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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 페미니스트 법 이론
낸시 레빗.로버트 베르칙 지음, 유경민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1월
평점 :
호텔이다. 프런트에는 직원 두 명이 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여자는 컴퓨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고 남자는 앞의 손님과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여자 옆으로 가 함께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나와 남편은 체크인을 하려고 서있다. 우리가 차례를 기다린 걸 그들은 이미 보았다. 몇 분 뒤 여자가 고개를 들고 묻는다. 도움 필요하세요? ... 좀 황당하다. 남자는 옆자리로 갔다. 안녕하세요,가 먼저 아닌가. 여자의 얼굴은 대략 표정이 없지만 딱 봐도 너희에게 친절하기 싫어, 이런 분위기다. 체크인하려고 합니다만. 아 그럼 옆 직원에게 가세요. 가볍게 토스. 백인 남자는 프랑스어를 쓰는 우리에게 영어로 말한다. 외국인 취급. 그렇지, 우린 외국인이지.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외모만으로 국적을 판단하는 일이 이렇게 잦다고?
미묘하다. 흑인에게서 인종차별의 뉘앙스를 느끼는 아시아인. 아마 이렇게 글로 쓰고 혹여 말로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느낀 그 미묘함을 정확히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냐는 말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흔히 하지만, 말이란 맥락과 뉘앙스를 가지는 것이 아니던가. 눈빛과 몸짓, 표정, 어투 등이 말을 돕는다. 가끔 겪는 일이라 놀랍지는 않고, 기분은 좀 나쁘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러 방을 나섰다. 객실 청소를 하러 온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니까 매뉴얼 인사가 아닌, 기분 좋은 인사. 나도 덩달아 웃는다. 그는 나이 지긋한 흑인 여자다. 생각이 많아졌다.
얼핏, 이 책의 내용과 위의 에피소드는 별 관련이 없어보인다. 어느 경우에도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그건 교차성이라는 단어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동질성과 차이라는 단어들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복잡하게 얽힌 그물망 어딘가에 위치한 인종과 젠더라는 단어들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언급한 모든 단어들에 언급하지 않은 모든 것이 더해진 무엇인가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일상은 책의 내용과 한치의 오차 없이 일치하기도 하지만 어떤 일상은 가려지고 포장되어 배경과 맥락이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아래와 같은 구절을 읽을 때면 이런 경험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해석은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주의 한 톨 먼지보다 작은 존재이면서 그 안에 각자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는, 실로 형언할 수 없이 신묘한 존재들이 아니던가. (이렇게 말하면 인간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다른 목소리와 접근에 더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은 인류 공통의 권리에 관한 개념을 거부하고 다원주의와 서로 다른 문화적 시각에 대한 포용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재생산 자유의 결핍과, 전 세계 대다수의 여성이 이를 수용한다는 것은 그릇된 자각에서 비롯된 문제인 것인가? 수년 전 정치철학가 주디스 슈클라는 부정의의 얼굴은 낮은 곳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유명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모던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미친 수잔 몰러 오킨은, "우리는 고통받는 듯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을 함으로써 정의에 대해 깨닫게 되지는 않는다"라고 언급하며 한계를 지었다. 그녀는 "억압받는 사람들은 종종 억압을 매우 잘 내재화하여 그들이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얻어야 할 자격들을 알지 못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두 학자 모두가 옳을 수는 없는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피할 길은 없는가?⌋ (205, 5장 젠더와 몸)
그러니까, 나는 머리가 아프다. 책 속 미국까지 갈 것도 없다. 어쩌면 세상이 지금 우리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건지도 모른다... 머리가 안 아픈 날이, 오기는 할까? 아,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책 뒷표지에 실린 문장이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책은... 또한 특정한 페미니스트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각 이론에 따른 결론과 비판점 등을 상세히 설명하여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러한 풍부하고 다각적인 접근은 페미니스트 법 이론이 현학적인 문답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일어나는 문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늘, 언제나 일어나는 일. 그 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는 것. 내가 옳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 (그런데 그 미묘하고 미묘한 것들을 어떻게 보이게 만들죠?)
제목을 '질문하는 책'이라고 달았다. 저자는 책 가득 질문을 쏟아낸다. 본문에서 질문하는 것도 모자라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생각해 보라며 몇 개의 질문을 던진다. 1장 끝에서 질문들을 읽었을 때 절망했다. 어느 하나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그렇게 쉽게 한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라면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겠지. 2장, 3장, 그리고 책이 끝날 때까지 저자가 던진 질문들은 그렇게 거기 있었다. 한편으론 그 질문들에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학자가 아닌 것에 안도했고, 한편으론 어쩌면 하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지에 난감했다. 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들이 여성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내 문제라는 새삼스러운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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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의 이 부분(대리모 계약)을 요약하면서, 법학 교수 마거릿 제인 라딘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지위를 낮춰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여성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팔아왔고 이로 인해 그 지위가 격하되어왔다. 더 이상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217, 5장 젠더와 몸)
위 구절을 읽으면서는 조금 속이 시원했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더 이상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단순하게 말하고 그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학교는 개인적인 성취의 관문 그 이상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소녀들의 교육은 "가정 내에서 그리고 세대를 걸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소녀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노동인구를 거의 두 배로 늘릴 뿐만 아니라, 빈곤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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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점은 여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선순환을 영속시킨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소녀들은 자라서 그들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다.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그들이 대학에 가도록 격려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부업을 한다. 물론 교육받은 남성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기여하지만, 여성들은 단연코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한 소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곧 한 가족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304~305, 8장 페미니스트 법 이론과 세계화)
동의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찜찜하다. 왤까. 먼저 노동인구가 늘어난다는 점. 맞는 말이면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빈곤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힘을 가지고, 다 좋다.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두번째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부업'을 하는 여성들. 부업. 이렇게 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한 소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곧 한 가족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100퍼 공감한다. 그러나. 그 소녀가 장차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물론 결혼과 출산 안 해도 교육할 수 있지. 하지만 저자는 "소녀들은 자라서 그들 자신의 아이들에게"라고 적었다. 이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남성은? 그냥 둬? 가장 먼저 깨우치고 변화해야 할 사람들은 '남성적' 사람들 아닌가? 왠지 계속 여성에게만 짐을 지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쳇바퀴가 계속 돈다. (그런데 여성의 영향력이 강력한 건 정말 맞는 말이다.)
⌈세계화 자체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일자리, 상품, 의약품, 그리고 기술의 이전을 촉진함으로써 어느 정도 이익을 제공한다. 정보 및 서비스 경제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가져다주었다. - 당신이 전화로 상담하는 고객 서비스 담당자는 이제 토피카(Topeka)만큼이나 뭄바이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사스키아 사센은 직업 시장과 사업 기회의 "점진적인 여성화"는 세계화 덕분이라고 한다. 특히 이민자 여성들에게 도움을 준 이러한 경향은 더 많은 재산, 더 큰 사회적 자율성, 그리고 가족 의사 결정에 있어 더 강한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 어머니들이 더 많이 벌면, 아버지들은 더 많이 듣는다.⌋ (308, 8장 페미니스트 법 이론과 세계화)
비슷한 맥락에서 위의 인용문 끝문장도 찜찜하다. 경제력 중요하고 권력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여성이 돈을 벌든 안 벌든, 잘 '들어야'지??? 사람이 말을 하면 잘 들어야지, 옆집 개가 짖는구나 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후. 나도 안다. 이게 뱅뱅 도는 꼬리잡기에 불과한 잡설이라는 거. 그러나 '평범한' 남성이 얼마나 여성의 말을 '안 듣고' 사는지, 무의식 속에 자리한 일상적인 무시가 얼마나 잦은지. 이거 정말 심각하다. 더 많이 벌면 더 많이 듣는다는 말은 현상일 뿐,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주장의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