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 - 2024 볼로냐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파이널리스트 선정작 모든요일그림책 14
서선정 지음 / 모든요일그림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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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

이사하는 날.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이들은 설레임도 있지만 긴장되고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큰 날이기도 하다. 보호자인 엄마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의 면지는 노란바탕의 물고기들이 어디론가 같은 방향으로 헤엄쳐가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아이에게 물어본다.

"물고기들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

아이는 손가락으로 물고기가 가는 방향을 따라 넘겨보자며 서둘러 페이지를 넘긴다. 물고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몹시 궁금해보인다. 동양화를 전공한 서선정 작가의 화풍이 그림책과 정말 잘 어울린다. 쪽빛의 물고기가 일상에 여기저기 드러나 제 모습을 보일 때면 정겨우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작가의 장점이 그대로 살아난다.

'나'는 새로운 집에 이사를 왔고, 아직 낯설은 학교 복도를 걸어간다.

"나는 혼자 터덜터덜 걸었어요."

아이들에게는 '터덜터덜'이란 의태어만 봐도 '나'의 기분이 어떤지 금새 알아차린다. 아이는 저와 상황이 똑같아서인지 유심히 아이가 가는 길을 또 한 번 손가락으로 그어본다.

낯설음에 가방마저 무겁게 느껴져 서둘러 마음의 안식을 주는 '나의 물고기, 초록 물고기'가 보고 싶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작가의 섬세함에 또 한 번 놀라는 장면이기도 하다. 흔히 아이가 서둘러 걸음을 걸어가는 배경에 휠체어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에는 휠체어를 탄 노인과 함께 걷는 여성, 풍선을 들고 있는 꼬마와 함께 걷는 엄마, 유모차를 밀면서 또 다른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 등 평소에 그림책에서 만나던 인물들과는 조금 다르다. 덕분에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도, 내용도 다양해진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서 어항속을 확인하는데,

어? 초록 물고기 한 마리가 없어졌어요!

물고기 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

아이와 또 추리를 해본다. 한 마리가 어디갔을까. 이사하면서 잃어버린걸까? 아니면 어항 속이 답답해서 잠시 날개를 달고 놀러나간걸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정말 어디로 간건지, 설마 잃어버린 결말은 아니길 바라며 페이지를 넘긴다.

<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아이들이 가지는 긴장감과 소외감 등을 물고기의 상황으로 연결지어 다소 무겁거나 진지할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을 풍부한 색감과 앞서 언급한 인성부분과 어울리게 잘 담아냈다. 6세 아이가 보면서 색감과 장난감, 배경에 등장하는 개인적인 취향의 자동차등이 흥미를 지속시켜주어 엄마가 해야 할 일은 함께 물고기를 추적하고, '나'의 상황을 고민해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눔하는 것 뿐이다. 무언가를 굳이 설명하거나 발문을 고민할 필요없는 그림책을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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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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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이 더 이상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가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8-9쪽


불가능할 것 같은 기록이나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면 '그만하면 괜찮다'가 아니라 '끝까지 한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어느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삶의 목표 혹은 행복의 기준이 다 같지 않은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방법 또 그만큼 다양할 것이다. 책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는 그런점에서 읽기에 편했다. 출산 이후 이전보다 더 열정적이어야만 할 것 같고, 슈퍼맘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책들과 영상속에서 꽤 긴 시간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았다. 번아웃, 건강 악화가 그 결과였다. 물론 표면적으로 내보일 만한 무언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성공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람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33쪽

한참 자기개발서에 몰두하며 금전적으로 보장된 삶만이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절에는 타인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일들은 무조건 SNS에 공개하고 싶었다. 지인들 중 귀하고 탐나는 부분이 있으면 왜 드러내놓고 알리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안다. 누군가 인정해주는 삶에 기대게 되는 순간, 그 삶은 평가대위에 올라가는 것이리라.

인간이란 함께한 짦은 순간들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타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생각해보면 겸허한 마음이 들면서도 막막한 기분이 든다. 114쪽

자폐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자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부분들과 그 부모들의 애환에 울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전에 읽었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김승섭, 동아시아)를 읽었을 때 나의 마음도 그랬다. 마사 누스바움의 <동물을 위한 정의>를 읽을 때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자가 언급한 텍스트 사이사이로 알거나 몰랐던 내용들이 섞여가며 마음속에 동심원을 이룬다. 여전한 내적 동일시에 대한 고백을 주저했던 부분에서는 부끄러움도 느꼈다.

대수롭지 않은 삶을 조명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소설은 존재와 무존재 사이에 놓인 경계 위에 무엇이 서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익명이나 가명으로 글을 쓴 여성들을 향한 버지니아 울프의 그 유명한 문장("작자 미상으로 나온 수많은 시를 쓴 익명의 작가들 중 꽤 많은 수가 여성일 것이다")은 여성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 치환되어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197쪽

도서관에 가면 평생교육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다양한 독후활동들의 결과물인 문집들을 찾아서 읽어보곤 한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보다 울림이 큰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작가와 내가 비등단 문인이라는 '평범함'에서 오는 동료애가 느껴져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인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익명이나 가명의 글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그렇게 잠시 들뜨다 소멸된다는 점에서는 익명이나 가명과는 다른 의미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체호프의 글이 근래 더 좋아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평범함 속 비범함을 잘 아는 작가이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발췌문을 바라본다. '그만하면 괜찮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평범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함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그만하면 괜찮다'는 어떤 의미에서든 그다지 바람직한 표현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내 스스로,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나를 기준으로 하는 말이라면 그 어떤 말보다 마음의 위로와 위안이 된다. 그런 삶들이, 그런 평범한 삶이야 말로 찬란한 삶이지 않을까 싶다. 밑줄긋느라 다 읽고나니 새 책이 헌책처럼 되어버렸지만 곁에 두고 읽을 수 있으니 이또한 이만하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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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 You Want? 왓 두 유 원트? - 선택, 결심, 변화를 이끄는 결정적 질문
김호 지음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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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보면 원하는 것이 명확한 게 부럽기도 하고, 때로는 사소한 선택에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사소하다는 것의 기준이 아이가 아닌 내 기준이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닐수도 있긴 하다. 그럴때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면 된다고 말해준다. 반드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선택지 안에서만 고를필요도 없고, 주변의 친구나 가족 중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말이다. 아이에게는 그렇게 말해주면서도 나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늦은 공부를 시작한 40대 여성으로 선택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할 때가 많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아차리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승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고객에게 서비스나 상품을 팔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남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다가,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발생합니다. 27쪽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가 경험한 가장 큰 문제는 마지막까지 남들의 눈을 의식하다가 돌연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고 망설이거나 선택했을 때 일어나곤 했다. 그들은 내가 배려했다고 생각하거나 오히려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지 않냐고 되물은 적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 독불장군처럼 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야 할 내 문제에서 만큼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코칭해주었던 사례가 일부분 각색되어 등장하는데 그냥 하나의 사례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직접 일대일 코칭을 받는 것처럼 답을 할 수 있는 페이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렇다보니 파트 하나 넘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은 결코 모으거나 한 번에 몰아서 사용할 수 없지만 코치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은 그 어떤 투자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막연하게 내가 원하는 것에 나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적은 할당량을 차지하고 심지어 원치 않은 것에 귀한 시간과 돈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이전에도 여러 자기개발서에서 등장했던 내용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저자가 콕 집어 준것처럼 10년 후의 나를 떠올리며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의 원하는 모습이 된 나를 기준으로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차이가 실제로 노트에 적어보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What do you want?'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누구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리고 원하는 것은 한 번에 '짜잔'하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해서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What do you want?'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어쩌면 매일, 매 상황 던져야 한다는 거지요. 246쪽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알림을 통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다는 저자의 말을 초반에 접했을 때는 긍정확언 같은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시시각각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근무지에서 혹은 거리에서 심지어 가정안에서 휘둘리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노트에 코칭받은 대로 적더라도 덮어두고 잊거나 매일 같이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새 몇 개월 혹은 수년이 지나 다시 이 책과 그때 적은 노트를 보며 다시금 시간이란 주식을 허비하고 있었구나 후회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이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노트에 무언가 답을 찾아적은 사람들이라면 분명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준 사람에게만큼은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을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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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전지영 지음 / 소다캣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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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에세이 #소다캣 #전지영 #귀를기울여나를듣는다 #요가 #추천 #명상

책을 읽고, 요가를 하며 글을 쓰는 전지영 작가의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의 총 페이지수는 175쪽. 그마저도 서지정보랑 이런저런 페이지를 제외하면 150여페이지 정도랄까. 맘 잡고 읽으면 8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얇은 책이라 수업을 오가며 읽을 요량으로 가지고 나왔다가 아차 싶었다.
공간을 청소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다면 그건 비인간적인 삶이다. (...) 주변을 정돈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다면 이미 잘살고 있으므로 사는 것에 대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6쪽
지난 봄에 이사를 해놓고 여전히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이 허락해준 나만의 방을 정리도 못하고 창고처럼 해두고 있었다. 최근에는 주말에 아르바이트까지 시작했더니 이젠 아이 밥상 차려주는 것 외에 이렇다할 요리조차 버거울 정도의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는데 ’비인간적인삶‘,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비인간적인삶이라니. 저자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준다.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던 오피스텔에서는 작은 틈으로 들어온 빛에 고양이들과 함께 의지했던 시절이나, 섬으로 들어와 강한 태풍을 맞이하면서도 살아있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 때 등 저자가 지나온 때로는 혼자라서 외롭고 때로는 누군가로 인해 버거운 삶의 모습들이 내이야기 같아 마음이 동동거렸다.
명상가 마이클 싱어는 그 목소리를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미치광이 룸메이트에 비유했다. 내 머릿속에도 미치광이 룸메이트가 살고 있었다. 108쪽
요가에서는 마음과 영혼 그리고 변하지 않고 실재하는 자아, 이 모든 것을 구분지어 설명한다. 마지막의 변함없이 존재하는 나, 존재하기에 사라지지 않는 나를 아만타라고 하는데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마음,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그 목소리가 다름아닌 ’미치광이 룸메이트‘다. 연인을 의심하게 만들고, 친구를 오해하게 만들고 자기비하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미치광이 룸메이트. 저자가 명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로 명상이란 마음이라는 방을 청소하는 일(109쪽)이었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면 몸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게 되고, 나에게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명상이 자유자재로 될 거라 생각했다. 저자의 말처럼 저절로 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과도한 욕망이나 욕구를 자제할 뿐 삶의 흐름이나 변화를 막아서는 것이 아니기에 그 중심을 잘 잡아야했다. 그 중심을 흐트리는 고통, 고통은 다음과 같다.
고통은 갈망과 혐오를 오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언가 간절하게 원했다가 가질 수 없어서 좌절하고 그로인해 혐오를 느끼고 다시 또 가지려고 발버둥 치다가 눈앞에서 놓쳐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고통이었다. 114쪽

고통으로 만들어진 몸, 고통체. 고통체가 정체성이 되어버린 삶이 무엇일까 굳이 궁금해하지 않는다.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고, 그런 삶은 언제고 다시 훈련되지 않은 내 마음을 통해, 다시금 나의 정체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련은 특히 주변의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상실감이 크게 증폭시킨다. 저자는 밋츠라는 고양이를 잃은 것이 생애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첫 경험이었다고 했다. 두렵고 무서웠다는 글자가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그것이 심지어 생과사를 누릴 수 없는 것이라 할 지라도 원치않은 상실은 흔적을 남긴다. 무언가를 남기는 것, 그것은 존재했다는 사실이고, 존재했음에 사라지지 않기에 저자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아픔의 날들보다 다시금 꼭 만나 지키고픈 귀한 인연들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것 같다. 내게는 아이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아이에게는 내가 어떤 존재일까 확신할 수 없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라파엘라‘라는 대천사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은 여성과의 대화가 등장한다. ’하느님의 치유를 상징하는 대천사‘라파엘. ’비인간적 삶‘이란 단어에 동동거리던 마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는 고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어 고맙다. 누군가 이런 마음의 변화에 동참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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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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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고닉 #끝나지않은일 #글항아리

책 읽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 가끔은 내가 날 때부터 책을 읽은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세상일을 까맣게 잊은 채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던 시간은 기억에 없다. - 책 본문 중에서-

어른이 되어 자기소개서를 비롯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독서'라는 키워드가 빠졌던 적은 없었다. 고리타분하게 보일테지만 실제 내 삶에 책은 항상 있었고, 특히 문학의 경우 모든 것이 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때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은 읽기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다시 읽기'. 고전은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항상 갖가지 이유로, 판형의 변화, 새 역자를 만나 거듭 출판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주변에 가까운 지인은 문학 뿐아니라 자기개발서인데도 초판본의 번역이 훨씬 동기유발에 효과적이라며 새 책 대신 도서관에서 대여하거나 중고서점을 기웃거린다. 역자의 역할도 당연 중요하지만 정작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과 주변환경의 변화는 또 얼마나 다른 감상의 책 읽기가 가능한가.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다년간 마음에 품었던 서사가 느닷없이 불려 나오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심각한 의문점들을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본문 중에서-

고입을 앞두고 예비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 잘 알려진 단편소설집을 여러 권 읽었었다. 아마 내가 읽은 고전에 절반 이상이 그 때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작품들을 다시 마주할 때면 책을 읽어야 할 '때'가 분명 있음을 느낀다. 그 시절 그렇게 읽었다고, 내용을 대충 알고 있다고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작품의 진가를 평생 모르고 살았겠구나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때 적어두었던 서평노트를 제출할 때 별도의 사본을 보관하지 않은 것이 속상할 정도다. 물론 그때는 서평이라기 보다는 줄거리 요약에 한 두 줄 정도의 감상이 달린 수준이었을테지만 <끝나지 않은 일>을 읽을수록 이전에 적었던 글, 읽었던 책들을 다시금 꺼내어 보는 것이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달리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과 자기인식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대체 누구십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제가 누굴까요. 전화하신 분께서 말씀해주시지요." -본문 중에서

자신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며, 단순히 사춘기시절의 자아찾기 이상의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를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다고 착각한다. 비비언 고닉의 경우 읽기를 통해, 또 쓰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어쩌면 내가 먹은 음식들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들, 그 중에서 별도의 시간을 할애 해 기록을 남긴 책들이 나를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말하고자 할 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 이 책이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엄청나게 얇은 이 티저북 만으로도 이토록 큰 공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제 한 권의 온전한 책을 읽어야 할 차례다. 그러면 또 어떤 감상이 나를 찾아들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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