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있는 한국 식품점에 주문을 해서 어제 물건을 받았다. 프랑스 빠리에서도 이제 인터넷 주문이 가능해졌지만 어째서인지 독일보다 배송료가 더 비싸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독일사이트만큼 물건이 다양해보이지도 않는다.

독일에 한국음식과 재료를 주문하는 일은 그 나름 역사가 오래 되었다. 그러니까... 2004년? 2005년? 무렵 유학생이 많은 도시에 살 때, 사람들을 모아 독일 식품점에 메일로 주문을 넣으면 무려 트럭이 집까지 배달 왔다. 물론 독일에서 여기까지 우리의 주문만으로 움직이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여러 명의 주문을 받아 그것을 정리해서 보내고 물건을 받아 다시 주문대로 나누는 일은 정말 복잡하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게 한번씩 모여 얼굴도 보고 먹고 싶은 음식과 재료를 살 수 있어서 기꺼이 했다. 몇 번의 주문 후에 뒷말이 성행한다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진.

아무튼 십몇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클릭클릭클릭클릭만 하면 UPS 배달차가 집까지 사흘만에 온다. 반찬 구경을 하다 모처럼 장아찌가 당겨서 고추간장장아찌와 고추된장무침을 주문했다. 안 먹은 지 오래되었으니 한번쯤. 고추간장장아찌는 한번 베어물 때마다 간장물이 퐝퐝퐝, 땡초라 맵기도 무척 맵다. 고추된장무침은 성공! 소개글에는 무침이라고 되어있었으나 장아찌라고 해야 맞을 듯. 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음식에의 희열이라고 할까. 밥 한 공기를 뚝딱 하고 저걸 더 먹어야 겠는데 밥을 더 풀 수는 없어서 샐러드를 가득 담았다. 그렇게라도 고추무침 한두 개를 더 먹어보겠다고. 고추간장장아찌보다는 덜 짰으나 그래도 평소의 반찬에 비하면 많이 짠 편이다. 한 끼에 커다란 고추를 너댓 개 먹어치웠더니 거의 절반이 사라졌다. ㅎㅎㅎ 식사 후에도 생각나는 맛, 아침에 눈떠 지금도 침이 고이는 맛, 어쩌면 조미료가 들어가 맛있는 것일 수도 있는 달고 짜고 매운 그 맛, 그 맛을 오늘 점심에도 천천히 느껴야지. 밥 많이 먹어야지. 먹고 걸어야지. 아, 신난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다시 주문할 일이 생기면 꼭, 두 팩, 아니 세 팩을 사야지. 다른 식구들이 아무도 안 먹어 정말 다행이지 뭐야!


(- 점심을 먹고 걷고 온 지금은 입이 몹시 말라 곤혹스럽다. 지나치게 짜다. 그래도 한번씩 이런 일탈, 괜찮다.^^; 


- 장아찌 하니 예전에 손수 담근 장아찌를 프랑스까지 보내주신 서재 이웃님이 생각난다. 


- 고추 들어가는 제목의 책이 없다. 장아찌로 검색해 보았다. 굳이 갖고 있을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한번 들쳐보고픈 책들이 제법. 책 제목의 피클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며칠 전 사다놓은 비트가 생각났고 피클을 하려고 생각했었다는 게 생각났고 아직도 뒷창고에서 구르고 있다는 게 생각나버렸다.) 
















(사진은 북플에서 캡쳐했는데 수정이 안 됨... 또르르... 다시 컴으로 돌아와서 몇 개만 골라봄. 그나저나 요즘은 집밥,이라는 단어가 걸리적거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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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09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서재 이웃님께서 손수 담그신 짱아지, 아니 장아찌를 전해주셨을만큼 따뜻한 교감이 이어졌었군요. 미뢰의 일탈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

난티나무 2021-04-10 06:45   좋아요 1 | URL
네 그때도 좋은 분들 많으셨는데 지금 안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띄엄띄엄 들어오다 보니...

han22598 2021-04-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에 잠깐 스위스 작은 도시에 살 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같이 기차타거 쮜리히로 한국장 보러 가자는 말에 충격 😩 받은 적이 있었답니다. 미국이 유럽보다 나은거 하나 발견하고 왔어요. 장아찌 맛있게 드세요 😋

난티나무 2021-04-10 17:56   좋아요 1 | URL
미국이 유럽보다 나은 거 하나 ㅎㅎㅎㅎㅎ 정말 그렇네요.^^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는 게 가장 놀라웠어요 저는.^^;;;;;;;; 아 한국책 빌려볼 수 있다는 것도요! 😅

han22598 2021-04-15 01:25   좋아요 0 | URL
알라딘 중고서점은 엘에이에만 있어서. 제가 사는 곳에서 그곳까지는 거의 해외나 비슷. ㅠㅠ

라로 2021-04-20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그래도 맛있는, 정말 맛있는 장아찌는 여기도 찾기 힘들어요...저 얼마 전에 오이 장아찌 먹고 싶어서 샀다가 거의 버렸어요.ㅠㅠ 제가 솜씨가 있었다면 그 위에다가 양념을 더 해서 먹었을텐데,,ㅠㅠ

난티나무 2021-04-20 05:0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오이지! 좋아합니다. 장아찌 종류 막론하고 다 좋아하는데 이번에 먹어보니 너무너무 짜요...ㅠㅠ 계속 목이 말라서 ㅎㅎㅎ 자주는 못 먹겠어요. 된장 고추장에 박은 무장아찌도 좋아하는데 흑흑.. 혹시 콩잎 드세요? 콩잎장아찌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것도 엄청 좋아해요. ㅎㅎㅎㅎ 다다 좋아요. 그러나 이제는 멀리 해야 하는 장아찌들이여어~~~~~
 

사고 싶은 책이라고 하려다가 보고 싶은 책이라고 쓴다. 요즘은 '읽기'가 아니라 그냥 '보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 힘빠진다. 어쨌거나 보고 싶은 책들~ 

(이거 쓰는 시간에 읽고 있던 책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애써 떨치고. 언제나 새로운 책에 대한 호기심에 지고 만다. 책 읽기 싫다고 해! 그러면서 왜 자꾸 사고 싶어 하는 건데!) 

















아침과 오후마다 마시던 커피를 끊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그래도 커피맛을 잊지 못해 대체커피를 마시는 나. 확실히 습관이고 중독성 있다. 옆지기는 아직도 생두를 볶아 드립도 하고 더치도 내리고 에스프레소도 만든다. 내가 마시지 않으니 양과 횟수는 아주 많이 줄었다. 다행인 것은 급할(?) 때 한번씩 가동하던 네스프레소 기계를 치운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 

알라딘 메일 훑다가 책 제목을 보고 보관함으로~ 부제 '기후변화와 커피의 미래' 궁금. 



  • "P. 223 같은 기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속도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2050년에는 이론상 적합하다고 알려진 재배 면적의 절반인 1,600만 헥타르에서만 민감한 아라비카를 재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크로체 가족의 농장에서도 가까운 브라질의 미나스제라이스처럼 덥고 건조한 지역은 물론, 인도와 니카라과의 특정 지역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오늘날 이 지역들에서 가장 많은 아라비카가 재배되고 있지만, 2050년까지 이 지역의 80퍼센트에서 커피 재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라비카의 경우 지역들의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공급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기온이 낮고 일정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케냐, 인도네시아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덜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라비카 재배에 적합한 경작지 3분의 1은 사라질 것이다. 국제열대농업연구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Tropical Agriculture, CIAT의 연구원 크리스티안 번은 “커피 수요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하지만, 재배 가능 면적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_ 커피 농장의 안과 밖, 두 세계 사이의 투명성 
  • "P. 246 오늘날 우리는 이미 더 질 좋은 음식을 요구하고 건강과 유기농, 로컬푸드와 탄소발자국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라는 ‘기계를 작동시키려고’ 어떤 흙탕물이든 커피 잔에 따른다.
    우리가 잠깐이라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커피의 탄소발자국 대부분이 집 안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쓸데없이 커피메이커를 켜두거나 필요 이상으로 커피를 추출하지 않는 것으로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국가별 커피 소비량 통계는 왜곡되어 있다. 판매된 중량을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마시는 양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는 다 마시지도 못할 만큼의 커피를 내려 커피메이커를 보온 상태로 두었다가, 결국 부엌에 점점 커피의 쓴 냄새가 퍼지면 남은 커피를 하수구에 흘려보낸다. 오늘날 프렌치 프레스와 모카포트, 푸어 오버pour over(핸드드립) 같은 트렌디한 도구를 사용한다면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싶은 만큼 낭비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일회용 커피 머신, 이른바 캡슐 커피는 해결책이 아니다. 캡슐 커피는 가장 비윤리적으로 카페인을 즐기는 방법이다."
    _ 선택의 여지는 없다 









  • 제목만 보고 몸으로 하는 운동인 줄. 원제가 Political Action 이다. 항상 내자리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나에게 도움이 되려나? 

  • P. 71 자신의 결의와 열정적인 활동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신을 예외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이지 활동가들이 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효과적으로 활동하기는 어렵다. “당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시작하라.” 이 말은 윤리적인 삶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격언 가운데 하나지만, 정치운동의 세계에서도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시작해야 할 경우가 많다.  
  • P. 77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운동의 대의보다 더 절박하고 더 즉각적인 관심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이 가진 최악의 편견은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생활, 사심 없는 마음, 이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거나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 81 목표가 중복되거나 유사한 집단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전략에 대한 의견도 다르고, 공략하는 지지층도 다르며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운동 공간에 있는 핵심 활동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하며), 서로에 대해 멍청이, 골칫거리, 심지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연대와 연합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낯선 이들과의 동침’도 필요하다는 격언은 사실상 준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사람들과 ‘동침’하는 것이야말로 정치활동, 즉 일상적으로 행하는 주장과 책략을 통해 이뤄 내야 할 목표다.  
  • P. 103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욕구도 없고, 어떻게든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고집도 없다. 다만 옳은 일을 하고 싶고, 누군가 자신에게 무엇이 올바른지 말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제 막 시작한 운동이 직면하게 되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서 리더를 선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민 활동가가 리더로 선출되어야 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나는 시민정치가 성공하려면 (특히 지역 수준에서) 시민 리더의 육성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P. 118 일부 활동가들에게는 보수를(때로는 꽤 많은 보수를) 지급해 그들이 (일시적이나마) 직장을 포기하고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운동은 일정 수준의 준전문가주의를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추어’로 계속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운동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태도는 운동이 이들의 활동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징표다. 즉, 이들이 무보수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그들의 활동이 운동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사표시다.  
  • P. 122 여성들의 종속적 지위가 시민정치에 가져온 한 가지 결과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아마추어 운동들이 오래 가지 못하고 단명하는 문제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문제의 원인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운동 내부의 권력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즉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멀어지고, 지역공동체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 P. 136~137 활동가들이 가져야 할 이상적 태도는, (자신들에게 날아올지도 모를) 비방과 모욕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정치적 이견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며 섞여 있다. 패거리 집단이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공적 논쟁과 사적 음모 간의 균형을 후자 쪽으로 옮겨 놓기 때문이다. 이것은 리더십이 한 무리의 친구들로 구성될 때 특히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리더십에서 배제된 이유가 정치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많은 활동가들조차, 인간적인 이유로 배제되었다고 생각하며 분노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리더는 친구가 아닌 사람,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나와 그와 내 아이들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 



    목차 


    서문

    1 과잉주체

    : 우리는 왜 과잉하는가

    2 ADHD의 시간

    : 집단 ‘주의력결핍장애’에 걸린 한국사회

    3 공황장애의 무게

    : 과잉자아의 또 다른 신체반응

    4 SNS 조울증

    : ‘좋아요’ 이면의 우울함

    5 연쇄살인과 묻지마 범죄

    :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는 ‘전능함’

    6 폭식증 자본주의

    :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돈의 힘

    7 경계선 주권장애

    : ‘과잉주체’들이 모여 만든 민주주의

    8 과잉에 저항하기

    : 타인을 만나는 훈련




    "P. 25 모든 과잉주체는 나르시시스트다. 편집증자이기 때문이다.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철폐되었는데도 과잉하지 않을 수 있는 겸손한 과잉주체란 없다. 아무리 겸손하고 수줍은 행동도 ”투사의 남용“이라서 이미 과잉이다. 심한 경우 그는 ”자신의 피부를 경계(skin-boundary)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상실한다. 대출이자도, 월세의 압박도, 엄마의 잔소리도, 어떤 현실의 윤리도 이 결론을 막을 수 없다. 과잉주체는 자신의 자아를 이미 현실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과잉주체는 하이퍼리얼리스트다."


    "P. 44 순간을 권장하는 사회는 ADHD 사회다. 오늘날 시간이 순삭되고 있다. 순간은 지난 세기 패러다임이 그럭저럭 지켜왔던 시간의 경계들을 철폐함으로써 시간 자체를 삭제한다. 이제 인스턴트는 시대정신이다. ‘순간’은 내면화되었다.(...) 순간은 인간에게서 되돌아보는 능력, 시간의 앞뒤를 가리는 능력을 박탈한다.. 순간은 반성, 휴식, 기억 같은 행동을 싫어한다. 되돌아보고 판별하여 경계를 확정하는 행동으로서 과잉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다. 순간은 저항을 경멸한다."


    "P. 65~66 지난 세기의 대미를 장식했던 ‘중2병’과 이번 세기 대유행 중인 ‘관심병’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중2병은 멜랑콜리 병이다. “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이 헤드폰에 내 모든 몸과 영혼을 맡겼다.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중2는 제정신은 상실했어도 ‘나라’라는 국경을 가지고 ‘지금의 나’도 가진다. 반면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서 자라난 관종은 정반대의 패러다임이다. 중2가 멜랑콜리 환자라면, 관종은 조증 환자다. 그는 허세를 어그로로 대체하며, ‘좋아요’와 조회 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과잉한다. (...)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댓글, 더 많은 ‘좋아요’만이 관종의 존재를 증명한다."



















    나이와 노화와 은퇴와 노년, 이 단어들에 얽힌 무수한 관계, 어떻게 살 것인가와 별다르지 않은 질문들. 그래서 눈에 띄는 책.



    책 소개 : 

    "이게 새로운 은퇴자들의 시대예요." 책 속 인물의 말 한마디가 이 책에 대한 가장 간략한 소개 같다. 집 대신 차에서 살며 평생 일하는 삶, 미국 노년층의 뉴노멀이다. 책은 이 노마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좇는다. 평생 일했고, 성실했고, 전문 분야가 있었고, 한때 다른 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고, 존경받기도 했던 이들은 지금 길 위에 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열심히 살았지만 삶에서 튕겨져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는 상상하지 않았던 미래라도 세상은 이들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존의 물류창고는 차에서 살며 일하는 노년층을 환영한다. 값싸고 성실하고 금방 교체되는 인력,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길 조건이다. 노마드 노동자들은 물류창고에서, 캠핑장에서, 놀이공원에서 쉼 없이 노동하며 하루하루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열악한 풍경이지만 이들의 삶이 온통 잿빛인 것은 아니다. 차 안에도 기쁨과 낙관, 새로운 희망의 자리는 있다. 이들은 서로를 붙잡고 꿈을 꾼다. 인생의 바닥에서 여전히 농담할 여유를 찾고 삶을 긍정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왜 늘 애쓰는 건 개인뿐일까. 파괴되고 배신당한 삶들에 대한 책임마저 개개인에 맡긴다면, 국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고 굵은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2021.04.06)


















    그저께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면서 지난 팟캐스트를 들었다. 「듣똑라」에 나온 김하나. 언젠가 다른 팟캐스트를 듣다가 잠깐 접한 것 말고는 기회가 없었다. 악. 이 언니, 왜 이렇게 좋지? 뭔가 신뢰를 주는 목소리와 발성과 화법이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목소리들을 듣는데 눈물이 난다. 줄줄 난다. 왜 울었는지 모른다. 「책읽아웃」도 챙겨들을게요!! 남을 위로하는 말이 나를 위로하는 말인 것 같다. 책 하나도 읽은 게 없어서 주섬주섬 다 찾아 보관함에 넣었다. 이북으로 이 책 먼저 사볼까. 전자도서관에 있는 책부터 먼저 빌려보자.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살림에 대한 생각. 





    • "P. 21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 "P. 33 더는 사회와 혼인 관계로 얽히지 않은 몸이 된 나는 이제 다른 무엇 또는 누군가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 또는 누구인 걸까? 용해되는 동시에 재조립되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기묘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단어는 마음을 열어젖혀야 한다. 마음을 닫게 만드는 단어는 누군가의 존재를 무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 "P. 78~79 그래,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여성성이라는 유령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령이 뭔데? 여성성이라는 유령은 허상이자 망상이자 사회적 환상이다. 연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며, 그 역할(희생, 감내, 고통의 와중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기)을 연기하다 끝내 이성을 잃고 만 여자도 수두룩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결단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 
    • "P. 100 가부장제의 가면이 기형적이고 도착적이라는 걸 남자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에게 가면은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가면에 장식이 많이 붙을수록 그는 여자와 아이와 다른 남자를 위압하면서도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면은 다른 남자들의 눈에 낙오자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남자가 성공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자들을 (가정에서, 일터에서, 침실에서) 진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면, 사회는 이런 측면에서 실패하는 것을 위업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 
    • "P. 106 아버지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 우리는 그게 아버지가 응당 해야 할 몫이라며 용인한다. 어머니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는 어머니가 우리를 버렸다고 느낀다. 이리도 모순되고 사회의 가장 강력한 독기를 머금은 잉크로 쓴 메시지를 어머니가 용케 견뎌 내는 게 가히 기적이다. 그러니 이성을 잃지 않을 수가 있나. "
    • "P. 160~161 여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자기 이름을 지워 버린 사회의 서사와 결별할 때, 그가 맹렬한 자기 혐오에, 미칠 것만 같은 고통에, 눈물이 멎지 않는 회한에 빠지리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이런 것이 여자를 위해 마련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이다. 눈물지을 순간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














    •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라는 제목이 나의 소망과 너무 일치하여 ㅠㅠ 
    • 이미 다 자라버린 아이들 페미니스트로 만들기,가 더 맞는 표현이긴 하겠지만. 
    • 프랑스책이니 원서로도 살 것이다. 
    • 며칠 전에 집안일 분담 문제로 한바탕 꽥꽥 난리를 치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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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 2021-04-09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마드랜드가 저런 내용이군요. 미국은 다큐보면 학교에서 밥 굶는 청소년들도 많다고 하고 차에서 사는 사람얘기는 미드에서도, 소설에서도 본것 같아요. 약물문제,총기문제,보험문제,인종간 갈등..어디든 어떤 문제든 있지만 심각한 문제가 더 두드러져보이는 곳.😔

    난티나무 2021-04-09 22:25   좋아요 2 | URL
    돈이 없으면 유지하지 못하는 생활, 돈이 없으면 사람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책소개를 보며 들더라고요. 꼭 집이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가 집이 없으면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절망하기도.ㅎㅎㅎㅎㅎ
    어디나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ㅠㅠ

    얄라알라 2021-04-0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저는 [운동을 이렇게]를 딱 제 수준에서, 지방 태우는 운동인줄^^;;; [ Political Action ] 이었군요.^^;;

    난티나무 2021-04-10 05:1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ㅎㅎㅎ 의도적인 제목 정하기였을까요?

    수이 2021-04-10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스프레소 마시는 1인 엄청 찔려서 아 얼른 버려야겠다 하고 있어요;;;;; 마지막 책 보니 얼마 전에 딸아이가 한 말 떠오르는데 우리 아이들은 직업이 하나가 아니라 평균 4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 거래요. 평균수명도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늘어나서_ 아이들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얼마나 세상이 달라질까 궁금해요. 곧 환갑인데 그때 우리는 또 얼마나 달라질지도.

    난티나무 2021-04-10 05:17   좋아요 1 | URL
    네소 캡슐 관련 회사와 회수 이야기 어디선가 봤는데 문제가 많더라고요.. 이제는 슈퍼마켓에도 네소 캡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게 너무너무 많아요. 대체로 플라스틱이죠...
    평균 4개 이상의 직업...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지 ㅠㅠ 지금도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얼마나 달라질지... 저도 궁금합니다.^^
     

















    첫번째 아주 짧은 소설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미안하다, 공감했다. 나도 그랬으면,이 아니라 맬라드 부인이 느꼈을 그 잠시동안의 진정한 황홀함이라는 감정에. 100% 같지는 않겠지만 옆지기가 한 달 이상 멀리 출장을 가거나 집을 떠나 있을 때의 그 홀가분함과 일맥상통하는 기분이 아닐까. 나는 안다. 아마 당신도 알 것이다. 


    케이트 쇼팽은 8년 사이에 아이를 여섯 명 낳았다고 책 뒷부분 설명에 적혀있다. 8년 동안 여섯 명. 8년 동안 6명.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는 케이트 쇼팽의 소설 <각성>을 읽어보고 싶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는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오직 자신을 위해 살 것이다. 같은 인간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해도 된다고 믿는 이의 아집으로 인해 감정이 상처받지 않아도 되었다. 의도가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덜 범죄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하나같이 폭력이었다는 것을 부인은 그 짧은 시간에 깨달았다.

    물론 부인도 간혹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다. 대체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제 자기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된 마당에 사랑이라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천착할 필요는 없었다.

    "자유! 몸과 영혼의 자유!"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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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언제야, 지지난주? 전번에 갔던 중고가게에 다시 가서 문고판 쪽을 뒤졌다. 이제 두 달 가까이 못 움직이게 생겼으니 중고책 고르는 재미도 스탑이다. 


















    존 르 카레, <모스트 원티드 맨> 

    읽은 책 없고 이름만 들었고 심지어 이름 보고 프랑스 작가인 줄 알았던.ㅎㅎㅎ 


    애니 프루, <브로크백 마운틴> 

    딱 이 소설 하나만 실려있는 얇은 책이다. 한국어판 집에 있는데 비교하며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영화도 보고. 


    에릭 엠마뉴엘 슈미츠, <밍 부인이 가져본 적 없는 열 명의 아이들> 

    아 진짜 이 작가 좀 읽고 사라고! 나에게 소리지른다.ㅎㅎㅎ 얇으니 원서로 도전해보도록. 다행히 한국어판도 내게 있어.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프랑스어판으로 읽을 자신은 없다. 그러므로 한국어판을 사야 한다. 번역서 왤케 많아?@@ 집에 있던 문고판이 발췌본이라 전문이 실린 문고판 발견해서 가져왔다. 작은넘에게 읽으라고 주었더니 앞의 편지글 부분이 아주 지루해 미치겠다며 난리를 치기에 마지막 서너 페이지는 그냥 띵가먹으라고 해줬다.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그냥 이름만 보고 집어옴.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전번에 산 <사물들> 문고판도 안 읽었는데. 흠흠. 


    Stephanie Hochet 는 모르는 작가지만 청소년 소설이라 아이들 읽히려고 사옴. 내용 괜찮길. 





    ***


    자, 그리고 구매함을 열어본다. 허허. 

    전자책 구입 리스트. 
































    한번에 '혹' 해서 사는 책들은 잘 없다. 모든 책들을 어딘가에서 보고 '혹' 해서 '사야지보관함'에 넣는데 책을 살 때마다 다시 살피고 또 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혹'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이 책을 왜 보관함에 넣었더라를 생각하게 된다. 대단한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는 '혹' 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나?) 

    그래서 사야 겠다고 생각한 과정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예를 들면 플루타르코스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 어느 책에서 본 것이라는 기억은 있는데 어느 책인지, 왜 사야 겠다고 다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사야 겠다고 담아두었으니 산다. 이 또한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최현숙,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플루타르코스,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 

    루이자 메이 올컷, <신데렐라의 탄생> 

    이주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이것만 샀느냐. 당연히 아니다. 쿠폰과 적립금 제도는 무한개미지옥과도 같아서 엄청나게 큰 인생 변화의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거역할 수 없다. 알라딘이 구매자를 길들이는 방법은 모두들 다 잘 아실 터. 종이책도 사야 하고 굿즈도 사야 한다. 개미지옥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다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새 종이책도 두 권. 


















    이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강남순,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땡스투는 왜 맨날 까먹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이제 적립 안 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처음 보관함 담을 때 이 분에게 해야지 했던 마음가짐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그 분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드물지만 땡스투할 만한 글을 못 찾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에도 잊은 것이 있다. 그래도 몇은 했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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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로 2021-04-03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궁금. 암튼 구매목록 아주 좋은걸요!! 제 취향이 많이 보여서 구런가봐요. ㅋㅋ 사야지보관함 저도 그런 식으로 시간 낭비 엄청 합니다요. 😰 아마도 우리는 책을 신중하게 사야 하는 처지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고요. 😅

    난티나무 2021-04-03 20:27   좋아요 1 | URL
    집에서 10킬로 이상 못 나가는 봉쇄령 떨어졌어요. 일단 한 달이고 개인적 사정(?)으로 다음달에도 집콕할 예정이라 두어 달입니다.ㅎㅎㅎㅎ 가게들이 문을 열지 닫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라로님 읽으신 책들~!! 땡투 해야 하는데 잊어버렸어요! 제가 그래요.^^;;;

    맞아요 신중하게. 그런데 사고 나서 한참 뒤에 정작 책을 손에 들 때가 되면 내가 이거 왜 샀지,가 되니 이거 과연 신중한 거 맞나 싶기도 하네요? 웃프다.ㅠㅠ

    유부만두 2021-04-03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저 책 한 권만 딱 한 권만 더 추천할게요;;; 애니 프루 <시핑 뉴스> 정말 좋거든요;;;;

    미미 2021-04-03 22:12   좋아요 0 | URL
    <시핑뉴스>첨 들어봤네요! 느닷없이 제가 담아감요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4-03 22:28   좋아요 1 | URL
    애니 프루 책은 왤케 안 사 지지요? 시핑 뉴스 좋다는 말 듣고 한참 예전에 담아두었는데 아직도 못 샀다는요.ㅎㅎㅎㅎㅎㅎ 담에는!!!!!! 감사합니다~^^
     















    내게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면 앞으로 어찌 될런지가 너무도 궁금해서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보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지나간다. 묘사를 하는 부분은 통짜로 건너뛰기도 한다. 옛날에는 정말 그렇게 읽었다. 책을 많이 보는 편도 아니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남들도 그렇다고 인정해줄 때 나는 책을 그런 식으로 읽었고 그래서 늘 기억이 흐릿했다. 한마디로, 헛읽었다고 하겠다. 요즘은 한 문장을 길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이 못된 습관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레이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아마도 많은 문장들이 눈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쌩 지나갔을 것이다. 


    수많은 문장들 속에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문장이 있다. 

    "고칠 수 없으면 참아야 한다고." 

    그레에스에게, 정말 그러냐고, 그래야 하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고치고 싶고 주변사람들을 고치고 싶다. 그럴 가능성이 1도 보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냥 참고 살아야 하냐고, 어디에 대고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을 지른다. 그렇게 참고 사는 여자들이, 모두가 참고 있는 세상이, 너무 웃겨서 웃기지도 않다. 내 안의 다른 한편에서, 고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거기에 대항(?)하면 나만 나가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결국 도망치는 것밖에 없지 않냐고, 또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고. 맞서지 않고 참는 것처럼 보이면서 틈새를 공략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런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썩어들어가는 내 마음은, 솔직하게 문제를 짚어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내 마음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두고? 이브가 저주받은 거라고 그렇게 퉁치면서? 


    오래 전부터 소설을 좋아한다고 거리낌없이 말하곤 했다. 소설만 읽었었다. 이제는 소설 읽기가 힘들어진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그저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던 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본다는 만족감이었나. 지금 나는 소설에서 무엇을 보나. 무엇을 보기는 하는 건가. 소설을 읽고 좋다 좋지 않다를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은 무섭다.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불안함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레이스>도 불안하다. 나는 왜 이 소설들이 불안하고 무서운 것일까? 








    「사이먼은 기사를 읽는다.  


    길이 이런 상황이건만, 안타깝기는 하나 죄를 저지른 한 인간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모이다니 그런 광경을 즐기는 병적인 취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광경을 공개하면 풍기가 개선되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성향이 억제될까?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사이먼이 말한다. 

    "제가 만약 그 근처에 살았다면 가서 봤을 거예요." 리디아 양이 말한다. "선생님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사이먼은 이처럼 단도집입적인 발언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불건전한 흥분을 유발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에게 잔인한 상상을 심어 주는 공개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성격을 안다. 그의 호기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이긴다. "직업상 그랬을지 모르죠."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하지만 여동생이 있었다면 가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리디아 양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왜요?" 

    "여성들은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보면 안 됩니다." 그가 대답한다. "그러면 우아한 심성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의식적으로 거드름을 피운다.」 (134~135)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항상 어릴수록 고분고분하다고 착각한다. 어머니가 정말 원하는 것은 사이먼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며느리다. 

    ... 

    가끔 그도 항복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어머니가 내민 어린 아가씨들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후보를 고르면 된다. 그러면 일상이 정연하게 이어질 테고, 먹을 만한 아침이 차려질 테고, 그는 아이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아이를 만드는 행위는 하얀 이불로 조심스럽게 가려진 채 은밀하게 진행되고 절대 입 밖으로 거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싫어하면서도 의무적으로 응하고, 그는 정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집에는 온갖 문명의 이기가 갖춰질 테고, 그는 호강을 누리며 쉴 것이다. 그보다 못한 운명도 많다.」 (136~137) 



    「저는 그때부터 여자들이 그런 깃발 같은 걸 만들어서 침대를 덮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어요. 여자들은 원래 방 안에서 침대에 가장 신경을 쓰잖아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경고의 의미라는 것을요. 선생님이 침대를 평화로운 곳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건 침대가 휴식과 편안함과 단잠의 상징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침대에서 위험한 일들이 아주 많이 벌어지거든요. 침대는 우리가 태어나는 곳이니 우리가 인생 최초의 위기감을 맛보는 곳이죠.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곳이니 종종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차마 말할 수 없는 남녀 간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죠. 선생님도 무얼 말하는지 아시겠지만,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 하고, 누구는 절망이라 하고, 또 누구는 참아야 할 모욕일 뿐이라고 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대는 우리가 잠을 자고, 꿈을 꾸고, 대개는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에요.」 (240) 



    「메리가 너는 이제 여자가 된 거라고 말했을 때 저는 다시 눈물이 났어요. 메리는 저를 감싸 안고 다독여 주었어요. 늘 바쁘거나 지치거나 아팠던 우리 어머니라도 그렇게 다독여 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러더니 제 것을 살 때까지 쓰라고 빨간색 플란넬 페티코트를 빌려 주면서 어떤 식으로 옷을 접어서 핀을 꽂으면 되는지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걸 이브의 저주라고 부르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브에게 주어진 진짜 저주는 무슨 문제가 생기자마자 그녀 탓으로 돌렸던 바보 같은 아담을 참고 견뎌야 했던 거라고 말했어요.」 (245) 



    「그리고 2주 동안 모든 것이 매우 평온하게 흘러갔군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내 진술서를 보고 하는 말이다. 

    예, 맞아요. 내가 대답한다. 그럭저럭 별일 없었죠. 

    그런데 모든 것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가요? 일상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나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날마다 어떤 일을 했느냐고요. 

    아, 예전과 똑같았어요. 내가 말한다.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했죠.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거였나요? 

    나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조그만 하얀색 네모가 그려진 노란 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모르는 거다. 그와 처지가 비슷한 남자들은 자기가 어지럽힌 것을 치우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지럽힌 것뿐 아니라 그들이 어지럽힌 것까지 치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앞날을 걱정하거나 저지른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렇게 길러졌을 뿐이다.」 (316) 



    「아침이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가 그 안에 나를 싣고, 문을 꼭 닫은 채 기차처럼 울면서 무관심하게 한결같이 정해진 선로를 따라 끝까지 달려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벽에 몸을 던지며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고, 주님에게 내보내 달라고 애원한다. 

    이야기 한가운데 자기 자신이 들어가 있으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난장이다. 음울한 포효,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깨진 유리와 갈라진 나무의 잔해.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집 혹은 빙산에 부딪히거나 급류에 휩쓸려서 승선한 어느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는 배처럼. 그러고 난 다음에야 이것이 이야기 비슷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누구에게 이것을 들려줄 때.」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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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 2021-04-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번 그렇진 않지만 특정 부분은 휘뚜루마뚜루 넘어가요ㅋㅋㅋㅋ워낙 훌륭한 책이 많으니 가끔은 괜찮은것도 같아요.😁

    난티나무 2021-04-03 20:21   좋아요 1 | URL
    아 미미님 반가워요!ㅎㅎㅎ 저는 워낙에 자주 넘어가서 정신 차리고 다시 읽는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히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하하~!!!

    라로 2021-04-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2. 😅😅😅 특히 불편한 얘기나 무서운, 잔인한, 등등 문장은 더욱요. 😰

    난티나무 2021-04-03 20:24   좋아요 1 | URL
    그렇죠. 문장과 이야기 자체가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에서 제가 느끼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