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 가부장을 치유하는 풍요로운 잔치 마당 (p.37~51)

먼저, 소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해야겠다. 심청이 살아 돌아와 왕비가 된 이후에 잔치를 열어 아버지 심봉사를 찾는다는 이야기는 모두들 알 터, 그런데 가부장을 치유한다니, 아버지 가부장이 또 중심이란 말인가?

글 맨앞에서 간단히 요약하고 있는 심청 이야기를 따라가며 맥을 한번 짚어보자.

옛날 어느 마을에 심봉사가 살았다. 부부가 살았다,도 아니고 심봉사가 살았다. 그가 주인공이다. 그의 아내는 아기를 낳다가 죽어버렸단다. 어머니의 죽음. 장르를 막론하고 어머니들이 죽는다. 왜?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어머니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영웅이 될 수 없다고,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의 존재는 지워져야 하는 거라고. 그러면 우리의 청이는 영웅인가? 남자 주인공이 영웅인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청이는 용과 싸우지도 않고 결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험을 떠나는 게 아니라 바다에 몸을 던진다. 성차별적 서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한 책의 구절을 보자.

"아내의 죽음이란 심 봉사 내면의 여성성과의 단절이라고 볼 수도 있고 동시에 심 봉사의 외적인 삶에 여성성의 영향이 차단되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여성성이 차단된 심 봉사의 이미지를 현재 우리 남성성 중심의 사회에서 지치고 공허하고 우울한 남성, 혹은 남성성 우위의 사회 전체로 바라본다면 지나친 확대일까?"(35) 응, 지나친 확대야. 아내가 죽었다고 남성 안의 여성성이 차단된다면 결혼하지 않는 남성에게는 여성성이 없는가? 어릴 때부터 아니마, 아니무스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가족과 사회제도의 관습/문화가 문제이지, 곁에 여성이 있고 없고가 아니마 자체를 좌우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남성들도 힘들고 우울한 거 안다. 그러나 개인에게 오로지 가족만이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여성성을 갖지 못한 남성들이 이 사회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내의 죽음을 '심 봉사 내면의 여성성과의 단절'이라 보는 관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여자의 돌봄 없이는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남자들의 모습,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지나치게 우쭈쭈 해주는 건 아닌가?

청이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 때에는 아버지가 젖동냥을 해서 키웠지만(사실 젖동냥도 마음에 안 든다. 소 젖도 있고 염소 젖도 있는데 왜 굳이 다른 여자들의 젖을 구걸한단 말인가. 아기는 무조건 엄마 젖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창의력이 없어. 젖 먹여주는 여자들도 그렇다. 남자라 아기를 잘 키우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모두 갖고 있는 건 아닌가? 마찬가지네. 창의력이 없어.) 그 이후로는 심청이 아버지의 생계를 거의 책임진다. 아이가 아버지를 부양하는데 이웃에선 칭송이 자자하단다. 뭐라고?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고 해두자.

이제 심 봉사가 사고를 칠 차례다. 공양미 삼백 석. 그래요 그래요 내 삼백 석 시주하리다, 내 눈만 뜰 수 있다면. 사고치고 어이쿠 어떡하나 고민하는 심 봉사에게 청이가 무슨 일이냐고 여쭙는단다. 이 문장 딱 걸린다. 청이의 감정노동. 털어놓을 용기도 없고 털어놓은 뒤의 상황도 감당하기 싫어 비겁한 남성의 모습, 거기다 "내 기분 알아달라~"고 떼쓰는 모습이 겹쳐진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특히 집안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상대가 어머니든 여자형제이든 아내든 딸이든간에 모든 여성에게, 나는 말하지 않을 테니 니가 알아서 내 감정 챙겨 줘, 그렇지 않으면 화낼 거야. 얼씨구절씨구.

삼백 석 대신 제물로 팔려가기로 한 "청이는 아버지가 혼자서 살아가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앞이 안 보여도 혼자 잘 살 수 있다, 뭐 이런 말 하려는 건 아니지만 청이의 동동거림이 눈앞에 좍 펼쳐지는 듯해서 역시 열이 오르는 문장이다. 게다가 아버지를 위해, 죽으러 가는 날까지 말도 안 한다.

"심청이 아버지를 위하여 공양미 삼백 석을 받고 몸을 던지는 이미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소극적인 여자아이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강요하는 '효'라는 가치를 수동적으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어 놓는 천지가 감동할 희생으로 보아야 할까?"(49) 달리 어쩔 수 있었겠는가? "희생은 선택권이 주어진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49) 그러니까. 청이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데 그럴까 말까를 결정하는 단계도 아니고, 행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떤 선택권이 있을 수 있나? 수동적이라고도, 희생이라고도 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시나 청이가 무조건적인 복종 혹은 무비판적인 수용을 했기 때문에 공양미가 시주되고도 심 봉사가 눈을 뜨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심청의 거룩한 희생 뒤에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규범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자세가 숨어 있었는지 모른다."(50) 이건 또 무슨 말? 그럼 청이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죽으러 갔다면! 심 봉사가 눈을 뜰 수도 있다는 이야긴가? 어째서 모든 것이 여성 탓인가? 뭣도 없으면서 네! 바칠게요! 허풍을 떤 심 봉사 탓 아닌가? 딸을 볼모로 삼아 제 눈 뜨겠다는 욕심 탓 아닌가? 처음부터 재물을 바치면 눈을 뜨게 해 준다는 게 어불성설이지. 돈 받고 소원 들어주는 신이 어딨어.

심청은 바다의 연꽃(연꽃은 바다에서 살 수 없는데)을 타고 살아돌아왔고 "임금님은 연꽃에서 나온 청이랑 결혼을 하였다". 아니 그렇게 족보 따지는 임금이 출신도 모르는데 결혼을? 여자는 예쁘고 신비로우면 된다 이 말이지? 여자에겐 모든 행복의 결말이 결혼이구만? 아버지를 위해 제물로 바쳐지고 임금을 위해 결혼대상으로 바쳐지고, 이게 다를 게 뭔가. 아무리 봐도 제물로서의 여성 심청밖에 안 보인다. 연꽃의 종교적 의미는 뭐 알겠으나 어쩔 수 없이 연꽃도 꽃이잖은가. '여성 = 꽃' 이것도 식상한 비유지 말이다. (어째서 상어를 타고 오면 안 되는 건가?) + (구라를 믿은 심 봉사 때문에 죽은 심청이 불쌍해서 바다의 신(옥황상제)이 살려준 것일 수 있는데 결국 남자 때문에 죽고 남자의 손에서 구해져 남자의 손으로 건네지는 형국...)

왕비가 된 심청은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공양미를 바치고 죽기까지 했는데 아버지가 눈을 못 떴으면 그건 '개구라'라는 말이잖아. 심청은 정말 아버지를 찾고 싶었을까. 못된 딸 마인드는 1도 없었을까. 그건 혹시 자동 장착된 죄책감 아닌가. 모든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죄 책 감. 죽기까지 했는데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이냐 싶기도 하다.@@ 오로지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그 중 유독 딸)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이런 강요, 그만 보고 싶다.

심청이 맹인 잔치를 연다. 아버지를 만난다. 모두 함께 해피해피! ㅠㅠ

(여기까지 쓰고 집에 있던 심청전 동화책을 찾아 휘리릭 읽고 왔다. 이름이 심학규였지. 사는 곳과 출신도 자세하게 나온다. 처음부터 눈이 안 보인 것도 아니야. 스무 살 무렵에 그랬다는데. 결혼해서도 아내가 생계를 꾸렸고. 중간에 딸 삼겠다는 승상부인이 나오는데 심청이 죽으러 가기 전에 둘이서 나눈 시가 새로이 눈에 띄었다. 시 쓰는 심청! 심청이 도움도 좀 청할 줄 아는 성격이었다면 좋았을 걸. 나누려는 자 있는데 어찌 거부하였느냐.ㅠㅠ 뭐든 혼자서 다 잘 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야. 그리고 뺑덕어미. 이쁜 애는 착하고 못생긴 애는 못됐다는 프레임 여지 없이 나와주시고. 마을 사람들 오지랖 쩔고. 아니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려면 살던 마을로 누군가를 보내면 되지 잔치는 왜 열어? 중간중간 버럭질을 유발한다. 여자들이 하나같이 넓다란 마음을 가졌다. 당연히 그래야지요,를 장착하고 있고. 동화 끝에 덧붙여놓은 말도 가관이다. 뭐니뭐니해도 효도지, 부모에게 어떤 효도를 하고 있는지 모두가 생각해 보아요~~~ㅠㅠ)

심청이 살아돌아온 것을 저자는 '완전한 여성의 탄생'이라고 말한다. 왕도 완성된 인간이라고 말한다. "연꽃으로 태어난 청이는 참 자신의 발견으로 자기 안에 만개한 생명의 힘을 마음껏 발하는, 기쁨과 신비로 충만한 완전한 여성의 탄생을 의미한다. 청이가 왕비가 된다는 표현도 이런 최상의 힘과 아름다움을 성취한 여성이 최상의 아름다움과 힘을 가진 남성을 상징하는 왕과 결합한다는 의미다."(55) 무엇이 '완전한' 여성이고 남성인가? 내가 보기엔 여전히 가부장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캐릭터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심청이 다시 태어난 완성된 인간이고 왕도 그렇다면(왕은 어째서 완성된 인간인지 도통 이해되지 않지만) 효녀 심청을 다시 만나 눈을 뜨게 된 심학규도 완성된 인간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나? 심청을 다시 만나서 단절된 여성성과 다시 결합하고 어두움이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다. 빛 좋은 개살구. 그럼 진정한 여성성을 가지려면 청이처럼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는 말인가. 심학규는 왕비가 된 딸 덕에 여생을 편안히 잘 살았겠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풍요를 제공하는 잔치 마당이란 또다른 권력 과시로도 볼 수 있다. 여전히 굳건하기만 한 가부장제 파티. "지혜의 보고인 옛이야기는 집단 심리의 문제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도 제공한다."(56) "청이 이야기는 현대인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삶의 우울함, 공허함, 외로움, 무의미, 무가치가 극단적인 남성성 위주 사회의 당연한 산물임을 보여 준다. 이런 오랜 눈멂에서 탈피하는 길은 청이라는 만개한 여성성을 다시 얼싸안는 이미지로 제공되었다."(57) 과연 그런가? 여성 혐오가 아니고? 무엇이 해결되었나? 심학규라는 인물은 가부장제의 대표 인물이다. 여성성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 돌봄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존재.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남성들의 눈에 가부장적 안경이 달려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없는 남자는 없다. 많은 여자들도 그러하다. 이런 세상에서 진정한 여성성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단순히 옆에 여성이 있다고 남성의 여성성이 채워지리라는 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청이의 희생이나 우리 산천에 즐비한 처녀귀신으로 화한 수많은 어린 딸들의 이야기는 남성성의 원리에만 가치를 매기고 보상하는 편향된 사회에서 여성성이 이토록 쉽게 희생될 수 있다는 여성성의 운명을 보여 준다."(56)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온 것이다. 소설은 정치적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너희들은 희생하는 존재야. 남편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아버지에 대한 무조건적 효도, 그것이 너희에게 주어진 운명이야.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지. 부모(특히 아버지) 공양을 강제하는 유교적 발상의 끝판왕이다.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라고 강요하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이 여전히 읽는다. 여성의 희생으로 남성의 이익을 채우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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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받은 피너츠일력을 책상에 어정쩡하게 세워두고 쳐다보다 아 오늘 2월 1일, 2월의 시작이면서 설날이군 하고 찍어보는 사진.

세울 수도 없고 걸기도 어려워 이거 어케 사용해야 더 좋을까를 고심하며. 매일 종이를 한 장 빼내도록 되어있는데 난 빼고 싶지 않다고. 한 장이 너무 빨리 넘어가서 아쉽다. 넘어가면 이제 그 종이는 쓸모없는 쪼가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아깝다. 미니일력 갖고 싶었었는데 다음부터는 탐내지 않기로 한다.

저 날짜 아래 매일 무엇을 적으면 좋을까 고민하는 새 며칠이 흘렀다. 무언가를 적는다면 종이를 버리지 못할 테고 어딘가에 공간을 차지한 채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겠지. 아무것도 적지 말아야 하나 보다.

차라리 탁상 달력을 주세요, 알라딘. 아니 재활용으로 보자면 일력이 낫나. 그냥 멋지고 두툼한 공책이 더 낫겠다. 아니아니 물건 말고 그냥 적립금으로 주면 안 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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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2-01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두 공감해요!ㅋㅋㅋ피너츠를 어떻게 버려요?🤦‍♀️ 알라딘 이 글 보고있나?! 적립금으로 달라!

난티나무 2022-02-01 22:38   좋아요 3 | URL
진짜 일케 이쁘게 만들어놓고 매일 한 장씩 버리라는 게...ㅋㅋㅋ 색칠해야 되나도 생각했어요.ㅎㅎㅎ 적립금으로 왕뽱 주면 좋겠다~!!!! ㅎㅎㅎㅎㅎㅎㅎㅎ

mini74 2022-02-0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불편해요 정말. 벽에 붙일수도 없고 ㅎㅎㅎ 예쁜데 불편한 ㅠㅠ 작가들 피규어랑 레고 블럭을 달라 !!! ㅎㅎ 제 희망사항입니다.~~

난티나무 2022-02-02 00:35   좋아요 2 | URL
피규어! 레고 블럭!! 우와 기발한데요!!!!!! 👍👍👍
진짜 왜 이렇게 만들었지 한참 들여다봤어요….. ㅎㅎㅎ

독서괭 2022-02-01 2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넘 예쁜데 쓸모가 없어요 ㅋㅋㅋ

난티나무 2022-02-02 00:36   좋아요 3 | URL
정확한 표현이에요!^^;;;;
아깝….. ㅎㅎㅎ

바람돌이 2022-02-02 0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적립금으로 줬었어요. ㅎㅎ 얼마 줬는지는 기억이 잘... 뭐 많은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실 적립금은 쓰고 나면 표도 안나는 돈이라 이렇게 다이어리나 달력같은걸로 주니까 좋더라구요. 저 피너츠 일력도 책상에 세워뒀어요. 뒤에 북엔드 받쳐서요. 매일 달라지는 피너츠 그림보는 재미도 좋고, 아 내가 서재의 달인이야 하면서 혼자서 우쭐하는 것도 좋아요. ^^

난티나무 2022-02-02 05:00   좋아요 2 | URL
아! 그랬었군요.😅
근데 왜 바뀌었을까요?
선물도 좋은데 이번 일력은 확실히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ㅎㅎㅎ
저도 눕혀놓기 아까워서 세워둘려고 하는데 북엔드! 갖다가 해봐야 겠어요~^^
 

결국 1월 31일이 지났다. 프랑스 시간으로는 아직 31일 오후이기는 하다.^^;; 나는 미루기의 천재이다.ㅋㅋㅋ (1월 읽은 책들 감상조차 안 남기고 그냥 지나가는 중이라...) 


최근 읽은 책들 중 마지막 장들이 정말 눈에 띄게! 현저하게! 특별히! 어이없을 정도로! 끝내주게! 좋았던 세 권에 대한 이야기다. 이 페이퍼를 쓸 수 있도록 뽐뿌를 하신 공쟝*님께 이 기쁨을... 아 이거 아니구나, 감사드립니다아~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과 정치> 

말일 전에 리뷰를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으나 내 깜냥으로는 리뷰 쓸 수 없다고 며칠 전에 미리 밝혔으므로, ㅎㅎㅎ 그러나! 마지막 장 느무느무 좋았다. 다 읽고 나서 감상을 한 줄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이 마지막 9,10장을 읽기 위하여 나는 그렇게 어려운 앞부분을 어지러이 헤매었나 보다." 

공쟝*님 말씀에 전적으로, 200% 동의하는 바이다. 중간에 포기하려는 당신, 9~10장을 읽으세요. 10장만이라도, 꼭. 아리스토텔레스/마키아벨리/베버 좀 모르면 어때요. 그래도 읽을 수 있답니다. 정치, 권력, 육체, 자유, 욕망, 생각, 지배, 공포, 필요, 친밀성, 존재, 용기 등에 대한 주옥 같은 문장들이 빼곡하다. 

밑줄을 엄청 그었다. 여기 다 옮기면 너무 긴데. 블로그에 올린 거 링크링크. ↓↓↓

https://blog.naver.com/nantee/222634171259















김은주 <페미니즘 철학 입문> 

역시 말이 필요없다. 마지막 6~7장, 오드리 로드 부분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쉬었다 또 읽으세요. 김은주 선생님은 이 두 장을 위하여 앞의 모든 부분을 쓰셨음에 틀림없다(고 혼자 생각한다 ㅋ). 아무도 열광하지 않는다고 공쟝*님 서운해하셨는데 열광하는 사람 여기 있슴돠! 좋다고 페이퍼도 썼...^^;; '차이의 정치'와 '정체성의 정치'가 나오는데 이 책 읽은 이후 시작한 다른 책들에서 정체성의 정치 막 나온다. 연결, 연결, 연결~ 
















거다 러너 <가부장제의 창조> 

설 맞이 번개모임에서 마지막 11장을 함께 읽었다. 작년 6월에 읽으면서 플래그 붙여둔 부분들 역시 좋았고 그 땐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던 단어와 문장들이 새로이 좋았다. 역시 책을 읽는 그 순간, 앞뒤전후의 상황과 생각과 감정에 따라 같은 문장도 달리 보인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와 얽힌, 그것을 연상하게 하는, 정확히 짚어주는, 생각지 못했던 뼈때리는, 그런 문장들. 이전엔 생각지 못했던 소망(?)의 발견. 막연하지만 다짐해보기. 다시 읽기, 좋다. 이거 6월 여성주의읽기 책 맞지요? 일년 후 다시 읽기가 되겠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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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01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가부장제의 창조는 6월에 다시 읽기 도서입니다 :)

난티나무 2022-02-01 15:51   좋아요 2 | URL
👏👏👏
2월 책 꺼내두었어요~~~~^^

미미 2022-02-01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뼈때리는 책이었다니 6월책 기대만빵입니다! <남성됨과 정치>시의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설 음식 해드시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난티나무 2022-02-01 15:57   좋아요 2 | URL
가부장제의 창조,는 필독서이지요.^^
시의 적절! 그렇죠! 선거는 다가오고… 시름은 깊어지네요..^^;;;;
월 초에 떡국 끓여먹고 땡입니다. ㅎㅎㅎ 미미님도 복 만땅으로 받으시길!!!!! 🥰

바람돌이 2022-02-01 1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월에 읽으려고 사둔 페미니즘 철학입문 기대됩니다. 특히 마지막장은 말씀대로 2번읽고 쉬었다 또 읽고 할게요. ^^
먼곳에서 명절분위기는 안나시겠지만 그래도 맛난거 드시고 새해 복도 듬뿍 받으세요

난티나무 2022-02-01 15:56   좋아요 2 | URL
오 사셨군요~^^ 바람돌이님께도 좋은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람돌이님도 복복복 트리플로 받으시길~!!!^^ 🎊

공쟝쟝 2022-07-0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이 가부장제의 창조 페이퍼를 찾아 읽다가 이 글을 이제야 봅니다 💕 새해복많이받으세요!!! ㅋㅋㅋ (새해는 이제 시작이죠?ㅋㅋㅋ)

난티나무 2022-07-08 00: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공쟝쟝님도 두번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자! 읽어보자!
새벽 침대에서 읽기에 이어 날이 부쩍 밝았음에도 덧문 올리지 않고 노란 불 아래 책상에 앉았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커피와 간식이 놓여졌고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ㅋㅋ
287페이지 돌파.
읽으면서 생각한다.(다른 생각하면 그 문장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냥 읽는 것만으로 일단락지어야 겠구나. 뭐라 쓸 말이 없겠구나.
그저 부분부분 이해했(다고 생각하)거나 나의 경우를 대입시키거나 작금의 세태!를 연결시켜보거나, 하는 데 만족해야 겠구나.


“남성됨이라는 기획에는 구속에서의 해방이라고 정의되는 자유 추구와 지배로 정의되는 권력 추구가 포함된다. 이런 것들이 도구적 합리성의 활용을 부추길 때, 그 결과 대규모의 합리화 작업이 진행된다.”(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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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샌가 알라딘 서재에는 책 이야기만 써야지 나도 모르게 강제(?)하고 있었나 보다. 옛날에는 아이들 이야기 생활 이야기 이런저런 두서없는 글도 막 올렸는데. 아침에 블로그들 훑다가 '망각'에 관한 글을 읽었다.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과 한번 남겨지면 삭제가 불가능한 디지털 기록의 시대가 불화하는 시공간에 서있는 듯하다. SNS에 올린 말 한마디가 세월이 지난 후 부메랑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내가 올린 사진이 어디를 어떻게 떠도는지 알 수 없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스맛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세대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무서운 세상. 이렇게 전체공개로 끄적거린 글들이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오늘도 또 끄적거린다. 누군가들이 겪는 것처럼, 지금 끄적거린 글들이 나중에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하며. 한번 각인되면 떨쳐내기 어려운 이미지와 프레임들, 아 인간은 정말 어리석은 존재이며 동시에 너무 뛰어난 존재인 것이다. 


다부지게 일상을 늘어놓아야지 하곤 또 심각했다. 


▷ 무엇부터 늘어놓을까. 세간의 관심이 2년이 지나도록 식을 수 없는 그것, 코로나부터 시작해 보자. 

코로나 녀석은 우리집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학교를 다니는 두 사람이 있으니 언제고 한번은 오리라 짐작은 했다. 같은 반 아이들의 확진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그 아이들과 함께 연말 파티를 했던 작은넘, 노엘 바캉스 지나고 개학한 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하는 큰넘,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확진이라 덩달아 위험해진 옆지기, 셋 모두 '밀접접촉'. 그러나 아무도 너 접촉자라고 문자를 받지 않았다. 기준이 완화되어 마스크를 쓰는 등 거리두기 조치를 했다면 접촉으로 보지 않는다고. 어쨌거나 약국에서 자가진단키트를 뭉텅이로 사다가 이틀에 한 번씩 검사를 했다. 며칠 목이 안 좋다던 큰넘의 키트에 빨간 줄이 두 개 떴다. 격리 시작. 격리라 하지만 방에서 되도록 나오지 않는 게 다인. 어차피 화장실이며 욕실이며 함께 써야 하는 처지다. 모두 공용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침점심저녁 틈날 때마다 알콜세정제로 문손잡이며 냉장고 문손잡이 등을 닦고,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모조리 열고 환기를 했다. 다행히 큰넘의 증세는, 열도 나지 않고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괜찮고 미/후각만 아주 잠깐 희미해지는, 가벼운 정도였다. 친구들 확진으로 집에 일주일 머물렀던 작은넘은 큰넘의 확진으로 학교를 일주일 더 빠졌다. 도합 이주일동안 네 식구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밥도 따로 먹는 각자도생의 삶을 연출... 이렇게 한 달만 생활하면 정말 망가질 사람 많겠구나 싶다. 아이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아도 되니' 마음껏 폰과 컴을 하루종일,도 모자라 새벽까지 '즐겼다'. 2주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각자의 방에서 줌이라도 켜고 모임이나 회의를 해야 하지 않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는 잘 지냈으나(책도 읽고 독서모임도 하고) 백신도 안 맞았는데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인드컨트롤하느라 조금 피곤하긴 했나 보다. 어쨌거나 지금은 상황 (일단) 끝. 그저께 월요일부터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간다. 보내면서도 다시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찜찜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욕실로 직행해 손 씻고 가글하고 샤워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장본 물건들을 일일이 알콜로 닦아 정리하는 습관도 이어진다. 의심스러우면 마스크를 씌운다. 생강꿀차를 마신다. 손을 자주 씻고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말할 때 입을 가린다. 각방 격리하는 동안 제대로 아이들과 câlin을 하지 못했다. 스치듯 한번씩 서로를 껴안는 것이 큰 위로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잘 지냈다,고 적었다.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아닐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그냥 넘겼던 사소한 일을 곱씹어 생각하게 되면서 때때로 버거워질 떄가 있다. 주로 옆지기와의 마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 됐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 '잘' 살기 위해 부딪히고 넘어지고 보듬어주는 관계가 되는 것. 거시적 안목 중요하지만 미시적 관계에서 그 관점들을 실현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생각. 더듬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 또한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믿음 없이는 사실 힘든 일이다. 멈출 수 없는 길. 조심해라 나야. 강 한가운데 서있는데 수영도 못하잖아. 물길이 집어삼키지 않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낙관인 거지. 작은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구명조끼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할 텐데.


▷그래서 그랬는지, 며칠 가슴 위쪽이 은근하게 아팠다 말았다를 반복한다. 손으로 쓸면 어깨 아래 기다란 혈관 비슷한 것들이 우둘투둘 느껴진다. 무엇이 됐든 가슴 언저리에서 몽우리나 울퉁불퉁한 무엇이 만져진다면 가장 먼저 의심하게 되는 그것, 유방암. 근 일 년 가까이 가지 않던 병원에 약속을 잡았다. 뭐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며칠 지나면 사라지리라는 것도 알지만, 알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후회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만 친절한 의사는 역시나 유방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관점으로 세심한 촉진을 했고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을까 봐 심전도 검사도 했다. 갑자기 운동을 했다거나 근육을 쓴 적은 없는지도 물었다. 없어요. (운동과 나는 아직 너무 먼 사이라) 촉진도 심전도검사도 이상 없다고, 그래도 유방암 검사는 해보라며, 검사 처방전을 써준다. 심전도 검사에서 나는,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때도 이유없이 가슴 위쪽이 찌릿거리고 꽤 아파서 한동안 병원을 들락거린 적이 있다. 심전도 검사는 물론이고 하룻밤 온 가슴에 줄을 주렁주렁 달고 하는 심장 검사도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거기서 더 나아가 기관지를 통해 폐 입구까지 내시경을 밀어넣는 무지막지한 검사까지. 결과는 모두 이상 무. 비슷한 증상인데, 왜 아무데서도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걸까. 그저 내 스트레스가 원인이란 말인가. 뭐 그랬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네, 그러고 보니. 집에 돌아와 생각한다. 이 울퉁불퉁한 선들이 혈관인지 근육인지 힘줄인지 임파선인지 유선인지 또다른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들의 형태가 일그러져서 아프다고 맘대로 생각하며, 혹시 유방암은 아닌지 걱정도 덩달아 하는데, 알고 보면 그저 스트래칭을 조금 과하게 반복해 근육에 무리가 온 것일 수도, 그 염증 때문에 화끈거림을 느끼는 것일 수도, 단순히 며칠 스트레스를 받은 몸이 스트레스가 많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음을 한편으로 생각하는 나는, 그만 뒷목이 더욱 뻣뻣해지고 만다. 


▷오늘 이번달 2차 책소포를 받았다. 배송료는 '허벌나게' 비쌌으나 택스는 없었다. 복불복인지 내용물에서 걸리는 것이 있는지 자체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필요한 책은 많아지는데 소포를 자주 받기 부담스러워 이 난관 어찌하리오 모드이다. 일단 늘 하는 다짐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다. 이제 좀 줄이자. 그만 사자. 자제하자. 알라딘, 쿠폰이랑 적립금 좀 그만 날릴래. 당장은 내가 좀 서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좋을 듯해. 미끼 그만 던져. 맞다. 이건 남 탓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안 사면 되는데. 이런 구구절절이 다 쓰잘데기없는 뻘소리라는 거 여러분도 다 아시지 말입니다. 오늘도 책탑을 쌓고 야 이 비싼 책들아~ 이러고 있다. 약간의 스트레스가 밀려오는지 어깨 아래가 찌릿찌릿하네. 그런데 정말 이거 스트레스가 원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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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6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7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1-27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일 아니시길 ㅠㅠ 가격은 스트레스지만 읽는 과정에서 또 위안을 받기도 하고 , 책은 요물같아요 난티나무님.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편한 하루 보내시길. 생강꿀차와 스치듯 하는 포옹의 위로란 난티나무님 글이 제게도 위로가 되네요.

난티나무 2022-01-27 20:39   좋아요 2 | URL
책은 요물!!! 이로운 요물!!!!^^
감사합니다, mini74님~~~❤️
날이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psyche 2022-02-11 0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댁에도 코로나가 침범했었군요. 지금은 다 괜찮으시죠?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외국 살면서 아프면 제일 힘들잖아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건강 챙기세요

난티나무 2022-02-11 06:30   좋아요 0 | URL
네, 코로나는 벌써 한 달 전 일이 되었네요.^^
저는 음 검사를 미루고 있는데 다음주에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특별히 크게 아픈 데는 없어요.^^ 다만 늘 그렇듯 좀 찜찜할 뿐이죠…ㅎㅎㅎ
스트레스!!! ^^;;; 감사합니다~ 😊