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올랜도>를 읽겠다고 펼쳤다가 이내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 이래서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는 거지 싶었었는데 오늘 <등대로> 첫부분을 읽으니 이거 정말 만만치 않구나. 한참을 읽다가 그가 누군지 그녀가 램지 부인인지 릴리인지 헷갈려 되짚어 확인을 해야 하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누군가의 과거 이야기를 잘 분간해야 하며 그래서 지금 화자가 길을 걷고 있는지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지 그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머릿속을 묘사하고 있는지를 간파해야 한다. 처음 나오는 어린 아들 이야기에 아이가 있구나 하다가 '여덟 명의 아이'에 놀라 나가떨어지고 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앉아있나 싶게 각자의 생각도 이러구러 달라 당장은 캐릭터의 성격에 집중하게 되는데 한 사람의 생각이라 해서 그것이 대체로 일관적이지도 않아서, 그렇지, 사람이란 무릇 그런 것이지, 하게 된다. 


울프의 인물 묘사가 직설화법인지 패러디인지 구분하는 일이 흥미로울 듯하다. 2004년에 나온 구판과 2019년에 나온 개정판의 번역이 거의 다를 것이 없이 똑같고 좀은 구시대(?)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단어들의 사용이 거슬리기는 한다. 울프의 표현 중에도 "눈은 중국 여자의 눈처럼 조그맣고(구판 36)" 이런 부분 딱 싫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거니께요. 끙. 


그래도! 한마디로 울프는, 대단하다. 존경합니다! 존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이제 겨우 40여 쪽을 읽었을 뿐이고("부인은 간간이 단어들만 주워들을 수 있을 뿐 전체의 의미는 파악하지 못했다."라는 문장은 흡사 내 마음. ㅎㅎㅎ) 앞으로도 계속 울프의 말솜씨와 번역이라는 2차 난제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일단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자 단조롭게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 소리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녀의 생각에 박자를 맞추고 위로를 안겨주는 소리이고, 애들을 데리고 앉아있을 때는 자연이 속삭여주는 "내가 너를 보호해주고 있다, 나는 너의 보호자다"라는 그 옛날 어린 시절에 듣던 자장가 단어들을 다정하게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 다른 때에는 갑자기, 그러고 의외로, 특히 그녀의 생각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에서 약간 떨어져나갈 때는 그와 같은 친절한 의미는 사라지고 마치 유령이 북을 두들기듯이 무자비하게 인생의 박자를 맞추고, 섬이 파열되어 바다에 삼켜지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인생은 무지개와도 같이 덧없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의 하루는 이일 저일 서둘러 하는 사이에 덧없이 지나갔다. 파도 소리는 다른 소리들 밑으로 희미해지고 사그라졌다가 갑자기 귀에 쩡쩡 울렸고, 그녀는 공포에 질려서 시선을 들어올렸다." (구판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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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2-09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등대로가 그런 책이로군요??
또 고민이 되네요.ㅜㅜ
문해력을 키워야 하는데..참 어렵습니다^^

난티나무 2021-12-09 02:23   좋아요 2 | URL
^^;;; 저도 문해력이 부족해요.ㅠㅠ 늠나 어려운 것. 이럴 땐 만연체 시르다요.ㅎㅎㅎ

mini74 2021-12-09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시작부터 좋으신데요. 구판과 개정판 비교도 하시고. *^^*

난티나무 2021-12-09 18:13   좋아요 1 | URL
헤헷 그렇게 되었네요.^^ 근데 번역은 거의 손 안 댄 것 같아 좀 아쉬워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앨리스 워커는 어머니로부터 스스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고 술회한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도서관 열람카드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앨리스 워커는 정말 엄마에게 스스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을까? 의심을 품는 건 때로 좋지 않는 습관이다. 그러나 기억은 거짓말을 하는 법. 그건 일종의... 합리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앨리스 워커만큼 마음이 크지 않은 나는 자주 합리화에 빠지곤 해서. 참 삐딱하지.

나는 엄마로부터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도 모르게 선택적 조작을 당한 내 기억들 '덕분'에 많은 것들이 지워져서 흐릿하지만, 말하기 껄끄러운, 아주 사소하고 그럼에도 내게는 중요했던 무언가를 말했을 때 엄마가 보인 반응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니 아마 그것이 내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조작일 가능성이 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에 나와 엄마를 꼬깃꼬깃 구겨넣고 프레임을 짜고 그 속에서 내가 이기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엄마에 대한 미움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엄마를 이해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는 알겠어,라고 말하는 머릿속의 말들 옆에 그래도 나는 엄마가 밉다? 엄마가 싫다? 이런 말들이 크게 흘러넘친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용감했던 엄마에게 감탄하는 마음 옆에 찰싹 달라붙어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만 같은 미움, 사라지는 날이 올까? 정체된 듯한 감정들은 여전히 이리저리 흐르는 중일 테다. 엄마를 말하기는, 아직, 여전히, 어렵다.

"다른 한편 내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가부장적 문화권에서 딸이 자기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결코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뤼스 이리가레 <하나이지 않은 성> - 질문들 188)

"우리 세대의 많은 여성들은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어머니처럼 되고자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좌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머니들의 삶을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분노를 느꼈을 뿐일까? ... 이상스럽게도 딸을 사랑하는 여러 어머니들은, 내 어머니도 그런 분이었지만, 딸들이 자기처럼 자라기를 원하지 않았다. 딸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어머니들이 우리를 격려하고 고무할 때나 당시에는 여성들에게 열려있지 않던 직업에 대한 동경을 털어놓을 때조차, 어머니들은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줄 수 있는 여성상을 제시하지 못했다. ... 어느 어머니든 자기 딸에게 "나 같은 가정주부는 되지 마라"고 똑똑하게 말해줄 수는 있었지만, 이 말을 듣고 어머니가 남편과 아이들의 사랑을 기분좋게 즐기기에는 너무 깊은 좌절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딸은 기껏해야 "난 어머니가 실패한 것을 꼭 멋지게 해내고 말 테야. 나는 나 자신을 여성으로서 충실히 실현시켜야지" 하고 결심할 뿐, 어머니의 인생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간파하지 못한다."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 위기에 처한 여성들의 정체성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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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간의 관계, 특히 남성과 여성의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의 관계를 보다 잘 들여다보기 위해 요즘 성행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편이다. 옆지기와 함께 보면서 말이나 행동,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이야기하다 보면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이나 선입견 등도 튀어나와서 종종 열띤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데이트를 하면서 남자가 여자에게 소위 '들이댄다'. 옆에는 또다른 남자도 있는 상황. 그건 둘째치고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대답을 내놓아라, 너 나 좋니 안 좋니, 확신을 줘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느껴진다. 그들은 만난 지 고작 만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남자는 자꾸 여자의 말을 끊는다. 모든 생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관이 펼쳐진다. 어이없는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니까! 다양성이 당위성이 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기가 차는 건 그 이후 여자의 반응이었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내 행동이 뭐가 잘못됐나. 이 또한 '여자의 속성'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말을 끊는 남자에게 말 끊지 말고 들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말투가 불쾌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건 나의 모습이기도 할 테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장면을 머릿속에 끊임없이 재생하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 내 잘못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나. 


"남성의 증상은 병적인 방종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파괴적인 적대심을 훨씬 더 많이 드러내는 듯 보인다. 반면 여성의 증상은 가혹한 자기비판, 자기 비하와 종종 일련의 자기파괴적인 태도로 표출된다." (159쪽, 레슬리 필립스, 1969, 책의 인용구 재인용)


이 부분을 읽는데 앞의 장면이 떠올랐다. 정신병원입원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은 이미 이런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책 속 정신병원 이야기에 분통이 터진다. 지금이라고 더 나을까? 더하여 머릿속에 남아있던 장면을 어떻게든 털어버리려고 다다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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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05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아직 본격적으로 사귀기전, 밀당의 순간조차...😔 스토킹 범죄에서도 그런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듯 해요. 난티나무님 벌써 159쪽!😉👍

난티나무 2021-12-05 21:15   좋아요 2 | URL
너무 짜증났어요.ㅠㅠ 짜증밖에 낼 수 없다는 게 또 짜증이 나네요.^^;; 아놔.
책은 부글부글 내용이지만 매력 있어요. 잘 읽히기도 하고요. ^^

mini74 2021-12-05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짓기프로 안 보는 아유 중 하나에요. 설레지도 아름답지도 않죠. 싫은 속담 중 하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없다. 이거 넘 무서운 속담인거 같아요.

난티나무 2021-12-05 23:52   좋아요 2 | URL
저는 옆지기와 토론(?) 하려고 같이 봅니다. ㅎㅎㅎ 🤣
또 있잖아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ㅠㅠ
 




7월에 띄운 선편소포가 도착했다.


이만큼 넣은 선편소포의 가격과 6권 넣은 항공소포의 가격이 같다. @@

코로나 이전처럼 한 달만에도 오고 늦어도 석 달 안에 온다면 선편소포를 애용하겠는데. 넉 달만에 왔고 다섯 달 넘게 걸려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중간에 뿅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추적 불가. 잃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나마 10월부터는 아예 선편소포 접수를 중지했다고.

좋아라 책탑을 쌓고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신바람이 조금씩 푸슈슈 빠지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책을 꽂을 자리도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사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래서 될 일일까? 흐흐 실없이 웃으면서 고민해본다. 물론 책을 읽으려고 사는 거지만 정말정말정말로 꼭 갖고 있고 싶고 읽고 싶고 그래서 산 책이 이 모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배송비 아끼려고 중고책 고르고 골라 끼워넣은 책도 꽤 된다. 물론 관심책이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작년처럼 미친(?) 듯이 책을 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돼. 중얼중얼하면서 장바구니를 비우러 간다. 며칠째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옮겼다가 지웠다가 다시 옮기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다 삭제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러 간다. 잉? 그러면 안 된다니까. 알아 알아, 사려고 담아둔 거니까 이건 사야 하지 않겠어? 으... 사도 항공소포 띄워서 다 받는 건 무리야. 지금 사둔 책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그러는 겨? 알쥐알쥐.ㅠㅠ 내년에 한국 가서 읽든지 가져오든지 할랬더니 변종 바이러스 또 출현하고 3차 백신은 의무가 되고 아주 난리란 말이지. 하. 무룩 무룩 시무룩.


***

어제 이렇게 써놓고 오늘 알라딘 들어오자마자 냅다 책 주문. 그래도 세 권 빼고 샀다. 잘 한 건 아니지만 잘 했다. ㅠㅠ 어쩔.

***

책탑 사진 크게 띄워 확대해 보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사진~ (저만 그런 거 아니란 거 다 알아요)











내가 샀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책도 있고 옆지기 한국 갔을 때 산 제주 잡지랑 책들도 있고. 아주 다양하구나. 책상 위에 쌓아두고 즐겨야 하건만 방을 확 뒤집었다. 어디다 두어야 하나 고민 중. 그 자리에 그냥 쌓여있을 확률 아주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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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1-28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편은 정말,,,고뇌의 선택입니다요. 4달이 걸려서라도 5달이라도 오기만 하면야,,, 그런데 그노무 분실 위험이라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고통!!ㅠㅠ 우리 말고 또 누가 알까용??ㅠㅠ 우리는 그런 고통을 아는 동지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글 일으면서 내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같은 상황, 심정!! 감정이입 너무 잘 되어서,, 어디에 잘 두시길 함께 바랍니다요.ㅋㅋㅋ

난티나무 2021-11-29 00:02   좋아요 1 | URL
그니까 말이에요.ㅠㅠ 책은 좀 싸게 배송하면 안 되나요? 그쵸? 저거 잃어버렸다면 으아 생각만 해도 진짜 😱
선편은 분실 위험 항공편은 세금&수수료 위험!
일단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어요. 어디다 정리해야 하나 … 하아… ㅋㅋㅋ

mini74 2021-11-28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면서 봤는데 또 그런 비애가 ㅠㅠ

난티나무 2021-11-29 00:04   좋아요 1 | URL
모아서 쌓으니 많기는 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만큼 한국에 또 있어요.ㅠㅠ 어쩔…
가서 갖고 오고 싶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1-11-29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의 책탑 사진 보니 독서력이 불타오릅니다. 아 책 읽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찾아오네요!! >.<

난티나무 2021-11-29 15:08   좋아요 1 | URL
오 다락방님의 불타오르는 독서력! 에 땔감 하나 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저는 ‘언제 다 읽노’ 마인드로 접어들었습니다. ㅎㅎㅎ ㅠㅠ

그레이스 2021-11-29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 탑을 쌓는 난티나무님 👍 👍 👍

난티나무 2021-11-29 15:08   좋아요 3 | URL
불구하고! 아마 앞으로도 주욱? 되지 않을까요? ㅠㅠ 안 되는데. ㅎㅎㅎ 🤣

프레이야 2021-11-30 2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흠다운 책탑이에요. 넉 달이나 기다려 받았으니 더더 애착이 가겠죠.
분실의 위험까지 안고 ㅎㅎ 라로 님과 같은 대륙, 비슷한 마을인지 급 궁금해집니다.
아무튼 상세사진 보니 고작 몇 권이 겹쳐서 반가워요.

난티나무 2021-12-01 01:44   좋아요 1 | URL
이게 웃긴게요, 빨리 보고 싶거나 좀더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책들은 항공편으로 받거든요? 상대적으로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책들이 배를 탄 것인데 기다리다 뭘 넣고 뭘 뺐는지조차 가물거릴 때쯤 받아서 일차로 막 좋다가 이차로 음 언제 다 읽지 삼차로 아니 왜 이런 책들인 거지? 이렇게 생각이 흐른다는 거예요. ㅎㅎㅎ 막 다른 책들이 더 좋아(?)보이고… 아쉽고… 이래서 아마 계속 책을 사는 거겠지요. 아이고야 ㅎㅎㅎ

라로님은 미쿡, 저는 푸랑수.^^ 거리로 따지자면 한국까지보다는 미국이 가깝긴 하겠어요.^^

프레이야 2021-12-01 01:5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프랑수에서 사시다니 부럽지 뭐여요 ㅎㅎ 암튼 지구마을 가까운 곳에 사시네요 라고 말하기엔 코로나 때문에 좀 멀어진 느낌이 들긴 해요. 🇫🇷

얄라알라 2021-12-0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도의 책탑은 가히 전문서점의 컬렉션.
난티나무님께서 ˝내가 샀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책도 있고˝라고 말씀하신 부분, 확 이해됩니다!!!!

난티나무 2021-12-06 00:2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건 뭐지? 싶은 책이 간간이 ㅎㅎㅎ
😉😉😉🤫🤫🤫
 















<여성성의 신화>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알라딘에 며칠 글을 안 올려서^^;; 며칠 전 쓴 것 가져오기. 


서문~ p.146

1장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 / 2장 더없이 '행복한' 주부의 등장

일반적으로, 그렇다, 일반적으로, '주부'들의 하루일과를 늘어놓는 일은 해봐야 쓰잘데기없는 소리, 영양가 없는 말(영양가 있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하나마나 한 소리, 들어봐야 뻔한 소리, 다 아는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특히 경험하지 못한('않는') 자들이 단 한 마디도 듣지 않으려는,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다 걸러버리는, 지겨운 잔소리라고 여긴다. 정말 그런가? 지겨운가? '주부'는 그 '지겨운' 일을 매일, 주말도 없이, 일년 내내, 이십년 삼십년 그 이상을 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지겨운 것은 바로 이 사실이다.

"주부들의 하루는 산산조각이 나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일에 15분 넘게 보낼 수 없다. 잡지를 읽을 시간도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집중할 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86)

이 구절을 읽고 상당수의 여자들은 맞아맞아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집중할 힘도 없다, 라는 말에는 어떤 설득력도 없다. 이런 말에 여자들의 입장을 상상하여 공감할 남자는 없다. 산산조각난 하루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과 글자로만 읽는 것은 다르니까. 결국 경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인간은 경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을, 상황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여자의 삶을 짐작하는 일은 가만 두면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이만큼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이만큼 부르짖었으면 이해하겠지, 택도 없는 소리이다.

'집안일', '살림'에 대해서는 말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어놓으면 그저 경험담에 넋두리밖에 안 되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설득이라기보다는 천지개벽할 정도의 깨달음이 주어져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언어'를 부르짖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말할 언어가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단어로 이루어진 언어를 갖고 있지만 우리 언어가 모든 사물과 현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해내지는 못한다.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그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경험이 여자들의 경험이 되면, 어려움은 두 배 세 배 열 배 백 배가 되고, 결국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스러진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식의 말이 되어야 지겹다고 듣기 싫다고 되받지 않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겹다고. 지겨운 건 너네들이야.

"그러면 어떻게 여성들은 자신의 삶의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진실을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을 이끌어왔으며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진실을 내면의 목소리가 거부할 때, 여성은 어떻게 그 목소리를 믿을 수 있을까?"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가 있든 없든, 누구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남편이 어떤 말이든 콧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자신의 생활도 나아질 기미가 없을 것이며 이러려고 포기한 경력과 직장과 자유로운 시간들을 앞으로도 후회하면서 그리워할 거라는 사실을. 이만한 남자면 결혼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겠다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속인 사실을. 혼자 사는 여자라고 여기저기서 오만 가지 오지랖으로 공격할 때,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화가 나면서도 조금은 그렇다고 속으로 인정한 사실을.

나는 어떻게 그 목소리를 믿을 수 있었나? 너는 왜 그 목소리를 '아직' 믿지 못하나? 어떻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그 목소리를 믿는가. 앞으로 얼마쯤 계속 믿을 수 있을까. 하나 둘 바뀌는 생각들이 행동으로 옮겨가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건 아닌가.

"또한 오랫동안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낡은 문제들, 즉 생리 불순, 불감증, 난혼, 임신 공포증, 산후 우울증, 20대와 30대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정서 불안과 높은 자살률, 여성의 갱년기 위험, 이른바 미국 여성들의 수동성과 미성숙성, 어린 시절에는 여자아이가 지적 능력이 우수하나 성인이 되면 성공하지 못하는 이런 점들의 불일치, 미국 여성들의 오르가슴의 다양한 범위, 그리고 심리치료법과 여성 교육의 끈질긴 문제 등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기 시작했다."(89)

갱년기 증상이 조금 무서웠던 적이 있다. 공황장애라 불리는 것과 증상이 비슷해 사람들이 착각하기 쉽겠다 싶었다. 그 이후 책들을 읽으면서 의심이 생겼다. 갱년기를 혹독하게 겪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 갱년기 증상 때문일까. 완경 말고 호르몬 변화 말고 갱년기가 되면 온다는 그 수많은 증상들이, 과연, 정말, 갱년기 탓일까. 어쩌면 말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닐까. 많은 여성의 질환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대체로 그 즈음 여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갱년기'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퉁치는 게 아닐까? 혹시 그 나이 즈음 되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깨달은 혼란스러움을 몸이 대신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갱년기 역시 다른 수많은 '여성질환'들처럼 호르몬제를 처방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몸은 정직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걸 알린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점점 정직해지는 몸이라 하겠다.)

갱년기 이야기만 했으나 생리 불순 같은 경우도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위의 인용 구절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가 미국 사람이라 미국 여성들이라고 했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 책은 1973년에 나왔다.) 당연해보이나 당연하지 않음이 계속 밝혀지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남성과 함께 일하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이,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독립심을 지니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은 결국 가정 일에서도 남자가 결정해주길 바랄 정도로 수동적인 의타심을 지니게 되었다. 단조로운 집안일을 하며 자아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주부들에게 그것을 메꿀 수 있는 종교적 운동이 필요하며, 공존성이 그것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광적인 환상은 여성이 입은 피해와 여성상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남성이 가사를 함께 한다고 해서 드넓은 세상사를 저버린 여성의 피해가 보상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부부가 함께 거실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해서 가정주부가 어떤 신비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118)

"신화가 강한 힘을 발휘할 때 신화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신화는 그 신화에 모순되는 사실 때문에 더욱 커지고 사회의 평가조차 무디게 만들면서 문화의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133)

'현대판 가정주부의 신화'가 만들어지기 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는 것.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여성상이 많았다는 것. 전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결과를 여자들에게 가져왔다는 것. 여성이 "시인에서 잔소리꾼"(74)으로 저도 모르게 변화해갈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 아직도 잘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것.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여성성의 신화>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5분의 1을 읽었을 뿐이다.



"그냥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내가 아는 다른 모든 여성들이 거짓된 삶을 살아왔으며, 우리를 진찰한 의사들과 우리를 연구한 전문가들이 그런 거짓을 영속시켰고, 우리 가정과 학교, 교회와 정치, 직업들이 그 거짓을 둘러싸고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들이 더도 덜도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여성들을 우리 사회에서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만든 모든 것들이 변화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성의 신화를 깨뜨리고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바라본다면, 자신들이 서 있는 잘못된 기초를 인식하고, 성적 대상으로서 받는 찬미도 거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 10주년 기념판 서문 중에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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