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성산업의 노예제에 대한 국제적 조망 (조 바인드먼)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는 다른 노동자들이 추구하는 최상의 노동조건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일까? 이 직업을 선택할 권한을 박탈하고, 다른 분야의 더 나쁜 일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걸까? 가령 인도 유리 공장에서는 항상 열기와 연기와 소음에 둘러싸인 채 끔찍한 화상을 입을 위험을 안고서 일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일을 계속하면 기대수명이 10~15년 줄어든다고 한다. 생계형 농업에 종사하면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는 건 어떤가? 농사일을 끝내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수확을 한들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생산 라인에서 쥐꼬리만 한 돈을 받고 지루한 노동을 견디느니 차라리 성매매로 나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또 성매매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온 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다." (394) 


그렇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성매매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수많은 경우들이 존재할 텐데, '차라리 성매매로 나서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은 '쉽게 돈버는' 일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오히려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성매매, 성노동, 이름을 어찌 붙이든 아직도 잘 모르겠는 분야다. 노동으로 인정하게 되면 현실 세계는 물론 인터넷 세상에서도 여성 상품화와 혐오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지금도 엉망인데. 





21장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전략을 향하여 (크리스 틸리, 랜디 알벨다) 


"아이러니하게도, 성평등과 관련된 다른 권리 - 재생산 선택권, 동성애자 권리 - 를 옹호하기 위한 행동에는 수십 만 명의 여성과 남성이 모이지만,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이 분명한 복지 '개혁' 문제에는 많은 이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439)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이 세상은 뿌리부터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22장 공적 투옥과 사적 폭력 (앤절라 Y. 데이비스) 


"또한 17세기 영국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입마개branks - '쨍쨍거리는 여자의 재갈scold's bridle' - '수다쟁이 여자의 재갈gossip's bridle'이라고도 불렀다 - 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보면 공과 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49) 


부르르르. 




 24장 출발 지점에 대한 평가 (실라 로보섬) 


" 부엌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 정치경제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492) 


정치경제 공평하게 나누어 합시다. 가사노동에 관한 책을 좀더 읽어야 겠다. 일상 생활에서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세분화되고 어떻게 다시 통합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식구들에게 인식시키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26장 자본주의와 인간 해방 : 인종, 젠더, 민주주의 (엘런 메익시스 우드) 


"젠더는 가장 저렴하다고 (그릇되게) 여겨지는 방식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조직하는 방편으로 기능한다. -(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육아가 자본에 비용 부담을 덜 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연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출산휴가나 어린이집은 이를테면 노인연금이나 실업보험과 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모두 달갑지 않은 비용을 수반할 뿐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어떤 비용에든 적대적이다. " (527)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특수한 모든 억압이 사라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 반면 자본주의는 그 정의상 계급 착취가 사라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527) 


국가 지원 육아정책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 달갑지 않은 비용. 모두가 소모품. 활용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사회. 




27장 여성의 삶의 군사화 (신시아 인로) 


"여전히 남성 중심인 군대에서 제한된 수의 여성이 병사로 받아들여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성매매 여성, 강간 피해자, 어머니, 부인, 간호사, 페미니스트 활동가 등으로서 여성들이 겪는 복잡한 군대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성의 군인 역할에만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많은 여성들의 군사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다루는 셈이다. 이런 순진한 가정에 빠져버린다면 나 자신의 호기심 역시 군사화되고 말 것이다. 


무관심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548) 


옳은 말씀. 날카로운 시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인용구 뒷부분도 다 가져오고 싶었지만 너무 길다. 군대, 군사주의에 관한 글을 더 읽고 싶다. 한국의 경우 저 여성 리스트에 군부대 공연 아이돌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또 더 있겠지.ㅠㅠ 




31장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다시 본다 (낸시 하트삭) 


"안잘두아는 두 현실 속에 살면서 접촉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험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현상에서 심층적인 현실의 의미를 보는 '능력', 즉 "표면 아래에 있는 심층 구조"를 보는 능력을 언급한다. 이어 그녀는 "가장 많이 닦달받는 이들이 가장 강한 능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성, 온갖 인종의 동성애자, 유색인, 추방당한 자, 박해받는 자, 주변으로 밀려난 자, 외국인 등이 그들이다." 이런 능력은 두 세계 사이에 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획득한 생존 전술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잠재해 있다." " (657) 





35장 환경정의의 확장 : 아시아계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의 기여 (줄리 시) 


"그렇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미국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최대 단일 집단은 군대다. 또한 부자들은 빈민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5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세계 자원의 36퍼센트를 사용한다. 미국인 1명이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양은 일본인 3명, 멕시코인 6명, 중국인 12명, 인도인 33명, 방글라데시인 147명, 에티오피아인 422명이 사용하는 양과 같다. 외국인 혐오론에 빠진 이 '환경론자들'은 부자 일반, 특히 미국인의 자연자원 낭비를 줄이는 대신 인구를 줄이기를 원한다 - 이민자들이 환경 악화의 주된 원인이 아닌데도(아니, 유의미한 요인조차 아닌데도) 유색인 이민자들을 줄이려고 한다."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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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18장 막 다 읽고 좀 짜증이 나서 난티나무님 서재 다시 왔어요. 이 부분 여기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서요. 난티나무 님이 덧붙이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오 왜이렇게 짜증이 나죠?
전 또 읽으러 갑니다. 슝-

2021-03-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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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어려움에 조금 지쳐서 펼쳐들었는데, 이런 내용인 줄 몰랐...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에 나를 대입하고 내 생활을 돌아보고 가까운 미래를 상상해보는 일은 괴로운 일일까 다행한 일일까.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71) 


언제나 버거운 일, 기다림, 차별, 격하게 공감하면서 동시에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적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임신한 여자를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나 제각기 다르다는 게 비유의 본질을 흐릴 수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그는 가게에서 점원들이 부모님의 억양을 비웃는다는 것, 그리고 세일즈맨들은 그의 부모님이 마치 바보나 귀머거리라는 듯 고골리에게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93) 


할 말 없음. 아이들은 늘 나와 옆지기의 발음과 억양을 꾸짖(?)는다. 내가 들어도 어이없다. 발음과 억양만 문제면 다행이다. 문법도 엉망이다. 어려운 문장은 구사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조금만 어렵게 말하면 알아듣기 어렵다.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부끄러워 하는 게 느껴진다. 이 때 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바보'이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머릿속에 든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거. 분명히 바보는 아니지만 표현할 길이 없어 바보가 되어버리는 거. 프랑스에 살면서 가장 싫은 점이다. 그래서 말은 내게 두려움이다. 고골리 아버지 아쇼크는 대학교수다. 억양은 우스울 수 있어도 말은 잘 할 것이다. 교수라도 외국인으로 업신여김을 당한다. 우리는 교수가 아니며 교수도 아니다. 



앞부분에 아시마가 인도의 가족들에게 주려고 선물을 엄청 사서는 지하철을 타고 졸다가 물건들을 두고 내리는 사건이 나온다. (61~)  아시마는 자책을 하며 울었고, 남편 아쇼크는 집에 와서 지하철 분실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아시마는 혼자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나갔고 아직은 낯설 수 있는 외국에 적응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겁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마는 캘커타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아이들도 가르쳤다. 전공했다고 해서 회화를 잘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지하철 역에서 물어보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라도 자책은 했겠지만 지하철역 직원에게 물어보는 정도는 생각했을 것 같다. 뭣 때문일까. 아시마는 무엇 때문에 그냥 울면서 집에 갔을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이런 부분들이 소설 전체에 흩어져 있다. 모든 인물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을 갖고 있다. (특히 모슈미가 더 그렇다.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느낌. 상황에 잠식되는 인물.) 


아시마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잠시 의문을 가져보지만 그 질문은 곧, 나는 왜 이렇게 살까,로 바뀌고 이내 수긍하게 되고 만다. 어느 면에서는 너무 나 같아서 그만. 소설이니까, 그러지 않고 공부도 계속 하고 일도 하고 그랬다면 좋았을 걸, 하다가 그것 또한 삶이라고, 그렇게. 아시마처럼 주변에 모국어를 쓰며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내게도 많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시마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간 어떤 이는 한인타운에서 사는데 하루에 영어를 한마디도 안 하고 살 수 있다고, 영어를 쓰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고, 조금 다른 한국에서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인타운도 없고 주변에 한국사람들도 없지만 하루에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낼 수 있는 나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싶지만 이 또한 삶이라고. 그러나 오래 견딜 수 있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겐 아시마가 가졌던 가족 같은 이웃들이 이제 없다. 




" "목적론적으로 말해서, ABCD들은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발표자 중 한 사회학자가 이렇게 선언하였다. 고골리는 'ABCD'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미국에서 태어난 방황하는 데쉬 American-born confused desh'의 약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데쉬'라는 말이 '시골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동시에 '인도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모님과 부모님의 친구들이 언제나 인도를 가리켜 그냥 '데쉬'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골리는 인도를 한 번도 데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미국 사람들처럼 그에게 있어 인도는 그냥 인도였다." (156) 


아시마와 아쇼크의 첫아이 고골리에게는 내 아이들을 대입하게 된다. 외국에서 태어나 여기도 저기도 아닌 것 같은 중간 어디쯤에서 혼란을 겪으며 성장해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무엇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눌러앉았나 생각한다. 선택이 잘한 것이었는지 되물어도 답은 없다.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닌지도 분명치 않다. 유치원에서 입을 닫고 말하기를 거부했던 아이의 생활이 어떠했을런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돌이킬 때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자꾸만 어긋나는 고골리의 연애사와 결혼생활을 읽고 있자니 나중 내 아이들의 삶은 어떨런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벌써 마음이 아프다. 고골리가 엄마아빠의 나라 인도로 여행가는 것을 싫어했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그렇게 될까 생각한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잠깐 다녀오는 것 말고는, 가족들의 집에서 며칠씩 생활하는 것 말고는, 한번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도입부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내 경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전체를 두고 봤을 때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데, 나를 대입하다 보니 객관성이 흐려졌다. 그런 것 아닐까, 삶이라는 거. 두리뭉실하고 흐리고 뭔지 모를 아쉬움 같은 거. 그래서일까, 마냥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작가는 인물 설정을 일부러 이렇게 했을까, 아니면 이것이 한계였을까? 소설을 읽을 때마다 질문을 한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 인물을 이렇게 그렸을까? 이렇게 그린 이유는 뭘까? 질문을 뒤집어봐도 잘 모르겠다. 줌파 라히리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 겠다. 


- - - 


번역 이야기.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단어들. 잘못 표기된 단어들. 예를 들면 '상케르'(257)는 프랑스식으로 읽어야 하며 '상세르' 정도로 표기해야 한다. 역시 프랑스어 '도르세이 미술관'(299)은 '오르세 미술관' 정도로 표기해야 한다. 'ㄷ'은 앞에 뮤제musée 가 붙을 경우 전치사가 연음되는 것이다.(Musée d'Orsay) '오렌지 카드'(300)는 파리 지하철 '1주일권'을 가리키는데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알고 있다. 같은 페이지 '플랜 드 파리'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은 표현이라 아예 프랑스식 발음으로 '플랑 드 빠리'라고 적거나 아니면 '빠리지도'나 '빠리가이드' 정도가 맞는 듯하다. (작은 가이드북이라는 설명이 따라나온다.) '걸어 들어가는 옷장'(307)은 또 무엇인가. 드레스룸? '파케트 마루'(340)에서 파케트는 나무를 이어 만든 바닥이라는 뜻을 가진다. 마룻바닥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에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많이 나온다. 반대로 지나친(?) 한국어번역도 눈에 띈다. '섬형 조리대'(354)는 요즘의 아일랜드 조리대를 말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가 중간 즈음부터 체크하기 시작했기에 앞부분에도 이런 곳들이 있을 수 있다. 2004년판이니 번역을 손본 개정판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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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1-03-20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보가 아니지만 표현할 길이 없어 바보가 되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죠.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와 제 아이들 대입하며 읽었던 생각이 나네요.
번역은 별 생각이 없이 읽었는지 이런 부분이 있는 줄 몰랐네요. 걸어들어가는 옷장은 walk in closet을 그대로 번역한 듯? 말씀대로 드레스 룸이라고 하면 될 거 같고 ‘섬형 조리대‘는 진짜 좀 어색하네요. 한국에서도 아일랜드 조리대라는 말을 쓸 거 같은데.

난티나무 2021-03-20 19:31   좋아요 1 | URL
흑흑. 그냥 웁니다.ㅠㅠ
번역이 좀 그랬어요. 다시 번역되면 좋겠어요. 읽다가 자꾸 단어들이 걸리는 바람에 ㅎㅎㅎㅎㅎ (울다가 웃네요?ㅋㅋ)

라로 2021-03-23 00:44   좋아요 0 | URL
걸어들어가는 옷장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한 것일까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넘 심하네.ㅋㅋ

미미 2021-03-2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동안 기분이 묘하셨을것 같아요. 한국에서 바라볼땐 해외나가 살아보는거 너무 좋을것만 같은데 저도 어릴때 1년 안되는 동안 이국땅에서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 싶기도 하거든요. 적응좀 하려니 들어온느낌? 난티나무님의 경우에 불어는 더군다나 어려운 외국어라..ㅠ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혹시 안읽어보셨음 느닷없이 추천드려요. 헤헤 유쾌해서 이곳저곳에서 기분전환되실듯!

난티나무 2021-03-20 19:36   좋아요 1 | URL
음 그래서 책 읽는 동안 나와 이야기에 동시에 들락거리느라 정신이 좀...^^;;;;;;
저도 어릴(?) 때는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런 성격인 줄 알았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ㅠㅠ 나도 나를 모른다. 하아~
추천해 주신 책은 안 읽어봤는데 소개는 많이 봤고요, 목차나 인용구 훑어본,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느낌으로는 선뜻 손이 가진 않겠다,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지 했었던 거 같아요. 글쎄 이게 뭐랄까 설명이 힘든 묘한 감정이 있어요.^^;;;;;; 뭔 말인지...ㅎㅎㅎㅎ 추천 감사해요~ 기회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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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단편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줄 게 있어] 

위로의 위험한 방법.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위한 위로는 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고통은 누군가가 가져가야만, 그렇다고 믿어야만 덜어질 수 있는 것인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자기 방어. 


" "우리 영후가 참 멋지게 아프고 있구나." 

아버지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덴 것처럼 어깨가 뜨거워졌다. 나는 부엌으로 나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얼음을 쥐고서 어깨에 문질렀다. 입안 가득 얼음을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발바닥이 뜨거워 양말을 신고 다니기가 힘들어졌다. " (20) 





[병원] 

누구를 위한 사회보장인가. 법의 테두리. 부정수급. 소년소녀가장. 가난. 빈민자를 등쳐먹는 세상. 노동력 착취. 병원비 조달을 위해 미친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 


"미쳤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건데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증상은 환각을 본다거나 환청을 듣는다거나......" 

"환각과 환청만으로요?"

"그런 것들 때문에 일상생활이 망가지느냐 아니냐......" 

"제 일상이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정유림씨는 자신의 폭력성의 원인을 외부로 전가하고 있어요. 어떤 것들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나 어떤 것들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이 바로 잠재적인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징후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50) 




[다시 하자고] 

함께 생활한다는 것의 이면. 함께 하지만 다른 생각들. 동의하지만 반대였던 마음. 묘하게 너무도 알 것 같은 그 마음. 


"싫은 것을 의문형으로 표현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드는 버릇이 내게 있다고 지은이 말한 적이 있었다. 지은은 내가 그런 방식으로 매사에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한다고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말로 세이프 존을 확보해놓고 상대를 시험한다고 했다. 싫지만 싫다고 말할 수가 없거나 싫지만 양보가 가능할 때 사용하는 어법이었지만, 지은을 괴롭게 만드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지은에게는 내가 고쳐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은을 제외하면 내 의문형을 신경쓰는 타인은 없었다." (67)





[추앙] 

* 같은 놈들이 교수하고 작가하고. 선민의식 쩌는 놈들. 말이 험해 안 미안하다. 소설이 소설만이 아닌 것이 분통터지는데 현실은 이보다 더할 거라 더 분통터진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내가 도와주니까 좋지?' 선의를 가장한 조종과 감금과 정신폭력. 정상과 비정상. 제발 두 개로만 나누지 좀 말라고. 


"아프면 멀게 느껴졌다. 천장이 너무 높아 보였다. 방문이 너무 멀어 보였다. 물에 잠긴 것처럼 눈을 뜨고 있어도 초점이 흩어졌다. 소리들이 웅얼거렸다. 자세를 바꾸려면 공기를 밀어내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여야 했다.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걸 잊어버릴 수가 없없다. 아프다는 것은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112)




[신체 적출물] 

"'각자의 애원은 각자의 것을 지키려는 욕망이었다. 애원도 욕망의 일종이었다. 애원은 각자의 내부에서만 공명할 것이다. 은하는 애원이 무서워졌다. 유리병 속에 갇힌 애원이 무서워졌다. 애원의 고립이 가장 무서워졌다." (141-142)


어디까지 욕망하고 어디까지 애원할 수 있을까. 




[선샤인 샬레]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도망.(그거 정말 도망?) 아무도 나를 모르는, 한번쯤 상상하는 세상. 손님이었다가 시중 드는 사람이었다가 다시 손님이 되는 인생. 




[눈과 사람과 눈사람]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 알지 못하는 이면. 위로와 도움과 연대의 의미. 의미 뒷편의 의미. 


"...이십 년 동안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한 사람은 배에 칼을 맞았고, 화재사건 피해자와 연대해온 사람은 방화 때문에 집이 불탔고, 피해자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이민을 간 사람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194) 



*** 


첫 두어 편을 읽을 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가 점점 뒤로 갈수록 어 이게 뭐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사건의 잘 보이지 않는 이면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말이 이런 건 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싶다가 모든 단편을 다 읽은 후에야 수긍이 간다. 슬프고 힘든데 가슴이 뛴다. 모든 단편이 그렇다. 사놓고 제대로 읽지 않은 임솔아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꺼내온다. 소설을 읽기 전엔 대충 훑었던 시가 다시, 새롭게 보인다.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 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 예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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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지향 6개월째. 

오늘의 화두는 (확대)가족 내의 비건지향자,이다. 이때의 가족은 나만 빼고 모두 육식주의자. 

일요일 점심에 모처럼 고기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미리 준비해서 옆지기가 식사 준비(채소 손질)를 하고 있는 옆에 앉아 먼저 먹었다. 고기를 볶기 시작할 무렵, 식후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바로 산책을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고, 고기 볶는 냄새를 견딜 수 있을지 몰라서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옆지기는 식탁의 빈자리가 마음에 걸렸다고 말한다. 앞으로 고기를 먹을 때는 이렇게 한자리가 비게 되는 거냐고, 이런 모습으로 우리 식탁의 모습이 변해가는 거냐고. 밥 먹을 때는 꼭 모두가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냐고 되물을 수밖에. 밥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저녁마다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간 준비한 식사를 10분만에 먹어치우고는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누구였지? 어이는 어디 가고 맷돌만 있는 셈이구만. 

고기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내가 그걸 참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내가 그걸 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이런 의문은 네 식구의 식사에서는 오히려 쉬운 문제가 된다. 나는 내 주장을 할 수 있다. 가족을 확대해 보자. 모이면 고기를 구워 먹는 게 당연한 양쪽 집 식구들,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서요, 고기 냄새를 못 맡겠어요, 하고 빠질 수 있는가? 이 지점에 이르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외국에 사는 딸이고 며느리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2~3년에 한번 보는 게 다인데, 매달 매주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니가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은 동생이 한 말이다. 다같이 고깃집에 가자고 하면 어쩔 테냐, 못 간다고 빠질 수 있느냐, 가서 다른 거 먹으면 되지 않느냐. 이 논리는 다른 대화에서도 자주 적용된다. 얼마나 해봤다고, 멀리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현실을 모르는 소리, 자주 하는 거 아니니 눈 딱 감고 그냥 해. 옆지기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본가에서 고기 먹자 하면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되묻는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고기 굽는 냄새를 참으며 그 자리에 있기는 싫다. 고깃집엘 갈 거면 나는 빠지겠다고 했다. 그게 맞는 거 같았다. 집에서 고기를 굽는다면 나는 외출을 하겠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친정 식구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하면, 외출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 욕은 좀 들어먹겠지만 그걸로 끝일 테고. 장소가 옆지기 본가로 바뀌면 이 장면은 어떻게 연출될 것인가? 과연 나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외출하겠습니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집에서의 모든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가족을 위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왜 그 방향을 거꾸로 돌리지는 못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확대가족 안에서 비건지향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무지 궁금해서 검색도 조금 해보았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다. 비건 까페에 가입해야 하려나? 도대체 어떻게들 살아가고 계신 건가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좀 던져주세요. 이런 고민 있는 비건 관련 책도 아시면 좀. 


*** 

여기까지 적어두고 <비건 세상 만들기>를 읽었다. 뒷부분 슬렁슬렁 넘겨보니... 

이론과 증거를 들이대도 꿈쩍하지 않을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일단 숙이고 들어가라,는 요지의 글들. 윤리를 내세우지 말 것, 주장하지 말 것, 설득하려 하지 말 것, 판단하지 말 것, 상대방을 이해할 것. 대나무 말고 풀이 되라는. 좋아요 좋아. 그렇게 한다고 치자. 같이 고깃집 간다. 그런데 정말 생고기 굽는 냄새는 못 맡겠단 말이다. 중간에 뛰쳐나오는 것보다 내가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고기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못 먹고 못 맡는 사람이 있으니 중간 어디메쯤에서 타협하자는 거지. 양념한 건 좀 덜하니 그럼 불고기집이나 아니면 중국집, 이런 데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아주 나중에 만약 내가 그마저도 정말 못 가겠다고 뻗대는 때가 오면, 그때는 어찌 할 텐가? 


오늘 읽은 두꺼운 빨간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목표는 의제에 남겨두고, 현존하는 제약 안에서 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부엌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 정치경제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하나의 억압된 범주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뛰는 식으로 체제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하아. 모든 노력이라. 대나무가 되어 들이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막상 뻔히 드러나는 내 위치에 서서 안 쪼그라들고 들이받을 자신은 없고. 안 그래도 미운털(?) 박힌 둘째 며늘 이제는 꼴값 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생겼다. 그 꼴값, 아드님이 같이 하면 좀 나을까요. 더 가슴 아프실까요. (그럼 또 나만 나쁜x?)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력한다. 결론은 이거지 싶다. 그런데 정말 내가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정말 그런 걸까. 



















"'나는 옳은가?' 혹은 '이것은 나의 진리인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효과적인가?'이다." (178) (- 방법론적인 면에서 글쓴이의 주장의 일부를 내 경우에 비추어 가져온 문장이므로, 전체 책의 내용이라 볼 수 없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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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생존의 이야기 : 계급, 인종, 가정폭력 (재니스 하켄)


"벨 훅스는 '매 맞는 여성'이라는 용어조차 여성들의 수많은 경험을 일차원적인 규정으로 환원한다고 주장한다. 억압된 공동체에서 경제적 폭력을 비롯해 일상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들과 매 맞는 여성들을 분리하는 선을 긋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극단적인 폭행 사례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가정폭력 반대 운동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비교적 극적이지 않은 폭행을 과소평가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p.217)  


"여성 폭력은 남성 폭력에 비해 훨씬 드문 데다 파괴적인 면이 덜하기야 하지만, 페미니즘 문헌에서 '핵심적인' 여성적 자아의 진정한 일부가 아니라 고색창연한 과거로 재현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폭력이 대개 방어적인 반면, 남성 폭력은 흔히 공격적이며 여성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jhonson 1995). 이런 입장은 여성이 품는 분노의 뿌리 깊고도 다양한 원천을 간과해버린다. 실제로 가정에서 남성이 보이는 수동성이야말로 공공연한 폭력 행위보다도 더한 여성의 분노를 일으키는 원천이며 만성적인 문제이다." (p. 218)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수동성'! 

신체적 폭력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고 증명할 길 없는 정신적 폭력에 대한 연구도 많아지면 좋겠다. '가정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11장 모성과 섹슈얼리티의 이해에 관하여 : 페미니즘 - 유물론 접근법 (앤 퍼거슨) 


"우리는 애정적 유대를 육체보다는 감정적인 것으로, 성적 유대를 감정이나 사회보다는 육체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실 이런 생각은 서구의 이원론적 사고 패턴 때문에 초래되는 왜곡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성/애정 에너지를 애정적/정신적/특별히 물리적이지 않은 상호작용에서부터 물리적이지만 특별히 애정적이지 않은 성기 접촉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p.260) 


이 인용구를 찍어 옆지기 톡으로 보내주었다. 무슨 말인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ㅠㅠ




"폴브레는 남성에 대해 여성이, 자식에 대해 부모가 착취당하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가정 경제 안에서 임금노동과 비임금노동을 비교하는 경제 모델을 개발하는 중이며, 델피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정 경제는 이혼한 뒤에도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어머니들이 훨씬 더 많은 직간접적 양육 노동을 떠맡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들 대부분은 양육비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머니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는 이혼과 더불어 증가한다. 따라서 독신모 가정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남편-가부장제husband-patriarchy의 쇠퇴가 아니라 새로운 가부장적 성/애정 형태의 증가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독신모 가부장제single mother patriarchy'라고 부르는 이 형태는 가족 중심적인 가부장 형태에서 비개인적인 국가 가부장제 형태로 변화하는 것과 연결된다." (p.267) 


옳으신 말씀. 




12장 가부장제와 교섭하기 (데니즈 칸디요티) 


"고전적 가부장제 아래서 여자아이들은 무척 어린 나이에 혼인을 통해 남편의 아버지가 이끄는 가족으로 넘겨진다. 그 집에서 여자는 모든 남자뿐만 (아니라,라는 단어가 본문에서 빠졌다) 나이 든 여자, 특히 시어머니에게 종속된다." (278) 


"... 어린 신부는 사실상 가진 것 하나 없이 남편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부계제에서 자기 자리를 확고히 하려면 아들을 낳는 수밖에 없다. 

부계제는 여성이 하는 노동과 낳는 자손을 모두 독차지하며, 여성의 노동과 생산에 대한 기여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부장적 확대가족에서 여성의 생애주기라는 것은 어린 신부일 때 겪었던 박탈과 곤경을 나이가 들어 며느리에게 통제와 권위를 행사하는 것으로 보상받는 식이다. 여성이 가족 안에서 누리는 권력의 순환적 성격과 시어머니의 권위를 물려받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 이런 형태의 가부장제를 철저히 내면화하게 된다." (279)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거부할 수밖에 없는 마음, 대면하고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용기없음, 돌아서서 억울해하는 분노, 다 그러고 사니까, 다 그래야 하니까,를 들이받고 싶은 마음 들이 엉킨 채 나는 그냥 서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14장 여성 노동자와 자본주의 : 지배 이데올로기, 공통의 이해, 연대의 정치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여성을 가정주부로 정의하는 것은 또한 여성 노동의 이성애화heterosexualization를 암시한다 -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과 혼인관계를 통해서만 정의되는 것이다. " (313) 


뜻을 검색해 본다. 신경쓰지 않고 살다가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뜻밖으로 놀라게 되는 일이 잦다. 단어를 정의내리는 일에도 이미 사회적 관습과 차별이 존재한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읽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 가지가 뻗는다.)

프랑스어로 가정주부, 전업주부를 가리키는 말은 femme au foyer 이다. 직설적으로 풀이한다면 집의 여자, 가정의 여자, 쯤이 되겠다. 가정주부의 뜻은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라 되어있고, femme au foyer의 뜻은 '커플의 경우 집안일이라고 명명되는 모든 것(자녀교육을 포함한)의 대부분을 하는 여자'라고 위키백과에 나온다. 외국인으로 서류를 작성할 때 직업을 적는 란에서 가정주부에 체크하는 일, 직업을 쓰는 란에 가정주부라고 적는 일이, 그동안 당당하지 못했다. 쪼그라들었었다. 뭔가 직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어서 부끄러운 기분.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왠지 안 되는 것 같은 기분. 이런저런 직업들이 늘어서있는 목록 맨 끝에 직업없음과 같은 위치를 아니 더 아래를 차지하는 가정주부 항목. 아예 체크할 칸이 없는 가정주부 항목. 이제는 당당해지기로 한다. 그래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가정주부'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바꾸고 싶다. 어떤 표현이 좋을까? 




16장 환상의 현실화 : 마킬라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생산 (레슬리 샐징어)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 지구적 생산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반대로, 여성 노동자들은 전 지구적 생산의 최종 완성품이다. 젠더는 확실히 세계화의 중요한 측면이지만, 저비용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여성성'이라는 수사다." (370) 


노동 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적용이 되는 말 같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복잡한 사회와 세계가 어떻게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를 점점 더 많이 보여줘서 때로는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냥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공감 능력이 두 배 세 배 열 배 증폭되는 걸 느낀다. 그러나 늘... 그뿐이다. 나는 최소한의 행동을 하며 살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계속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나는 나 자신을 계속 의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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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1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옆지기님에겐 기초적인 책부터 찍어보내 주셔야하지 않을까요? 이책은 아무래도 고난이도 인듯해요.😆

난티나무 2021-03-13 20:27   좋아요 1 | URL
하핫! 저 인용구가 어려운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꽈??? ㅎㅎㅎ 제가 늘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안 와닿는가 봅니다. ㅠㅠ

2021-03-13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3-14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가족 안에서 누리는 권력의 순환적 성격과 시어머니의 권위를 물려받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 이런 형태의 가부장제를 철저히 내면화하게 된다.˝ 이말이 콕 와닿네요. 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농담처럼 얘기되어지는데 이말에 들어있는 억압구조의 순환을 끊어낼 필요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또 잠시 하게 되요.

난티나무 2021-03-14 04:59   좋아요 0 | URL
언제쯤 끊어지게 될까요. ㅠ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끊어내고 싶어한들 아래로는 그래도, 할 수 있는 일, 위로는 안 되는 일.... 정녕 위로는 안 되는 일일까요. 아마도 그렇겠죠..ㅠㅠ

라로 2021-03-1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계속 문자 보세 주세요!! 그 뭐야요 한결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고 하잖아요. 옆지기 님께 계속 저런 문장을 찍어 문자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구멍이 뚫리지 않을까용??^^;; 화이팅, 난티님!!!!

난티나무 2021-03-14 14:26   좋아요 0 | URL
라로님 댓글에 답글 안 달았지!!! 생각나서 들어왔더니 라로님이 또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동시생각!!! ㅎㅎㅎㅎ
책도 읽히려고 무지 애쓰고 있습니다.^^;;; 문자도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