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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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무식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실제로도 어느정도 그런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나는 책에 대해 딱 하나만 기대를 한다. 그것은 '재미' 이다.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고 해도 또 엄청나게 유익하다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도무지 읽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좋아한 이유는 오로지 재밌는 책을 써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의선물 이래로 아주 뚜렷하게 재미난 작품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여덟작품 모두 그럭저럭 별 셋에서 넷 정도는 흔쾌히 줄 정도의 재미가 있었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책 비밀과 거짓말은 좀 미안한 얘기지만 도무지 아무런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책은 여태 은희경이 글을 쓰던 스타일과 많이 다르다. 아예 작가가 의도를 하고 이제는 좀 달라져 보리라 작정을 한것 같은데 결과는 그저 그렇다.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내내 궁금했었다. 기승전결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없이 나열해대는 주인공의 얘기들. 그것도 모자라서 간혹 끼여드는 주변인들의 삶은 어떤 조화로움도 보여주지 못한다.

크게 보자면 이 책은 K읍이라는 곳에 살다가 이제는 도시로 떠나와 어른이 된 영준과 영우 형제의 이야기이다. 허나 여기에 갖가지 다른 얘기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마치 큰 비밀처럼 다루어지는 아버지에 관한 것은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맹숭맹숭하게 끝이 나 버린다. 원래 사는게 다 그렇지만 그래도 소설에서는 좀 더 재밌었도 되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2년 반)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랬다. 읽는 나도 이렇게 재미가 없는데 쓰는 사람은 오죽했을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이전 스타일과 너무도 달라져버린 글은 재미를 붙이기가 힘들었다. 할말이 없는데 길게 길게 말을 하는 사람옆에 있는것 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고 힘들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산 책은 무조건 읽어치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없었다면 애진작에 포기했을 것이고. 은희경 작가가 뭘 남겨주진 못해도 적어도 재밌게 읽을 책만은 잘 쓴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덜 읽힌채로 그냥 뒹굴었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은희경이 일기장식 소설을 써댄다고 지겨워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보자면 적어도 일기장식 소설은 아니다. 일단 주인공이 여자도 아니고 남자 두명이니 본인의 일기일래야 일기 일 수가 없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어떤 작가들은 자기 얘기나 약간 변형하고 뒤틀어서 쓰는것에 만족해야지 완전한 창작을 하려고 하면 안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은희경은 이 책에서 완전한 창작을 시도했고 그 점에서는 높이 사 줄만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창작물이 너무나 재미없는 것을 말이다.

새의 선물이나 혹은 그 일련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재미를 원한다면 이 책을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달라진 은희경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만큼 적당한 책은 없을 것이다. 재미 문제만 별도로 한다면 이 책을 정말 은희경이 쓴건가 싶게 너무도 그녀와 다르다는 점 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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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5-02-2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은희경 씨 작품은 교양시간에 읽었던 '아내의 상자'가 전부라;;;
은희경님 작품이 재미있다는 말이 상당히 의외네요 저는 아내의 상자 굉장히 고통스럽게 읽었는데;;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기가 여간 쉽지가 않더라구요;;
암튼 이 책 도서관서 빌려 볼까 했는데 안되겠네요 ㅋㅋ
플라시보님 혹시 주제 사라마구란 작가 아세요??
친구 추천으로 '죽은자들의 도시'읽었는데 넘 잼나더라구요 ㅋㅋ
제가 읽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답니다. ㅋ

플라시보 2005-02-2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잠시 착각하셨나봐요.^^)는 제 리뷰에도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로 저도 아주 재밌게 읽은 작품입니다. 은희경씨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새의 선물이 제일 재밌습니다. 좀 오래전에 특집 단막극으로도 만들어졌을 정도니까요. (거기 나오는 이모를 윤손하가 맡았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는 그다지 기억에 남을만큼 재밌는건 아니고 그냥 그냥 재밌는 정도입니다.

마냐 2005-02-2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예전에 한권 (뭔지 기억도 안나요..-,.0) 읽고서...음, 내 타입은 아냐...하고 미뤄놓았다가...다들 이 책 갖고 난리길래...빌려놓은 상태임다. 흠흠. 읽을 책 많은데, 고민되게 하시는군요. ^^;;

플라시보 2005-02-20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으...이상하게 요즘은 다른 사람들과 제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더라구요. 대강은 다들 비슷하게 가는 법인데 저만 왜 삐딱선인지...(혼자서 되게 고민한답니다. 왜 난 재미가 없지? 혹은 왜 난 재밌지? 하고 말입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갔으니 이전의 은희경씨 책이 재미없었다면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리아트리스 2005-02-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재미 없게 읽으신 분이 또 계셨네요. 저도 도무지 이 소설에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답니다.

플라시보 2005-02-2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아트리스님. 그러게요. 은희경의 다른 책들은 그럭저럭 재밌었는데...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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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도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그게 도저히 허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가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매번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낼 리는 없겠지만 어찌된 셈인지 나는 박완서의 소설만큼은 소설이 아닌 자서전처럼 혹은 일기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것은 박완서의 글에 매번 등장하는 여자가 한국전쟁을 겪고, 그 와중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대학교), 미군부대에 취직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존심 쌔고 강인한 어머니가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남자네 집은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그것도 플라토닉한 사랑에 대해. 허나 박완서는 그 플라토닉한 사랑을 찬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수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켕기는 욕정이라고 그 사랑을 회고한다.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소설은 아니다. 누구와 어떻게 어떤 사랑을 했는가 보다 이 책에는 당시 시대상황과 주인공인 내가 처한 환경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 놓았다.


맨 처음 말한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설정들이 이 책에도 등장하므로 소설 그 남자의 집은 하나의 새로운 소설이라기보다는 여태까지 소설들의 연작 정도로 느껴진다. 소설은 이미 늙어버린 나와 그런 내가 회상하는 내가 번갈아 등장한다. 그녀의 회상 속에는 물론 그 남자와 그 남자의 집이 등장하지만 그보다 그녀의 결혼과 결혼생활. 주변인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한다. 원래 이 소설은 단편으로 발표되었다가 현대문학 50주년을 기념하여 장편으로 늘여서 쓴 소설이다. 실제로 박완서는 현대문학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박완서가 살던 동네에 현대문학의 첫 사무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책 자체로는 주인공의 사랑 얘기이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문학에 대한 사랑의 헌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쓴 글들처럼 감각적이거나 자극적이진 않지만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이 사람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팔자를 타고났구나 싶다. 딱히 감칠맛나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지만 박완서의 글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간혹 중복되는 소재들이 조금 지겹다싶게 느껴지지만 어느새 새로운 책이 나오면 또다시 찾게 된다. 이 책은 박완서의 소설들 중에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흡입력은 강하여 한번 잡으면 쉽사리 놓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굳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박완서 소설의 딱 평균적인 정도라고 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내가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자마자 엄마의 책장에서 처음으로 본 책이 박완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였다. 너무 어려서 읽었다기 보다는 그저 글자를 소리내어 읽는것에 지나지 않아서 내용 같은 건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만 그때부터 나는 내가 자라서 글자를 쉽게 읽게 되면 이 사람의 책을 꼭 찾아서 읽어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제 몇 해 만 더 있으며 엄마가 책장에 박완서의 수필을 꼽아 두었던 나이와 비슷해진다. 얼마 전 전화통화에서 엄마도 이 책을 읽으려고 사놨다는 얘길 들었다. 박완서는 적어도 엄마와 나에게는 특별한 작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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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2-1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놨는데요,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님이??^^

줄리 2005-02-1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는 저에게도 특별한 작가예요. 먼저 같은 박씨 가문이고 ㅎㅎ, 또 공감할게 많은 여자라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분노나 연민이 어쩜 그리도 내가 느끼는것과 비슷한지 가끔 이 여자 혹시 나 아냐 이런다니까요. 제가 좀 젊으니까 손해이긴 하지만서두요 ㅎㅎ 하여간 박완서님이 오래 사셔서 계속 좋은 책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플라시보님도 계속 이렇게 좋은 리뷰 써주실테고요~~

플라시보 2005-02-1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후훗. 제가 안가져갔어요. 믿어주세요.^^ (책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dsx님. 아. 저도 그러고보니 저도 박가군요.^^ 님과 이 작가는 비슷한 부분이 많나봅니다. 저도 박완서 작가가 오래오래 집필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스토리
황경신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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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순수 혹은 순진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아직 내가 어리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순수나 순진은 내게 있어 가식과 일맥상통한다. 대체 이렇게 팍팍한 세상에 온갖 나쁘고 슬프고 아픈 일들 투성인 현실에서 순수하거나 순진할 수 있기나 한걸까? 어른이 되고 난 이후 내가 순수하거나 순진했던 순간의 대부분은 알고도 모르는척 했던거였고 그건 마치 모 방송국 프로그램 코너에 들어간 순수의 결정체 같은 꼭지를 맡아서 어거지로 원고를 쓸 때처럼 몸에 작은 옷을 억지로 껴입는 느낌이다.  


내가 본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들. 나는 그들이 틀림없이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라고 생각했다. 필요에 의한 순수가 아닌 정말 순진한 사람들은 세상 부적격자 혹은 지진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도무지 나와는 맞지 않는 여직원과 여러번 트러블이 있었는데 내가 그녀에게 가장 견디지 못하는 점이 나이와 걸맞지 않는, 그래서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순진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녀가 순수하지 않은 순간들을 찾아내고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순진하고 순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기준으로 밖에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 어쩌면 나는 순수하거나 순진하지 못한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대신 그것을 의심하고 부정했는지도 모르겠다.


황경신의 초컬릿 우체국은 그녀가 몸담고 있던 페이퍼라는 월간지에 실린 글들이다. 한때 페이퍼를 꽤나 열심히 봤던 나는 그녀의 글들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심지어는 오만방자하게도 이런 여자는 나를 한번 만나서 제대로 잔소리를 좀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일 뿐이랍니다 하고 생각하는 그녀의 머릿속을 제발 좀 어떻게 하고 싶었었다. 페이퍼라는 잡지의 성격이 원래 좀 그렇기도 하지만 그녀의 글은 유달리 그 증상이 심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잃어버린 순수를 찾고싶네 어쩌네 하는 닭살스런 마음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리 길지 않은 세월속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잡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내 마음과 정신에 풀 한포기 심어주고 싶은 느낌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글은 수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화라고 할 수도 없다. 분명 맨 정신으로 냉정하게 보면 동화인데 그녀의 글을 계속 읽다가 보면 그 모든 일들이 어쩌면 그녀에게 실제로 일어난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그녀는 이 책을 쓸 수 있는 힘이 오른손이 아닌 왼손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래 어쩌면 순수와 순진은 오른손이 되기에는 힘들것이다. 그녀의 주변에 온통 착한 일들과 착한 사람들만 살지 않는 이상. 그녀 역시 가끔은 영악하고 나쁘기도 해야겠지. 하지만 그녀는 순수와 순진을 나처럼 아예 거짓으로 몰아붙여서 쓸어내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그것을 왼손으로 슬쩍 옮겨 두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녀의 왼손이 쓴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이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어려운 책도 아니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내가 책 한권을 읽는데 걸리는 평균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건 어쩌면 순수와 순진에 대한 내 마음이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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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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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은 무척 유쾌하게 시작한다. 꼭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는 것 처럼 재기발랄한 문체와 별 내용도 아닌데 길게 길게 잘도 늘여서 쓰는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조금씩 더 읽어 갈수록 나는 왠지 이 작가가 처음부터 어떤 방향을 잡고 소설을 쓴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키보드를 두들겨 나가기 시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문체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특징. 거기다 소설의 중간분량쯤에는, 그녀가 기계를 다룰줄 모른다고 첫장에 쓰고서는 중간즈음에 자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기계를 척척 만지는 여자가 신기하기만 했다 뭐 이런식의 실수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실수이지만. 이런 실수는 소설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마치 인기없는 드라마가 작가를 교체한것 처럼 계속해서 달라지는 문체를 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대게 소설책은 사흘안에는 다 읽는 편이지만 이 소설은 무려 8일이나 걸렸다.

그러나 아주 재미없는 소설은 아니다. 얘기 자체는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던게 아닐까 싶다. 딱 10분이면 재밌을 얘기를 1시간 분량으로 늘여버리면 이야기는 탄력을 잃고 여기저기서 헛점을 드러낼 뿐이다. 이 소설이 딱 그짝이다. 시작도 좋았고 소재도 괜찮고 내용또한 그럭저럭 잘만하면 근사한 소설책 한권을 뽑을 뻔 했으나. 작가의 의욕이 너무 지나친건지 아니면 정말 묵직한 소설을 쓰고팠는지 몰라도 늘여도 너무 늘였다. 그리고 늘이는 와중에 작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는지 소설은 자꾸 갈팡질팡한다. 뭔가 굵은 줄기가 있고 거기에 잔가지를 친 느낌이 아니라 이야기들이 그저 얽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일이건 간에 중심을 잡지 않으면 우왕좌왕 하게 되는데 소설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날 한 남자가 직장을 떼려 치우고 소설가가 되기로 한다. 그의 생각도 있었지만 임신을 한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소설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남자는 도서관에 가서 소설을 쓰려고 하는데 그러다 우연히 옛날에 알던 여자를 만난다. 그녀도 소설을 쓰고 있다. 어찌어찌 하여 그는 그녀의 소설을 아내에게 자신의 소설이라며 보여준다. 아내는 한껏 고무되어 소설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내가 밝힐 수 있는 소설의 줄거리는 여기까지다. 소설에는 그의 얘기 외에도 그가 만난 옛 여자의 얘기. 그리고 그 여자가 쓴 소설이 나온다. 소설속의 소설이라는 이중 구조를 택했음에도 중심을 잃고 초심을 잊은 소설은 흔들린다.

책을 읽다가 나는 주인공의 아내가 몹시 거슬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그게 무려 294페이지에서 303페이지에 다란다. 그게 다 아내 혼자의 일방적인 수다인데 그 수다 또한 이 소설과 닮아 중구난방인지라 나는 그의 아내가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여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부분은 너무 지루하고 이상했지만 산 책은 다 읽고 본다는 신념 하나로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독자들에게 꽤 높은 별점을 얻었고 문학동네 8회 수상작이라는 훌륭한 타이틀도 달고 있지만 내게 이 소설은 심하게 별로이다. 가장 큰 불만은 작가가 어떤것을 쓰겠다는 중심을 잡지 않고 그저 써지는대로 쓴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거기다 느닷없는 해피엔딩은 시청률 하락으로 인해 조기종영의 운명을 맞이한 재미없는 드라마같다. 쓰다가 보니 점점 길어질것 같아 그만 자기가 뿌려놓은 모든 스토리를 한꺼번에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길은 이게 최선 이라는듯 그 헤피엔딩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누가 이 책을 읽을만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럴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별점이 높은것이 좀 걸린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고 괜찮았던 소설이 왜 내게는 이렇게나 엉망이었던 것일까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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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02-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이 책이 나왔던 제 고등학교 무렵에 이 책 읽고 싶다고 하니까 재미없다고 고개 저으시던 아는 분의 충고가 생각나는군요. 플라시보님까지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이 소설을 아직도 못 읽었다는 부채감을 그만 접어버릴까 싶기도 하네요.ㅎㅎ

플라시보 2005-02-0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 저는 별로였는데요. 다른 분들은 괜찮게 읽으신것 같아요. 별점 두개 주면서 평균 깍아먹는거 같아 어찌나 망설여지던지...(학교에서 시험칠때도 그렇잖아요. 반평균 깍아먹는 인간들 어쩌고 하면서..흐흐.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혹시 모르니까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읽어보세요. 저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편협한 느낌일 뿐이니까요. 어쩌면 제가 저 책에서 좋은 무언가를 발견 못한걸수도 있습니다.^^

nemuko 2005-02-1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오래오래 들고 다니다가 결국 비행기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뒤를 못보고 말았네요. 슬슬 지겨워지던 차라 별로 아깝지도 않았답니다^^ 계속 허접해져서 뒷마무리를 어떻게 할라나 했더니 해피엔딩인가 보네요...

플라시보 2005-02-1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emuko님. 저도 처음 시작과 달리 조금씩 지루해져서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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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 즉 아름다움이란 뭘까? 사실 아름답다는 표현을 많이 쓰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설명을 하라고 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아름답다고 느끼긴 느끼되 그것이 어째서 그렇게 느껴지는지, 혹은 무엇때문인지는 잘 몰랐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인 지금도 나는 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는 대답밖에는 할 것이 없다.

책의 저자 진중권은 에셔의 그림과 함께 미학을 얘기한다. 고대인들의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서 에셔의 '그리는 손' 까지. 미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 처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철학과도 수학과도 관계가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파고 들어갔을때 그것은 참으로 여러가지 학문들과 만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미학이라는 것이 워낙 망망대해라 그런지 이 책 한권이 등대가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보통 무언가 학문적인 것을 다룬 책들은 읽고나면 어느정도 개념이라도 잡히기 마련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은 읽긴 읽었지만 딱히 기억나는 대목도 없으며, 어떤 책이냐고 설명을 하기도 힘들다. 그냥 미학을 다루었다는 말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워낙에 유명하고 많이 읽힌 책이라서 사 보긴 했지만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혹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부분에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책의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서는 그런 재미가 많이 떨어졌다.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들어가기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저자 진중권이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참고서적들을 읽은 만큼. 이 책은 이 책 하나로 끝나기에는 너무도 방대한 미학을 다루고 있는지라 그 개념을 잡는 것 조차 힘들다. 다만 막연하게 나마 미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준 점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

솔직히 그동안 수 많은 책의 리뷰를 썼지만 이 책의 리뷰만큼 캄캄했던 적은 드물었다. 오히려 쓸 말들이 너무 많아서 줄이고 줄여야 했건만. 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책은 단지 어렵다 정도가 아닌 모호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감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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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1-2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그랬어요. 그래도 미학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 썼다고 하긴했는데...어떤 건 이해할 것 같고, 어떤 건 좀 이해 안되고...2권 사 놓고 아직도 못 읽고 있습니다.>.<;;

플라시보 2005-01-2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1권만 샀는데 2권을 살지 말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총 3권인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네요.^^

마냐 2005-02-04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에.....너무 유명한 책인데, 읽지 않아 찜찜한 경우가 바로 이 책임다. 님의 리뷰를 보니, 에에...이 찜찜함이 당분간 더 계속될거 같군요. 추천함다.

플라시보 2005-02-0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저도 너무 유명한 책이라 꼭 읽고싶었다기 보다는 이런 책은 한번쯤은 읽어줌직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읽었더랬습니다.^^ 허접한 리뷰임에도 추천 감사합니다.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