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서우> 


순전히 호기심에서 산 책이었다. 그러니까 소설의 내용보다는, 한글과 영어가 함께 씌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영어로 된 부분은 안(못) 읽었... 허허. 

책을 받자마자 얇아서 술러덩 읽어버린 기억은 있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아 그렇지, 새벽 귀갓길 택시... 그런데 제목이 왜 서우,더라. 끝에 어떻게 되더라. 

짧은 소설을 다 읽은 후, 좀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잠긴다. 그러니까 그게... 그래서 그러니까... 아마도, 그렇지? <나를 찾아줘>를 읽었을 때와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분이랄까. 그동안 남성이 주인공인 스릴러물을 어떻게 읽어왔을까 싶은 생각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를 찾아줘>도 정리 안 되고 <서우>도 정리 안 됨. 차차 생각해보기로 한다. 


책 이미지를 넣으려고 강화길,을 쳤더니 집에 있는 책들이 주루룩 나온다. 































몽땅 가져와서 「음복」(2020 젊은작가상..)부터 시작해 다른 단편들을 슬쩍슬쩍 다시 읽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서우>에 비하면 「음복」은 이해하기는 쉽다. 훨씬 공감이 간다. 그렇지만 뭔가가 다르긴 하다. 그 뭔가를 잘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 「선베드」(<나의 할머니에게>), 「호수 - 다른 사람」(<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산책」(<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역시 모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기묘한 분위기다. 일관성도 있네. 문장들 뒤에 숨은 의미를 추측/짐작하기가 아직 좀 어렵다. 잘 모르겠다.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 다가올까. 강화길은 천천히 조금 더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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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8-06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호스에 다 묶여 있는 걸 여기저기 분책으로 소장 중이시군요 ㅋㅋㅋ강화길 읽을 땐 섬뜩한데 다 읽고 갸웃하게 되요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8-07 00:15   좋아요 1 | URL
그래서 화이트 호스는 안 사야 겠습니다.ㅋㅋㅋ
섬뜩, 맞아요. 서우,도 한참 생각했어요.^^;;;;
 

밑줄 -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오히려 많은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페미니스트여야 하는가 아닌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되는가 아닌가, 이것은 페미니즘을 개인이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는 문제처럼 다룬다. 이건 가짜 논의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에, 성별·피부색·성적 지향 등 생득적인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여성이라 돈을 덜 받고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포기해야 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에 반대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확장된 규칙이 아니라, 인간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엄하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한 줌의 도덕이다. 페미니즘마다의 각론과 실천의 방식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는 것은 문명인으로서의 전제 조건이다. 민주주의자라면, 진보주의자라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란다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바란다면,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페미니즘 없는 민주주의는 말하자면 동그란 세모 같은 것이다.

의외로 여성들도 오해하는데, 한국 남성들이 가부장제 안에 여성들을 갈아넣는 건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 이기적이어서다. 차례와 벌초와 시가방문에 집착하는 남성들이 조상의 은덕을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아내와 며느리의 노동력을 착취해 누리는 푸짐한 명절 풍경을 포기할 수 없는 것뿐이다. 적어도 한국의 명절 문화에서 전통적 가치란 허구일 뿐이다. 현대에도 이어갈 전통적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단, 한국남성들의 이기적인 태도를 근대 시민의 기준에서 고발하는 것이 명절 문화와 그 기저에 놓인 가부장제의 실체를 훨씬 잘 드러내줄 것이다.

사실 나는 남성들이 젠더 이슈에 둔감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로 둔하다면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을 보면서도 콧방귀를 뀌며 자신들의 천년 왕국을 그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젠더 이슈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체화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권력에 대한 도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유희로 즐길 자유, 불법 촬영물을 즐길 자유, 일상적 성희롱을 할자유를 지키기 위해 백래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도덕적 당위가 아닌 젠더 권력 때문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 남성들에 대한 도덕적 설득 혹은 설복도 중요하지만, 우선 본인에게만 좋던 과거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체념시키는 것이 먼저다. 그들이 버티는 건, 단순히 본인들의 주장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주장하는 게 옳은 것이 될 수 있던 시대를 살아와서다.

창작에 있어 동시대에 대한 민감성이란, 단순히 지금 이곳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여러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까지 인식하는 능력이다. 즉 현실을 더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현실의 이면에 작동하는 구조와 권력의 메커니즘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리얼리티란 결국 세상을 읽는 성실성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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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8-03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근우 글 잘쓰죠. 진짜 시원함.

난티나무 2021-08-05 03:52   좋아요 1 | URL
저는 왜 위근우를 안 사고 박정훈을 샀을까요?^^;;;;;

라로 2021-08-0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성의 인류학자> 다 읽었습니다요. 역시 탬플 그랜딘의 스토리가 젤 좋았어요. 그전엔 버질의 이야기가 좋았지만,,결국엔 탬플 그랜딘의 이야기를 끝내며 눈물이 뚝..ㅎㅎㅎㅎㅎㅎㅎ
난티님 읽으실 책이 줄을 이은 것 같으니 서두르지 마십시요. 저는 덕분에 읽게 되어 감사해요.^^

난티나무 2021-08-06 01:27   좋아요 0 | URL
와! 시험도 치셨다는 글 좀전에 봤는데 벌써 다 읽으셨군요! 짝짝짝!! 저는 시작도 안(못)...ㅎㅎㅎㅎㅎ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요. ^^;;;;;
 

사야 할 것 같은 책,이라고 썼다가 결국 사고 싶다는 거잖아 싶어 위시 리스트라고 쓴다. 7월 내내 책을 샀는데 또 사고 싶은 책이라고 쓰는 게 민망해서. 웃프다. 그러니까 이 위시 리스트는 책을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담고 있을 잠시 후의 내 모습을 위한, 일종의 변명일까. 봐봐요, 여러분. 이거 완전 괜찮지 않아요? 완전 재밌고 좋을 것 같죠? 소장각이죠? 사야 하겠죠? 물론 그러라고 하실 거죠? 

끙. 


















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창비에서 보내주는 "언니단 메일" 이 있다. 신청만 하면 메일로 글을 보내준다. 처음 듣는 이름 이반지하라는 사람의 글이, 좋았다. 말 한 마디 잘못 하면 '걔 페미'로 찍혀 신상 탈탈 털리고 매장당할 수도 있는 험악한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자기 식으로 내는 사람, 멋있다. 심지어 웃기고 재밌어.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가라고 소개되는데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무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고 마침 책이 나왔다고 한다. 사고 싶다. 통쾌해지고 싶다. 창비의 메일링이 아니었으면 제목만 보고 스쳐지나갔을 수도 있겠다. 
















최혜진 / 신창용 사진,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한때 그림책에 심취(?)했었다. 진정 심취했었다면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있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함에 의기소침. 아무튼. 그림책에 대한 갈망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책이다. 책에 대한 갈망인지 그림에 대한 갈망인지 삶에 대한 갈망인지 조금 헷갈리는데 이 나이 먹도록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망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없다는 사실에 또 내가 좀 밉다. 작년부터 중고로 사려고 기다리고 놓치고 기다리고 하는 사이 어나더커버로 새 책이 나왔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 MIDNIGHT 세트 

하아. 책이 이렇게 이쁘고 난리야. 이거 사신 분들 어떤가요? 대답 안 들어도 사고 말 것 같은 내 마음.ㅠㅠ 
































최은미 소설책들. <목련정전> <어제는 봄> <너무 아름다운 꿈> <정선> <눈으로 만든 사람> 

단편이 실린 수상작품집이나 소설모음집을 제외하고 최은미의 소설책을 담아둔다. 

















우에노 지즈코, <불혹의 페미니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뭐라도 한 권 읽어보고 싶어서 우에노 지즈코의 책들을 골라본다. 혹시나 하고 전자도서관에 쳤더니 <불혹의 페미니즘>이 있다! 일단 빌려서 읽어보기로 한다. 




여기까지 하고 그만두어야 겠다. 급 현타. 그동안 너무 많이 샀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와 나의 욕구는 정당하다를 매일 왔다리갔다리. 보관함은 차고 넘치는데 그 와중에 노트 욕심. ㅠㅠ 와 진짜 어쩔 것임? 그나저나 열린책들... 사? 말아? 흐융.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나의 욕구는 정당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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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01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오늘 주문에 열린책들 미니 깜빡했는데요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8-01 21:51   좋아요 1 | URL
저 아직 버티고 있어요.ㅋㅋㅋ 열린책들 사실 거예요?

미미 2021-08-01 21:55   좋아요 1 | URL
너무 귀엽잖아요ㅋㅋ한 손에 쏙 사이즈라 외출때 가지고 다니기도 좋고 읽고 막 선물하기도 좋고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8-01 22:23   좋아요 1 | URL
아 진짜 막 뿌리고 싶은 비주얼이긴 해요, 그쵸? ^^

미미 2021-08-01 22:25   좋아요 1 | URL
얼른 구매해서 난티나무님도 구매하시게끔 유혹적으루 올려볼께요 흐흐✌

유수 2021-08-01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번은 사두었고 2번 좋아요. 그림책에 대해서도 그렇고 인터뷰집으로 봐도 참 좋습니다❣️리커버가 나왔군요! 그 전 책디자인도 들고 다니면 이 책 뭐예요? 여러 번 물어보시더라고요

난티나무 2021-08-01 23:47   좋아요 2 | URL
1번 진짜 기대됩니다.ㅋㅋ
2번은 기필코 사야 겠어요.ㅠㅠ 전 안 에르보 만나봤지요!!!! 히히

유수 2021-08-01 23:51   좋아요 1 | URL
와!!!안 에르보 만난 후기 언제 들려주세요오 흑흑

난티나무 2021-08-02 01:03   좋아요 1 | URL
그거시 그러니까… 무려 2005년의 일이군요.^^;;;;;;

바람돌이 2021-08-02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의 저 세트는 아 진짜 뽐뿌 장난 아니게 옵니다. 무슨 책을 저렇게 예쁘게 만드냐구요. 심지어 가격도 착해. 엽서세트도 너무 탐나.... 문제는 대부분이 읽은 책이라는건데 에고 고민 고민..
난티나무님이 대신 사시면 대리만족이라도 할게요. ㅎㅎ

난티나무 2021-08-02 21:40   좋아요 0 | URL
대부분이 읽은 책!
저는 안 읽은 책 많은데 살까요.^^;;;;;
우잉 미미님 안 사셨을려나....ㅎㅎㅎㅎㅎ
 














에디트 에바 에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프롤로그를 읽는데 눈이 번쩍. 



"나는 고통에는 높낮이가 없다는 사실 또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떠한 것도 내 고통을 상대의 고통보다 더 나쁘거나 더 좋게 만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슬픔을 다른 사람의 슬픔과 비교하여 상대적 중요도를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제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이 지금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제겐 불평할 권리가 없어요. '아우슈비츠'가 아니니까요." 이러한 종류의 비교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깎아내리게 만들 수 있다. (중략) 

어느 날 아침 나는 두 명의 내담자를 연이어서 상담했다. 두 사람 모두 40대의 엄마였다. 첫 번째 여성은 혈우병으로 죽어가는 딸을 두었다. 그녀는 상담 시간 내내 울면서 어떻게 신이 자기 아이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여성의 이야기에 매우 가슴이 아팠다. (중략) 

그 다음 내담자는 병원이 아니라 컨트리클럽에서 막 도착한 참이었다. 그녀 역시 상담 시간 내내 울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 캐딜락이 조금 전에 배달되었는데 자신이 원한 색이 아니어서 화가 나 있었다. 밖에서 보면 그녀의 문제는 사소해 보였다. 특히 죽어가는 아이에 대해 비통함을 토로한 이전 내담자와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관해 충분히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 색깔에 대한 실망의 눈물이 사실은 그녀 삶의 더 커다란 문제들이 그녀가 바라는 대로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외로운 결혼 생활, 또다시 학교에서 쫓겨난 아들, 남편과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기 위해 포기했던 커리어에 대한 열망 등의 문제들이었다. 우리 삶의 작은 속상함은 더 커다란 상실의 상징일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걱정거리들이 더 커다란 고통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날, 매우 달라 보이는 두 내담자가 공통점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서로와도 그렇고, 여느 곳의 여느 사람들과도 그랬다. 두 여성은 자신의 기대가 무너진 상황, 하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고 있었다. (하략) " 


보통은 캐딜락 색 때문에 우는 여성을 비난한다. 나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일차원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이다.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이런 경우를 봐왔나. 나 또한 얼마나 많이 엉뚱하게 눈물을 흘렸던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아이가 이유도 없이 짜증을 내거나 사소한 일에 화를 낸다고 덩달아 화냈던 수많은 경우들을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그 감정들 뒤에 숨어있는 고통의 원인을 짐작하고 그 사람을 껴안는 포용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숨겨진 고통을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통에는 높낮이도 없고 크기의 차이도 없다. 내가 겪는 고통이 가장 힘들 뿐이다. 섣불리 다른 사람의 고통에 판단질을 하지 말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별것 아닌 거라고 말하지 말자. 나의 고통은 '표현'하자. 다른 사람이 '표현'하는 고통을 주시하자. 물론 지금까지 그랬듯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자잘한 속상함이 어떤 상실의 상징인지 이제는 좀 알아차릴 때도 되었다. 방어 기제를 벗어던지면 그 안에 내가 있을까? 





"나는 분노의 힘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전혀 죽이지 못한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살아 있다.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다. 과거에 관해 기억하거나 이야기할 때마다 두려움과 상실감에 다시 정면으로 부딪치는 일이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 순간 이후로 나는 감정들은, 얼마나 강력할지는 몰라도 결코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감정들은 일시적이다.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감정을 떠나보내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표현Expression은 우울Depression의 반대말이다." (67%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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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나는 정말 삐딱하다.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 게 아니고 읭? 싶은 곳에 밑줄을 긋는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글로 만난 심채경이라는 천문학자의 글이 아마도 더 좋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으로 쓸 때 한번 더 고심해 보았으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힘들었을 이소연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몰랐던 것들이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14% 지점) 


응응, 그렇지, 좋은 말이다. 하고는 삐딱선을 탄다. 그저 묵묵히 내가 선택한 길을 걸으면, 그러면 되는 건가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요? 파도에 이기고 지다가 그만 휩쓸려 죽는 뱃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뭐 이런 식...ㅠㅠ 




"남편의 배려를 얻어 한동안 연달아 야근을 했다. " (31% 지점)


이런 구절이 걸리적거린다고 끌어오다가, 내 아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쫌! ㅠㅠ 




"그러나 그 숭고한 '연쇄 선물마'를 따라 하기에는 나의 인간관계가 턱없이 빈약했다." 57% 


보자마자 거부감이 생기는 저 단어,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지 모르곘다.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다. 오해는 마시길. 좋은 구절 많으니까. 



외계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우주에 지구에만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사는 것은 아닐 거라는 궁금함과 호기심이 과학자들에게 우주로 신호를 쏘아보내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면,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그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아 연락을 하거나 방문(?)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구 인간들에게 좋은 일일까. SF 영화를 보면서 식구들과 가끔 하는 이야기다. 외계인은 정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을까? 왜 영화 속에서 지구는 항상 외계인의 침략을 받고 파괴당할까? 반대일 수도 있지 않나? 아, 반대의 경우라면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이 외계인을 찾아내고 침략하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건가. 아아, 그래서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로군. 쩝. 외계인은 있을까? 부터 다시 시작해야 겠는데. 



책을 읽다가 <어린 왕자>를 꺼내러 갔다. 'tirer ta chaise de quelques pas' 표현에 대해 작은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천문학자의 눈으로 읽는 어린왕자.ㅋㅋㅋ 나도 노을을 좋아한다. 그런데 수성에서는 해 지는 광경을 엄청나게 오래 볼 수 있다고 한다. 오! 했다가, 해가 지는 데 88일이 걸리고 다시 뜨는 데 또 88일이 걸린다는 말에 윽! 했다.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는 말은 틀렸다. 일몰을 사랑하지만 88일 동안 볼 수 없다면 그게 뭐야. 짧아도 매일 보는 게 훨씬 좋아. 그리고 왜때문에 게으름뱅이?????? 



우주선을 쏘아올리겠다는 생각은 진취적인 것일까 허황된 것일까. 달에 우주선이 착륙한 사건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여러 나라가 달에 가려고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운다. 우주선 한 대를 쏘아올리는 데 필요한 인력과 기술과 장비와 시간과 물리적/정신적 뒷받침들, 세세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이런 내용을 읽다 보니 도대체 우리는 왜 우주 탐사를 열망하는 것인가 싶다. 



우주에 조그마한 미생물도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은 인간의 행동이 우주에 해를 끼치면 안된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관찰자일 뿐, 바깥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다. 생태계를 위해 어떤 잔인한 포식자 종을 절멸시키거나 가여운 피식자를 집중적으로 키워낼 권리가 우리 인류에게는 없는 것처럼." 그러나 지구가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어가고 있는 건 사실 아닌가? 우주에 인간의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과 자세를 지구에도 적용시키면 좋을 텐데 하는 씁쓸함. 



달에 집을 짓는다면 어디가 좋을까 부분에 이르자 달의 땅을 분할해서 파는 사람, 그것을 사들여 매매계약서를 가지고 있다는 돈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을 번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관련 법이 없어서 처벌도 못 한다는데.



중간중간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본의 아니게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에세이는 응원해야 한다. 더 깊고 더 날카로운 이야기가 쏟아져야 한다. 말하다 보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불안한 직장, 구조의 모순, 출산과 육아의 함정 들이 뒤집어지는 세상이 되기 위해, 더 많이 써주시길! 무언가를 끝없이 공부하고 탐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왤케 다들 아름다운지! 게다가 천문학이야!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36% 지점) (- 이런 좋은 구절들도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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