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는 런던에 사는 동안에는 상류층 유행에 따라 서로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다. 일 년에 절반 이상, 자연의 여신이 사방 구석구석 아름답게 꾸며놓은 시골에서 소박한 행복을 즐길 때 역시, 두 사람은 자주 어울리지 않았다. 남편은 냉정하고 무덤덤한 시선으로 그 아름다운 광경을 그냥 지나쳤고, 시골이 내놓는 오락거리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는 아침이면 사냥을 했고, 과한 만찬이 끝나면 보통 잠들어버렸다. 이렇게 적절히 휴식을 취한 덕분에, 엄청나게 먹어치운 것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그는 예쁘장한 소작농 여인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발그레하게 빛나는 그들의 혈색을 볼연지도 살려내지 못하는 아내의 안색과 비교했을 때, '대식가'의 마음에 든 것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신이 나서 멋대로 추는 춤은, 병약하고 기력이 없어 늘어져 있는 아내보다 그의 마음에 맞았다. 엘리자의 가녀린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고, 연약한 여인상을 완성하며 긴장을 너무나 풀어버린 나머지, 그녀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인 중에는 그처럼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이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엘리자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 <메리, 마리아, 마틸다> p.7



"여인 중에는 그처럼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이 숱하게 많았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맞닥트린 부분에서 지난달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라 가져와본다. 19세기 여자들의 삶과 병증, 의사들의 해괴망칙한 처방 등등.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 여자들.


길먼은 그(가장 저명한 신경 전문가 위어 미첼 박사)와의 만남에 대비해 자신의 전체 병력에 대해 조리 있게 적어 갔다. 이를테면 그녀는 자신의 병이 집, 남편,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사라졌다가 그들에게로 돌아가자마자 재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미첼 박사는 그녀가 준비해 간 병력 기록을 "자만심"의 증거라며 묵살했다. 그는 환자로부터 정보를 원하지 않았고 "완전한 복종"을 원했다. 길먼은 자신에게 내린 그의 처방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최대한 가정중심적인 삶을 살라.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어라." (단지 아기에게 옷을 입히고 있을 뿐인데도 그 행동으로 내가 몸을 떨며 울게 되는 것을 상기해 보라. 이 관계가 나한테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이 아기를 위해서도 결코 건강한 동반관계가 아니다.) "매 식사 후 한 시간 동안 누워 있어라. 하루에 단 두 시간만 지적인 생활을 해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펜, 붓, 연필을 잡지 마라."


<200년 동안의 거짓말> p.156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200년 동안의 거짓말> p.156

▷ 길먼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부유한 아내들은 도도새 같은 하나의 비극적 진화의 변종처럼 보였다. 부유한 아내들은 일하지 않았다. 가정에서 수행할 진지하고 생산적인 일이 없었으며, 집 청소, 요리, 자녀 양육처럼 그녀가 하던 일은 가능한 한 많이 가정부에게 넘겨졌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단 하나의 유일한 기능, 즉 섹스로 특화되었다. 따라서 스커트 뒷자락의 부푼 장식, 가짜 앞가슴, 큰 엉덩이, 잘록한 허리 같은 부자연스러운 복장은 자연스러운 여성적 외모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그녀의 임무는 자신이 결혼한 사업가, 법률가, 혹은 교수의 상속인을 낳는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남편의 수입에 대한 분배를 요구할 수 있었다. 길먼이 우울증에 걸려 아기를 돌보지 않았던 것은 아기가 자신의 경제적 의존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라는 것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성적 타락으로 여겨졌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신랄하게 지적했듯이 "숙녀"는 하나의 다른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고, 경제적·사회적으로 중요성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했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 p.160~161



▷ 엘리자는 남편이 왜 집에 붙어 있지 않는지 궁금했다. 질투도 느꼈다. 어째서 남편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것인지, 자신의 곁에 앉아, 손을 꼭 잡아주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주지 않는 것일까? 고귀한 독자 여러분, 필자가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그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항상 하나의 개념에 하나의 단어를 붙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쉽게 분석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조금도 없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 <메리, 마리아, 마틸다> p.10



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렇게 적확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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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07 0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좋습니다!

난티나무 2021-05-07 14:56   좋아요 0 | URL
다섯바닥 읽고 으쓱으쓱!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07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세쪽 읽었는데 난티나무님 엄청 앞서가시네요 ㅎㅎㅎ 다섯바닥이나 읽으셨다니요.
<200년 동안의 거짓말> 160쪽 올려주신 문단 저도 밑줄 그었던 문단이에요. (그녀는) 섹스로 특화되었다 ㅠㅠㅠㅠ

난티나무 2021-05-07 14:58   좋아요 0 | URL
다섯바닥 이라고 쓰면서 좀 웃었어요. 옛날 말인가 하고.ㅎㅎㅎ 쪽, 도 있었네요. 아 진짜 한국말도 줄어....ㅠㅠ

밑줄 문단..하아.. 단발머리님 마음 내 마음...ㅠㅠㅠㅠㅠㅠㅠ

공쟝쟝 2021-05-09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으쓱으쓱ㅋㅋ 읽으면 읽을 수록 더 깊어지는 우리들의 읽기 만세😚

난티나무 2021-05-10 03:57   좋아요 1 | URL
만세!!!!!!!!! 🎉🎉🎉
 

전자책 적립금 매일 100원, 한 달 모으면 3천원. 습관처럼 밤마다 클릭클릭. 전자책 이벤트 자주 열림. 클릭클릭. 꼭 사야 할 전자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얼마를 깎아서 살 수 있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끌리는지? 요런 마음이 모두에게 존재하니 이 사회가 모든 걸 팔아먹고 있겠지. 5월 되었다고 5일간 이벤트를 하길래 매일 긁었다. 500원 500원 500원 1000원 1000원. 그날 쓰지 않으면 없어지는 포인트라 매일 없어지도록 두었다. 1000원이면 10일을 클릭해야 모이는 건데 아깝다,라고 생각하다가 화들짝. 어차피 내가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뭐가 아깝다는 거지. 1000원 쿠폰 쓰려고 만원짜리 책을 살 거잖아. 꼭 필요한 거 아니잖아. 전자책 사서 안 읽고 있는 책 무지 많잖아. 안 읽고 묵혀놓은 전자책들이 아까운 거 아님? 그래서 오늘도 쿨하게 1000원 적립금 포기한다. 솔직히 말해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당장 사야만 할 것 같은 전자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뭐 몇백 권 담아놓은 보관함 뒤지다 보면 사고 싶은 책들이야 많겠지만, 전자책을 사는 기준 같은 것도 있는지라 거기 부합하는 책을 찾는 것도 힘든 작업이니까. 아 드디어 벗어나는 건가요, 전자책 적립금의 유혹에서? (아니요, 그럴 리가.) 


어디 보자. 보관함에 전자책으로 담아놓은 것들이... 





























 















 
















































왓. 너무 많다. ㅠㅠ 겨우 5페이지 봤을 뿐인데 이만큼.(종이책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ㅠㅠ) 이 또한 뻘짓이로구나. 고만 해야지. 책 찾으면서 보니 또 막 사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펼친 책이나 잘 읽으라고! 

그런데 전자책에 대한 기준을 좀 다시 세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구난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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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2008년 즈음이었을 것 같다. 일요일이었고 근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구경을 갔다. 언덕 꼭대기 잔디밭에서 열린 벼룩시장에는 그 때문인지 손님이 드물었다. 한가한 가판대들을 천천히 훑으며 지나가는 나에게 한 프랑스 남자가 말을 던졌다. 너 얼마면 되니? 더 정확하게는 너 얼마 주면 팔래? 였던 것 같다. 지금 정도의 의식이 있었다면 어느 나라 말이건 상관없이 톡톡 잘근잘근 그 남자의 말을 되받아 씹어줄 수 있었을 텐데, 매우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어리버리한 애기엄마에 불과했다. 정말 짧은 순간에 인상을 써야 하나 그냥 웃어넘겨야 하나 못 알아듣는 척 할까가 스쳤다. 남자는 혼자 있지 않았다. 옆 가판대의 남자와 함께였다. 나는 웃음을 택했다. 애매모호한 웃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여자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남편이 장난기가 많아서...(혹은 농담을 하는 거라고 했던가.)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당신 파트너가 잘못한 걸 왜 당신이 사과하느냐고 물었어야 했는데 역시나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지면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주 그렇다. 저멀리 앞에서 구경을 하던 옆지기를 따라잡아 말했더니, 욕을 하며 돌아서 가려는 옆지기, 싸울 태세. 그러나 싸움이 나면 손해보는 건 뻔하게 외국인인 우리일 테니, 내가 그냥 넘겨버렸으니, 나는 말렸다. 그들은 같은 동양인인, 덩치도 큰 남자가 나의 남편이라는 걸 짐작했을 테고 동양인 아이들이 두 명 뛰어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며 그 뒤를 따르는 내가 그 아이들의 엄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옆에는 자기 부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던지는 인간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성희롱은 도시의 길거리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작고 작은 시골 마을의 언덕배기 잔디밭에서도 일어난다. 부인이 옆에 있어도 그렇다. 남편이 근처에 있어도 그렇다. 틈만 나면 일어난다. 

그 날 이후로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가 이어지면서 지금이라면 이런 말을 하겠다고 한없이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별것 아닌 일 같아보였는데 생각할 때마다 열불이 치솟는다. 결국 별것이었던 거다. 웃어넘겨서는 안 되었던 거다.


몇년 후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 시골 언덕 잔디밭은 우리집 뒷산이 되었다. 인생 참 아이러니다. 이사오고 나서야 그 언덕이 이 언덕이라는 걸 알았다. 보통 그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이니 그 때의 그 부부도 이 마을에 살 확률이 높았다. 아니다. 다른 마을에서 참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상상의 나래는 때로 사람을 좀먹기 마련이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능력(?)이 이럴 땐 다행스럽다. 
















성희롱 부분을 읽으면서 내 경험이 생각나 적었다. 더 심한 경험이 아님을 감사해야 할런지. (도대체 누구에게?) 책을 보며 솟구치는 화와 눈물은 어쩌고. 하... 






... 뭄바이 전역에는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이 3536개 있지만 여성 전용 화장실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일부 경찰서와 법원에조차도."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뭄바이 빈민가 거주 여성의 12.5%는 밤에 실외에서 대변을 본다. 그쪽을 "58m를 걸어가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선호한다. 58m는 그들의 집과 공용 화장실 간의 평균 거리다." 그러나 실외에서 대변보는 것이 썩 안전하지는 않다. 여자들이 용변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역 근처 또는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숨어 있던 남자들에게 성폭행당할 위험이 있다. 폭력의 정도는 엿보기-엿보면서 자위하기 포함-에서부터 강간,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인에까지 이른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79

여자들은 공공장소를 탐색할 때 대량의 위협적인 성행동도 탐지한다. 성폭행 같은 심각한 행위를 일단 차치하더라도 여자들은 매일같이 여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 대게 불편하게 만들도록 계산된 - 남자들의 행동과 씨름하고 있다. 그것은 캣콜링에서부터 음흉하게 쳐다보기, "성적 욕설과 이름을 가르쳐달라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중 어느 것도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진 못하지만 하나같이 성적 위협감을 가중한다. 감시당한다는 느낌, 위험하다는 느낌.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실제로 쉽게 악화한다. 여자들은 "웃어, 아가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쌍년아,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해?" 또는 ‘집까지 따라와 폭행‘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경험해봤기 때문에 낯선 남자의 "무해한" 발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84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직면하는 위협적 행위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들이 남자 일행이 있는 여자에게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 일행이 있는 여자는 이런 종류의 행위를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브라질 여성의 3분의 2가 교통수단으로 이동 중에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는데 그중 절반이 대중교통에서 일어났다. 남자의 경우는 18%에 불과했다. 따라서 성폭력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남자는 어디선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들의 그런 이야기를, "나는 한 번도 못 봤는데?"라는 무의미한 말로 너무나 쉽게 일축해버린다. 이 또한 젠더 데이터 공백이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85

2016년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의 90%는 대중교통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해 5월 두 남자가 파리 지하철에서 윤간을 시도하다 검거됐다. 2016년 워싱턴 지하철의 조사에 따르면 여자는 대중교통에서 성희롱당할 확률이 남자의 3배였다. 그해 4월 워싱턴 지하철에서 성기를 노출한 용의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는 지하철에서 여자를 칼로 위협하여 강간했다. 2017년 9월 또다른 상습범이 워싱턴 지하철에서 체포됐다. 그는 같은 피해자를 두 번 노렸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87

인도에서는 - 델리는 2014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여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위험한 도시로 뽑혔다 - "델리 윤간"으로 알려진 사건이 일어난 후로 여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한 이 성폭행은 2012년 12월 16일 저녁 9시 직후에 델리 남부에서 시작됐다. 23살의 물리치료학과 여학생 조티 싱과 남사친 아바닌드라 판데이는 영화관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나와 델리에서 흔한 개인 버스에 올라탔다. 그들은 집에 갈 작정이었지만 그 계획은 결국 좌절됐다. 두 친구는 처음에 녹슨 쇠막대로 심하게 구타당했다. 그다음에는 여섯 남자가 싱을 윤간하기 시작했다. (싱의 몸에 금속 막대를 강제로 삽입하는 것이 포함된) 이 폭행은 거의 1시간 동안 계속됐고 너무나 잔인해서 싱의 결장에 구멍이 뚫렸다. 결국 제풀에 지친 강간범 6명은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두 사람을, 그들이 버스에 올라탄 곳으로부터 8km 떨어진 길가에 버렸다. 13일 후 싱은 사망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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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05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ㅠㅇㅠ외국에서는 더 말할수도 싸울수도 없는 것 같아요. 인도는 뉴스를 통해 한번씩 저런 소식을 듣게되니 너무 무섭습니다. 어떤 사건은 다 똑같은데 미국인 부부였어요. 남편앞에서..이 책 고등학교 교과서 함 좋겠어요!

난티나무 2021-05-05 15:12   좋아요 1 | URL
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ㅠㅠ 무섭고 화가 나고 진저리가 쳐집니다.

볼빨간레몬 2021-05-05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의 글을 읽고 이 책 정말 읽고 싶어졌습니다. ‘프랑스 여성의 90%가 대중교통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성들은 알아채든 모르고(?) 지나치든 성희롱의 경험이 있지요. 그 순간 당황스러워 넘겨 버리는 일도 많구요. 성희롱 문제 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여성만이 받고 있는 위협들이 많아 살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타자가 겪는 문제들을 못보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난티나무 2021-05-05 15:17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볼빨간레몬님.^^
책 추천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희롱 문제만이 아닙니다. 여성이 더 아프고 더 힘들게 사는 게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니 @@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반갑습니다.^^
 

책이 왔다!!!

그런데... 요즘 소설 읽는 힘이 딸림... 흐유...
책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꽃인가 했더니 아닌가 보다. 얇은 천? 궁금하네. 색은 왜 빨강일까? 표지는 내용과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실물이 훨씬 좋다. 색감도 그렇고. 그리고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두껍다.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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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0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도착했군요! 저는 하드커버라 놀랬어요 ㅎㅎ

난티나무 2021-05-04 23:26   좋아요 0 | URL
저도요!!! 지금까지는 하드커버 별로라 하는지라... 책이 커서 그렇게 만든 걸까요? 아니면...ㅎㅎㅎ 아무튼 어유 묵지익 ~~~ 합니다!

잠자냥 2021-05-05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커서 아마도 금방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난티나무 2021-05-05 15:26   좋아요 0 | URL
오!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네요!!!!! 🤗

블랙겟타 2021-05-0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 올 것 같아요 😁
그런데..크고 두껍다라..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5-06 00:18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께서 글씨가 크다고 하셔서 펼쳤더니 과연! 글자가 큽니다! ㅎㅎㅎㅎ
쪼큼 안심하여 보지만 방심이 될까 두렵습니다.ㅎㅎㅎ
 

* 소박실재론 : 우리 몸 밖의 세계는 우리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관점.

* 확증편향 : 자신의 선입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읽는 중 나오는 두 개의 단어. 이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글 [편협한 이야기의 위험 The danger of a single story]에도 마찬가지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지리아 사람인 작가가 '아프리카인'이라는 말을 미국에서 들으며 '새로운 정체성'이라 명명한 것처럼 나에게도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 '아시아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빠리나 리옹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대도시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시골에서의 경험. 일단 어 아시아사람이다, 관심을 던진다. 신기하니까. 다르게 생겼어. (웃기게 생겼어,가 더 맞을 지도.) 어디서 왔어요? 그리고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일본?(나 일본 알아.) 중국?(중국도 알지.) 베트남? 태국?(어쩌면 프랑스에 있는 외국식당을 아는 순서대로 대는 것 같기도 하네.) 아무튼 아는 아시아 나라들 대여섯 개를 줄줄이 대보면서 맞추려고 든다. 아는 나라를 다 말해도 끝까지 한국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내가 답을 말해 주면 아아 그런 나라가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얼른, 아 축구!(한참 축구로 한국이 이름을 날렸던 때) 요즘이라면 아 BTS!(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웬만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모르기 일쑤다.) 혹은 기생충!(나 그거 봤어.) 또는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묻는다.(나 좀 알지, 거기. 김정은도 알아.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모름.) 그러니까 그들에게 한국은 둘로 나뉘어진 나라이면서 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작은 나라임에도 축구를 아주 잘하는 나라인 것이다. 영화로 알려진 작은 나라인 것이다.(아마도 영화 속 이야기가 한국의 흔한 이야기라고 착각하겠지.) 면전에 대고 말은 잘 안 하지만 아마 속으로는 너네 개고기 먹는다며?도 추가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아디치에가 말하는 싱글 스토리, 편협한 이야기다. 미국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편견을 갖듯이 말이다. 한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

나는 그렇게 프랑스에 와서 '아시아인'이 되었다. 대체로 외모만으로 중국인이라 짐작 당하면서.(엄마, 중국사람이야. 손가락질을 하며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빤히 쳐다보는 눈빛.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우월감에 차서 상대를 내려다보거나 비난하는 눈빛. 너 되게 싫다를 의미하는 눈빛. 꺼지지 않고 왜 계속 거기 있니 하는 눈빛. 상대가 눈치채고 쳐다볼 때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 너 까고 있어 알리는 눈빛. 무표정을 가장한. 이 눈빛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있었다. (자, 이 눈빛은 인종차별인가 아닌가.)

아디치에의 '아프리카인'은 나의 '아시아인'이다. 아마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시아인'도 만만치 않다. 세계 공통 편견이자 일반적인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인종의) 인식대로, 혹은 현실에서 취급당하는 순서대로 인종을 줄세우면 맨 꼴찌로 바닥에 있는 게 아시아 여성이라고 한다. 여기 사람들의 눈에 내가 그냥 '아시아 여자'로 보인다면, 내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저 똑같은 취급을 당할 밖에.

흔히 사람들은 어느어느 나라에선 인종차별 안 해요, 그런 일 적어요, 당해본 적 없어요, 라고 말한다. 그 나라에선 그래도 인종차별 안 하지 않나? 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 외국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지가 외국에서의 경험을 좌우하고 가치관을 형성한다. 편견도 만든다. 여행 중에 만난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개방적이고 편견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당신은 아주 운이 좋은 것이다. 실제로는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상대의 면전에 대고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슈퍼의 계산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글생글 웃던 직원이 내 차례가 되면 굳은 표정으로 바뀌는 일이,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일이, 내 얼굴만 보고 프랑스말을 하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꺼내 쓰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그것이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인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좀처럼 알 수가 없지만.

'아프리카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진 편견도 생각해 본다. 아프리카에 대해, 거기 있는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대체로 마찬가지일 것이다. 떠오르는 것은 단편적인 단어이거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니 나도 아프리카에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아프리카까지 갈 것도 없다. 일상에서도 수두룩하다. 나의 편견들은 내가 깨닫고 깨어버리려고 노력하면 된다지만(실제로 깨지고 말고는 차치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은 어찌할 것인가. 가서 콕 집어 편견이라고 말해줄 것인가.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힘이 세고 권력도 더 가진 사람이라면, 직장 상사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스스로 깨우칠 일은 없어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해도 소용없음을 아는 것은 득인가 실인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보다 약하다는 것은 누가 판단할 일인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게 맞을까. 내 생각 또한 편견이 아닐까. 여러 가지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질문 또한 계속된다. 답을 찾기가 어렵다면 같은 질문을 계속 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나부터 잘하자에 나만 잘하면 안 되지가 더해진다. 얼마전 읽은 <비건 세상 만들기>에서도 그랬듯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 지난한 길이다. 상대에 따라 묘수를 부려야 하는 일이다. 옳음을 주장한다고 해서 편견이 부서지지는 않는다. 작든 크든 하나의 편견을 깨부수는 일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다. 얽힌 문제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었나 싶다. 그랬던 거다. 몰랐을 뿐이다. 















([The danger of a single story]는 한글책이 없는 듯 보인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프랑스어판에 실린 글이다.

테드 강연이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ted.com/talks/chimamanda_ngozi_adichie_the_danger_of_a_single_story?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social&utm_campaign=ted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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