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에 읽고 페이퍼나 리뷰를 쓰지 않은, 몇 권의 책을 여기 모아본다. 


















박혜윤 <숲 속의 자본주의자> 

김선우 <40세에 은퇴하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40세에 은퇴하다>는 옆지기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 몇 개월 전에 사서 갖고 있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빌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책의 저자가 부부다. 책을 읽는데 크게 상관은 없다. 비슷한 이야기가 간혹 나오기는 한다. 

솔직함이 독자의 눈으로 찾아지는 것이라면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야 솔직하게 보여지는 걸까. 사전정보 거의 없이 읽었으나 왠지 착 달라붙는 맛이 없다. 매우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인데 나는 왜 자꾸 색안경을 장착하게 되는 건지, 그게 내 선입견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기 같은 페이퍼를 쓸 때에도 자기검열 모드가 발동하는데 책을 쓸 때는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고. 두 권을 굳이 비교하자면 <숲 속의 자본주의자>가 좀더 좋았다고 말하겠다. 삶을 대하고 생각하는 태도 같은 것.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의미있고 좋아보인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때로 부러움을 느낀다. 비슷한 삶을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에 대한 감탄이라고 해 두자. (예를 들면 집에서 인터넷 사용하지 않기.)  

에피소드를 좀더 적절히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뭔가 구체적 연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까. 하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른 글쓰기 스타일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평점을 매기지는 못할 듯하다. 아리송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읽을 만하다.



















오한기 <인간만세> 

첫 부분 읽는데 어, 낯이 익다. 좀더 읽는데 어, 이거 읽었잖아. 단편집인가 했다. <멜랑꼴리 해피엔딩>에서 읽은 단편 「상담」이 실려 있다. 슬슬 읽고 다음 편을 읽으려는데 어라? 이야기가 이어진다? 좀은 황당무계하고 가끔 웃기고 때로는 진지한, 아니 어쩌면 내내 진지함을 장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이야기. 신선했다. 소설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뒤에 실린 해설보다는 나았다. 차라리 소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겠다.ㅠ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조각조각 분석되어서 해설이 붙는 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재미있어할까, 슬퍼할까, 아무렇지도 않을까. 비꼬다. 이 단어가 떠오른다. 
















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빗소리가 들리는 일요일 오전, 결국 빗소리 따라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노래도 그림도 얼굴도, 무엇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북토크 영상으로 처음 만난 이반지하에게서 뿜어져나오던 불안과 자기방어기제 같은 뉘앙스들이 나의 편견이라 생각했었다. 절반을 읽으니 다른 사람 즉 '남'의 입장에서의 내 시각이 편견만은 아니었구나 싶다. 이거 좀 오만방자한가. 무엇으로도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존나 다양하다'.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밑줄만 올리고 글을 안 썼더니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내 뇌는 정상이다. 그래도 읽었고 좋았고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으니 이렇게 흐릿하게라도 기록을 남겨야지. 다시 읽을 때 옆지기와 함께 하면 더 좋을 듯하다. 인터넷 강연에서 만난 김현미 선생님 짱! 
















캐럴라인 냅 <욕구들> 

사야 하는 책이라고 ****님이 강추하셨는데 종이책 사서 받기 너무 오래 걸리므로 전자도서관 줄 서서 대출. 뭐라고 페이퍼도 리뷰도 적을 수 없다. 밑줄이라도 올리려고 엄청 체크해두기만 했다. 그것도 못 했네. 옆지기와 함께 읽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진짜 별것 없기는 하지만 아무튼 페이퍼 커밍 순. 아, 이 책은 꼭 종이책으로 살 겁니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하. 한숨부터 나온다. 뭐랄까. 이거 페이퍼나 쓸 수 있겠어? 싶은 마음. 위에 <욕구들>이 마침 있으니 비교하기 딱 좋지 아니한가. 두 권 다 읽으신 분들은 짐작하실 듯. 이 책을 향한 찬사의 말들은 핵심을 좀 비껴나는 것 아닌가. 뭣이 중한디. 한글 제목 <배움의 발견>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읽다가 열받아서 이렇게 썼다. '여자는 인질이다'(책 제목). 딸도 인질이다. 
















윤지선, 윤김지영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읽었다. 읽었는데... 또르르... 아마도 다음달에 페이퍼 커밍 순. 그 때 쓸 거니까 지금은 이하 생략. 
















케이트 쇼팽 <이브가 깨어날 때> 

(제목 진짜 구리다.) 용기내어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 이거 진짜 원제목 안 봤고요(전자책 표지에 영어 잘 안 보여요, 아마도 안 봤을 거예요), 제목이 <이브가 깨어날 때>이고요, 내용 궁금했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뭐가?)인지 아닌지가 알고 싶었고요, 케이트 쇼팽인 거는 알고 있었고요. 지금은 이것만 쓸게요. 아마도 페이퍼 하나 정도는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요. 이 소설은 케이트 쇼팽의 그 유명한 <각성>이었던 겁니다.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소설 다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거지요. 만쉐! 




아래는 이번달에 읽고 뭐라도 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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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30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쇼팽 어웨이크닝을 지금 이브가 깨어날 때 라고 내놓은 건가요? 세상에.. 이브가 깨어날 때라니… 🥲

난티나무 2021-09-30 13:49   좋아요 0 | URL
오래전 나온 책인데 제목을 아주 자극적으로 뽑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많이 읽게 하려고? ㅎㅎㅎ 제목 딱 보고 그래 무슨 이야기 하나 봐주겠어! 이랬다는 거죠 제가. ^^;;

다락방 2021-09-30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배움의 발견은 저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라 깜짝 놀랐어요. 제가 기대한 내용이 나오는 대신 알고 싶지 않은 내용(아동 학대)이 이어져서 아오 읽는 내내 힘들었네요 ㅜㅜ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읽고 싶어 찜해두고 있어요. 페투 읽고나니 더 그래요. 훗.

난티나무 2021-09-30 13:54   좋아요 0 | URL
한글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원제목도 다르게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글에 없기는 하지만 성적 학대는 없었을까도…ㅠㅠ 그 나쁜 오빠 셰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 같…. 아무튼…. 음 생각과 다른 책이었어요 저도.

숲 속의 자본주의자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벌써 궁금한데요?^^

단발머리 2021-09-3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많이 읽으셨네요! 책 구하기 어려우신데도 이렇게 부지런히 읽으시는 모습 너무 멋집니다!! <배움의 발견>의 한숨 이해합니다. 다른 책들 이어지는 페이퍼도 기다릴께요^^

난티나무 2021-09-30 13:56   좋아요 0 | URL
이번달 좀 달렸어요.^^ 전자도서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ㅎㅎㅎ
배움의 발견…ㅠㅠ 종이책 안 산 거 다행이라 생각 드네요.^^;;;
아이구 페이퍼 올리러 일어나야겠어요.ㅋㅋㅋㅋ 🥰
 















제2부 제1편 형성 제1장 유년기 & 제2장 젊은 처녀 


(매번 쓸 때마다 헷갈리는 내용 구분 용어들. 그리고 쓰면서 보니 '처녀'라는 단어가 거슬리는구나. 을유에서 나온 개정판은 어떤가 미리보기 하고 왔는데 똑같네.) 


여자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읽었다. 요약하는 재주가 없어서 긴긴 내용을 정리하긴 어렵고 두루뭉술하게 느낌만 말한다면, 모조리 다 맞는 말은 아닌 듯하지만 생각의 깊이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정도가 되겠다. 어째서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지 나의 상태가 매우 의심스럽다. 정리도 안 돼, 비판도 안 돼, 열렬한 찬사도 안 돼,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슬프다. 다른 분이 올리신 지난 번 분량의 정리글을 보니 아 내가 책을 읽기는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인용구가 새로웠다. 이 무슨. 그러므로 이 책은 대충 한 번 읽어서는 안 된다? 을유 개정판 사야 한다? 나에게는 프랑스어판도 있다? 




** "어머니와 딸의 복잡한 관계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딸은 어머니의 분신인 동시에 타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딸을 가슴깊이 사랑하는 동시에 딸에게 적대감을 품기도 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강요한다. 이는 어머니 자신의 여자다움을 자랑스럽게 요구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고, 또 그 억울함에 복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356) 


플래그 붙여둔 이 부분을 다시 보니 최근 읽은 소설 두 편이 저절로 떠오른다. 엄마와 딸의 관계. 뜬금없이 여기서 추천함. <엄마에 대하여> <밝은 밤> 

보부아르가 나중에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뒷부분 궁금해짐. 엄청 알고 싶다. 엄마와 딸, 엄마와 나. 애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관계. 모두 엇비슷해 보이지만 비슷하지 않은, 관계들. 



















** "자기를 하나의 주체로, 자율성·절대성·초월성을 갖춘 존재로 느끼는 개인에게, 자기 안에서 열등성을 선천적 본질로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일자(一者, 단 하나의 존재)‘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또한 스스로 타자로서 바라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다. 인생수업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여자로서 자각했을 때, 소녀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환경은 남자의 세계에 의해 사방이 막혀 있고 제한되며, 지배되고 있다. 여자가 제아무리 높이 뛰어오르고 멀리 밀고 나아가더라도, 언제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천장이 있고, 앞길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 남자가 받드는 신들은 저 멀리 하늘 위쪽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여자아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다." (377)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이라니! 이런 적확한 표현이라니. 




** "체계적인 교육으로도 그 문제만은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말해 두어야겠다. 부모나 선생이 제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성적인 경험을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그것을 경험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분석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더라도 유머러스한 일면이 있으므로 진리를 전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꽃의 시적인 연애와 물고기의 결혼에서 출발하여 병아리 고양이 염소를 거쳐 인류에까지 올라갔을 때, 우리는 생식의 신비를 충분히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적 쾌락과 성애의 신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조용한 피를 지닌 여자아이에게 애무와 키스의 쾌감을 어떻게 설명하랴? 가족끼리는 때로 키스를 입술로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왜 어떤 경우에는 이런 점막의 접촉이 황홀감을 낳는가? 그것은 장님에게 색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색정작용(色情作用)에 그 의미와 통일성을 부여하는 직감적 흥분과 욕망이 결여되어 있는 한, 그 작용의 여러 가지 요소는 불쾌하고 괴상하게 보인다. "(385)



9월에 작은넘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올해 만 15세다. 모르는 사이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 너무 갑작스러워 처음엔 좀 당황했고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조금 후에 수많은 걱정들로 바뀌었다. 나는 무엇이 걱정스러운 걸까. 어째서 내 아이가 상처받을 일보다 그 여자아이가 상처받을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걸까. 아니 내 아이가 상처를 주는 사람일까 봐 두려운 건 아닌가. 이것 또한 편견은 아닐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의사소통과 배려와 공감의 태도를 내 아이가 어느 정도 성숙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혹은 전혀 성숙하지 못하게 표현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첫번째 불안이 온다. 이것은 내가 충분히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반성하나 지금도 여전히 뭔가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은 것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집에서의 태도와 바깥에서의 태도는 다르리라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아이를 내가 믿지 못하는구나 싶은 질책. 

두번째 불안은 역시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성' 관념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하고, '콘돔 없이는 섹스도 없다'를 외치는 나지만 실제 두 사람 사이의 섹스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준 것이 없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몸으로 나누는 사랑이며 기타등등 두루뭉술한 말들을 해왔지만 정작 갑자기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엄청난 조급함과 불안이 마구 피어오른다. 친구 집에서 밤샘파티를 한다고 하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미 방학 때 2번이나 다녀옴) 더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랑과 섹스가 무엇인지 새삼 잘 모르겠다. 젊을 때 탐구했어야 하는 주제를 외면(?)하고 살아와서 이제야 탐구 중이고 답을 찾기는 아직 어렵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뭐라고 딱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두려움. 그래도 아니라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지금껏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이 많다고, 너희는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 것들을 말하고 싶다. 

385쪽의 인용구.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게릴라 교육이라도 해야지 싶고. 교육 말고 또 어떤 방법이 있겠나 싶고. 집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웃프고. 나 어릴 때보다 세상은 더 노골적으로 이미지화했고. 매일 그것들을 접하고 사는 아이들의 정신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왜 엄마인 나만 해야 하나 싶고.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니 그저 신세한탄에 불과하다 싶고. 나는 이 이야기를 왜 했나 싶고. 돌고돌아 자책이구만. 쩝. 결론! 결국은 '관계'다. 관계에의 탐색. 그리고 성찰. 무엇이 평등이고 존중인지. 우정도 사랑도 섹스도 결국은 모두. 




** "한편 여자는 자기에 대해서처럼 애인에 대해서도 수동적 대상이기 때문에, 그녀의 에로티시즘에는 처음부터 모호성이 존재한다. 복잡한 충동 속에서 여자는 자기 육체를 차지한 남성으로부터 자기 육체가 찬미되기를 바란다. 여자가 남성을 매혹하기 위하여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거나, 자기가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매혹하려고 애쓴다는 견해는 사실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여자는 자기 방 안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시도하는 살롱에서도, 남자에 대한 욕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425) 


'모호성'에 동그라미를 쳤다. 모호성. 그렇다. 처음부터 모호성이 존재하는 에로티시즘. 플러스 엄청난 수동성. 두려움. 어린 아이일 때부터 온몸으로 습득된 이런 성향은 나이 50이 되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모호하다. 




** "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녀가 갇혀 있는 영역 안에서는 무의미한 물음이다. 진실은 베일이 벗겨진 현실이다. 베일의 제거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녀는 행동하지 않는다." (452) 


이렇게 뼈를 때리는 말이 나오면 아프다. 행동. 행동. 



***** 


유년기와 성장기 이야기라 나의 어릴 때, 아이들 어릴 때, 지금의 나와 아이들, 그리고 엄마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들의 말과 행동을 책에 비추어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다고 쓰면 좋겠다. 시도는 했다.^^ 여자아이들의 '인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고.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역시. 


읽을 때 흠칫거리다가 다 읽고 정리 안 돼서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책이 너무 좋아서,가 아닌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지난달 한동안 컨디션 난조일 때 침대에 누워 책읽어 버릇했더니 중간중간 정리할 겨를이 없더라. 9월에도 그 버릇 못 고치고 있다가 이렇게 또 같은 실수를 한다. 문장을 잡고 늘어져봐. 노트랑 펜은 옆에 늘 준비하고. 응, 그럴게, 근데 그거 침대에서 해도 되잖아? 이렇게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악당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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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09-27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공감가는 문구들이 많은 거죠?^^
저도 열심히? 제2의 성을 읽어 나가곤 있는데 요즘 좀 침체기네요.
읽어나가는 것이 내 그릇이 너무 부족하단 생각이 들면서 다른 책들을 좀 더 읽고 공부를 해야하는 게 아닌가?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재밌다가도,또 어떤 때는 어렵기도 하고....또 어떤 때는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애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문제에선 더 어렵고 난감할 것 같습니다.특히나 아들에겐...
제 큰아들은 20살이 되었는데 아직 모쏠이긴 하지만 가르쳐야지~~싶어 말을 몇 번 꺼내보곤 하는데...너무 어렵더라구요ㅜㅜ

난티나무 2021-09-27 19:49   좋아요 2 | URL
(20살이면 만 19인 거죠? 우리집 큰넘과 같아요.^^ 이 얘기 예전에도 한 것 같은 느낌...^^;;)
저는 작년부터 페미니즘 책 읽으면서 주절(?)대 놓은 게 있어서 말 꺼내기는 어렵지 않은데 음, 뭐랄까요, 의식화가 어렵다고 할까요.ㅠㅠ 정작 행동할 때는 어찌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도 하고요. 진짜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하는 일이에요. 쉬쉬 좀 그만 했으면...
같은 책 읽어서 좋아요, 책읽는나무님~~~~!!!^^

공쟝쟝 2021-09-28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것이, 그 불편한 것을 읽는 것이 행동이 아니면 무엇이 행동이겠사옵니까? 그렇게 장성한 아들내미가 있으셨군요~ 난티님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것이 우리에겐 책도 있지만 좋은 영상물도 많더라고요. 얼마전에 시즌3이 나온 넷플릭스 섹스 에듀케이션(한국 제목 :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이 있습니다. 걍 미친 약빨고 만든 새시대의 성교육 성장드라마... 인데 만약에 아드님과 같이 보실 수 있다면..... 저는 박수 쳐드리고 싶은 데. 솔직히 말하면, 절대 같이 볼 수 없으실 겁니다 ㅋㅋㅋㅋ(저는 못봅니다. 아들이랑? 오.. 절대 못봐)ㅋㅋㅋㅋㅋㅋ문제는 그 잘만든 드라마를 보면서도 누구 가슴이 크네 누가 이쁘네 하는 사춘기 한남들의 글들을 봐버려서 좀 승질이 난다는 것이지만... 혹시 안보셨음 한번 봐보세요!! 좋은 부모님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난티나무 2021-09-28 14:45   좋아요 1 | URL
우왓!!!! 공쟝쟝님 쨩이야요!!! 시즌1부터 봐야 하나요? 같이 볼 수 있을지 먼저 간을 함 보고 ㅎㅎㅎ 아 볼 수나 있는지 먼저 찾아봐야 겠네요. 같이 절대 못 봐요?@@ 흠흠

읽는 것도 행동이다 이렇게 썼다가 지웠어요.ㅎㅎㅎ 🤣

공쟝쟝 2021-09-29 10:21   좋아요 0 | URL
시즌1부터죠 ㅋㅋㅋㅋㅋ 시즌 4도 제작 확정이래서 저는 즐겁습니다 ㅋㅋㅋ 같이 못보실걸요 ㅋㅋㅋ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나누는 것 말고 더 큰 행동이 있으려고요? 저는 그 이상의 행동을 알지 모탑니다 (엣헴)

난티나무 2021-09-29 15:15   좋아요 0 | URL
악 오늘 꼭 찾아봐야지!!! ㅎㅎ
왠지 밖으로 뛰쳐나가야 할 것 같고 막, 무슨무슨 단체 찾아봐야 할 것 같고 막, 미는 것 같은 그런… ㅎㅎㅎㅎㅎㅎㅎ 조급함이 가장 큰 적일까요?
 














앞부분 엄청 좋아요 잘 읽혀요 하고 9월 2일에 글 올리고는 엄청 좋았던 앞부분에 대한 페이퍼는 쓰질 않았네.ㅠㅠ 가사노동에 관한 글들, 57페이지까지 플래그 위주로 다시 훑어보니 이건 뭐 다 밑줄을 그어야 하는 거였다. 고민된다. 다 옮겨야 하나. 



** "만약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량을 줄인다 하더라도, 노동 계급이 산업 안에서 투쟁하여 그러한 기술 혁신을 활용하고 자유 시간을 얻는다 하더라도, 가사노동에는 그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은 고립된 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책임져야 하므로, 가사노동을 고도로 기계화한다 해도 여성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항상 근무 중인 이유는 아이를 만들어 내고 신경 써 주는 기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 생산성 증대는 요리, 빨래, 청소 같은 특정 서비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여성의 노동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이유는 기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 - P34


고립,에 동글동글동글 동그라미. 기계는 핵심노동만 하고 주변노동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므로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 생산성 증대'는 3분의 1(혹은 그 이하)만 기대할 수 있다. 



** "또한, 여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알지 못하면 남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여기서 분명히 하려는 바는, 우리가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세계에서 생산 활동을 하면서 임금을 받지 않을 때 상사의 형상은 남편의 형상 뒤에 숨이 있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남편이 가사 서비스의 유일한 수혜자처럼 보이는데, 이 때문에 가사노동은 모호하고 노예 상태와 유사한 특징을 띠게 된다. 다정하게 관여하고 다정하게 협박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가사노동의 첫 번째 감독관, 즉 친밀한 관리자가 된다.
아내가 남편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일하고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경우에도, 남편은 신문을 읽으며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차려 주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가사노동으로 대변되는 특수한 착취 형태에는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특수한 투쟁 형태, 다시 말해 가족 내부에서 여성이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 P40


따라서 요점은, 기껏해야 거리 시위에 가끔 참여할 준비를 하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임금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 주부를 집 안에 평화롭게 남겨두지 않는 투쟁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주부라는 우리의 역할 그리고 우리 존재를 고립시키는 게토가 된 가정을 거부하면서, 가사노동의 전체 구조를 당장 깨부술 수 있는 투쟁 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가사노동 중단 뿐만 아니라 주부 역할 전체를 끝장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작점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이다. 요컨대, 가사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투쟁의 전복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가사노동 시간과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의 관계를 지금 당장 전복해야 한다. 침대보와 커튼을 다림질하고 바닥이 반짝거릴 때까지 닦고 먼지를 터느라 매일매일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이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분명 여성들이 멍청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앞서 여성의 상황을 교육 수준이 보통 이하인 학교와 비교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실제로 여성이 자아를 실현할 방법은 가사노동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자본이 여성을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 과정에서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 P41


그러니까 말이다. 투쟁. 싸워야 하는데.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 마침 또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나는 그 이후 쓰기를 일단 멈춤 했다고 한다. - 주방으로 갔더니 옆지기가 오늘은 오징어볶음 할까, 하고 저녁 준비할 태세를 갖추길래 밥만 얹어놓고 냅다 도망나왔다. 시간이 생겼으나 글은 쓰지 못하고 마당 풀 뽑다 왔다. 아침에 이 책 마저 읽느라 책상 앞에 꼼짝않고 앉아있으니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났다. 지저분해도 청소를 하지 않는 요즘의 나다. 청소하는 건 좋은데 책 읽는 게 방해되는 건 싫다. 방 청소한다고 들어와서 여기저기 밀어댄다. 청소하는 행위가 단순히 행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무엇이 우선인가. 무엇이 최선인가. 무엇이 상생인가.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과 '뭐라고 말해야 기분나쁘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어처구니없음-나에게 짜증나는 순간-의 괴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언제나 좁혀지려나.) 





** "우리는 여기서 승화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한다. 단조롭고 하찮은 잔일들이 주는 절망감과 성적 수동성이 주는 절망감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성의 독창성과 노동의 독창성은 인간 욕구의 두 가지 영역으로, 우리는 ‘선천적 활동과 후천적 활동의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여성은 (따라서 남성 역시) 선천적 힘과 후천적 힘을 동시에 억압당한다. 여성의 수동적인 성적 수용성은 강박적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주부를 만들어내고, 단조로운 조립 라인조차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하찮은 가사노동과, 같은 일을 매일, 매주, 매년 반복하고 연휴에는 두 배로 하게 만드는 규율은, 자유로운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우리의 유년기는 순교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우리는 백지보다 더 하얀 천 위에서 깨끗한 성생활을해서 행복을 얻으라고 배운다. 또, 섹슈얼리티 및 다른 창조적 활동을 동시에 희생하도록 교육받는다.
이제까지 여성 운동은 특히 질 오르가슴 신화를 파괴하여 여성의 성적 잠재성을 남성이 엄격하게 규정하고 제한하도록 허용하는 육체적 메커니즘을 폭로해왔다. 이제 우리는 섹슈얼리티를 독창성의 다른 측면들과 결부시키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노동이 우리와 우리 개개인의 능력을 불구로 만드는 한, 우리가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 행세를 하고 그들이 하는 노동이 그들을 불구로 만드는 한, 섹슈얼리티가 항상 속박당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질 오르가슴 신화를 깨뜨리는 건, 종속 및 승화와 상반되는 여성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질 오르가슴 신화가 음핵 대 질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음핵과 질 대 자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질은 애초에 상품으로 팔리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통로, 즉 자궁의 자본주의적 기능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우리의 선천적 힘, 우리의 사회적 도구의 일부이다. 결국 섹슈얼리티는 가장 사회적인 표현이고 가장 심오한 인간의 소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의 해체이기도 하다. 노동 계급은 계급 자체를 초월하기 위해 계급으로 단결한다. 자율성을 초월하는기반을 만들어 내려고 우리는 계급 안에서 자율적으로 결속한다."  - P48~49


**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먼저 여성들을 서로에게서, 남성에게서, 자식에게서 분리하고, 여성 개개인을 가족 안에 가두려는 역할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 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주부들이 이 모두를 거부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자신을 노동 계급의 한 집단으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위가 가장 강등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 투쟁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보완하는 인물, 바로 주부에 반대하고 여성의 개별성을 긍정할 수 있는 계획을 마땅히 제안해야 한다. 주부 역할의 생산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마땅히 내놓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기본적인 육체적 기능의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게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 생산적인 창조성과 함께 가장 먼저 강탈당하는 성性적 기능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아 제한 연구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임신 중절이 금지되고 결국 ‘치료‘ 목적으로만 허락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개혁주의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적으로 관리되면 거듭해서 계급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을 만들어 낸다. " - P54



가사노동과 성을 연결지을 생각은 못했다...고 쓰려다가 어라 연결해서 자주 생각해 봤네 싶다. 가사노동 자체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가사노동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모양의 정신적 스트레스다. 안정감을 찾을 수 없고 친밀함을 느낄 수 없고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고 누구도 나의 정신적/육체적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그야말로 고립의 감정을 느끼는 여자에게 성이란, 섹스란, 그것을 나눌 사람에게서 조금의 위로도 받지 않을 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하면 섹스의 횟수가 늘 것이라는 내용을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이 말은 절반만 유효할 것이고 가사노동의 의미를 단순화시킨다. 왜냐하면 '집안일'이라는 '행위'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쓴 청소기의 예를 보라. 남편이 집안일을 했으나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여성 투쟁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로사 언니도 좋아하고 싶다.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글인데 문장 사이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아마도 그 거리는 나의 부족함일 터, 이 언니 책 더 읽고 싶어 찾아보았더니 <집 안의 노동자> 달랑 한 권 번역되어 있다. 뭐야.  <탈정치의 정치학>에 글 한 편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발전과 재생산」 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 실린 글과 같거나 비슷한 내용일 듯하다. 


















** "수백만 여성이 전통적으로 여성이 영위하던 자리를 거부하면서 여성 운동이 일어났는데, 자본은 여성 운동을 만들어 낸 이 추동력에 달려들어, 더 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재편하고 있다. 여성 운동은 이 상황에 저항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성 운동은 운동의 존재 자체로, 또 더욱 분명한 행동으로, 여성들이 노동을 통한 해방이라는 신화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충분히 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십억 톤의 목화를 자르고, 수십억 개의 그릇을 씻고, 바닥을 수십억 번 닦으며, 단어를 수십억 개 입력하고, 수십억 번 타전하며, 수십억 개의 기저귀를 빨았다. 이 모든 일을 손수, 또 기계로 했다. 저들이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던 영토에 우리를 들여보내 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착취를 마주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제3세계의 저발전과 거대 도시의 저발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대 도시의 부엌에 도사리고 있는 저발전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인 기획은 제3세계가 성장할 것을 제안한다. 제3세계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에다가 반反산업혁명의 고통까지 당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거대 도시에 사는 여성들도 이와 동일한 ‘원조'援助를 받아왔다. 그러나 해야만 했기에, 또 여분의 돈이나 경제적 자립 때문에 집 밖으로 일하러 나간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플레이션이 우리를 이 빌어먹을 타이핑 인력 혹은 조립 라인에 못 박아 버렸고, 이 상황에서 구원은 없다고. 우리는 저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성장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하는 여성의 투쟁은 가정의 고립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게 아니다. 종종 월요일 아침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어지더라도. 마찬가지로 주부의 투쟁 역시 집 안에 감금되는 상황을 사무실 책상이나 공장 기계에 붙들려 있는 상황과 바꾸려는게 아니다. 때때로 12층짜리 집단 주택 안에 존재하는 외로움보다는 나아 보일지라도." - P55~56



자, 일단 여기까지 쓰고 늦은 아침을 먹겠다.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오늘은 월요일이다. 당연한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인데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뽀인뜨다. 뭐래.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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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2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른쪽 책도 그렇지만 왼쪽 책도 어쩐지 페미니즘의 투쟁과 중복될 것 같아요.

읽느라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고생하셨어요. 꼭 나의 마음 같은 글을 읽는 것도 기쁘고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는 것도 기쁘죠. 고되지만 분명 얻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난티나무 님, 10월도 11월도 12월도 함께 열심히 가봅시다!

난티나무 2021-09-27 17:59   좋아요 1 | URL
그쵸그쵸. 그래도 <집안의 노동자>는 왠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긴 해요. 가사노동 부분이 좋았거든요.^^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더 자세자세하게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또 운동한 거 위주로 이야기할려나...ㅎㅎㅎ
12월까지 이미 도서 구비 완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09-27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리뷰 어떻게 쓰나 앞이 캄캄합니다. 멋진 언니들도 왤케 많은지요! 중간중간 정리해놓은걸 정리중인데 하...읽어야 할 책도 더더 늘어났고요. 저도 밥부터 먹어야겠어요ㅋ😳

난티나무 2021-09-27 18:01   좋아요 1 | URL
리뷰 쓸 수 있을까 싶습니다요.^^;;;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감상문...이 될 거 같은, 뭐 저야 늘 그렇지만요.ㅎㅎㅎ
저는 집에 있는 에코페미니즘,을 이제 읽어야 하는가보다 했습니다. 맛난 거 드세요, 미미님~!^^
 

며칠 전 그림책을 잠깐 찾아보았다. 이웃님(친구님? 서재에서는 이웃인가 친구인가...) 페이퍼에서 처음 보고 블로그 이웃님 글에서 다시 보면서 사고 싶어진 그림책. 그림 그린 작가의 책을 대체로 다 사고 싶어 프랑스어판도 찾아두었더랬다. 한글판 살까 사서 선물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또 이런 이벤트를 한다. 무슨 에코백 귀신이 붙었나 에코백만 보면 사고 싶어 해. 집에 몇 개 있는지 알기나 하냐? 그거 한번씩 다 써보지도 않고 걸어둔 거 알고는 있제? 








에코백 아니면 피크닉 매트 준다는데 이것도 이뻐.@@ 나 전에 굿즈로 하나 받은 거 있는데 크기가 작더라고. (그 땐 파우치도 없었어.) 이것도 작은데 사면 두 개 세뚜세뚜? 에코백이랑 매트랑 다 가질려면 음.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24877&partner=newsletter&MMID=16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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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27 0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굿즈로 영업당합니다 ㅜㅜ

난티나무 2021-09-27 14:20   좋아요 0 | URL
이쁘죠? 아놔 저도 이런 데 영업당하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ㅠㅠ

그레이스 2021-09-27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예뻐요
굿즈뿐 아니라 책도 예뻐서 영업당할만 합니다^^

난티나무 2021-09-27 14:21   좋아요 0 | URL
책 실물로 보고 싶어요. 얼른 한 권 사봐야 겠다는…^^;;;;;

책읽는나무 2021-09-27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돗자리 넘나 예쁜데요??
가을에 가을 그림 매트 깔고 가을 만끽할 수 있겠어요^^
에코백도 이쁘고~~^^
저도 책 좀 찾아 봤는데 옛날 그림책 중 몇 권 읽었던 것이 있더라구요.
아...했네요.그동안 그림풍이 많이 바뀌었네요~
색감은 더 따스하게 바뀐 것 같아요.
저도 영업 당해야 하나?고민스럽게 만드는 굿즈들이긴 합니다ㅋㅋㅋ

난티나무 2021-09-27 14:25   좋아요 1 | URL
아아 그림풍이 바뀐 거로군요. 그림도 좋아보이지만 이야기가 더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거 같아서 그저 바람일 뿐…ㅎㅎㅎ 어쨌거나 얼른 한두 권 사봐야 겠다는 마음이 불쑥! 굿즈에 욕심내지 말자는 다짐은 언제나 이렇게 쉽게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걸까요? ㅎㅎㅎ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인원은 2명. 페미니즘 책을 함께 읽는다. 책 추천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지만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모임 멤버가 나보다 더 페미니즘 초짜이기 때문이다. 책 선정이 고민된다. 작년 말부터 권했던 책들 중 벨 훅스도, 박정훈 기자도, <맨박스>도, 리베카 솔닛도 튕겨내는 (그러니까 얼추 이 책들을 들여다보기는 했다) 그 멤버의 성향으로 미루어보건대, 어떤 책을 고를 것이냐는 모임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짐작했겠지만 그 멤버는 나의 옆지기다. 


시작은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이달의 독서모임 도서들이 쌓여있다. <페미니즘의 투쟁> <학교의 슬픔> <제 2의 성> 1권과 2권, 그리고 프랑스어 원서들까지. 아마 제목이 눈길을 끌었을 터, 거기에 더해 며칠 전 나와의 '설전'도 촉매제 역할을 했을 듯 한데, 책을 집어들고 살펴보길래 읽어볼래? 했다. 마침 2부 첫부분에 '성 입문' 챕터가 있다. 여기만 읽어 봐. 그렇게 옆지기는 부분이긴 하지만 <제2의성>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보부아르는 성 입문 맨 앞에 여자의 첫 성적 경험이 일생 동안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똭 기술하고 있다. 옆지기는 첫 페이지를 읽으며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여자들의 입장을 얕게 헤아려보는 경험을 했다. 아마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껏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될 때 내 머릿속에 내리쳤던 번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 듯하다. 그 덕분에 한 챕터를 집중해서 읽었고 몇몇 문장들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나와 독서 성향/습관이 아주 다른 옆지기는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눈으로 술술 읽고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넘어가는 나와는 정반대. 함께 문장을 짚고 뜻을 유추해보니 좀더 의미가 선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생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옆지기는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다,는 말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언제 읽게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다음날 옆지기가 뭐 읽을까 묻는다. 아, 책 선정은 고민이다. <제2의 성>이 옆지기에게 '읽힐' 수 있었던 건 그 부분이 마침 남자들의 주요관심사인 '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여자들의 욕구가 어떻게 억압되고 지워지는지, 여자들을 지배하는 사회/문화적 기제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에 대해 먼저 아는 게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대출해서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떨까. 나는 읽으면서 너무 당연하게 나의 행동 동생과 친구의 행동 엄마의 행동과 말 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완전히 공감은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알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옆지기는 지금 <욕구들>을 함께 읽고 있다. 

(며칠 전 써두었던 글이다. <욕구들> 다 읽고! 다른 책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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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9-25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난티나무님!!!! 옆지기님 대단한걸요? 일부라도 무려 제2의성을! 첫 책 잘 선정하셔서 이 느낌 쭉 가셨음 좋겠어요~♡♡ 입문용으로 쉽고 술술읽히는<보이지 않는 여자들>살짝 추천드려요. 제 주변 초보자들 3명 중 2명이 읽고 만족. 한 명은 느리지만 아직 읽는 중이예요. 읽어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사례들이 많은게 장점인듯해요😆

난티나무 2021-09-25 17:21   좋아요 1 | URL
저도 이 독서모임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ㅎㅎㅎ 책 동반자 꿈꾸었는데 과연 이루어질까요? ㅋ
<보이지 않는 여자들> 안 그래도 읽을 수 있겠는지 한번 훑어보라고 건네줬는데 지금은 안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뭔가 끌어당기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아직은 아닌 걸로.
책 추천 종종 해주세요 미미님!!!!!^^ 🙏🙏🙏

미미 2021-09-25 17:27   좋아요 1 | URL
초입문자만요ㅋ 제가 늘 난티나무님 읽으신 책들 사 모으는데 어찌 추천을하나요ㅎㅎ😳😆

난티나무 2021-09-25 18:00   좋아요 1 | URL
옴마 미미님~~^^
아 저도 <페미니즘의 투쟁>을 마저 읽어야 겠습니다.^^;;;; 미미님 글 보고 탄력!!! 근데 페이퍼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ㅠㅠ

책읽는나무 2021-09-25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멋지십니다.
부부 독서 모임!!!
제가 바라던 이상적인 독서 모임이네요^^
저의 남편은 아예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지라.....
책 읽고 같이 얘기 나누고...부럽습니다^^
난티나무님도 옆지기님도 응원합니다!!!

난티나무 2021-09-25 17:58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제 남편도 그래요. 책 안 읽고요. 아주 가끔 정말 자기가 꽂히는 뭔가가 있는 분야의 책 아니면 안 읽어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읽고 책 내용 이야기하는데 새롭고 좋았어요. 지금은 서로의 소통을 위해 페미니즘 책을 읽지만 점점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노년의 2인 공동체를 위해서요.^^
응원 감사히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