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으로 228페이지 중 89페이지까지 읽었는데 밑줄을 얼마나 그었는지. 28페이지까지의 밑줄들을 추려본다. 





"저런, 말 많은 여자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지금은 나를 가지고 입방아를 찧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그래. 네가 사람들 앞을 지나갈 때 그들에게 말을 걸어서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그들은 네 삶 속으로 되돌아가서는 네가 했던 일을 따져본다는 걸 너도 알잖아. 너보다도 사람들이 너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아. 시샘하는 마음 때문에 귀가 잔인해지는 법이거든. 그들의 귀에는 너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자기네가 바라던 것만 ‘들리니까‘."

"할미에게 오렴, 얘야. 옛날처럼 할미 무릎에 앉거라. 할미는 네 머리카락 한 올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단다. 할 수만 있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고 싶다. 얘야, 지금까지 내가 아는 한 백인 남자가 세상의 지배자야. 어쩌면 저기 바다 너머 어딘가에 흑인 남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말고는 알 수가 없단다. 그래서 백인 남자는 자기 짐을 내려놓고는 흑인 남자더러 그걸 들라고 하지. 어쩔 수 없으니까 흑인 남자는 짐을 집어 들긴 하지만 그걸 짊어지고 나르지는 않아. 그냥 자기 여자 식구들한테 짐을 넘긴단다. 내가 아는 한 흑인 여자들이 이 세상의 노새란다. 너한테는 상황이 달라지길 기도해왔는데, 주여, 주여, 주여!"

"얘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흑인들은 뿌리 없는 가지들이나 마찬가지고 그것 때문에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버리곤 한단다. 특히 네가 그렇다. 나는 노예 상태로 예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가 어때야 하고 무얼 해야 할 것인가라는 꿈을 이룬다는 것이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그런 건 오히려 노예 생활을 방해하는 것일 뿐이었지. 그러나 그 무엇도 꿈꾸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란다. 아무리 사람을 밟아 뭉개더라도 그 사람의 의지를 완전히 빼앗아버릴 수는 없지. 나는 일소나 씨돼지로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고 내 딸도 그렇게 이용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분명히 내 의지가 아니었어. 나는 네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싫었다. 그래도 나는 변함없이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높은 자리에 오른 흑인 여자들에 대래 대단한 설교를 하고 싶었지만

나한테는 설교할 연단이 어디에도 주어지지 않았어. 내가 자유의 몸이 됐을 때 내 품에는 갓 태어난 딸애가 안겨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위해 빗자루와 요리 냄비를 들고 황야에 큰 길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지. 내가 느낀 것을 그 애가 잘 설명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 애는 그 큰길을 잃어버렸고 내가 다음에 정신을 차려보니 네가 세상에 와 있었다. 그래서 밤에 널 돌보면서 나는 널 위해 이야깃거리를 모아놓겠다고 말했다. 재니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지만 만약 네가 내 꿈처럼 높은 곳에 자리를 잡기만 한다면 내가 그동안 고생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 말에 그녀가 진정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화만 부추긴 것 같았지. 그러나 나를 더는 때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침대 발치로 가서 자기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네 몸뚱이에 손을 대서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내일 날이 새자마자 농장 감독에게 널 채찍 기둥으로 끌고 가서 무릎을 꿇린 채 묶어놓고 네 누런 등에서 가죽을 잘라내라고 시킬 거야. 네 맨등을 생가죽 채찍으로 백 대를 갈기라고 할 거야. 네 발뒤꿈치로 피가 줄줄 흘러내릴 때까지 채찍질을 시키겠다! 채찍질 수는 내가 직접 셀 거야. 그리고 그것 때문에 네가 죽는다 해도 그 손해는 감수하겠다. 어쨌든 저 어린 것은 한 달만 되면 팔아 치워버리겠어.‘

그리고 재니야,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 네가 백인들 집의 뒤채에 살면서 다른 학교 친구들 앞에서 풀이 죽지 않도록 나는 가진 걸 다 긁어모아서 이 작은 땅뙈기를 샀다. 네가 어렸을 적엔 그런 게 아무 문제도 되질 않았지. 그러나 네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컸을 때는 네가 자부심을 갖기를 바랐다. 공공연하게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 떄문에 네 기분이 구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남자들이 널 타구(唾具) 정도로 치부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편히 눈을 감을 수는 없구나. 제발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천천히 내려놓아다오, 재니. 나는 금이 간 접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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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1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때요? 저 수업 시작하는데 북ppt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고민이에요. 어떤 책을 고를까? 그런데 이 책이 리스트에 있네요! 이거로 할까요? ^^;

난티나무 2021-01-17 17:33   좋아요 0 | URL
준비 잘 하시기를요!! 할 이야기가 많은 소설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좋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안 좋을 수도?? 자료조사가 많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 늦게 잠이 깨어 침대 안에서 뒹굴거리며 아침일기를 적다가. 생각이 생각을 타고 흘러버리는 바람에 떠오르는 옛 기억의 단편들. 그만 울어버렸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왜 쉽게 멈추지 않는 걸까. 기억에서 벗어나는 혹은 기억을 이겨버리는 뭐 그런 일은 앞으로도 어려울까. 눈물도 쉼표를 찍기는 한다. 그러다 또 흐른다. 그렇게 아침부터 울고 났더니 눈이 퀭, 빡빡, 뻐근, 또 무슨 표현이 있을까. 머리도 띵 하고. 울음은 피곤하다. 몸 뿐 아니라 정신도. 울고 나면 쉬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는 책을 거른다. 사강도 읽어야 하고 육식도 읽어야 하고 오늘 반납인 빌린 책들도 봐야 하지만, 일단. 

칙피를 오븐에 구우면 맛있다고 해서 어제 불려놓은 걸 구웠다. 실패다. 검색하면 오븐에 구워 맛난 간식으로 먹어요는 많은데 실패한 후기는 없나? 잘못하면 안그래도 약한 이 다 나갈 것 같다. 갈아서 스프나 끓여야 겠다. 여담이지만 칙피는 병아리콩이다. 칙, 병아리. 튀어나온 부분이 병아리 주둥이를 닮았다나. 며칠 전 식탁에 콩 무더기가 놓여있었는데 이름 이야기 하다가 병아리 머리를 닮아서 이름이 병아리콩이래, 옆지기가 말했다. 순간 그 많은 콩들이 다 병아리 머리(만으)로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 몸을 떨었다. 으, 병아리콩이라고 안 하고 싶다. 하... 이름 왜 이런 거예요. 새로 지을 수는 없나요. 이런 생각. 

오븐 켠 김에 이어서 빵을 굽는다. 가끔 굽는다. 빵은 먹고 싶은데 시판 식빵은 한쪽만 먹어도 느끼해서 손을 못 댈 때, 커피에 무척 곁들이고 싶을 때, 아침으로 먹을 게 없다 싶을 때, 동네에 빵집이 없는 게 원통할 때, 기타등등 기타등등. 오븐 켠 김에 빵을 구우려면 후딱후딱빵이 제격이다. 발효는 기본 2시간은 걸리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 왤케 못하지. 밀가루 말고 쌀가루 메밀가루 콩가루 있는 가루 대충 넣고 소금 조금 넣고 두유에 레몬즙 뿌려두었다가 몽글몽글해지면 넣고 오늘은 메밀효모랄까 이스트랄까 아 효모와 이스트의 차이는 뭐지 같은 건가 다른 건가, 아무튼 좀 넣고 대충 버무려 틀에 담고 오븐에 넣는다. 구워질 때까지 구우면 끝. 섞어서 바로 구울 수 있어 자주 이렇게 한다. 결과물은 사진과 같다. 






딱딱하고 갈라진 흙바닥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래보여도 겉바속촉이다. 느즈막이 커피 비슷한 검은물 한 잔과 빵을 먹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아직도 눈이 피곤하다. 울어서 그런 건지 몸이 피곤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새벽에 두 번이나 깨서 그런가. 잠귀가 얇고 숙면을 하기 어려운 그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울어버렸는데. 몇시간이 지나고서도 새벽에 깨서 피곤한가 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코끝은 아려오다니. 오늘은 글렀다. 밥이나 하자. 어제 저녁에는 쌀이랑 잡곡이랑 다 씻어서 담가놓았다. 사실 어제도 잊어버려서 저녁에 담궈논 쌀이 없었... 그래서 국수 해먹고 나서 담가놓은 것이 바로 그것. 하하. 역시 난 미리미리에 약해. 


써놓고 보니 일기인데 이걸 이렇게 써서 올릴 일인가 싶어 또 고민해 본다. 나 혼자 몰래 쓰는 일기도 결국 읽히는 대상(나)이 있다고 하니, 세상의 모든 글은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고 쓰는 글이다,라는 말도 맞는 것 같고. 슬픔이라는 하나의 단어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늘 오전의 감정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으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게 맞을까 봐 슬프고 슬펐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고.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나 되려나 싶고. 의미는 또 뭔가 싶기도 하고. 다 무슨 소용이야 결국 이런 마음. 허전하고 덧없다. 생각은 왜 하노. ㅠㅠ 


그러므로 오늘은 빵을 구웠답니다. 책은 못(안) 읽었어요. 하하하. 그렇지만 오후가 있으니까요. 그 오후에는 어쩌면 쪽잠을 잘 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제 알라딘을 헤매다가 멋져보이는 책을 발견했어요. 정말 멋진지 보려면 사야 겠지요? 책 사러 갑니다~~~!!  (책 이야기로 마무리했으니, 앞이야 어찌 됐든,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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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1-14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우 멋진 글입니다 난티나무님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빵 진짜 맛있어 보여요. 그리고 저는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할 거 같아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듭니다. 느낌만 들지 실은 읽을지도....... 일기 좋아요. 오후에는 울지 말아요. 책 구입 화이팅!!!

난티나무 2021-01-15 00:12   좋아요 0 | URL
내가 수연님의 댓글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말해줘서일까 빵 맛있어 보인다고 말해줘서일까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아 아 이건 아니고 일기 좋다고 해줘서일까 울지 말라고 말해줘서일까 구입화이팅이라고 말해줘서일까 잠시잠깐 생각하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서였다,고 말해봅니다.

syo 2021-01-14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일기꾼 syo입니다.

저희 일기파(회장syo, 회원: syo외 0명)에 가입하실 의사가 있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방문하였습니다. 망설이지 마셔요. 일기 써서 올리는 건 죄가 아닙니다! 그게 죄였다면 저는 무기징역.....


난티나무 2021-01-15 00:21   좋아요 0 | URL
syo님의 글은 때론 시이면서 때론 소설이면서 때론 철학서이면서 때론 또다른 무엇이다..라고 할까요.
일기파 회장님의 방문과 격려 감사히 받습니다.^^

다락방 2021-01-15 14:11   좋아요 0 | URL
일기 써서 올리는 게 죄였다면 저 역시 유죄.... (아 멋있어..)

다락방 2021-01-15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우리 계속 일기 써서 올립시다. 지금쯤은 기운 나셨기를 바랍니다!
왜, 애니매이션 [인사이드 아웃] 보면 기쁨이가 출몰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슬픔이가 존재해야 했잖아요. 기운 없음은 나중의 기운 나는 시간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인생에 필요한 시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난티나무 2021-01-17 01:0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이 댓글에 답글 달았다고 생각했네요. @@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그 시간들도 또한 나를 구성하는 거니까요. 옳은 말씀.
밖에 또 눈이 오네요. 올겨울은 이런가 봅니다. 눈과 추위와 여전한 상황.
그리고 일요일, 진정한 휴식과 위안의 날 보내시기를요.
 

어제 [육식의 성정치]를 읽다 말고 북플로 글을 올렸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뒤에 이 책이 나오더라. 

















예~~~~전에 읽었고, 작은넘이 몇번이나 반복해 읽던 책, 읽을 때마다 슬프다고 말하던 책, 그 책이 [육식의 성정치]에 나오다니. 이참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고 온집을 뒤졌으나 프랑스판은 낡아서 내다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역시 낡은 한글판만 있다. (다행이다, 사실 불어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는데 머리 싸매지 않고 한글로 읽을 수 있어서.ㅠㅠ) 


첫페이지를 넘기는데 헉! 


- - - - - - - - 

"제발 새끼돼지를 죽이지 마세요! 그건 불공평해요."

애러블 씨는 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게 딸을 타일렀다. 

"펀, 참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참으라고요? 아빠, 목숨이 달린 문젠데 참으라고요?"

펀의 뺨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펀은 아빠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으려고 도끼 자루를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펀, 새끼돼지들을 기르는 것은 아빠가 너보다 많이 알아. 약한 놈은 골칫덩이야. 자, 그만 비켜라!"

펀이 소리쳤다. 

"하지만 불공평해요. 작게 태어난 건 그 돼지 잘못이 아니잖아요. 만약 제가 때어날 때 몸집이 아주 작았다면, 아빠는 저를 죽이셨겠어요?"

애러블 씨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아니지. 하지만 이건 다른 거야. 작은 어린아이하고 작고 약해빠진 돼지는 같을 수가 없는 거야." 

펀은 계속해서 도끼에 매달린 채 고집을 부렸다. 

"다르지 않아요. 이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나쁜 일이에요." (p10~11)

- - - - - - - - - 


처음부터 강펀치. 

옛날에는 아무 생각없이 읽었을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 - - - - - - -

"난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사는 게 시들해." 

윌버는 다시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이렇게 밖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다 밖으로 나오는 것말고는 할 게 없어." 

그때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서 그래, 친구, 친구야" (p.26~27)

- - - - - - - - 

윌버는 코를 쳐들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따뜻한 우유, 감자 껍질, 밀기울, 켈로그 콘플레이크, 그리고 아침에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 냄새. (p.34)

- - - - - - - - 

"......  나한테 돼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해." 

윌버가 되물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그건 가장 밑바닥을 말하는 거지. 한계선의 끝이라고. 어떻게 무언가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할 수가 있지? 만일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럼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그건 무언가 있다는 거야. 아주 조금일지라도 말이야.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잖니." (p.41~42)

- - - - - - - -

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윌버의 배는 비어 있었지만 머리는 가득 차 있었다. 뱃속은 비어 있는데 머릿속이 가득할 때에는 잠들기가 힘든 법이다. (p. 46)

- - - - - - - -

윌버는 샬롯이 먹이를 다루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언제나 먹이를 먹기 전에 그것을 잠들게 한다는 사실이 특히 반가웠다. (p.67)

- - - - - - - -

"... 실제로 그 거미줄의 일부였다고, 여보. ... 계시가 나타난 거야. 우리 돼지는 보통이 넘는다고 말이야." 

주커만 부인이 말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 좀 틀린 것 같네요. 우리 거미가 보통이 넘는 것 같은데요." (p.110) 

- - - - - - - -


뒷부분에도 옮겨놓고 싶은 구절들이 있지만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페미니즘적 시각을 장착하고 읽으면 동화가 새롭게 보일 수 있다.)


1952년 발표, 한국에서 1996년 초판 발행 후 지금까지 꾸준히 다시 찍어내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 E.B.WHITE는 <스튜어트 리틀><트럼펫을 부는 백조>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샬롯의 거미줄>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다코타 패닝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단다. 이것도 나중에 봐야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2001년 개정판인데 이후의 개정판에서는 번역을 더 손봤다고 하니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2001년판 번역도 좋다. 


[육식의 성정치]에서, 샬롯이 윌버를 달리 '명명'했다고 나온다.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그리고 샬롯의 자리에 남은 샬롯2세들이 '샬롯의 딸들'이다. 막 괜히 이런 부분도 달리 읽히고. 

'펀'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엿보는 것도 살짝 마음 아프다. 상징적 부분은 재밌고. 

아주 약간의 뭐랄까 깨어지지 않은 선입견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야기의 구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 본다. 


좋은 동화입니다. 주변의 아이들에게, 아마 읽었을 확률이 높겠지만, 어른들에게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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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14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안그래도 <육식의 성정치> 읽으면서 샬롯의 거미줄이 자꾸 생각나는 거에요.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그게 왜 생각날까, 돼지와 거미의 우정 나오는 거였는데.. 왜 자꾸 떠오르지?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난티나무 님이 올려주신 인용문 읽으니 이 동화가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새로운 무엇이었네요. 페미니즘 장착하고 보는 동화는 정말 다르군요! 저는 제가 읽었던 책 조카한테 가 있어서 제가 그때 쓴 리뷰 찾아봐야겠어요. 난티나무님, 글 감사해요!

난티나무 2021-01-14 19:48   좋아요 0 | URL
책들을 모두 다시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하아... 안 읽은 책도 많은데 읽은 책 다시 읽으려니 엄두가 안 납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아이들 책 몇 권 버리면서 들추어보니 동화도 진짜 못 읽겠는 글이 많더라고요.ㅠㅠ
샬롯의 거미줄도 읽으신 다락방님! 오늘도 즐겁게 편안하시길 !!

공쟝쟝 2021-01-1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동화가 ... 근데ㅜ인용문만 봐도 가슴이 저릿저릿해요 ㅠㅠ

난티나무 2021-01-15 20:29   좋아요 0 | URL
제가 유독 그런 부분들만 골라서 그런 걸 거예요.^^;;; 기회 되면 한번 읽어보세요~^^
 

[육식의 성정치]

하루이틀 건너뛰기도 하면서 천천히 읽고 있다.
오늘 읽는 중에 다음 구입예정으로 보관함에 담아놓은 책이 나와 반가운 맘에 나도 사진 한 장 찍어본다. 그런데 앞부분에서 이미 나왔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ㅎㅎㅎ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설명을 읽으니 빨리 읽어보고 싶지만 지금도 읽는 책이 넘나 많다. 자제.

“하루도 빼먹지 않고 드는 생각” 이라는 구절이 콕. 계속 콕콕. 콕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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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12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책 읽으시는 분들은 다 쬐끄만 포스트잇 붙여가며 이쁘게 읽으시네요!!😅

난티나무 2021-01-12 20:03   좋아요 1 | URL
이게.... 안 붙일 수가 없어요.ㅠㅠ 저는 책에 밑줄 잘 안 긋는데요, 안 그을 수가 없어요.ㅠㅠ

다락방 2021-01-1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아직 저기까지 읽지 않았지만 저기까지 읽는다면 저도 언급하신 책을 찾아보고 사려고 햇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책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는 번역본이 있네요. 저는 [육식의 성정치] 80페이지까지 읽다가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의 [여성의 시각에서 본 성경]을 읽어보고 싶어 검색했는데 번역본은 없더라고요. ㅠㅠ

난티나무 2021-01-12 2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없는 책 많더라고요. 저도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들이랑 책이랑 검색해 보는데 없는 게 많았어요. 더 많이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엄마의 반란] 




참는다 

말하지 않는다 

못본 척 한다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하려 애쓴다 

아이들에게(혹은 주변 사람에게) 아버지를(남편을) 이해시키려(용서를 구하려) 애쓴다 

또 참는다 

더 말하지 않는다 


첫번째 단편 "엄마의 반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 


작지만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반란(이라는 단어가 맘에 안 들지만). 표현하는 용기. 행동하는 결단력. 모든 것은 작게 시작된다. 작아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전혀 작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루이자는 옷장 서랍을 애정 어린 눈길로 들여다보았다. 내용물들은 라벤더와 클로버 향을 풍기며 정갈하게 잘 수납되어 있었다. 과연 앞으로 루이자는 이런 것들 없이 살 수 있을까? 루이자는 조화롭고 세심하게 관리된 집에 남성이 존재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먼지와 무질서를, 끝없이 발견되는 남성 관련 물건들을 자신이 난처한 정도로 질색하는 데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뉴잉글랜드 수녀" 중 한 구절.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도 좋았지만 마지막 "엇나간 선행"이 마음에 더 남는다. 

나는 이미 결혼을 '해'버려서일까. 20대가 아니라 50대에 접어들기 때문일까. 지금 이 나이에도 "뉴잉글랜드 수녀"의 루이자처럼 내 삶을 온전히 가꾸면서 '혼자' 살고 싶다는 소망은 여전하고 그것을 또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루이자, 진심 그대가 부럽소.)


얼마 전부터 더 나이가 들면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 여자사람과 둘이서 살면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죽이 잘 맞는 내 동생이나, 몇 시간 말없이 함께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내 친구나. 혹은 행여나 앞으로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친구나. 정말 더없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구나, 그런데 지금으로선 꿈만 꿔야 하겠구나 싶어 즐거운 상상 뒤에 그만 슬퍼지곤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엇나간 선행"의 두 할머니처럼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상황은 없었다. 그런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눈이나 귀가 아니더라도, 어딘가가 고장나고 아픈 몸이 되겠지. 그렇게 되어도 해리엇과 샬럿처럼 살고 싶은 바람. 혼자이고 싶지 않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누가 먼저 죽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면 좋으리라는. 그렇게 되려면 잘 늙어야지, 건강하도록 노력해야지, 병간호를 시키거나 하게 되는 입장을 만들면 서로 피곤하니까, 이런 가지를 뻗치는 생각들. (그래서 옆지기에게 자주,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마라! 간호는 힘드니까! 난 못할 거야!를 주입시키곤 한다.ㅠㅠ 그런데... 옆지기가 늙어서도 지금의 옆지기와 같은 사람이라면, 마음 맞는 여자사람친구와 사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흑)


요양원 이야기가 나오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유학 초기, 첫아이를 낳을 무렵부터 2년 정도를 서민아파트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았었다. 같은 층에 살지만 서로 왕래는 없고 만나면 가볍게 목례 정도 하는 사이였던 할머니가 있었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랬는지 원래 수줍은 성격이라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할머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거나 인사를 건네는 법이 없었다. 어느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할머니의 집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짐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이사를 가나 보다, 했다. 할머니가 현관문 바깥에 서 있었다. 작고 작은 몸을 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 이사하세요 말을 건넸더니, 할머니가 울먹거린다. 나 요양원 가기 싫은데... 가기 싫어, 그냥 여기서 혼자 살고 싶어... 아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그 당시의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1도 정확히 몰랐지만 그 슬픔을 위로하고 싶어 가만히 팔을 쓸어내려주었다. 괜찮을 거예요,라는 시덥잖은 말밖엔 건넬 것이 없었다. 잠시 나에게 기대는가 싶던 할머니는 평소에 나와 데면데면했던 사이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듯이 몸을 떨어뜨렸고, 곧 꼿꼿한 자세를 되찾았다. 그렇게 할머니는 아파트를 떠났다. 가끔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 얼굴은 흐릿하게 잊혀져 갔지만, 요양원 안 가고 혼자 계속 살고 싶다는 그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 "엇나간 선행"을 읽으면서 할머니의 그 말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 


또다른 생각, 공동체.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다. 

소설 속 해리엇과 샬럿은 동네 사람들의 정과 보살핌 속에 있다. 적당한 사람들의 관심과 왕래가 그들의 생활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그 마음이 자매에겐 때로는 지나치고 동네 사람들에겐 당연하다 여겨지는 부분이 있지만. 공동체의 중요성. 작건 크건, 그것이 가지는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전제를 지킬 것. 


그리고... 

해리엇이 도넛을 가져온 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일순 많은 것이 이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샬럿, 넌 사람들이 먹을 걸 가져다준다고 우리를 거지나 쓸모없는 인간으로 깔봤으면 좋겠어? ...... 그럼 내가 사람들한테 도넛이 딱딱하다거나 감자가 형편없다고 말해도 다시는 나서지 마. 내가 계속 그런 식으로 세게 나가야 우리도 초라하지 않고 사람들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는 거야. 그리고 '사랑의 집'에도 안 보낼 거고. 내가 말랑말랑하게 굴었으면 우린 진즉에 거기 갔을 거야. 명심해."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당췌 이해가 되지 않는 윗세대의 말과 행동들에 상처를 입을 때, 해리엇의 행동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이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보호본능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아이들을 대할 때에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 (늘 머리로는 되지만 몸으로는 안 되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용납도 안되는 경우도 있긴 하더라.ㅠㅠ) 


100년 전에도 같은 생각을, 아마 200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우리의 조상들도, 같은 생각을. 늘 거기에 존재하고 함께 숨쉬고 있었던 생각들. 스러져간 생각들. 다시 시작하는 생각들. 

더많이 읽기. 먼저 읽고 리뷰와 페이퍼로 알려주신 알라딘 이웃님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이 책 시리즈 '얼리버드오키드' 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종이책으로 사서 조만간 받을 예정이고, [징구]도 구입 예정이다. [엄마의 반란]은 전자책으로 샀는데 흠, 종이책 갖고 싶네? 욕심은 버리고 알맹이만 갖도록 하자. 엄반 책 표지는 넘나 마음에 안 드는 것.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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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12 0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엇나간 선행>이 좋았는데요. 무엇보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해서 그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만에 가까울 때가 많은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날 좀 이렇게 살게 내버려둬, 이게 나의 행복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과연 ‘너는 지금 행복하지 못한거야, 더 나은 삶이 있어‘라고 삶의 형태를 바꾸는 게 선일까 하는거죠.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선한 의도가 또 누구를 위한 선한 의도인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이 선함은 ‘선한 나‘를 위한 선함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이야기요.

난티나무님, [징구]도 너무 좋아요, 너무! 저는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안샀는데 케이트 쇼팽의 다른 단편집을 갖고 있어서 겹칠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냥 사서 이 시리즈를 차곡차곡 모아둘까 싶은 마음도 들고..혼란스럽네요. 사야겠지요? 혼란할 땐 사면 고민이 끝나는 것이니까요...


이만 총총.

난티나무 2021-01-12 17:50   좋아요 0 | URL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오만에서 벗어나는 삶이란 참 어려운 거 같아요.ㅠㅠ
저도 종이책을 사모으고 싶지만 지리적 여건상 전자책을 사야 할 것 같습니다요. 흑흑. 겹치지 않는 단편이 하나라도 있다면 사시는 것을, 모두 겹친다면 마시기를 살포시 권해보고요, 마지막엔 다락방님 마음 가는 대로~~~!!!!! ^^

2021-01-12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2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