때 한 삽질이 있는지라 영화 용어사전 같은게 나오면 새로 구입하고 소설가나 누가 영화에 대해 재밌는 글을 썼다고 하면 대체적으로 사서 읽어보는 편이었다. (정재승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도 과학을 본다' 와 이우일 김영하의 '영화 이야기' 등은 상당히 재밌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쓴 책은 전혀 사 보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려운걸 싫어하니 내신 15등급이라는 찬란한 업적을 이룬게 아니겠는가!)

이번에 고른 유지나의 여성영화 산책은 순전히 친구의 '어렵지 않고 재밌다.' 라는 추천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편은 꼭 영화를 보고 쉬는 날이면 비디오 두편씩 연달아 때리는 것을 겁나하지 않는 내가 이제서야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영화비평서를 읽는다는게 좀 그렇긴 하지만 뭐 어떤가.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이르다는 편리한 교훈을 따랐다고 우기면 되는것을.

유지나는 알다시피 유명한 영화평론가이다. 지금은 심영섭씨를 비롯해서 많은 여성 영화평론가들이 있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유지나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었고 그녀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영화평론가였다. 이런 유지나가 여성 영화에 대해 썼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과거의 유지나는 너무 극단적으로 영화를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조금 둥글둥글 해 졌다. 남녀가 적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야 할 동지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터득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도 역시 유지나는 옛날 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문체로 여성 영화를 말 하고 있다.

사실 영화라는 것이 상당히 남성의 판타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포르노만 두고 봤을때도 절대적인 남성의 눈으로본 포르노만 존재할 뿐이지 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 한국영화들을 보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입지는 고사하고 아예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들이 속출하고 있다. 얼마전 칸느에서 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만 하더라도 상당히 남성적인 영화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자인 강혜정은 (물론 최면술사가 있긴 하다.) 복수를 위한 장치로서 등장하는 것이지 영화 속에서 그녀가 가진 위치는 희박하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안에서 그려지는 여성상이나 남성상에 대해 따진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게 보일 지경이다. 여성이 등장을 하고 개뿔이나 무슨 역활을 맡아야 따지던가 말던가 할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토론들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은 바로 언젠가는 달라질것이라는 희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는 아직 변영주나 이정향 같은 여성 감독들이 있으니까. 앞으로 제 2의 제 3의 변영주와 이정향이 등장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영화부터 시작해서 헐리우드 영화, 제 3 세계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 즉 시네마코프 안에서 존재하는 여성의 위치를 다루었다. 실제 세상에서도 엄청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듯 영화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여성 주인공이 이끌어 가는 보기 드문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그 여성들 조차 철저하게 남성적 시선에서 본 여성. 혹은 남성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여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 좀 더 영화를 의미있게 또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다. 그저 재밌다와 재미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서 산 나로써는 상당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읽기에 그다지 부담스러운 문체도 아니며 어려운 영화 용어도 많이 등장하지 않아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읽을 만 하다. (오히려 영화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싱거울수도 있을 정도이다.)

페미니즘을 언제나 투쟁적으로 그리고 날카롭게만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방법의 차이일 뿐. 그들과 유지나가 내려고 하는 목소리는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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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06-1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 페미니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제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네요~ 사라고 해서 저도 옆에서 덤으로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추천 꾸욱~~^^

플라시보 2004-06-1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페미니즘 서적을 많이 읽지는 않은 편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도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이용한 페미니즘적 접근이라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책값도 좀 하고 하드커버인데도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마태우스 2004-06-1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멋진 리뷰를 보니 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사실은..전에 읽었어요. 흐흑.

꼬마요정 2004-06-1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하드커버를 하지 않아도 될 책들에다가 하니까 책 값만 비싸지는 것 같아요~ 좋은 책은 집에서 책커버를 각자 할 수도 있는데, 낭비같기두 하구, 돈 없는 사람들 책도 많이 못 사보기도 하고.. 그쵸??

플라시보 2004-06-1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흐흐. 이미 읽으셨군요.
꼬마요정님. 저도 책이 절판되고 난 다음에 굳이 하드커버로 개정판이란 이름을 달고 나오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문고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드커버 사 볼 사람들은 사 보고 아닌 사람들은 싸고 가벼운 문고판을 보게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의 무게가 만만찮아서인것 같습니다.

클리오 2004-06-19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늘 이야기해요. 저는 '직업상' 돈이 있건없건 책을 많이 사야되는데... 하드커버 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가격으로 한번 , 그 무게로 또 한번(평소와 이사갈 때까지 포함하여..), 책을 사고 읽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예요. T.T
서평 감사합니다.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플라시보 2004-06-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갈때 정말 골때리죠? 전 책을 전부 회사로 배달시키는데 한번에 5권을 넘기면 가져가기가 상당히 거시기합니다.^^

구름잡이 2004-06-2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영화와 페미니즘.
참 딱딱하네요.
영화를 왜 이렇게 쪼개서 봐야하는지 모르겠네요.

치니 2004-06-2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지나를 무척이나 싫어하는데, 책은 괜찮은가보네요. 하긴 그사람이 쓴 책도 안 읽어보고, 만났을 때나 대화 했을 때의 느낌만 갖고 싫어하면, 좀 불공평하죠?

플라시보 2004-06-2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잡이님. 텍스트로 쪼개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상당히 딱딱하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만. 뭐랄까요. 저는 그냥 한번쯤은 영화를 그렇게 보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 책을 골랐습니다. 물론 저 책 하나를 본다고 해서 앞으로 쭉 영화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알고 보는것과 모르고 보는것의 차이 정도는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저 역시 영화는 재밌으면 땡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중 하나인지라 늘 심각하게 영화를 보지는 못합니다.^^
치니님. 솔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저도 과거 유지나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유지나가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것은 인정을 합니다. 책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적어도 제가 유지나에 관해 느낀것 보다는 책이 몇 배는 더 낫다고 말씀 드릴수 있겠네요^^

잃어버린우산 2004-09-3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두 펌~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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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는 카드 돌려막기, 카드 연체 등등을 다룬 TV프로그램이나 뉴스를 보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기에 무지하게 찔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카드빚이 엄청나서 카드깡에 사채를 끌어다 쓰기까지 한 얘기는 마치 내 미래일것만 같아서 더더욱 보질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당하게 보며 혀를 찬다. 왜냐면 나는 지금 신용카드도 없고 빚도 없으며 적금 씩이나 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자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은 적어도 돈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다. 매달 카드값에 식은땀을 흘리고 비싼줄 알면서도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은행 잔고는 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혹은 그 이하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당당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야 말로 카드빚에 시달리고 마이너스 통장을 매꿀 생각에 머리 터지는 사람들이 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착실하게 잘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돈을 불릴 수 있는 더 실용적인 책들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까지 자기 이름 앞으로된 적금통장 하나 없는 사람이라면 필히 봐야 한다. 왜냐면 이 책의 주인공은 부동산이나 주식 혹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을 굴리고 불린 사람이 아니라 오직 적금만으로 1억을 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월급에서 매달 얼마씩 떼어내어 적금을 붓는것. 사실 그것 부터가 가장 기본적인 출발인 것이다. 저금 통장 하나 없는 사람에게 10억을 이렇게 벌었다느니 20억을 저렇게 불렸다느니 하는건 너무 먼나라 얘기일테니 무식하나마 안쓰고 아껴서 저축한걸로 돈을 모은 이 책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주인공과 나는 어느 부분에서는 무척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다. 우선 주인공은 방송 작가라서 일을 세 가지나 하는데 나도 한때는 세 가지를 했으며 (책의 저자는 그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번 돈을 몽땅 저축했지만 나는 몽땅 썼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 일중 하나는 저자처럼 방송쪽의 일이었으며 작가도 했더랬다.) 한달에 50만원 에서 6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쓰며 (저자도 혼자 살며 나도 혼자 산다. 저자의 월세는 20만원. 나는 19만원이다. 즉 우리가 순수하게 집값을 빼고 쓰는 돈은 30에서 40만원 정도가 되는 것이다.) 급여의 상당부분을 적금을 붓는데 쓴다는 것. 그리고 아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는 점 (저자는 27. 나는 28에 정신을 차렸으며 그 전의 소비행태는 거의 붕어빵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 무조건 점수를 많이 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이 쓴 책인데 그 뉘라서 후한 점수를 주지 않으리오.

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한때 소비의 여왕이었다. 나 역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주제에 백화점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았고 젊은날 펑펑 쓰지 않으면 언제 펑펑 써 보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경우에는 대학교 다닐때 워낙 가난하게 다녀서 (등록금을 제외한 모든 돈을 내가 자급자족 하다 보니 거의 거지처럼 살았다.) 돈을 벌자 마자 맺힌 한을 풀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넌 30만원짜리 니트를 입어도 돼. 대학 다닐때 얼마나 없이 살았니? 그래 넌 한끼 식사로 8만원을 지불해도 돼. 대학 다닐때 라면만 먹었으니 말이야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소비를 하고 그게 가난하게 지낸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28이라는 기가막힐 나이였고 내 이름 앞으로 된 적금통장 하나 없었다. (저자는 저금 통장에 700만원이 있긴 했지만 빚잔치를 하고 나니 제로 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허접한 액수인 15만원에서 출발해서 점차 액수를 늘이고, 예전에는 쓸돈 다 떼어놓고 남는돈을 저금했는데 지금은 저금을 먼저 하고 남는 돈으로 어떻게건 한달을 살아간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2년 10개월 만에 1억을 모으냐고. 물론 나도 그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자는 월 수입이 400만원을 상회했으며 대충 450정도는 벌어들였다. 그래서 한달에 꼬박꼬박 400만원이 넘는 돈을 저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월 수입이 400만원이 안되는 사람은 그녀처럼 2년 10개월 만에 1억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럼 그렇다고 해서 포기를 해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 월 수입이 100이건 200이건 아껴쓰고 모으면 언젠가는 돈이 모이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언제 돈이 모일까 했었는데 100만원이 되니 200만원이 되는건 더 금방이었고 300이 되는건 또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 돈이 돈을 낳냐고? 아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체감이 그만큼 빨랐다는 것이다. 마치 국민학교 다닐때는 1년이 10년 같더니만 지금은 1년이 1개월 처럼 느껴지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다.

사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나는 저자처럼 모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영양실조로 눈다래끼와 원형탈모증이 걸리고 영화한편 책 한권 사 보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건 좀 미련한 짓으로 보인다. 내가 이 책에서 끝끝내 동의할 수 없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저런 부분이다. 그녀의 경우 물가가 살인적이라는 서울에서 살기 때문에 지방 소도시에 사는 나와 똑같은 금액으로 한달을 살려면 훨씬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조금은 사람답게 살면서 모으기를 권하고 싶다. 책이나 영화볼 돈도 아끼면 그만큼 더 빨리 벌기야 하겠지만 한달에 문화생활은 5만원. 이런식으로 딱 정해 놓으면 큰 낭비라고 볼 수 없다. 차라리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는 것을 좀 줄이는게 낫다. (돈을 모으려면 우선 사람들 만나는걸 줄여야 함은 나도 충분하게 공감한다. 어디 들어갔다 하면 2-3만원은 우습게 나가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5만원은 순식간에 깨어지는 그 상황을 되풀이하다 보면 정말 돈 못 모은다. 그깟 몇만원에 떠냐고 하겠지만 10원이 우습게 나가면 10만원도 우습게 나가는게 돈의 속성이다. 단 나는 그녀처럼 무조건 돈을 쓰지 않으려고 사람을 안만나지는 않는다. 내가 평생을 볼 친구들에게는 그들이 내게 쏘는 것 보다 허접한 액수나마 가끔 쏜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이 책을 아직도 적금을 넣지 않는 사람들에게 참고삼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는 이렇게 치열하게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니까 월급을 상회하는 명품 가방을 카드로 척척 긁는것은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리고 다만 얼마씩이라도 적금을 넣다가 보면 재미가 들려서 돈을 훨씬 즐겁게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내 친구 K양은 나보다 월급이 50만원 정도가 많다. 말이 50이지 내 생활비와 맞먹는 액수이다. 거기다 그녀는 나처럼 나와 살아서 치약 하나도 다 내돈으로 사야 하는 상황이 아닌 본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현재 카드빚이 있으며 매달 카드값을 막느라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적금통장이 없으며 월급이 들어오는 저금통장은 하도 정리를 안해서 한번 갈때마다 통장을 하나씩 갈아 치워야 한다. 그녀는 최신 핸드폰이 나오면 갈아 치워야 하며 길을 가다가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야하고 술값과 밥값은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그 결과 그녀는 갚아야 할 돈이 1천만원이다. 물론 그녀의 연봉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이긴 하지만 현재의 생활을 계속 해 간다면 갚기는 커녕 더 늘기만 할 것이다. 나는 결코 K양의 경우가 특수하지 않다고 본다. 내 주변의 많은 일하는 여자들이 K양과 같거나 혹은 더하거나 조금 못 미치거나. 어찌되었건 오십보 백보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신용 불량자들은 절대 특수한 집단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K양을 떠 올렸다. 그리고 돈 모으느라 정신 없지만 이 책 만큼은 한권 사서 K양에게 읽어보라고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금 통장 하나 만드는것 만으로도 1억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와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현실적으로 월수입이 400이 안되는 사람은 절대 저자처럼 3년안에 1억을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포기하면 안된다. 돈으로 할 수 있는게 점점 많아지는 요즘인 만큼 정말로 돈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란 소리냐고 반박하는 사람에게 묻고싶다. 그럼 당신은 돈을 지배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돈의 노예건 지배건 뭐건 간에 돈은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친구가 슬플때 술 한잔 사 줄 수 없고 내가 아플때 돈 걱정부터 해야한다. 내가 볼때 돈에 무관심해서 저렇게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처럼 영양실조 걸려가며 돈을 모을 필요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분명 돈은 모아야 하는 것이다. 천년만년 지금처럼 늙지않고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면 상관 없겠지만 말이다. 돈을 모으지 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래를 늘 지금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턱없이 믿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의 저자는 2억 모으기에 돌입했다고 한다. 정말 독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10억을 저축으로 모을 사람이다 싶다. 이제 그녀도 1억을 넘기고 2억을 넘기면 적금만으로 돈을 모으라는 소리 대신 주식이나 투자에 대해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금통장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까지는 저금만으로 1억을 모은 그녀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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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1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쓴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받지 않았었다면 이주의 리뷰에 뽑혔어야 할만큼 공감도 가고, 술술 잘 읽혔어요. 참고로 저는 로또 한방을 노리고 있답니다.

플라시보 2004-06-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로또를 노리시는군요. 제 친구도 로또가 되면 저랑 태양문구를 차리려고 한답니다.^^ (아 그리고 너무 송구스런 칭찬. 부끄럽지만 감사합니다. 꾸뻑)

로렌초의시종 2004-06-1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텍스트의 해석과, 독자의 삶의 조화!^^ 저도 마태우스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안 그래도 저도 서점에서 이 책보고 한번 읽어볼까 했는데 결정적으로 성별이 달라서 보류했다는 ^^; 아 로또는 언제쯤 되려나~~~ㅜ ㅜ

치니 2004-06-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로또도 하지 않고 , 적금 붓기도 안하는데, 빚은 거의 없어요.
그럼 중간은 되는걸까요. -_ㅜ

플라시보 2004-06-1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 성별이 달라도 읽을 만 합니다.^^ 물론 남자들은 술 마실 일도 많고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한다는 이상한 망상에 젖어 있으므로 책의 저자처럼 모으기는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치니님. 중간은 되시고 말구요.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빚만 없어도 부자라고 하더라구요. (저기 그래도 쬐끄만거라도 하나 넣으심이...혹시...그럴 필요가 없을만큼 돈이 많은건 아니신가요? 하하^^)

메시지 2004-06-1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술값때문에 이번 주 용돈이 벌써 똑하고 떨어졌답니다. 다음 주 용돈 가불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래도 불행하진 않아요.

마냐 2004-06-1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역시 님의 리뷰는 실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기막힌 작품이 되었군요...빚더미에 사는 처지라...적금이라는 단어는 더욱 매혹적이고, 그립고, 아쉽더군요.,

플라시보 2004-06-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 좋은 사람들이랑 유쾌하게 술을 마셨다면 좋은거지요.^^ 꼭 돈을 모아야 한다고 해서 매정하게 주변인들과 만남도 갖지 않으면 돈은 얻을 망정 사람은 잃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물론 책의 저자는 용캐도 둘 다 이뤘더군요. 에잇..)
마냐님. 흐흐. 사람들은 역시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가 봅니다. (어여 빚 청산하시고 적금통장을 불려가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04-06-16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잎새 2004-06-1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원래 저런 류의 책 거의 안 읽는데(뻔하다는 편견을 못 버려서요) 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사서 보고 싶네요. 마이리뷰 이 주 연속 당선은 원래 없는 건가요? ^^
(정말 오랜만에 코멘트 남기네요. 반가워 해주실거죠? ;;)

2004-06-17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6-1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고 싶다님. 역시 저자가 받는 월급이랑 우리가 받는 월급이랑 큰 차이가 있죠?^^ 요즘 제가 리뷰를 좀 더 자주 쓰는건 서재라는 이름에 충실하기 위함이랍니다. 흐흐.
어디에도님. 제가 봐도 garangj 로 보여요. (아마 남들도 그럴듯). 아무튼 내용은 어디에도님이 쓰신거라고 알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간혹가다가 로그인을 하면 다른 사람의 서재로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미키루크 2004-06-19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서평입니다. 재테크서적도 요즘 보시나 봐요.^^ 그리고 이 주의 마이리뷰에 저번 주에 뽑히셨나 봐요. 찾아봐야지. 저도 예전에 딱 1번 <33세 14억...>으로 된 적 있었는데... 5만원 상품권 받은 기억이 나네요.

플라시보 2004-06-1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키루크님. 너무 어렵지만 않으면 제테크 서적도 좋아합니다.^^ 다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조금 두려워 하긴 하지만요. 흐흐.

쵸코카스 2004-06-2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리뷰에 코멘트다는건 처음인데 원래 다른사람 리뷰를 잘 읽지 않지만 진짜 길길래 읽었는데 정말 멋지네요. 리뷰읽고 이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ㅎ 전 아직 학생이라 엄마한테 용돈이나 가끔 받고있지만 나중에 어른되면 정말 적금을 들어야하겟어요! ㅎ 저는 로또대신 경품응모를 노리고있어요~ 전혀 안되고잇지만.ㅎ

플라시보 2004-06-2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코카스님 처음 뵙겠습니다. 로또보다는 경품응모 확률이 높을것 같아요.^^ 근데 그거보다 한수 위는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는 거더군요. 예전에 FAX랑 20만원짜리 의류 상품권을 탄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꼭 돈 버시면 적금통장 만드세요^^ 저도 조금 더 일찍 만들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되더라구요. 그저 왜 해야 하는지 몰라도 사회생활 하자 마자 하나쯤은 만들어 놔야지 나중이 편합니다.

구름잡이 2004-06-2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이 자극적이라 어쩌다 읽게 됐구요.
서평만 읽어도 책을 다 읽은 느낌이네요.
지난달에 적금깨고, 아직 안들었는데 고려해봐야 겠네요.

플라시보 2004-06-2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잡이님. 안녕하세요.
제가 꼭 저축 전도사 (이런 표현 엄청 싫어하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가 된것 같군요. 흐흐.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말이다. 나는 여성 작가들이 쓴 글을 아주 좋아한다. 쉽게 읽히는데다 재밌고 감성도 풍부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읽을때는 페이지 페이지 침 발라가며 재미나게 읽었으면서 리뷰를 쓸때는 언제나 삐딱한 자세가 되곤 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이다. 아무리 재밌으면 모든걸 용서하는 나 이지만 그래도 일기장 소설은 좀 심했다고. 적어도 작가라면 상상을 하던가 아니면 발로 뛰면서 자료를 좀 모은다음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무언가를 근사하게 써 낼 줄 알아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별로 재미없는 소설에 많은 점수를 주었던 이유는 그 작가가 책의 배경이 되는 이국땅에 가서 이미 다 사라진 자료를 고생고생해서 찾아가며 썼다는 말에 그만 감동을 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요 근래에 보기 드물게 내가 재밌게 읽은 만큼. 그대로 칭찬을 해 주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면 바로 심윤경이다. 아무리 재밌었던 책들도 일단 리뷰를 쓰는 순간만 되면 나에게 일기장 소설이며 침대소설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었는데 이 작가의 책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정말로 노력을 해서 썼으며 작가적 상상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재밌기까지 하다. 즉 남의 일기장을 들추는 듯한 느낌을 없이도 내게 재미라는 것을 준 보기 드문 여성 작가인 것이다.

심윤경이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이유는 우선 극중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에 있다. 알다시피 극중 주인공이나 화자는 나이가 많건 적건 직업이 뭐건 간에 우선 작가와 기본적으로 같은 성별을 책정해 놓는 것이 가장 편한 일이다. 아무래도 다른 성별로 지정을 해 놓으면 자기와 동일한 성별일때 보다는 신경이 쓰이며 더 나아가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해서 작품을 망처버릴 확률이 농후하다. 그리고 작가들 대부분은 성별 뿐 아니라 주인공의 직업을 자신과 동일한 소설가나 기자 등등 아무튼 글쟁이로 설정을 해 둔다. 주인공의 직업마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직업을 설정 해 둠으로 인해 골치아파질 것을 우려한 안일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소설의 주인공 직업은 소설가가 단연 1위였다. 2위가 기자임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심윤경은 주인공을 남자로 설정했으며 별 무리없이 잘 그려내었다. 약간 오바한 나머지 남성미가 지나치게 풀풀 풍기는 남자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몸만 남자지 여자의 감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남자도 아닌 그냥 남자를 그려냈다.

다음으로는 좀처럼 소설 속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옛 언찰(諺札)을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국문학을 들고 판 사람이 아니라면 언문 같은걸 일일이 찾아내어서 언찰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심윤경은 국문학이나 사학을 전공한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힘이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은 언찰은 나처럼 무슨 말인지 모르면 귀찮아서 읽지 않고 건너뛰는 인간에게 조차 주석을 보고 해석을 하는 기특함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물론 사가에서 손녀와 할머니 사이에서 주고받능 언찰이라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덕도 있다.)

이 소설은 현대가 배경이긴 하지만 주인공이 속한 공간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현대라기 보다는 양반 상놈이 존재하던 시대나 다름이 없다. 종손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비록 대학을 다니고 가끔 서울을 가기도 하지만 그의 삶의 대부분은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효계당에서 이뤄진다.

어떻게 보면 이건 사랑 얘기일수도 있고 한 맺힌 원혼들 때문에 풀려도 더럽게 풀리는 집안사에 관한 얘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전자쪽에 더 무게를 두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이라는게 어디 정해놓은 공식이 있는것도 아닌만큼 나는 분명 주인공이 사랑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비록 좀 이해하기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간만에 아주 재밌는 소설책을 읽었고 또 읽을때의 느낌과 마찬가지로 칭찬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살면서 이런 소설가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행운이라고까지 여겨질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주문을 해 두었다. 작가 말처럼 요즘 소설처럼 쿨하지 않고 실제의 삶이 그런것 처럼 다소 구차하고 남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없이 질척거리며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 작가의 기량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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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 추천-! 기운내세요, 플라시보님!

플라시보 2004-06-15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nda78님 고맙습니다. 기운낼께요^^

로렌초의시종 2004-06-1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는데...... 이 작가의 첫작품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워낙 재밌게 읽어서요. 1년에 책 5권 정도 읽으시는 저희 엄마도 재밌다고 몇번을 읽으셨죠.^^; 좀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플라시보님 리뷰 덕분에 계획 보다 빨리 읽을 것 같네요.(아 리뷰의 압박이...... ㅡ ㅡ;, 가뜩이나 부족한 실력에......) 더운 나날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운 놓고 계시지는 마세요!^^ 추천합니다~~~

플라시보 2004-06-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꾸로 되어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이제서야 주문했습니다. 님의 말씀을 들으니 빨리 읽고 싶어집니다.^^

치니 2004-06-1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홍, 저는 2권 다 보관함에 일단!

플라시보 2004-06-1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님께도 재밌는 책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마태우스 2004-06-26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재미없게 읽으셨지만 발로 뛰어서 점수를 준 그 소설 말이죠... 혹시 <대통령과 기생충> 아닙니까?
제가 좀 ....뛰긴 했습니다만^^

플라시보 2004-06-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말씀 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만 [대통령과 기생충]은 아닙니다. 흐...

2004-06-28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6-2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tarsta님 감사합니다. 당연히 제 이름이 들어가면 좋지요^^. 너무 감사합니다. 꾸뻑. (근데 어찌 아시는 사이신지요?)

2004-07-06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7-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arsts님 책 도장이 있긴 한데요. 플라스틱으로 된겁니다. 따라서 님이 파 주시기만 한다면 당장 조악하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책도장을 던지고 님의 솜씨있는 도장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아...전 왜 누가 뭘 준다면 정신을 못차릴까요) 그리고 그분이 절 아신다는게 참 신기하네요. 어찌 아셨을까...^^ 아무튼 기분 좋은 일입니다.

eypop 2004-11-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인가?

도서관에서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다시 보고 싶어서 들어왔다가 님의 리뷰덕에 "달의제단"까지 같이 구입하게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종종 들를께요 ^^

즐거운 하루 되세요



 
범죄신호 - 모든 범죄에서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법
가빈 드 베커 지음, 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나는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파트 복도를 오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안아서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상대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잠바 주머니에서 칼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내 쪽으로 하고 있는 것은 보였다. 그는 거의 울것같은 나에게 조용히 따라오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따라가지 않았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린 다음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그를 밀치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내 귀청이 다 찢어질 지경이었고 그날저녁 아파트에서는 어디서 사람 하나 잡나보다 싶어 모두들 집밖으로 나와서 무슨 일인가 살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본 엄마와 아빠에게 울면서 사실을 말했고 아빠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 사람은 끝내 잡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만 해도 그냥 이 얘기를 한번쯤 겪을 수 있는 무용담으로나 여겼었다. 하지만 책을 보고 나니 내가 저때 얼마나 잘 대처를 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따라오면 살려주겠다는 말을 표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내가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굳이 살려주겠다고 말한 것은 나를 죽일 의도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칼 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내밀었지만 그게 칼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칼이라고 단정짓고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가 나지 않을까봐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리는 것과 같은 준비과정을 거친 다음에 크게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그를 밀쳤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소리가 안나오면. 혹은 밀쳤으나 밀쳐지지는 않고 그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나를 찌른다면 등의 생각을 했더라면 나는 분명 그날 그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뉴스를 보면 날마다 사건 사고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학대하거나 스토킹하거나 살해하는 일은 매일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일어난다. 이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또 일면식도 없던 (적어도 피해자 쪽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에 노출 되었을때 해야 할 일은 뭘까?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바로 직관에 귀를 귀울이라는 것이다. 두렵다고 해서 벌벌 떨거나 운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받을때 가장 강한 신호를 느낀다.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 신호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 옛 말처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누굴 죽이면 살인자를 단순하게 미친놈으로 생각한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총을 들고 쏘는데 또는 칼을 들고 찌르는데 그 누구라서 피했겠는가 재수가 없었지 뭐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떤 신호건 있게 마련이다. 암살범이 먼 건물 옥상에서 총으로 저격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건 접촉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접촉 속에서 우리는 신호를 읽어내서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같은건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미리 그 신호에 귀를 귀울이고 직관을 믿는다면 반드시 사람에 의한 위험은 어느정도 피해갈수가 있다.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위험한 일들은 자동차 사고나 가스 폭발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었지만 읽고난 지금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험학한 시대에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도 언제든 협박이나 스토킹 혹은 살해당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예전에 모르고 했던 행동 (직관에 의한것)을 좀 더 알게 되었고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내 생존본능이 내게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을 하니 처음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순간에도 강간과 살인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피해자가 되는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내게서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일어날수도 있으나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꼭 한번은 읽어보길 바란다. 다만 하드커버에 책도 두터워서 나처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읽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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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ool 2004-06-1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헌데 하드커버라구요? 윽... 하드커버 책 저도 너무 싫은데...

부리 2004-06-1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최고의 논객이 사라질 뻔했군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참고로 전 생각이 없이 살아서 누구보다 직감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거든요. 그니까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기생충의 변명 대학병원 건강교실 6
서민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사실 기생충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초등학교의 대변검사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빗자루로 회충 촌충 십이지장충 이라는 글짜를 쓸어내던 회충약 CF도 TV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이 창궐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생충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지금도 엄연히 기생충은 미비하나마 그 숫자가 존재하고 있고 세계 보건기구에서 유의해야 할 질병중 6개 항목은 기생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거기다가 걸리면 목숨을 잃는 말라리아를 그냥 모기가 옮기는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기생충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충분하게 기생충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기생충 하면 무조건 대변을 통해 나오는 하얗고 길다란 것만을 생각했는데 육안으로 보이는 기생충 이외에도 전자현미경을 들이대야 할 정도로 작은 기생충도 있으며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예전에 못살던 시절에 비해서 위생상태가 양호하고 또 수많은 기생충학자들에 의해 거의 박멸되다시피 해서 지금은 기생충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기생충의 위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정력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는 뱀도 잡아먹고 동물의 생간이나 사슴피 따위를 곧잘 먹는데 그런 곳에 기생충이 많다고 하니 말이다.

교과서에서 본 기생충은 민촌충, 갈고리촌충, 십이지장충 정도가 전부였는데 생각보다 기생충의 종류는 매우 많다. 또 모기, 물벼룩, 파리, 애완동물을 비롯한 동물의 대변등 감염 경로도 매우 다양하다. 나는 기생충은 그저 대변을 보고 손을 잘 씻지 않으면 걸리는 병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 내게있어 기생충은 대장균이나 별반 다름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무식하면 안된다고 하나보다.) 아직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은 만큼, 그리고 심각하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산모가 걸리면 태아에게 심각한 뇌손상등의 기형을 초래하는 기생충인지라 무엇보다도 예방이 필요한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생충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걸리는지. 또 치료법은 무엇인지 이 책은 비교적 쉽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두었다.

내가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전문적인 내용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학술용어나 어려운 의학용어 등으로 사람 기를 죽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책의 거의 대부분은 기생충에 관한 것인데 제일 마지막 챕터가 이채롭다.

내가 아직도 의사로 보이니라는 4장에서는 보조약 (여기서 말하는 보조약이란 예를 들면 결핵환자에게 결핵약과 함께 결핵약중 간에 손상을 주는 성분 때문에 간장약을 함께 처방하는 것)의 남용에 대해, 이주일씨와 폐암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냄비근성을 다루었고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진짜 이유, 그리고 사후 피임약인 노레보에 대한것. 광우병에 관한것 등등 기생충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었던 부분을 다루었다. 한쪽 입장에서만 다룬것이 아니라 그런지 '뭣뭣을 먹거나 뭣뭣을 하는것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식의 언론플레이에 열심히인 의사나 박사들과는 다소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기생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조금은 기생충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늘 재밌고 쉬운 책이나 읽으며 세월을 조지는 나 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머릿속에 남아서 지식이라 부를만한 무언가가 있는 책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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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이 2004-06-0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글 남깁니다. 이 서재의 재미난 글들 잘 읽고 있지요^^ 그나저나 마태우스님, 기분이 굉장히 좋으시겠는데요? (저는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마태우스 2004-06-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광이긴 하지만.... 아이 참. 이러시면 안되는데... 실제 상품의 가치보다 더 칭찬을 해놓으시면 혹시 님을 믿고 산 분에게 원망을 들을까 두렵사옵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플라시보 2004-06-0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털이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하신다구요? 읽어보면 생각보다 재미있을겁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
마태우스님. 후훗 부끄러워 하시기는요. 저도 읽어보고 좋다고 생각이 되어서 칭찬을 한거지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 했을겁니다. 제 성격을 아직 잘 모르시나봐요^^

nugool 2004-06-0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께서 하필 왜 기생충쪽 전문이신지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도 기생충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으악이긴 하지만.. 게다가 어린 애들을 키우다보면...
촌충맞나? 하여튼 그 애들에게 잘 옮는 기생충 있어요. 밤에 밖으로 기어나와서 알을 깐다는데 그 알이 다시 입에 들어가고 들어가고 해서 약을 한참 먹어야 되더라구요. 애는 간지럽다고 난리지.. 이불은 맨날 뜨거운 물에 빨아야지.. 하여튼 생쑈를 했더랍니다... 애들은 아직도 봄 가을에 기생충약을 먹어 줘야 한다네요. 참, 근데 의사들이 제왕절개 수술을 권하는 진짜 이유는 뭐래요??

플라시보 2004-06-0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은 모르지만 책에 나와있는 있는 대로라면 제왕절개로 수술을 해서 잘못되면 자연분만을 해서 잘못되는 것 보다 의사들의 책임부분이 훨씬 적다고 합니다.

마태우스 2004-06-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말씀하신 기생충은 요충으로 사료됩니다. 글구 제왕절개에 관한 그 글을 여기다 다시 옮겨 볼께요.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저를 그들과 같은편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고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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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월 10일자 독자투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xx산부인과 장원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원장은 한번도 임신중절 수술을 해준 적이 없으며, 불가피하지 않으면 산모가 아무리 제왕절개 수술을 원해도 설득을 거듭해 자연분만으로 낳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제왕절개의 문제는 좀 심각하다. 미국 LA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비율이 43%로 미국의 20%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이 신문에 의하면 '한국에서 제왕절개가 많은 배경으로 1) 수술이 더 안전하다는 믿음 2) 법적 책임을 면하려는 병.의원의 태도 3) '사주'가 좋은 날 아이를 낳으려는 태도 등을 꼽았다.

[특히 높은 제왕절개 시술 비율의 원인으로 의사들이 지목되고 있으며, 최근까지 한국의 병원들은 제왕절개 출산에 대해 자연분만보다 3배나 더 많은 치료비를 받아왔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 공단 관계자는 "제왕절개 시술이 많게 된 책임은 의사에게 있으며, 진료비를 더 받기 위해 여성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 수술을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소위 '가진자'이며, 의사들의 행동은 대개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건 당연하며, 그것이 공익을 해치지 않는 한,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언제까지나 '의술은 인술'이라는 식으로 의사에게 도덕심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레보'라는 사후피임약을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연간 5천억원에 달하는 불법낙태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기주의가 작용하며, 이건 여성의 건강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공익과 충돌한다. 즉, 이런 이기주의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제왕절개 또한 마찬가지일까?

신문기사에서 '제왕절개가 자연분만보다 3배나 비싸다'며, 보험공단 관계자가 '진료비를 더 받기 위해 여성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라는 대목에 주목하자. 우리 나라의 자연분만 수가가 원가에도 훨씬 못미친다는 건 사실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20대 여자가 단란주점에서 두시간 정도 술을 따르면, 십만원을 번다. 그런데 밤을 세워가며 애를 받아봤자 그 댓가가 10만원에 불과하다면, 별로 일할 의욕이 나지 않을 것이다.

배추값이 폭락하면 농촌에선 배추를 다 버린다. 돼지값이 폭락하면 돼지를 그냥 죽인다. 팔아봤자 손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인간은 배추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수가가 낮더라도 환자는 봐야 한다. 이 경우 예상되는 손실을 메꾸기 위해 많은 의사가 도둑이 되었다. 이것이 한국 의료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그 도둑질을 못하게 만든 의약분업에 의사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의사들의 파업에 반대했으며, 그래서 한 친구와 거의 절교를 하긴 했지만.

다시 제왕절개 이야기를 해보자.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건, 단순히 수가 때문이 아니다. 그 증거를 대보자.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국가에서 월급을 준다. 제왕절개를 하든 자연분만을 하던 똑같은 월급이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은 제왕절개를 선호한다. 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그럼 왜 제왕절개를 선호할까? 돈 때문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건 바로 '책임' 문제다. 자연분만의 경우, 1% 이하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탯줄이 목에 감긴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통로가 좁아서 분만이 지연되는 건 산모나 태아나 모두에게 해롭다. 분만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해도, 애가 조금만 이상하면 그 책임을 의사가 뒤집어 써야 한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에 비해 산모가 회복이 더디긴 하지만 태아에게 어떤 위협도 없다.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위험이 1%의 가능성일지라도 말이다.

아까 그 독자의 글이다. [그곳 부원장은 "아줌마, 자연분만 성공률이 99%라고 해도 1%의 가능성 때문에 실패한다면 누가 책임집니까?"라고 했다.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최선책을 택해야 할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같아 섭섭했다....]

이 사람은 뭘 착각하고 있다. 엄마들은 자신은 좀 안좋더라도 아이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즉, 태아의 건강을 더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99% 안전한 것과 100% 안전한 것 중 어느 것이 태아의 건강을 위한 최선책인가?

다시 문제는 '책임'이다. 1%를 책임지지 않으려고 제왕절개를 권하는 의사들이 얄밉게 보일 수도 있다. 돈은 돈대로 받으면서 책임은 안지려고 하다니?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가 완벽하게 분만을 한 경우라도 태아가 좀 잘못될 경우 의사가 그 책임을 뒤집어 쓴다. 뭐, 책임을 지라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믿음 때문인지 몇억원을 요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병원이 통째로 날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의사의 과실 여부를 가려줄 기관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의사의 책임 한도가 법으로 규정되지 않는 한 제왕절개는 줄어들 수 없다. A라는 행위를 할 때 자신의 사업체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A라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의사라는 이유로 그런 위험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조건 '치료비를 많이 받으려고..'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만일 자연분만의 수가가 올라 제왕절개와 비슷하게 되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 난 그래도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심지어 자연분만의 수가가 제왕절개보다 더 높을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별 이상없이 사는 이유는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안할까. 그럼에도, 평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돌아서서 의사들을 매도하는 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다. 의사는 같이 공존해야 할 대상이지, 결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호랑녀 2004-06-1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덧붙여 마태우스님의 코멘트두요. ^^

부리 2004-06-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을 가지고 이주의 마이리뷰에 되셨다니,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이달의 마이리뷰도 차지하시길 빌겠습니다. 화이팅, 화이팅!
-부리 드림-

조선인 2004-06-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아 부리님, 플라시보님 축하드려요.

진/우맘 2004-06-1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플라시보 2004-06-1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주아주 간만에 알라딘에서 마이리뷰가 당첨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첨금으로 방금 책들을 주문했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뽑아주신 알라딘 관계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