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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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제목만 보고는 아주 감각적인 단편 모음집인줄 알았다. 이를테면 아멜리 노통의 부류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첫 단편을 읽고 나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그냥 단순하게 시간을 때워줄 가볍고 재밌는 단편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열번째 단편을 읽다가 나는 저자 로맹가리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다. 그는 이미 1980년도에 사망한 사람이었다. 내가 놀란것은 그에 관한 소개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글이 요즘에 쓰였을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글은 20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글이었다. 아마 내가 지금부터 한 20년 후에 읽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글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보니 내가 예전에 읽었던 [밑줄긋는 남자]라는 책에서 여 주인공이 언급한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속의 주인공은 로맹가리가 죽었기 때문에 그가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으므로 그의 글을 아껴서 본다고 했었다. 그때 책을 읽으면서 아마 나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것 같은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나는 그녀가 이 작가의 작품을 아껴서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로맹 가리는 인간에 대해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작가였다.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에서 다각도로 인간에 관한 관찰서를 읽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로맹 가리는 관찰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말이지' 같은 시선이 아니었다.

이 책은 총 16개의 단편으로 되어있다. 책이 별로 두껍지 않기 때문에 단편들은 상당히 짧다. 하지만 읽으면서는 짧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읽으면서는 별로 무겁다고 생각이 되질 않는데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는 그순간 무언가 묵직한게 뒷통수를 치는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어떤 휴머니스트, 가짜, 벽,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읽고 난 다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상당히 흥미롭다. 나도 인간이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 내면을 다 알고 있는 나는 내 스스로도 구역질을 느낄때가 있다. 어쩌면 누구나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인 자기 자신에 대해 깊숙하게 내려가본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인간을 고매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현명하게 그려놓아도 인간은 완전하지가 않다. 더구나 인간은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것도 모자라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거짓말을 들여다보기가 무섭다면 이 책은 보지 않는것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구역질나는 진실이라도 진실을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용기를 내어서 보길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렇게 가볍지 못했다. 꼭 물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에서 읽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기만 한 책일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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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에사는고래 2004-10-0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의 책 쉽지만은 않죠. 그래도 읽고 나면 모서리로 잔뜩 밀려져 있음에도 두 눈 피하고 싶지만은 않은 그런 쳐다봄을 지니게 하는 것 같아요. 에밀 아자르란 필명으로 낸 자기앞의 생도 한번 읽어보세요. (벌써 읽으셨을라나?) 새들은...이 책보단 쉽고 재미있게 그러나 씁쓸하게 읽히더라구요.

플라시보 2004-10-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아직 안읽어봤습니다. 이름은 여러번 들어봤습니다. 무슨 상인가 타지 않았나요? (아닌가? 모르겠다.) 보관함에 담아놓고 나중에 책 주문할때 함께 주문해서 읽어보겠습니다.^^
 
32세, 32평 만들기 - 2,800만원으로 시작하는 부동산 재테크
노용환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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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동안 돈에 관련된 책을 많이는 아니지만 서너권 읽어 봤었는데 전부 돈을 모으는 혹은 버는 실질적인 방법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왜 돈을 모아야 하는가 하는 이론서에 가까웠었다. 아껴쓰고 저축을 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 또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모으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들이었고 그걸 읽고 나서 나는 비로서 돈을 모아야하며 또 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2,800만원으로 시작하는 부동산 제태크라고 되어있다. 저자는 실제로 2,800만원을 가지고 아파트를 샀으며 그 경험담을 그대로 이 책에 담아놓았다. 그리고 처음에는 2,800만원으로 시작한 제태크가 현재는 6억이 되었고 32세에는 32평짜리 아파트를 사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상세하게 적혀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걸 배웠다. 아직까지 한번도 집을 사 보지 않은 나에게 집을 사는 일이란 막연하게 돈을 모아서 (집의 금액만큼) 그 집을 가진 누군가에게 가서 돈을 내밀고 집을 사면 되는것인줄로만 알았다. 어떤집을 사야 하며 또 사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화장품 하나를 사더라도 인터넷 여기저기에 가격 비교를 해 보고 또 실제로 매장에 가서 모델도 보고 하면서 집을 사는건 너무나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왜냐면 앞으로 먼 미래에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책을 읽으니 집은 적어도 억원을 가져야만 살 수 있는건 아니었다. 2,800만원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나 부터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2,800만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책들, 즉 왜 돈을 모아야 하는가 혹은 돈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등등에 관한 책을 읽는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실제로 집을 사고 팔고 그 시세차액을 노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한 책을 읽을때가 온 것이다.

솔직히 말 하자면 책에 있는 내용중 많은 부분은 어려웠다. 저자가 어렵게 써놔서라기 보다는 내가 모르는 용어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대출금을 끼고 집을 사는것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게 되었고 (대출은 무조건 빚이라는 생각에 나는 집살돈을 고스란히 다 모으면 산다고 생각했었다.)얼마전 조금 비싼 오피스텔과 약간 싼 아파트를 두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두가지 다 포기한 것에 대해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었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비싼 오피스텔은 말 그대로 비싸서 돈이 없어 못샀고 싼 아파트는 평수는 괜찮지만 아파트가 후지고 마음에 안들어서 안샀다.) 이 책을 그때 읽었었더라면 나는 그 싸게 나온 아파트를 산다음 큰돈 들이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리모델링을 한 다음 내가 들어가서 몇년정도 살면서 돈을 모아서 더 크고 좋은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좀 어렵고 힘든 부분도 있었던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어떤 장은 대충 읽고 넘어갔지만 만약 내가 집을 사게 된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해야 할 부분이 어떤것인가에 관한 감은 잡게 되었다.

마치 동네 슈퍼에 가서 과자사듯 돈주고 사는게 집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조금 더 확실하게 다가선 기분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더 현실적인 부분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저축에 힘을 쏟고 있지만 내년이 되어서 이사를 할때가 되면 좀 싼 아파트라도 하나 얻을 생각이다. 물론 이 책에 적힌대로 향후 투자 가능성을 충분하게 타진한 다음 말이다. 돈은 가만 앉아있으면 모이는게 아니듯. 돈을 불리는건 더더군다나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이런책을 잡고 씨름하는 것 자체가 돈을 불리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서민에게 부동산 만한 재테크 수단은 없다. 주식의 경우 거의 하루종일 매달려 있지 않으면 힘들고 저축만으로 돈을 불리기에는 현재 금리 수준을 봐서는 그냥 내가 집에서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것과 별반 다를것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은행이 필요치 않은건 아니다. 일단 은행에 강제로라도 적금을 넣어야 돈이 모인다.) 그런데 부동산이라는 것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앞으로 이 곳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혹은 이 집이 앞으로 얼마만큼 가치가 더 높아질지를 알아맞추는건 로또 숫자를 맞추는것 만큼이나 요원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본 결과 어차피 인간이 만든 제도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결국 같은 인간인 나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는게 별로 없지만 조금씩 노력을 하다가 보면 나도 언젠가는 아파트를 사고 또 팔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똑같이 돈을 모으는 두 사람이 있다고 쳤을때. 둘다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 만으로 모은다면 10년이건 100년이건 가진 돈은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람은 부동산 제태크를 하게 되었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처럼 돈은 그저 모으기만 한다고 그걸로 끝은 아니다. 뭐 다달이 천만원 정도 모을 수 있다면야 굳이 투자를 하지 않아도 넉넉한 인생을 살겠지만 (물론 천만원씩 저금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더 악착같이 제태크를 해서 돈을 불린다.) 그게 아니라면. 나처럼 월급을 쪼개서 종자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어떻게 해서건 아파트 하나라도 장만하고 앞으로 노후 대책도 세워야 한다면 이 책이 꼭 필요한 실천서가 아닌가 싶다.

한가지 충고할것은 좀 어려운데 참고 읽기 바란다.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초보 수준이겠지만 그간 안쓰고 모으는것만이 살길 정도만 알았던 나에게는 무척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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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9-2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모델링 하시라니까 그랬어요 ~~ 히히히
웃기시겠지만 전 님의 돈에 대한 글이 제일 인상깊어요 물론 다른 글도 좋아하지만요
특히 그렇다는 거지요 `!! 무지하게 반성하게 하거든요 ^^
계속 계속 마뉘 마뉘 써주세요 `~ ^^ 본 받을 게요 `~

플라시보 2004-09-3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스윗매직님 말 들을껄...아...후회가 물밀듯이^^
돈에 대한 글이 인상이 깊으시다구요.^^ 아마 님이 돈에 관심이 있으셔서 그렇지 않은가 싶네요. (또 알라딘에서는 사람들이 돈 얘기를 잘 안하는 탓도 있겠구요) 그리고 님. 저 본받으면 아니되어요. 제가 얼마나 늦게 정신을 차렸는데요. 흐흐^^

mannerist 2004-09-3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류의 책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편인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쇳가루에 대한 제 패러다임은 (어설픈 넘겨짚기-_-)딱 님 수준이거든요. '아끼고 모으자!'라는. 한번쯤 빌려보든지, 서점에서 서서 보고 패러다임의 전환. 을 시도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땅가지고 장난질 치는 인간들에 대한 증오. 가 유들유들해질 것 같진 않지만 말입니다. =)

플라시보 2004-09-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당장 집장만을 하지 않을꺼라면 빌려 읽어도 무관할듯 합니다. 다만 바로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들은 한권 정도 사 놓고 두고두고 보면서 공부하는것도 괜찮을것 같구요. 그리고 땅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은 국민의 1%도 안될껍니다. 대부분은 서민이니까 그저 내 살 집이나 하나 있었으면 하는거지요^^

미키루크 2004-10-0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런 책도 읽으시는군요.

플라시보 2004-10-0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미키루크님. 간만입니다. 이 책 님이 추천하셨더랬어요^^ 그래서 읽었죠.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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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찜을 해 둔 책이었다. 그러나 지인이 하도 뜯어말리는 바람에 보류에 보류를 거듭하고 있다가 문득 사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 제목만 보면 '지구를 지켜라'가 생각이 났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괜찮았던 영화. 아니 괜찮았다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게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있다니 하고 매우 유쾌하고 감사했던 영화. 그 영화가 자꾸 떠올랐다. 똑같이 지구가 들어가긴 하지만 하나는 영웅 전설이고 하나는 지켜라 인데도 난 왠지 둘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공상을 떨칠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들이 뭐래도 내게는 둘이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그래도 속 깊은곳에는 같은점이 더 많은 이란성 쌍둥이 말이다.

지구 영웅 전설에는 우리가 알고있는 온갖 캐릭터들이 다 등장한다. 주로 만화에서 영화화된 캐릭터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슈퍼맨, 베트맨, 헐크 등등이다. 그리고 듣도보도 못한 또 하나의 영웅이 탄생한다. 바로 한국 출신의 바나나맨. 이름이 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스파이더맨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멋진 이름은 아니다. 다만 바나나가 먹는거라서, 요즘 너무 싸져서 발에 밟힐 지경이라서 좀 저 아래로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그 영웅들은 지구를 지킨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행태는 세계와 닮아있다. 판타지처럼 출발해서 풍자와 코메디로 이어지는 솜씨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시니컬한 어투를 지니고 있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이게 어째서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을 받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상을 받기에는 뭐랄까 너무 정형화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꼭 고지식한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손녀딸에게 여름방학이니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면서 돈이라도 쥐여주는것 같다. 아무튼지간에 이 책이 문학관련 상을 받았다는게 좀 쇼킹하다.

책은 얇고 술술 읽혀진다. 내가 바쁘지만 않았어도, 아니 수면 부족으로 책만 잡으면 잠이 바가지로 쏟아지지만 않았어도 하루만에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이었다. 내용도 괜찮고 재미도 있다. 그런데 좀 초짜같은 분위기이다. 뭘 건드리긴 건드리는데 그게 제대로 건드렸다기 보다는 그냥 건드린 것에 의의를 뒀다고나 할까? 물론 로빈 (배트맨과 로빈의 그 로빈)이 바나나맨에게 자기네 영웅세계를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직설화법을 사용해서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 비스무리한걸 설명하긴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는 너무 아우르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속시원하게 팍 쏘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알다시피 이 책의 저자는 얼마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쓴다. 그 책을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내용도 그렇고 글솜씨도 그렇고 사뭇 다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좀더 대중적이라서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이 책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쓸 수 있으니까 삼미슈퍼스타즈 같은 재미 있을 수 밖에 없는, 재미 있어야만 하는 책을 썼구나 하고 말이다. 단 제일 뒷부분의 수상소감은 좀 깬다. 그래도 안심이다. 삼미슈퍼스타즈를 썼다는건 그 겉멋이 제거되었다는 소리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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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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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배달되었을때 나는 딱 한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 큰걸 어떻게 가지고 다니면서 읽지?' 책은 거의 560페이지에 육박했고 결코 가벼운 제질의 종이를 쓰지 않아서 책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한가지 다행스러웠던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블 (이 책도 장난 아니게 두꺼워서 집에서만 읽었었다.) 처럼 양장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이후 처음으로 책을 반으로 잘랐다. (당시 선생님들은 반으로 잘린 책들을 보면 마치 당신의 머리카락이라도 잘린듯 진심으로 가슴아파 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깨근육의 통증이 더 급한 문제였으므로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책을 자른다는게 좀 걸리긴 했었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너무 무거워서 내가 들고다니질 않고, 그래서 잘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어림짐작으로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반을 잘랐지만 잘린 두권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들고다니면서 읽을만은 했다.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과학교양서. 사실 나는 학교다닐때 과학과 수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다른 과목도 관심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학교를 다 졸업하고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그냥 취미삼아 읽어보니 그게 생각보다 어렵지도 재미없지도 않았었다. 과학과 수학이 재미없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때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내신 15등급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거지로 대학에 들어간 인간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스티븐 호킹과 아이작 아시모프 그외의 사회과학 서적 몇가지를 그럭저럭 재미나게 본 기억만으로 나는 이 책에 덤벼들었다. 두께가 두께이니만큼. 그리고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결코 만만치 않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읽으면서 종종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저자인 빌브라이슨은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 역시 과학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과학자들을 졸라서 자신이 이해가 될때까지 얘기를 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떤 단어들은 학교다닐때 분명히 들었고 그 뜻까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서인지 지금와서 남은건 대략적인 이미지 혹은 이런뜻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 뿐이었다. 그것만 뺀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제목부터가 거의 모든것의 역사이듯. 우리 인간과 관계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가장 처음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비교적 쉽고 재미있는 예들을 들어가며 과학이 절대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이 아님을. 또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가졌던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질문을 조금더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만약 지금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고 시험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이 책을 꼭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아예 처음부터 수학 과학은 나와 무관한 너무나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으로 찍어버리고 포기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읽다가 보면 간혹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시험에 나온다면 교과서에 적힌대로 답을 적어야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이 투껍고 무거우며 약간 비싸다는 것만 빼면 내용 면에서는 100점 만점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더구나 저자가 과학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본인 스스로 공부를 했다고 하니 그 노력만 해도 점수를 주고도 남는다. 빌 브라이슨이 쓴 전작 [나를 부르는 숲]도 그렇지만 책 이상의 책이라 불리울 만하다. 다 읽는데 제법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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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나서, 빌 브라이슨의 능청스럽고도 재치있는 어법에 매료됐지요. 그 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도전해 볼까 어쩔까 망설이는 중인데, 플라시보님의 리뷰가 '지르게' 만드는군요.

늘 솔직하고 편안하게,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칼을 쓸 줄 아는 님의 글솜씨에 매료돼 자주 이 방에 들락날락했습니다, 발자국 남기지 않구요.....
이제 신고했으니, 가끔씩 인사 나누어요^^

플라시보 2004-09-1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 와인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어설픈 제 리뷰를 좋게 봐 주시니 고맙네요^^ 결코 편하고 쉽게 그리고 빨리 읽히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거 읽고나서 현재까지 책 읽는걸 잠시 쉬고 있거든요 (물론 주문한 책이 안오기도 했지만)
아무튼 지르시게 되면 (이 표현 재밌네요) 즐겁게 잘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종종 여기서 뵈어요^^)

픽팍 2004-10-1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두깨에 질려서 포기했는데 봐야 겠네요
ㅋㅋ 암튼 리뷰 와방 잘 쓰시는 듯
ㅋ 자주 올께요
중간고사 끝나고 꼭 읽어 봐야 되겠네요 ㅋ

플라시보 2004-10-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이 참 특이하시네요^^) 저책 무지 두텁죠. 아마 휴대하면서 읽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나시면 집에다 두시고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후의 배심원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때. 나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늘 교과서 이외의 책들에 빠져 있었다. 당시 나를 매료시킨 작가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존 그리샴, 마이클 클라이튼이었다. 어른이 되어버리고 나서는 내 독서 취향이라는 것도 꽤나 많이 바뀌여서 나는 더 이상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책을 사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을 지루해서 미처버리지 않도록 해 준 것에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존 그리샴의 책은 정말로 간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상당히 두꺼웠다. 그의 책은 주로 두터워서 1.2권으로 되어있는게 많은데 요즘은 존 그리샴도 잘 안팔리는지 다소 두꺼워도 한권으로 쇼부를 보려는것 같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오랜만에 만난 존 그리샴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템포도 많이 느려졌으며 책장을 늘리는것 만이 자신의 사명이라는듯 아주 길게 늘여놓았다. 그래서 두꺼운 책으로 인해 손목 관절에 무리가 올때 마다 나는 존 그리샴이 원망스러웠다. 그의 장기였던 법정 스릴러라는 점은 여전했지만 뭐랄까 김빠진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예전의 그 톡 쏘던 장기가 이제는 많이 시들해졌는지. 아니면 내가 그 사이에 너무도 재밌는 책을 많이 봐 버려서 눈이 높아져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지방 신문인 포드 카운티 타임스의 편집장 윌리가 9년동안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가장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기억될 로다 카셀로를 죽인 대니 페드깃에 대한 내용이다. 물론 이 사건들은 두개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편집장인 윌리는 이 사건에 유달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형사 못지 않게 꼼꼼한 취재를 거쳐 신문에 싣는다. 어떤 정황으로 봐서도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대니 패드깃은 집안의 막대한 부와 늘 저질러왔던 부정부패 덕분에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로부터 9년후 대니 패드깃은 가석방되고 윌리는 9년동안 운영해 왔던 신문사를 팔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니 패드깃 가문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다. 그들은 마피아처럼 무법자들이다. 그래서 그 집안의 한 구성요원인 대니 패드깃이 부녀자를 강간 살해하고 그 모습을 그녀의 두 아이들이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선고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대니 패드깃 가문이 내게는 그다지 잔악무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한 비리와 악이 판을 치고 있다. 부녀자를 강간 살해하는 일 정도는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일어난다. 연쇄살인사건이 비교적 적었던 우리 나라도 얼마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에서도 더할 수 없는 끔찍함을 보여주었다. 그에비해 로다 카셀로를 마음속으로 조금이나마 흠모해 왔던 대니 패드깃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끔찍하기는 하지만 연쇄살인범 만큼은 아니다.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이미 대니 패드깃이 로다 카셀로를 강간 살해하는 것에 끔찍해하고 반드시 처죽여야 한다며 부르르 떨기에는 세상의 험한 일들을 너무 많이 보아버렸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는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범죄에 대해 상당히 두려워하는 한편(자신에게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만큼 (남의 얘기일 경우) 무뎌져 버렸다. 그래서 조용한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이 살인사건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와닿지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존 그리샴이 쓴 글을 봤다. 자기가 언급한 법들 중에서 폐지된것이 많으니 제발 자기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지 말라. 이미 자기도 알고 있는 고의적 오류이다며 매우 피곤한 필체로 역자후기를 대신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갑자기 존 그리샴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그런 편지들을 많이 받았으면 역자 후기에 저런 얘기를 적어놓았을까 하고 말이다. 누구나 지적을 받는것은 싫어한다. 더구나 자기가 충분히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한 끝도없는 지적은 정말이지 구토가 넘어올것 같다. 사람들은 더럽게 한가하여 날이면 날마다 남들을 귀찮게 하는 짓을 절대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러한 이유로 얼마전 쓰던 칼럼을 때려 치우려고 했으나 기자가 전화해서 원고마감을 독촉하니 갑자기 무뇌아라도 된것처럼 내일 모레까지 써 드릴께요. 해 버렸다. 나도 그들에게 존 그리샴처럼 말하고 싶다. 다 아니까 제발 메일좀 보내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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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9-0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두 기사에 대해 항의 받으면 피곤해요. ㅠ.ㅠ
그리샴, 저 책도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쩝.

플라시보 2004-09-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냐님에게도 항의를 하는군요. (전 저처럼 어설퍼야만 항의를 받는줄 알았어요. 흐흐. 근데 대체 마냐님께 항의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님은 저 책을 읽고 기사를 쓰셔야 하나봐요. 좀 두껍긴 하지만 영 안읽히는 타입은 아니니 걱정마세요^^

bono 2004-09-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요즘에 출판사 세곳에서 동시에 마감 압박을 받고있습니다. 제발 독촉 메일 좀 안보내줬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시드니 셀던의 Are you afraid of the dark? 마감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고작 3분의 2 끝났을 뿐입니다. 셀던 아저씨... 휙휙 넘어가고 재미있긴 한데... 언제나처럼 좀 허무맹랑한 스토리네요. 다소 비현실적이고...

플라시보 2004-09-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ono님. 마감 독촉을 세 군대씩이나... 괴로우시겠습니다. 저는 오늘 마감 독촉을 받아서 (원래 어제인데 오늘 12시 이전까지 보내라고 해서) 개발새발 써서 보냈습니다. 마음에 하나도 안드는 원고이니 또 독자들로 부터 항의가 빗발치겠지요. 아.... 생각만 해도 머리아픕니다. 요즘은 시드니 셀던을 번역하시나봐요.^^

마태우스 2004-09-0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 뒀어요. 언젠가 갑자기 15권쯤 지를 때, 살 거예요.

플라시보 2004-09-0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그러시군요. 부디 님은 재밌게 보시길^^ (책이 좀 두꺼우니 감안하세요. 팔뚝은 굵으신가?^^)

털짱 2004-09-0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아무리 좋아하던 작가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향이 바래지요.. 유효기간이 있나봐요.. 새로운 금맥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