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굴라.오해 알베르 카뮈 전집 1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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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오해' 

희랍비극의 질감을 현대문학에서 느끼고자 한다면, 몇몇 기독교 설화를 여성을 주인공으로 절절한 이야기로 재해석하는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범죄자에게도 분명하고 물러설 수 없는 자기 동기가 뚜렷한, 꽂히는 대사들을 즐기고 싶다면, 너무 가벼운 설교와 교훈과 윤리에 지쳐 있다면,  카뮈의 이 희곡을 한 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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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오해'의 기본 줄기가 되는 설화는 탕자의 비유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성경 속 탕자의 비유는 한편으로는 남자들간의 관계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아버지와 장남과 작은아들 사이의 삼각관계, 가족 간 남성관계를 다룬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탕자의 비유가 남녀를 막론하고 남은 자와 떠나 자의 역설적인 믿음의 차이를 교훈으로 주기는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믿음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부터 진실로 우러나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방탕한 생활과 범죄는 사회적 의미를 너머 그와 다른 차원의 해석을 불러오기도 한다. 물론 모범생을 보는 다른 차원의 해석도 포함하겠지 ) 흥미로운 것은 아들들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인데 그 유산을 상속 받았으나 모두  탕진하고 구원 받기 위해 돌아온 탕자와 아버지 곁에 남았지만 아버지가 거두는 탕자를 시샘하고 아버지에게 불만인 장자 사이의 이야기로 생각해 본다면 '오해'와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구석들이 있다

탕자의 비유에서 구원을 원하는 이는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된 집떠난 아들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재산가로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들을 환대하며 아들을 구원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바로 그 아버지의 환대 때문에 장자는 억울하고 불편하다. 나는 이렇게 아버지 곁을 지켰는데 방탕한 동생을 위해 잔치를 열어주시다니!

 
'오해'의 근간이 되는 설화에서는, 떠난 자는 역시 아들이지만 남은 자들은 어머니와 여동생이다.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 여성들은 삶이 고단하고 어떻게든 지옥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남성들을 살인하여 돈을 갈취해 먹고 살며 구원을 꿈꾼다. 집 떠난 아들은 탕자가 아니라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고 그는 늦었지만 자기 의무를 깨닫고 모녀를 구원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들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고민하고 자기 정체를 드러낼 적절한 말을 찾아 고민하는 동안, 모녀는 그를 살해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자살하지만 딸은 자기 입장을 버리지 않는다. 
 

모녀가 행복하기 위해서, 혹은 행복해질지도 모르니까 살인을 했는데 그게 바로 자기 아들이다. 오이디푸스 왕 역시 자기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죽였더니 그가 바로 아버지다. 살해당하는 이들은 모두 남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거나 모녀가 아들을 죽이거나. 

 

남성들 간의 이야기에서는 구원과 경쟁에 관한 안정적이며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더니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에서는 궁핍하고 절박하며 비극적인 톤이 주를 이루는구나.  여성들은 여전히 소수자라 소수자의 처지란 것이 퍽이나 안타깝고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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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마린
캐럴 앤셔 지음, 양은주 옮김 / 민음인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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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설정과 구성이 기발한 소설. 동명의 인물은 동일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관계 다른 직업 다른 상황에 놓여 세 가지 양식의 삶을 체험한다.  기본 축이 되는 것은 고교생 이전시절까지의 삶과 관계들. 그것에 기반하여 제각각 평범한 부동산업자로 교수로 이혼녀로 살아가는 동명의 인물은  결국 자신의 성정체성 (혹은 사랑이라고 표현하자) 관련하여 모두 위기에 봉착하고 그것의 회복을 위해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는 공통의 결말로 귀결된다. 

소설은 여러갈래 책읽기로 독자를 안내한다. 현재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 무엇이든간에 실존적인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사색하게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여러가지 이유로 자기정체성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어떤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지를 검토하게도 하며, 가족간의 상호작용 과정을 객관화하면서 소통과 사랑이 어려운 이유를 성찰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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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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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과정과 사랑에 빠진 자아를 관찰하는 이 소설은 장에 따라 정조(調)에도 편차가 있다. 어떤 장들은 들떠 있고, 어떤 장들은 시니컬하다. 어떤 장들은 매우 분석적이고 어떤 장들은 매우 우울하다. 사랑을 다룬 소설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인문지식을 바탕으로 고전을 인용하되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쓴 글임에도 빛나는 통찰이 결합되어 학문이 되기 어려운 '사랑'이란 소재를 두고 소설쓰기를 통해 철학적, 심리학적으로 사유하고 있다.  

우리들은 흔히 서양인들이 사랑을 나눌 때 성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성적인 태도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다 정작 그들이 지니고 있는 관계와 자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태도는 도외시 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이 성만이 아니라 성찰적인 작업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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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탄생
캐롤 길리건 지음, 박상은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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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길리건은 문학적 필력을 바탕으로 심리학을 쉽게 풀어내는 학자이다. <다른 목소리>의 저자로 유명한 길리건은 <다른 목소리>에서 남녀의 도덕관과 도덕발단단계에 성차가 있음을 밝혀냈다. 남성심리학자들이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한 도덕발단단계를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며 여성을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풍토를 비판하고 남성과 다른 여성만의 독자적인 도덕적 목소리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2002년 저작인 <기쁨의 탄생>에서는 <다른 목소리>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남녀간의 사랑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이유를 규명한다. 길리건 스스로 기쁨이 넘치는 사랑에 이를 수 있는 '사랑의 지도'라고 명명한 <기쁨의 탄생>에서 그녀는 줄기차게 여성들이 내면 깊숙히 숨겨둔 참다운 자기 목소리를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자기목소리를 내기 위해 관계를 무시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것은 둘 다 목소리와 관계의 상실을 불러온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인용했던 '오이디푸스 신화'는 무리하게 가부장제를 지키기 위해 관계가 단절되어 일어나는 비극이다. 그러나 아풀레이우스의 '변형'에 나오는 '프쉬케와 큐피드 신화'는 프쉬케가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게 사랑에 따랐던 결과 비너스와 큐피드가 자기 정체성을 재인식하며 변화에 이르게 한다. 프쉬케와 비너스는 마치 고부간의 갈등처럼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던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변신하며 신화는 가부장을 허무는 사랑과 관계의 이야기가 되어 더 나아가선 민주주의와 사랑의 상관관계를 간파하게 한다. 사랑에 성공한 프쉬케와 큐피드 사이에서 낳은 딸이 바로 기쁨(Pleasure)이다.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숨기는 관계는 죽은 관계이다.

그러나 오래 묻어둔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전문가와 상담하며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는 일은 그래서 매우 소중하다. 가족을 위해, 집단을 위해 참아 버릇하는 한국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여 행복한 사랑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상담소를 찾아 목소리 찾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세익스피어, 안네의 일기, 희랍고전 등 문학작품을 통해 여성들의 참된 목소리를 찾아내고 생생한 상담사례를 제시하여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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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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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경주 감은사탑과 문무대왕릉이 있는 바닷가에서 일어나던 질문이다. 호국을 위해 위태로운 탑을 세워두고 죽어서도 호국하겠다며 왕은 스스로 수중에 묻혔다. 모래사장에는 여기저기 삼삼오오, 혹은 홀로, 술병을 세워두거나 과일을 늘어놓고 추운 곳에서 미동하지 않고 수평선을 향하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빌며 제사지내는 이들이 있었다. 묘한 대조라고 생각했다. 탑 쌓기를 지시하고 무덤을 세운자들과 제사지내는 이들은 서로 바라는 바가 다르다. 경계가 중요한 자들과 생이 중요한 자들은 바라는바가 서로 다르고 전쟁의 의미도 서로 다르다. 도모유키는 민초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여전히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등등의 내전과 외전 가운데 전쟁을 지휘하지 않는 이들에게 전쟁은 적아의 구분없이 대개는 생을 멸하는 폭력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진행된다는 것은 가끔은 의아한 일기도 하지만 거부와 저항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모파상의 '비계덩어리'에는 독일병이 프랑스농민을 도와 농사일을 나누며 이웃처럼 동병상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로 돌아가면 그도 농민이고 전쟁이 어서 끝나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기를 바라는 독일병사에게 프랑스 농가는 지켜주고 싶은 가족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 사사로운 적대감이나 대립해야할 이유는 딱하니 없다. 도모유키는 임진왜란을 겪는 일본인 민초와 민초출신 병사들의 삶의 내력을 그리며 전쟁의 실상을 직시하게 한다. 민초들에게 전쟁은 대개가 허무하다. 극단의 폭력인 전쟁은 거부되어야 한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력이 개성있는 문체로 뒷받침 되어 좀더 작가의 색깔과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에게, 특히, 전쟁을 전략구사와 게임의 하나로 여기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이겠다. 성인들에게도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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