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읽겠다고 골라둔 책들을 미처 다 끝내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100자평 백일장 대상책을 읽어보겠다고 설친 때문이기도 하다. 짧은 문장으로 책 한 권에 대한 감상과 평을 '알흠답게', 어쩌면 출판사의 의도에 딱딱 맞게, 쓰는 능력이 내게는 없음을 알기에 뻘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을 빌려보려고 노력했다. 최근의 책들이라 도서관 대기줄 느무 길어서 7월 말이 가까워올 때에야 한 권씩 대여가 가능했다. 정말,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펼쳐보지 않았을 책들도 있다.ㅎㅎㅎ 
















에디트 에바 에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어제 대출해서 새벽 2시까지 눈물을 흘려가며 읽은 책. 아직 뒷부분이 남았다. 역시 책은 사전정보 없이 읽어야 더 맛이 나는 법. 뒷부분이 얼마만큼 글의 힘을 잡아줄 지 아직은 모르겠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방금 다 읽었다. 간간이 약간의 메모를 하며. 뭐랄까. 완전 좋은 부분과 그렇게 좋지는 않은 부분들이 적절히 섞여 있는 책? 리뷰를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조금 고민되는. 
















뉴욕주민, <디 앤서> 


정확히 어떤 성격의 책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곳곳에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에 대한 이해는 제쳐두고. 간혹 문법이 안 맞거나 좀 아닌 문장들도 있기는 했다. 조금 더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면 좋았을 듯. (고치거나 아님 빼야 할 것 같은 예시가 있었다.) 

애초에 주식 투자 등에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건가 대세에 궁금증을 가지는 정도인 나여서 애널리스트나 헤지펀드 어쩌구 하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도 낮다. 지식도 없다. 그래도 책은 읽을 수 있다.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대한 책이 아니므로.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글쓴이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것이 설령 자본주의 끝판왕인 월스트리트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쪽 세상도 다를 건 없다. 투자도 결국 사람이라는 글쓴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금융, 헤지펀드 등과 관련된 직업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전혀 문외한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은가 아닌가는 별개의 문제. 


덧) 글쓴이가 남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나 뭐니. 왜 그랬어.ㅠㅠ 더 응원하고 싶게, 글쓴이는 여성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 <죽음의 춤> 


내가 갖고 있는 책이 마침 <아주 편안한 죽음>과 같은 책이었다. 길지 않아 금세 읽는다. 을유문화사의 번역보다 한빛문화사의 번역이 더 좋았다.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전자책 구입해서 읽었다. 종이책 살 거다! 다시 읽을 예정이고 아마도 여러 번 읽게 될 것 같다. 



*** 


아직 끝내지 못한 7월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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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끝내지 못한 책이 40권입니다요;;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7-30 21:21   좋아요 1 | URL
악!!! ㅎㅎㅎ 저도 그간 못 끝낸 책들 다 세면 어마어마할 거예요.ㅋㅋㅋㅋ
 

이야, 7월 할인쿠폰 한 장 남기고 다 썼어! ㅠㅠ 


'중고등록알림 신청'은 매우 유익하지만 매우 무익하기도 하다. 꼭 사고 싶은 책을 알림설정해 두는데 짠 하고 중고가 나타나면 질러야 마땅, 그러나 딱 그것만 사면 책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이카면서 주섬주섬... 하아.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뜨면 무조건 산다 목록에 올라있던 책이라 중고 뜨자 놓칠세라. 
















권정민, <엄마 도감> 

배송비 2천원이 택배기사님께 가지 않는다면 무료배송의 조건을 채우는 것이 더 이득 아니겠나. 중고 못 살까 봐 보관함 한번 휘이 보고는 장바구니행. 앞부분밖에 못 봤지만 조금 새롭기도 하고 두루두루 이이 저이 돌려가며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김승희, 윤석남 <김승희 윤석남의 여성이야기> 

김승희 책 없는데 사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눈에 띈 책. 윤석남 그림, 익숙하다 했더니 얼마 전 구입한 책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그림! (이 책은 선편 소포에 들어있... 하 언제 받아...) 그냥 새책을 살 걸 그랬나 잠시 후회도 했다. 택배 도착한 사진을 받아보니 오래 전 나온 책이라 상태 최상인데도 왠지 너무 낡아 보였... 


















캐럴 길리건, <침묵에서 말하기로> 

함께 살 중고책 검색 중 찾음. 드뎌 구입. 
















샬럿 퍼킨스 길먼, <허랜드> 

일단 궁리의 책을 먼저 구입해 본다. 

















뤼스 이리가레, <하나이지 않은 성> 

11월 여성주의책읽기 선정도서인데 중고등록알림에 떴다. 상태 상이지만 항공으로 받아야 하니 어떻게든 구입비용을 줄여본다. 


















정희진 외, <미투의 정치학> 

교양인의 도란스기획총서를 다 사려고(그래봐야 4권이야) 남은 2권 중 하나를 구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가 중고구입이었는데 상태 별로여서 이건 새 책으로. 괜찮아, 선편으로 받으면 돼.ㅠㅠ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아니 그러니까 전번 구입 때 산 책인데 물량 없다고 부분취소가... 다시 중고로 구입.^^;;;;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전자책 쿠폰 쓰려고 보관함 책들 중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책으로 골랐다. 



*** 

7월 29일이다.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 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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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7-30 0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우아하고 알차고 아름다운 구입목록입니다. 😍

난티나무 2021-07-30 04:33   좋아요 1 | URL
그쵸그쵸? 우헤헤! 단발머리님 말씀에 위안을~~~~^^;;;;

얄라알라 2021-07-30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보고 급 반가워진!^^
그래도 할인쿠폰 쓰신거니 알뜰하게!^^

난티나무 2021-07-30 04:34   좋아요 1 | URL
네 할인쿠폰 알뜰하게 다다 적용해서 샀습니다. ㅎㅎㅎ
기대되어요,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다락방 2021-07-30 0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고등록알림 신청‘은 매우 유익하지만 매우 무익하기도 하다. ← 완전 동의, 적극 동의 입니다. 알람 뜨면 다다닥 부지런히 들어가서 한 권만 살 수 없으니 다시 또 몇 권의 책을 추가해서 사는데.. 과연 저렴하게 사겠다고 중고등록 알림신청해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지를때마다 반성하고 자책하게 돼요. 그렇지만.. 또 해놓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7-30 16: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구하기 힘든 책을 사게 되면 그 뿌듯함이 지름을 정당하게(?) 만들어주잖아요.^^;;;;
파산하는 것만 아니라면 실보다 득이 많은 게 책지름 아니겠습니꽈? ㅋㅋㅋㅋㅋㅋㅋ ㅠㅠ
 

죽음. 존재하던 사람이 사라지는 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일.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어떤 이의 죽음이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일.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처음 친지의 죽음을 접한 건 20대 후반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큰집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살아생전 몇 번 뵙지도 못했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더더욱 없는 할아버지, 나는 죽음이라는 걸 실감하지도 못하고 관이 나갈 때 울며 뒤따르는 고모들을 보며 꿋꿋이 서있었다. 너는 어째 눈물 한 방울 흘리지를 않니. 나오지 않는 눈물을 어떻게 억지로 흘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 후 시집에서 몇 번 장례식을 봤다. 내 할아버지의 죽음에도 울지 않던 내가, 얼굴도 잘 모르는 남의 집 식구의 죽음에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그 눈물은 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날 그 집의 분위기와 말들 때문이었던 듯. 


가끔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나는 엄마가 사라지면 슬플까. 나는 아빠가 사라지면 울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건데 그래도 괜찮냐고 묻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 거지, 하고 돌아서 어쩌면 코가 시큰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방인>의 레몽이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던 것을 이해한다. 각자의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이 더 필요하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껏 죽음이라는 걸 멀리서 바라본 경험밖에 없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 그 사이 누군가들은 점점이 사라졌지만, 나에게까지 연락이 올 일은 드물었고 연락이 오더라도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만약 내가 보부아르처럼, 죽어가는 누군가를,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면, 그때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그래서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누워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이제는 여기저기서 부고가 날아들 나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겁이 나서 부모님과 통화할 때 하나마나 한 말을 내뱉는다. 아프지 말아라. 아픈 사람도 고생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도 고생이다. 씁쓸한 것은 이런 소리를 내 엄마한테는 하는데 아빠나 시집 어른들한테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자식의, 주로 딸의 보살핌과 병간호를 당연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보부아르는 이런 씁쓸함을 초월했다. 어머니와 화해(또는 용서)를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미움과 증오와 상처를 제껴두고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또한 자기와의 타협이 아닌가. 이기적인 나는 이렇게 삐딱하다.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럴 수만 있다면 '편안한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남는 사람들이 덜 힘들게,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덜 힘들게, 그렇게 편안한 죽음을 바라는 것이 잘못일까. 죽음 앞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은, 주고받은 상처들은, 이해되고 용서될 수 있는가. 그러니 결국 죽음이라는 것도 관계의 일부분인 것이다. 보부아르의 자리에 서보고 그의 엄마 자리에 서보고, 수많은 상상을 펼쳐보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건'을 만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까. 울지 않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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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7-3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주전에 아는 분의 부모님 장례식을 다녀왔어요. 난티나무님이 얘기하신 ‘어떤이의 죽음이 희망이 될수 있다‘라는 생각 처음으로 했어요. 그래서 죽음이 만들어낸 상실이 아닌 희망 때문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리고........진짜 세상은 참 단순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난티나무 2021-07-30 04:39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경우를 직접 보셨군요. 방금 문득 소설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하나로 정의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들로 이루어진 게 이 세상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박3일의 여행을 떠나기 전, 책꽂이를 살핀다. 달리는 차 안에서 틈틈이 읽을 만한, 너무 어렵지 않고 또 너무 가볍지는 않은 책. 소설이 별로 끌리지 않아 잠깐 맴돌다 집은 책은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기대했던 내용이 아닌 것 같아 미뤄뒀었다. 어땠기를 바랬을까? '기대'야말로 모든 악감정의 근원이라고 어디선가 봤는데. 아마도 제목과 목차에 끌려서 샀었나 보다. 특히 끝부분의 "싸움을 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소제목. ㅎㅎ 

공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학을 다녔음에도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 하긴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는데, 후회는 하지 말자. 다만 지금도 나는 '공부'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많이 알고 싶으면서도 어려운 말에 몸서리치고, 머리 아픈 이론은 멀리하고 싶고, 규칙적으로 강의를 들으며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서. 

이런 생각은 '나는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 닿는다. 한마디로 나는 싸우고 싶다. 원대한 목표, 커다란 희망, 인류애, 다 좋지만 나는 우선 내 삶이 먼저고 우선 내가 살아야 겠기에. 나만 빼고 모두 남성인 이 4인의 사회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솔직히 싸우기 싫다. 겁나 피곤하다. 그런데 책에서 이런 구절들을 만난다. 


"기술 없는 이론이 무력하다면 왜 이론이 필요할까? 실생활에서는 넘쳐 나는 이론보다 거친 기술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에노 지즈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관이란 분절되기 전 논리의 다른 이름이다. 직관에서 논리까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직관만 존재하는 차원에서는 자신 외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기억의 정치학」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91)


그렇다. 거친 기술을 갖기 위해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지. 옳습니다. 옳아요. 하지만. 




"여성학 강의를 듣고 변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남성이 교육으로 변하지 않는 현실은, 젠더가 적대를 전제로 하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계급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가를 교육하고 각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없다. 자본가는 촛불 시위나 특별 검사 같은 제도나 물리력을 통해 '젼화'하고, 동시에 언제나 역전을 노린다. 그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p.29 정희진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ㅠㅠ. 교육도 설득도 안 된다면, 그렇다면 싸움밖에 길이 없다는 말인가. 정녕 그러합니까, 선생님. 싸우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틈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왜 어려운가. 내 지식이 얕은 탓도 있고 자꾸만 말에 휘둘리고 마는 그동안의 습성 탓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계속, 너는 잘 몰라, 니 생각은 틀렸어, 그거 아니야,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같은 말들을 들으며 확신을 잃어가는 경우.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 초기까지도 옆지기가 하는 말이 대체로 다 옳다고 믿었다. 그거 아니잖아, 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어느 순간 결국엔 내가 한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오간 대화가 항상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가 나의 말을 자르고 부정해서 더이상 진전이 없었던 것임을. 최근 상황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날은 무척 더웠고 낡은 차는 에어컨 기능이 부실해 창문을 열고 달리는 중이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집까지 뻗은 4킬로미터 정도의 도로 양쪽으로는 모두 포도밭이다. 나갈 때 이미 농약을 치고 있는 기계들을 보았다. 나의 도그코는 사방에 흘뿌려진 농약 냄새를 마스크를 쓰고서도 감지해낼 수 있다. 

- 사방에 농약차 천지네. 창문 닫아야 겠다. (창문 닫으라는 소린데 더 강하게 하지 못하는 나.ㅠㅠ) 

- 모든 도멘이 다 농약 치는 건 아니야. (응 나 그거 안 물었거든. '사방 천지'라는 발언에 반발하는 말. 어김없는 예외의 법칙 등장) 

- 농약이, 치는 포도밭에만 딱 흡수되는 거 아니잖아. 공기 중에 다 날리는데 창문 닫아야지. (역시 안 강한 나.ㅠㅠ) 

- 요즘은 비오디나미(친환경농법) 하는 데도 많아. (아니 그거 물은 거 아니라고. 딴소리 시전하기.) 

- 지금 농약 뿌리고 있고 냄새도 나는데 적어도 여기 달리는 동안에는 창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버럭!) 

- 아니, 그러니까 내가 농약 칠 때 창문 닫아야 하는 건 맞다고 그랬잖아? (얼씨구. 안 한 얘기 했다고 우기기.) 

-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처음 말했을 때 다 농약 치는 거 아니라 했고, 두번째엔 비오디나미 얘기했잖아? 그런 적 없거든?! (버럭버럭!)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옆지기는 끝내 창문을 닫지 않았다. 설왕설래 하는 동안 길을 거의 다 지나왔기 때문이다.ㅠㅠ) 며칠 전 식탁에서 나와 옆지기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큰아이가 말했다. 아빠는 맨날 엄마한테 아니라고 하더라. 흑흑 너라도 알아주어 고맙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살았다.ㅠ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불끈. 오늘은 또 무슨 말 때문에 싸우게 될까. ㅎㅎ





"싸움 뒤에는 권력투쟁이 있고, 포기 뒤에는 지배가 있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124)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5) 


"세계가 말로 표현된다기보다는 말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 노구치 유지, <내러티브테라피의 세계>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확인하고 변경한다. - 앞의 책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3~276)


"모든 걸 다 페미니즘에 기댈 게 아니라 자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기는 각자 자기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말로 표현해서 이해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건가? 


자기는 자기에 대한 언설을 통해 구성되어 간다. - 앞의 책


자기를 가시화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없다. 사람은 말하기를 포기해도 말로 사고한다. 감정도 말로 지각한다. 사람이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구축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6) 





여행길에서 제법 읽고(탁월한 선택) 집에 와서 마저 읽고. 어쩌면 휘리릭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지만, 한번씩 발을 걸고 넘어뜨리는 구절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책을 들고 파는 것만으로도 잘 싸울 수 있을까. 가끔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글로 내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말을 잘 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대도시로 이사를 가고 싶다.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말과 글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열망. 그러나 빠리로 간다고 한들, 그런들 달라지는 거 있으려나. 그동안 겪어보지 않았나. 그리고 줌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너잖아. 

사람들은 항상 환상을 꿈꾼다.ㅎ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한 권도 못 읽었다. 궁금함이 물결처럼 일어나는 와중에 페미니즘 책읽기를 전투적으로 하는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우에노 지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본다. 마리아 미즈의 책과 제목이 같아 자주 혼동한다. 마리아 미즈의 책은 살 수 있지만 우에노 지즈코의 것은 품절이다. 중고도 없다. 하고 많은 지즈코의 구입 가능 책들 다 놔두고 낙심한 와중 한 줄기 빛과 같은 **님의 구원이 내려왔다. 그렇다. 나는 중고도 없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구했다! 거기에 더해 역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까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루카 요코가 책 말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열심히 말하고 있는 거다. 학자는 어려운 말로, 누군가는 좀더 쉬운 말로. 그러니 이제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도, 푸코도 크리스테바도, 어렵다고 투덜대지 말자.ㅠㅠ 


그리 길지도 않은 말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지나려 한다. 바람이 불고 해도 나고 구름도 있는 좋은 날이다. 더위가 가고 시원함이 왔다. 이 또한 이상기후지만 어쨌든 시원하니 좋다. 이미 늦어버렸으니 점심은 라면이다. 내가 이럴라고 라면 사다 놨지. 각자 자기 거 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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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9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9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버틀러의 책은 안 읽고 다른 책 구절 가져오기. 




"앞서 서술한 "생물학적 여성이란 논쟁적인 용어"라는 언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논쟁은 제3물결 페미니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기존 페미니즘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섹스(생물학적 성)와 젠더(사회적 성)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섹스는 언제나 이미 젠더였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등장하면서 여성학계에는 커다란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젠더 트러블』에서 섹스 역시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이고 정치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버틀러의 주장은 섹스를 해체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곧 생물학적 자연에 대한 소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순수한 생물학적 실체가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보자. 보부아르가 위와 같은 주장을 했던 1949년 당시, 지배적인 성 담론은 사회생물학이었다. 사회생물학은 남성의 성은 충동적이고 능동적인 반면, 여성의 성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라고 여기며,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기초를 생물학적 근거에서 찾으려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보부아르는 역으로 사회규범이 여성성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자연적인 실체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버틀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겉보기에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성적 사실들이 정치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면서 과학 담론인 양 이해되고 있었다면, 섹스가 불변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 역시 의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몸의 경험을 인식하는 것마저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섹스가 아닌 젠더가 아닌가. 자궁을 적출하거나, 완경한 여성을 훼손된 여성이라 간주하던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와 "자궁이 없는 자, 말하지 말라"라는 넷 페미니스트들의 언설은 얼마나 상통하는가. 버틀러는 "생물학은 운명"이라는 공식을 논박할 의도로 제시된 섹스와 젠더의 구분이 오히려 그 주장에 공헌하게 되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버틀러는 2세대 페미니즘이 그동안 다뤄오지 않았던 가부장적 이성애주의를 퀴어의 정치학으로 비판하면서 역대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도발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버틀러는 운동 주체로서 보편 여성이라는 일관되고 매끄러운 재현주체가 필요하다는 기존 페미니즘의 정체성 논의에도 반기를 든다. 버틀러에 의하면 주체가 정치학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정치적인 지점이다. 왜냐하면 정치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주체가 있다는 생각은, 배타적인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주체가 구성되고 생산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떄문이다. "여성"이라는 용어는 늘 가변적이고 모순적으로 성립되며, 누군가를 규정하는 완전한 의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대상을 재현하고자 할 때, "어떤 여성을 재현할 것인가?"라는 불안한 경합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배타적인 실천은 결국 '동일성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폭력에 가담하면서 더 심한 파편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아름 「모두의 페미니즘을 위한 정치윤리학 : 당사자주의를 넘어서 우리'에 대하여」,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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