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오늘(30일과 31일 사이)이어야 했는지, 어제도 그저께도 사지 않고 잘 넘어갔는데. 차라리 어제 사지 그랬어. 적립금 천 원 날아갔잖아. 아무튼 오늘도 삽니다.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책값 비싸서 꼭 중고로 사려고 별렀었다. 중고등록알림 해놓고 몇 개월이 지나도 안 나온다. 전자책이 있지만 전자책 싫다. 종이책으로 읽고 싶다. 할 수 없이 새 책으로 산다. 프랑스어책읽기모임 멤버들과 읽기로 했다.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더 나중에 사도 되는데 그노므 쿠폰 쓰려고 ㅎㅎㅎ 좀만 더 좀만 더 하고 담다 보니 여기까지 이르렀네. 꼭 책으로 갖고 있어야 겠다 싶은 걸 고르려니 무지 힘들다. 그래서 내년 여성주의읽기 책을 미리. 일단 이것 한 권만. 나머지는 올해 안에 사는 걸로 하자. 




















레이첼 모랜 <페이드 포> 

중고서점에 있었는데 담아두고 며칠 다른 것 고민했더니 사라지고 없더라. 누가 사가셨나요. 이러면 욱 해서 새 책 산다.ㅠㅠ 

















전은주 외 <라키비움J 핑크> 

전부터 궁금하던 그림책 잡지. 새 책 사는 김에 같이 지르다. 궁금궁금.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전자책이다. 순전히 전자책 적립금 쓰려고 골랐지만 그냥 막 찍은 건 아니고. 보관함의 전자책 중 저렴하면서 먼저 사서 읽어보고 싶은 걸로. <기후정의>를 골랐다가 바꿨다. 그건 다음에. 





아 오랜만에 책 샀다! 하고 보니 몇 권 안 된다. 쿠폰 쓰려고 보니 굿즈 3천원 사야 해! 알라딘 중고책을 한 권 살 걸 그랬다. 허허. 노트 두 권으로 충당. 이것은 득인가 실인가. 


<제2의 성> 다 읽으니 이렇게 책 산 이야기도 하고 여유롭구나아~ 아아 리뷰 쓰다 말았는데! 어떻게 마무리하지! @@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서머타임이 끝나는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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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10-31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샀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딱 5권만 사고 스스로 너무 기특해서 셀프 머리 쓰다듬기 해줬어요. 기대되고 신나는 11월!!!!!!

얄라알라 2021-10-31 13:31   좋아요 0 | URL
^^ 저는 오늘이 11월 1일인줄 알았다가 플친님들의 페이퍼 읽으며 날짜 감각 살려줍니다...

2021-10-31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1-10-31 15:25   좋아요 1 | URL
비타님) 오 찌찌뽕! (이 말 유래 갑자기 알고프다 ㅎㅎㅎ) 나도 같이 쓰담쓰담~~~ 사려고 들면 진짜 ㅠㅠ 어휴 ㅎㅎㅎ 🤣 전 그래서 장바구니고민을 너무 오래 해요.ㅠㅠ
11월에도 아자!!!

난티나무 2021-10-31 15:26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북사랑님) 저도 날짜 감각 없지만 31일이 서머타임 끝인 날이라 고거는 기억하고 있었어요.^^

난티나무 2021-10-31 15:27   좋아요 0 | URL
소근소근) 컴터로 비댓 되나 나중에 볼게요. 북플은 안 되는 듯…

2021-10-3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3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3편 정당화 1~3장 


여자는 사랑을(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나르시시즘의 여자 / 사랑에 빠진 여자 / 신비주의의 여성.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남자' 자체가 아니라 환영(환상), 비현실적 존재이며, 그 '사랑'은 자기 소외/자기 소멸이다. "명백히 말하면 나르시시즘은 자기소외의 한 과정이다. 즉 자아는 절대목표가 되고 주체는 그 속으로 도피해 버린다."(803) "'사랑'이란 말은 남자와 여자에게 서로 전혀 다른 의미이다. 남자와 여자를 갈라놓는 중대한 오해의 원천이 바로 거기에 있다. '사랑이란 남자의 생활에서는 일시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인생 그 자체이다'라고 한 바이런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822) "여자는 자기를 주고, 남자는 여자를 이용하여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844) 세 가지 유형의 여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는 않았지만 이해는 간다. 아마 더 많은 유형이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현실적 존재와 더불어 비현실적 관계를 창조"(867)한다는 구절은 너무 알맞은 표현 아닌가 했다.ㅠㅠ 사랑과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옆지기와 '연애' 관련 예능을 같이 보고 있다.(요즘 어찌나 넘쳐나는지.@@) 보부아르의 이야기 속에 예능의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오호라 싶은 부분들이 많았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쉬웠다. 또 뭐가 빠졌지?


제4편 해방 


아. 이 부분은 895페이지부터 모조리 밑줄을 그어야 할 판이라서 페이지마다 아래로 화살표를 그려두었다. 






"여자가 실존의 실패를 보상하기 위하여 붓이나 펜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은 갱년기 이후가 많다. 그러나 이때는 너무 늦다. 제대로 훈련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아마추어 영역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895) 네??? 보부아르님, 정녕 그런가요? 너무 늦나요? ㅠㅠ "그러므로 문학과 예술을 취미로 해 보려는 수많은 여자들 가운데에서 끈질기게 지속하는 여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첫 장애를 극복한 여자들도 대개는 나르시시즘과 열등감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머뭇거리고 있다."(898) '나르시시즘과 열등감 사이'라는 말은 정말 가슴을 콕콕 찌른다. 그러니까 보부아르님, 문학과 예술로 도피하지 말라는 말이죠? 그거는 생활이잖아요. 이미 생활이야. 


어찌나 강렬하던지. 진짜 매년 아니면 2년에 한번씩 다시 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책 전체를 다시 못 읽는다면 이 '해방' 부분만이라도. 프랑스에서는 이 부분을 따로 책으로 만들어두었다. 첨에 모르고 산 거지만 이렇게 만든 이유가 다 있었구나 싶다.








"불행히도 자발성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평범한 사고의 모순 - 《타르브의 꽃》에서 폴랑이 설명하듯이 - 은 그것이 흔히 주관적 인상의 직접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다른 사람은 계산에 넣지 않고, 자기 마음 속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가장 개성적인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실은 평범하고 상식적인 문구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 점을 지적당하면 그녀는 놀라 화를 내고 펜을 던져 버린다. 그녀는 일반 독자들이 자기 나름의 안목과 생각으로 읽는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참신한 표현이라도 독자들의 오랜 기억들을 일깨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물론 자기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강렬한 인상을 끌어내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귀중한 재능이다. 우리는 어떤 남성작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자발성을 콜레트의 작품에서 보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 다음의 두 말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 그녀의 내부에서 깊이 반성된 자발성이다. 그녀는 자기가 만들어낸 것들 가운데에서 어떤 것만을 충분히 숙고하여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린다. 여자 아마추어작가는 말을 개인 서로간의 관계나 타인에 대한 호소로 파악하지 않고, 자기 감수성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본다. 그래서 말을 선택하고 삭제하는 것이 자기의 일부를 거부하는 듯 생각된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자기의 어느 부분도 희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의 메마른 허영심은 자기를 쌓아 올릴 생각 없이 너무 아끼기만 하는 데에서 온다." (897) 




결론 


결론 부분의 밑줄을 몇 개 뽑아온다. 희망을 놓지 않는 보부아르님. 그러나 이 책을 쓰고도 계속 변하지 않는 현실, 지금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은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릴 수는 없잖아. 그러니 앞으로 전진. 계속. 


"여자의 가치하락은 인류 발전 과정에 필요한 한 단계였다."(912) 

"남녀는 서로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자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쪽의 잘못이 다른 쪽에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는다."(914) 

"불행은 개인의 부도덕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 자기기만은 저마다 상대에게 책임을 미룰 때 시작되지만 - 개별적인 행동이 무력해지는 상황에서 온다."(917) 

"그렇다고 여자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여자의 경제적 조건을 수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경제적 요인은 여자가 변화하는데 제1의 요인이었으며, 현재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요인이 예고하고 요구하는 정신적·사회적·문화적성과가 수반되지 않는 한, 새로운 여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919)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은, 인간적 존재들을 서로 구별하는 어떠한 특이성보다도 중요하다. 우월성은 결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예전 사람들이 '덕'이라고 불렀던 것은 '우리 상황에 맞춰 결정되는' 표준에 따라 규정된다. 남녀 양성 속에서는 육체와 정신, 유한과 초월의 연극이 똑같이 연출된다. 남녀는 다 같이 시간에 침식당하고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타자에 대하여 똑같은 본질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 또 그들은 자기들의 자유로부터 똑같은 영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가짜 특권을 가지고 다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둘 사이에 우정도 싹틀 것이다."(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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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30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페이지 남겨두고 이제 잠자리로...ㅠ
내일 다 읽을 수 있겠죠^^
결론
이글자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부럽습니다

난티나무 2021-10-30 03:59   좋아요 2 | URL
저는 동서문화사 판 뒷부분 해설이 아직 좀 남아있어요.^^;;
본문은 다 읽었어요, 그래도. 시원섭섭하네요?ㅎㅎㅎㅎ
그레이스님도 금방 읽으시겠어요. 화이팅~!!!^^

미미 2021-10-3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이지 전체가 좋았던 일이 너무 많아서 표시를 따로 해두었어요!! 온통 강렬하고 전율!! 난티나무님 글 읽고나니 해마다 읽을까 고민됩니다. 완독 수고하셨어요😍 👍👍

난티나무 2021-10-30 18:21   좋아요 1 | URL
밑줄을 긋기 시작하면 다 그어야 할 거 같은 부분들이 ㅎㅎㅎㅎ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에이 또 뭐 해마다 읽어 싶기도 하겠죠?^^;;;; 제가 쫌 그래요.ㅎㅎㅎ
😻😻😻😻😻

라로 2021-10-30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열하게 읽으신 느낌이 퐉!!! 저는 제2의 성 읽기 전에 난티님 정리하신 페이퍼 먼저 읽고 읽어야겠어요. 이렇게 정리를 잘 하시니 저처럼 뒤 따라가는 사람이 좋네요.^^;; (너무 얇밉나??ㅋㅋ) 근데 저도 책 곱게 보다가 어느 순간 연필로 막 밑줄 긋고 글 쓰고 하다가 플래그 붙였는데 책을 읽는 건지 플래그를 붙이기 위한 건지 몰라서(막 줄 맞춰서 붙이고 색깔 정리하고;;;ㅋㅋ) 결국엔 플래그는 정말 전체 내용일 좋을 경우가 아니면 안 붙여요. 역시 연필이 최고. 근데 난티님도 한 터프하신듯!!ㅎㅎㅎ

난티나무 2021-10-30 18:25   좋아요 1 | URL
저 정리 못 해요.ㅠㅠ 일주일에 적어도 하나씩 글을 쓰기로 같이 읽는 친구들과 약속한 터라 쓰긴 써야 겠고 써지진 않고 ㅋㅋㅋ 🤣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기분 좋지요~^^
저도 책에 밑줄이라니 오우노우 파였는데 🤣 최근에 막 긋기 시작했어요. 책 접는 건 여전히 싫어하고요.^^ 이런 책 같이 제가 계속 갖고 있을 책에는 밑줄 막 긋는 걸로 ㅎㅎㅎ 연필로 ㅎㅎㅎ

다락방 2021-10-3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지마다 화살표 너무 멋져요. 저도 저 기분 알아요. 제 경우에는 그냥 괄호로 단락을 묶어버려요!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10-31 15:22   좋아요 0 | URL
오호! 다락방님도 괄호! 진짜 전체가 밑줄인 책 왤케 많죠?!^^;;;
 
세미나책 -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공부 함께하기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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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격(혹은 성향)을 한두 마디 단어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는다. 나는 첫만남에 무척 긴장을 하고 낯을 가리지만 일단 친해지고 나면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말이 흘러나와 내가 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그럴 땐 꼭 실수를 해서 밤마다 이불킥을 한다. 이런 실수를 쿨!하게 넘겨야 하는데 그걸 여적 못해서 끌어안고 산다. 때로는 엄청 소극적이면서도 또 어떤 때엔 적극적으로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내 성격을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격, 그 중 공부에 대해 아니 독서에 대한 나의 성격을 생각한다. 

그동안 책을 헛읽었다,는 생각은 작년부터 들었다. 학교를 다닐 때나 어학원을 다닐 때처럼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던 때를 제외하면 어려운 책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돌이켜보면 드문드문이라도 무언가를 쓰기는 썼다. 읽었고 썼지만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다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평가한다. 글자들을 뛰어넘고 속독을 하는 버릇도 이제야 얼추 고쳤다. (페미니즘 책들이 나에게 준 또다른 선물!) 조금씩 어려운 책을 접하게 되고, 읽고 난 후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써내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런 만큼 책 읽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커지고(잘 읽어야 잘 쓸 수 있으니까), 뭔가 치열하게(이런 모호함이라니)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블로그 이웃의 글에서 이 책을 보고 도움이 될 것 같아 바로 구입했다. (공부하기는 싫어하면서 열공하는 모임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왜 생기는 것인지. 그러니까 내 독서 성향도 역시 한가지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다른 탐구 대상이다. 모순이야 모순.) 


세미나,라는 단어는 친숙하다. 내가 해본 적은 없어도 들어본 적은 많다. 주로 학자들과 넓은 강당이 떠오르는 것은 드라마 때문이겠지만. 세미나가 뭐하자는 것인지도 이제야 알게 된 걸 보면 내 삶은 정말 세미나란 녀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런 웅장하고 엄숙한 대규모 세미나가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세미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제야 안다. 실제로 이름을 붙이지 않아 그렇지 생활 속에서 세미나 비슷한 걸 해본 경험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말이 길었다. 그러니까 나도 세미나 할 수 있다, 이 말이다. 독서모임에서도 가능하다, 이 말이다. <세미나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책을 제대로, 깊이 읽고 싶다고? 그럼 일단 '잘'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해. 그럴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야. 라고 쓰니 식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구체적인 방법을 여기 다 쓸 수도 없고 그러면 스포일러 되니까 안 하겠다. 이런 말 나도 하겠네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다 책을 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ㅎㅎ (간혹 정말정말로 이런 책은 #@!#$#!&#^&***((^$#$%%  싶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그런 책들 다들 보신 적 있죠?) 


내가 궁금했던 혹은 잘하고 싶었던 것은 '발제문' 쓰기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질문을 떠올려야 하는데 그 질문이 늘 1차원적이라 조바심이 났다. 물론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는 1차원적 질문밖에 할 수 없다. 그러니 결국 늘 결론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읽어라. 많이 읽어라. 깊이있게 읽어라.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 힌트를 얻는다. 독서와 글쓰기 책들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혼자 책을 읽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거나 느리다는 것. 예전에는 혼자 읽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이젠 발전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마침 다정한 이웃님이 강독(형식의) 모임을 권유하셔서, 하고 있는 다른 독서모임들도 있는데, 덥석 손을 잡았다. 앞에서 성격 이야기를 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컴퓨터 카메라를 켜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다. 음독으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 역시 나에게 없는 경험이다. 강독 형식의 세미나가 읽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책에 나온다. 다양하게 책을 읽는 방법을 탐구하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되는 행복은 당연히 함께 온다.) 


발제문으로 시작해서 모임 이야기로 끝날 뻔 했다. 그러니까 발제문. 며칠 전에 학술 회의를 줌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세미나책> 을 실전 영상으로 보는 것 같았다! 논문을 쓴 교수님들이 내용 발표를 하고 그 논문을 미리 읽은 또다른 교수님들이 발제문을 준비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정된 시간 탓에 빠듯하게 진행이 되긴 했지만 발제문은 저렇게 쓰는 것이구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당장 읽은 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나는 발제문을 쓰게 되려면 엄청나게 연습을 해야 겠구나,도 싶었다. 그러나 좌절하지는 않으련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책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질문하라고. 원래 세미나는 내가 깨지려고 하는 거라고. 그걸 통해 배울 수 있는 거라고. 맞는 말씀. 창피해하면 배울 수 없다. 


"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라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모르겠다는 말을 붙여 가면 되니까요. 더 나아가서 이해가 안 가는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모르겠다'는 진술 자체가 세미나에서는 아주 중요한 발언이 됩니다. 세미나 팀원 전체가 달라붙을 만한 '문제'를 던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입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할 말을 못 찾겠어서 입을 열 수 없다면 '할 말'을 찾지 마시고, '모르겠다' 싶은 문제를 찾으시면 됩니다. 전체를 다 모르겠다 싶으면 그중에서 특히 더 모르겠는 걸 찾아야 합니다. 어떤 걸 모르는지 모르겠다 싶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겠다 싶은 걸 찾아야 합니다. 거기가 출발점입니다." (171) 


(위 구절을 치다 보니 문득,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가 있을 때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할 말을 못 찾겠어서 정적이 흐를 때의 난감함,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일 때의 조급함, 그럴 때 있지 않나 왜. 실전에 응용해 봐야 하겠다.) 


세미나를 잘 하는 법, 질문하는 법, 준비하고 진행하는 법, 유의점 등등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도 하는 이 책은(가만 책이 말을 하는 것인가?) 그래서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다만 "공부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실전 응용. 모르겠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 인생 공부를 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이게 또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않나?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릴 시간이 내게는 있다. 누군가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수 있다. 그리고 간혹 비문은 아닌데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있(는 듯하)다. 딱히 잘못된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별 하나를 뺀다. -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 


읽고 있는 어려운 책 중 하나인 우에노 지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오늘 아침에 펼쳤다. 와 어렵다.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다. 아무래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그냥 글자만 읽을까 까지도 생각하다가 모르는 것 질문하기, 질문에 질문을 덧붙여 나가기, <세미나책>의 이런 말들을 떠올리며 꾸역꾸역 다시 글자들을 읽었다. (책에서 권하는 '목차 쓰기'도 제까닥 해보았다.) 다음번에 다시 읽을 때 분명 나는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야 최면을 걸며, 지금 안 되면 다음에, 다음에 안 되면 또 그 다음에. 


*사족 : 제까닥,이라고 쓰면서 맞춤법 맞나 검색했더니 '제꺼덕'의 북한어,라고 나온다. '제꺼덕'이라고 써야 하나 보다. 몰랐다.^^;; (+ '제꺼덕'과 '재까닥' 둘 다 표준어라고 한다.) 


"읽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입으로 말할 때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마 ‘말‘로 하지 않았다면 자기 자신도 자기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걸 깨달을 수 없었을 겁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의 말로 읽은 것을 다시 전달하면서 알지 못했던 것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불균형은 바로 이어지는 다른 사람과의 토론 속에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어디서 막혔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바로 그게 공부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 P66

"세미나를 한다는 건 그동안 읽어 왔던 ‘책‘을 ‘텍스트‘로 바꾸는 것이고, ‘독자‘였던 자신을 ‘해석자‘로 바꾸는 겁니다. 능동적 읽기인 셈이죠." - P98

" ‘세미나‘는 결국 ‘질문‘에 ‘질문‘을 덧붙여 나가는 공부 형식입니다." - P176

"사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떤 텍스트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렇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공부‘가 단지 아는 것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을 늘려 가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말하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느는 것도 분명히 있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훨씬 정교해진다는 점입니다. 당연합니다. 세미나를 통해서 내 말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실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말이 닿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점점 더 잘 알게 됩니다. 그걸 보면 모든 인문학 공부는 결국 자신에 대한 공부로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더 많이, 더 자주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자신의 무지가 매우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 P178

"그렇게 보면 누가 나보다 더 잘 알고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시점에서 그의 ‘해석‘이 좀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뿐이니까요. 공부는 보다 넓고 긴 지평에서 보면 그와 나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물론 그 시점에서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요.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모두 ‘공부‘ 앞에 평등합니다. 저마다 조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에는 우리 모두, 역사상의 유명한 사상가, 철학자들까지 포함한 우리 모두, 결국에는 이 세계와 이 세계 안에서의 삶을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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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0-27 0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난티님!! 나도 난티님하고 같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 되었지만,, 흑흑
근데요, 사람의 성격을 몇 마디로 말하기 힘든 건 사실인데, 지금까지 양파처럼 하나하나 보게 되는 난티님의 성격(?)은 제게 아주 가깝게 느껴져요. 좋아요. 하핫(저처럼 말 못하고 일차원적 적인 사람 또 못 보셨죠???😅😅😅)

난티나무 2021-10-27 03:59   좋아요 2 | URL
멋진 라로님이 멋지다고 말씀해주시니 저도 끝갈 데 없이 좋은 이 마음~ 샬랄랑~~~~~ㅎㅎㅎㅎ
양파 같다고 하시니 (양파 좋아요!) 다 까고 아무것도 안 남지 않도록 발 밑에 흙을 잘 깔아두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헤헷~

다락방 2021-10-27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창시절 공부를 되게 안하고 못했거든요. 공부 잘하는 사람 너무 멋져! 하고 동경하였지만 제가 공부를 하진 않았어요. 저는 왜그렇게 공부를 안한건지.. 그시절 어른들이 공부도 때가 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라고 말할 때 귓등으로도 안들었는데, 아아,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삼십대 중반이 되어 페미니즘 책 파고들고 강연 찾아 들으러 다닐지는요. 그렇게 열심히 읽고 듣고 다니면서 와, 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내 학력이 바뀌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수천번 했어요. 더불어, 공부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인생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총량이 있는데 제 경우엔 10대 20대에 그걸 안해가지고 30대부터 미친듯이 쏟아붓게 된거죠. 어쨌든 제 삶에서 공부의 양은 주어져 있으니까요.

저는 난티나무 님의 어린시절도 학창시절도 알지 못하고, 사실 이렇게 알라딘에서 뵙는게 전부라 아는 게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제가 이렇게 보는 난티나무 님은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공부하실 것 같아요. 제 경우가 공부총량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라면 난티나무 님의 경우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신 것 같달까요.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재미를 붙이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하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계속 읽고 쓰고 다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난티나무 님을 이자리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난티나무 2021-10-27 18:20   좋아요 0 | URL
우왓 페이퍼급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공부를 잘 하고 싶었지만 잘 하지 못했습니다. 켁. 방법을 몰랐어요. 지금도 모르긴 하지만. 필요성은 완전 느끼는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공부란 걸 하기 싫어한다는...ㅠㅠ 책은 계속 읽을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가지의 철학이나 정치학이나 역사나 기타등등 알아야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런 공부를 하게 될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락방님 댓글을 읽으면서 진짜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건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보부아르님도 ‘해방‘ 부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 싶어 찔리기도 했고요. 좀더 탐구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하하.
지금이 공부할 때다, 라는 말을 저도 제 아이들에게 하는데... 하아... 그걸 모르는 게 10~20대인 걸까요? 느무 안 하는 거죠.ㅠㅠ 어쩌면 그 나이는 공부하기에는 너무 어린 게 아닐까요? 30대 들어서야 뭔가 공부라는 걸 느끼면서 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막 드네요.ㅎㅎㅎ 뭐 지금의 나도 하기 싫은 공부가 아이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

수이 2021-10-2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찰싹 언니 곁에 달라붙어서 놀래요.

난티나무 2021-10-27 18:22   좋아요 0 | URL
같이 ‘놀자‘! ㅋㅋㅋ 놀면서 공부하는 방법 좀 연구해 봅시다.ㅎㅎㅎㅎㅎ
 















제3장 사교생활

보부아르가 말하는 사교생활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사교생활이란 무엇일까. 가족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이 책이 씌여지기 전까지는 주로 여성들의 '살롱'에서 이루어지는,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 필요에 의해, 의무에 의해, 여성이 할 일이라고 규정된 형식 안에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사교생활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어떤 형식인가와는 상관없이 요즘도 의무와 필요에 의해 만나기 싫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니 딱히 지금과 다르다고 말하기도 어렵기는 하다. 난 정말 그 사람(들) 싫은데,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다시피 하니까.

"사춘기가 되면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생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성적 대상이라는 사명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녀는 기꺼이 자기 몸을 가꾸기 시작한다." (688)

요즘은 사춘기가 아니라 초등학생이 되면, 혹은 더 내려가서 유치원생이 되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여성성'이 직간접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뱃속에서부터이고,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지는 아이들에게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이 더 빨리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성적 대상이라는 사명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 말은 슬픈 말이다.

"여자의 노출욕과 수치심 상의 타협을 규정하는 것은 풍습이다." (691)

"많은 여자들에게 화장이 그처럼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그녀들에게 이 세계와 자기들의 자아를 동시에 부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693)

"나르시시즘에도 타인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다" (697)

노출욕. 이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직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자발적' 결정이 얼마나 자유롭고 자발적인 것일 수 있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이 있을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수치심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어려운 문제이다. 어제 잠깐 본 예능에서 남성 출연자의 바지가 어딘가에 걸려서 살갗이 조금 노출되었던지 아니면 옷이 당겨졌던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 수치스럽다고 표현했다. 농담처럼 표현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그냥 조금 부끄러운 정도 아닌가. 그저 신체의 일부분과 얽힌 가벼운 에피소드인데 수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너무 가볍게, 쉽게,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보부아르의 말처럼 "여자의 노출욕과 수치심 상의 타협을 규정하는 것"이 "풍습"이라면(전적으로 맞고요), 노출욕과 수치심을 느끼는 기준도 풍습일 것이다. 어렵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의 문화와 서구의 문화를 비교하여 전자를 부끄럼의 문화, 후자를 죄의 문화로 파악했다. 여기서는 부끄럼의 문화에서의 외면성의 중시와 죄의 문화에서의 내면성의 중시와 같은 대조, 또는 전자에서의 자기와 타자와의 관계와 같은 수평성과 후자에서의 자기와 초월적인 것과의 관계와 같은 수직성의 대조가 보인다. 그러나 수치라는 현상은 그와 같은 구별을 넘어선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이다.

「수치와 수치감정에 대하여」[SGW 10. 65ff.]에서 셸러는 이 현상을 인간의 독특한 실존양식에 결부시켜 생각한다. 정신과 인격성이 생명충동, 생명감정과 접촉하는 곳에서 수치감정이 발생한다. 따라서 동물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신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닌바, 신체와 정신을 갖춘 인간에게 고유한 현상이라고 간주된다. 요컨대 생물학적인 것을 넘어선 내용과, 목표에 몰두하고 있던 정신적 지향은 이따금 주의가 신체로 향하는 것에서 스스로가 동물적 실존과 결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서 수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셸러에 의하면 신체가 인간의 본질에 속하는 까닭에 인간은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으며, 다른 한편 정신적 인격이라는 신체로부터 독립된 것으로서 존재하는 까닭에 인간은 수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인간의 존재방식과 연관하여 신체의 수치 또는 생명적 수치감정과 심적 수치 또는 정신적 수치감정이라는 두 개의 근본 형태가 생각된다. 전자는 타자의 지향과 자기의 지향과의, 개체화와 일반화를 둘러싼 불일치가 자기에로의 되돌아봄(Rückwendung)을 매개로 하여 감득될 때에 발생한다. 또한 후자는 저차적인 충동적 추구를 강하게 일으키는 대상에 대해 가치 선택하는 고차적인 의식기능이 미결정의 태도를 취하는 것에서 의식의 두 단계가 긴장하는 것으로서 제시된다.

사르트르『존재와 무』 제3부 '대타존재'에서 타자와의 연관에서 수치를 다루는데, 수치란 타자 앞에서의 자기에 대한 수치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야비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타자가 없을 때에는 별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치를 느끼는 것은 그 야비한 행위를 타자가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꼈을 때이다. 그 경우 수치는 야비한 행위가 보였다는 것보다도 자신이 타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즉 나의 대타존재의 체험에서 유래한다. 수치는 내가 사물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는 근원적 실추의 감정이다."

-이케가미 데쓰지(池上哲司)

[네이버 지식백과] 수치 [羞恥, Scham, honte] (현상학사전, 2011. 12. 24., 노에 게이이치, 무라타 준이치, 와시다 기요카즈, 기다 겐, 이신철)

수치,를 검색해보았다. 이 개념 역시 단순하지 않다. 앞으로 만나게 될 생활의 장면들에서도 수치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해 볼 문장 :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여자라는 일반성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들의 관계에는 곧 적대감이라는 요소가 개입된다." (707)

공감, 신뢰, 남자의 그늘, 과 같은 단어들. "태양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우리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생 종 페르스의 시 인용, 709)

제4장 매춘부와 첩

이 장에서는 몇 문장만 가져오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한다.

"결혼은 곧 매음이라는 필연적 결과를 낳는다." (720)

"화려한 궁전의 위생을 위해서는 하수설비가 필요하다고 교회 신부들은 말했다." (721)

"결혼한 여자에게든 창녀에게든 성행위는 하나의 의무이다. 전자는 단 한 남자와 종신계약을 하고, 후자는 자기에게 돈을 지불해 주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인다. 전자는 한 남성을 통해 다른 모든 남성들로부터 보호받고, 후자는 모든 남성들을 통해 한 남성의 배타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721)

"소극적·위선적 수단으로는 이런 상황(성적/경제적 억압, 빈곤, 질병과 임신, 경찰의 횡포 등등)을 바꿀 수 없다. 매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모든 여성들에게 정당한 직업이 보장되는 것과, 풍습이 연애의 자유를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음의 필요성을 제거해야 비로소 매음을 폐지할 수 있다." (735 각주)

"여자가 자기 몸을 드러내는 모든 직업은 성적인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736)

생각해 볼 문장 :

"남자에게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은 - 뒤에 보듯이 남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은 - 남자를 하나의 도구 또는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자는 자신이 도구가 되는 것을 막는다. 아마 남자는 '그녀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성적 소유는 착각이다." (738)

제 5장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갱년기. 40이 넘으면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 단어. 최근 갱년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듣고 말하는 '갱년기'는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는 호르몬의 변화(완경에 따라오는)를 너무 부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조장해서 여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갱년기 '증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즉각적으로 호르몬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처방은 지나친 편견(&고정관념)은 아닐까? 삶에 대한 혼란과 어렴풋한 깨달음이 오는 이 시기를 갱년기라는 세 글자 속에 가두어두고 모든 현상을 '갱년기'라 그런 거라고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월경하니 예민한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갱년기라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약 먹고 견디라고, 우리 모두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험한 연령(갱년기)'의 특징은 몇 가지 기관의 고장으로 나타난다. 이 일이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상징적인 가치 때문이다. ... 폐경기에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병은 육체 그 자체보다 그것을 괴롭게 여기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 내면의 드라마는 보통 신체적 반응들이 나타나기 전에 시작되었다가 그 반응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종결된다." (745)

"상징적 가치"에 밑줄을 긋는다. 다만 "기관의 고장"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노년에 이르러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하는 것(748)은 아무런 깨달음 없이 목적의식 없이 무모하게 이것저것을 탐닉한다는 말인가? 그것조차 '에로틱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여자의 일생이 너무 슬프다. '평범하게' 산 여성이라면 죽을 때까지 환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되겠다. 끝까지 '자기자신'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말이 되겠다. 사이비종교에 자꾸만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여성의 경우가 가끔 미디어 상담코너에 보이는데 보부아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런 경우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현실감각을 다소 상실한 이 위기의 기간에는 어떠한 영향도 받기 쉽다. 여자는 미심쩍어 보이는 권위라도 열렬히 매달린다. 여러 종파, 영매, 예언자, 병을 고친다는 사람, 모든 사기꾼들에게 그런 여자는 아주 알맞은 먹이가 된다. 이는 그녀가 현실세계와 접촉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비판적 감각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진리를 갈망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750~751)

"의무에서 해방된 그녀는 그제서야 겨우 자유를 발견한다. 불행하게도 어느 여자에게서나 우리가 '여자의 역사 속에서' 확인한 사실이 반복된다. 즉 그녀는 이미 쓸모없게 되었을 때 이 자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반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자가 하는 모든 역할에 예속의 형태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자는 모든 효력을 상실하는 순간에 비로소 노예상태에서 벗어난다." (754)

'쓸모없게 되었을 때'가 무슨 뜻인지는 알겠으나 '소용'의 가치가 있어야만 인간이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여자가 내뱉는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754)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766) 같은 말이야말로 '쓸모없는' 말이다. 이 말이쥬, 보부아르 언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 말은 자주 내뱉었는데 반성해야 겠다.)

이 장의 어머니-아들, 어머니-딸 의 관계 부분은 특히 주의깊게 읽게 된다. 아이의 나이가 적든 그렇지 않든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지 않은 어머니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사람, 대등한 인격체, 라는 생각을 어린 아이에게 적용할 능력(?)이 없으므로(경험 부족과 무지) 아이가 점점 자라 비슷한 키가 되었을 때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헤매게 되는 일이 잦다. "그녀가 아무리 그를 신뢰한다고 해도, 연령과 성별의 차이는 그녀와 아들 사이에 진정한 유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757) 같은 문장은 더더욱 와닿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기본적으로 아이를 신뢰한다 하더라도 사회의 상황 때문에 그 신뢰에 불안이 더해지지 않는 경우는 드물며 아이가 그렇게 자라기까지 알게 모르게 형성된 '사회적 마인드'와 나의 '기준'이 충돌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나름대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해석한다." (758) 이것이 불화의 또 하나의 근원인 듯하다.

"만일 그녀들이 어머니에게 저항한다면 영원한 투쟁이 두 사람을 대립시켜 놓을 것이다. 그리고 버려진 어머니는 딸의 불손한 독립적 태도에 대한 분노를 대개 사위에게 터뜨린다." (760)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는 실제 예를 알고 있다. 한 치도 틀림이 없다. 투쟁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관계.

"어머니가 폭군도 되지 않고, 잔인한 인간으로도 변하는 일 없이 자식들의 생활에서 행복을 발견하려면, 관용과 무관심의 흔치 않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760) 이것이 얼마나 여려운 일인지... 관용과 무관심의 흔치 않은 조화, 표시나지 않게, 태연하게, 아아 또다시 의도치 않게 가면을 써야 하는 일. "경험만으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767) 는 말은 옳다.

생각해 볼 문장 :

"문학은 기획에 참여하는 개인들에게 말을 건넬 때, 독자들이 보다 넓은 식견을 향하여 행동하도록 도울 때 그 의미와 품위를 지닌다. 여자도 인간행위의 움직임과 일치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 여자는 책과 예술작품을 삼켜서 그것을 자기 안에 깊이 묻어 버린다." (765) ( * 일반적인 경우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것.)

제6장 여자의 상황과 성격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여자의 성격과 상황을 정리하는 장이다. 아래의 구절로 대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저기 사회에 숨어있는 화두를 건져올려 하나씩 건드려주는 보부아르 언니의 센스! (센스 아니고 사유의 깊이이겠지만 여기서는 센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여자'라는 성을 말하는 것은 '영원한 남자'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우수하다든가, 열등하다든가, 혹은 동등하다든가 하는 것을 결정하려는 모든 비교론이 어째서 무익한가에 대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자와 여자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만일 이런 상황 자체를 비교해 본다면 남자 쪽이 무한히 유리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즉 남자는 세계 속에 자기의 자유를 투사하는 훨씬 더 구체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남성의 자아 실현은 여성의 경우보다 훨씬 훌륭하게 나타난다. 여자들에게는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거의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저마다의 한계에서 어떤 방법으로 자유를 행사하는지를 비교한다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은 그것을 저마다 자유로이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악의에 찬 함정이나 성실을 가장한 기만은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남녀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자유는 완전히 각자에게 있다. 다만 여자에게는 자유란 다만 추상적이며 공허한 것이므로 여자는 저항의 형태로밖에 자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떠한 가능성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저항만이 유일하게 열려진 길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처한 상황의 한계를 거부하고 미래의 길을 여는 데 노력해야만 한다. 체념은 책임에 대한 포기이며 도피이다. 여자 스스로 자기의 해방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밖에 달리 해결방법이 없다.

이런 해방은 오로지 집단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자 쪽에서 경제적 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 (802)

생각해 볼 문장 :

"여자에게 시간은 새로운 차원을 갖지 않는다." (770)

"여자에게는 기생의 역할만이 할당되었다. 모든 기생하는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착취자가 된다." (787)

"그녀는 남자의 하인이지만 자기를 남자의 우상이라고 믿는다. 자기의 육체로는 굴욕을 겪으면서 그녀는 '사랑'을 찬양한다."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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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0-24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막 2권을 마쳤습니다.
이제 정리해서 쓰기만 하면 2권은 끝나고, 읽지 않고 지나쳐온 1권이 남아있네요.
난티나무님 글 읽으니까 인용해주신 문장들 중에 제가 줄친 부분이랑 겹치기도 해서 쫘악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난티나무 2021-10-25 06:14   좋아요 0 | URL
오 2권 끝까지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좀 남았습니다.
월요일이 25일이네요. 어이쿠. ㅎㅎㅎ 🤣
뭔가 다정하고 슬기로운(?) 댓글을 달고 싶은데, 능력 부족…^^;;;; 자주 말주변이 없는 저는 감사하다는 말만 놓고 자러 가겠습니다…ㅠㅠ

라로 2021-10-2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문장들이 난해합니다요. 왜 이렇게 어렵지??ㅎㅎㅎ 저는 일단 보부아르의 전기부터 읽고,,, 이 책은 언젠가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은 하는데,,, 전 읽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네요,, 여성들 사이의 적대감에 대한 글도 갸우뚱 하고요..^^;;(제 머리가 나쁜 걸 왜 책 탓을 하고 그러는지;;;)

난티나무 2021-10-26 23:25   좋아요 0 | URL
제가 앞뒤 자르고 문장만 똭 갖고 와서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문장들마다 쏙쏙들이 이해되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것 같더라고요. 거기에 해당하는 상황과 경우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라로님 무리(?)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남자인 제 옆지기도 읽고 있는데요?ㅎㅎㅎㅎ

라로 2021-10-27 02:16   좋아요 0 | URL
네, 저 어제 긴스버그 다큐 봤는데요 넘 좋았어요!!!!!!! 페미니즘 공부라고는 그렇고 관련된 책을 이제 슬슬 찾아 읽고 싶어져요. 일단 공부하시는 난티님이 추천해 주시는 책부터 읽을까요?? 그전에 제2의 성 읽어야죠??😅😅😅

난티나무 2021-10-27 04:05   좋아요 0 | URL
오! 긴스버그~ 저는 책도 한 개도 못 읽었네요.^^;;;;
지금 보부아르에 관한 책을 읽고 계시니 제 2의 성 시작하셔도 괜찮지 않을...까요???ㅎㅎ
단 1부와 2부 중 1부가 좀 지루(?)한 면이 있어요. 2부는 흥미진진하게 읽혀요.^^
제가 책을 추천하기에는 지식이 얕아서...ㅠㅠ 뭐가 좋을까요? 덕분에 생각해 봐야 겠어요~^^

라로 2021-10-27 15:51   좋아요 0 | URL
공부하시면서 천천히 알려주세요.^^ 저 이제 보부아르 전기 시작했고, 어렵다는 제2의 성도 읽어야 하니 시간 많으세요.ㅎㅎㅎㅎ 난티님이 이리 좋아해 주시니 저도 막 좋아요. 먼저 공부하신 난티님 덕분에 제가 쉽게 좋은 책을 만날 것 같아서도 그렇고요.(좀 얄미운가요??ㅠㅠ)

난티나무 2021-10-27 18:28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ㅎㅎ 읽은 책과 읽을 책들을 제 나름대로 선별하는 작업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금 잘 안 되기는 하지만 ㅎㅎㅎ 해야 할 것 같아요. 실제로 옆지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제가 권한 책들이 다 실패였거든요. 남자이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는 상태였어서 더 그렇기는 했지만 아무튼 책을 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제2부 제2편 제2장 어머니


임신, 입덧, 출산.

나는 어땠나. [어머니] 부분을 읽으면서 시간을 거슬러 돌이켜본다. 많은 것이(어쩌면 모든 것이)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는 말은 옳은 듯하다.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몸 안에 또다른 몸을 만들고 그 몸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겠나.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몸도 마음도 불안하다. 걱정하지 마라, 누구나 다 한다, 는 말은 1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겪는 사람은 '누구'가 아니라 '나'다. 누구나 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땅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첫 출산이 훨씬 더 힘들었다. 처음엔 다 그래, 둘째는 훨씬 수월하다? 같은 말을 들었다(나도 한 적 있다.ㅠㅠ). 처음이라 힘든 것은 맞다. 그러나 원인은 몸의 고통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것들은 '무지'에서 온다. 이런 마음 때문에 입덧이 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으레 하는 줄로만 알았지. 몸이 거부하는 것이라니. 그러고 보면 임신한 이후 희한하게도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단칼에 싫어하게 된 것도 심리적인 이유였겠다. 몸에 좋지 않은 것 = 아기에게 좋지 않은 것, 이라는 의식이 작용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같은 게 당기는 것은 반대로 나의 욕구를 위한 몸부림이겠지. 카오스. 카오스.


*** 그녀는 신비의 법칙을 부과하는 종()의 먹이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소외는 그를 두렵게 한다. 그 두려움은 입덧으로 나타난다. (655) ***





첫 출산 후 병원에서의 사흘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모르는(세상에 알려진 딱 그만큼의 정보만 가진) 초보는 우는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울음을 터트렸다. 함께 방을 쓰던 옆침대의 낯선 여자는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음 내가 먼저 말을 건넸을 때 그녀는 세번째 출산이라 했다.) 한밤에 벨을 눌러 간호사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싸늘하게 대하는 눈빛과 몸짓은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병원의 규칙에 따라 함께 잘 수 없었던 남편도, 첫 출산이라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엄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밤새 아기 옆을 지키는 건 내 몫이었다. 아기가 밤에 잠을 주욱 잘 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간호사들의 아침 인사는 잘 잤어요?다. 아니요... 아니 (도대체) 왜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간호사들 중 단 한 명만이 따뜻한 말을 건넸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하는(않는) 건 마찬가지. 너의 일이야, 네가 알아서 어떻게 잘 좀 해 봐.

그래, 지금 생각하니 나 참 용감했다. 한밤의 눈물과 지침이 불안과 두려움이었다는 건, 이제 더 확실히 알겠다. 두번째 임신은 입덧도 가벼웠고 출산에 걸린 시간도 엄청 빨랐으며 회복 역시 빨랐다. 눈 내리는 병실 창가에 서서 혼자(아기가 쌕쌕 잠들어 옆에 있지만 나랑 놀아줄 건 아니니까) 무료하고 심심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 출산 이틀째였다. 어렴풋하게나마 좌충우돌로 겪어낸 첫번째 임신과 출산 경험이 그런 나를 만들었다. 기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부아르는, "임신의 시련을 가장 쉽게 겪어 내는 여자는 출산 기능에 완전히 헌신하는 모성형이며, 한편은 자기 육체에 일어나는 이변에 현혹되지 않고 그것을 쉽게 극복해 나가는 용기 있는 남성적 여성"(655)이라고 말했다. 나는 전자('출산 기능'!!)에 가까웠나? 아니면 후자?





*** 보통, 모성이라는 것은 나르시시즘·이타주의·몽상·성실·기만·헌신·쾌락·멸시의 기묘한 혼합이다. (670)


이제까지 서술해 온 내용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두 가지 편견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 명백하다. 우선 모성애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여자를 충분히 만족시킨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680~681)

첫번째 편견에 직접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또 다른 편견은, 아이가 어머니의 품속에서 확실한 행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모성애에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모성본능이 없는'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런 까닭으로 나쁜 어머니도 있을 수가 있다. (중략) 세상에서 여자에게 주는 경멸과 어머니에게 주는 존경심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은 괴상한 아이러니이다. (683) ***


감정의 기묘한 혼합. 보부아르는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 하다. 첫 출산 이후의 힘듦 이후로 아이가 2살일 때, 4살일 때, 7살일 때, 그렇게 자라기까지 또 무수한 이야기들, 감정들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의 외형에 가깝게 큰 지금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데도 한 인간을 감독·지도하는 것, 오로지 거기에 반항함으로써만 자기를 확립할 수 있는 한 미지의 자유로운 주체에게 개입하는 어려움을."(675)  그 어려움, 요즘 만끽(!)하는 중이다. 어렵다. 






*** 오늘날 여자를 가정 밖에 몇 시간씩 묶어놓는 직업과 아이의 이익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육아를 양립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은, 여자의 일이 아직도 노예 노동이기 때문이며, 또한 가정 밖에서 아이의 시중과 교육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무능이 원인이다. 하늘이나 땅속에 기록되어 있는 법에 따라 어머니와 아이는 오로지 서로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회의 무능을 두둔하는 것은 궤변이다. 이런 서로간의 구속이라는 관계는 실제로 이중의 해로운 압박을 낳을 뿐이다.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사실상 남자와 동등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다. (685) ***


궤변이다. 기만이다. 그렇게 외치는 보부아르 님. 궤변이다. 기만이다. 나도 외쳐본다. 나를 기만하지 말아라! 너희의 그 궤변덩어리들 다 깨부숴주겠숴~ (라고 해놓고 머리아프다. ㅠㅠ)





*** 여자는 가사로는 결코 자기를 구제할 수 없다. 이 일은 그녀의 시간을 빼앗지만, 그녀의 삶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정당화는 자기 밖에 있는 자유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에 갇혀 있는 여자는 스스로 실존을 만들어 나갈 수 없다. 그녀는 개별성 속에서 자기를 확립할 수단이 없다. 따라서 그 개별성이 그녀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 (686) ***






이렇게 제2장 [어머니] 부분이 끝났다. 할 말이 많은 듯 했는데 결국 경험의 부분적 나열에 불과하다. 단순히 경험만을 나열하는 것만도 오래 걸릴 것 같다. 아직도 머릿속에 장면들이 어른거린다. 그 장면들은 나에게 어떤 또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계속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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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0-18 2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간추리신 내용과 경험담을 읽는것만으로도 다시 한번 숙연해지고 빚진 마음같은게 느껴지네요! 왠지 저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저 사회제도라는 장벽에 벽돌 한장쯤은 쌓은것 같고, 그 장벽이 무너지지 않게 일정부분 공헌했던것도 같고, 무의식의 영역에선 그 장벽이 주는 직접적 및 반사적 이익이라는 과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장벽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싶어 왔던지도 모르겠네요!ㅠ 완독까지 힘내시구요!

난티나무 2021-10-18 22:56   좋아요 4 | URL
막시무스님, 댓글 읽는데 마음 한켠이 살짝 무거우면서 또 뿌듯(?)한 마음이 동시에 드네요.^^ 뜬금 박수를 쳐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헤헷. 막시무스님 글 보면서 저도 많이 공부합니다. 댓글은 잘 안 달지만서두... 반성반성...ㅎ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18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요된 모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티나무님 글로 읽으니 끄덕끄덕, 공감입니다.
저도 이 책 읽기로 했으니 분발해야하는데...

난티나무 2021-10-19 04:5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화이팅입니다!^^
문장들에 밑줄 그으며 멈칫멈칫합니다.^^

단발머리 2021-10-23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머니,라는 과정을 비교적 편안하게 지나쳐 온 사람인데, 난티나무님 글 읽는데 막 맘이 뭉클하네요. 외국의 어느 병원에서 달래주는 사람 하나 없이 신생아와 씨름하는 순간들이 막 그려지고요.
애 많이 쓰셨어요, 난티나무님! 우리 모두 그 길을 이렇게 저렇게 잘 지나왔네요ㅠㅠ

난티나무 2021-10-24 03:3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고마워요~^^
그러네요, 지나와서 지금 여기에~
여전히 어렵지만 ㅎㅎㅎ 앞으로도 잘 지나갈 수 있겠지요?^^;;;; 현재진행형...ㅎㅎㅎ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계속 불릴 테니까요.^^


공쟝쟝 2021-10-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으면서 제 엄마와 동시에 내 유자녀 기혼 서재 이웃들이 많이 생각났었어요. 이 부분 읽을 때는 정말 만감이 교차하겠구나... 하구.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엄마들이 다 겪는다, 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겪는 다는 말이 와닿아요. 내가 가진 고유의 경험과 감상들을 다 그런거야~ 하면서 흘려보내지 않으셨음 해요! ^^ 우리 그렇게 스스로를 독려해나가자요!

난티나무 2021-10-26 23:31   좋아요 1 | URL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경험담을 늘어놓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던데(아 진짜 맞는 말 ㅠㅠ) 많이 찔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다른 경험들을 모조리 풀어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어떻게,라는 질문이 남아있을 뿐. 공쟝쟝님의 글 뿐만 아니라 댓글한테도 팬이라고 전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