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읽을 책들을 쌓아놓고 좀 많나 싶었는데 과연 좀 많았다. 별일이 없었다면 다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별일이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 (세 권의 끄트머리를 아직 못 끝내고 있음) 다행히도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계속 그 없는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도록. 


4월에는 인터넷 바다를 두루두루 헤엄쳐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조금만 쌓아보자 하고 책을 보는데, 음 꺼내고 싶은 책이 많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일단 이렇게 꺼내본다. 


4월 여성주의 읽기 《200년 동안의 거짓말》 

함께 읽을 페미니즘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케이트 쇼팽 단편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짝짝짝. 혼자 고르고 박수치고. 

박수치고 나서 복도 책꽂이 앞에 섰더니 거기서도 안 읽은 책들이 째려본다. 어떡하지? 추가할까? 다 못 읽을 것 같은데. 몇 권을 소심하게 꺼냈다가 다시 조용히 꽂아둔다. 좀더 기다려. 내가 말이지, 전자책으로 사놓고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것들이 있거든? 시간이 되면 그것도 좀 열어봐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너희들은 좀더 기다리렴. 

































*** 

 

뭔가 엄청 책을 많이 읽어대는 듯이 보이지만, 1년여 전만 해도 내가 이렇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말도 안 되는 시국이 나에게 판을 깔아준 것일 수도. 주어진 시간은 매일이 똑같은데 책을 쌓아놓고 읽고 말테야 모드를 장착하고 다른 일들을 외면하기. 되도록 안 하기. 집에 있는 일손 써먹기. 그리고 나는 책을 읽는다. 내년이 되면 이런 시간이 다시 없을 수도 있다. 고맙게도(?) 프랑스는 토요일 저녁부터 다시 봉쇄다. 학교도 한달간 닫는다. 9월 초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에게는 혼밥의 시간이 없을 것도 같다. 살짝 우울하지만 괜찮다. 안 읽은 책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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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4-01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말도 안 되는 전세계적 상황이 난티나무님께는 독서의 시간을 제공해주다니요. ㅎㅎㅎㅎㅎ
봉쇄의 시간 잘 보내시기 바래요.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과 함께라면 자동으로 좋은 시간이 보장될 것 같기는 하네요^^

난티나무 2021-04-01 21:10   좋아요 2 | URL
쉿 🤫 살림 안 하고 책 읽는 거 아무도 알면 안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04-01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자주 등장하는 문장, ˝혹시나~~ 많을까 했는데, 과연 많았다˝^^ 저도 매주 도서관 순례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생각한답니다

난티나무 2021-04-01 23:46   좋아요 0 | URL
과대평가하는 건가요, 모두들?^^;;;;; 저는 과대평가였습니다. 하핫~

라로 2021-04-0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짝짝짝👏👏👏👏👏👏👏👏👏
읽을 책 리스트 멋져요!!👍

난티나무 2021-04-01 23:48   좋아요 0 | URL
힛!!! 감사합니다 라로님!!! 🎶

수이 2021-04-0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에도 든든하게 쭉쭉 나아가는 겁니다. 프랑스 봉쇄령 뉴스로 듣고 ㅠㅠ 아 어떻게 하나 했는데;; 살짝 우울하지만 괜찮다는 난티나무님 든든!!

난티나무 2021-04-02 15:04   좋아요 0 | URL
저는 작년 1월말부터 사실상의 봉쇄였어요.ㅠㅠ 집에서 혼자 잘 노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4-5월엔 장도 인터넷으로 보려고 해요. 진정한 집콕이 시작됩니다. 허허허 그저 웃지요.

다락방 2021-04-0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난티나무님 서재만 오면 읽어야 할 책들을 저 역시 쌓게 되네요. <보이지 않는 여자들> 저도 사두고 안읽고 있었는데 역시 4월 도서와 함께 읽도록 꺼내둬야겠어요. 일단 어디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네요. 어딘가에 있긴 있는데..

난티나무님의 다음 페이퍼를 제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샤라라랑-

올리브 키터리지에 케이트 쇼팽에.. 너무 좋네요. 히힛.

난티나무 2021-04-02 15:09   좋아요 0 | URL
책 찾기 어우 그거 험난한 과정인데요. 저는 책 한 권 찾으려다 꺼내는 다른 책이 너무 많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찾던 책은 못 찾고 대신 다른 책들이 제 손에....ㅋㅋㅋㅋㅋㅋ
아 저는 다락방님보다 훨씬 적은 양의 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왜 찾는 책이 없는 걸까요? 얼마 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어야 겠다 하고 막 찾는데 없는 거예요? ㅎㅎㅎ
소설 좀 많이 읽으려고 꺼내놓긴 했는데 음 요즘은 소설 읽기가 왜이리 힘든지요? ㅎㅎㅎ
 
사회주의 페미니즘 - 여성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자유
낸시 홈스트롬 엮음, 유강은 옮김 / 따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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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생각한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기준에 따라 생각한다.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책을 읽는다. 아! 하고 깨닫는다. 저자의 주장에 감탄하고 현실에 경악하고 나의 자리를 돌아보며 절망한다. 다른 책을 읽는다. 아! 하고 또 깨닫는다. 전번 읽은 책의 주장이 약간은 편향된 것이라는 주장에 감탄한다. 또 다른 책을 읽는다. 새로운 것을 본다. 이전의 책들과는 다른 시각이다. 점점 복잡해진다. 다시 다른 책을 읽는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아닌, 총체적 난국을 본다. 내가 처음 깨달았던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의심스럽다. 책의 내용을 의심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정말 맞는가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더해져만 간다. 정답은 아직 있을 수 없다. 머릿속이 바닥에 쏟아져 흐트러진 책무더기 같다. 책탑을 쌓을 수밖에. 무너지지 않게, 느리게, 차곡차곡. 


*** 


"지속 가능성 문제의 핵심에는 비인간 생물, 육체, 여성 노동, 재생산 등의 영역에 대한 의존을 부정하는 이런 서구의 정복자 의식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선언하는 낙관주의 이데올로기는 장소가 바뀌어도 정치색은 바뀌지 않는다. 오늘날 이 이데올로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자연화한다. 어린애처럼 선견지명이 없고, 동물처럼 미래의 만족을 위해 인내할 줄을 모르며, 학력 등의 자격이 부족하거나 합리적인 자기 개발을 충분히 하지 않는 빈민들은 이성과 거리가 먼 자연으로 여겨진다(Ehrenreich 1989). 억압의 네트워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확대된다."(711, 밸 플럼우드) 


억압의 네트워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확대된다,는 말은 내일도 내년에도 십년 뒤에도 유효할 것이다. 앞부분의 「선구자들」 을 읽으면서 끄적였다. '아아, 정말 세상은 언젠가 바뀔 수 있을까. 200년 전에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변함이 없고 환경은 더 나빠졌다. 기술은 급격히 발달하고 사람들은 기계화된다. 정말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암울하다. 직설적인 어법의 문장들을 보니 속이 시원하면서 동시에 갑갑함이 밀려온다.(2021/03/04)' 


책의 두께에 눌리고 여러 저자들의 다양한 시각에 눌리고 때로 놀라기도 했다. 초반에 읽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힘들어진다. 페미니즘을 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펼치면 쉽게 나가떨어질 수 있겠다. 뚜렷한 기준 없이 읽으면 또다른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 두루두루 다른 더 쉬운 책들을 읽고 오라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도전한다면...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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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0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 👍👍수고하셨어요!

난티나무 2021-04-01 19:3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미미님!!!!!❤️❤️❤️

다락방 2021-04-0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너무 멋져요! 👍🏻👍🏻👍🏻

난티나무 2021-04-01 19:36   좋아요 0 | URL
넙죽! 고마워요!!!!♥️♥️♥️
 














아무 생각 없이 내뱉던 말들이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니,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제약회사의 돈벌이에 놀아나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다. 


책의 목차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밑줄친 부분을 옮기면서 어제 본 예능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암 투병 중인 엄마가 딸의 아침을 차려주려고 주방에 서 있는데 머리는 박박 밀고 힘겨운 모습이다. 사진을 보고 패널들은 어머니의 사랑 운운하며 뭉클하다고 말했다. 나는 하나도 뭉클하지 않았다. 뭐가 감동이란 말인가? 저렇게 힘겨운 상태인데도 딸의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제 손으로 아침을 차려먹지 않는 딸(아주 어리다면 할 말 없음), 보이지 않는 짝(없는 상황이라면 이 또한 할말 없음).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죽을 병에 걸려서도 식구들의 밥을 챙겨야 하는 여자는 무엇일까?


이 세상은 거짓말을 한다. 모두가 속는다. 돈벌이가 되면 더 많이 철저하게 속인다. 사람들은 속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당연하다고 말한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의심 없이 매일 삼킨다. 그들이 생각하는 당연함이 거꾸로 이 사회구조를 떠받친다. 평생에 걸쳐 몸의 변화를 확연히 겪는 여자들이,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당한다. 편견과 선입견과 혐오와 잘못된 정보들이 여자들에게 쏟아진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의심하라!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 (p.354) 


(* 책 표지의 정희진 추천사 : 편견을 과학으로 믿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여성주의 입문서.) 





"생리전증후군 신화는 무수히 많은 맥락과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든 깎아내리고, 평가 절하하고, 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화가 나 있거나 공격적이거나 적극적인 여성은 생리 중일 거라 생각하는 것조차 그 여성의 발언에 ‘못 믿을 여자‘라는 커다랗고 새빨간 딱지를 붙이는 셈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강화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여성이 우리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생리 때문‘이라는 생리 책임 전가는 입 밖으로 내건 안 내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상대의 힘을 빼앗는 수단으로 오늘날 남녀 모두가 휘두르고 있다." - P110

"문화적으로 ‘착한 여성이 된다는 것‘은 늘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날 카드에 적힌 ‘엄마, 필요할 때마다 늘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뭉클한 문구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상을 달성해내는 여성의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오랫동안 자제하는 것이다. 착한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뒤엎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으레 평정심을 유지하고 늘 과묵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 P111

"의사라는 직종을 남성이 지배하게 된 것은 과학 혁명 덕분이었다. 이 시기에 민간전승이 아닌 과학이야말로 의술의 토대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러한 신생 남성 의사들이 자신들의 의술을 홍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산파들의 민간 지식을 폄하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막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여성 치료사와 자신들을 차별화했던 한 가지 방편은 ‘과시적 의술‘로 알려진 극단적 의술을 행하는 것이었다. 의업 초창기 시절의 의사들은 사혈과 설사약같이 극단적인 효과를 내는 치료법을 처방했지만 그런 치료법은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악화시켰다." - P155

"여성의 완경과 노화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대부분 이윤을 내기 위해 확립되고 조장되고 유지된 것이었다. 이는 우리의 신화 창작 능력을 최악의 방식으로 오용한 것인데, 수십 년간 무수히 많은 여성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제는 그 정도를 정량화할 수도, 심지어 완전히 알릴 수도 없을 정도다. 이러한 완경 신화는 고의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여성을 불가능한 이상에 매달리게 했으며, 부작용으로 병을 유발하고,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 P285

"성별 고정관념으로 득을 더 많이 보는 건 일반적으로 남성들이지만 남성들 역시 이처럼 쓸데없고, 문제 많고,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관습의 대가를 일부 부담한다. 남성들에게는 직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끝없는 압박이 어마어마하게 가해지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역사를 통틀어 남성들은 전쟁이라는 잔인무도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본인의 목숨을 잃을 위험까지 감내해왔다.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덫에 갇혀 있는 동안 남성들은 가족을 부양하면서 생활전선의 최전방에 갇혀 있었다. 이후 담론에서 나는 여성의 호르몬 관련 신화와 같이 성별에 기반한 신화들이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탈출구를 찾아 몸부림칠수록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덫과 같다. 벗어나려고 해도 문화 규범이 옥죄는 탓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한은 누구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체현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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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1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행이 무산되었다.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본다.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돈과 공포. 


비행기가 제대로 뜨지 않는 상황에서 표값은 지나치게 비싸다. 4인 기준 예전보다 2백만원 가까이 추가지출을 해야 했다. 조금 더 일찍 샀다면 나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오십보백보다.


귀국 전 3일 이내에 코로나 음성 결과 확인서를 영문으로 발급받아야 하고 입국과 동시에 선별진료소에 들러 또 검사를 해야 하고 14일 자가격리를 (어쩌면 인당 140만원을 내고) 해야 하고 다시 돌아올 때에도 음성확인서를 들고 비행기를 타야 하며 검사비가 인당 10만원을 웃돈다는 것도 인정하면서 결정한 한국행이었다. 


4인 가족이니 왔다갔다에만도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건 맞다. 그만한 지출을 감수할 만큼의 명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포 앞에서 명분은 무릎을 꿇게 되었다. 한쪽은 어쨌든 환영하고 한쪽은 어쨌든 지금은 안 된다고 거부한다. 미친 것 아니냐는 말을 건너건너 들었다. 미친 건 이 세상이 아닌가? 


코로나가 독감과 다른 것이 있다면 계절을 덜 탄다는 것? 사람들은 독감에 걸린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는 않을지언정 혐오하지는 않는다. 누가 독감에 걸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고를 따지지는 않는다. 어서 낫기를 바래준다. 지금 이 상황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독감과는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온 세상이 공포를 조장한다. 충분히 검증기간을 거치지 않은 백신이 전세계에서 접종되고 있다. 독감 백신을 맞은 겨울마다 내내 몸이 좋지 않았던 경험을 한 나는 백신이 무섭다. 이 또한 조장된 공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심은 정당한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런 식인가? 왜 반대의견은 표면에 떠오르지 않는가? 천편일률적인 대응만이 보여지고 들려온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묶는다. 모든 뇌를 점령당한 것 같다. 몹시 불안하다. 백신은 선택이라고 말하면서 백신 여권 말이 나온다.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선택을 필수로 바꾸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공포 조장은 사람들을 얽어매기 딱 좋은 방편이다. 


오늘 비행기표를 취소한다. 한번 다녀오면서 코로나 검사만 4번 이상을 해야 하는 귀찮음과 번거로움과 힘듦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다시 계속 집에 머무르면서 책을 읽으며 지내도 된다. 가족을 만나면서 쟤가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혀오지 않았을까 의심을 받지 않아도 된다. 차라리 잘 되었다. 그러나 내년이 된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싶다. 그 때가 되면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겠지.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세상이다. 








▼▼▽▽▼▼▲▲▼▼▽▽▼▼



























































































한국에 갈 거라고 소포로 받지 않고 동생 집에 모아둔 책들, 부치라고 해야 겠다. 책 올리다 보니 샀다고 글 안 쓴 책도 있고나.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계속 살 건데. 여기 있는 게 다인 것도 아닌데. 아아 이렇게 의미없다고 느껴지면 망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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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31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한국행이 취소되었군요. 어쩌면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쉽네요.. ㅠㅠ

난티나무 2021-03-31 22:36   좋아요 0 | URL
제주에서 번개 하고 싶었단 말이지요.ㅋㅋㅋㅋㅋ
날씨는 어쩌자고 이렇게 좋단 말입니까. 슬퍼슬퍼.....ㅠㅠ

수이 2021-03-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 아 한국 들어오시면 하고싶은 것도 이야기 나누고싶은 것도 많았는데 곧 만날 수 있으리라 봐요. 올해 만나지 못하니 내년에는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이래저래 걸림돌들이 많네요. 아쉽지만 만남이 조금 더 뒤로 미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우리 계속 같이 읽고 쓰고 그러도록 해요. 멀리 계시지만 든든하게 언니를 받쳐주는 이들이 여기 많으니까 힘내요 난티나무 언니.

난티나무 2021-03-31 22:39   좋아요 0 | URL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작년부터 계획이 자꾸 어그러져서 이제는 무덤덤한 경지에 올랐다고 말하고 싶지만 ㅎㅎㅎㅎㅎ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힝.
정신이 딴데 가있을 일이 많아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많은 3월이었는데 4월에는 좀 나아지려나요. 고마워요!!!!
 
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열다 페미니즘 총서 2
쉴라 제프리스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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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엄마는 늘 나를 보면 입술 색이 그게 뭐니 립스틱이 싫으면 립글로스라도 색깔 있는 걸로 발라라 라는 소리를 달고 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엄마를 2년여에 한번씩 만나는지라 그런 소리들도 띄엄띄엄 듣는다. 옷이 그게 뭐니 얼굴이 어두워보인다 빨강을 입어라 얼굴색이 확 살잖니 좀 찍어발라라...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 좀 빼라는 소리는 안 듣고 대신 살 좀 찌워라 소리를 듣는다. 너무 말라 이뻐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아니 내가 괜찮은데 왜 찍어발라야 하냐고 되물으면 그래도 밖에 나가려면, 그래도 어쩌구저쩌구... 

흰머리가 보이면 할머니 취급을 받으니 곧 죽어도 염색을 포기할 수 없다는 엄마. 민소매를 입고 싶지만 절대로 살이 덜렁거리는 팔을 내놓고 다닐 수 없다며 더워도 긴 소매를 고집하는 엄마.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축 처진 엉덩이살을 내놓고 다닐 수 없다고 늘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웃옷만 입는 엄마. 이렇게 늘어놓다 보니 글쎄 엄마만 탓할 일이 아니네. 우리 엄마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ㅠㅠ 


문득 중학교 어느 때가 떠오른다. 가난의 문턱에 진입하기 직전, 혹은 이미 진입한 때로, 내가 즐겨입었던 목깃 달린 면티셔츠와 밝은색 청바지. 티셔츠 하나는 파란색, 하나는 진분홍색이었을 것이다. 다른 옷이 많이 없기도 했다. 아무튼 긴머리에 핀을 꽂던 초등('국민')학생은 중학생이 되면서 숏컷을 했고 이차성징이 진행 중이라 몸이 불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리라. 그 땐 이유도 모르고 내 얼굴과 몸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티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 게 더 '이쁘'다는 엄마의 권유를 번번이 묵살하면서 바지 위에 티셔츠를 덮이게 입고 집을 나서곤 했다. 여기저기 살이 붙은 엉덩이를 바지라인을 따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싫었다. 그 와중에 티셔츠를 넣고 거울 보고 빼고 거울 보고 했으니 그냥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ㅠㅠ 얘야, 안 그래도 돼. 한마디 해주고 싶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교생 실습을 나갈 때 주위에서 꼭 퍼머를 하라고 충고를 했다. 어려보이는 여자교생은 학생들에게 휘둘리기 십상이라고. 순진한 나는 첫 퍼머를 했고 긴 치마를 입었고 그래서 실습 내내 불편한 생활을 했다. 여학생들이 와서 남학생들의 나를 두고 찧고까붊을 몰래 이야기해 주었다. 누가 그러는지 알아챌 수도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얘야, 너를 살아. 한마디 해주고 싶네. 그 시절의 나에게. 


몇년 전, 가까이 살던 후배가 말했다. '언니, 왁싱하세요? 해야지, 서로에게 좋은 건데. 위생을 생각해서라도.' 왁싱 생각 1도 해본 적 없었던 나는 그게 왜 위생을 위한 건지, 서로에게 어떻게 좋은 건지 물었으나 후배는 대답을 아꼈고, 난 거기 털이 있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정말 네가 선택한 행동이라 생각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아는지? 


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는 경험이 계속된다. 아무 생각 없었거나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뒤집힌다. <코르셋>에서는 동성애가 그러했고, 하이힐과 전족이 그러했으며, 패션도, 크로스드레서도, 성형도 다른 수많은 미용 행위들도 그러했다. 새로 알게 된 쇼킹한 사실, 다른 관점들.

치마를 입기 싫어진다. 하이힐은 원래 안 신고 싫어하지만 더더욱 싫어진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몸에 달라붙는 옷들도, 피어싱도, 성형수술도, 보톡스도, 포르노도, 모두모두 더더욱 싫어진다. 그런데 여자들은 좋고 싫음을 떠나서 해야만 한다고 강요당한다. 아무도 너한테 강요하지 않았어,라고 말하지 말라. 엄마가, 아빠가, 친구들이, 직장동료와 상사들이, 인터넷과 대중매체가, 강요한다. 라디오와 TV에서 성형외과 광고가 흘러나오는 세상. 지하철과 버스에 성형미인 사진이 붙는 세상. 여자라고 하면 가슴 빵빵하고 엉덩이 톡 튀어나온 체형에 어떻게든 다 보이는 옷을 입히려는 실제 세계와 인터넷 세계.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할 지 암담하다. 50에 접어드는 나이에도 이럴진대 10~20대 여자들은 도대체 어찌 살라는 말인지, 더 어린 아이들은 또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런지. 화장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요즘의 TV 속 연예인 화장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남자들에게도 화장을 입히는구나. 입술이 빨갛거나 꽃분홍색인 남자들의 입술을 보며 왠지 모를 아니 어쩌면 알 것도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코르셋>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을 땐 온세상이 이상해 보인다. 시끄럽고 추악하고 암울하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또 끝없이 솟구쳤다가 그래서 씩씩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눈에 차게 들어오는 하늘과 나무와 꽃과 말없는 집들의 풍경이, 내 주변의 고요가, 

너무도 평온해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생각을 뒤집어본다. 이거 정말 평온인가. 

혼자 있고 현관문은 잠겼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나는 평온한가. 




--- 밑줄 : 가져오는 밑줄은 얼마 안 되지만 그은 부분은 엄청 많다. 읽어보길 권함. 목차만 봐도 대략 내용이 짐작되리라 생각한다. ---


"미용 관습은 여자의 순종을 표시한다. 여기에서 순종은 여자에게 성적으로 복무할 의지, 심지어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을 들일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단순히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굴종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미용 관습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여자가 구현해내야 하는 성적 차이difference가 바로 굴종deference인 것이다. 성적 차이/성적 굴종을 표시하도록 강요받는 정도는 남성 지배 사회마다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성적 차이/굴종이 무의미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남성 지배 사회 질서의 근간이 되는 것도 성적 차이/굴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지배 계급이고 누가 피지배 계급인지를 명확하게 표시할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남성 지배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서구 사회에서 그런 표식이 되는 것은 여자에게 강요되는 '아름다움'이다. 몸의 상당 부분을 노출함으로써 남자를 흥분시키는 옷을 통해, 치마를 통해, 몸에 달라붙는 옷차림을 통해, 메이크업과 머리 스타일과 제모를 통해, 때로는 수술까지 감수하며 이차성징을 뚜렷하게 전시하는 관습을 통해, '여성적'인 몸짓 언어를 통해 여자는 '아름다워진다'. 여자는 성적 차이/굴종이 존재할 수 있도록 여성성을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여남 차이란 다름 아닌 권력의 차이이며, 여성성은 피지배 계급인 여자가 지배 계급인 남자에 대한 굴종을 나타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행위인 것이다." (98~99) 


"왜 남자들이 여자에게 전족을 강요했는지,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딸에게 전족을 시켰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하이힐 착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족하는 이유 한 가지는 남자와 여자의 분명한 차이를 창조하기 위함이었다. ... 전족 관습이 남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성적 흥분도 중요한 이유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전족하면 질이 좁아져 '처녀'와 성관계를 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서구 남자들은 하이힐 신은 여자의 종종걸음을 도발적이라고 받아들이며 만족감을 느끼는데, 전족도 유사한 만족감을 주었다. 레비에 따르면 "아장거리는 발걸음과 뒤뚱거리는 엉덩이는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레비는 전족한 아내를 둔 남자를 인터뷰했는데, 그 남자가 생각하는 전족 발걸음이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 하이힐 걸음걸이에 대한 시각과 매우 비슷하다. ... 중국 남자들은 망가진 발을 갖고 놀고, 입을 맞추고, 쪽쪽 빨고, 입에 집어넣거나 페니스 주변에 갖다 대고, "발가락 사이에 수박씨와 아몬드를 끼워 먹고," 발 씻은 물을 마시는 데서 성적 쾌락을 얻었다. 로시에 의하면 전족으로 얻는 만족감 중에는 여자가 망가진 발에 생긴 '굳은살 벗겨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있었다. 이는 발 페티시를 가진 현대 남자가 하이힐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흡사하다. 남자들이 전족을 강요한 또 다른 동기는 여자의 모든 자유와 독립성을 제한해 '정조'를 지키려 함이었다. 전족은 일종의 '정조대'처럼 작용했다.

여자들은 전족이 초래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딸의 발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결혼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고, 발을 작게 하지 않으면 결혼할 남자를 찾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아내감으로 여겨졌다. 성매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어릴 때 가족에게 팔려 성매매 되는 용도로 길러지는 여자아이들도 존재했다. 당연히 이 아이들도 전족을 했고, 발이 작을수록 성매매 될 때 수요가 많고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이렇게 결혼의 형태건 성매매의 형태건 남자들이 서로 간에 여자를 팔고 거래하는 한 전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299) 


"립스틱 바르기는 역사적으로 성매매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미용 관습이다. 성과학자 해리 벤저민과 R.E.L. 매스터스는 '성 혁명' 초기에 성매매를 정당화, 정상화하려는 목적으로 쓴 책에서 립스틱 바르기가 성매매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중동에서 성매매 되던 여자들이 구강성교를 제공한다고 알리기 위해 입술을 붉게 칠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립스틱은 입술을 여자의 외음부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었으며, 립스틱을 처음으로 바른 건 페니스의 구강 자극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들이었다." "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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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30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읽을게요. 사회주의 페미니즘 끝내자마자 읽을거에요. 불끈!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난티나무 님의 이 책을 읽을 당시의 고통과 괴로움이 막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에서(제가 아마 포르노랜드 책 리뷰하면서 언급했을 텐데요), 여자주인공 두 명이 얘기하면서 ‘너 왁싱을 안하다니, 섹스할 생각이 없구나?!‘ 라고 대화하는 장면을 보았어요. 섹스를 할 생각이 있다면 왁싱을 하란 말인가... 그 장면이 너무 불쾌하고 괴로웠어요. 왁싱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이 원해서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언제부터 본인이 원하는 게 된걸까요, 그러니까 세상이 왁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성에게 어필한다고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도 사람들은 ‘내가 원해서‘ 몸의 털을 밀었을까요?


저도 읽어볼게요. 아마 저 역시도 밑줄 박박 그으며 읽게될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1-03-30 17:14   좋아요 0 | URL
아아 정말 괴로웠지만.... 읽기를 잘 했어요. 아마 다락방님도 그러실 것 같아요.^^ 늠 쇼킹합니다. 우웩우엑도 많이 했어요.ㅠㅠ 영화에서조차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쩌자는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