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아줌마 이야기 - 김형태의 圖詩樂 제1집
김형태 지음 / 새만화책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었다. 그냥 곰 아줌마 이야기라는 책이름만 알 뿐. 이 책을 쓴 사람이 무얼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냥 책쓰는 사람이겠지 했다.)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냥 제목을 보고 장바구니에 스윽 집어 넣었으며 배달이 되어 포장지를 뜯고나서 알았다. 이게 글자 위주의 책이 아니라 그림 위주의 책이란 것을 말이다. 책장을 대강 넘겨 보다가 마지막 장에 미니 CD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컴퓨터에 집어넣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로 실행 시키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악은 총 20분 정도인데 그 안에 나는 곰 아줌마 이야기를 다 읽었다. 아니 봤다.

이 책을 지은 김형태라는 사람은 홍대 회화과를 졸업했고 개인전도 여러번 열었다. 그렇다면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왜냐면 황신혜 밴드라는 당시 내가 이름을 듣고 언니네 이발관, 어어부 밴드와 함께 골때리는 이름을 가진 밴드를 결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음악을 하는 사람이냐 하면 그게 전부는 또 아니다. 보니까 영화음악 감독도 했고 연극을 해서 상도 받았다. 이 책은 어딘가에 연재가 된 것이었고 한국인 최초로 독일에서 황금펜 어쩌고 하는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 아주 다방면에 걸쳐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낮설었다. 대체 뭐하자는 플레이지?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곰 아줌마가 등장하고 그 아줌마는 심심해하다가 정체를 살짝 알려주다가 고생도 하고 새를 키우기도 하고 어느날 문득 사라진다. 그러다가 피카소, 마티스, 고호의 화풍을 빌려 그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겨울잠을 자다가 투명해져버린다. 여기까지는 김형태가 그린 곰 아줌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설가 박민규(저 유명한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쓴)가 삼육구 곰 아줌마라는 아주 요상하고도 괴이한 단편 하나를 덤으로 써 놨다.

아까 위에서 말한 미니CD의 러닝 타임이 20분이었고 나는 이 책을 그 음악이 플레이 되는 동안 다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읽는데 20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한글로 된 문장들 아래에는 하늘색으로 영어로 씌여 있고 그것까지 읽는다면 20일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20분이 나를 무지하게 웃겼다. TV에 나오는 코메디언들이 웃겼을때 웃는 웃음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웃음인데 설명을 하려니 잘 못하겠다.

혹시 우울하다면. 뭔가 수상쩍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하지만 바른생활을 하는 바른 인간이라면 안보는게 낫다. 그는 우선 책이 20분만에 읽혀짐을. CD에 든 음악이 억 소리날만큼 근사한 음악이 아님을. 소설가 박민규가 대략 괴상한 단편을 썼다는 사실을 용서치 못할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재밌었다. 다른때에 말하던 재미와는 약간 틀리긴 하지만 요즘 일에 쩔어사는 나에게 아침부터 신선한 공기를 뭉게 뭉게 불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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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1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20분만에 독파하는 책도 좋아요. 땡스 투!! ^^

플라시보 2004-11-1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아쉽긴 했어요^^ 조금만 더 길었으면 하구요. 흐흐

RainSmile 2004-11-1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분! 인터넷에서 카운셀링 하는 글.. 읽고 공감공감~ 했더랬는데... 재주꾼이고만. 저도 이 책 읽어 보고 싶네요. 요즘 영~ 건조해서..

플라시보 2004-11-1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후다닥 읽히긴 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즐거웠던 책입니다.^^ (인터넷에서 카운셀링도 하는군요. 흠...이 저자 무지 팔방미인이네요)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하게 말 하자면 이 책은 재미있는 책도. 그렇다고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굳이 읽은것은 한번쯤은 이런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내 머리가 영 바보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였다. 거기다 알라딘에서 이름을 알만한 서재 주인장들이 리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추천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에는 '아 이거 빨리 접고 재미있는 책이나 봤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꾹꾹 눌러 참고 읽은 보람이 있다.

이 책에서 말 하고자 하는 것은 앞장에 거의 다 나온다. 뒷 부분 부터는 설명이고 중복되는 부분도 꽤나 있다. 하긴 이 책이 처음부터 남에게 재미나게 읽히기를 목적으로 했다기 보다는 논문에 가까우므로 설렁설렁 읽을 각오를 하고 덤볐다가는 상당히 버거울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란 쉽게 말하면 이렇다. 부자가 있다고 치자. 그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이 부자가 된 노하우를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망하고 어떻게 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자신에게 돈을 꾸러 오고 자신은 돈을 꾸어준 다음 이자를 받아서 더욱 더 부자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걸 나라로 생각하면 된다. 지금 잘 나가고 있는 (경제적으로) 나라들은 우리 나라처럼 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지적재산권을 보호해라 자유무역을 해라 등등. 도의적으로 볼때는 상당부분 맞는 소리다. 하지만 순전히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기들이 정상까지 올라가게 된 사다리를 걷어차서 우리가 그 사다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읽으면서 내가 여태 생각하고 또 알아왔던 것과는 충돌이 좀 있어서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오직 경제라는 곳에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저자가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계속 된다. 그건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부지런하지 않아서 혹은 노력을 덜 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보면 세상은 돈을 가진자의 편이고 또 그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자가 되기가 힘들다. 나라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경제적으로 부흥한 나라들은 개발 도상국에게 절대로 자신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알려주고 (사실은 알려준다기 보다 강요한다.) 경제 성장을 더더욱 더디게 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돈. 즉 경제력이 중요하듯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경제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내가 개인에서 국가로 너무 빨리 점프를 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럭저럭 유익한 책이었다고 본다. 다만 나처럼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 읽기에는 문장도 딱딱하고 용어도 어렵다. 그것만 감안한다면 충분하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책은 언제나 새로운 지식을 주는데 이 책처럼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책을 읽다가 보면 저 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고 하나보다.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세상이 달라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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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11-1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플라시보님과 같은 이유로 분발하여 한번 읽어볼랍니다.

플라시보 2004-11-1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저거 읽으면서 많이 졸았어요. 흐흐. 부끄러워요 BRINY님. ^^

marine 2004-11-1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읽다가 포기했어요 경제 지표 나오고 통계 분석한 건 도무지 저한테 맞질 않더라구요 이 책 말고 장하준이 신문에 발표한 칼럼 모은 "개혁의 덫" 은 한 10배는 더 쉬워요 "사다리 걷어차기"는 자기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를 모은 건데 "개혁의 덫" 은 짤막하게 쉽게 쓰여졌거든요 칼럼의 특징이겠지요 두 책은 같은 내용이라 봅니다

플라시보 2004-11-1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 저도 중간중간 에라이 하고 넘어간 부분 많았습니다. 개혁의 덫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진작에 알았으면 그걸 살껏을..흐흐)
 
인형의 집 - 공포전기선집 1
하나부사 요코 지음, 주진언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겁 많은걸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이렇게 나이를 퍼 먹고도 아직까지 비가 오거나 약간 머리가 주뼛한 날이면 밤에 잠을 잘 못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혹시나 귀신이 눈에 보이는 것. 그래서 나는 공포영화도 못 보고 TV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해 주는 납량특집도못 보며 심지어는 만화 영화에서 약간만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와도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는 손가락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 손에 이끌려 공포영화를 보게 되면 귀막고 눈을 감아서 대체 뭘 봤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서재 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는 검은비님께서 만화책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하셨는데 당시 하릴없이 알라딘을 서성이던 내가 그만 덜커덕 당첨이 되어서 '내 남자친구 이야기' 라는 일곱권의 만화책과 함께 이 책 '인형의 집' 을 선물 받았다. 내 남자친구 이야기를 읽다가 오늘 비도오고 해서 한권짜리인 인형의 집을 보게 되었다. 결과는 이렇게나 겁이 많은 나도 너끈하게 읽을 정도의 공포였다는것. 따라서 진정 공포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싱거울지도 모르겠다.

만화라는 특성상 무지하게 공포스럽기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이 만화책에 등장하는 공포는 곱씹을수록 공포스럽다 정도는 절대 아니다. (원래 진짜 공포는 얘기를 접하는 당시 보다 혼자 있을때 떠올리면 더욱 공포스러운 것이라 했다.) 지금 천둥 번개가 장난 아니게 치기 때문에 읽다가 가끔 깜짝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을 덮지는 않았다. 세상의 모든 공포스런 얘기들이 딱 이정도면 나도 할랑하게 즐기련만. 사람들은 이것 정도는 공포의 범주에도 들지 않는다는듯 온갖 괴기스럽고 스산하며 음산한 얘기들을 즐긴다.

이 만화책에는 책 제목과 동명인 인형의 집을 비롯해서 비색, 혼을 뒤흔드는 새, 가면의 신부 이렇게 4가지의 단편이 있는데 (허억 그러고 보니 숫자가 줄을 4자 이군.) 혼을 뒤흔드는 새의 경우는 너무 시시했고 그나마 인형의 집이 약간 무서웠다. 비색은 무섭다기 보다는 끔찍했고 가면의 신부는 읽자 마자 결론을 추리해낼 정도로 스토리가 좀 뻔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어찌되었건 좀처럼 공포를 즐기지 못하는 내가 간만에 공포를 견디는게 아닌 즐겼다는 점에서는 이 책에 감사해야 할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싱거울지도 모른다. 참. 이 책은 일본 작가가 쓴 책인데 내 생각에 공포 중에서 제일 최고봉은 한국 귀신얘기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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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Green 2004-11-1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싶어졌어요^-^

플라시보 2004-11-1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르바시Urvasi님. 흐흐. 지독한 공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권할 만 합니다.^^
 
열대어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다 슈이치. 언젠가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적당히 믹스하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 작가가 바로 요시다 슈이치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류고 어떤게 하루키인지 설명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너무 감각적이지도 않고 또 너무 쿨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장점이리라. 퍼레이드와 파크 라이프를 이미 읽었던 나로써는 열대어의 선택이 너무 당연했었다. 누구 감독의 작품. 또는 어떤 배우의 작품이라면 충실하게 봐 주는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책을 주문 할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이 하나의 이야기로 된 장편 소설인줄 알았다. 그런데 받아보니가 3편의 중편이 실려 있었다. 첫번째 작품 열대어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다이스케가 애인 마미. 동생 마쓰오 (부모들의 재혼으로 인해 생긴 동생) 그리고 마미의 아기 고무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고무기는 다이스케의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거의 언급이 되지도 또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애인의 아기와 이미 재혼으로 인해 생긴 동생(더구나 부모들은 예전에 헤어졌으므로 따지고 보면 형제도 뭐도 아니다.) 과 함께 사니 다이스케는 모르긴 해도 참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특별한 희생정신이 있다던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없이 그러고 있다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소설을 읽어가면 읽어 갈수록 다이스케라는 인간. 그리 좋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뭐랄까. 나쁜짓을 해도 목적의식이 있다던가 생각이 있어야 하는건데 다이스케는 그렇지 않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거야 하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그는 아무 생각이 없다.

두번째 작품은 그린피스. 다카노는 애인인 치사토와 그럭저럭 사이를 유지하며 있다. 하지만 어느날 이유도 없이 카레를 만들고 있는 치사토를 향해 그린피스 (완두콩이지 싶은데 틀릴수도 있다.)를 던진다. 처음 한알은 장난이었다. 던지는 쪽이나 맞는 쪽이나. 하지만 다카노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치사토는 울어버리고 그날 집을 나간다. 다카노는 그녀가 나가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의 애인을 꼬드기려고 노력을 한다. 열대어의 다이스케 만큼이나 다카노 역시 나쁜 인간이긴 한데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마지막 작품은 돌풍. 펀드매니저인 닛타는 어느날 휴가를 떠나고. 그 휴양지에서 민박집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가 민박집 주인의 아내를 유혹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만 더 하면 저 여자 닛타에게 넘어가겠군 하는 인상을 주지만 그녀는 우리의 예상과는 딴판으로 행동을 한다. 닛타는 다시 휴양지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오고. 돌아오기 전 그녀에게 어딘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한참 후에야 파티 코디네이터를 차에 태우고 그녀와 약속한곳을 지나다가 그 약속을 기억해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가지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은 알겠는데 무엇을 말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 분명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다소 나쁜 인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의 나쁜 인간들 처럼 어떤 생각과 목적이 있는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사고를 하지 않는다. 그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 모음집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재밌게 읽기는 했지만 별 셋 이상을 주기는 힘들다. 소설이 뭘 가르치려 든다거나 은근히 교훈적인 것은 너무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나쁜 인간들이 생각없이 등장하는 것도 깨름직하다. 내가 너무 판에 박혀서 그런걸까? 열대어도 그린피스도 돌풍도 나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그냥 나쁘니까 나쁜거지 뭐 별거 있겠어 의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다. 다시 무턱대고 일본인들 특유의 턱도없는 쿨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이제 쿨은 그만 좀 우려 먹었으면 좋겠다. 하루키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말이다. (작가는 뒤에 영화나 인터뷰 같은 비주얼 잡지의 광고사진을 좋아한다. 그런 사진을 데생하는 것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 라고 했는데 왜 그런걸 쓰고 싶은걸까? 이해할수가 없다. 내게 있어 그런 광고들은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무슨말을 하고 싶은지 상상하는건 니 자유야 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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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전당포 살인사건
한차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골랐을때는 제목에서 오는 제기발랄함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영광 전당포 살인사건. 어딘가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영광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전당포라는 것에서 풍기는 뉘앙스도 그렇고) 무언가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질듯한(심각한 살인사건이라면 굳이 제목에다 살인사건이라고 적지는 않는다.) 느낌이 들지 않는가?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나는 이 책을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옮기고 주문버튼을 클릭하고 국민은행으로 가서 송금을 하고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 책을 받아봤을때는 판형이 좀 달라서 놀랐다. 하드커버에 꼭 애들 동화책처럼 세로는 짧고 가로는 약간 더 넓은 책이었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거봐. 판형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뭔가 색다름을 추구하는거 아니겠어? 모르긴 해도 이 책 끝내주게 엽기적이고도 재밌을꺼야' 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읽기 전 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한 페이지 두 페이지로 넘어갈수록 점점 이건 아닌데 싶었다. 우선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따위 문체를 쓴단 말인가. 무라카미 하루키로 인해 불기 시작한 심플하고도 심드렁한 문체를 이 작가는 보도 듣도 못했단 말인가. 문장은 길었고 미사어구는 쓸떼없이 너저분하게 많이 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내가 뭘 읽는지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 책을 그만 포기 해 버릴까 하고 생각했었다. 나랑은 코드가 안맞아도 너무 안맞는 문체 때문에 도저히 더 참아주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한번 집어든 책에 대한 예의가 있지 싶어서 절반까지만 읽어주자 싶었다. 그리고 점점 읽을수록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방팔방으로 튀던 문체가 조금은 단순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읽는동안 내가 그 문체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은 처음부터 살인사건이 이미 일어나 있다. 주인공인 차연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노인이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 노인의 파출부로 일하던 원형을 만났던 일을 떠올린다. 같은 라인에 살고있는 소심한 청년 김시민을 만나게 되고 차연은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원형으로 부터 영광전당포 주인을 살해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사실 이 책은 문체가 튄 만큼이나 시점과 내용이 여기저기서 끼여들고 왔다갔다 해서 매우 복잡하다. 처음에는 평이한 백수의 일상을 나열했다가 다시 연애소설 흉내를 냈다가 갑자기 70년대 운동권 얘기를 한다. 그리고 유전자 합성인간이 등장할 쯤에는 대체 이 소설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7~80년대에 대학을 다녔을, 장발 단속이 있었고 무조건 끌고가서 이실직고 하라며 사람을 족치던 시절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 시절에 관한 기억이라곤 대머리 대통령이 저녁 뉴스마다 빠지지 않고 나와서 '보온인은' 하며 말머리를 시작했던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우리가 지나온 역사이지만 6.25가 와닿지 않는것 처럼 그 시절 역시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이 땅에 있는 거의 모든 젊은 세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한차현은 그 시절을 우리에게 간접 경험을 시키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차연과 원형의 사랑을 얘기하고 참으로 느닷없는 리플리컨트 김시민이 등장하고 영광전당포 주인이자 과거 고문 기술자였던 주응달이 등장하고 그에게 고문을 당했던 또 한명의 차연을 등장시킨게 아닐까?

재밌겠다며 집은 책이 결과적으로는 너무 심각해져 버렸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어떤 것도 남는게 없다. 다만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그랬었구나 하는 정도이다. 시대에 대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경험해보지 않고 오로지 말로만 들은 얘기들이 영화나 TV드라마보다 더 와닿지 않는건 사실이다. 이 소설은 내용도 그렇고 전개 방식도 그렇고 상당히 불편한 책이다. 읽어보라고 권해야 하는건지 별로라고 말려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끌려가서 반 병신이 되어서 나오고 대모가 일상이었던 세대들에게는 기억이겠지만 아닌 세대들에게는 그저 지난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그들이 피를 토하며 얘기를 한다고 해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경험한 이들의 공감을 얻어낸다는 것은 역시나 무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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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0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들에 대해 팍팍 공감토록 해주는 멋진 저작들이 가끔 있죠....하지만 그런게 어디 쥐어짠다고 되는거겠습니까. 제게두 아쉬움이 많았던 책임다. 기대치만 괜히 높았던건 누굴 탓해야하는지, 원.

플라시보 2004-11-0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 책은 좀 중구난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시절을 얘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엄하게 별로 필요도 없어 보이는 리플리컨트들은 왜 등장을 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