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걸 - [할인행사]
카트린느 브레이야 감독, 아르시네 칸지앙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에 모든 남성들이 팻걸에 등장하는 인물들 같진 않을 것이다. 사랑과 욕정을 동일시하거나 혹은 구분하지 못하고 낭만적 꼬드김으로 하룻밤을 낚아 무모하게 엄마의 오팔반지를 받치기도 하지만, 춘향이와 몽룡이 같은 인문적 진정성이 결핍된 이태리 법대생과 프랑스여고생의 과잉열정은 성숙한 사랑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모든 남성들이 그들 같진 않을 것이고, 모든 여자애들이 그 여고생 같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남녀는 그러할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여자애는 사랑이라 믿고 싶었지만 그 남자애의 엄마가 등장하면서 고드름에 살이 닿듯 사랑의 허울은 벗겨지고 얇팍한 관계의 실상은 드러난다.

청소년의 성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양상은 춘향이몽룡이와 사뭇 대조된다. 시절이 다르고 한 인간을 교육시키는 시간이 대폭 늘어난 현대사회는 그만큼 오래도록 청소년을 부모에게 종속시킨다. 물론 부모의 캐릭에 따라 그만한 나이의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와 허용하는 행위범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대교육은 막대하게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대는 부모와 자식은 주로 그 비용을 대는 아버지의 캐릭에 따라 성적 결정권 또한 예속되기 쉽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그동안의 사태가 발각되어 휴양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가도 반납하고 직원들 휴가도 잘라먹는 돈잘버는 사장인 아버지에게 몸을 검사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죽고 싶어진다. 대사를 놓쳤다만 어떤 검사를 어떻게 한다는 걸까. 아버지가 없는 춘향이의 상황과 다시 한번 대비 되는데, 허긴, 춘향이는 기생딸이었다. 당대문화의 아웃사이더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일치감치 인정되는 영역의 인물이었던 데다, 가부장의 그늘에 속박되는 환경도 아니었던 것. 그에 비해 프랑스 부르조아 딸은 참 안 돼 보인다. 프랑스라는데, 거기에도 마초나 가부장의 속박은 그 나름으로 버거운 모양이다. 가족 사이의 관계란 것을 읽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버지는 건조하고 돈버는 일에 중독되어 있고 그 돈 벌어 넉넉한 휴양지로 가족들을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기회를 제공하나 첫경험과 사랑에 신비에 몰두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딸들의 정서와 관심은 그닥 고려대상이 아니다. 돈으로 공간을 제공하고 성적 통제권을 지닌 인물로만 잠시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런 딸이 만난 남자들은 그녀들의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두 딸, 여자들만 모여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위는 어지럽고 위태롭다. 대형트럭들은 속력을 내거나 앞을 막고, 검은 밤에 그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운전해야 했던 엄마는 피로에 지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는데, 괴한이 망치로 차의 앞유리를 부수고 조수석의 큰딸을 내리쳐 즉사시키고 엄마도 살해한다. 뒤에 앉은 팻걸은 괴한에게 끌려 숲으로 가고 강간이 시작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팻걸의 표정이 묘하다. 팻걸은 이쁜 언니와 달리 이쁜 언니의 허울로 끝날 로맨스를 지켜보고 남친이 없는 그녀는 B사감처럼 풀장 사다리를 오가며 사랑을 연기하며 사랑과 첫경험의 상상을 풍선처럼 키워가던 인물이다.  그녀들의 첫경험이란 이렇게 그녀들의 낭만적 환타지와 관계가 먼 거칠고 폭력적인 경험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20살이 넘었다면 그녀들의 첫경험은 어떻게 달랐을까. 영화의 분위기대로라면 과연 달랐을까?

첫경험을 신비화하고 동경하면서도 불안한 소녀들의 처지는 남성의 그것과 육체적으로 다른 경험이라 그럴 법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처녀신화로 이어지면 여성들에겐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 의미부여란 조심스러워야 한다. 때론 너무 쉽게 사태를 환상적 이미지를 덧씌워 붕 띄우는 일은 심리적으로 무언가에 종속되는 길이기도 하다.

제눈에 안경이고 누구나 선택은 스스로 한다. 남자 보는 눈도 필요한 사람, 원하는 사람은 키워볼 일이다. 그닥 재미는 없는 영화인데 현실이란 것이 대개는 그런 모양새라 기대에서 비롯된 환상적 이미지를 걷어내면 재미가 없다. 

세계는 종류가 다양하다, 아님 영화가 여러 종류일 뿐인 걸까? 인굿컴퍼니 같은 세계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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